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화 〉 260 비자룩스의 혼재
* * *
오랜만에 쥔 흑창의 감촉에 환인은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기분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적이 언제였지. 삼림형 미궁에서 늑대인간과 마주쳤을 때였나.
참기 힘든 기분에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자신을 눈에 띄게 경계하는 빙의된 스타에타에게 걸어간다.
「“크으르으으……. 영.혼.사!”」
“그래. 내가 영혼사다.”
영혼사라는 단어에 반응하는지 사람을 찢어 죽일법한 살기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뼈와 힘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손톱 끝에 피처럼 붉은 기운이 맺히더니 50cm 가까이 늘어나 클로claw처럼 형태를 잡는다.
무릎이 굽혀지고 허벅지 안쪽 근육이 선명하게 갈라진다. 상체가 악간 낮아지면서 어깨가 들리고 상완 근육이 뚜렷해진다.
몸에 걸친 것이 없는 알몸이라 근육의 움직임과 그러한 동작을 바탕으로 이어질 공격이 훤히 보인 순간.
「“죽인다아악!!!!”」
핏빛 눈알을 번들거리며 7m의 거리를 1초 만에 좁혀들며 번개처럼 공격해왔다.
쓰악??
0.1초의 반응 속도를 능가하는 섬전의 일격이지만, 반응속도라면 환인도 만만치 않다. 하급 정령 강령을 통해 3배까지 증가한 신체 능력과 수 읽기로 손톱을 가볍게 흘려보낸다.
가가각.
동시에 뻗어나온 왼팔에 흑창의 끝을 대고 가볍게 그었지만,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반발력이 손아귀를 강하게 압박했다.
가죽은 대는 것만으로 자르는 칼날멧돼지 성수의 어금니인데 팔에 상처는커녕 붉은 자국도 생기지 않는다.
「“캬아아아아!!”」
상처는 없지만 공격받았다는 감각 때문일까. 괴성과 함께 스타에타의 맹공이 쏟아졌다.
리치가 짧은 박투여서 공격의 밀도가 이실리테의 두 배에 가까울 지경.
환인은 눈앞에 그려지는 하얀 살결의 파도와 격렬하게 요동치는 유방의 율동에도 동요하지 않고 흑창의 날과 창대로 공격을 흘리거나 피해내며 스타에타의 변칙 공격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과연 힘이 대단하군.’
흘려보내는데만도 손아귀에 가해지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자칫 방심하다간 창을 놓칠 지경이고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움직임을 놓칠 정도다.
퍽!
「“크륵!!”」
공격이 전부 보인다지만 7급에 달하는 신체 능력을 고작 3배 정도 향상된 몸으로 쫓아가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슬슬 동작을 쫓아가기 버거워 미래시로 공격을 읽고 방벽의 패널로 회음부를 퍽, 후려치자 몸을 들썩인 스타에타가 훌쩍 뒤로 물러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무엇이 자신을 공격했는지 눈치 못 챈 모습. 그사이 환인은 참고 있던 호흡을 풀며 후욱,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빙의는 단순히 대상의 신체 능력과 방어력만 어마어마하게 끌어올리는 건가.’
그래서인지 공격이 지능적이지 못하다.
일단 변칙 공격이 전무하다. 핏빛 손톱날을 늘린다거나 쏜다거나 하는 간단한 활용도 못 하다니. 알드헬름도, 스타에타도 전투와 관계가 없기 때문인가 싶다.
‘하긴.’
6급 성투사도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와 짐승 같은 반사신경이다. 여기에 날붙이도 통하지 않는 방어력이라면 머리를 써야 할 이유가 없겠지.
그냥 힘과 반사신경으로 목을 뽑아버리면 그만이니까.
환인은 전투의 흥분에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몇 가지 스타에타를 제압할 수단이 떠오른다. 이게 과연 통할까. 안 통한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까.
「“크갹!!!!”」
방어력 체크를 위해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내질러오는 오른발의 궤적에 창날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사과를 깎는 것처럼 허벅지를 깎아보려 했지만, 숫돌에 칼을 가는 것마냥 드드득 긁히는 소리와 함께 피부의 탄력으로 창날이 튕겨 나왔다.
그순간 환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음? 방금 공격에 반응한 위상류의 움직임이…….’
환인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재차 17번의 공격을 피해낸 뒤에 찾아온 왼발 돌려차기의 징후를 포착, 창대로 발목을 때리는 동시에 번개같이 스타에타의 음부를 발끝으로 걷어찼다.
퍼걱!
「“꺄으아가각!!”」
단단한 부츠 끝이 8cm가량 스타에타의 음부에 박힌 순간 스타에타가 괴성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더니 나귀처럼 굴러 삽시간에 일어선다.
자신의 부츠 끝을 보자 피가 묻어있다.
「“크르르르르!!”」
“훗.”
「“끼야아아아악!!!”」
촤좌작!
좀전보다 족히 1.4배는 난폭한 공격의 소나기가 쏟아졌지만 되려 공격의 정밀도는 낮아졌다.
난폭해졌다지만 속도는 그대로다 보니 피하는 데에 어려움은 더 없었다.
‘지금.’
빙의된 스타에타가 뻗어오는 하얀 왼팔을 보곤 창대 끝을 질러 스타에타의 호빵처럼 부푼 젖무덤을 강하게 찔렀다.
가각! 파열음이 난 직후 냇가에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히 움직여 스타에타의 왼쪽 손목에 창날을 들이밀었다.
눈에 보이지만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정적의 움직임. 환인이 인식하는 세상의 흐름이 0.5배정도 느려지고, 창날이 천천히 스타에타의 손목을 파고드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스걱
고기 손질하듯 뼈를 피해 살점을 잘라내고 관절의 틈에 날을 밀어 넣어 끊어낸다.
파바박!
0.1초의 순간이 지나고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오자마자 스타에타의 손목이 끊어져 툭 떨어지고 왼팔의 피부, 근육, 힘줄, 혈관, 자뼈와 노뼈가 삽시간에 너덜거리며 피를 푸확 쏟아냈다.
「“키야아아악!!!!”」
스타에타의 비명 같은 괴성과 함께 오른쪽 다리가 올라가며 대퇴부의 선명한 근육이 노출되고 허리가 살짝 돌아간다.
천천히 올라오는 무릎과 도드라지는 허벅지 안쪽 근육, 치명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는 회음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행동이 자신의 머리를 공격할 거라고 알려준다.
환인은 노골적인 공격 예고에 미묘한 비틀림을 느꼈다.
‘함정, 아니면 속임수.’
방벽 패널 하나를 다시 형성, 빙의된 스타에타가 눈치 못 채도록 스타에타의 등 뒤에 만들어낸 환인은 은밀하게 움직여 외발로 서 있는 그녀의 오금을 후려쳤다.
퍼벅!
한쪽 다리로만 서 있던 스타에타의 몸이 덜컥 흔들리며 무너지는 사이 거리를 빠르게 벌린 환인은 창의 압도적인 리치를 이용, 눈에 보이는 스타에타의 모든 빈틈에 창을 찔러넣었다.
푸부북, 타닥따다닥!
「“꺄아아아앗!!!”」
1초에 7번 쏟아진 뇌전 같은 찌르기.
그러자 예상대로 가장 먼저 창날이 스타에타의 하얀 무릎에 파고들어 가 힘줄과 십자 인대를 끊는다. 이어 왼쪽 어깨 힘줄까지 벤 직후
카가각!
고관절과 목, 가슴, 오른쪽 어깨, 팔꿈치 안쪽부위에 강한 물리적 반발력을 느끼며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역시.’
단순 파괴력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창 < 안느의 망치 < 이실리테의 레드릭이다.
레드릭을 맨살로 약간 파이는 상처 정도로만 막아내는 신체가 이렇게 맥없이 뚫릴 리 없다.
‘그 속도와 반사 신경으로 공격받는 위치를 경화하는 거겠지.’
경화에 쓰는 기운은 마구 뿜어내던 저주의 힘이 아닐까.
거리를 두고 가만히 지켜보자 고작 몇 초 사이에 힘줄과 인대, 상처까지 재생한 스타에타가 진득하기 짝이 없는 살기를 흘리며 느릿하게 움직인다.
별것 아닌 사냥감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빙글빙글 돌며 탐색하는 듯한 모습.
그러나 왼손은 잃어버린 채다.
“……후.”
환인이 작게 웃음을 흘리자 거기에 자극받은 스타에타가 이성이라곤 1g도 느껴지지 않는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미래시에 스타에타의 공격 모션과 동작이 고스란히 눈에 비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타에타의 쏟아지는 공격을 모두 피해내고 반격하기 시작했다. 상처는 없지만 점차 스타에타의 공격 시도가 차단되는 빈도가 늘어난다.
표현은 미래시라고 했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감각과 기감이 예리해져 상대의 움직임을 매우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는 것이다.
스타에타가 자신의 첫 공격을 피해낸 것은 몸의 손상까지 감수하며 억지로 몸을 비틀어낸 결과다. 당연히 예측이 빗나갈 수밖에.
그후 환인은 좀 더 정밀하게 예측 결과를 계산해냈고 지금까지 보인 미래시는 모두 맞아떨어졌다.
결국 예측도 경험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자신은 더욱 강해질 거다. 그리고…….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 내가 예측하지 못한 적은 얼마든지 있겠지.’
예를 들면 아렐=케드윈 같은 존재.
무료함과 권태감에 젖어있던 환인의 가슴에 활력이 피어난다. 찾아보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상대는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그것을 빙의된 스타에타가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의 안중에 빙의된 스타에타는 이제 없었다.
공략법을 알아낸 이상 빙의된 스타에타는 그저 작은 여자 형상을 한 고깃덩어리일 뿐.
「“키야악!!”」
하급 빛의 정령을 강령해 쓸 수 있게 된 광선光? 공격.
검지 손가락 길이와 굵기만 한 광선을 쏘아 눈을 지지자 스타에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날뛰기 시작한다.
아까 음부를 찍은 공격에서 추측했던 건데 역시다.
‘단순히 혼재에게 빙의 되었을 뿐, 의식과 몸은 아직 살아있다.’
혼재에게 조종당하고 있을 뿐 극통이 가해지면 혼재에게 깔린 의식이 날뛰며 육체의 통솔이 일부 흐려지는 거다.
그 말은 곧 스타에타가 의식적으로 혼재에게 육체를 내어주고 있다는 뜻.
‘혼재가 된 아들에게 육체를 내어주는 어미라, 참으로 잘 어울리는군.’
「“꺄으가가각!! 크르르르륵!!”」
눈이라는 복잡한 기관의 재생은 느린지 5초째 허우적거리는 스타에타에게 은밀 스킬로 기척을 죽이며 다가간 환인은 양쪽 유방 바로 아래, 살짝 도드라진 늑골 사이를 기습적으로 찔러 폐를 찢어발겼다.
「“끄르러럭!? 크뤠렉게게겍……!”」
삽시간에 피거품을 토해내며 휘청이는 스타에타.
이번에는 창대로 옆통수, 어깨, 목을 툭툭툭 쳐 그쪽으로 신경을 집중시켰다가 번개같이 오른쪽 고관절을 따라 오른쪽 다리를 통째로 잘라버린다.
추와아악!
「“아꺄아아악!!!”」
떨어져나간 왼쪽 손목이 재생되지 않는 것을 보면 사지를 떨어낼 경우 무력화가 가능하다는 뜻.
다리가 잘린 쪽으로 넘어지던 스타에타가 절반쯤 재생되었는지 엉망진창이 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며 짐승처럼 이를 드러낸다. 환인은 그 시선을 덤덤히 받아들이며 그녀의 코앞에 빛 속성 폭발을 퍼퍼펑, 여러 번 터트렸다.
시신경을 자극하는 빛의 폭발에 스타에타가 흠칫하는 순간 이번에는 왼쪽 무릎도 통째로 잘라버렸다.
「“끄르꺄아아아악!!”」
투툭, 잘라낸 오른 다리와 왼발을 뒤로 차낸 뒤 땅에 떨어져 있는 왼손도 돌맹이를 차는 것처럼 뒤로 날려보내자 스타에타가 피거품을 토해내면서 아직 멀쩡한 오른팔과 무릎까지만 남은 왼발로 바닥을 박차고 환인에게 날아든다.
딱! 뻐억!!
오른팔을 창대로 후려쳐 방향을 바꾸는 동시에 하이킥으로 스타에타의 옆구리를 내려 차듯이 날려버리는 환인.
「“켁!”」
텅, 가죽공처럼 땅에 튕겨 벽에 처박히는 스타에타의 뒤를 빛살처럼 쫓아간 환인은 창대로 양뿔이 달린 머리통을 후려치자마자 남은 오른팔을 잘라내 버린다.
서걱
「“꺄으아아아악!!!”」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오른팔과 함께 스타에타의 입에서 저주의 송곳이 불쑥 튀어나왔지만, 환인은 가볍게 고개를 기울이는 것으로 피해내고 재차 두 눈을 찔러 실명시킨다.
사지는 물론 시야까지 봉쇄된 스타에타는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펄떡거리며 연신 피를 게워냈다.
그사이 땅에 떨어져 뒹구는 철창을 집어든 환인은 격통에 몸부림치는 스타에타의 젖가슴을 짓밟아 멈춰 세운 뒤.
콰직!
스타에타의 아랫배를 찔러 땅에 박아 고정했다.
창에 꿰뚫린 것은 혼재의 색으로 물든 영기가 가득한 스타에타의 자궁. 그래서인지 스타에타의 발악이 한층 더 강해진다.
「“끼갸으아아꺅!!!!”」
재생하던 도중 터져 나온 끔찍한 비명에 폐가 다시 찢어지고 반작용으로 너덜너덜해지며 피를 울컥울컥 토해낸다.
환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철창을 몇 개 더 가져와 오른쪽 어깨, 양쪽 가슴, 복부에 하나씩 더 박아넣었다.
신체를 강화할 여력이 없는지 창날이 힘을 주는 대로 살결을 뚫고 들어간다.
「”끄아아악!! 여보! 여보오! 아파! 아빠아앜! 살려줘요 여보!! 아아빠아아아!!!”」
바늘에 꽂힌 애벌레처럼 사지가 끊어진 채 버둥거리며 두 가지 목소리로 엘가 영주를 부르는 스타에타.
환인은 멈추지 않고 아직 뿌리가 남아있는 왼팔, 오른팔, 왼쪽 허벅지에도 마저 창을 박아넣고 나서야 물러섰다.
“후우.”
아무리 신체 능력을 끌어올린다 해도 기초 기능은 평범한 여자나 다름없는 몸뚱이다. 이만한 손상을 입혀놨으니 다신 날뛰지 못하겠지.
이제 혼재가 스타에타의 몸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
「”끄으아…… 여, 보…! 사, 살려…아빠아아읔, 클럭, 아…파, 여, 여보…….”」
환인은 이마에 흐른 약간의 땀을 소매로 훔치며 여덟 개의 철창에 꽂힌 스타에타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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