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화 〉 271 헬루멘으로 가는 길
* * *
간밤에 성불행이 진행됐다는 걸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아쉬움에 한숨을 토로했다.
승령천제가 아닌 평상시에 영혼의 성불을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걸 놓치다니…….
이는 물론 환인이 의도한 상황이었다.
명성의 증가 속도는 명성치와 비례한다. 이름이 널리 알려질수록 명성치의 상승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즉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인정을 받기 위해 성불행을 보여주며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노출했지만, 지금처럼 한 지역에서 올릴 수 있는 명성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면 굳이 쇼맨십을 보일 필요가 없다.
때문에 환인은 사람들이 없는 밤에 영혼을 모아 성불행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명성이 크게 올랐기 때문일까. 환인은 일반인 여자들뿐만 아니라 여자 직업자들도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말만 하면, 손만 뻗으면 달려와 몸을 허락할듯한 기세의 여자들.
“…….”
미의 평균이 지구보다 월등히 높은 니오네브레스의 여자들이다. 직업자로 각성까지 했으니 외모는 말해봐야 입만 아픈 수준이며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출난 능력의 보유자들.
그렇기에 환인은 마을 순찰대, 경비대 소속의 2급, 3급 직업자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초소형 지역 사회인 마을에서 직업자 여성은 매우 뛰어난 신붓감이다. 능력도 있고 외모도 뛰어나다. 그런 여자가 임자가 없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한 명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고 다른 한 명도 마을 유지의 아들과 결혼을 앞둔 여자였기에 환인은 은밀하고 유혹적인 시선을 보내는 그녀들을 길가의 개와 고양이처럼 취급했다.
명성이 본격적으로 널리 퍼져 나가는 이 시기에 여자와 관련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그의 그런 행동에 환인의 여자친구들은 기쁘면서도 조금 난감함을 느꼈다.
환인의 영혼술은 기존의 훈련에 더해 많은 여자를 안아야 빠르게 성장한다. 그리고 환인은 성장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구애의 눈빛을 보내고 있음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가 사랑스러우면서도 곤란함을 느낀 것.
물론 사랑하는 남자에게 다른 여자들이 들러붙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그러나 그가 처한 상황이 상황이다.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한테서 흡수하는 영기가 적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그냥 우리 앞에서 자랑하지만 않으면 괜찮은데…….=
=주인님은 임자 있는 여자는 건드리지 않으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에수스 씨는 남편에 아이도 넷이나 있고 샨테라 씨는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하니까 주인님한테는 여자로 안 보이는 걸 거야.=
=그런가? 흐음.=
유르파는 이해심을 발휘하는 두 아가씨를 바라보며 말을 아꼈다.
헬루멘에 현장에서 은퇴한 직업자들로 이루어진 창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첩된 입장에서 본처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는 일.
그녀들이 착하고 이해심이 많은 것과 기분 나빠할 법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내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
=…….=
=…….=
생각과 고민에 잠겨드느라 말수가 적어지는 이실리테와 안느를 보던 유르파는 슬슬 주제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주제도 확실하게 언급하고 넘어가야하는 중요한 안건이니까, 지금 꺼낸다고해도 이상하진 않을 거다.
=그런데 이슬이 아가씨~?=
=네?=
=아가씨는 헬루멘에 가도 괜찮은 거니? 상급 영혼사의 영혼 기사니까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 아가씨의 전직이 전직이다 보니까……?=
=아…….=
유르파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은 이실리테의 표정이 흐려지고 안느도 눈을 끔뻑이다 =앗!=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실리테라는 이름의 유래는 라드세아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영웅에서 나온 것이다.
이실리테=아름=위르트.
900년 전, 여섯 곳의 대미궁이 동시에 역류 현상을 일으켜 끔찍한 재해가 라드세아 남부를 뒤덮었을 때 홀연히 나타난 대영웅.
당시 여덟의 친구와 동료를 이끌고 대미궁 여섯 곳을 전부 격파한 뒤 들불처럼 번져가던 이형종을 모두 정리해 남부의 구세주가 된 영웅이다.
그 위업으로 당시 고작 두 명뿐이던 10급 호족의 지위를 왕에게 내려받았으며, 넘쳐흐른 이형종 탓에 집과 땅과 살 곳을 잃은 난민을 모아 불모지가 되어버린 라드세아 평원에 마을을 만들고 평원을 떠도는 이형종을 사냥해서 정리하는 한편 마을을 키워 도시로 성장시켜나간 입지전적인 인물.
그녀를 시조로 둔 위르트 가문은 현대에 들어 무성과 투성을 주기적으로 배출하며 라드세아는 물론 니오네브레스에서도 손에 꼽는 명문이 되었다.
남부 초원의 대영웅이라는 문장은 위르트 가문의 시조인 그녀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을 정도. 당연히 이실리테라는 이름 네 글자에 가장 큰 의미를 두는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도시는 자신의 것이 아니며 사람들의 것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자신의 호족의 가문명이 아닌 사람들이 정한 헬루멘을 도시명으로 정한 인물이다.
이실리테는 잠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이름을 바꿀까요? 이슬이도 괜찮은데.=
=이름을 바꿀 필요까진 있겠니? 헬루멘에서만 그 이름을 꺼내지 않도록 주의하면 될거 같은데…… 아니면 헬루멘에 들르지 않고 바로 프라버로 향하던가.=
=그건 안될걸……. 지금 헬루멘에 도착하면 위르트 성주가 틀림없이 도령을 성으로 초대할 거야. 그럼 우리도 따라가야 하는데 자기 소개할 때 이름을 말 안 할 수도 없잖아.=
=…….=
=…….=
잠시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던 여자들은 환인이 돌아왔을 때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로 무언의 합의를 보았다.
지금 자신들이 결론을 내려봤자 환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아침 식사를 끝낸 뒤 잠시 사도의 집을 방문했던 환인은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듣고 줄곧 생각중이던 이야기를 꺼냈다.
“영도의 초대를 받고 비자룩스를 나와 일정을 변경할 때부터 생각해둔 게 있다.”
=어? 도령은 이미 알고 있었어?=
“그래.”
처음 만났을 때 스사가 =위르트 8급 호족이 당신을 찢어 죽이려 들 거요.=라고 말하는 걸 기억하고 있던 환인이었다.
비자룩스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헬루멘을 다스리는 가문이 헬루멘이라는 이름의 가문일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환인이 본 바로 호족의 가문명이 곧 도시명이었으니까.
그러나 비자룩스에서 혼재를 정화한 이후 주변 정세 정보를 수집할 때 헬루멘을 다스리는 가문이 위르트 가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환인은 그때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라수비탄으로 가는 길은 헬루멘을 지나는 것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랬는데 영도의 초대를 받으며 상황이 바뀌었다.
영도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헬루멘을 지나쳐야 한다.
캐스테드에서 다른 마을로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사도에게 주변 지리를 물었지만, 없다. 헬루멘의 위성 마을로서 헬루멘과 이어지는 길, 혹은 남부 안스트로 가는 길뿐이다.
라수비탄으로 간다면 평원 남부의 안스트로 내려가 대수림을 지난다는 루트가 있지만, 영도는 짤없이 헬루멘을 들러야 하는 거다.
이런 상황에 남부 대영웅의 이름을 도적질로 더럽힌 전적이 있는 이실리테가 방문하면?
비록 손을 씻고 새사람이 되었다지만 위르트 가문이 =아, 그렇습니까?=하고 웃으며 넘어갈 리 없다.
“이실리테는 이실리테다. 헬루멘의 위르트 가문이 이실리테의 과거를 걸고넘어진다면 그녀를 거두고 연인으로 삼은 내가 책임질 일, 이실리테 너는 아무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환인의 단호한 대답에 마음속의 불안이 거두어지는 대신 부담과 불편함이 차곡차곡 쌓이는 이실리테였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로 주인님이 책임을 져야 한다니, 그것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지? 주인님이 저렇게 말한 이상 위르트 가문이 자신에게 대영웅의 이름을 더럽힌 죄를 물으려 한다면 주인님이 나서실 텐데.
이실리테의 고민은 다음날 캐스테드 마을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저…… 주인님.=
캐스테드 마을에서 평원도시 헬루멘까지 거리는 걸어서 일주일, 마차를 타면 4일 거리다.
마을을 나온 뒤 줄곧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이실리테는 헬루멘까지 하루가 남았을 때 실수가 없도록 말에 신경 쓰며 입을 열었다.
=역시 저는 이름을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마부석에 앉아 정신 집중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기술을 연마하던 환인은 조용히 눈을 뜨고 이실리테를 보았다.
“지금 쓰는 이름을 버리겠다고.”
=네. 저는…… 태어날 때 이름을 받지 못했어요. 부모한테 버림받고 하수구 구정물이 흐르는 다리 밑의 거지 패거리들 손에 이름 없이 크다가… 거지 패거리의 우두머리에게 받은 이름이 이실리테였어요.=
남부 대영웅의 이름이라는 건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몰랐다면 이름을 줄 때 그렇게 웃었을 리 없으니까.
드륵 마부석 뒤쪽으로 마차 내부와 연결된 창문이 슬금슬금 열리더니 복잡한 표정의 안느와 유르파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된 뒤에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어요. 바닥 인생을 이실리테라는 이름으로 살면 대영웅을 보잘것없는 계집애인 제가 더럽히는 것 같아서, 구걸 밖에 할 수 없는 제가 대영웅을 존경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분풀이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실리테는 환인의 무표정을 계속 힐끔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이름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도 많았어요. 네가 그 이름을 쓸 만큼 대단하냐며 일부러 시비 걸리기도 했고 대영웅의 이름을 더럽힌다고 두들겨 맞기도 했고요. 그래서 더더욱 오기가 생겨서 악착같이 이 이름을 사용했어요.=
=그런…….=
파르히스트에서 서로의 흉금을 털어놓던 그날 밤, 이실리테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었기에 그녀의 과거를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안느는 바닥 속에 또다른 바닥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다.
설마 이실리테라는 이름에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사람이라면 태어나서 당연히 축복과 함께 받아야 할 이름을 어떻게…….
유르파는 유르파대로 이실리테를 안쓰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도 흡정족으로 태어나 좀 고달픈 삶을 살아왔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성인이 될 때까진 생물학적 모친이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생각해보면 입가에 작은 웃음을 띄울 정도의 살가운 기억도 어느 정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실리테는 라드세아의 루크랑 종족으로 태어났음에도 환인을 만나기 전까지 밑바닥 중의 밑바닥 인생을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처음부터 악당처럼 살아온 것도 아니고 나름 노력해서 용병 활동을 하며 사람답게 살아보려 노력도 했지만, 사람의 악의에 모든 것을 잃고 도적이 된 케이스다.
사람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기구할 수 있을까…….
이실리테는 고삐를 꼭 쥐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이름에 애착 같은 건 없어요. 주인님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이름같은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묵묵히 듣기만 하던 환인은 이실리테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가만히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너때문에 귀찮아졌다고 혼나거나 짜증을 들을 각오까지 했던 이실리테는 뜻밖의 따스한 손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름이란 단순히 몇 글자로 이루어진 고유명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한 명이 인생을 살며 겪은 고난과 행복, 기쁨과 슬픔이 모두 새겨진 존재의 결정, 말하자면 이름은 존재의 증명이나 다름 없는 거다.”
=…….=
“비록 주어진 계기가 평범하지 않다고 해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다해도 그 이름을 버린다는 것은 지난날의 삶을 모두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너로 만들어준 좋은 일도, 싫었던 일도,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 화났던 일, 네가 너로 있을 수 있게 해준 그 모든 기억을 버리는 거다.”
환인은 고삐를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 그간 삶의 굴곡이 모두 새겨져 있는 듯 거칠고 딱딱한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냥 나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겠지. 그 삶의 한복판에 소중한 사람도 있었을 테고 떠올리면 가슴 따스해지거나 눈물이 나는 기억도 있을 거다. 그걸 모두 버려도 괜찮다는 건가.”
=저, 저는…… 이름보다 주인님이 더 중요해요.=
“널 받아들일 때 내가 말했었지. 널 사랑할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너도 약속했었지. 자기자신을 함부로 여기지 않고 날 사모하는 만큼 너 자신도 사랑하겠다고.”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처음으로 나로서 있게 된 시간인데. 처음으로 가슴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낀 시간인데.
“그런데 넌 자신을 함부로 하려고 하는군. 날 좋아하는 마음이 줄어든 건가, 아니면 나와 한 약속을 어기려고 하는 건가.”
=네, 네?! 아니아니,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크게 당황한 이실리테가 고삐를 놓치고 환인의 손을 잡는다. 마차를 끌던 쿠르티와 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천천히 속도를 늦춘다.
환인은 눈물이 맺힐 것처럼 일렁이는 이실리테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러다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앉힌 뒤 연인처럼 다정하게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널 받아들일 때 나는 네 과거도 모두 수용했다. 내게 있어 이실리테라는 이름의 주인은 모진 삶의 고난을 헤쳐나와 내 앞에 선 여자, 날 위해 성격부터 행동거지와 사고 방식 등 많은 것을 바꾼 사랑스러운 여자이지 남부 초원의 대영웅 따위가 아니다.”
=주, 주인님.=
“간단히 말해 지금의 너로 성장할 수 있었던 네 과거와 네 이름 모두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런 내 앞에서 과거를 버리고 이름을 바꾸겠다고 잘도 말하는구나.”
=죄송해요…….=
침울해져서 고개를 숙인 이실리테의 턱을 잡아 보드라운 분홍색 입술에 입맞춤해준다. 그리고 세상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사랑하게 된 남자는 그렇게 무능하지 않다. 걱정하지 말고 날 믿어라.”
=네…….=
고개를 푹 숙인 덕분에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아래로 쏟아지며 붉어진 이실리테의 얼굴을 가린다.
그에비해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하얀 귀와 목덜미는 사과처럼 빨개져 있어 환인은 기묘한 충동을 느꼈다.
그 충동의 정체가 욕망이라는 걸 깨달은 환인은 작게 웃으면서 그녀를 보듬어 안으며 당당하게 요구했다.
“이 분위기라면 그 대답 말고 다르게 해야 할 말이 있을 텐데.”
=……?=
뭘 말씀하시는 거지…?
눈앞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에 숨 죽이고 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두 여자는 이실리테의 느린 눈치가 답답했을까. 몰래 이실리테의 허벅지를 콕콕 찌르며 ‘사랑한다고 말해!’, ‘저도 사랑해요라고 말하렴!’ 입을 뻐끔거렸다.
다행히 그 신호를 알아챈 이실리테는 반쯤 기세에 떠밀리듯 붉게 물든 얼굴로 아주 조그맣게 대답했다.
=사, 사랑해요… 주인님…….=
“…….”
못 참겠군. 마침 마차도 섰겠다. 환인은 이실리테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면서 마부석의 작은 창문을 통해 이쪽을 구경하던 두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안느, 유르파. 1시간 정도 교대하지.”
=어? 우, 우리가 마차 몰라구?=
“그래. 1시간만.”
1시간동안 뭘 하려고 교대하자는 걸까. 의문을 가지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그 의도가 적나라해 세 여자의 얼굴이 동시에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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