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화 〉 270 캐스테드 마을
* * *
일행은 닷새를 꾸준히 달려 비자룩스와 헬루멘 사이, 특색 없는 농업 마을 캐스테드에 도착했다.
오는 길은 그럭저럭 평탄했다. 지형적인 의미로나 환경 혹은 인위적인 의미로나.
라드세아 평원이라는 이름답게 지형은 가장 높은 고지대가 뒷산 언덕 수준이었고 아주 가끔 나타나는 크고 작은 강줄기를 제외하면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있는 평온한 들판이었던 것이다.
허리까지 자란 황색 수풀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고 거기에 숨어있던 야수가 드물게 습격해오긴 했지만, 대부분은 하늘을 날아서 쫓아오는 비상이 미리 발견하고 경고를 해주었기에 피해는 없었다.
비상의 시야를 피한 야수는 안느가 예리한 청각으로 습격의 징후를 포착, 격퇴했고.
길에서 마주치는 것은 야수만이 아니었다.
하루에 한 팀 정도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들과도 마주쳤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종류는 다양했다.
크고 작은 상단 행렬, 장비를 잘 차려입은 10명 내외의 모험가 파티, 호위를 고용해 이동하는 캐러밴 무리 등.
그들의 공통점은 환인 일행을 무척 높은 신분의 행차로 오해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멀찍이 떨어지거나 환인 일행이 지나갈 때까지 멈췄다는 점이었다.
=우와, 저 마차는 뭐야? 엄청 특이하게 생겼는데 뭔가 멋진걸.=
=야야, 마부를 4급 직업자가 하고 있어……. 얼굴도 미쳤다.=
=마차 지붕, 지붕 봐. 6급도 있다.=
=마차에 문장이 안 보이네. 어디 가문이지?=
만약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면 하늘을 날고 있는 녹색 쿠에를 발견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마차가 상급 영혼사 일행이었음을 짐작했겠지만…….
=저 마차도 마도구인가보네.=
=어떻게 알았어?=
=검은색이면 먼지 묻은 게 엄청 눈에 띌 텐데 그런 게 없잖아. 청결 주문이 적용 중이라는 뜻이야. 쿠에 세 마리가 끄는데도 마차가 흔들리지 않았으니까 마차 축과 바퀴에도 진동 흡수 주문이 걸려 있다는 거고.=
=히야. 생긴 값을 하는 마차구만. 비싸기도 엄청 비싸겠지?=
=외장재부터 축까지 전부 주문 제작했을 테니까. 못해도 금화 열 장 단위일걸.=
마차의 임팩트가 워낙 강했기에 그 누구도 비상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무리지어 이동하다 마주친 용병들이 도적 떼로 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때마침 여자친구들이 마차로 들어간 사이 환인 혼자 마차를 몰고 있었고, 그때를 맞춰 호위도 없이 이동 중이라 착각한 용병 여덟이 일제히 도적으로 돌변해 덤벼들었던 것.
낡은 갑옷, 잘 손질되어있지만 헐었다는 느낌의 무기, 넝마에 가까운 망토에 일행 중 한 명은 3급 직업자이기까지.
멀리서부터 왠지 모르게 자신과 비슷한 인간 백정의 느낌을 받고 있던 환인은 아닌 척, 그자들의 움직임에 주의를 쏟고 있었는데…….
=쳐! 바퀴부터 부숴버려!=
아니나 다를까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들은 마차를 덮쳤다.
3명은 마차의 바퀴를, 3명은 환인을, 나머지 2명은 뒤에서 화살로 원호를.
꽤 능숙한 모습이었지만, 환인은 이미 영혼 화살을 장전해 습격을 대비 중이었다.
쓰걱 촤아앗!
=크엑.= =켁!=
=끄업!=
우선 마도기방벽을 발동과 동시에 패널 세 개를 단검으로 만들어 바퀴 축을 내려치려 하는 셋의 목젖을 단숨에 꿰뚫어 주었고.
피핏 퍼벅.
=끅.=, =악.=
이어 영혼 화살을 날려 멀리서 화살을 조준하고 있는 여자 둘의 안면을 맞추었다.
얼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나면서 정체불명의 피질을 뿌리며 쓰러지는 여자 둘. 삽시간에 동료 다섯이 죽어나가는 장면에 살아남은 세 명이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주춤거린다.
=어, 어?=
쿠에에엑!!
그 순간 독수리처럼 내려꽂힌 비상의 회오리 차기에 한 명의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나뒹굴었고, 남은 둘도 비상의 비연질풍각에 얻어맞아 차에 치인 고라니처럼 날아가 버렸다.
200kg이 넘는 체중에 시속 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까지 붙은 발길질이다.
허리를 제대로 걷어차인 도적은 척추가 부러져 즉사했고 회피한다고 하다가 골반을 걷어차인 직업자 여자는 하반신이 으스러진 채 땅을 나뒹굴었다.
=끄이야아악!=
=뭐야, 무슨 소란이야?=
=주인님, 도적인가요?=
뒤늦게 마차 창문이 열리며 환인의 여자들이 고개를 내밀었다가 시체를 발견하곤 미간을 좁혔다.
“그래. 다 정리됐으니 나올 필요는 없다.”
=아니에요. 습격자들의 소지품을 노획해야하니까요. 안느, 나가자.=
=엉.=
=끄, 끅. 사… 살려…….=
마차에서 여자들이 우르르 내리자 기괴한 모양새로 쓰러진 직업자 여자가 벌벌 떨며 손을 뻗었지만, 환인은 한 줌의 자비를 베풀어 남은 영혼 화살로 목숨을 단번에 끊어주었다.
그러나 그게 자비가 아니었음은 금방 알게 되었다.
패널에 목이 잘려 죽은 도적들의 영혼은 멀쩡히 시체에서 일어났는데, 영혼 화살에 죽은 영혼은 맞은 부위에 구멍이 난 채 아지랑이처럼 흐늘거리다 그대로 소멸한 것이었다.
“…….”
환인은 눈에 힘을 주고 영혼이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이상하다. 이전에는 영혼 화살에 이런 효과가 없었는데.
가장 마지막에 영혼 화살을 맞은 인간은 길레스=벡슬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꽤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가 성장하면서 영혼 화살이 변한 건가.’
아무튼 그 덕분에 스타에타의 소멸은 영혼술 때문임을 알게 되었으나 환인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여자친구들의 존재로 감정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지만, 자신의 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잔혹무비한 환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캐스테드는 지금까지 들렀던 오울링이나 카턴 마을과 달리 꽤나 목가적인 풍경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의 주력 상품은 곡물인 듯 가구수가 200채 정도인 데 비해 농지는 마을 규모의 몇십 배.
집도 진흙을 구워 만든 벽과 짚으로 만든 지붕을 씌운 집이 대다수에, 마을 곳곳에 가축이 돌아다니고 사람들도 논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작은 마을이다.
율캄 촌락이 마을로 성장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통나무의 끝을 뾰족하게 깎아 세워놓은 목책, 그곳에 난 마을 입구에 도착한 환인은 당황한 모습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경비병을 보곤 마차에서 내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 어? 아아, 안녕하세요. 캐스테드 마을에 어서 오세… 오십시오.=
“일행은 네 명이고 쿠에도 네 마리입니다. 통행세가 어떻게 됩니까.”
신분패를 보여준 뒤 통행세를 낼 생각으로 환인이 묻자 고양이 귀의 여자 경비병은 척 봐도 비싸 보이는 환인의 복장과 마차에 주눅이 들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어, 호, 혹시 호족님이세요……?=
“호족은 아닙니다.”
호족이 아닌데도 이렇게 호화스럽다고? 속으로 놀란 탄성을 지른 경비병은 어느샌가 마차에서 나온 세 명의 여자를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못해도 5급 이상의 직업자가 두 명에 그보다 아우라의 농도가 조금 낮아 보이는 한 명. 게다가…….
‘회색 망토? 에이, 설마.’
세 명이 전부 회색 망토를 걸치고 있다는데서 요즘 떠들썩한 하나의 소문을 떠올린 경비병이었지만, 그 소문에는 저렇게 으리으리한 마차 이야기가 없었다.
아닐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경비병은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저기……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한데요. 저희 마을은 진짜 농촌이라서 볼거리나 구경할 거리라곤 전혀 없어요. 마을 유일한 주점 겸 여관보다 그…… 귀하신 님의 마차가 더 고급일거고요.=
환인은 호족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믿기 어려웠는지 그냥 며칠 좀 더 가면 나오는 평원 도시 헬루멘에 가시는 게 어떠냐고 권하는 경비병에게 웃음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헬루멘이 목적지이긴 하나 이 마을에도 잠시 볼일이 있으니까요.”
=어, 그러면…… 이, 일단 4명 80동화에 3마리 30동화, 마차가 대형이니 40동화, 해서 1은화 50동화에요.=
“쿠에는 네 마리이니 여기 1은화 6열동화입니다. 마을에 이틀 정도 쉬었다 가려 합니다만, 쉴만한 장소가 있을까요. 방금 말씀하신 여관은…….”
쿠에가 네 마리라고? 잠깐 고개를 돌려 마차를 살펴보려던 경비병은 환인이 내미는 통행세를 얼른 받으며 대답했다.
=네? 어, 아 그게. 그, 그러면 먼저 마을 사도님 집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쥐가 나오는 여관은 여러분께 안 맞으실 거 같아서…….=
“그럼 부탁합니다.”
경비병은 목책 망루에서 이쪽을 정신없이 구경 중인 동료에게 잠시 다녀온다고 말한 뒤 일행을 마을 사도의 집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척 봐도 보통 이상인 사람들이다. 알아서 하라고 마을에 들여보내기보단 사도님한테 먼저 데려가는 게 아무래도 낫겠지? 고족이나 호족이 방문하면 사도한테 데려가는 게 업무기도 하니까…….
퍼더더더덕
그때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횃소리에 화들짝 놀란 경비병은 두 손으로 창을 움켜쥐며 물러났고, 잠시 후 검고 육중한 마차 옆으로 착지하는 녹색 쿠에를 발견하곤 나무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충격을 받았다.
=비, 비, 비…….=
=비?=
경비병의 곁에서 걷고 있던 안느가 고개를 기우뚱하자 경비병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외친다.
=비자룩스의 녹색 성자님이셨습니까!?=
녹색 성자는 또 뭐야? 정황상 도령을 보고 말하는 거 같은데 영혼사가 아니라 성자라고? 안느가 확인차 물었다.
=성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네? 아, 저기 비자룩스에서 재앙화한 혼재를 피해 없이 정화하신 그, 상급 영혼사님…… 아니신가요? 그분이랑 그분의 영혼 기사님들은 회색 망토를 쓰고 그, 녹색 쿠에를 타고 다니시는데다, 그, 성자님은 휘광이 없으신 분이라고 들었…… 는데.=
=아. 그거 우리 도령 이야기 맞아. 저기 마부석 왼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분이야.=
그보다 벌써 명호가 붙었어? 녹색 성자라니 뭔가 되게 있어 보이는 이름인걸.
안느가 킥킥 웃으면서 인정하자 갈색 고양이 귀의 여자 경비병은 안색이 하얗게 변하더니 서둘러 방금 받은 통행세를 두 손으로 공손히 환인에게 반납했다.
=여, 영혼사님은 통행세 무료입니닷! 그리고 잠, 잠시만!=
그리고 근처에서 입을 헤 벌리고 마차를 구경하는 마을의 아이들에게 달려가 붙잡고 소리쳤다.
=얘들아. 지금 당장 사도님 집으로 달려가서 영혼사님이 오셨다고 알려! 녹색 성자님이라고 하면 돼!=
=어? 어? 진짜 성자님이야?=
=그래! 그러니까 얼른 가!=
=으응!=
“…….”
이실리테와 함께 마부석에 앉아 그 장면을 지켜보던 환인은 예상 이상으로 자신의 이름이 빠르게 퍼지는 것을 체감했다.
비상이 때문인지 녹색이라는 명사가 붙은 칭호가 생겼고 이런 작은 마을의 경비도 자신을 알고 있을 정도라는 건 자신의 상상을 훨씬 능가할 만큼 이름이 퍼지고 있다고 해석해도 되겠지.
‘괜찮군.’
영도로 향하면서 계속 이름을 퍼트리고 목적지도 알리면 나쁘지 않은 보험이 될 거 같다.
헬루멘에서 파견 나온 캐스테드 마을의 상주관리자인 사도는 환인 일행의 방문 소식에 맨발로 뛰어나올 정도로 크게 놀랐다.
비자룩스에서 혼재가 나타났고 상급 영혼사가 그것을 정화했다는 소문은 지금 마을에서 가장 핫한 이슈다.
그리고 소문이 들려오기 전에는 평원에서 지랄 맞게 날뛰던 플레인스워커의 모가지까지 땄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으니 지금 캐스테드 마을에서 환인의 위상이란 현대의 아이돌 못지않은 수준.
바로 옆 마을이라서 설마 우리 마을에 오실까했는데 그 설마가 진짜로 이루어질 줄이야!
사도는 환인 일행을 크게 환영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귀빈 방문시에만 개방하는 전용 석조 주택을 환인에게 내어주었고 온갖 편의와 친절을 베풀었다.
마을의 젊고 아리따운 처녀를 뽑아 환인의 시중을 위해 들여보냈고 식사와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제공했으며 환인 일행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게끔 온갖 물품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것.
극성맞다고 할 정도의 친절은 환인이 과하다고 자제를 부탁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사도는 더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돌아갔고 시중을 들러 왔던 마을 처녀들도 환인을 모시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걸 모두 지켜본 안느는 조금 무섭다는 듯이 마을 사람들이 제공한 식재료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이실리테의 곁에 붙어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환영받으니까 살짝 무서워지는데……. 이슬이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주인님과 동행하면서 이런 경험은 몇 번 있었으니까. 그보다 안느, 집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 좀 해산시켜줘. 주인님은 이런 시선이 집중되는 건 안 좋아하셔.=
=어어.=
작은 마을이라 영혼사가 방문했다는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지는데는 1시간도 길었다.
게다가 일과가 끝나며 논밭으로 나갔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는 시기. 덕분에 영혼사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 집 주변을 서성였는데 그 숫자가 마을의 인구 전부가 아닐까 싶은 수준이었다.
안느는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면 어떻게 하나 조금 걱정했지만,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다.
모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놀랍게도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해산했던 것.
하지만…….
=으아. 이번에는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질 않잖아? 뭐가 이렇게 극단적이야.=
환인이 불편해한다는 말에 이번에는 마을 사람 전부가 집에 틀어박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순박해서 그렇지 뭐. 좀 큰 마을이고 집이 컸으면 완충지대가 있어서 괜찮을 텐데 저 얇은 벽 너머가 바로 마을 사람들 활동 공간이니까…….=
=으음.=
도령이 정체를 숨기고 다녔다는 이유가 이래서였나? 확실히 주위가 이렇게 반응하면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적잖게 신경 쓰이겠네.
잠깐, 다른 영혼사들은 아우라 때문에 정체도 못 숨길 텐데 그 사람들은 매번 마을에 방문할 때마다 이런 일을 겪는 건가?
우와~ 생각만 해도 속에서 쓴물이 올라올 거 같아!
속으로 기함하던 안느는 거실에서 자신을 찾는 환인의 목소리에 재빨리 거실로 나가며 대답했다.
=어, 도령. 나 불렀어?=
“그래. 사도의 집을 방문할 생각이니 따라와다오.”
=응, 잠깐만.=
뭘 하려고 사도를 찾아가는 걸까.
약식 전투장비를 차려입고 회색 후드 망토를 두른 안느는 환인과 함께 어스름이 내려앉는 밖으로 나왔다가 곳곳에서 날아드는 시선에 목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 호기심과 공경과 존경이 공존하는 뜨거운 눈빛.
안느는 한 발 앞에서 걷고 있는 환인을 힐끔거렸다. 도령은 나보다 기감이 예민할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아무렇지는 않은 건 아니다. 신경 써봤자 의미가 없기에 무시하는 것일 뿐.”
=놀래라. 도령은 뒤에도 눈이 달린 거야?=
환인이 작게 웃는 소리에 머쓱하게 웃은 안느는 그의 옆에 서며 물었다.
=그래서, 사도는 왜 만나러 가는 건데?=
“오늘 밤에 성불행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밤중에 마을을 돌아다니면 사도의 입장에서 적지 않게 신경 쓰일 테니 미리 허락을 구하려는 거지.”
그게 허락까지 구할 일인가 싶었지만, 예의범절의 범주에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기에 속으로 조용히 수긍하며 환인을 따르는 안느였다.
잠시 후 도착한 사도의 집에서 사도는 말해 뭐하냐는 듯이 부디 마음 편히 원하시는 바를 행동하시라고 대답을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수행하겠다는 뜻을 비추는 사도에게 환인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원한다면 그리하라고 대답했고, 나이 100살은 먹었을듯한 인원족의 사도를 뒤에 달고 저녁 식사가 준비될 동안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혼의 숫자와 위치 등을 파악했다.
“그러고 보면 도시를 제외한 마을이나 촌락에는 공동묘지가 별로 없군. 규모도 크지 않고.”
=라드세아에는 매장 풍습이 퍼지지 않아서 그래. 돈 많은 고족이나 호족들이 가문묘를 만드는 것은 메리아놀의 영향을 받은 거라서 그렇고.=
“땅신을 믿는 국가라서 그런가.”
=응. 죽어서 땅에 묻혀 땅과 하나가 되는 건 땅신님을 믿는 우리한테 축복이니까.=
안느와 띄엄띄엄 대화를 나누며 마을의 영혼 상황을 파악한 환인은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기는 집으로 돌아와 준비되어있는 저녁을 들며 여자친구들에게 캐스테드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캐스테드 마을은 관리가 잘되었는지 영혼들의 숫자와 상태가 양호하더군. 숫자는 열다섯 정도, 가진 감정의 크기도 작고 소소한 미련뿐이었으니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 정도면 성불행을 마무리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내일 바로 출발하시는 건가요?=
“마차 상태를 점검하고 소비한 식자재 등을 보충하려면 내일 하루는 쉬어야겠지. 촌장에게 듣기로 전분과 튀김 가루가 특산품이라고 하니 좀 사두는 것도 좋을 거다.”
=네.=
식사를 마친 뒤 마도기방벽을 유르파에게 점검받은 환인은 비상과 쿠에들의 깃털을 손질해주며 여자친구들의 준비를 기다렸다가 마을을 돌면서 영혼을 모아 성불을 진행했다.
열다섯 명의 영혼을 성불시키는데는 4시간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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