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46화 (246/813)

〈 246화 〉 240+ 변종 스림의 미궁

* * *

1층에서 여자 친구들이 6마리의 변종 스림을 노획하는 동안 환인은 말빈이 준 변종 스림의 미궁 지도를 살피며 정보의 정확도를 확인했다.

‘차이점은 없군.’

벽은 평범한 자연적인 회색 바위벽이다. 바닥은 대충 다듬은 것처럼 달리기 힘든 울퉁불퉁한 바닥이었고 기온은 입김이 생길 정도로 낮다.

바위벽과 천장 곳곳에 민트색 이끼가 자라고 있는데 이끼에서 적지 않은 광량이 뿜어져 나와 동굴 내부를 밝힌다.

이끼를 건틀릿으로 조금 뜯어본 안느가 중얼거렸다.

=발광 이끼가 자라는 곳은 안전한 장소라는 법칙이 있는데.=

=나오는 이형종은 스림 뿐이니까.=

유르파의 말대로 빛이 닿지 않는 미궁이나 감옥 미궁에 비하면 미궁 특유의 음습한 기운도 없이 청량한 공기만이 감도는 미궁이다.

그렇다고해서 소풍 나온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환인은 여자 친구들의 뒤를 따르며 방심하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다.

푹푹­

찌이­

찟­

=와, 말캉말캉한 게 진짜 이슬이 젖가슴이랑 감촉이 똑같아.=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언니도 왜 주물럭거리는 건데요.=

=아, 아니? 나도 모르게 그만~ 아하하.=

=그보다~ 갑옷 입고 이 작업 하려니까 되게 힘들어.=

쪼그려 앉아 스림을 붙잡고 송곳을 찌르던 안느가 철그럭,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우두둑, 굳었던 관절이 풀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갑옷은 벗고 해도 되지 않아? 어차피 2급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만큼 쉬운 미궁이잖아.=

=미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대비하는 거야. 파르히스트의 삼녀를 생각해봐.=

=그건 그런데…….=

=응. 그러니까 흉갑 정도는 괜찮겠지?=

뒤따라오는 환인을 힐끔거리며 흉갑을 벗은 안느는 환인이 제지하지 않는 것에 안심하며 한결 편해진 몸놀림으로 작업을 해나간다.

=와. 되게 편하네.=

암플레이트와 건틀릿, 그리브와 부츠에 가벼운 셔츠라는 언밸런스한 차림이 된 안느는 좀 더 편해진 몸놀림으로 미궁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세 여자는 말 그대로 넓지 않은 미궁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변종 스림이란 스림은 모두 잡았다.

어차피 이곳은 미궁, 보이는 이형종의 씨를 말려버린다 해도 미궁이 말라비틀어져 죽는 일은 없다.미궁이 죽는 경우는 오직 심핵을 파괴했을 때뿐이니 멸종 걱정 없이 사냥해도 괜찮은 것이다.

=…….=

캉­ 캉­…….

카각, 그그극.

한편 이실리테는 정과 작은 쇠망치로 벽의 틈새를 넓히고 그 속에서 자라는 버섯과 포자 채취에 더 신경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스림을 주워 담던 이실리테였지만.

“이실리테, 거기 상아색 버섯은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갈색은 평범하게 먹을 수 있는 버섯이군.”

=앗, 진짜요?=

도중에 환인이 해준 이야기를 듣고는 작업의 우선 순위에 버섯을 둔 것.

어차피 스림은 많이 나오지도 않고 유르파와 안느가 있으니 자신은 다른 작업을 우선해도 괜찮다는 판단을 내린 거다.

버섯은 대체로 엄지손가락만 한 게 10 동화 정도에 거래될 만큼 고가다. 그런데 벽에 자라고 있는 버섯들은 작은 게 주먹만 한 것들이다.

비싸고 좀처럼 먹기 어려운 버섯이 잔뜩 자라고 있으니 식사 담당인 이실리테의 눈이 돌아갈 수밖에.

망태기에 가득 찬 버섯을 보며 안느가 감탄한다.

=등급은 낮은데 돈 되는 것만 엄청 많네. 여기 미궁 맞아? 어디 보물 동굴 아냐?=

안느의 감상대로 변종 스림의 미궁은 정말 미궁답지 않았다.

약간 민트색이 깃든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이끼 덕분에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느낌이 들어야 할 동굴이지만 묘하게 부드러운 분위기다.

계속 움직여도 서늘한 온도 덕분에 땀도 안 나고 거미나 모기, 파리 같은 짜증 나는 곤충도 없다.

회색 자연석 사이로 군데군데 보이는 갈색과 상아색 귀여운 버섯들, 투명하면서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웅덩이 속을 헤엄치다 가끔 튀어오르는 물고기는 동굴 내부의 분위기를 더욱 포근하게 가꾸고 있다.

‘스림이 뭘 먹고 사는 건가 했더니 이끼였나.’

벽의 이끼 근처에서 꼬물거리는 변종 스림을 잠시 응시하던 환인은 혹시 변종의 이유에 저 이끼가 있는 게 아닐까, 이끼를 가져나가서 양식에 성공하면 밖에서도 변종 스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루브이주 가문의 선조들이 이 정도도 생각 못했을 리 없지.’

환인은 지극히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며 신경을 거두었다.

=이슬아. 유리 언니. 나 좀 봐. 도령도령!=

그렇게 얼마간 움직였을까.

스림과 버섯 채집에 정신없는 그녀들을 대신해 주위를 경계하던 환인은 안느가 부르는 소리에 그쪽을 보았다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가슴을 받치고 있었는데, 속옷에 스림을 집어넣기라도 했는지 그녀의 가슴이 평소보다 5배는 더 크게 보였던 것이다.

=나도 이슬이만큼 커다란 가슴이 생겼어! 와, 어깨 엄청 묵직해!=

=와아, 이슬이 아가씨 가슴이 그렇게 크니?=

=응응. 이슬이 가슴감정사 1급 자격증을 가진 내 판단에 따르면 무게도, 감촉도 똑같아!=

=애도 아니고…….=

한숨을 푹 쉬면서 나직이 중얼거리던 이실리테는 자신도 모르게 시시덕거리는 안느의 가슴에 시선을 주었다.

……내 가슴이 저렇게 컸다고? 저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너무 둔하고 멍청해 보이잖아.

=우와, 이게 이슬이 아가씨의 무게감이구나…….=

안느의 가짜 가슴을 받쳐보며 감탄하는 유르파. 그리고 =아앙~ 가슴 만지면 싫어~.= 왠지 짜증 나는 태도의 안느까지.

=그만해 좀.=

이실리테의 매서운 손길이 안느의 등짝을 때리자 그 충격에 안느의 가슴이 뚝 떨어졌다.

=히익! 내 가슴!=

=가슴 아니거든?!=

여자 친구들이 장난치며 나아가는 것을 뒤에서 구경하며 따라가던 환인은 큰 어려움 없이 지하 6층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에 걸린 시간이 3시간.

대부분 외길이었고 그마저도 짧았던데다 한 층에 나오는 변종 스림은 많아봤자 8~14마리 정도. 스림을 쫓아가 잡고 챙기는 데 든 시간이 대부분이다.

색깔마다 가격의 차이가 있다곤 해도 한 마리에 700g, 5은화 정도. 총 22kg 정도를 확보했으니 3시간 만에 약 160은화를 벌어들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160은화는 아무런 가공이 들어가지 않았을 때의 판매 가격이다.

유르파가 마도기로 제작해 판매하면 가격은 5배에서 10배까지 뻥튀기될 수 있다. 여기에 부자들만 먹을 수 있다는 버섯도 수 킬로그램.

말 그대로 돈이 복사되는 미궁이었다.

일행은 사흘간 변종 스림의 미궁을 순회했다.

새벽에 일어나 오전 훈련 일과를 마치고 9시에 입장, 3시간 동안 지하 6층까지 내려간 뒤 거기서 1시간 동안 점심 식사와 휴식을 한 후 다시 3시간에 걸쳐 복귀, 오후 4시에 퇴장하는 일과였다.

그 결과 하루 70마리씩 사흘에 걸쳐 216마리의 변종 스림을 노획했고 총 1339은화 상당의 하드렉 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수십kg의 갈색, 상아색 버섯은 덤.

=으음. 편하긴 한데 별로…… 재미는 없네.=

미궁의 심핵이 있는 7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 이실리테가 만들어준 버섯 볶음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안느가 약간 지루해하며 중얼거리자 유르파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가씨들한테는 별로겠다. 자극이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별로까진 아니야. 미궁을 재미로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맞아요. 훈련이라는 점에서는 별로지만 파티의 자금 확보에는 매우 좋은 곳이잖아요.=

사흘간 하드렉 수집으로 벌어들인 단순 수익 예상만 13금화 39은화다. 버섯까지 판매한다 치면 20금화가 넘어가는 상황.

지루해서 하품할지언정 불만을 꺼낼 일은 아니었던 거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앉아 다리를 쭉 뻗은 채 쉬던 안느는 힐끔, 눈을 감고 명상 중인 환인을 훔쳐보면서 유르파에게 속삭였다.

=유리 언니. 그저께 물었던 거 있잖아. 그거 어떻게 됐어? 가능해?=

=……가능하긴 하겠더라. 그건 그런데 하드렉을 경화 처리하지 않고 인조 가슴으로 쓰겠다니……. 진짜 만들려고?=

=엉. 난 꼭 가슴을 키워야겠어.=

단호한 대답에 유르파가 어색하게 웃는다.

=H컵이면 좌우해서 4kg 정도야. 단순 원가만 4.3금화 정도에 가공에 필요한 시약 재료비까지 하면 6금화는 써야 해. 거기다 속옷 사이즈도 바꿔야 하고 24시간씩 젖에 부착하고 다니면 피부 트러블이 생길지 몰라.=

=괜찮아. 가슴이 커질 수만 있다면 다 감수할 수 있어. 난 질병 치료랑 해독, 치유도 쓸 수 있으니까.=

왼쪽 건틀렛을 벗어 반지 마도기 두 개를 보여주는 안느의 행동에 유르파는 심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변종 스림의 감촉이 가슴이랑 큰 차이 없다고 해도 그걸로 인조 가슴을 만들어달라니.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는 보기 좋겠지만 옷을 벗으면 다 무용지물이 되지 않나.

=안느 아가씨 지금 가슴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소심하게 그녀의 가슴을 칭찬하며 생각을 바꾸길 권한 유르파는 입을 꾹 다물게 만드는 대답을 돌려받았다.

=원래 가진 사람들은 못 가진 사람을 이해 못하는 법이야. 유리 언니도 G컵은 되잖아.=

=…….=

때때로 같이 목욕하며 본 안느의 몸매는 같은 여자인 자신이 봐도 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만큼 완벽했다.

각선미?美란 이런 것이다는 주장이 느껴지는 완벽한 다리.

잘록한 허리와 함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의 항아리 라인을 그리는 골반.

자신의 물렁물렁한 뱃살과 다르게 11자로 꽉 잡혀 보고 있으면 핥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복근에 1자 배꼽.

흔히 슬렌더라고 부르는 체형은 갈비뼈가 도드라져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안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다.

그녀의 흉부 골격은 그러한 갈비뼈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작은 물방울 모양의 유방, 유륜, 유두까지 완전한 3개의 원을 그리는 가슴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다.

매끄러운 곡선의 쇄골과 어깨선은 물론이고 두 팔마저 황금비율의 완전한 길이. 여기에 이실리테 못지않은 하얀 뽀얀 피부까지 더해지니 자신의 몸뚱이가 추레하게 느껴질 지경인 유르파다.

그런데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을 이해 못 하는 법이라니!

그 말을 되돌려주고 싶었던 유르파는 한숨을 폭 내쉬면서 환인을 돌아보았다.

그가 말려주면 좋겠지만 오히려 재미있겠다는 것처럼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있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어휴, 알았어. 오늘 밤에 만들어볼 테니까 기대는 하지 말고.=

=응!=

소원이 이루어지는 소녀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에 옆에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실리테가 물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보기 좋아도 벗으면 소용 없는 거 아냐? 그런걸 6금화씩이나 들여서 만들면 돈 아까울 거 같은데.=

내 말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돌직구로 날리는 이실리테에게 속으로 손뼉을 치던 유르파는 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정수리에 벼락이 내려꽂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가짜 가슴은 이를테면 이슬이 네가 매일 아침 묶는 머리끈 같은 거야.=

=……으응?=

=도령이 네 포니테일을 좋아해서 매일 묶고 다니는 거잖아. 도령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아냐?=

=맞아.=

=그렇다고 네가 머리를 푼걸 도령이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맞지?=

=……응. 그러니까 가짜 가슴도 평소에 주인님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쓰는 거고, 잠자리할 때는 또 다른 이야기라는 거네.=

=이슬이랑 유리 언니의 큰 가슴이 부럽긴 한데 난 지금 내 몸매도 마음에 들거든. 도령도 예쁘다고 칭찬해줬고. 그래도…… 알지? 내 마음은 그런 거야.=

두 여자는 안느의 이야기에 수긍했다.

가짜 가슴을 패션의 일종으로 보면 이상할게 전혀 없었던 것이다. 가짜 가슴에 실망할 만큼 환인이 그녀의 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보는 시선이 바뀐 유르파가 탱탱볼처럼 굴러다니는 스림을 응시했다.

=흐응. 이걸 본격적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질감이랑 색감을 조금만 더 손보면 진짜하고 똑같이 보일 테고…….=

가짜 가슴 = 패션.

유르파의 중얼거림에서 공식의 기초가 성립되어간다. 환인은 보다 본격적으로 가짜 가슴의 제작에 관심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피식피식 웃었다.

설마 니오네브레스에 뽕이 탄생할 줄이야.

지구에서 뽕의 존재는 약간 숨기고 싶은 치부 같은 거였는데 이 세계에서는 어떻게 정착할지 조금 궁금해진 환인이었다.

3시간 걸려 미궁을 빠져나오자마자 여자 친구들은 갑옷과 로브를 벗어던지고 간단한 옷차림으로 목욕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도령? 도령은 씻으러 안 가?=

“노집사님 먼저 보고 갈테니 먼저들 가라.”

=알았어. 먼저 들어가 있을 테니까 빨리와?=

“그래.”

그렇게 씻을 준비를 끝마친 여자 친구들은 곧바로 저택의 하녀들이 준비해놓은 욕탕으로 향했고, 환인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노집사를 찾아갔다.

조금 속도를 냈다면 오늘 즈음 말빈 일행이 성도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어떻게 됐을까.

자신들은 길이 없는 구릉지를 돌파하느라 이형종하고도 종종 싸웠고 길을 찾느라 멈춰서는 등, 전원이 쿠에에 기승하고 달렸다지만 오울링에 도착하는 데까지 사흘이 걸렸다.

하지만 말빈 일행도 쿠에가 끄는 마차였고 호위도 쿠에를 탔다. 거기에 파르히스트와 이어진 길을 따라 달렸으니…….

작은 집사실을 찾아가자저택의 잡무를 총괄하는 노집사가기다렸다는 듯이 소식을 전해준다.

=3시간 전 수정구 통신을 통해 소식이 도착하였습니다. 파르히스트에 무사히 도착하였으며 도착 즉시 펜리 후스티오 파르히스트 성주님께 알현을 신청하는 동시에 루비 브로치를 제출하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예상한 대로의 소식이다.

“말빈 일행이 무사히 파르히스트에 도착했다니 다행입니다.”

소식의 전달에 사용된 것은 통신용 수정구로, 영상이나 소리는 전달하지 못하지만 문자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마도구다.

다만 제작 단가가 '많이' 비싸며 제작에 사용된 위상석의 급수에 따라 보내고 받을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나는데, 그렇기에 보통 4급 이상의 위상석이 사용된다.

또한 사용에 위상력 감응 기술이 필요하기에 수정구는 각성한 직업자만 쓸 수 있어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대중화되지 못한 통신 수단이었다.

때문에 수정구 통신이 가장 자주 사용되는 장소는 도시급의 행정관이 타 도시의 행정관과 자료를 공유할 때이며, 보통은 전서구와 조인족의 파발조가 이용된다.

환인은 노집사의 책상 위에 놓여진 까맣게 물든 수정구를 잠시 응시한 뒤 노집사에게 물었다.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이제부터 오전과 오후 특정 시간에 정기적으로 연락하겠다는 내용이 있었었습니다. 그리고 영혼사님께 별일 없으신지 궁금해하시기에 말씀하신 대로 스림 미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는 중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제 근황을 묻는다면 설령 말빈의 질문이라 해도 스림의 미궁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영혼사님.=

시베리안 허스키와 비슷한 두상의 노집사가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더욱 진하게 만들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집사실을 나온 환인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자신 전용 1제곱미터의 아공간 주머니만 들고 욕실로 향했다.

‘지금까지는 예상대로다. 문제는 내일부터군.’

과연 파르히스트 성주는 오울링에서 벌어졌던 일을 두고 비자룩스에 항의 서한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타 지역의 호족이 저지른 일탈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것인가.

알드헬름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욕실 입구에는 하녀복을 입은 여자 한 명이 공손히 서서 대기 중이었다.

=…….=

하녀는 환인을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며 문에서 비켜주었다. 그녀에게 가볍게 묵례하고 욕실에 들어선 환인은 먼저 여자 친구들의 즐거워하는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앗, 자기 왔다.=

=도령~.=

옷을 벗고 수건으로 아래를 가리고 들어가자 먼저 욕탕에 들어가있던 안느와 유르파가 손을 흔든다.

저택의 욕탕은 북쪽으로 한쪽 벽이 없는 개방형이었는데, 덕분에 노을이 질 무렵 욕실에 들어오면 야외 노천온천에 들어온 느낌이다.

여기에 10명이 들어가도 충분할 만큼 넓은 욕조 덕분에 여자 친구들은 누구보다 목욕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아공간 주머니를 소지품 바구니에 넣은 환인은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샤워기 밑에서 몸을 씻고 있던 이실리테의 옆에 서서 뜨거운 물에 몸을 맡겼다.

=주인님, 등 닦아드릴게요.=

“부탁하지.”

이실리테가 수건을 가지고와 등을 씻겨주는 사이 환인을 찾아온 시더가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

「영혼사님. 오늘 오전에 소규모 상단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직업자는 없었습니까.’

「2급 직업자가 두 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단의 짐을 뒤져봤지만 수정구는 없었습니다. 전서구가 세 마리 있었지만 어느쪽과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말빈이 무사히 파르히스트에 도착했다더군요. 말빈 쪽으로 접촉하는 낌새는 없으니 알드헬름이 움직인다면 여기로 올 확률이 더 높아졌습니다. 그러니 수상한 행동을 하는 외부인이 없는지 좀 더 경계의 수준을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사님, 그 새끼를 죽이는 건 저에게 맡겨주실 거지요?」

‘예. 그러니 제 말 잘 들으시기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시종일 무표정으로 말한 시더는 다시 마을과 그 직업자를 감시하겠다며 지붕을 뚫고 하늘로 날아갔다.

역시 협조적인 영혼이 있으니 여러모로 편리하다. 시더를 계속 데리고 다닐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

여전히 알몸이며 팔다리는 검붉은색에 물들어있지만 그 이상 악화하지도, 완화되지도 않는 모습이다. 분노와 원한이 그녀를 지상에 묶어놓고 있는 상태.

원한의 근원인 알드헬름이 죽고 말빈이 안전해지면 시더는 바로 성불할테지.

시더를 감시에 투입하고 보니 협조적인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편의성이 대폭 갈라지는 것을 느낀 환인은 정령을 그러한 초계기로 사용할 수 없을까 싶어 고민했다.

마침 스림의 미궁에는 물과 돌의 하급 정령이 간간이 돌아다녔기에 그들을 상대로 평온의 파동을 실험해봤지만.

「기분 이상해!」

파동에 맞으면 꺄르륵 웃으며 도망가버릴 뿐. 관계 개선 등에 유의미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었다.

아, 어둠의 정령석을 분말로 만들어 하급 어둠의 정령 다섯 마리를 모은 뒤 분말을 뿌려주었더니 좋아죽으려 했다

그 이후 감옥 미궁에서 어둠의 정령을 후려쳤던 원한은 모두 해소되었는지 밤중에 가끔 어둠의 정령과 마주쳐도 이전처럼 괴물 보듯이 도망치는 일은 없어졌다.

약간이지만 ‘또 기분 좋아지는 가루 뿌려주지 않으려나?’하고 가까이 오는 일도 있었기에 정령석을 잔뜩 모아 호감도 작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지만.

‘300g의 정령석이 금화 단위다. 불가능해.’

차라리 정령과 사이를 좋게 만들어주는 마도기나 마도구를 찾는 게 더 이득일 것이다.

몸을 다 씻고 욕탕에 들어가자 이실리테와 안느가 자연스럽게 좌우에 붙어온다.

좌우 팔에 닿는 푹신하면서도 말캉한 젖무덤과 그녀들의 피부 감촉, 몸을 뜨겁게 달구는 물의 온도가 환인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기분이다.

‘말고도 평온의 파동 외에 영혼사의 기술이 더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데…… 의심받지 않을 적당한 방법이 없군.’

=흐아~ 좋다……. 집을 사면 이런 대 욕탕을 만들고 싶어…….=

=청소는 어쩌게? 이만한 욕탕이 있는 집은 저택 수준일 텐데 너무 넓잖아.=

=청소 하녀를 고용하면 해결되는 거 아냐?=

=기본 코스를 이수한 하녀라도 월 5은화는 줘야 해. 이만한 저택이라도 4명은 필요하니까 매달 20은화씩 지출되는데? 물도 공짜가 아니고 저택 유지 보수비용하고 토지세 같은 세금을 생각하면 매년 5금화씩은 나갈 거야.=

=별로 안 비싸네.=

=……5금화가 별로 안 비싸?=

=야아. 우리가 6급 미궁을 한달에 한 번씩 10일만 들어가도 1년이면 수백 금화를 벌 수 있어. 5금화가 무슨 대수야.=

=우린 아직 5계층도 못 내려가는데.=

=감옥 미궁서 5계층에 내려가지 못한 이유는 함정 때문인데 뭐. 그거만 아니면 우리 셋은 6계층도 충분할 거라고 봐.=

=안느 넌 너무 낙관적이야. 자고로 미래를 전망할 때 낙관적인 측면을 보면서도 비관적인 측면에도 눈을 거두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

환인은 눈을 감고 좌우에서 아웅다웅하는 그녀들의 젖가슴을 손에 쥔다. =아응.= =햣?!= 몽실거리는 살결에 손가락이 파묻히는 감각이 자못 환상적이다.

조금 단단한 느낌인데다 한 손에 겨우 다 잡히는 정도의 안느 젖가슴. 피부가 부드러워 장갑처럼 손을 감싸는 말랑촉촉한 이실리테의 젖가슴.

눈을 감고 두 상반된 감촉을 느끼던 환인은 발이 부드러운 살결에 감싸이는 느낌을 받고 눈을 뜨자 맑고 투명한 목욕물 너머로 유르파의 허벅지 사이에 반쯤 파묻힌 자신의 발을 볼 수 있었다.

유르파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안마하듯 발바닥을 꾹꾹 눌러주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은 흰색보다 검은색의 비중이 훨씬 많아진 상태.

잠시 물기를 머금은 검회색의 머리카락을 응시하던 환인은 다리에 힘을 줘 유르파의 허벅지 안쪽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앗?=

그리고 허벅지 안쪽을 파고들어 발등으로 유르파의 부들부들한 보지를 살짝 문지른다.

=읏! ...흐, 으응.=

전기가 오른듯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입술을 살짝 깨무는 유르파.

발등과 발가락으로 보지를 헤집고 클리를 누르듯 문지르자 유르파는 발목을 꼭 잡고 어깨를 파르르 떨며 할딱였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 복숭아색으로 물든 흰 어깨.

유르파의 선정적인 자태를 구경하며 지난 두 달간 유르파의 행적과 요즘 행적을 분석하던 환인은 결론을 내렸다.

이제 유르파도 안을 때가 되었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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