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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245화 (245/813)

〈 245화 〉 239 변종 스림의 미궁

* * *

“반지 한 쌍은 안느가, 귀걸이는 이실리테가 썼으면 한다.”

위상력 회복과 위상력 자체의 통을 늘려주는 것과 다름없는 반지는 전투와 회복 두 가지를 담당하는 안느가 쓰는게 가장 효율이 높다. 귀걸이는 딜러인 이실리테에게 어울리고.

여자 친구들도 그 제안에 동의하고, 환인은 안느의 왼손 검지와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우와, 내가 이걸 쓰게 될 날이 올 줄이야! 고마워, 도령!=

희희낙락하며 반지를 쓰다듬는 안느에게 이실리테가 묻는다.

=넌 부자잖아. 그런 효과를 가진 마도기를 구하지 못했어?=

=팔찌를 하나 구하긴 했었는데 부서졌어……. 전투 중에 방패를 강하게 맞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끊어졌더라.=

=세상에, 간접충격에 부서졌다니 몇 급을 샀길래?=

유르파가 놀라며 묻자 소심하게 =1급….=이라고 대답한다.

그런 안느를 바라보는 유르파의 시선이 조금 한심해 보이는 것이 대충 상황을 짐작케 했다.

=1급이면 전투용이 아니라 일상 생활용이잖니. 얼마짜리였어? 2금화? 3금화?=

=유, 6금화…….=

=……안느 아가씨? 혹시라도 다음에 마도기 살 때면 나 꼭 부르기다?=

=으응.=

그러는 사이 귀걸이를 살펴본 환인은 귀찌가 아니라 피어싱이 필요한 귀걸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유르파의 도움을 받아 이실리테의 귀에 걸어주었다.

환인의 손길에 살짝 얼굴이 붉어졌던 이실리테는 유르파의 거울을 받아서 귀걸이를 살펴보다 물었다.

=언니, 이 귀걸이 가격은 어떻게 돼요?=

=그것도 4급 위상석인데 진주색은 꽤 흔한 편이라 15금화 정도야.=

물방울 모양 진주색 귀걸이를 살짝 건드려보던 이실리테의 손끝이 떨렸다.

이 조그만게 그렇게나 비싸다고? 잃어버리면 큰일 나겠다…….

환인은 이실리테의 하얀 귓볼에 매달린 진주색 귀걸이를 응시하며 이 세상의 적응 안 되는 물가에 다시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상생활에 쓰이는 물품이 아닌 전투에 사용하는 물품의 가격은 지구의 물가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철화부터 은화까지는 지구와 어느 정도 물가가 맞아떨어지는데 금화부터는 위상석과 관련되면서 전혀 다른 가치로 매겨지는 느낌이다.

애시당초 지구에는 마법 아이템이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환인은 유르파에게서 금화 20닢을 받아 주머니에 넣던 환인은 문득 말빈과 헬리사가 현물 가치를 포함해 100금화를 맞춰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루비 브로치의 답례로 보이는데.’

자신이 오울링에서 영혼을 성불시켜주고 가문을 유지할 방법을 알려주었다지만, 그게 100금화나 되는 사례를 받을 정도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템까지 포함해 100금화.

이정도면 평균 5~6급의 중상급 모험가 파티가 년 단위로 미궁에 틀어박혀서 사냥만 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니까.

“…….”

보답과 대가도 상대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등이 생기는 법이니까 그 영향도 적지는 않겠지.

아무튼, 환인은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20금화가 늘었으니 50금화면 괜찮은 무기를 장만할 수 있겠지.’

무기 제작 쪽은 유르파의 전문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운 환인이었다.

하루를 휴식으로 보낸 환인은 변종 스림의 미궁의 탐사를 준비했다.

이미 말빈에게 허가는 구해놓았다. 오울링에 있는 동안 얼마든지 미궁에서 사냥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미궁의 입구로 내려가는 저택의 지하실 계단까지 따라온 집사에게 말했다.

“이야기해준 것을 명심하시고 저희가 미궁에 있는 사이 알드헬름이 찾아오면 비위를 맞춰주며 저희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걱정 마십시오. 영혼사님께서 당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변종 스림의 미궁은 루브이주 초대 가주가 발견한 이후 약 300년간 독점해온 미궁이었다.

미궁의 규모는 2급으로 심도는 총 7층. 넓이는 간단히 말해 1층부터 7층을 전부 합쳐도 감옥 미궁 11층 하나만도 못하는 곳이다.

2급에 동굴형 미궁이기에 함정도 존재하지 않고 출몰하는 이형종은 1급과 2급의 스림thlim, 집마다 두세 마리씩은 꼭 키우는 부정형 액체 괴물 뿐.

미궁의 심핵을 지키는 중핵도 대형 큐브 스림으로 3급 정도밖에 안 된다고.

자연에 존재하는 저등급의 스림은 공격 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번식도, 증식도 느리고 분해 능력도 느리다. 어린아이도 쉽게 다룰 수 있는게 스림인 거다.

미궁의 이형종 스림도 분해 능력이 자연의 스림보다 약간 더 빠른 점을 제외하면 자연형 스림과 다를 게 없는 생물이다.

그 안전성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스림을 자위 도구로 사용하는 여자가 적지 않다.’로 끝맺을 수 있다.

=안느…… 스림으로 자위도 해본 거야?=

=아, 안 해봤거든?!=

=야한 책에서 본 거니?=

=…….=

얼굴이 빨개진 안느를 두고 유르파가 피식피식 웃으며 설명을 이어간다.

위험성이 전혀 없다시피 한 장소인데다 여러 소재로 유용한 하드렉의 채취 지역이라며 이번 탐사에 합류한 유르파다.

미궁 경험은 이번이 처음인지 살짝 설레여하는 느낌이 없지않다.

=변종도 위험성이나 생태는 일반 스림, 미궁 스림이랑 같아. 하지만 반투명한 물색인 일반 스림이랑은 다르게 변종 스림은 여러 가지 색으로 나뉘는데 해당 색의 속성을 끼얹으면 그 물질이 말도 되지 않게 단단해져.=

=그래서 변종 스림이라고 안 하고 하드렉이라고 한다는 거지?=

=맞아. 하지만 그렇게 단단해진 것도 똑같은 속성을 한 번 더 끼얹으면 원래 성질로 돌아가 버리거든. 그걸 막아주는 게 특수경질액이야. 원하는 모양으로 단단하게 굳힌 뒤 경질액을 뿌리면 두 번 다시 출렁거리지 않게 돼.=

설명을 듣던 이실리테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용법은 알겠는데 그게 왜 비싼 건가요? 단순히 단단한 거라면 다른 좋은 소재도 많잖아요.=

=이걸 보렴.=

유르파는 주머니에서 반투명한 보석으로 만든 듯한 티아라를 꺼낸다. 그 아름답고 미려한 장식과 형태에 이실리테와 안느가 탄성을 질렀다.

=이, 이게 하드렉으로 만든 건가요?=

=응. 새끼손톱보다 작은 양을 굳혀가면서 만든 거야. 보다시피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부서지더라도 수리가 간단해. 같은 색을 붙이고 굳히면 되거든. 거기에 위상력을 잘 받아들이는 형질도 있고 부식도 안 되고 열기와 냉기에도 엄청난 내성을 보여. 무엇보다 부여 술법이랑 궁합이 굉장히 좋아. 술법 문장을 새기기도 쉽고…….=

요약하자면 건물 건축 재료에서부터 일상 용품에 부여 술법에 드는 고급 소재 등, 쓰고자 하면 못 쓰는 데가 없는 만능의 소재. 그게 변종 스림이라는 말이었다.

저택의 지하실로 내려오자 30평 남짓한 직사각형의 벽돌 지하실이 나타난다.

벽에는 야광석이 박혀 은은하게 내부를 비추고 바닥은 깊이 10cm 정도로 물이 채워져 찰랑이고 있다.

첨벙첨벙 물소리와 함께 도착한 스림 미궁의 입구는 안개 같은 것이 뭉쳐진 듯한 형태였다.

개방되어있던 빛이 닿지 않는 미궁, 영혼이 흘러내리는 듯하던 감옥 미궁 입구와 또 다른 형태.

약간 차가운 느낌의 안개 벽을 통과해 변종 스림의 미궁에 들어서자 먼저 서늘한 온도가 환인을 맞이했다. 입김이 살짝 생길 정도로 기온이 낮다.

‘입구의 형태가 미궁의 환경을 일부 드러내는 건가.’

=오, 시원하다.=

=그러네.=

=더울 때 피서지로 사용해도 될 정도인걸.=

=난 아무리 더워도 미궁을 피서지로 사용하고 싶진 않아.=

뒤따라 들어온 여자 친구들이 재잘거리는 것을 들으며 내부를 살펴본 환인의 눈이 이채로 빛났다.

동굴 형태라는 건 들었지만 내부가 생각 이상으로 환했던 것.

[변종 스림의 미궁 지하 1층]

외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던 환인은 길이가 5m 가량 되는 얕은 개울을 만났다.

좌우 벽에 작은 틈이 있어 그쪽에서 물이 새어 나와 바닥에서 20cm가량 되는 높이 부분의 홈을 통해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그걸 본 안느가 헤에, 짧게 감탄한다.

=아까 지하실은 사람이 만들었으니 이해하겠는데 미궁 안에도 스림의 감옥처럼 되어있네.=

=그러게. 이렇게 되어있으면 역류가 절대 일어나지 않겠어.=

“스림은 물에 약한 건가.”

감탄하는 여자 친구들에게 묻자 유르파가 고개를 끄덕인다.

=스림은 자기 부피보다 많은 물에 닿으면 흐물흐물해지다가 녹아 사라져버려. 폭이 이정도 밖에 안 되는데 길이가 5m나 되는 이만한 물웅덩이면 미궁이 자이언트 스림을 만들어내도 통과는 불가능할걸?=

첨벙첨벙.

“통로가 좁아서 보낼 수 있는 사이즈가 한정되어있으니 더욱 그렇겠군요.”

=빙고~.=

이야기를 나누며 개울을 걸어서 건너던 환인은 앞에서 들려온 안느의 목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어, 나왔다.=

“……?”

나왔다니, 변종 스림이 나타났다는 건가. 기척이나 적의를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앞을 보자 정말로 푸딩처럼 출렁이는 빨간 액체가 개울 근처에서 몸을 작게 흔들고 있었다.

=자기, 저거 잡아도 될까?=

“예. 그게 목적이었으니까요.=

조금 들뜬 기색으로 배구공보다 조금 작은 수준인 변종 스림에게 다가간 유르파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송곳을 크게 키운 꼬챙이로 액체 괴물 안쪽에 보이는 작은 핵을 푹 찔렀다.

찌잇­

묘한 소리와 함께 전기 자극받은 근육처럼 바짝 움츠러든 채 굳어버리는 적색 변종 스림.

성벽의 방패를 내세우고 있던 안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죽은 거야?=

=응.=

=헐, 다른 스림들하고 다르네.=

죽었음에도 일반 스림처럼 액체가 되어서 퍼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탱탱볼처럼 탱글거리는 빨간 변종 스림을 장갑 낀 손으로 집어 들어 주머니에 담은 유르파는 보기에도 뿌듯해하는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시작부터 보기 힘든 빨간 하드렉을 얻다니, 기분 좋은걸.=

=흐응? 유리 언니, 방금 그거면 얼마 정도 해?=

=투명성도 높았으니까 5은화 정도 할 거야.=

……내 한쪽 젖가슴만 한 게 5은화?

가격을 들은 안느의 눈에 불이 켜졌다. 이실리테도 마찬가지였다.

=다 잡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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