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화 〉 277 영웅의 도시 헬루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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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점 여주인에게 위치를 물어 방문한 엽사 조합에서 환인은 정보를 구매하러 왔다고 목적을 밝혔다.
이때 갈롯의 조언을 받아들여 등록했던 파르히스트의 엽사 조합 이용자 신분이 꽤 도움되었다.
데스크의 안내원 이야기로는 이용자 신분을 처음 등록한 후 활동 대기 기간이 있는데(범법자, 범죄자 색출 의도). 오울링에서 비자룩스를 거치다 보니 대기 기간이 모두 충족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이 대기 기간을 충족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있는데다 정보비도 배로 지급해야 한다.
만약 그때 엽사 조합에 신분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무의미한 발걸음을 했겠지.
=오, 파르히스트에서 오셨다고? 거기도 살기 좋은 곳이지~.=
그렇게 카피바라를 닮은 머리의 털털한 정보계원을 만난 환인은 적당히 립서비스를 해가며 정보계원의 경계심 해제 작업을 진행했다.
“파르히스트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평온한 쪽의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헬루멘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화려하고도 섬세한 도시인 것 같더군요.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라서 적잖이 마음이 동합니다.”
=으하하하! 뭣 좀 아는 형씨구만! 우리 헬루멘이 남부에서 가장 가슴 설레는 멋진 도시지! 크핫핫하핳!=
대체로 도시의 일원이면 소속감도 강한 편이라고 웨이포드파르히스트를 겪으며 느낀 환인이다.
소속감이 옅다고 해도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을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가려운 부분을 살살 긁어주는 환인의 숙달된 화술에 홀랑 넘어간 정보계원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꺼내 자신의 지식과 도시 자랑을 쉴새 없이 이어갔다.
헬루멘이 라드세아 어디하고도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 번화하고 화려한 도시라는 것.
화려한 도시일수록 그 빛에 가려진 그림자가 짙은 법이지만 시하=사이지=위르트 영주의 치세에 헬루멘은 그림자가 거의 없다는 것.
정의롭고 강인하며 사람을 두루 품을 줄 아는 존경스러운 영주님의 치세.
도시를 지키는 위르트 가문의 장로님들과 영웅 기사단, 그리고 그 휘하의 3대 전투단은 또 얼마나 강력하고 절제가 넘치는지, 라드세아 남부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저 남쪽의 안스트가 아니라 우리 헬루멘이며 헬루멘에서 생산한 식량은 라드세아를 먹여 살리는 동맥이라는 것까지.
물론 환인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원래 목적을 잊지 않고 계원이 눈치 못 챌 만큼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해 목적을 달성했다.
=어어, 이쪽이 폭군룡의 둥지 정보고 이쪽이 근방 마을과 촌락 위치 정보야. 미궁 정보는 단계별로 1은화, 10은화, 1금화가 있는데 나는 10은화짜리를 추천해.=
“보통은 높은 가격의 정보가 더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가성비라는 단어가 있잖나. 금화 짜리는……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건데 말이야.=
그리 운을 뗀 계원은 성실해 보이는 자네한테만 귀띔해주는 거라며 금화 버전은 계층별 출현하는 이형종의 분석 정도라며 돈값을 하느냐면 솔직히 좀 아니라고 소리 죽여 이야기해주었다.
=아, 마을 위치는 개당 70동화, 촌락 위치는 35동화야. 촌락 정보 갱신은 세 달 전에 이루어졌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촌락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법이니 맹신하진 말고.=
“그러면…… 폭군룡의 둥지 10은화와 마을 위치 4개, 촌락의 위치는 전부 구매하겠습니다.”
=오우. 돈 좀 쓸 줄 아는 친구구먼.=
환인은 계원의 추천 수준이 지금까지 본 조합원 중 가장 높다고(제대로 된 정보계원은 그가 처음이었다. 갈롯은 교육계원) 자연스럽게 칭찬하며 계원이 보여주는 서류를 암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구매한 정보의 발설은 금물이며 지식을 전수하다 적발될 경우 그에 합당한 페널티가 있을 거라는 형식상의 경고도 해주는 계원.
이미 갈롯에게 들었던 경고였기에 환인은 촌락 위치를 암기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가 은근슬쩍 분위기를 잡으며 하는 말에 관심이 있는 척 호기심을 드러냈다.
“갓 들어온 중요한 정보라니, 제 조합 단계로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까?”
=으음. 조합 등급이 4급이라면 무료지만, 자네는 실적이 별로 없는 2급이라서…… 1은화가 필요해. 하지만 이 헬루멘의 대단한 점을 꿰뚫어본 자네라면 들어도 아깝진 않을 거야. 그 유명하고도 대단한…… 응, 그 이야기와 연관되어있으니까.=
“우라킨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안 들어볼 수가 없군요.”
=프하하핰! 잘 생각했어!=
화통하게 웃음을 터트렸던 계원은 누가 들을세라 자세를 낮춰 낮은 목소리로 정보를 입 밖으로 흘렸다.
=……방금 그 정보계원은 사람은 좋아 보였지만, 실력은 어떨지 의구심이 드네요.=
“그런가.”
=정보계원이라면 앞에 앉아있는 고객의 정체 정도는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남자는 말만 많지……. 주인님이 그 정보의 당사자라는 것도 모르고.=
녹색 성자가 헬루멘에 도착했다는 정보를 일급비밀인양 1은화씩이나 받아냈다는 게 무척이나 못마땅했는지 엽사 조합을 나오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불평하는 이실리테였다.
환인은 웃으며 이실리테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그래도 도움되는 이야기는 있었다.”
=……제가 도시에 함께 들어왔다는 부분인가요?=
“그래. 계원이 그 사실을 입에 담은 것 자체가 너의 동향이 정보로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뜻이지. 정보로 다루어진다는 것은 그 정보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니까.”
위르트 가문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간접 증거라고 이야기하자 이실리테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엊그제 환인의 위로와 사랑의 속삭임에 약한 마음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자신 때문에 주인님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린다.
흔들린것도 잠시, 표정에서 그림자를 치워낸 이실리테는 한층 각오를 새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빨리 강해지자. 주인님에게 도움되는 것은 둘째치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적어도 안느만큼은 강해져야지.
그후 둘은 사람이 비교적 적게 다니는 길로 들어와 회색 후드 망토를 걸친 뒤 영혼을 찾아다녔다.
도시의 동향과 영주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영혼을 통하는 것이 안전하고 빠르다.
하지만…….
“파르히스트만큼이나 영혼이 적군.”
영혼이 별로 없다. = 평화롭다.
이 공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분야에 참조할 수 있는 지표 정도는 된다.
영지 운영을 올곧고 바르게 했다는 의미도 되고 영지민들이 혼령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짧은 주기로 승령천제를 치른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그말은 즉.
=위르트 가문도 파르히스트 가문처럼 도시민들의 생활 환경에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겠네요.=
“그래. 영주의 성향이 선과 정의 쪽으로 치우쳤다는 거겠지.”
그것은 얼마 안 되는 영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탐문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환인이 정해놓았던 조건에 걸맞은 세 명의 영혼이 영주에게 우호적이며 호의적인 증언을 연이어 내놓은 것이다.
「영주님은 굉장히 정의롭고 선한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절대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관철하는 분도 아니죠…. 융통성도 있는 분이에요….」
‘만약 영주님이 이실리테라는 이름으로 나쁜 짓을 했다면, 그러다 뉘우치고 선행을 해나가는 사람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까.’
「대영웅 이실리테 님의 이름을 더럽힌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 분이 영주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오명만큼이나 선행을 했다면…. 영주님도 막무가내로 분노하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염두에 둔 조건은 나이가 많은 노인일 것, 부유한 옷차림일 것, 예의범절과 매너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사람일 것.
이 조건에 걸맞은 영혼이라면 헬루멘 상류층에 소속되었을 인물이라 판단했고 그 판단은 사실이었다.
세 명 중 두 명이 고족이었고 한 명은 고족에 가까운 지역 명사였던 것.
여기에 나이와 연륜까지 있는 세 명이 같은 대답을 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평판이 틀렸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환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사람이 적은 길을 걷고 공원을 걸으며 좀 더 많고 다양한 계층의 영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영주는 정의감도 있고 선량함도 있으며 본신의 무력도 낮지 않은데다 어느 정도 융통성도 발휘할 수 있는, 군주의 덕목을 다수 갖춘 참된 인물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때까지의 소식만 보자면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신경쓰이는 부분이 추가되었다. 헬루멘의 도시 구조와 운영 방식, 정책을 알게 되면서 생긴 요소다.
일단 영혼이 꽤 쌓였고 슬슬 해도 넘어가려 하고 있었기에 정보 수집을 마무리 지은 환인은 도움을 준 영혼들의 성불행을 진행했다.
=녹색 성자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설마 어머니가 구천을 떠돌고 계셨다니…… 이 불효자는 그것도 모르고…….=
성불행은 쉬웠다.
점차 영혼술의 수준이 높아지는 중이었기에 환인이 강제력을 발휘하면 대다수 영혼은 또렷한 자의식을 회복해 자기 집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흐흐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혼사님. 아버지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저는 이만.”
=앗!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몇 분이면 됩니다. 부디!=
그리고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말처럼, 부유한 삶을 살고 있던 영혼의 가족들은 환인에게 적지 않은 보답과 사례를 했다.
작게는 50은화에서 크게는 3금화까지.
환인은 대가와 사례를 절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환인에게 두둑한 돈주머니를 안겨주었다.
이것이 부모님의, 가족의 영혼이 신님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티켓 비용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 영혼까지 성불시킨 환인은 빛구슬을 마저 회수하고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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