소설리스트

미궁기담-313화 (313/813)

〈 313화 〉 307+ 영웅의 도시 헬루멘

* * *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치며 겨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와중에 헬루멘 영주의 집무실이자 위르트 가문의 가주 집무실은 남녀가 얽히며 만들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학! 흐윽♡ 이런…… 짐승 같은, 자세로옷…?! 헤윽!=

최고급 원목 중에서도 최고급 품질을 최고급 목수와 최고 가구 장인이 붙어 제작해 수십 금화를 호가하는 책상.

그런 책상에 기대고 서서 개처럼 따먹히던 시하는 일순간 자궁을 짓누르는 깊은 삽입에 등줄기를 따라 달리는 한 줄기 벼락을 느끼곤 척추를 바짝 세우며 부르르 떨었다.

=하윽, 헤엑……♡=

아랫배가 경직될 만큼의 절정 쾌감에 끙끙 앓던 시하는 머리채를 잡히는 느낌과 함께 목이 뒤로 꺾이는 고통에 컥, 거친 숨을 토해냈다.

고통에 몸에 힘이 들어가서일까, 보지가 수축되었고 그 탓에 남자의 자지가 질벽을 긁는 느낌이 더욱 적나라하게 밀려와 크나큰 쾌감으로 변질된 순간.

=흐아아앙!!?=

푸슛­

쾌감에 새로운 쾌감이 덧칠해진 시하는 조수를 뿜으며 허벅지를 미친 듯이 떨었다.

보지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조수가 30분간 쉴 새 없이 박혀 하얀 거품처럼 일어난 애액을 씻어낸다.

=끅, 끄흑. 허으읍.=

목이 꺾일 것처럼 뒤로 젖혀진 채 무릎을 바짝 모으고 새끼 사슴처럼 바들바들 떠는 시하.

눈앞에 별이 반짝이고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린다. 귓가에는 윙윙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멍덩하다.

환인은 그녀의 연분홍색 머리카락을 잡은 채 연이은 멀티 오르가슴에 정신을 못 차리는 시하의 하얀 여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짐승 같은 자세라고 했습니까? 당신의 머리와 엉덩이에는 짐승 귀와 짐승 꼬리가 붙어있고 박힐 때마다 짐승처럼 헐떡이니 암컷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흑…! 그대는 참말로……!=

입에서 환인을 비난하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그 목소리는 교성이 섞여 달콤하기 그지없었고 보지는 자궁 입구에 키스하는 환인의 자지를 쉴 새 없이 물어대고 있다.

자존심과 인격을 무참히 깎아내리는 언어적인 폭력에 흥분하는 패티시 때문이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나 봅니다.”

슬슬 다시 움직이려 하던 환인은 그녀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집무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전신 거울에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않아도 슬슬 체위를 바꾸고 싶었던 참이다.

그녀의 보지에서 자지를 박은 채로 책상에서 떨어지자 시하가 등을 환인의 가슴에 기대며 손을 돌려 그의 머리를 감싼다.

환인은 애정이 깃든 손길을 느끼며 그녀의 두 허벅지를 잡고 단숨에 번쩍, 들어 올렸다.

=앗?!=

자지가 박혀 환인의 몸에 고정된 것 같은 남사스러운 자세에 화들짝 놀란 시하는 잡힌 두 다리를 바동거렸다.

=이, 이게 뭔가요! 이 자세는 너무 추하잖아욧! 잠깐…… 아윽♡?!=

시하가 무어라 하든 그대로 풀 넬슨full nelson 체위로 들어가며 팔뚝으로 오금을 받치고 그녀의 뒷목에 깍지를 낀 환인은 앞으로 크게 강조된 보지에 사정없이 자지를 박아대기 시작했다.

쩝! 쩗! 쩕! 쩍!

=윽! 흐억!? 헉! 허흑……♡!=

고개가 강제로 숙여진 시하는 무엇하나 가리는 것 없이 훤히 드러낸 자신의 보지에 팔뚝 길이만 한 자지가 깊고 길게 들어갔다 나오는 걸 보곤 강하게 흥분해버렸다.

거기다 자지가 쑤우욱 들어오면 보지가 있는 대로 확장 당하며 귀두에 자궁이 밀려 올라가는 느낌.

쑤우욱 빠져나가면 환인의 자지가 속살을 있는대로 긁고 나가는 느낌. 여기에 남자에게 속박된듯한 구속감과 자신을 파렴치하게 다루는 남자의 난폭한 행위가 더해지니 시하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쾌감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하. 눈을 떠보시겠습니까.”

헐떡이며 쾌감에 애써 저항하던 시하는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환인의 이야기에 눈을 떴고.

“앞을 보시죠.”

시키는대로 앞을 본 순간 보지가 수축하며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오르가슴을 재차 느껴버렸다.

앞에는 전신 거울이 있었는데 거울에는 환인에게 두 다리가 접힌 채 번쩍 들어 올려져 보지로 자지를 남김없이 삼킨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끄흑! 헤읔! 이, 이건…! 흐읔!=

이렇게 짐짝처럼 들린 채 가랑이를 활짝 벌려 도구처럼 보지를 대주는 자세라니……!

자신이 어떠한 모습인지 인지조차 못하고 있던 시하는 굵고 긴 육봉에 중심이 꿰뚫린 채 쾌감에 녹아내려 눈물 콧물 침을 질질 흘리는 못난 자신을 보자마자 자존심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시각적 자극, 보지에서 올라오는 육체적인 자극, 그리고 이 남사스럽고 창피한 자세에서 전해져오는 강한 정신적인 자극까지.

거대한 기둥이 다리 사이로 들어와 심장까지 올라오는 감각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자지가 박힐 때마다 몸이 좌우로 갈라지는 느낌. 정신을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지 않았다간 이성을 놓아버릴 것 같다.

정신을 억지로 붙들어 매고 있으려니 새로운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느끼는 수치심, 북적북적 아래에서 자지가 박히는 소리에 의한 수치심, 정액과 애액 땀 냄새로 인한 수치심, 등과 팔과 밑과 목과…… 하여튼 전신에 느껴지는 남자의 감촉에서 느껴지는 수치심까지

오감 중 미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이 쾌감의 폭풍에 휘말려 시하의 정신을 뒤흔든다.

‘아.’

위험하다. 허리 아래쪽 뻥 뚫린듯한 공간에서 알류겔 호수의 대해와 같은 넓고 웅장한 쾌감이, 자신은 절대 버티지 못할 오르가슴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뻣뻣해지는 몸뚱이. 까뒤집어지는 눈. 앙다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신음에 갑작스레 높아지는 질압.

=끄으으흛……!=

시하의 추태를 눈여겨보며 마구 박아대던 환인은 시하의 상태를 눈치채곤 급격하게 높아져 가는 질압에 맞춰 시하를 쾌락사 시킬 기세로 무자비하게 박아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시 정지를 누른 것처럼 반응이 잠시 멈춘 시하는.

=%!!@^$#?!!=

몇 초 후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조수를 물총처럼 성대하게 뿜었다.

그 압력에 자지가 빠져나와 결합이 해제되었고, 요도를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지자 물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두두두­ 투명한 물줄기가 요란하게 거울을 두드린다. 그 수압이 얼마나 강한지 거울이 뚫리지 않을까 싶은 수준.

그렇게 경직된 자세로 수 초간 조수를 내뿜은 시하는 잔뇨를 내보내듯 찍, 찍 물총을 쏘면서 비명 같은 교성을 질렀다.

푸슛, 슈우우­ 퓻!

=흐윽! 흐앙, 악…! 하앙!=

거의 15초에 이르는 절정 분수. 그것에 체력을 크게 소모했는지 헐떡이며 축 늘어진 시하는 식은땀에 가까운 땀을 온몸에서 흘리기 시작했다.

=흐, 학. 흐앗… 흐으…….=

힘이 급격히 빠진 모습으로 하얀 발끝을 파르르 떠는 모습이 자못 애처롭지만, 환인은 개의치 않고 도톰하게 부어오른 그녀의 질 입구에 자지를 다시 가져다 댄다.

두꺼운 살기둥이 금방이라도 안으로 들어올 것처럼 자신의 구멍에 비벼지는 걸 본 시하가 고개를 힘겹게 저었다.

=아니야, 지금 넣는 거 아니야……. 나, 나 좀 쉬게 해줘…….=

“제가 들어줄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이…… 나쁜, 사람….=

“칭찬 고맙습니다.”

웃으면서 대답한 환인은 기진맥진한 시하의 반응을 거울로 감상하며 분신을 부어올라 더욱 비좁아진 살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흐으읏……! 나, 진짜…… 죽을 거 같아요…….=

“이 정도로는 일반인도 안 죽습니다. 그런데 시하는 7급 승급자이지 않습니까. 위르트 가문의 여주인으로서 근성을 보여주시죠.”

뱃속 깊이 들어오는 남자의 기둥. 자신이 새삼 여자라는 것을 몸 안쪽에서부터 재각인 시켜준 물건.

자신도 여자라는 사실을 머리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알게 해주어 정말 고마웠고, 그 덕분에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지만…….

=진짜… 아흑. 이… 짐승…….=

시하는 저항할 엄두도 못 내고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깎지껴 목 뒤를 짓누르던 손이 풀어졌기에 한결 편하게 환인의 목덜미에 머리를 기댄 시하는 거울을 통해 아기가 오줌싸는 자세로 환인의 자지에 박히는 자신을 흠칫흠칫 떨면서 응시했다.

이제 1시간이 흘렀나? 그러면 1시간은 더 지나야 끝나겠네.

그때 삽입이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보지를 들락거리는 그의 기둥이 좀 더 딱딱해지고 조금 더 커진다.

‘사정하려나 보다.’

시하는 본능적으로 정액을 조르듯이 보지를 조여주었고, 이어 환인의 신음과 함께 자궁으로 뜨거운 액체가 거침없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과장을 보태자면 자궁이 화상을 입는 느낌.

시하는 뱃속이 꾸르륵­ 울리는 것을 느끼며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은 듯이 늘어져 있으면 알아서 자신의 몸을 가지고 놀다가 멈추겠지.

고오오오오­

눈보라가 몰아치느라 덜컹거리는 창가 의자.

정액으로 살짝 부푼 아랫배를 한 손으로 감싼 시하는 의자에 앉은 환인의 다리 사이에서 자신을 2시간 동안 괴롭힌 가해자를 입과 혀로 깨끗하게 청소하며 불만을 표정으로 드러냈다.

힐끔, 위를 올려다보니 위르트의 8급 호족인 자신이 이렇게 봉사해주는데도 커다란 창문 너머로 몰아치는 눈보라만 바라보는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환인. 아직도 지원을 거절한다는 결정을 철회할 생각은 안 드는 건가요?=

“…예.”

이제야 자신을 내려다보는 환인에게 시하는 재차 불만을 강하게 드러내며 말했다.

=일부러 무장 경연에서 싼 가격에 마도기를 장만할 기회를 주었더니 중간에 나와버리고, 그러는가 했더니 푸렌 공방에서 제돈 주고 검희의 마도기를 사버리고……. 욕심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어요.=

환인은 그런 시하의 연분홍색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져주다가 그녀의 하얀 여우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절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많다면서 왜 매년 최소 500금화의 지원을 거절하느냔 말이에요. 가신들이 그걸 두고 뭐라고 하는지 알긴 해요?=

“영도로 돌아가 반 위르트, 반 헬루멘 파벌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겠지요.”

그리 대답한 환인은 자신의 기둥을 움켜쥔 시하의 손아귀에 힘이 살짝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알면 좀 받아줘요. 계약 마도구를 써서 당신에게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도 할 테니까. 욕심도 많다면서 왜 자꾸 거절하는 거에요?=

“제 욕심은 제 스스로 채우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겸사겸사 다른 호족들의 진흙탕 싸움에 발을 들이밀고 싶지 않다는 것도 있고 말입니다.”

=하아…… 그게 남자들의 포기할 수 없는 바보 같은 자존심이라는 건가요?=

그런 정치 싸움이 그녀에게는 별것 아니라는 걸까, 아니면 한평생을 그런 세계에서 살아오다 보니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진 걸까.

환인은 그녀의 심기를 표현하듯 짜증스럽게 일렁이는 네 개의 꼬리를 힐끔 보곤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흥.=

그 미소에 짜증이 사르르 풀리는 것을 느낀 시하는 일부러 불만을 드러내듯 작게 콧김을 내뿜었다.

그리고 책상으로 다가간 그녀는 서랍 속에서 두 손으로 잡아야 할 정도로 큰 상자를 가지고 왔다.

고급 포장지와 끈이 아낌없이 사용된 상자를 환인에게 쑥 내미는 시하.

=후원받는 것으로 다른 호족이 개입해서 난장판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다면, 이거라도 받아줘요.=

“이건?”

=에센셀을 통해서 극비리에, 제 사적인 자금으로만 구해온 선. 물. 이에요.=

“…….”

그녀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상자를 받아들긴 했지만, 환인은 이걸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당신을 좋아하게 된 여자가 보내는 마지막 호의에요. 만약 이것도 거절한다면…… 그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니 잘 생각하고 결정하세요.=

“구체적으로 어떤 선택입니까.”

=모르죠. 뭐, 남자의 자지에 굴복한 바보같은 여자가 신분도, 지위도, 체면도 전~부 내려놓고 어떤 남자를 뒤쫓는다든가?=

평생을 몸바쳐온 가문을 버리겠다니. 공갈일게 분명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꺼내지 않을 말을 꺼내서라도 해주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아니, 10년 뒤 세대교체를 이루고 나서 자유의 몸이 된다면 진짜 찾아올지도.’

문제라면 그때까지 자신이 이 세계에 남아있을지지만…….

환인은 상자를 한 손으로 들고 빈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끌어안은 뒤 분홍색 작은 입술에 깊은 키스를 해주었다.

“고맙습니다. 이 선물이 당신이라 생각하고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

민망함과 창피함과 수줍음과 당황이 뒤섞인 얼굴로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른 시하는 빨개진 얼굴로 환인의 단단한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콕콕콕 찔렀다.

=뭔지 보고 나서 말하라고요! 먹을 거면 어쩌려고!=

“흔들리는 느낌이 없고 상자의 무게가 가벼운 걸 봐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선물로 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만한 상자에 들어갈 장신구일까요.”

=……잘났어. 정말. 얼른 풀어봐요.=

정답이었는지 뾰로통해하면서도 은근히 흐뭇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미는 시하다.

그의 품에 바짝 안겨든 시하는 한 손으로 포장을 푸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가 근래에 어떠한 아이템을 얻었다는 걸 알게 된 시하는 이걸 구하느라 나름 시간과 돈을 들였다.

무엇이든 말만 하면 대부분이 손에 들어왔던 그녀가 드물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까지 손에 넣은 것. 그것은 바로…….

“팔찌군요.”

=그리모암의 완륜이에요. 당신이 혁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목걸이를 구해주고 싶었는데……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거뿐이었어요.=

주도의 6급 호족 가문에 에센셀을 보내서 구해온 그리모암의 다섯 유물 중 하나였다.

환인은 검은색 광택이 번들거리는 뱅글bangle을 보고 그리모암이 여자였다는 걸 눈치챘다.

설마 양화??는 여성용 구두일까.

부디 평범한 가죽 부츠이길 바라며 환인은 부드러운 미소로 시하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맙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이 세트를 모으려니 정보도 없어 막막했는데, 어느새 2개나 모였군요.=

=당신의 수완이라면 어떻게든 나머지 세 개도 모으겠죠. 그리모암의 유물을 모두 모아 당신이 진정한 최강자로 우뚝 설날을 기다리겠어요.=

“……고마움을 표현하려니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한 시간 더…….”

=돼, 됐거든요?! 진짜 미쳤나봐!=

성난 척 찰싹, 환인의 가슴을 때린 시하의 얼굴은 또다시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위르트의 영웅 기사단과 녹색 성자의 호위 기사간 친선 시합은 위르트 성에서 마련한 특설 무대에서 이루어졌다.

영지를 가지지 못한 하급 호족과 영지의 잡무를 관장하는 고족들, 헬루멘 사회의 최상류 계급이 대다수 모인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경건했다.

떠들석한 놀 거리나 구경거리가 아니라 진지하고 엄숙한 기사들의 친선 대결로 분위기가 잡힌 것이다.

=세상에. 영주님과 한 자리에 동석하다니, 저 성자님이 그렇게 훌륭한 분이신가?=

=며칠 전에 무장 경연 때 성자님이 영주님 전용석에 자리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성자님은 중간에 나가셨다던데?=

=아. 저도 들었어요. 순수한 경연인 줄 알고 참석했는데 알고 봤더니 사치와 낭비가 만연해서 실망했다고…….=

=그나저나 공자님이 안 계시는군요. 남부 수림 파병지에서 아직 복귀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야만인들이 득세하고 있었으니 단시일에 정리는 어렵겠지요.=

=그보다, 영주님과 성자님의 사이가 생각보다 더 좋아보이지 않습니까?=

=확실히 영주님의 미모가 요 며칠 갑자기 좋아지셨어요. 혹시 그 이유가…….=

=후드로 가려진 성자님의 외모는 그야말로 대장군감이라는 소문이 들리던데…….=

기사들의 시합 준비가 이루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영주와 성자에게 집중되었다.

가장 높은 단에 마련된 차양막, 한겨울의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는 그 천막 아래에 나란히 앉은 영주와 성자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 같았기 때문.

헬루멘의 정점에 위치한 성골, 평소 남자 보기를 돌같이 여기던 영주가 성자와 사이 좋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예를 들어 사이 좋은 부부로 보인다든가.

한때 녹색 성자와 영주의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이 사교계에 떠돌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헛소문이었다는 것처럼 사이좋은 두 사람의 모습에 관객들이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키워나갈 무렵 무대 양측에서 이번 친선 시합의 참가자 16명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헉…….=

=저, 저런…….=

=어찌 저리도 아름다울 수가……!=

그 순간 관중들의 시선과 관심은 귀여운 연꽃 모양 티아라를 쓰고 천상의 장막을 걸친 이실리테에게 쏟아졌다.

=그야말로 시조 이실리테님의 환신이구먼!=

=세상에, 너무 아름다워요!=

=외모와 아우라도 아우라지만 갑옷이 정말로 훌륭합니다. 말 그대로 예술품이에요.=

=저 갑옷은 어디서 만든 걸까요. 저도 한 벌 구해 소장하고 싶군요.=

=듣자하니 푸렌 공방에서 제작한 거라고…….=

참가자 16명이 무대에 늘어서자 영주의 개회사가 시작되었고, 개회사가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흥분은 기대감에 의해 점점 고조되었다.

출전자들은 영주를 제외한 영웅 기사단 서열 2위부터 14위까지, 전원 7급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평소에는 1명 보기도 어려운 7급 직업자가 무려 14명이나. 거기다 성자의 영혼 기사 두 명 중 한 명은 희귀 직업자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땅신 교단의 혼합 직업자, 성투사다.

이러한 호화로운 참가자의 면면인데 어찌 기대되지 않을까.

영주의 개회사가 끝나고 그다음으로 성자가 일어나 모두의 건투를 바란다는 짧은 축사를 말한 뒤, 한 손으로 펼친 평온의 파동이 축구장만 한 넓이의 특설 무대와 관객을 모두 뒤덮었을 때 사람들의 기대감은 최고치를 찍었다.

=과연, 영주님이 성자님과 동석하신 이유가 있었군!=

=저 정도시니까 검희와 성투사를 영혼 기사로 삼으신 거겠지요?=

설마 평온의 파동을 한 손으로, 그것도 이만한 넓은 공간을 단숨에 뒤덮을 정도로 뿌리다니, 저 정도니까 검희와 성투사를 영혼 기사로 삼았구나!

저런 분의 영혼 기사는 얼마나 대단할까, 그리고 그런 영혼 기사들과 시합을 치르는 사람이 우리 헬루멘의 자랑인 영웅 기사단의 7급 기사들이라니!

=아아. 하지만, 그러면 검희님은 성자님을 따라가시는 거 아닌가요?=

=이건 성에서 일하는 친척에게 들은 겁니다만, 위르트 가문과 헬루멘이 검희님과 성자님을 응원한다고…….=

관객석에서 감탄과 경외, 흠모와 우려, 걱정이 휘몰아치고 있을 때 친선 시합이 시작되었다.

이실리테가 친선 시합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헬루멘의 시민이라면 그녀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헬루멘의 자랑인 이름, 헬루멘 시민들이라면 누구나가 선망하고 사랑하는 직업, 거기에 만인의 존경을 받는 상급 영혼사의 영혼 기사인데다 그 기사의 주인인 영혼사는 영주와 친밀한 관계다.

그뿐만아니라 외모 또한 역사서에 전해 내려오는 시조 이실리테와 매우 흡사한, 여신과도 같은 미모다.

토너먼트 형식을 띤 16강전에서 이실리테의 출전이 반복될수록 관객석에서는 커다란 함성과 열광 어린 환호가 더더욱 강하게 쏟아졌다.

처음에는 그 아름다움에 놀라서.

두 번째는 아름다움만큼이나 대단한 실력 때문에.

세 번째는 준결승에서 같은 영혼 기사인 성투사와 시합이 이루어져서.

시합마다 3분 내외로 승부를 결정지었던 검희였지만, 같은 영혼 기사인 성투사를 상대로는 10분이나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자신이라면 저 앞에서 단 1초도 못 버틸 맹렬한 참격을 쏟아내는 검희.

그런 공격을 초대형 방패로 전부 쳐내고 막아내고 흘리며 간간이 자신의 키만 한 해머를 휘두르는 성투사.

충격파에 무대가 쩍쩍 갈라지고 흙먼지가 연신 터져 나온다.

관중들이 그 격렬한 전투에 먼지가 입에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무렵, 관중들은 등줄기를 치닫는 전율을 느꼈다.

오른손에는 적색 특대검을, 왼손에는 빛의 특대검을 쌍수로 쥐고 검의 폭풍을 일으켜 끝끝내 성투사를 무릎 꿀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은 전장의 여신처럼 우뚝 선 이실리테의 자태에서 가슴 벅차오르는 소속감과 환희를 느꼈다.

저 검희의 시초는 우리 헬루멘이다. 그리고 우리는 헬루멘의 봉신들이고!

그리고 치뤄진 결승전.

실질적으로 영웅 기사단의 단장이나 다름없는 서열 2위 가르통과 5분에 걸친 접전은…….

=크윽! ……내가, 졌소…….=

가르통의 왼팔이 빛의 검에 의해 깔끔하게 끊어지며 이실리테의 승리로 돌아갔다.

=시하 사이지 위르트 영주님께서 주최한 친선 시합의 우승자는 바로!! 녹색 성자님의 영혼기사이신 검희, 이실리테 님입니다!!!=

우와아아아­!!!

=……!=

무대가 흔들릴 정도의 우렁찬 함성에 이실리테는 기쁨보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은 언제 죽어 들판에 시체가 버려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도적 나부랭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름을 말하면 라드세아의 누구나가 알고 있는 영웅 기사단, 수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기사단의 서열 2위까지 이겨버렸다.

약간이라도 마음을 놓았다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기분에 이실리테는 눈에 힘을 주고 관객석의 가장 상석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환인에게, 자신의 주인님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자신이 얻는 이 모든 영광을 온전히 주인님에게 바치기 위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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