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261 비자룩스의 혼재
* * *
곤충 표본과 같은 꼴이 된 스타에타가 피를 철철 흘리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열린 입에서 남편과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섞여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잘린 팔다리의 단면, 꿰뚫린 자궁과 폐, 드러난 음부에서 피가 홍수처럼 철철 흘러나오니 스타에타의 작은 몸뚱이가 피 웅덩이에 잠겨 허우적거린다.
“…….”
피부를 뒤덮은 붉은 혈관 같은 것도 점차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 피에 물든 흰자위도 천천히 흰색으로 돌아온다.
겉보기에 빙의가 풀려가는 모습이라 환인은 정신을 집중해 평온의 파동을 강하게 일으켰다.
파아앗??
재차 돔 형태로 구현되는 회백색 빛의 파동.
이제 육체에서 혼재가 빠져나오더라도 급박한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그사이 영혼술로 혼재를 찢어버리면 사태는 마무리될 것이다.
환인이 스타에타를 상대하는 사이 영주 휘하 병력을 피해 접근하던 시체와 세뇌자들을 쓸어버린 여자친구들이 다가와 꼬챙이에 꿰여 너덜너덜해진 스타에타를 보며 물었다.
=도령, 끝난 거야?=
“아직이다. 빙의도 풀리지 않았고 이런 꼴이 되었지만, 무직자인 스타에타 부인도 죽지 않았다. 아직 혼재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그보다 안느, 맞은 자리는 괜찮나.”
=어? 응, 갈비뼈가 부러졌었지만 회복술로 회복했어. 지금은 멀쩡해.=
“다행이군.”
=헤헤. 그나저나 도령은 진짜 굉장하네. 겨우 강령 버프 하나로 빙의된 여자를 제압하다니.=
=자기, 스타에타 부인을 죽이지 않은 건 재앙화된 혼재와 빙의를 정화할 방법이 있어서인 거니?=
“글쎄요. 오랜 시간을 두고 살피면 방법이 있을 수야 있겠지만…….”
그런 위험성과 시간을 들일 생각은 애초에 없는 환인이다. 기척 감지로 셀가 영주와 에사르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그녀들만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매우 작게 말했다.
“그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알드헬름에게 어울리는 것은 소멸뿐입니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시더가 겪은 일만 봐도…….=
말 끝을 흐리는 유르파의 의견에 동감한다는 듯 이실리테와 안느도 고개를 끄덕였다.
환인과 그의 여자친구들은 스타에타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영역으로 전개된 평온의 파동 때문인지 혼재가 스타에타의 몸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흘린 피가 수 리터를 넘어가고 힘없이 꿈틀거리는 게 스타에타의 죽음이 가까워져 가는 느낌.
스타에타가 죽으면 이러든 저러든 몸에서 빠져나올 수 밖에 없겠지.
만약 혼재를 놓쳐 다른 사람에게 빙의한다면, 그게 직업자라면 문제가 조금 심각해질 테니 방심하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을 때 셀가 영주가 침중한 얼굴로 다가왔다. 차가운 에사르트의 표정과 상반된다.
「“끄으윽, 여…어보, 사, 살려주세…아빠 아파, 아파여보 제아빠발 커르르륵…….”」
스타에타가 뿌리만 남은 팔을 들어 영주를 가리키며 호소하니 셀가 영주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고 흐려진다.
=…….=
환인은 곤충 표본처럼 땅에 박힌 채 버둥거리며 피를 토해내는 아내의 곁에 무릎 꿇는 셀가 영주를 차갑게 응시했다.
허튼짓을 하려 한다면 바로 걷어차 버리려 했는데, 영주는 손이 사라진 스타에타의 왼팔을 두 손으로 잡고 사과만 할 뿐이었다.
=…미안……하다.=
억눌리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계속 사과한다.
=이 일은…… 전부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 알드헬름. 미안하오, 부인. 날, 나를 원망하시오……=
「“여아보빠……끄르릌, 쿨렄커윽.”」
또륵 충혈된 셀가 영주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린다. 영주는 스타에타의 팔을 꼭 붙잡고 환인을 바라보며 간곡히 부탁했다.
=영혼사님, 부인과 아들을…… 부탁드립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제 잘못이 큽니다. 모든 사태를 마무리 지은 후 죄값을 치를 터이니 부디…….=
“…알겠습니다.”
「“아… 아아…, …끄르르…, 아….”」
환인은 말없이 흑창을 들어 눈 코 입 귀,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피를 흘리는 스타에타의 심장을 찔렀다.
투콱.
그리고 영혼 화살 한 발을 흘려 넣어 심장에 터트렸다.
스타에타의 몸 안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고, 가녀린 육체가 한차례 들썩이더니 스타에타의 눈에서 빛이 빠르게 사라져간다.
「“…….”」
스타에타는 반쯤 죽은 눈으로 셀가 영주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늘어트렸다.
그렇게 자기 자신은 고귀하고 고결하다고, 남들과 태생부터가 다른 사람이라 주장하던 스타에타는 알몸으로 사지가 잘리고 표본처럼 온몸에 철창이 박혀 벌레 같은 꼴로 죽음을 맞이했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처참한 말로지만, 자식인 알드헬름에게 살해당한 시더에 비하면 양호한 죽음이다.
환인은 일말의 측은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담담히 흑창을 집어넣고 마도기천칭을 꺼내 쥘 뿐.
흐아아아아
잠시 기다리자 죽은 스타에타의 아래쪽에서 시뻘건 수증기 같은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평온의 파동으로 뒤덮인 영역 속에서 고통스러운 듯 꿈틀거리며 하나의 형상을 갖추는 붉은 수증기.
여자친구들이 긴장하며 두 발자국 물러서고 환인은 아메바처럼 꿈틀거리는 형상을 응시하며 천칭의 봉? 끝에 영혼 폭발 구슬을 붙이고 영혼 화살을 장전한다.
스타에타의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온 것은 그때였다.
흐릿한 회백색 영혼. 유리가 부서진 것마냥 뻥 뚫려있는 가슴. 멍한 눈동자와 표정에는 지성이 느껴지지 않고 영체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흐늘거린다.
그러는 것도 잠시였다. 스타에타의 영혼은 물에 녹아 사라지는 솜사탕처럼 흩어지며 소멸하고 말았다.
환인은 눈썹을 찡그렸다. 뭐지. 혼재에 빙의 당한 여파인가. 하지만 가슴에 뚫린 구멍의 위치와 크기는 마치 영혼 화살의…….
「끄아아아아악!!!!」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스타에타의 영혼이 소멸하는 것을 목격한 혼재가 평온의 파동 영역 내에서 억눌리고 있음에도 저주의 띠를 마구 뿜어내며 발광을 시작한 것이다.
=주인님!=
비록 그녀들의 눈에 저주의 띠는 보이지 않았지만, 극도로 가까운 장소에서 대기가 흔들릴 정도의 발작에 위협을 느꼈다.
이실리테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급히 환인의 허리를 잡고 자신의 몸으로 환인을 가리며 십수미터 뒤로 몸을 날렸다.
안느도 상황의 위중함을 눈치채고 당황하는 유르파를 껴안으며 피하려다 혼재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피할 생각이 없어보이는 셀가 영주의 모습에 짜증을 터트렸다.
=에이 진짜!=
먼저 유르파를 이실리테 쪽으로 집어 던지고 셀가 영주의 옷깃도 잡아채 뒤로 내던졌다. =으억!?= 그리고 자신도 몸을 피하려 했지만…….
쿠궁!
‘흐큭, 이거…… 뭐야?’
무언가 말도 안 되게 무거운 것이 온몸을 짓누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힘을 빼거나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다간 그대로 납짝꿍이 될 것 같은 느낌.
안간힘을 다해 버티던 안느는 기분 나쁜 상상을 떠올렸다.
설마 나도 혼재에 빙의 당하는 건가? 그건 진짜 싫은데!
스타에타가 당했던 꼴을 자신도 당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았다. 안느는 온몸의 뼈가 부서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위상력을 전력으로 전개하며 움직이려 했지만, 몸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 이래서 혼재한테 빙의당한 사람이 죽으면 혼재가 되는 건가?
‘으악, 싫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속으로 환인을 부르며 눈을 질끈 감았던 안느는 순간 자신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꼈다.
하나둘이 아니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것이 화살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감각.
파바바바바밧
「끼야아아아악!!!」
혼재의 비명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몸을 짓누르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 안느는 희색을 띨 겨를도 없이 일단 몸부터 날렸다.
하지만 압박에 노출된 탓일까,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몇 미터 몸을 날리지도 못하고 바닥에 철푸덕 넘어진 안느가 허우적거리던 그때 눈앞에 다가온 것은 이실리테의 하얀 손.
=잡아!=
친구의 손을 재빨리 낚아챈 안느는 몸이 주우욱 끌려가는 걸 느끼며 안도의 거친 숨결을 흘렸다. 이윽고 안전한 곳까지 끌려온 안느가 버둥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후엑! 뭐야,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주인님이 널 구하신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뜬 안느는 그제야 환인이 천칭을 내밀며 복도 쪽을 노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회백색 영역 속, 온몸에 구멍이 숭숭 난데다 폭발에 휘말린 것처럼 찢겨진 혼재가 천천히 가루가 되어 소멸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콩, 정수리에 작은 충격을 받은 안느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실리테가 눈썹 끝을 세우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왜 화났어?=
=당연히 화가 나지 안나겠어? 네가 타인을 구하다 희생하는 모습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아.=
어떻게 들으면 무척이나 이기적인 발언이지만 안느는 그런 말을 하는 이실리테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도 이실리테가 생판 모르는 남을 구하려다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똑같이 화가 날 거 같았으니까.
=미안.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였어.=
=…나도 화내서 미안해. 네가 자칫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
=…….=
왠지 쑥스러운 기분에 뻘쭘해하던 이실리테와 안느는 환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반색했다.
=주인님.=
=도령.=
“안느, 몸은 괜찮나.”
=엉. 구해줘서 고마워. 나 방금 빙의 당할 뻔 한 거 맞지?=
“그래. 다행히 평온의 파동 속이어서 혼재가 들러붙지 못한 거다.”
회백색 빛의 구체 안이 아니었다면 나 꼼짝없이 죽는 각이었나? 속으로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게 뻔히 보이는 안느의 모습에 환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위상류도 있고 딱히 피할 필요도 없었지만, 여자친구들은 아니다.
안느는 툭,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환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그의 눈에 걱정과 분노가 어려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면 이야기 좀 하지.”
=으, 응.=
어쩐지 나중에 크게 혼날거 같지만, 왠지 도령한테라면 혼나도 기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안느였다.
재앙화된 혼재, 알드헬름은 환인의 영혼술 세례에 혼이 찢어발겨 지며 소멸했다.
그 광경은 세뇌자와 되살아난 시체를 거의 다 정리해가던 비자룩스 가문 소속의 기사와 병사들 다수도 목격했고, 후줄근해진 셀가 영주와 에사르트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환인은 넋이 나간 것처럼 주저앉아있는 셀가 영주를 무감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에사르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영주는 지금 머리가 멈춘 것으로 보였기 때문.
“혼재는 소멸했지만 아직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벽과 천장, 바닥, 무너져내린 벽의 잔해 등에 저주의 띠가 잔흔처럼 덕지덕지 붙어 기분 나쁜 느낌을 뿌리고 있다.
어쩌면 저 힘에 의해 새로운 혼재가 탄생할 수도 있는 노릇.
“일단 사람들의 상태 파악을 시행하겠습니다. 에사르트, 혼재 발생 당시 비자룩스 성에 있던 모든 인물을 한자리에 모아주십시오.”
=예. 그외에 저희가 도와드려야 하거나, 해야 할 일은 없을까요?=
“여러분의 눈에는 안보이겠지만, 성 곳곳에 혼재가 뿌린 저주의 띠가 오물처럼 들러붙어 있습니다. 저것들을 정화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다시 혼재가 발생하겠지요.”
타들어가 떨어져 내린 일라일 꽃 한 송이를 집어들며 말하는 환인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사람들의 상태를 살핀 뒤 성 안의 정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니 성내를 안내해줄 안내자 한 명을 붙여주십시오.”
=그것은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셀가 영주의 상태는 정상이 아닙니다.”
네가 사람을 모으고 어지러워진 분위기를 당신이 수습해야 하지 않겠냐고 돌려 묻자 에사르트가 단단한 얼굴로 자기 가슴을 툭, 친다.
=저주가 뿌려진 성 안을 안내하는 위험한 일입니다. 비자룩스 가문의 일원으로서, 동생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놈이 저지른 짓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아랫사람이 아닌 제가 동행해야 합니다. 수습은 동생들이 할 겁니다.=
환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에사르트가 말했다.
=그럼 즉시 사람을 모아놓겠습니다. 천천히 정원으로 내려와 주십시오.=
“예.”
환인의 대답을 들은 에사르트는 꾸벅, 허리를 숙인 뒤 이제 뭘 해야할지 몰라 웅성거리는 기사와 병사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통솔하기 시작한다.
먼저 모든 기력이 사라져버린 듯 주저앉아있는 영주를 챙기고 병사들을 인솔해 1층으로 내려가는 에사르트.
여자 친구들만 남은 2층 로비에서 환인은 버림받은 스타에타의 시체에 시선을 주었다.
혼재 알드헬름이 소멸한 장소에 둥둥 떠있는 푸른색 빛구슬 두 개.
‘혼재를 소멸시켜도 빛구슬이 남는 건가.’
일반 영혼을 소멸시켰을 때에는 빛구슬이 남지 않았는데.
의아해하던 환인은 손을 뻗어 빛구슬 두 개를 회수한 순간 시더의 기억 일부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