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75화 (275/813)

〈 275화 〉 269 헬루멘으로 가는 길

* * *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올 때까지 마부석에서 생각과 고민을 이어가던 환인은 길가에 마차를 세워두고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여자친구들에게 목적지를 변경하겠다고 알렸다.

=영도로 가는 건가요?=

“그래. 영도의 대상 위치 추적 능력과 2급이라고는 해도 호족 가문을 통해 전언을 보낼 힘이 있다. 무시해서 좋을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초대에 약간의 불안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환인은 가면서 알아보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영도까지는 평범하게 이동한다 해도 몇 달은 걸리는 거리다. 들르는 마을과 도시마다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영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려 하는지, 단서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실리테가 내려준 차를 다 마신 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영도에서 사람을 핍박하고 괴롭혔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건 아무런 근거도 없는 낙관론 같은데…….=

약간의 불안과 못미더움을 드러내는 이실리테에게 안느가 손가락을 세웠다.

=이슬이 너도 생각해봐. 휘광이 없어. 느닷없이 불쑥 나타난 상급 영혼사야. 확실한 것만 혼재를 정화한 거랑 수십 명의 영혼을 성불시킨 업적이 있어. 영도가 도령을 궁금해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서 부르는 걸 수도 있다고 보는 거야?=

=그렇지 않겠니? 일반 영혼사님들 중에서는 영도에 들르지 않고 개인적인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으셔. 하지만 상급 영혼사님은 영혼 기사와 계약을 위해서라도 영도를 방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

그러는 마당에 환인이 나타났으니 귀중한 상급 영혼사라는 점 하나만으로 초대할 거리는 충분하다고 말하는 유르파다.

속으로 그런가… 작게 중얼거린 이실리테는 힐끔, 커피잔을 조용히 기울이는 환인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주인님이 그 정도도 생각 안 하셨을 리는 없으니까…….’

=이슬이가 도령이 걱정되어서 마음이 안 놓이나 보네. 그럼 헬루멘에 도착하면 거기 교단을 통해서 본단에 정보 요청을 해볼게. 영도가 어째서 도령을 부르는지 말이야.=

=교단이 그런 개인적인 소식도 알아봐 주는 거니? 아, 고마워.=

이실리테가 유르파에게 다 마신 찻잔을 받아가니 안느도 빈 잔을 건네주며 대답했다.

=영도는 대외적인 일에 반응을 잘 내놓지 않는 곳이잖아. 그런 영도가 움직이는 일이니까 소식을 알려주면 본단도 관심을 둘 거야.=

르아웬 걔 성미에 이런 일을 무시할 거 같지도 않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환인도 부탁했다.

“부탁하지.”

=맡겨줘. 그런데 이러면 라수비탄에서 술법 함정술을 배우는 건 곤란하게 됐네. 이럼 히스론드의 주도가 영도랑 가까우니까 거기서 배워야 하려나?=

“플라비우스 족은 고지대에서 생활한다고 들었는데 마차로 갈 수 있는 곳인가.”

=주도는 다른 종족의 방문 때문에 낮은 지대에 지어져 있어. 하지만 마을이나 촌락, 도시는 산지에 위치해있거나 봉우리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마차로 가는 건 무리일걸.=

“플라비우스 족 마을을 순회하는 건 힘들겠군.”

=어. 라수비탄보다 영토도 좁고 도시나 마을 숫자도 적어서 더 그럴 거야.=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갈롯에게 받은 지도를 펼쳤다. 안느와 유르파가 가까이 다가오고 식기 정리를 끝마친 이실리테도 유르파와 환인 사이에 들어와 지도를 들여다본다.

“첫 번째 목적지는 라드세아 평원의 동쪽에 있는 평원 도시 헬루멘으로 하지. 가는 길에 있는 마을에 들러 성불행을 한 뒤 북상해서 프라버까지 이동하고…….”

=프라버에서 영도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배를 타고 알류겔 호수 북쪽에 있는 호반 도시 알소프까지 가는 거랑, 육로를 통해 알소프까지 이동한 뒤에 엘스너펠로 올라가는 거.=

알소프는 프라버와 비슷한 규모이며 엘스너펠은 조인족의 낙원이라 해서 조천 도시로 불린다. 둘 다 조인족과 인연이 많은 곳이다.

환인은 안느가 손가락으로 짚어준 곳의 지형도를 보며 다른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러면 헬루멘을 지날 수 밖에 없다. 그 도시를 지배하는 가문을 생각하면 문제가 발생할거라고 간주하고 대비책을 만들어놔야…….

=그런데 안느 아가씨, 굳이 알소프까지 올라갈 필요 있니? 이쯤에서 밀림을 통과한 뒤에 엘스너펠로 가면 안돼?=

=지도가 작아서 그렇지 가장 얇은 폭이 수십 킬로미터일 정도로 울창한 밀림이야. 이 밀림에는 외지인을 배척하는 소수의 충인족이 무리를 지어서 살고 있는데다 독충과 독물도 많거든? 이런 길도 없는 밀림을 돌파하려면 못해도 일주일씩은 지내야하는데 괜찮겠어?=

=…….=

=그런 이유로 대부분 알소프에 모여서 엘스너펠로 이동해.=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서 한 번에 지나간다는 거구나. 위협을 방지할 목적으로?=

=그런것도 있고, 수십 년 전에 알소프의 영주가 대대적인 인력과 병력을 동원해서 엘스너펠로 올라가는 밀림에 폭 3km의 도로를 뚫었거든. 요소요소에 주둔지도 있고 초소도 있어서 꽤 안전한 길이야. 그만큼 통행세가 조금 비싼 편이지만 밀림을 어거지로 통과하는 거에 비하면 싼 거지.=

=아~ 그래서 알소프에 모인다는 거구나.=

이야기를 듣던 환인은 이엘카타가 어째서 웨이포드와 프라버 사이의 밀림을 통과하지 않고 파르히스트로 내려와있었는지 이해했다.

웨이포드의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블팩션 접경이 나와 위험하다. 그렇다고 동? 로아팅스 정글을 뚫고 가는 것은 위험하니 남쪽을 둘러 프라버로 향하는 길을 선택한 거겠지.

=아, 주인님. 프라버에 가는 거면 백려강 아가씨랑 레심 씨도 볼 수 있겠네요.=

“그렇군.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것도 괜찮겠지.”

=이슬이 아가씨, 그 사람들은 누구?=

=웨이포드에서 만난 호족 아가씨인데요…….=

지도를 접은 환인은 프라버에 도착한 뒤 바닷길을 고를지 육로를 고를지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가급적이면 마을이나 촌락에 들를 수 있는 육로를 선택할 테지만, 주변 지리가 좋지 않다고 한다면 해로를 이용해야 할 테니까.

길을 따라 평원을 가로지르는 여행은 가격만 50금화에 달하는 최상급 마차 덕분에 매우 쾌적했다.

내부 넓이는 조금 작은 원룸 수준으로 가로는 네 명이, 세로는 세 명이 나란히 누울 수 있을 정도에 높이도 키가 2m에 가까운 안느가 똑바로 설 수 있을 만큼 높았다.

마차 내부의 뒤쪽에도 수납장이 있어 짐을 정리해 내부 활동 면적을 넓히기 용이했으며 난방 마도구가 장판 아래에 설치되어있어 겨울임에도 바닥이 온돌처럼 뜨끈뜨끈해 바깥의 추위는 무관한 장소였다.

천장에는 발광 마도구가 빛을 내는 덕분에 원하면 밤에도 대낮처럼 환히 있을 수 있었고 상시 공기 정화 기능이 작동하고 있어서 창문을 계속 닫고 있어도 내부 공기는 늘 상쾌했다.

방음과 차음 기능도 켜고 끌 수 있어 원하면 안쪽에서 소리가 흘러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밖에서 소리가 들어오는 것도 차단할 수 있었다.

거기에 진동 전달은 마차 바퀴가 돌멩이를 밟아도 거의 전달되지 않는 수준.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안느가 고양이처럼 고롱고롱거린다.

=진짜 편하다~. 너무 편해서 이제 쿠에는 타고 싶지 않을 정도야.=

=그러니까 50금화 가까이 써서 만들었겠지? 공격이나 습격에 대비해 만드는 고위 호족의 방탄 마차도 50금화는 안될 텐데…….=

=아까 보니까 마부석의 좌석도 마도구더라. 귀퉁이의 오브에 위상력을 조금 주입하니까 좌석이 따뜻해져서 겨울에도 마차를 모는게 힘들지 않을 거 같아.=

등으로 전달되는 온돌의 따스함을 만끽하던 안느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으흐흐, 음흉하게 웃으면서 쿠션에 몸을 반쯤 기대고 책을 읽는 유르파에게 물었다.

=율이 언니. 이 마차, 꼭 마차 이동 중에 안에서 편하게 섹스하려고 만든 거 같지 않아?=

=…….=

=가는 길이 같은 사람들이랑 마차 사이에서 차음 기능을 켠 뒤에 도령이랑 찐하게 몸을 섞으면…….=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책을 읽던 유르파가 시선을 들더니 똑같이 으흐흐 웃었다. 의견이 통하는 변태 치녀의 웃음이었다.

최상급 마차의 진가는 밤에 여지없이 드러났다.

=우와아. 황량한 들판에서 따뜻한 이부자리에 들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훈련에 이은 식사까지, 저녁 일과를 끝마치고 마차로 들어온 유르파는 성수포로 몸을 닦은 뒤 알몸으로 따끈따끈한 솜이불 속에 기어들어가 행복에 겨운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쿠에의 탑승감이 편하다 해도 살아있는 생물의 등에 올라타 10시간 가까이 달리는 것은 엄청난 체력을 소비한다.

거기에 비하면 이 마차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고급 여관.

옆에서 같이 성수포로 몸을 닦던 안느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여러모로 편해.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움직이는 중에도 몸을 깨끗하게 단장할 수 있다는 거잖아.=

=응응.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노숙할 때 우리는 마차 안에서 따뜻하게…… 하으으.=

녹아내릴 것처럼 잔뜩 풀어진 얼굴로 고롱거리던 유르파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젖혀 바깥을 내다보았다.

마차 창문에 쓰인 유리창도 편광 기능이 들어가 있어 마차 안이 환한데도 불구하고 밖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 창문 밖으로 비상, 쿠르티, 쿠라, 쿠핀이 마차 외벽에 붙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유르파의 눈에 들어왔다.

마차 외벽으로 흘러나오는 온기도 온기지만, 마차에 기척 차단과 체취 차단 술식이 있어 기능을 발동하면 마차를 중심으로 3m를 커버하며 인기척을 완전히 감추기 때문.

즉, 쿠르티들이 마차에 바짝 붙어있으면 야생동물의 야습이나 괴물의 습격에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그때 천장의 썬루프가 열리며 이실리테의 머리가 내려와 주의를 준다.

=언니, 주인님이 밤에는 불 켜놓은 채 마차 커튼 걷지 말래요. 이 정도 밝기면 10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인다고요.=

=앗. 미안.=

얼른 커튼을 다시 친 유르파는 속옷과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알몸에 따뜻한 솜이불이 스치는 감각이 너무 좋지만, 불침번 때 빨리 교대해주려면 옷을 입고 자는 게 좋으니까.

그사이 몸을 다 닦은 안느도 속옷을 입으며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실리테에게 물었다.

=이슬아. 지붕은 어때?=

=…응? 모닥불 안 피워도 바닥이 따뜻해서 괜찮아. 불침번 할 때 몸에 두를 모포만 가지고 올라오면 될 거 같아.=

정말 따뜻한가? 쟤는 감각이 미묘하게 비범해서 살짝 못 미더운데.

바지와 블라우스까지 챙겨입고 가볍게 지붕으로 올라온 안느는 환인이 드러누워 있는 것을 힐끔 보곤 지붕에 손을 대고 오, 작게 감탄했다.

마차 안의 온돌 바닥처럼 따뜻하진 않지만, 마차 내부의 열기가 전달되는지 전혀 차갑지 않던 것.

이정도면 냉기가 올라오는 맨바닥보단 훨씬 낫다. 앉아있다 보면 체온으로 데워지기도 할 테고.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시야가 높아 정말 멀리까지 보인다.

바닥에서 마차 지붕까지 높이가 3m에 자신의 키를 더하면 시야 높이만 5미터에 가까우니…….

‘대충 8km까지 보이는 건가?’

모닥불을 피우지 않으니까 적대적인 생명체에게 발각될 확률도 낮을 테고, 적이 가까이 다가오더라도 기척 차단과 냄새 차단이 존재감을 감춰준다. 색도 까만색이니 이쪽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갈 가능성도 높다.

뭐 접근하더라도 일행의 무력이면 어지간한 것은 가볍게 때려잡을 테지만.

역시 이 마차는 최고라고 생각하며 웃음 짓던 안느는 불현듯 한 가지를 떠올리곤 표정을 가볍게 찡그렸다.

=다 좋은데 험한 곳을 가려면 마차를 못 끌고 가는 게 안타까워.=

=안느는 마차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네.=

=응, 진짜로……. 그동안 마차를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 하잖아. 그 사람이 우리 마차를 쓰거나 손대서 망가지면 어떻게 해?=

정말 싫어하는 얼굴에 이실리테가 가볍게 웃었다.

=싫어도 어쩔 수 없어. 길이 없는 곳에 이런 마차를 끌고 갔다간 오히려 마차가 일찍 부서지게 될 테니까.=

=으~ 아~.=

마차를 두고 움직이는 건 싫고, 그렇다고 억지로 끌고 가서 부서지는 건 더 싫고.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배배꼬던 안느가 답삭, 환인의 가슴에 안겨들었을 때 술법으로 몸을 띄워 마차 지붕으로 올라온 유르파가 달빛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웃었다.

=그런 거라면 이 언니한테 다~ 방법이 있지.=

=네?=

=어, 진짜? 어떤 방법인데?=

놀라는 여자들처럼 환인도 의아함이 들어 유르파를 돌아보았다.

무게만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마차를 비포장 도로도 아니고 산길이나 숲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이 언니는 축소화의 비술도 쓸 수 있거든!=

=……오! 그러면 마차도 작게 축소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거야?!=

=그러엄. 아, 그런데 살짝 조건이 필요해.=

=조건? 무슨 조건?=

특정 술법은 서로 거리가 가까워질 경우 서로의 위상력이 간섭해 효과가 지워지거나 해제된다.

그러나 이만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술법은 별로 없다. 기껏 일어나봤자 상충작용으로 효과가 조금 감소하는 정도. 대부분은 반발 없이 잘 작동하거나 조금 거리를 띄우면 제 기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축소화 비술은 아니다. 비술 중에서도 압도적인 까다로움을 발휘해서 거의 모든 술법과 반발을 일으킨다.

축소화의 비술은 객체의 존재 의미라고 할 수 있는 질량과 부피를 다루는 술법이고, 다른 술법이나 비술은 대부분 부피에 새겨지는 술법이라 그렇다는데.

=그래서 다른 부여 술법이 발동 중인 아이템에 효과를 적용 못 해. 하려고 하면 주문이 실패하거나 아이템에 부여된 술법이 깨져버리니까.=

=아, 마차에 걸린 효과는 기능을 켜고 끌 수 있으니까 다 끈 뒤에 축소화시키면 된다는 거네요.=

이실리테의 발언이 정답이었는지 유르파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의 모든 술법 기능을 중지시켜놓고 축소화 비술을 걸면 휴대하기 편할 만큼 줄여서 들고 다닐 수 있게 돼. 지속시간은 대체로 하루에서 사흘 사이? 걸어봐야 정확한 지속 시간을 알겠지만 그 정도는 될 거야.=

=와 진짜 대박! 그럼 마차에 끼워놓은 위상석을 빼고 충전된 위상력만 제거하면 되는 거네?! 크기를 원래대로 돌린 뒤에 뺀 위상석을 다시 끼우면 원래 기능이 발동되고!=

=축소화 비술은 매우 까다로워서 다룰 수만 있으면 사방에서 모셔가려고 하는 정도라던데, 유리 언니의 술법 능력은 정말 대단하네요.=

=에헤헤.=

사실 유르파는 환인을 만나기 전까지 축소화의 비술을 쓸 수 없었다.

돈은 많았기에 비술 지식을 협회에서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지식 자체는 쉽게 습득할 수 있었지만, 위상력을 다루고 회로를 형성하는 실력이 부족해 비술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랬는데 환인과 함께하며 여러 가지 의미로 주박과 속박에서 해방되었고, 그게 실력의 향상으로 이루어져 술법 중에서도 고등급 고난도로 분류되는 축소화의 비술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유르파는 자신이 또 도움되는 것을 찾아서, 이실리테와 안느는 마차로 말미암은 활동 지역 제한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기뻐했지만, 그중에서도 안느가 가장 좋아했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유르파가 키득거리며 물었다.

=안느 아가씨, 지나치게 좋아하는 거 아니니?=

=그야 이런 생활을 맛봐버렸는걸? 예전으로는 못 돌아가~. 거기다…….=

누워있는 환인을 돌아보았던 안느는 이실리테까지 끌어들여 속닥속닥 수군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야외 섹스도 좋지만 그래도 체위가 제한되니까…….=

=마차 안에서 후배위로…….=

=차음 기능이 있으니까 소리도 마음껏…….=

=남들 시선도…….=

=킥킥…….=

=후후후…….=

지붕에 누워 여자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환인은 여자친구들의 발칙한 대화에 쓴웃음을 짓다가 휘영청 뜬 보름달이 주변의 구름을 하얗게 물들이는 것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세상에 온지도 이제 곧 1년째.

고작 1년 만에 세상 물정 모르던 이방인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춘 능력자로 성장했다.

내년 이맘때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1년은 긴 시간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랬기에 환인은 그저 한 가지만을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그때도 여자친구들과 함께하고 있기를.’

이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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