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82화 (282/813)

〈 282화 〉 276 영웅의 도시 헬루멘

* * *

몇 시간 뒤.

헬루멘의 서문경비대 소속 하급 여기사는 얼굴에 분노의 열꽃이 핀 레이빈의 진술을 들었다.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

얼굴뼈가 무너진 게 아닐까 싶은 면상의 발람에 시선을 준 여기사는 이어 미동도 없이 묵묵히 앉아있는 회색 후드 로브의 환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는 6급 직업자 두 명과 4급 직업자 한 명을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레이빈에게 말했다.

=일단…….=

말을 꺼내기 전에 잠시 단어를 정리한 기사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검은색 고양이 귀를 한차례 털고 옆에 선 병사에게 말했다.

=코나 병장, 이놈에게 위상력 억제기를 채워서 유치장에 쳐넣어. 치안국 요원이 나올 때까지 애들 붙여서 감시하고.=

=넷.=

=그리고 레이빈 씨?=

=넵.=

=녹색 성자님께서 당신들의 무고를 증언해주셨지만,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치안국에서 2차 조사가 이뤄질 거에요.=

=네, 넵.=

=여기에 당신들이 머무르는 여관의 이름을 적고 치안국에서 출두 명령이 갈 때까지 대기하세요. 그사이 도시를 떠나거나 떠날 시도를 하거나 잠적을 시도하면 즉시 라드세아는 물론 히스론드, 벨티칼, 메리아놀의 모든 도시, 마을에 현상수배와 함께 추살령이 떨어질 거란 점을 염두에 두시고요.=

=네엡…….=

평범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내용을 듣고 잔뜩 주눅이 든 레이빈 일행에게 여기사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위로를 건넨다.

=녹색 성자님께서 증언해주신 만큼 심각한 벌은 떨어지지 않을 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그렇다고 괜히 큰일로 번질 행동은 하지 않길 권할게요.=

=무 물론입니다. 여관에서 얌전히 대기하겠습니다!=

여기사가 용무는 이걸로 끝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빈과 그녀의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환인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한 뒤 서둘러 경비소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여기사는 환인이 제출한 신분패를 확인하며 신분패에 새겨진 마력파장을 서류에 기입한 다음 환인에게 공손히 되돌려주었다.

=성자님의 신분패,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성자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평범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시지요.”

=아닙니다. 재앙화한 혼재를 정화하신 영혼사님은 모두 성자님으로 불리시니까요.=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혹시 영도가 자신을 부르는 이유에 그게 있을까 짐작하며 이어지는 여기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무튼, 성자님이 끌고 온 놈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보상과 배상은 저놈을 국경의 이블 팩션 접경 주둔군에게 판매한 값만큼 지급될 것입니다. 입금은 영혼사님의 신분패에 등록된 마력파장 계좌로 이루어질 테니 대강 두 달, 그쯤 지났을 때 행정관 은행소에서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그걸로 용무가 끝났기에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겸사겸사 해서 통행세를 내려 했지만, 여기사는 영혼사님들에게는 통행세를 받지 않는다며 오히려 돈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도시를 방문하시는 모든 영혼사님께 위르트 가문이 드리는 여비이자 지원금입니다.=

위르트 가문의 문장, 여자의 옆모습을 단순화한 자수가 놓인 작은 주머니 안에는 무려 2금화가 들어있었다.

여기사가 묻는다.

=헬루멘에서 머무르신다면 영주님께서 후원하시고 지원하시는 호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머무르시는 동안은 모든 체류 비용이 무료입니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환인은 비상을 탄 채 말을 타고 가는 여기사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방문하는 영혼사들에게 2금화의 지원금을 무상으로 내어주고 숙식까지 책임진다니. 위르트 가문은 꽤 돈이 많은가 보군.

돈이 많다는 가정하에 이런 영혼사 지원 정책은 여러모로 헬루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작게는 영혼사들의 방문 유도에 크게는 영혼사들의 인식 변화, 그로 말미암은 영혼 문제 조기 해결에 친밀도 증가까지.

친밀감이란 굉장한 위력을 발휘하는 인간관계의 스테이터스 수치다.

만약 이 정책이 100년간 이어졌다면 영혼사의 세대교체도 이루어졌을 테니 거의 모든 영혼사들이 헬루멘에 두드러지는 기억이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영혼사 중에서 헬루멘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거 같군.’

그래서 물어보았다. 영혼사들이 헬루멘에 자주 방문하지 않느냐고.

=가장 방문이 뜸하실 때도 한 달에 두 분은 방문해주시고 계십니다.=

많을 때는 7명까지 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야 그렇겠지. 무려 2금화다. 평범하게 여비로 사용할 경우 반년은 족히 쓸 수 있는 돈.

“위르트 영주님께서는 영혼사들의 성불행에 크게 이바지하시고 계시군요. 적잖이 감동했습니다.”

=700년째 이어져 내려오는 헬루멘의 유구한 전통 중 하나입니다.=

그리 대답하는 여기사에게서 자부심이 엿보였다.

위르트 가문의 영주가 어떤 인물인지 조금 신경 쓰이기 시작할 무렵 도착한 호텔은 위르트 가문이 정식으로 영혼사를 지원하기 위해 지었다는 내력이 있었는데.

=와.=

안느가 자신도 모르게 작게 탄성을 질렀을 만큼 호텔은 비자룩스에서 머물렀던 돌심장 호텔보다 고급 시설이었다.

겉은 근현대 유럽의 귀족 건물 느낌. 내부 또한 백색과 밝은 갈색조의 르네상스 풍 화려한 인테리어.

도시의 외관과 무척 잘 어울리는 양식이다.

=녹색 성자님께서 머무르실 객실은 이곳입니다.=

안내받은 객실은 돌심장 호텔에 버금가는 로열 스위트 룸이었다.

천장은 순백, 바닥은 나뭇결이 보이는 매끈한 나무바닥재에 벽은 80% 이상이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하나가 플로랄풍 군청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가구 인테리어는 르네상스 하면 생각나는 것들투성이.

안내해준 지배인이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한다.

=차임벨을 울리시면 대기 중인 메이드가 5분 내에 방문할 것입니다. 불편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부담가지지 마시고 편히 울려주시길.=

지배인이 돌아간 뒤 짐가방을 내려놓은 여자친구들이 휘유~ 감탄하거나 으음, 살짝 당황한 것처럼 객실을 두리번거린다.

=여비에 체재비용 무료에 이런 높은 등급 객실에……. 영혼사 지원 정책이 정말 대단하네요. 이 정도면 지출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아까 여기사 씨도 말했잖니. 한 달에 적으면 2명, 많으면 7명 정도 온다고. 영혼사님들은 대부분 검소하고 소박한 분들이시니까 체류 비용도 얼마 안들 테고, 이런 객실에 머무른다 해봤자 하루 50은화면 많을까? 매달 평균 4명으로 잡고 1년 해봤자 24금화니까 이런 중급 도시 입장에서는 푼돈일 거야.=

=그런가요……?=

24금화가 푼돈이라니, 매년 도시 운용 예산은 얼마인 걸까. 유르파의 설명에 이실리테가 놀라고 있을 때 안느가 끼어들었다.

=오면서 본 도시 봤지? 굉장히 화려했잖아. 사람들 옷차림도 고급스러웠던데다가 여유도 넘쳤고. 건물 높이를 딱딱 맞춰서 지은 거나 깨끗하게 포장된 거리나 그러면서도 수목이 많은 거나.=

=확실히 아까 큰 대로에서 이어지는 오거리는 굉장했어. 유리창이 가득한 5층의 화려한 건물들이 빼곡히 서 있고 엄청 많은 사람이랑 마차가 오갔으니까.=

=어. 계획적으로 짓지 않았다면 만들기 어려운 풍경이었는데 그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여유가 넘치거나 능력이 넘쳐서 계획적이라는 말이니까. 내가 보기에 헬루멘은 의도적으로 중급 도시를 유지하며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라고 봐. 남부는 물론 중부나 북부를 다 합쳐도 헬루멘이 가장 부자 도시일걸?=

예로 파르히스트 토너먼트의 총상금만 해도 수천 금화라고 이야기를 꺼내는 안느. 그 덕에 이실리테도 수긍할 수 있었다.

돈을 엄청나게 버는 도시 입장에서 매년 24금화의 지출(+@)는 새발의 피겠지

그러다보니 여자들의 얼굴이 조금 긴장에 물들었다. 이런 도시의 주인이 이실리테를 싫어한다면…….

환인은 금색 테두리에 하얀 목조 프레임 그리고 민트색 바탕에 어지러운 무늬가 새겨진… 의자라기보단 예술품 같은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유르파에게 필담으로 물었다.

[도청과 감청 감지를 할 수 있습니까.]

환인의 쪽지에 눈을 크게 뜬 유르파는 주머니에서 나무 지팡이를 꺼내 한차례 위상력을 투사했다. 그리곤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도청 술법은 없다는 뜻. 환인이 입을 열었다.

“유르파, 계획은 변경입니다. 이어크래드 상단을 방문할 때 이실리테의 이야기는 억지로 꺼내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아니, 이어크래드의 위샤 씨나 그때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이실리테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말을 꺼내지 마십시오. 안느도 예정대로 실행하되, 영도의 근황에 관련된 것만 의뢰해라.”

=어? 그래도 괜찮아?=

“그래. 물증은 없지만 영주는 왠지…… 느낌이 그렇군. 위르트 가문이라면 뒤로 소문을 퍼트려 상황을 유리하게 조성하기보단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물증이 없다고 해도 환인은 직감의 영역에서 진실을 어느 정도 꿰뚫어보았다.

도시가 밝고 평화로우면서도 화려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도시를 지배하는 자가 강한 힘과 거기에 걸맞은 재력, 그리고 정의감을 갖추었다는 뜻.

뒤쪽으로 소문을 만들어 안전을 도모하고 여론을 동원해 압박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저쪽이 먼저 한발 양보하는 그림은 모두 폐기, 상급 영혼사이자 성자라는 패로 정면에서 돌파구를 만들어내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정의감을 가진 인물에게 그런 식의 조작은 통할 가능성도 낮고, 이러한 행동이 만에 하나 추적당했을 때 발생하는 디메리트를 생각해보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그렇다고 상급 영혼사와 7급 호족의 증표라는 패만으로는 좀 불안한 감이 있다.

여기에 교단까지 등에 올리면 아무리 8급 호족이라도 압박을 받지 않을까.

환인은 비상을 타고 날 때 눈이 마주친 사람을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쪽이 먼저 접근해오면 좋겠지만, 이쪽이 다가가는 쪽을 전제로 생각해야 한다. 영주와 마주했을 때 할 말을 고르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해.’

하지만 지금은 정보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도령이 그렇게 느낀다면…… 알았어. 우리도 믿을게.=

“혹시 모르니 성에 초대받으면 입고 갈 옷도 준비해놓는 게 좋겠군.”

=무도회 복장?=

“아니. 이쪽도 얕볼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의상이다.”

=아, 예식정장. 난 교단 예장이 있어서 괜찮아. 율이 언니랑 이슬이는?=

=호족 접견용 정장이라면 나도 바지로 한 벌 있어. 이슬이 아가씨는?=

“이실리테는 없습니다. 알아볼 것이 있어 나갈 생각이니 같이 나가서 맞추면 되겠지요.”

고개를 끄덕인 안느는 유르파의 팔에 팔짱을 끼며 묻는다.

=율이언니, 같이 움직이자. 언니 혼자 보내는 건 좀 걱정되네.=

=그럴래?=

=엉. 내 쪽이 볼일 금방 끝날 거 같은데 땅신 교단부터 먼저 가면 안 됨?=

=그러렴~.=

그렇게 안느와 유르파는 평범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연인처럼 팔짱을 낀 채 호텔을 나섰고, 환인도 이실리테와 함께 바로 호텔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후드 같은 것도 쓰지 않고 얼굴을 노출한 환인의 차림에 이실리테가 물었다.

=주인님. 후드는 안 쓰셔도 괜찮으세요?=

“그래. 이제 정체를 굳이 숨겨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대답해주며 눈을 감은 환인은 정신을 집중해 감각 확장과 기척 감지를 동시 펼쳤다.

무수한 사람과 동물, 마차 등이 움직이며 발생하는 정보가 머리에 쏟아져 두통을 일으켰지만, 환인은 능숙하게 감각을 조절해 정보량을 줄여나가다 적당한 수준이 되었을 때 주변을 감각으로 주시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오면서 봤던 크고 화려하던 양장점.

이실리테는 눈을 감고 사람을 능숙하게 피해가며 걷는 환인의 모습에 속으로 또다시 감동과 감탄사를 중얼거렸다.

무예의 극치에 도달한 무인들은 눈을 감고도 화살을 피하고 베어내고 뒤에서 들어오는 공격도 막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어렸던 용병 시절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개소리라며 일축했었는데 그게 진짜 가능한 일이었구나…….

“역시 따라붙는 눈이 있군.”

그러던 중 슥, 눈을 뜬 환인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이실리테는 차가워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실리테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홱 고개를 돌리자마자 골목으로 부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사람 모습을.

두고 온 레드릭 대신 허리에 찬 기사검의 자루에 손을 올리는 이실리테를 환인이 제지한다.

“적의는 없다. 도시를 방문한 영혼사의 안전을 위해 성에서 붙이는 눈이겠지. 신경 쓰지 마라.”

=네, 주인님.=

순종적으로 대답하는 이실리테를 잠시 쳐다본 환인은 그녀의 성장세를 떠올렸다.

처음 이실리테와 마주쳤을 때는 3급의 초입이었던가. 무술 실력도 형편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키우기 위해 여건이 되지 않을 때를 제외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대련해주고 있다.

중간에 안느도 참가하며 이어진 훈련은 벌써 반년이 넘어가는 중.

덕분에 그녀의 무술 실력은 안느보다 반걸음 앞서나가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이실리테는 회피와 반격 스타일, 안느는 막기와 반격 스타일인데 이전까지 반반 정도의 승률을 유지하더니 요즈음 들어 이실리테의 승률이 높아지는 중이다.

전투 기술만큼은 6급 못지않다. 여기에 그간의 훈련과 실전 경험이 어우러져 아우라의 농도도 빠르게 짙어지고 있다.

환인이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엊그제 있었던 농도의 변화 때문이었다.

그녀를 보듬어주고 사랑을 속삭여준 것이 무언가 내면의 변화를 불러왔는지 몸을 섞은 뒤 자고 일어난 그녀의 아우라가 눈에 띌 정도로 진해졌던 것.

짙기만 따지면 웨이포드 무관의 5급 투사인 하이엔=조드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조만간 5급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녀가 5급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환인이 머릿속으로 돌려본 시뮬레이션 중에는 영주의 제안으로 결투를 통해 해결을 보려 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그에 대해 대비를 하려면 등급을 올리는 쪽이 가장 좋은데…….

‘역시 강한 이형종과 싸우는 건가.’

만약 감정의 격동이 위상력의 성장에 주요한 요소라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대련보다 목숨을 걸고 벌이는 전투가 가장 효과적일 테지.

환인이 호텔을 나온 목적 중에는 그와 관련된 것도 있었다.

영혼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엽사 조합을 찾아 근방의 마을, 촌락의 위치를 확보하는 한편 레이빈 일행이 말했던 정령의 동굴이라는 곳을 알아보기 위해서.

평균 3.5급인 레이빈의 파티가 여비를 벌기 위해서 간다면 적지 않은 수입 요소가 있을 텐데 만약 자신의 예상대로 정령석이 출토된다면 자신의 정령 친화를 올릴 방법도 되고 그녀의 훈련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영주성에서 연락이 오겠지.’

그냥 마차를 호텔에 맡기고 내일 곧장 그 정령의 동굴이란 곳으로 가볼까,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양장점에 도착한 환인은 이실리테의 체형이 루크랑 여성의 표본이라 할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우월한 덕에 기성품임에도 수제품 같은 느낌의 정장을 빠르게 구매할 수 있었다.

=어머나~! 부모님의 뒤를 이어 이 장사를 70년째 하고 있지만, 기성품을 수제품 느낌으로 만드는 손님은 처음 봤어요~!=

여주인의 호들갑이 과장이 아닐 만큼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트린 이실리테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검회색 바지 정장이었다.

물론 훌륭한 가슴 풍만감 탓에 약간의 수선이 필요했지만, 환인의 외모에 호감이 생긴 여종업원을 통해 영주가 어떤 사람인지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무인다운 사람, 이라.’

도시의 구조와 성의 배치, 중세 유럽 판타지라고 할만큼 발달한 헬루멘에서 느낀 것과 별 차이 없는 평가다.

물론 한 명에게만 들었으니 단정은 섣부른 행위.

호족 자리에서 쓰이는지라 정장치고 비싼 12은화를 낸 환인은 이실리테와 함께 엽사 조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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