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245 교상 마을 오울링
* * *
여자 친구들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선물을 받은 날로부터 사흘.
환인은 여자 친구들만 스림의 미궁에 보내놓고 자신은 방벽의 숙련도를 올리는 시간을 보냈다.
주 연습 종목은 세 가지.
패널 조작을 0.1초의 반응 속도에 맞추는 것.
3개의 영혼 방패를 더해 9개를 동시에 조작하는 것.
마지막으로 패널의 형태 변화를 1초 안에 끝마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쉬웠다.
감옥 미궁에서 개화한 기척 감지에 쿠알을 강령하며 얻었던 감각 확장이 방벽을 만나 제대로 꽃을 피웠다.
눈을 감고 있으면 전방위에 대한 공격을 0.05초에 가까운 반응 속도로 대응할 수 있었던 거다.
눈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뇌를 거쳐 명령을 내린다는 체계가 기척 감지 + 감각 확장으로 정보를 뇌에 다이렉트로 받아들여 반응하는 느낌.
일반인의 평균 반응 속도가 0.2~0.3초에 프로게이머의 반응 속도가 0.15초 정도임을 생각해본다면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방벽에는 자동 방어 기능도 탑재되어있어 환인이 신경 쓰지 않더라도 0.2~0.3초의 반응 속도로 뒤에서 가해지는 공격도 막아준다.
환인에게 부탁받은 하녀 다섯 명이 돌멩이를 마구 던지며 패널이 하나도 빠짐없이 쳐내고 막는 것에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을 정도.
덕분에 첫 번째 항목은 간단히 클리어했지만, 문제는 두 번째였다.
패널을 조작하는 것은 손을 쓰는 것과 다름없다.
즉, 두 손을 움직이며 패널을 두 개 다루는 것은 손을 네 개 쓰는 것과 마찬가지고, 두 손에 더해 패널 6개를 조작하는 건 팔이 8개인 것과 같았다.
한 마디로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왼손으로는 오망성을 그리며 귀로는 노래 가사를 외우면서 눈으로는 책을 읽는 멀티태스킹과 다름없었던 것.
필연적으로 여러 개의 패널을 다룰 경우 반응 속도가 비례해서 늘어났다.
3개까지는 0.1초에 맞출 수 있지만 6개가 되면 0.3초까지 지연된다.
‘다행인 건 무의식이 조작 처리를 자연스럽게 해준다는 건가.’
예를 들어 천칭을 쥐고 싸우며 패널 여섯 개를 조작해 상대방을 때리고 공격하는 것은 공격이라는 행위에 상당 부분 겹치는 게 있어 뇌에 부담이 덜하다.
그건 안느와 대련하며 익히 파악했던 부분이기도 했기에 환인은 여섯 개의 패널을 따로 조작하는 데에 훈련 시간 대부분을 투자했다.
환인의 의지에 따라 각각 위아래 운동, 좌우 운동, 원 운동, 세모, 네모, 별 그리기를 하면서 불규칙적으로 랜덤하게 움직인다.
좌우 운동을 하다가 네모를 그리고 원을 그리다가 세모를 그리고.
여기에 우연히 도움이 됐던 것이 영혼 구슬의 핸들링 경험이었다.
그 결과 사흘 만에 환인은 6개의 패널을 손처럼 다룰 수 있게 되었고 동시 여섯 개 조작을 시행해도 반응 속도가 0.2초 이상 늘어나지 않게 되었다.
세 번째 훈련 항목인 패널의 형태 변화를 빠르게 해낸다는 것도 지속적인 연습으로 점차 변환 시간을 줄여가고 있었기에 환인은 마지막 한 가지를 시도해보았지만…….
“맨손처럼 다룰 수는 없군.”
다변성 기능을 활용해 패널을 손처럼 사용하는 것은 실패했다.
형태 변환에 걸리는 속도를 0.1초까지 줄이고 연달아 수천 번 변화시킬 수 없다면 불가능한 경지인 듯 하다.
이가 안되면 잇몸으로 하라는 말이 있다. 환인은 대신 다섯 개의 패널을 손가락처럼 길쭉하게 만들어 물건을 집어 올리거나 실을 잡아 바늘구멍에 꿸 수 있게끔 다루는 데는 성공했다.
그걸 본 안느가 이 정도는 자기도 할 수 있을 거 같다며 환인에게 방벽을 빌려 시도해봤지만…….
=아악! 머리에 쥐 날 거 같아!=
바늘에 실을 꿰긴 커녕 패널 6개를 조작하지도 못했다.
6개를 꺼내 방패 모양으로는 어찌어찌 만들었지만, 이걸 움직이려다가 머리를 감싸고 땅을 데굴데굴 굴렀던 것.
=풋.=
=비웃었겠다?! 네가 한번 해봐!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의외는 이실리테였다.
자기 혼자 추태를 보일 수 없다며 물귀신 작전으로 이실리테의 다리에 매달렸는데 이실리테는 6개를 검 모양으로 만들어 어찌어찌 공격까지 사용한 것이다.
일제 공격과 일제 회수 두 가지 패턴밖에 못 했지만 아무튼.
유르파는 잔뜩 시무룩해진 안느를 토닥였다.
=애초에 방어 장치는 자동 방어 기능으로 방어에 쓰기 위해서 개발된 거야. 직접 다루라고 있는게 아니란다? 오히려 안느 네가 정상인 거니까 기운차리렴.=
=……유리 언니도 못해?=
=…….=
=못하는구나…….=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데 위로받았는지 안느의 표정이 펴졌고 반비례해서 유르파의 표정이 시무룩해졌지만 어쨌든,방벽에 익숙해지려는 환인의 훈련 의도는 상당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라기보단 환인 한정 패널티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제작자인 유르파도 예상하지 못한 거였다.
‘본격적으로 패널을 활용하니 유지 시간이 대폭 깎이는군.’
6개의 패널을 전부 공격에 동원할 경우 유지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더욱이 환인은 위상력이 아닌 영기를 기술의 자원으로 쓴다. 그에게는위상력이 없으니전투 중 충전량이 바닥나면 방벽이 무용지물로 변해버린다.
방벽이 다시 충전되길 기다리던가 여자친구들에게 충전을 부탁해야 하는 것이다.
환인은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떻게 위상력이 없을 수 있지? 모든 생명체는 위상력을 가지고 있는 거 아냐?=
=주인님은 다른 세상에서 오셨잖아.=
=그런가…….=
=미안해, 자기.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을 예측 못한 내 잘못이야.=
유르파는 자신이 절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방벽을 다루는 환인에게 돈을 좀 더 써서 방벽의 위상력 통을 더 늘렸어야 했다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인이 비상하게 잘 다루는 것이지 그녀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환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이걸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말로 유르파를 위로했지만, 유르파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 8급 전사에게 나무막대기를 들려준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위대한 전사이니만큼 나무막대기로도 필살의 위력을 낼 수야 있겠지만, 능력에 걸맞지 않은 무기를 쓰게 한다는 것은 대장장이에게 어마어마한 치욕이다.
=다행인 점은 혹시 몰라서 교체 업그레이드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는 거야. 돈을 좀 더 모아서 브레이서의 위상력 저장판을 더 좋은 걸로 교체하면 돼! 그럼 우리 자기 한정 최상격의 마도기가 생기는 거지!=
=파츠 교체에 얼마나 드는데?=
=…5, 500금화? 아니, 700금화 정도…….=
=언니 미쳤어?=
=그치만! 지금 방벽에 쓴 것도 6급 광산 미궁의 루비 크리스탈 골렘의 핵이란 말이야! 그보다 뛰어난 건 7급의 드레이크 하트나 7급 미궁의 심핵 정도밖에 없는걸!=
억울해하는 유르파의 항변에 이실리테가 손을 들어주었다.
=최상 등급 마도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싼 편이야. 최상급 마도기로는 작은 성도 살 수 있다고 하잖아. 하지만 언니, 7급 대형 이형종의 심장이나 7급 미궁의 심핵 같은 걸 구할 수는 있는 건가요?=
=엄청나게 희귀하다지만 구할 방법이 없는 건 아냐. 안느 아가씨가 있잖니.=
유르파의 시선이 안느에게 향하고, 이실리테도 안느를 보더니 아, 작게 탄성을 흘렸다.
=몇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땅신 교단이잖니? 교단 보물고에는 그만한 소재가 있거나 그보다 뛰어난 것도 있을 게 틀림없을 거야.=
=그러게. 신성 점수만 있다면 교환 요청을 넣을 수 있을 테니까…… 교단 의뢰를 해결하면서 점수를 모으면 되긴 하겠다.=
=유리 언니.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위상력 보조 물약을 브레이서에 뿌리면 안 되는 건가요?=
=위상력 보조 물약은 복용자의 회로를 확장해 위상력의 회복 속도를 단시간에 높여주는 거지 위상력 그 자체를 보충해주는 게 아니야. 하지만…… 그 구상은 연구해볼 만하겠는걸.=
‘흐음…….’
상념을 끝낸 환인은 허공에 어지럽게 움직이는 여섯 개의 패널을 거두어들이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현재로서는 방어용으로 써도 충분하니 방벽 개?로 업그레이드 하는 건 나중의 일로 미루어야겠지. 아니면 유르파가 위상력 충전 수단을 만들어주길 기다리던가.
훈련을 끝마친 환인이 언덕 가장자리로 걸어가자 하늘을 날아다니던 비상이 파다다닥 날개를 빠르게 퍼덕이며 날아와 환인의 옆에 착지했다.
쿠흥!
환인은 자신의 비행이 어땠냐며 뻐기듯이 목을 빼고 우쭐거리는 비상을 칭찬했다.
“훌륭했다. 바람을 다루는 게 갈수록 능숙해지는군.”
아침저녁으로 하급 바람 정령의 순수한 바람을 잔뜩 먹여준 지도 근 2주째. 그 덕에 바람을 다루는 힘이 점차 강해져서 며칠 전부터는 유생 시절처럼 혼자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한 비상이다.
쿠에~.
“아직 부족하다고?”
쿠쿠! 쿠으엥!
자신을 태우고 자유롭게 날 수 있어야 충분하다는 뜻이 담긴 울음에 환인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기대되는군. 그때가 되면 잘 부탁한다.”
큐삣!
환인은 비상의 목을 쓰다듬어주며 마을 사람들이 이전보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시장과 다리를 응시했다.
‘엿새째인데 알드헬름의 반응이 없군.’
어제, 말빈이 파르히스트 성주와 알현을 끝마쳤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루비 브로치의 효과인지 알현을 신청하고 이틀 만에 이루어졌는데 환인의 예상보다 하루가 빨랐다.
거기다 알현의 결과도 즉각적이었다.
성주는 왈가왈부하지 않고 한 해 3톤의 하드렉 및 20퍼센트의 세금을 상납받고 하드렉의 거래는 오로지 파르히스트 성주 직할 상단을 통해서만 하겠다는 조건으로 오울링을 파르히스트 권역으로 인정, 일부 병력을 파견해 보호해주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1마리의 변종 스림에서 평균 700g의 하드렉을 입수할 수 있으니 한 달 360마리 정도 잡으면 된다.
환인 일행이 엿새간 430마리가량을 노획한 것을 생각해보면 매년 3톤의 산출은 성주가 오울링을 많이 배려해주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았다.
‘세금도 보통 마을은 33%이니…….’
왜 이렇게 후하게 대우해준 걸까. 듣자 하니 사도 파견도 없이 루브이주 가문이 오울링을 그대로 통치하게 해준다고 했다던데.
환인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이루어진 알현. 그리고 후한 조건.
적어도 내일이 되어야 가불가가 결정 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빠르게 결정 난 이유에는…….
‘역시 루비 브로치 때문이겠지.’
루비 브로치를 이렇게 썼다는데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크지 않았다. 거의 금화 100닢에 해당하는 답례(반지2, 귀걸이1, 20금화)를 받았으니까.
거기다 대신할 수 있는 백금 증표도 있고.
“…….”
환인은 활기가 도는 오울링을 내려다보다가 저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도령~. 도령~? 어디 있어~?]
미궁에서 복귀했는지 자신을 찾는 안느의 목소리다.
환인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비자룩스와 오울링은 마차를 타고 6일 거리. 만약 알드헬름이 소식을 받아서 오는 중이라면 오늘내일 이틀 사이에 도착하겠지.’
그러니 내일 하루는 휴식하면서 알드헬름을 기다린 뒤, 오지 않으면 비자룩스로 향한다.
=아! 도령 밖에 있었네!=
결정을 내린 환인은 2층 창문에서 몸을 내밀어 팔을 흔드는 안느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이틀 뒤.
알드헬름은 오지 않았고 어제 수정구를 통해 몇 가지 추가 소식이 전달되었다.
첫 번째로 말빈과 헬리사가 파르히스트의 집사부를 통해 고족 거리의 적당한 저택을 소개받아 구입했다는 것.
두 번째로 어제 정오 즈음 파르히스트 하급 기사 1명을 포함한 병사 1개 분대가 성도 파르히스트의 깃발을 들고 오울링을 향해 출발했다는 것.
안느는 고작 15명 정도로 뭘 하겠냐고 쪼잔하다며 구시렁거렸지만, 정규병의 파병은 곧 파르히스트 성주가 오울링을 주시하고 있다는 의사의 표현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가지고 온 깃발을 다리 중앙의 망루 가장 높은 곳에 걸어 모두가 볼 수 있게끔 하겠지. 이 도시는 파르히스트의 성주가 비호하고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세 번째는 환인도 예상하던 소식이었다.
비자룩스의 알드헬름이 오울링에서 했던 짓을 파르히스트 성주가 알게 되었지만, 자초지종을 들은 성주는 별다른 스탠스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
친서민적인 파르히스트 성주마저도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환인은 ‘역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세계 사람들이 혼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하게 분류할 수 있었다.
혼재를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촌락 사람들이다.
혼재가 발생하면 인구수가 많아봤자 100명 어림인 촌락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폐쇄된 환경 탓에 지식수준도 높지 못한데다 윤년에 벌이는 승령천제 때도 영혼사를 부를 수 없으니 긴장과 두려움이 남다를 수밖에.
마을 규모가 되면 매한가지로 혼재를 두려워하긴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니게 된다.
마을부터는 영혼사가 4년에 1번은 오가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며 부유한 마을의 경우…….
=금화를 한 70~100닢 정도 쓸 생각 하면 영혼사님을 초빙하는 것도 가능은 하니까.=
……라고 안느와 유르파가 이야기해준 것처럼, 최악의 경우 마을 공금으로 영혼사를 부를 수도 있어서였다.
노집사의 말에 따르면 오울링도 일단 일라일 꽃을 도배하다시피 깔아놓은 뒤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 그때 영혼사님을 초빙하려 했다고.
관문 앞, 그리고 마을 곳곳에 심겨 있던 일라일 꽃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던 거다.
마지막으로 도시급이 되면 혼재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지배자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시의 영주나 성주가 두려워하는 것은 혼재가 아니라 영혼사의 사망이겠지.’
물론 영적인 급성 전염병이나 다름없는 혼재가 발생하면 피해가 크게 발생하니 나름 관리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 증거가 웨이포드의 슬럼이고.
어느 세상이든 가진 사람은 무서운 게 없고 가지지 못한 사람만 무서운 게 많은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고 환인은 생각했다.
=주인님. 출발 준비 다 끝났어요.=
방으로 찾아온 이실리테가 모두 밖에 모였다고 알려주었고, 환인은 회색 후드 망토를 걸친 뒤 저택을 나섰다.
저택 입구에는 노집사와 하인, 하녀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환인이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쉬운 듯 표정에 미련이 뚝뚝 떨어진다.
여자 친구들이 각자 쿠에의 고삐를 쥔 채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며 환인은 그들과 하나하나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몸 건강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영혼사님도 몸조심하세요…….=
=영혼사님의 앞날에 축복만 가득하길 짐승신님께 빌겠습니다.=
“그럼 가지.”
노집사를 비롯한 하녀, 하인들이 허리를 크게 숙이는 것을 뒤로하고 여자 친구들과 언덕을 내려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람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환인을 지극히 공경하며 조심스레 뒤따르는 마을 사람들.
수백 명이 뒤를 따르고 있지만 아쉬움에 작게 웅성이는 소리만 날 뿐, 소란스럽거나 시끄럽지 않다.
잠시 후 마을 섬을 나와 동쪽 관문을 나섰을 때는 거의 마을 사람 전부가 따라온 상태였다.
처척.
경례를 올리는 동쪽 관문의 병사들에게 가볍게 목례한 환인이 비상에 오르자 마을 사람 수백 명의 우렁찬 목소리가 합창하는 것처럼 터져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영혼사님!!
이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인사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들러주세요!! 몸조심하세요!! 오래오래 사세요!!
환인은 잠시 관문 안팎을 가득 채운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팔을 가볍게 흔들어주었다.
이제는 함성으로 변한 마을 사람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뒤에 따라오는 여자친구들의 대화가 환인의 귀에 들어왔다.
=기분이 좀 이상하네.=
=뭐가 이상해?=
=이렇게 공경이랑 흠모의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안 익숙한 느낌?=
=우리는 한 것도 없는데 주인님의 일행이라는 이유로 존경받는 게 좀 그렇긴 해~.=
=바로 그거야! 우리가 한 거라곤 도령을 따라다니면서 히야~ 우와~ 감탄하고 탄성만 지른 것 뿐이잖아. 근데…….=
환인은 그런 대화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바로 옆에서 둥둥 떠서 따라오는 시더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시더가 돌아보며 묻는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무덤을 떠나 멀리 나오지 않았습니까. 괜찮습니까?’
「몸 상태라면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쳐흐릅니다. 영혼사님께서 원기를 충전해주신 덕분입니다.」
‘만약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 같다면 바로 이야기하십시오.’
「네, 영혼사님.」
이번 비자룩스 행에 그녀가 해주어야 할 일이 중요하다. 그녀가 없다면 귀찮은 단계가 상당히 늘어날 테니까.
환인은 알몸으로 둥둥 떠서 따라오는 시더를 잠시 바라보다가 앞으로 시선을 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