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 282 영웅의 도시 헬루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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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성큼 앞서 걸어가는 시하=사이지를 따라 이동한 환인과 그의 여자친구들은 살짝 당황했다.
방으로 가자기에 집무실이나 회의실 같은 곳으로 이동할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그녀의 개인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방을 맴도는 살짝 달콤한 체취. 사람이 생활하기에 최적의 온도로 맞춰진 실온.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을 만큼 백색과 연분홍색으로 꾸며진 넓고 호화로운 방.
색감은 소녀 느낌이지만, 고가의 가구와 인테리어가 그런 소녀 느낌을 줄이고 말 못할 고급스러움을 늘려준다.
=거기 앉도록.=
환인 일행에게 소파를 가리킨 시하=사이지는 드레스 장식장 쪽으로 가더니 그대로 훌렁훌렁 옷을 벗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속옷까지 벗고 연분홍색 음모까지 드러낸 시하=사이지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매를 확인한다.
환인 일행에게 나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태도.
본의아니게 환인도 태초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영주의 나신을 눈에 담았다.
유방은 보기 좋게 물방울 모양으로 늘어져 탐스러웠고 유두는 완두콩 정도로 컸지만 유륜과 함께 머리카락색만큼이나 연한 분홍색이었기에 전혀 보기 흉하지 않다.
허리는 잘록했지만 옅은 식스팩과 복사근이 드러나 건강하다기보단 전체적으로 강인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옷을 벗느라 약간 흐트러진 연분홍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시하=사이지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래, 성자 환인. 몸이 편찮은데도 불구하고 도착 다음날 찾아와 3시간씩이나 기다린 이유를 들어볼까.=
드레스 장식장 근처의 작은 문이 열리더니 시녀 넷이 암살자처럼 소리 없이 나와 시하=사이지의 옷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이미 보고를 받아 아시고 계시겠지만, 시하 사이지 위르트 영주님께…….”
=아아. 말을 끊어서 미안한데 꼬박꼬박 풀네임을 부를 필요는 없어.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다.=
환인은 이 이야기에 영주의 성격을 대충 간파했다.
아무에게나 반말 찍찍 내뱉은 무례한이 아니라 지위, 연령, 그리고 살아온 인생관으로 존대하지 않는 스타일.
그러나 자신도 반말을 듣는 것에 아무렇지 않아 하는 성격이다.
자존감이 강하며 허례를 신경을 쓰지 않고 일견 건방지게 느껴질 정도의 자기 소신을 밝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
“…영주님께 직접 사실을 고하고 선처를 부탁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귀하의 가문 선조님의 명예에 흠을 낸 입장에서 시간과 상황을 따져가며 찾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 따진다면 약속도 잡지 않고 찾아온 것도 무례가 아닌가.=
시녀 한 명이 무릎을 꿇고 백스트립 비키니 스타일의 하얀 레이스 팬티를 들자 시하=사이지가 다리를 들어 팬티에 다리를 넣으며 다시 묻는다.
다리를 든 덕분에 환인은 물론이고 여자들에게도 골짜기의 틈이 노출되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오히려 얼른 대답해보라는 듯이 환인에게 흥미로운 시선만 보내고 있다.
‘성골로 태어나 하나부터 열까지 시중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나신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긴다더니.’
환인은 동요 없이 간단히 대답했다.
“시하 님은 헬루멘의 지배자입니다. 저희는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후후. 그 말도 맞다. 보고 싶지 않은 자가 찾아오면 1시간이든 10일이든 기다리게 하니 말이다.=
이윽고 팬티가 사라락 올라와 음부와 음모를 가리고 시녀의 손에 의해 옆이 살짝 늘어나다 탁 소릴 내며 착장된다.
그즈음 비슷한 디자인의 브래지어도 착용이 끝났는데, 안느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스트립이 왠지 민망해서 얼굴이 뜨거웠다.
행동도 그렇고 하나하나가 야하지 않은데 선정적인 느낌?
속옷 입기가 끝난 뒤에는 오픈숄더 앞트임 형태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는데 오히려 속옷을 입는 것보다 빨랐다.
순식간에 드레스를 다 입고 스트랩 쪽의 플랫폼 슈즈를 신은 시하=사이지는 사내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걸음걸이로 다가와 환인의 앞자리에 앉아 다리를 꼰다.
옷을 벗었을 때는 근육의 결이 드러나는 몸이었는데, 드레스를 입고 저리 있으니 그런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여리여리한 아가씨 느낌이다.
몸 주변을 주기적으로 번쩍이는 연분홍색 번개 줄기의 아우라가 아니었다면 이름난 가문의 영애처럼 보였겠지.
=그래서, 우리 가문의 시조이신 대영웅 이실리테 님의 이름으로 도적질을 했던 영혼 기사의 죄를 사해달라고 찾아왔다는 거군.=
“아닙니다.”
=응?=
“이실리테, 이 네 글자는 위르트 가문의 시조이신 대영웅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제 영혼 기사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도적단 활동을 범죄라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도적질에 그 이름을 썼다는 죄는 부당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대영웅의 이름을 더럽힌 것은 죄가 아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헬루멘에서 이실리테라는 네 글자를 쓰며 품위 떨어지는 행동을 하면 잡아서 벌한다는 법률이 정해져 있습니까.”
=…….=
없다. 영혼을 통해 몇 번이나 교차검증을 끝낸 사실이다. 그저 괘씸죄처럼 취급받고 이 세상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호족이 하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할 뿐.
“죄를 저질렀으니 치러야 할 죗값은 마땅히 치를 겁니다. 그러나 부당한 사유로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신다면 저도 제 영혼 기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입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안느와 유르파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8급 호족인데, 가문이 지닌 무력만으로 다른 도시를 침공할 수 있을 정도인 호족 앞에서 너무 말을 막 하는 거 아닌가?
반대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시하=사이지는 환인이라는 남자에 대해 흥미가 급격하게 솟는 것을 느꼈다.
수십 년을 위르트 가문의 가주이자 헬루멘의 영주로 살아왔다.
강한 '척'을 하는 것과 진짜로 강한 사람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눈앞의 남자는 후자였다. 약한 자신을 포장하고 꾸미기 위한 강한 척이 아니라 자신만큼이나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강한 남자.
자신 앞에서 자기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당당한 남자는…… 몇 년 만이지?
속내와 다르게 시하=사이지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변했다.
안느와 유르파는 조금 소변이 마려워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유르파는 공간 도약을 쓸 때가 온 건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입을 다물고 무표정으로 환인을 응시하는 시하=사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무심한 얼굴로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는 환인.
숨막히는 침묵이 이어지길 잠시, 시하=사이지는 한층 더 환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으래? 그리 생각한다면 어째서 날 찾아왔지? 헬루멘 따위는 통과하고 곧장 영도로 향하면 될 것을. 영혼 기사가 되면 기존에 저지른 심각하지 않은 죄는 대부분 사해진다는 걸 모를 리는 없을 테고 말이야.=
“죄는 아닐지라도 욕을 듣게 했다면 사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또한 이실리테는 진심으로 시하 님께 용서를 빌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실리테는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시하=사이지의 앞에 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쉽게 용서받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신다면 남은 평생 이 이름으로 활동하며 제가 더럽힌 이실리테의 이름을 깨끗하게 돌려놓겠습니다.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흐으음.=
남자 뿐만아니라 여자도 마음에 드는걸.
고개숙인 이실리테를 팔짱끼고 쳐다보던 시하=사이지는 손가락으로 팔뚝을 톡톡 건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자료에는 존엄도, 품위도, 영예와 영광도 없는 도적 나부랭이라 적혀있었기에 권역에만 들어오면 추살대를 보내 오체분시해버리려 했는데…….=
씩 웃더니 묻는다.
=실제로 만나보니 자료와는 정반대되는 인물이군. 말해봐.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리 변할 수 있었지?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사람의 탈을 쓴 짐승으로 살던 저를 사람으로 되돌려놓은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녹색 성자인가?=
=예.=
팔걸이에 손을 올린 시하=사이지는 몸을 기울여 턱을 괴곤 뺨을 톡톡 건드린다.
잠시후 로잘린 펄처럼 빛나는 눈동자에 재미와 흥미를 담아 말했다.
=주둥이로만 떠드는 개과천선만큼 역한 것이 없지만, 행동으로써 보여주는 개과천선만큼 가슴 뛰는 것도 없지.=
=…….=
고개를 들어 자신을 맑고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는 귀엽고 괘씸한 아가씨에게 씩 웃어준 시하=사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서성거리며 전부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곤란해. 가문 회의에서는 시조님의 이름을 더럽힌 널 전통과 율법대로 처벌해야 한다와 오욕을 회복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반반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
=위르트 가문 역사를 보아도 유례가 없는 일이야. 그럴 수밖에 없지. 이번 일에 땅신 교단 본단의 최연소 추기경이 좋게좋게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보내왔고 중부의 대도시 파르히스트의 성주도 둘째 자식을 보내 은근히 회유하고 있어. 우리 기사단과 전투단에 질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납품하는 비자룩스 가문도 필요하다면 탄원서를 올리겠다는 친서가 도착했고.=
시하=사이지의 이야기에 환인의 눈빛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빛났다.
파르히스트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비자룩스도 움직이고 있었을 줄이야.
=병법에서 적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아군은 최대한으로 늘리라고 하지. 우리도 차세대 영성이 되리라 보고 있는 상급 영혼사와 마찰을 빚는 것은 부담스러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용서하거나 기회를 주기에는 이실리테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야. 그 때문에 가문 회의에서도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거고.=
이때까지 이실리테라는 이름을 남용하고 악용한 놈들은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작지만 호족 가문도 있었고.
=그런 자들은 남김없이 목을 쳐버린 전례가 있어. 잡히지 않았다면 몰라도, 헬루멘의 권역 내에 들어온 자들을 놓친 적이 없기에 직접 찾아온 이 아가씨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놓아주었다간 가문의 정체성도 흔들릴 수 있는 일이야.=
정치의 정점에 있는 호족답지 않은 구구절절한 설명에서 환인은 그녀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읽고 서슴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 여자의 성격이라면 빙빙 둘러 말하기보단 직설적으로 묻는 것을 좋아할 것 같았으니까.
“이실리테가 위르트 가문의 정예 기사가 되어 헬루멘에 소속되길 바라십니까.”
밑밥을 충분히 깔았으니 슬슬 본론을 꺼내 들려 하던 시하=사이지는 속으로 적잖게 놀랐다.
내가 흘린 몇 가지 이야기에서 거기까지 추리해낸 건가? 무척이나 영민한 자로군.
‘영민하긴 하지만 이 정도에 백곰 녀석이 자식까지 움직일 리는 없는데 말이다.’
성자라는 점에서 점수가 높긴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7급 호족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증표를 쥐여주진 않는다.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가 더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성자가 빙의체를 홀로 무찔렀다고 했었나…….’
영혼 기사들이 빙의체를 쓰러트리고 이후 나온 혼재를 영혼사가 정화했다고 생각했는데.
=…….=
자신을 상대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담대하게 제 할말을 다 하는 영혼사.
자신과 비등한 존재감을 줄곧 내보이고 있다는 점과 이계인인듯한 외모에서부터 무휘광이라는 점도, 7급과 맞먹는다는 빙의체를 홀로 무찔렀다는 소문에 6급씩이나 되는 플뢰와 흡정족을 연인으로 데리고 다니는 점, 수십 마리의 흡혈마를 홀로 도륙 내버렸다는 소문까지.
여기에 한 명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영향력까지 생각해보면…….
시하=사이지의 입가에 점차 짙은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백곰 녀석이 ‘이쪽이 먼저 찜해놨으니 건드리면 비매너요.’라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긴 했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먼저 먹으면 장땡이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환인과 헬루멘 영주의 대화를 지켜보던 두 여자는 영주가 호의 가득한 미소를 짓는 걸 보고 눈을 끔뻑였다.
방금 대화 어디에서 저런 호의가 생겨난 거지? 그보다는.
한 가문의 장?으로서 지닌 기품에 본연의 미모, 스스로 달성해낸 무위의 신비함까지 더해진 미소는 여자들마저도 얼굴을 살짝 붉힐 정도의 매력으로 완성되었다.
=맞아. 저 아이가 시험을 치러 이쪽의 영웅 기사단에 입단하길 바라. 물론 입단에 성공한다면 이후에는 특별 파견으로 활동의 자유를 보장할게.=
=하겠습니다.=
즉시 대답한 이실리테를 환인, 안느, 유르파, 시하=사이지가 동시에 쳐다본다. 특히 시하=사이지는 약간 가소롭다는 투까지 드러냈다.
=영웅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보잘것없는 경비대 심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짧은 대답이지만 그 안에 실린 각오와 다짐을 읽지 못할 리 없는 시하=사이지다.
표정이 살짝 변한 그녀는 바위처럼 단단하게 느껴지는 갈색 머리카락의 처녀에게 겁을 줄 의도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입단 시험에 실패하면 더는 기회를 주지 않고 율법에 맞춰 널 처벌할 거야. 대영웅 이실리테의 이름은 주도의 성궁에서도 존중해주는 분야, 네 주인이 아무리 성자에 7급 호족과 땅신 교단의 추기경을 등에 업었다 해도 이쪽의 이름을 동원하면 너 하나쯤 처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협박에도 눈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살짝 먹힐법한 당근을 곁들인 회유를 내민다.
=아니라면…… 그래, 1년 정도 남부 우르투스 대수림 원정에 일반병으로 참여한다면 이름을 더럽힌 값은 셈해주겠어. 원래라면 사형 외에는 없는 일이지만, 네가 성자 환인의 종자로서 활동한 점을 참작한 결정이야. 그 후에는 네 주인을 찾아 떠나든, 헬루멘에 남아 기사로 복무하든 상관하지 않겠어.=
=영웅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흔들기에도 일말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태도에 시하=사이지는 잠시 이실리테를 응시하다가 일어서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실리테가 자신의 손을 잡고 일어서자 그녀의 양어깨를 격려하듯 두드리며 말한다.
=마음에 들어. 여자라면 응당 그런 기개는 가져야지. 좋아, 네가 입단 시험에 통과한다면 내 이름과 선조님의 명예에 걸고 네가 저지른 죄를 모두 책임지고 해결해주겠다. 가문의 이름으로 너와 네 주인님의 후원자도 되어주지. 그러니 날 실망시키지 말도록 해.=
=…….=
이실리테의 눈빛이 더욱 강하게 빛나는 걸 본 시하=사이지는 만족한 듯이 환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자신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성자뿐만 아니라 이 아이도 물건이라고.
호박이 하나도 아니고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이걸 못 먹으면 병신이지.
이때 아주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띤 환인을 보았다면 다른 생각을 떠올렸을지도 모르지만, 시하=사이지는 환인에게 등을 보이고 있어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다.
환인 일행은 영주의 제안으로 이실리테가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위르트 성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호텔 헬루멘에서 지내는 것보다 성에서 지내는 게 좋을걸? 영웅 기사단 기사들의 훈련이나 대련을 지켜볼 기회도 있을 테고.=
…이라는 게 시하=사이지의 조언이었고, 그것을 환인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녁 즈음에 시험 일시와 시험 내용이 전달되었는데, 내용을 확인한 안느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한 달 뒤 전원 6급 이상인 20인의 영웅 기사단원 중 한 명이라도 대련에서 승리할 것……? 아니, 이건 좀 심하잖아. 4급더러 6급한테 이기라니, 이슬이가 뭐 도령도 아니고.=
=그치만 이슬이 아가씨의 기술은 안느 아가씨보다 반수 정도 더 뛰어나지 않니?=
=언니 말이 맞지만 그게 2급의 차이를 메꿀 정도냐면 아니야. 무엇보다 영웅 기사단이잖아? 니오네브레스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집단이라구. 그들도 대를 거쳐 무술을 연마해왔을 텐데 절대 얕봐선 안돼.=
=음…….=
=이슬이가 5급에 오르기만 하면 승률은 보장될 텐데…….=
그외에 원래대로라면 인성 검사와 가족 및 친지, 인맥 확인 등이 이어져야 했지만 고아 출신에 현직 성자의 영혼 기사라는 타이틀 덕에 그러한 보조 시험은 프리패스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그 안에 5급에 올라서야 한다는 뜻.
전달된 알림장을 무표정으로 확인한 이실리테는 기껏 회복한 체력을 시하=사이지와 대화하며 모두 소모한 바람에 다시 드러누운 환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주인님. 미궁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래.”
그렇지 않아도 미궁을 염두에 두고 있던 환인이었다. 느낌상 5급이 멀지 않았으니 왕복에 이틀 잡고 돌아와 시험 준비에 사흘해서 최대 25일.
“그 안에 네가 5급에 올라설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지.”
목표는 정령의 동굴로 알려진 7급 지하동굴형 미궁, 폭군룡의 둥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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