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 290 검희
* * *
‘확실히. 3급에서 4급으로 성장할 때는 빛이 한차례 퍼져 나간 것으로 끝났었지. 그러고 보니…….’
이실리테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에게 직업 분류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니오네브레스의 사대 교단이 분류하고 인정한 직업의 대분류는 총 넷.
첫 번째로 물리 전투 직업.
날붙이를 쓰는 전사와 둔기를 쓰는 투사. 그 외 추적에 특화되어있거나 은신, 은밀 행동에 특화되었거나 채찍, 투사 병기, 투척무기 등을 사용하는 엽사.
두 번째로 술사 직업.
위상력으로 속성을 다루는 법술사.
위상력으로 기타 변화를 다루는 비술사.
세 번째로 같은 술사 계통이지만 회복과 치유라는 특수성 때문에 따로 분류된 성술사.
마지막으로 이런 위 세 직업군과 본질에서 다른 희소, 특이 직업.
주로 희귀직이라고 불리는 네 번째 분류는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적인 직업에서부터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과 다름없는 하찮은 직업까지 물경 수백 가지에 달한다.
이것만 보면 희귀 직업 각성은 복불복이 극심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으나 그것은 첫 각성을 희귀직으로 할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첫 각성을 일반 직업군으로 한 뒤 그 계통에서 실력을 발휘하다 모종의 계기로 각성할 경우 높은 확률로 기존 직업과 연관된 희귀 직업을 각성하기 때문이다.
추측되는 각성의 이유는 다양하다.
위상력을 다루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자신의 위상력 질이 향상되어 거기에 맞는 희귀 직업이 발생한다거나.
위상력으로 신체 기초 능력을 어마어마하게 단련해 신체와 위상력의 조화가 우연히도 희귀 직업과 싱크로해 재차 각성한다거나.
특정 무술을 극한으로 익혀 육신과 정신과 위상력이 그 무술과 일체화되어 변화를 일으킨다거나.
특정 축복, 혹은 저주를 받아 각성하는 예도 있고 특이한 힘이 깃든 무구를 쥐었다가 직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와, 우와. 이슬이가 희귀 직업자라니!=
회백색 빛의 폭풍에 휘감겨있는 이실리테를 바라보며 연신 탄성을 지르는 안느는 마치 자신이 희귀 직업을 각성한 것 마냥 기뻐하는 중이었다.
“안느, 저 상태가 얼마나 지속하는 거지.”
=응? 오래 안 걸려. 곧 저 위상력의 폭풍이 모두 이슬이 몸 안으로 흡수되면서 끝날…… 끝난다!=
그 말대로 맹렬하게 휘몰아치던 회백색의 빛은 마치 생명의 근원으로 삼겠다는 듯이 이실리테의 심장 쪽으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무직자처럼 아우라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잠시 이어진다. 그리고 여명이 밝아오는 것처럼 그녀의 몸 주위로 빛의 입자가 흐르기 시작했다.
입자의 농도가 점차 짙어지고 넓어져 간다. 그러다 종래에는 화사하다고 할 정도로 빛이 쉼 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빛의 코트 같고 어떻게 보면 캐주얼한 드레스같은 아우라의 형태.
=와…… 진짜 예쁘다.=
이실리테가 니오네브레스에서도 최상위에 꼽힐 정도의 미녀이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외모에 그러한 빛의 효과가 더해지니 흡사 공주처럼 고귀한 분위기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안에 걸쳐입은 판금사슬 갑옷의 몰개성한 디자인이 그 분위기를 해치는 것일까.
이윽고 눈을 뜬 이실리테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당황한다.
=이, 이건……?=
보통 자신의 아우라는 볼 수 없지만, 희귀 직업이라서 볼 수 있는지 반딧불을 처음 본 소녀처럼 행동하는 이실리테.
환인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안느에게 물었다.
“이실리테가 어떤 희귀 직업을 얻었는지 알고 있나.”
=응? 어, 그러니까…… 어어? 헐.=
홀린듯 이실리테를 구경하던 안느는 환인의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기억을 열람하다가 헐, 하고 경악성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재미있어졌다는 감정이었다.
두 마리의 아룡을 해체하고 부산물을 수습한 일행은 안전한 장소로 이동한 뒤 이실리테의 변화를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검희로 각성했다는 거야?=
=응. 그 아우라의 형태는 워낙 유명해서, 아마 틀림없을 거야.=
자신이 각성한 직업의 정체를 들은 이실리테는 호박색으로 예쁘게 빛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가 희귀 직업자가 됐다고? 믿기지 않아 자기 뺨을 힘껏 꼬집어보니 아린 통증이 느껴진다.
꿈이 아니야…….
쿠우~.
「으음~. 확실히, 너는 쿠에면서 아름다움에도 일가견이 있군.」
쿠엣! 쿠쿳!
「뭐? 처음 봤을 때는 비렁뱅이 거지꼴이었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쿠흐흥.
꿈속을 거니는 것처럼 멍하니 서 있는 이실리테와 그런 그녀의 몸 주변에 뿌려지는 빛의 입자에 쿠에들과 환연이 신기해하며 구경하고 있을 때 환인이 안느에게 물었다.
“그래서, 저 아우라가 유명한 이유는 뭐지. 네가 그리 말할 정도라면 범상치 않은 인물인듯한데.”
흐흐, 음흉한 웃음소리지만 미모 탓에 귀엽기만 한 얼굴로 안느가 말했다.
=이실리테, 남부 초원의 대영웅이 가졌던 직업이라서 그래.=
“…….”
=검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아우라의 형태 때문이야. 남자가 각성하면 그게 코트 같다고 해서 검제라고 하고, 여자가 각성하면 예쁜 배틀 드레스처럼 보여서 공주라는 이름이 붙은 거거든.=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일까. 환인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물었다.
=이실리테의 핏줄에 위르트 가문이 있는 것을 가능성은 없나.=
=없어. 있더라도 직업은 유전되지 않아. 한때 유전된다는 식의 가설이 학회에 나오긴 했지만, 가설과 검증 방식이 조잡해서 흥밋거리도 되지 못했거든. 그냥 엄청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해.=
“그런가.”
신비에 그런 유전적 요소는 없나 보군.
환인은 이실리테를 불러들인 뒤 안느에게 재차 질문했다.
“그래서, 검희는 전사와 뭐가 다른 거지.”
=희귀 직업과 일반 직업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야. 원초 기술.=
직업자라고 해서 일반인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육체가 좀 더 튼튼해지고 강해지는 것, 몸의 위상력 친화력이 늘어나 위상력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뿐.
근접 전투 직업자들은 몸이 좀 더 튼튼해지는 대신 술사 계통 직업자들보다 위상력의 용량이 절반 이하다.
반대로 술사 계통 직업자들은 신체가 별달리 강화되지 않는 대신 근접 전투 직업자들보다 위상력의 용량이 크게는 세 배까지 차이 난다.
모두가 같은 조건을 타고나는데도 실력에 차이가 나는 것은 위상력 컨트롤, 그리고 본신이 가진 무술의 재능과 연산 능력의 차이 때문.
그리고 희귀 직업자가 일반 직업자와 차별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특별하고도 희귀한 능력을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능력은 직업마다 다른데 검희 같은 경우에는…….
=다중 검기야.=
=다중 검기…….=
설명을 집중해서 듣고 있던 이실리테는 검기??라는 말에 심장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머리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실리테는 본능에 따라 그 감각에 집중했다.
이 감각을 붙잡으면 무언가 큰 변화가 생긴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이슬이 너, 오울링에서 방벽 써본 적 있잖아. 나랑 율이 언니는 아예 조작을 못 했는데 너는 그래도 패널을 만들어내고 공격에 이용했었지?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유리 언니가 알겠지만, 방어 장치의 모티브는 검희의 다중 검기에서 따온 거라고 알려졌어. 몸 주변에 빛의 검을 만들어내서 전투에 쓰는 게 검희의 능력이거든.=
“검희 각성의 징조가 그때부터 나타나고 있었던 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해. 다변성 방어 장치를 무기처럼 다루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 난 한 번도 들은 적 없었으니까.=
신비한 감각에 집중하고 있던 이실리테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심각한 갈증 상태에서 시원한 물을 마신 것처럼 청량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휭
=어!=
“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환인과 안느도 놀랐다.
느닷없이 이실리타의 앞으로 얇고 가느다랗지만, 길이가 1.5m에 가까운 빛의 장검 한 자루가 출현한 것이다.
=오. 이게 다중 검기구나.=
=이, 이게?=
=책에서 본 거하고 비슷해. 한 번 움직여봐.=
=으응.=
안느의 이야기에 이실리테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분으로 다중 검기를 움직여보았다.
=아. 방어 장치를 쓰는 것보다 더 쉬워.=
=그야 네 능력이니까 당연하지.=
환인의 방벽 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한 자루의 빛의 검.
이실리테는 감격했다. 주인님과 비슷한 능력을 얻고 사용할 수 있게 된 자신이 자랑스럽고 기뻤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왠지 가능할 것 같아 손을 내밀어 빛의 검을 쥐자 손에 꽉 차는 기분 좋은 느낌으로 검이 잡힌다. 그와 함께 크기와 형태가 레드릭처럼 변했다.
=우왓, 직접 무기로도 쓸 수 있는 거야?=
=그런 거 같아.=
안느의 질문에 대답하며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빛의 검을 두 손으로 쥐고 근처의 두께 1m짜리 나무로 다다가 검을 올려쳤다.
그순간 빛의 검이 빛살처럼 허공에 빛의 선을 긋더니.
——
소리없이, 베는 손맛도 없이 빛의 검이 나무를 지나가고 나무가 굉음과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쿠우웅!
=……대단하네.=
잘린 단면이 마치 유리처럼 반들반들하다.
「꺅.」
호기심에 그 위에 착지해본 환연이 미끄러져 발라당 넘어지더니 낮은 경사면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려 간다.
허우적거리며 땅에 떨어지려는 환연을 받아준 환인이 이실리테가 쥔 빛의 검을 돌아보며 말했다.
“확실히 이 빛의 검 쪽이 더 견고해 보이는군.”
패널로 검기와 똑같은 형태를 만들어 그 옆에 두자 확실하게 비교됐다.
이실리테의 검기는 빛의 밀도도 균일하고 꽉 찬 느낌인 데 비해 패널 소드는 어딘가 부실하고 조잡해 보였던 것.
“그 검기를 몇 개나 만들 수 있지.”
=……하나가 한계예요. 그리고 이거 하나로 1시간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위상력을 소모해서인가.”
=아니요. 검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게 느껴져요.=
“스태미너를 소모하는 거군. 과연 대영웅의 직업이라 할만해.”
체력을 쓰며 어검술처럼 검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빛의 검의 예리함은 두께 1미터의 나무도 물처럼 갈라버리는 수준.
자신의 원기 방출 능력과 상성이 좋은 기술이다.
그에 안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 속의 대영웅 이실리테는 다섯 자루의 검을 하루종일 쓸 수 있었다고 해. 이슬이 넌 어떠려나.=
=그렇다면 나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검기를 다뤄내겠어. ……주인님을 위해서.=
이실리테의 하얀 얼굴이 흥분으로 보기 좋게 달아올랐다.
검희로 2차 각성을 이룬 이실리테의 공격력은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일단 위상력의 양이 기존의 1.6배로 증가했다.
풍부해진 위상력의 양이 4급부터 끈질기게 수련해온 위상력 컨트롤과 만나 시너지를 만들어내니 위상력을 자유자재로 다뤄 신체 일부의 능력을 더욱 늘리는 강화도 수월하게 펼칠 수 있게 되었고, 공격의 순간에만 위상력을 담아 위력을 더 높이는 테크닉도 더욱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크와아아악!!
위잉잉붕붕붕붕!
몸 곳곳에 넙적한 비늘이 붙어있는 청색 곰, 청웅룡이 뒷다리로 일어서 사방팔방 난폭하게 앞발을 휘두른다.
그 기세가 사나워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서 몇 미터나 떨어진 곳의 나무가 쩍쩍 갈라지고 파헤쳐진다.
그러나 그 앞에 서있는 이실리테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청웅룡의 난격에 맞춰 레드릭을 종잇장처럼 가볍게 휘둘러 모두 쳐내는 중이다.
레드릭이 청웅룡의 발톱에 닿을 때마다 푸른 빛의 아우라가 섬뜩할 정도로 선명해진다.
여기에 극강의 절삭력을 자랑하는 검기까지.
=합!!=
크워억?!
이실리테의 기합과 함께 회백색 빛의 검이 청웅룡의 뱃가죽을 긁고 지나가자 쩍 벌어지며 지방과 새빨간 근육을 드러내고 피를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당황한 청웅룡이 통나무보다 두껍고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로 뒤덮인 앞발로 배를 누르는 순간.
=이야앗!!=
철판도 우그러트릴 완력을 담은 레드릭이 푸르게 빛나며 청웅룡의 두 팔을 쳐 튕겨내 버렸고, 그 뒤를 이어 빛의 검이 의지를 가진 것처럼 베었던 자리를 다시 베고 지나갔다.
추확!!
이번에는 내장까지 잘려나가며 토막 난 내장이 곱창처럼 주르륵 쏟아진다.
끄워엉!!
그 충격에 쿵쿵 뒷걸음치다 쿠우웅, 굉음을 내며 주저앉은 청웅룡은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뒤로 넘어져 버르적거렸다.
숨이 천천히 느려져 져가지만 이실리테는 내버려두지 않는다.
=합!=
왼손을 쥐며 당겼다가 뿌리치듯 휘두르며 기합을 내지르자 빛의 검이 종전의 2배 속도로 날아가 청웅룡의 아래턱에서부터 정수리를 뚫고 지나갔다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짝짝짝짝.
=와~!=
불과 2분 남짓한 시간에 5급 이형종, 그것도 방어력과 체력과 스태미너는 이형종 중에서도 한 손에 꼽는다는 웅룡을 절단한 이실리테에게 안느가 손뼉을 치며 감탄한다.
=공격력 대박. 이게 검희구나. 다른 직업이라면 필살기라고 부르면서 위상력을 대량으로 쏟아내야 할 기술인데!=
이실리테도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이 해낸 결과물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근데 빛의 검이 진짜 무섭긴 하다. 그걸 막으려면 나도 성벽의 방패에 위상력이랑 축복을 부여해야 겨우 막을 수 있을거 같아.=
=…이걸 막을 수 있단 말이야? 난 그게 더 무서운데…….=
=야아. 이 성벽의 방패가 어떤 물건인데.=
=하긴.=
환인은 안느와 대화를 나누며 밝게 웃는 이실리테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옆에서 지켜본 환연이 잘 모르겠다는 투로 묻는다.
「환인, 기뻐 보이네.」
“그래. 기쁘다.”
「네가 강해진 것도 아닌데 왜 기쁘지?」
“내 여자가 강해진 것은 내가 강해진 것과 다름없다. 거기다 언제나 안느에게 심적으로 주눅이 들어있었는데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지.”
이실리테는 안느의 앞에서 언제나 주눅이 든 것처럼 일말의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안느와 대등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성장했으며 무슨 일에도 휘둘리고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 거목처럼 그녀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게 환인에게 느껴졌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강인해졌으니 앞으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가 자신의 여자친구다.
어찌 기쁘지 않을까.
안느도 이실리테의 변화를 느낀 듯 그녀의 목에 팔을 걸고 이전보다 더 밝고 환한 웃음을 보인다.
서로 감추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두 미녀.
환인은 이제야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이자 가족이 된 듯한 두 명이 만들어내는 매력을 감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본격적인 힐러와 속성 딜러 한 명을 영입하면 7계층도 도전해볼 만 하겠군.”
=아~, 힐러 들어오면 나도 좋지. 모든 능력을 탱킹에 올인할 수 있으니까.=
=주인님은 원거리 공격도 할 수 있으신데 속성 딜러가 필요할까요?=
“내 원거리 공격은 동급 술사에 비하면 손색이 크다. 무엇보다 횟수 제약이 가장 큰 문제지. 다수의 비행형 괴수나 이형종이 등장할 경우 패색이 짙어진다.”
이실리테가 검기를 날릴 수 있게 되었다지만 체력을 소모하기도 하니 장기전은 어렵다. 무엇보다 강력한 대포는 최대한 많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환인. 저쪽에 길쭉한 거 하나 나타났어.」
환연의 이형종 발견 보고에 하급 정령 강령을 일행 모두에게 건 환인이 말했다.
“가지. 이실리테, 이번에는 축복받은 상태로 싸워봐라.”
=네!=
새로이 나타난 이형종은 장어 같은 몸에 파충류의 머리와 팔다리를 가진 백색의 어룡종이었다.
그리고 이실리테는 백색으로 불타는듯한 검기를 소환, 길이만 8m에 몸 두께는 느티나무처럼 굵은 어룡을 삽시간에 토막내버렸다.
빛의 대검을 휘두르자 빛의 날이 갑자기 확 늘어나며 어룡을 마치 두부처럼 베어버렸던 것.
그 무지막지한 위력에는 지켜보던 환인과 안느보다 당사자가 더욱 놀랐다.
=이, 이게…….=
옆에 선 안느가 조금 멍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이거. 도령의 축복에 이실리테가 기술 강화 목걸이 효과가 제곱으로 더해져서 그런거 같은데……. 어룡종이 아무리 덩치가 큰 대신 방어력이 낮은 편이라지만 이건 좀 심하다…….=
=……안느. 주인님의 축복은 그냥 신체 능력만 올려주는 거 아니었어?=
=다중 검기의 공격력은 신체 컨디션이랑 능력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애초에 유지를 체력으로 하잖아.=
=음…….=
그럴듯한 분석이다. 실제로 레드릭의 위력은 신체 능력이 상승한 분 정도로만 늘었으니까.
환인은 무슨 꼼장어집에서 토막낸 꼼장어처럼 변해버린 어룡종을 보고 잠깐 할 말을 잃었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이형종을 찾아다니며 좀 더 위력과 능력 검증을 해보도록 하지. 그 후에 5층으로 내려간다.”
=아, 네!=
=엉.=
“환연. 정령들에게 부탁해 이형종을 되는대로 찾아다오.”
「알았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