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화 〉 292 폭군룡의 미궁
* * *
5층은 안느의 추측대로 겨울 컨셉이었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와 덤불들. 발목까지 쌓인 눈 사이로 녹색 풀이 드문드문 고개를 내밀고 있는 풍경.
그리고 때때로 내리는 눈발과 휘몰아치는 서리바람.
“…….”
한겨울 시베리아 동토가 이럴까. 환인은 뼛속까지 스미는 냉기에 헛숨을 삼켰다.
정령은 흘러넘치니 옷을 껴입고 망토도 두르고 강령으로 체온을 유지할 생각이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 못했다.
강령이 끊어지면 자다가 얼어 죽을 상황이다.
=주인님, 잠시만요.=
그때 이실리테가 아공간 가방에서 상자를 꺼낸다. 이어크래드 상단이 선물로 보내왔던 옷 상자다.
=이거 냉기 저항 기능이 붙은 코트라고 유리 언니가 그랬어요. 이거 입으시면 따뜻하실 거예요.=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안쪽이 하얀 털로 가득 찬 회색 털코트였다.
“……다행이군.”
마도구라서일까. 한기가 제법 가셨다. 맨몸으로 한겨울의 강원도 철원 GOP에 서 있는 느낌에서 늦가을의 쌀쌀함 정도로 대폭 완화된다.
이정도면 강령을 쓰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수준.
여기에 겨울눈부츠도 꺼내고 장갑도 꺼낸 이실리테가 환인을 방한용품으로 중무장시켰다.
“고맙다.”
=헤헤.=
그렇게 시작된 5층 순회.
땅에 쌓인 눈이 빛을 반사해서인지 대낮처럼 환한 5층에서 출현하는 이형종은 4층과 비슷했지만 달랐다.
미궁 1층에서는 2급 도마뱀 계통의 이형종이 단독, 가끔 두 마리씩 어울려 출현했다.
2층에서는 3급의 비늘 달린 파충류 계통 이형종이 2~3마리씩 몰려나왔고 3층에서는 소형 공룡류가 4마리씩 무리지어 다녔다.
그랬던게 4층에서는 다시 숫자가 줄어 1~2마리씩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4층부터는 외형이 꽤나 변했었다.
본격적으로 용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트럭 사이즈의 아룡??이 출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짐승을 닮은 수룡??, 어족??을 닮은 어룡??, 새의 형상을 띈 조룡??, 두렵게 생겼다고 해서 파충류를 닮은 공룡??.
5층에서 출현하는 이형종도 그런 아룡이었지만, 크기는 4층보다 더욱 커져 대형 버스 수준이었고 이형종도 본격적으로 위상력을 다루기 시작했기에 공격력과 방어력이 말도 안 되게 높아졌다.
“이게 진짜 이형종인가.”
위상력으로 재생력을 대폭 끌어올린 이형종.
위상력으로 방어력을 극단적으로 높인 이형종.
위상력을 공격력에 집중해 근력이 말도 안되게 높은 이형종.
본격적으로 위상력으로 속성 공격을 가하는 이형종이 출현한 것이다.
어째서 진짜 이형종이라 부르는지 환인은 여자친구들과 싸우는 딱따구리를 닮은 조룡을 보고 이해했다.
끼리리릭!!
까가가가강!
=크윽!=
위상력의 시퍼런 빛으로 물든 부리가 푸르스름하게 물든 안느의 방패 위를 두들기자 쇠로 쇠를 때리는 소리와 시퍼런 불꽃이 파바박 튀어 오른다.
감옥 미궁 4계층에서 헤츨링 좀비의 공격을 받아도 흠집조차 나지 않던 성벽의 방패가 파바박 파여나가며 쇠 부스러기가 흩날린다.
=흐아앗!!=
안느를 공격하는 틈에 이실리테가 근력을 강화시켜 섬전처럼 쇄도하며 레드릭을 휘두르자 놀랍게도 회색 깃털의 날개가 푸르스름하게 물들며 이실리테의 레드릭을 까아앙! 막아냈다.
그러나 애초에 막아내길 바라며 가했던 공격.
딱따구리 조룡은 옆구리를 찢고 지나가는 격통에 부리를 쫙 벌리고 고통의 포효를 질렀다.
레드릭의 공격은 훼이크였고 진짜는 장검 수준으로 작아진 다중 검기였던 것.
꾸아아아악!!
회색이 스며든 하얀 깃털이 잘려 눈발처럼 펄럭이고 그 사이로 시뻘건 피와 내장이 후두둑 쏟아진다.
안느도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고개를 치켜들고 포효하는 조룡의 발에 힘과 위상력을 실어 한 지점에 모든 충격을 주는 기술, 격돌을 써 박살 낸 것이다.
쿠쾅!!
끼룩!
발이 으스러지는 격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트는 찰나, 딱따구리 조룡은 세상이 갑작스레 한바퀴 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
목이 가운데서 뎅겅 잘린 채로 스르륵 넘어지는 자신의 몸.
뒤늦게 목이 잘렸다는 것을 인지한 조룡은 조용히 분노하며 눈을 감았다.
=후욱, 후욱….=
=흐아아아!=
하얀 입김을 브레스처럼 내뿜는 여자친구들에게 환인이 경고했다.
“이실리테, 안느. 저 방향이다. 30초 뒤에 도착한다.”
원기 방출로 여자친구들이 소모한 원기를 쭈우욱 채워준 환인이 물러서자 그녀들도 부랴부랴 무기를 챙겨들고 환인이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인다.
=와라아앗!!=
쾅쾅쾅!
안느가 먼저 나서서 천벌의 망치로 성벽의 방패를 쾅쾅 두드린다.
그때마다 듣기 싫은 쇳소리와 함께 시퍼런 빛이 번쩍이니 콰과광, 나뭇잎 한 장 붙어있지 않은 앙상한 나무들이 폭발하며 그 사이로 허연 냉기를 휘감은 버스 사이즈의 백호가 출몰했다.
그르르르.
파충류처럼 세로로 갈라진 부리부리한 노란 눈. 검치호처럼 쭉 자라난 어금니. 다리는 강철보다도 단단해 보이는 비늘로 뒤덮여있고 꼬리 끝은 창처럼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다.
그리고 전신을 뒤덮은 하얀 냉기 같은 아우라.
=오오. 좀 강해 보이는 놈인데.=
=안느, 방심은 금물이야.=
=방심 안 해! 흐아아압!!=
기합을 지르며 설호룡에게 전차처럼 돌진하는 안느와 그녀의 뒤를 암살자처럼 조용히 따르는 이실리테에게 다시 하급 정령으로 강령을 걸어준 환인은 사체에서 빠져나오는 딱따구리 조룡의 영혼을 끌어당겼다.
“후우…….”
무려 6급의 영혼. 등급으로 따지면 중상급 혼이다. 그것을 자신의 몸에 강령하자 찌리리릿 영혼의 밀도가 급격하게 부푸는 독특한 감각 환인이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감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 느낌.
6급 이형종의 혼은 중급과 중상급이 섞여 있었다.
중급 영혼의 강화 효과는 하급 정령 강령과 동일한 2배, 중상급 영혼의 효과는 2.5배가량이다.
문제는 신체 강화 비율보다 여기 5층의 이형종을 몸에 강령하면 위상력에 대한 본능적인 지식이 몸에 새겨지는 느낌이 든다.
저등급 영혼은 육체의 기술이 대다수였는데 등급이 고급으로 올라갈수록 그러한 기술은 없어지고 위상력과 관련된 지식이 늘어나고 있었다.
문제라면 그게 책으로 습득한 지식처럼 언어화된 게 아니라 내장이 동작하는 법이나 뇌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원리라던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류라는 것.
더욱이 자신은 위상력을 다루지 못한다. 한 마디로 의미 없는 지식이지만, 여자친구들에게는 더해서 극독이나 다름없다.
누구나가 각성하며 자신만의 위상력 흐름을 개척해나가는데 여기에 다른 지식이 끼어들 경우 흔히 무협에서 말하는 주화입마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환인은 자신에게 계속 강령을 걸었다.
‘오히려 위상력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지식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위상력을 느끼고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누적된 무의식의 지식이 언젠가는 화합을 이루어 하나의 결실로 승화되길 바래서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중상급의 영혼을 강령하면 할수록 영혼이 단련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빠르게 늘고 있는 영혼 구슬의 개수였다.
5층으로 내려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영혼 구슬은 8개가 더 늘어 72개에서 80개가 된 상태.
이 상승세가 지속한다면 96개에 도달할 날이 머지않았다.
‘96개를 모으더라도 영혼술이 성장할 것 같지는 않지만.’
왠지 144개가 되어야 영혼술이 다음 단계로 성장할 것 같다고 느끼고 있는 환인이다.
크오와아아악!!
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환인은 설호룡이 지르는 포효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발톱이 칼날처럼 돋아난 설호룡의 앞발이 푸른 빛을 띈 채 안느의 방패 위로 무수하게 쏟아져 내린다.
방어의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는 6급 성투사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설호룡의 공격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방패로 쳐내고 흘려내며 때때로 천벌의 망치를 휘둘러 콧잔등을 때리고 발등을 찍어버리는 등, 착실하게 탱킹과 어그로 확보를 해나간다.
=…….=
이실리테는 그러는 동안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안느가 확실하게 어그로를 잡았다고 판단하자마자 조용히 공격을 개시했다.
안느 혼자 탱킹을 1분가량 하면 이형종은 자기 앞에서 알짱거리며 공격을 다 막고 흘려내고 때때로 아프게 때리는 안느에게 분노를 온전히 집중한다.
눈앞의 안느를 당장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혈압이 뻗쳐 옆에서 적당히 때리는 놈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 식.
물론 그 분노의 집중 정도는 개체마다 다르기에 확실하게 어그로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도 공격 대상이 핑퐁처럼 이리저리 튀는 개체도 있다.
그래서 이실리테는 천천히, 약하게 공격을 시작했다.
설호룡의 공격을 훼방 놓지 않도록, 동작에 방해되지 않도록 옆구리, 등, 뒷다리 등을 퍽퍽 때린다.
크릉!
그 공격이 성가셨을까. 설호룡은 작살 꼬리를 휘둘러 이실리테를 후려쳤지만, 이실리테는 채찍처럼 낭창낭창 휘어지는 꼬리 공격을 레드릭으로 쳐내거나 피하며 공격을 이어나간다.
콰득!
커허엉!
레드릭이 뒷다리 오금을 후려쳐 비늘이 깨어나가자 설호룡의 대가리가 이실리테에게로 홱 돌아갔다.
그순간 안느의 망치가 턱주가리를 쾅! 후려친다.
=어딜보냐!=
끄와아아악!!!
주둥이를 얻어맞아 피를 본 설호룡의 눈에서 혈기가 줄기줄기 흐르기 시작했다.
공격 속도도 20%가량 더 빨라졌고 몸놀림도 날렵해졌다. 그와 반대로 공격 방식은 무식하게 직선적으로 변해버렸다. 제대로 발작 버튼이 눌려 오직 공격에만 집중하는 모양새.
뒷다리로 몸을 반쯤 세워 안느의 방패 위로 앞발을 난타하는 설호룡의 모습에 이실리테가 눈을 번쩍 빛냈다.
누가 봐도 안느 외에 눈에 안 들어오는 분노 상태다.
‘지금!’
빛의 검을 날려 쓰걱! 성가시고 위협적인 설호룡의 꼬리를 절단하는 한편 위상력을 레드릭에 밀어 넣어 설호룡의 왼쪽 뒷다리를 맹렬하게 내려친다.
콰광, 콰지직! 우득, 콰곽!
회색으로 번들거리는 강철처럼 단단한 비늘이 박살 나고 깨어져 나가며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했지만 설호룡은 오직 안느를 죽이기 위해 방패를 앞발로 붙들고 안느의 머리를 깨물기 위해 입질을 한다.
=어딜 냄새 나는 주둥이를 들이밀고 있어! 난폭한 빛!!=
번쩍!
끄르러러렁!!
안느의 이마에서 막대한 섬광이 터지자 설호룡이 눈을 질끈 감고 몸부림친다.
눈이 멀어 시야가 봉쇄된 행동에 이실리테는 빛의 검을 재차 소환, 환인의 조언에 따라 익힌 간단한 테크닉으로 레드릭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그저께 환인과 나눈 대화가 흐른다.
“이실리테. 공격력과 피해를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위상력을 가득 부어서 하는 공격이요.=
“그건 당연하다. 그외에 다른 것은 뭐가 있을까.”
=어…… 음…….=
“한 지점에 공격을 모두 쏟아넣는 거다. 무기도, 갑옷도 수리한 곳이 다시 깨지기 쉬운 것처럼 같은 장소를 공격할수록 큰 피해를 주기 쉬워진다.”
=아!=
“네 빛의 검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격이라면 이런 방법이 있겠지. 레드릭을 휘두르는 궤적을 1초 앞서 빛의 검으로 베어내고 그 자리를 레드릭으로 치고 지나가는 것. 관통력과 내부 피해를 동시에 줄 수 있는 방식이다.”
환인이 기사검을 들고 보여준 시범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유려하고 멋있었다.
기사검의 궤적과 단 1mm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길을 패널 소드가 먼저 베고 지나가고 그 뒤를 따라 기사검 및 나머지 다섯 자루의 패널 소드가 부채처럼 휘둘러진다.
그 길목에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절단되고 말 것 같은 오싹한 기예.
촤작 츠가가각!
그때 보여준 정확한 검격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얼추 흉내는 될법한 기술을 펼치며 설호룡의 왼쪽 뒷다리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나가던 이실리테는 순간 눈을 빛내고는.
=합!=
싸악!
기합과 함께 빛의 검을 날려 오른쪽 뒷발의 발꿈치를 잘라버렸다.
끄허어엉!!
설호룡이 격한 고통의 포효를 저지르곤 주춤거리며 분노한 기색으로 으르렁거린다.
흘린 피를 통해 분노가 빠져나간 것처럼 이성을 되찾은 모양새.
꼬리가 잘리고 뒷다리가 모두 망가져 피를 철철 흘리는 설호룡의 눈동자를 읽은 환인이 경고했다.
“도망칠 생각이다.”
도망친다고? 저렇게 투기를 내뿜는데? 하지만 도령이 도망친다면 도망치는 거겠지.
안느는 두 다리에 위상력을 밀어넣어 추격을 위한 각력을 강화하고 이실리테는 좀 더 위상력을 회전시켜 신체 근력을 드높인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둘보다 저 뒤에 새와 함께 있는 하나에 더 큰 위협을 느낀 설호룡이 위상력이 담긴 포효를 터트렸다.
크허어엉!!
보이지 않는 기파에 대지에 쌓인 눈발이 퍽, 터지며 흩날린다.
위상류가 그런 포효의 위력을 대부분 감쇄시켰지만, 소리 자체만으로도 고막이 찌릿 거리고 내장이 출렁거리는 느낌에 환인은 입맛이 썼다.
공격도 아니고 위협에 이런 충격이라니. 가까이 붙었다간 잠시도 못 버티겠군.
그리 생각하며 패널 여섯 장을 꺼내 검으로 가공, 설호룡의 움직임을 읽은 장소로 날렸다.
기차처럼 꼬리를 물고 날아가는 단검 여섯 자루는 도주하기 위해 몸을 돌린 설호룡의 눈에 정확히 틀어박힌다.
한 자루였다면 안구의 안압에 튕겨 나갔겠지만, 세 자루가 서로 힘을 밀어 집중시킨 덕분에 설호룡의 눈알에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악!!!
두 눈에 바늘이 꽂힌 것처럼 울부짖으며 날뛰는 설호룡.
두 눈이 멀쩡했어도 계속 밀리기만 했던 설호룡이 두 눈마저 잃은 순간 승패는 결정되었다.
5층에서의 전투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환연이 이형종을 찾으면 다가가서 싸운다. 싸우다 보면 그 소리에 이끌린 다른 이형종이 찾아온다.
만약 찾아오는 이형종의 속도가 빠르다면 이실리테가 다중 검기를 발현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다.
찾아오는 이형종이 없다면 사냥한 이형종을 갈무리한 뒤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 기력과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이형종을 찾아 나선다.
행동은 간단하지만, 주변 환경이 어우러지면 별로 간단하지 못한 일이 된다.
5층의 컨셉은 순백의 설원. 이형종 말고도 눈이 쌓일 만큼 낮은 기온과도 싸워야 한다는 뜻.
휘오오오오
=으히~! 서리바람 진짜 극혐!=
=흐으으.=
하얀 서리바람이 쓸고 지나가자 이실리테와 안느가 작게 몸서리쳤다.
쿠에들은 기초 체온이 높은데다 두텁고 풍성하고 부드러운 깃털이 방한 역할을 해준다. 이실리테와 안느도 뛰어난 신체 능력과 위상력으로 몸을 보호하기에 냉기 저항이 높다.
그러나 환인은 평범한 몸뚱이다. 냉기 저항이 일반인 수준이었지만 방한용품으로 무장한 덕분에 5층에서의 사냥을 해나갈 수 있다.
만약 이들 중 하나라도 냉기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면 5층에서 사냥은 어려웠겠지.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윽, 갑옷이 얼어붙었어. 설호룡의 냉기 아우라는 진짜 최악이야.=
=내 갑옷도…… 호버크가 뻑뻑해.=
파칭!
=앗, 사슬 또 깨졌다.=
=어휴, 네 갑옷 완전히 고철 다됐네.=
=어쩔 수 없지. 스치기만 해도 우그러지니까.=
전투를 끝내고 설호룡의 사체에서 위상석과 정령석의 유무를 확인한 환인은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실리테, 안느. 위상력은 얼마나 남았지.”
=전 40% 정도 남았어요.=
=어, 난 60%정도. 근데 좀 배가 많이 고프네. 이슬이도 고프지?=
=응. 조금.=
자신의 몇 배나 될법한 하얀 입김의 양. 이런 추운 곳에 신체 능력을 보존하려면 그만큼 소비하는 열량이 높겠지.
환인은 코와 귀, 볼살이 빨개진 여자친구들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은신처로 돌아가서 쉬었다가 다시 나오도록 하지. 이실리테 네 갑옷도 다시 손질해야 할 거 같고.”
=네.=
=응.=
이런 상황이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환인이 마도기구원을 통해 원기를 회복한 다음 원기 방출로 그녀들이 체온을 유지하느라 소모한 원기를 보충해주고, 소모된 열량을 확보할 단백질도 환인의 영혼 시야로 먹을 수 있는 이형종을 골라 고기를 대량으로 확보해놨기에 걱정 없다.
물은 눈을 녹여 마시면 되기에 식수 걱정도 사라진 상황이며 장작도 생나무긴 하지만 주변에 널려있다.
그때 장갑 속에 머리까지 집어넣고 있던 환연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저쪽에 큰 거 한 마리가 나타났어. 아직 이쪽은 눈치 못 챘는데 돌아갈 거면 빨리 돌아가는 게 좋을걸?」
“그러지. 바로 이동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