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300화 (300/813)

〈 300화 〉 294 폭군룡의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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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의자에서 방만한 자세로 바닐라초코 아이스크림을 떠먹던 시하=사이지는 보고서를 가져온 부관참모의 이야기에 눈썹을 찡그렸다.

중요한 간식 시간을 방해받았지만, 호기심의 선을 넘는 이야기에 자세를 똑바로 고치고 아이스크림 컵 대신 보고서를 집어든다.

=다시 말해보도록.=

=녹색 성자님께서 훈련 장소로 정령의 동굴을 선정, 무법의 마을 입구에서 통행세를 내고 입장하셨으나, 할코네 조직의 조직원들이 성자님의 녹색 쿠에를 강탈하기 위해 시비를 걸었다가 몰살당했습니다.=

=아니 요약 말고. 5급 전사를 성자가 단 일격에 목을 쳐날렸다는 부분의 신빙성을 묻는 거다.=

=보고서에 적힌 것은 한치의 조작과 사감이 반영되어있지 않은 100% 사실입니다. 당시 목격자만 250명이 넘어갑니다.=

시하=사이지는 미간의 주름을 진하게 만들며 보고서가 뚫어질 것처럼 응시한다.

=……자네라면 무직자의 몸으로 5급 직업자의 목을 1합에 쳐날릴 수 있겠나?=

=상대가 전사, 투사라면 불가능합니다. 아티피서가 제작한 특급 무기가 있다면 가능성이 약간 늘겠지만 20% 내외겠지요.=

=그렇지. 근접 직업자라면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위상력을 몸에 돌려 방어력을 올리니까. 그리되면 일반 날붙이에는 상처도 제대로 나지 않아. 하물며 단단한 목뼈를 일격에 끊고 날렸다니…… 그리고, 몸 주변에 회백색 빛의 검 여섯 자루가 떠올랐다? 검이 멋대로 움직이며 술사를 참살했고? 이건 뭔가.=

=조사관의 말로는 다변성 방어 장치로 사료된다 하였습니다.=

=방어 장치가 공격도 하던가? 검의 형상을 띄고?=

=저도 금시초문입니다. 그러나 조사관의 조사에 따르면 앞머리로 가려져 있는 성자님의 왼쪽 관자놀이에 금속 핀이 붙어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방어 장치의 핀­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방어 보조 마도기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 조사와 관계된 것은 폐기하도록.=

=전부 말입니까?=

=그래.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아. 그와는 좋은 관계를 맺어두고 싶은데 왠지 단추를 처음부터 잘못 끼운 느낌이다. 이런 마당에 뒷조사로 더 흠 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지.=

=이미 뒷조사는 어느 정도 시행한 마당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아내 그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명확히 파악해 거리감을 두고 호감을 사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팔짱을 낀 시하=사이지는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발끝에 걸린 유리 구두를 까닥이며 부관 겸 참모의 의견을 물었다.

=그대가 보기에 성자는 어떤 인물이었지?=

=직접 대면한 적이 없어 판단은 섣부른 감이 있습니다만,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지만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신분과 지위, 인맥으로 고위 호족의 명예에 흠집을 낸 죄를 상쇄하려 한 점을 고려한다면 지적 능력과 판단력은 최고지휘관급 참모에 버금가는 수준이라 볼 수 있겠지요.=

=거기에 지금 알려진 능력을 더한다면?=

=…….=

=너도 알다시피 루티아 아슬리드가 성자에게 접근하고 있다. 파르히스트의 백곰 녀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타입이지. 그런 그자가 굉장히 유화적인 정책으로 그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게 틀림없다.=

=루티아 아슬리드 영애의 접근 말이군요.=

=그래. 그러니 이쪽도 호의와 우호 의미를 담아 접근하는 게 좋아. 이런 뒷조사 같은 게 아니라 직접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눠 얻어내는 쪽이 좋다는 거지.=

=그렇다면 그의 휘하 영혼 기사에게 손을 뻗친 것은 실수가 아닙니까.=

=응? 그게 왜 실수지? 아무런 명성도, 경력도 없는 영혼기사가 영웅 기사단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영혼 기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위르트 가문을 배경으로 삼아 활동에 편의가 보강될 테니 저쪽도 이익인 이야기 아닌가.=

부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주님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너무 호족적이어서 문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대방에게 이익이라 판단되면 상대의 체면과 심정을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지극히 자기관점의 이기적이라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지금까지 이 행동이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8급 호족이라는 지위와 위르트 가문의 가주라는 신분에 자신도 7급의 직업 승급을 이뤄낸 무력의 소유자, 저 파르히스트의 성주마저도 한 단계 아래로 보는 성골 중의 성골이니까.

그나마 자신의 주군은 아랫사람을 생각하고 챙기기까지 하는 분이라 이 정도인 거지, 만약 극동의 8급 호족 드랄페였다면 이보다 더한 상황에 부닥쳤을 것이다.

부관은 그런 생각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시녀 아가씨들이 제출한 회화록을 읽었습니다. 영주님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제안이라 생각하셨겠지만, 성자님의 기사를 빼앗으려 하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진짜?=

=무엇보다, 아무리 저쪽에 죄가 있다지만 영혼 기사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는 성자님과 나누었어야지요. 헌데 영주님께서는 성자님을 배제하고 그녀하고만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것도 문제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성자는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

그때 성자가 입을 다문 부분에 대해서 부관은 여러 가지를 추측했지만, 솔직히 말해 불확실성이 너무 컸기에 정보로서 알려줄 것이 아니라 판단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고, 시하=사이지는 부관의 행동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또 실수한 건가? 혹시 성자가 그 다음 날 보여준 무심한 분위기는 그 때문이었나?

생각에 잠겨있던 시하=사이지는 한숨을 내쉬면서 재차 명령을 내렸다.

=아무튼 성자 관련 조사는 전부 중단하고 보고서도 전량 폐기해. 그와는 내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지.=

=예.=

=그리고 할코네 조직이라고 했나? 성자가 신경 쓸 일 없도록 처리해.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영웅 기사단에서 1명 차출할 권한을 주지.=

=명을 받듭니다.=

부관이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나간 뒤 시하=사이지는 우아한 다리를 뻗어 금화 수십 닢 짜리 책상에 올리고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다시 떠먹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알면 알수록 범상치 않은 인물이야.’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예감이 점차 강하게 들기 시작한다.

그런 남자가 마음이 상했다면 어떻게 해야 마음이 풀릴까. 보아하니 물욕도 별로 없어 보였고 권력욕도 없는 거 같던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시하=사이지는 티스푼을 앵두 같은 입술로 문 채 인상을 팍 찌푸렸다.

=에이.=

무조건적인 추종은 가문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며 가주가 스스로 판단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어져 온 가문의 관습.

중요성이 높은 안건은 다수결을 제시하며 반반의 의견 충돌 구도를 만들어대는 관습이 재차 성가시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가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들은 떠들기만 하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차라리 처음 자신이 낸 의견대로 이름을 더럽힌 일은 적당히 불문에 부쳤으면 좋았을 것을.

=…….=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얼굴에도 침 뱉는 행위.

크리스탈 컵을 치우고 눈이 펄펄 내리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시하=사이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 * * *

2일을 소비해 미궁 지하 1층까지 올라온 일행은 그사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형종을 잡아보았자 위상석과 정령석의 획득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웠기에 환연을 앞세워 정령석을 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그 덕분에 이 이틀간 다수의 정령석을 캐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체 수익은 감옥 미궁에서 올린 정도군.’

돌아나오는 길에 마주친 4층의 5급 저룡?에게서 위상석을 획득한 덕분이다.

결과 18일간 이형종에게서 획득한 위상석은 5급이 1개, 4급이 3개, 3급 위상석은 6개, 2급 위상석은 1개. 정령석은 고작 2개.

5급 위상석이 평균 35금화 정도에 거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부 금화로 환전할 경우 약 75금화다.

여기에 환연이 찾아낸 정령석 10개를 포함하면 40금화가 추가된다.

자신 덕분에 올린 수익을 듣던 환연은 안느의 어깨 갑주에 앉아 물었다.

「40금화면 어느정도지? 주위 인간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적은 돈은 아닌듯한데.」

=큰돈이야. 일반인은 평생을 일해도 쥐기 어려운 수준일걸?=

「흠. 안느 네 장비를 살 수 있는 돈인가?」

=너 또 말 귀엽게 안 하지.=

「……요?」

=내가 착용하고 있는 방어구는 이실리테랑 안 맞긴 하는데…… 애초에 비매품이기도 하고 살 수 있다 해도 40금화로는 어림도 없어. 30년 근속해야 원가로 40금화에 살 수 있거든. 만약 그냥 구매한다 치면 4개 기능에 희소금속이 엄청나게 들어갔으니까 15배? 그 정도는 있어야 할걸?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봐?=

「이실리테에게 네가 입은 갑옷처럼 예쁜 걸 입혔으면 해서다. …요.」

=음, 구세의 빛이 확실히 세련미가 넘치긴 해. 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성능이 좀 떨어질 텐데? 예쁜 거보단 성능이 좋은 걸 사야지.=

「갈!!」

=깜짝이야!=

귓가에서 터진 불호령에 안느가 어깨를 움츠렸다가 환연을 놀란 눈으로 돌아본다.

「자고로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앞서는 진리이거늘! 저기 지나가는 털짐승이 착용한 철판 덩어리 같은 흉한 것을 이실리테의 예쁜 얼굴에 어울릴 거라 생각……읍읍!」

=야야! 실례되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화들짝 놀란 안느가 두 손으로 환연을 감싸 쥐고 이쪽을 불만스레 쳐다보는 인랑족 전사에게 미안하다는 뜻에서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래서일까. 약간 기가 산 모습으로 무어라 말하려는 것을 환인이 패널 소드를 꺼내며 살기를 내뿜어 입을 막았다.

“닥치고 꺼져라.”

=……!=

흠칫 어깨를 떤 전사는 황급히 일행을 끌고 출구 쪽으로 달리다시피 걸어가 버렸다.

환인의 적대적인 반응에 이실리테와 안느가 놀라 그를 돌아본다.

죄 없거나 평범한 사람을 상대로 험한 말은 절대라고 할 만큼 안쓰던 그가 저렇게 살벌하게 말하다니?

환인은 패널 소드를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거리가 있었음에도 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건 이쪽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주제에 안느 네 사과에 기가 살아 헛소리를 내뱉는 꼴은 못 본다.”

약간의 정보도 돈이 되는 세계다. 6급 직업자가 착용 중인 최상급 방어구라면 엽사 조합에서도 정보로 다룰 수준.

그제야 환인의 반응을 이해한 일행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사이 안느의 손감옥에서 몸을 비틀어 탈출한 환연이 안느의 콧날을 톡톡 때리고 윗입술을 잡아당기며 열변을 토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다! 미모로 상승한 매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가 되며 강력한 매력은 상대방의 의지와 의사마저도 휘두를 수 있고 극에 다다른 미모는 타 종족에게도 매혹 효과를 발휘하는 법! 그것을 왜 모른단 말이냐!」

=아니, 예쁘다고 상대가 덜 아프게 때리는 것도 아닌데…….=

「눈앞에 극상의 예술품이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걸 때려서 부술 생각이 들겠느냐!」

=이형종이 예술품을 알아볼 안목이 있을까?=

「그러니까 초월의 아름다움이란 종을 초월하는 법이라니까!」

조그마한 환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에 안느가 얼떨떨해하니 옆에서 걷고 있던 환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안느. 환연은 정령의 토대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자기 입으로 정령은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고 했었던 만큼 사심에 억지와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뿐이니 신경 써서 상대해줄 필요는 없다.”

「억지와 궤변이라니!」

“살의와 분노로 정신세계가 치중된 이형종이 장비 착용으로 늘어난 미모에 홀려 공격이 둔해질 확률에 기대는 것보다, 외적인 아름다움에 꾸밀 금전을 성능에 치중해 확실성을 늘리는 것이 따질 것 없이 이득이다.”

전투란 불확실성을 제거해 확실성을 끌어올릴수록 안전해지는 법.

그점을 지적하자 할 말이 없는지 슬그머니 입을 다무는 환연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실리테의 외모에 검희의 아우라가 더해지니 가만히 있어도 여신의 화보 같은 자태다.

만약 저기서 세련된 방어구를 착용하면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지, 환인도 궁금하긴 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로서 여자친구가 힘 빡 주고 꾸민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할까.

“……이실리테가 제대로 꾸미면 얼마나 아름다워질지 궁금하긴 하군.”

「그렇지? 그러니까 파티에 40금화의 수익을 올리게 해준 기여자로서 파티 리더에게 요구한다! 나는 이실리테가…….」

=말투.=

「……이실리테가 구매할 방어구에 미적 요소를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요.」

“고려해보지.”

플라비우스 종족의 주도에 도착하려면 몇 개월이 더 걸릴지 모른다.

만약을 위한 파티 자금 30금화를 제외하더라도 이번 수익에 유르파가 마도기를 제작해 판매한 대금을 더하면 350금화에 가까울 예정.

환인이 자신의 갑옷을 장만하기 위한 계산에 들어간 것을 눈치챈 이실리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보다 주인님의 방어력과 신체 능력 향상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아니.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전투에 한계가 드러났음을 지난 5층에서 절감했다. 지금은 이실리테 너의 방어력을 올려 전위의 안정성을 올리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된다.”

=앗, 네.=

“일단 예산은 350금화 정도로 잡고 거기에 맞춰 전신 갑옷을 갖출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지.”

현재 소지금은 금화만 267닢. 여기에 이번 미궁에서 거두어들인 수익을 더하면 380닢 정도가 될 것이다.

일주일간 6급 이형종과 싸우며 환인이 보기에 튼튼하다거나 공격력이 높아 보인다거나 하는 이형종의 가죽과 뼈, 이빨, 발톱 등을 채취한 게 수백 킬로그램 단위다.

2~4급 이형종의 부산물은 잘 쳐줘 봤자 동화~은화지만 5급이나 6급 이형종의 부산물은 특징이 있을 경우 금화 단위로 거래된다.

이것들까지 정리하면 못해도 50금화는 남을 테니 자금의 고갈은 없을 것이다.

미궁 바깥으로 나가는 계단에 도착한 환인은 흠, 속으로 몇 가지 변수를 상황에 적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까지 습격이 없었던 걸 보면 미궁 입구에서 대기 중이라고 봐야겠지.’

잠시 생각하다가 적당한 2~3급의 5인 파티를 발견한 환인은 일행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패널 소드를 띄우며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파티에 접근했다.

=…….=

환인의 접근에 파티의 리더인 치즈색 머리카락의 인묘족 여투사가 긴장한 듯 꼬리를 치켜세우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우라는 없지만 저 몸 주변에 둥둥 떠서 유유히 회전하는 것을 보면 못해도 이쪽을 압도하는 실력자. 거기에다 함께 있던 일행은 희귀 직업자에 6급 혼합 직업자…….

‘미쳤다냥. 일급 모험가? 아님 특급 탐험가?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이쪽이 뭐 실수라도 했낭?’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바깥에 대해 간단히 여쭐 것이 있어 그러니 긴장하지 마셨으면 좋겠군요.”

환인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상대들을 보며 리더로 파악되는 여투사에게 은화 한 닢을 팅­ 날려주었다.

깜짝 놀라 징박힌 건틀릿을 낀 두 손으로 받아낸 여투사는 눈을 끔뻑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뭐가 궁금하신데용?=

“보기에 방금 미궁에 입장하신듯한데, 미궁 앞마당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미궁 입구 상황? 그게 왜 궁금한 거지?

아, 혹시 누군가의 추적을 받……. 여기까지 생각한 여투사는 환인과 그의 일행 차림을 다시 살핀 뒤 생각을 접었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니까.

=저, 저희는 여기에 꽤 오랫동안 활동했거든뇽? 들어올 때 분위기는 이전하고 별 차이가 없었어용.=

“예를 들어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듯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아니면 긴장감이 돌고 있다거나.”

=없었던 거 같은데……. 너희들은 뭐 느낀 거 있냥?=

=아니. 똑같았어.=

=별 거 없었지?=

=평소랑 다를 게 없었는데…….=

그때 가죽 갑옷 위에 사슬을 걸치고 떡갈나무 지팡이를 쥔 아직 어린 고양이 귀의 소녀가 리더의 등을 쿡쿡 찌르고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이야기를 듣던 여투사의 눈이 크게 벌어지고 세로로 갈라졌던 눈동자도 크게 확장된다.

=앗, 아.=

흥분에 꼬리를 거칠게 좌우로 붕붕 휘둘렀던 여투사는 자기 꼬리에 얻어맞은 소녀에게 사과하고 환인에게 말했다.

=저기… 우리 애가 말하기로 10일 전인가, 헬루멘에서 전쟁 기사단이 와서 할코네 조직이라는 사람들을 모두 척살했다고 하는데용……. 미궁 앞 주점에서 들은 이야기니까 확실하진 않아용.=

“그렇습니까. 알려주어서 고맙습니다.”

1은화를 한 닢 더 튕겨준 환인은 일행에게 돌아와 말했다.

“아무래도 입구에서 벌였던 일이 시하 영주의 귀에 들어간 듯 하다. 영주가 할코네 패밀리 일당을 모두 처분한 거 같군.”

=그러면 더 이상 문제는 없는 건가요?=

이실리테의 물음에 환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단 문제가 발생할 거 같지 않지만, 그래도 주의해서 나쁠 일은 없지. 내가 앞장서겠다.”

「환인. 내가 정령한테 정찰을 부탁하면 안 돼?」

환인의 가슴 포켓 안에 숨어있던 환연의 질문에 환인은 지상으로 난 긴 계단을 돌아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에게 정찰을 부탁할까 했지만, 그 작은 정령이 사람들의 미묘한 분위기와 긴장감 같은 걸 눈치채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음… 그건 그렇군.」

“나가면 사람에 관해 공부하도록. 넌 기억을 통해 정령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되니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다.”

사람의 악하고 착한 점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환연의 앞으로 삶도 좀 더 안전해지겠지.

그렇게 미궁에서 빠져나온 환인은 사람들의 시선이 단숨에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녹색 쿠에, 저 파티다.

저 사람들을 건드렸다가 할코네가 헬루멘의 기사단한테 박살 났다며?

잠깐…… 저 뒤에 갈색 머리카락 여자 아우라 좀 봐!

헉? 뭐야 저거, 설마?

웅성웅성, 수군수군.

처음에는 자신과 할코네 조직에 대한 말이 나오더니 지금은 이실리테에게 더 많은 시선과 관심이 가고 있다.

영혼사가 출현했을 때의 주목도에 비하면 낮지만 명백한 화제의 중심이 되는 흐름.

“…….”

일단 적의나 적개심 등은 보이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마을 출입구로 향하던 환인은 짐작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는 사실에 잠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검희가 위르트 가문 시조의 직업이라 했지.’

안느의 기억에 따르면 최소 몇백 년간 검희 직업이 출현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마당에 검희로 각성한 이실리테가 성에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위르트 가문은 이실리테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처벌하려 드는 곳이다.

그런데 이실리테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 사람이 시조와 같은 검희로 각성했다.

니오네브레스는 신이 존재하고 신비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세계다. 시조의 환생으로 여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환인은 이 사실이 어떤 변수를 낳을지, 그리고 이 사실을 활용하면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 계산을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면 환인은 위르트 가문과 시하=사이지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실리테가 부담가질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자신의 것에 손대려 하는 시하=사이지의 행동이 눈밖에 벗어난 것.

그렇다고 적으로 간주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저 이후로 안 볼 사람 정도로만 취급하려 했는데…….

“…….”

할코네 패밀리를 저쪽이 먼저 처리해주었다면 이쪽의 행적을 모두 읽고 있다는 뜻. 나쁜 뜻이 아니라 좋은 뜻으로 호위를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정도가 적정선이 될 것인가, 어디까지 해야 자신의 앞으로 계획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것인가.

환인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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