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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244화 (244/813)

〈 244화 〉 238 교상?上 마을 오울링

* * *

위령제를 끝낸 말빈과 헬리사는 즉시 성주에게 상납할 각종 재물로 채운 마차를 타고 떠났다.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로는 오울링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파르히스트 성주를 알현하는 상경이었다.

=성도에 편입되면 저번 같은 일은 안 생기려나?=

=거 당연한 소릴. 성도 파르히스트 하면 라드세아 중부에서 가장 번성한 상급 도시잖아. 비자룩스라고 해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해.=

=비자룩스하고 거리도 비슷하니까 훨씬 안전해지는 건 사실이겠지.=

마을의 분위기는 좋았다. 세례에 가까운 평온의 파동 난사에 심신이 정화된 덕분이기도 하고 근원적인 공포심인 혼재 발생의 원인이 깨끗하게 사라졌기 때문.

=도령도령. 얼굴에 그림자가 졌는데 새로운 걱정이라도 생겼어?=

주인이 떠난 저택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페이웰 강을 응시하던 환인은 안느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이실리테도 서 있었는데, 둘 다 전투를 상정한 듯 무기와 방어구를 착용 중이었다.

당장 전투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 했는데도 알드헬름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굳이 차려입은 모습이다.

환인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말빈 일행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를 생각 중이었다.”

=마을 출신인 가문의 병력이 함께 갔잖아. 4급 직업자 둘에 전투 훈련을 받은 숙련된 병사 넷이면 마물이나 마수의 습격은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들 중 알드헬름에게 매수된 인간이 없다곤 보장 못해.”

=으엉……?=

=아.=

경악한 안느가 소리쳤다.

=그, 그럼 당장 쫓아가야지! 알드헬름이 말빈을 습격할지도 모르잖아!=

“할 수 있는 대비는 모두 해두었다.”

피식 웃는 환인의 반응에 잠시 멍해졌던 안느는 약간 빨개진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놀래지 마 진짜.=

“괜히 출발 직전까지 숨겼던 게 아니야. 소지품과 상납품의 검사도 끝냈고.”

=그렇구나. 위치 추적 마도구로 쫓아서 습격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안느의 혼잣말에 환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설령 첩자가 있어서 전서구를 날렸다 해도 알드헬름의 손에 소식이 들어갈 즈음에는 말빈 일행은 파르히스트에 도착한 뒤가 되겠지.”

=만약 매수된 인간이 말빈을 해칠 가능성은 없어?=

“그쪽은 헬리사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믿어도 되겠지.”

나름대로 최악의 가정이 무엇일까 생각해본 이실리테가 조심스레 묻는다.

=만약 헬리사가 알드헬름한테 매수된 거라면요……?=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만, 그렇다 해도 헬리사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거다. 내가 건네준 루비 브로치를 가진 말빈이 죽거나 다치면 그것은 시두르와 파르히스트 성주의 체면이 뭉개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루비 브로치는 상급 영혼사인 자신과 파르히스트 성주의 모친의 명예가 걸린 물건이다. 그런걸 가진 말빈을 건드린다는 것은 곧 성도급 도시의 주인과 싸우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럼 뭐가 걱정인 건데?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 다 해놓은 거 같구만.=

“하나의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기지.”

비자룩스와 길이 다르다곤 하나 알드헬름 그자의 행동반경은 알려진 것만 카턴까지다. 거기다 알드헬름의 현재 위치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며, 그 일을 저지르고 약 2년이라는 시간의 텀이 지났다.

파르히스트로 향하는 도중 이쪽으로 오던 알드헬름과 마주칠 가능성은 적다지만 존재한다.

=……그럴 수도 있겠네.=

나름대로 경비대장을 통해 자신이 도착한 이후 마을 사람 중 수상한 거동을 보인 사람은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탐문을 부탁했고 어제부터는 시더에게 마을을 주시하도록 지시를 내렸었다.

그 결과 눈에 띄는 일은 없었다고 연락받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조그맣게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알드헬름 그자가 이런 상황을 정말 예견하지 못했을까, 하고.

자신 같은 존재가 개입한다는 상황까지는 짐작하지 못했겠지만, 말빈이 인근 도시를 찾아가 의탁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을 거 같은데…….

=주인님. 그러면 우리가 말빈 씨를 따라가는 것은 안 됐나요?=

“주어진 정보로 판단했을 때 만약 알드헬름이 움직인다면 이쪽으로 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아. 그래서 마을에 남으신 거네요. 그럼 만약 낮은 쪽 확률이 걸려서 알드헬름이 말빈 씨를 쫓으면 어떻게 해요?=

“그땐 말빈이 즉시 내게 연락할 거다. 연락받으면 우리는 밤낮 가리지 않고 파르히스트로 달려가면 되는 일이지.”

안느는 맹한 얼굴로 거침없이 대답하는 환인을 쳐다보았다.

뭔가, 환인을 만난 이후 살아가는 세계가 변한 느낌이다.

이전까지 그녀가 겪은 나쁜놈은 들판에서 도적질을 일삼거나 물질적인 욕심에 파티의 수익을 살짝 삥땅치거나 미궁에서 사람을 습격하는 살인마,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런데 환인과 함께한 뒤부터는 그런 나쁜 놈들이 귀엽게 보일 일만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7급 호족의 셋째 딸이 미궁에서 사망하고 크라버리의 1급 호족이 미궁에서 쾌락살인 행각을 벌이고 고족이라 할 수 있는 파르히스트의 무사가 크라버리에 매수되어서 이쪽에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질 않나 그 일이 발단되어서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이고 거기다 오울링에서 벌어진 일까지.

자신이 합류하기 전에는 카턴 마을에서 살인사건과 마주했고 혼재도 둘 씩이나 만났다지?

웨이포드에서는 무슨 지역 폭력조직과 결탁한 대형 상단이 녹색 쿠에인 비상을 빼앗으려고 수작질 부리려다가 핵심 주동자를 포함해 10명이나 껍질이 벗겨진 채 죽었고.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면 제정신을 붙잡기 어려울 거 같은데 도령은 머리 괜찮은 건가?

“…….”

자신의 생각을 읽는 듯한 환인의 시선에 히히 어색하게 웃은 안느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음. 그러니까 우리는 도령을 믿고 그 나쁜 놈이 찾아오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7일만 더 머무른다. 일이 벌어진다면 일주일 뒤에 벌어질 확률이 가장 높고, 벌어지지 않는다면 일주일 후 비자룩스를 찾아가면 되니까.”

=거길 찾아가도 돼? 여긴 어쩌고?=

“된다. 7일이면 말빈도 파르히스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을 시간이니까.”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주자 오울링의 하늘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시더의 영혼이 눈에 들어온다.

알몸으로 팔다리가 검붉게 물든 채, 그보다는 희미한 아우라를 몸에 뒤덮은 모습.

마침 확실하게 신용할 수 있는 비수도 손에 들어왔으니 알드헬름이 몸을 사리고 있더라도 암살하는 것은 쉬울 것이다.

=……도령. 혹시 비자룩스에 혼재를 일으킬 생각이야?=

잠시 안느와 이실리테를 바라보던 환인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비자룩스의 영주가 가만히 있다면 일을 크게 키울 생각은 없다. 알드헬름만 암살하고 도시를 빠져나올 거다.”

암살. 영혼사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여자들이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환인은 그런 여자 친구들의 반응에 자신이 혼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신경쓰지 않는군. 악용하지 않을 거라고 날 믿는 건가.’

=아, 맞다. 도령, 유리 언니가 말빈이 준 선물을 다 감정했대.=

“그런가.”

루브이주 가문 저택 2층, 8개의 방 중 조용하고 햇볕이 잘 드는 방을 찾아가 똑똑, 노크하자 외눈 안경을 낀 유르파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서오렴~.=

“감정이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헬리사 씨가 이야기해준 옵션뿐이었어. 부정적이거나 위치 추적 관련 옵션이 부여된 것은 하나도 없었어.=

커튼이 쳐져 포근한 느낌의 빛으로 채워진 방안, 책상 위에 펼쳐진 부여술 작업 도구 사이로 반지 두 개와 귀걸이 하나, 금화 20개가 쌓여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금화도 멀쩡합니까?”

=응. 기초 부여 외에 다른 위상력의 흔적도 없고 깨끗해. 그나저나 이런 옵션은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비싼데, 말빈이 자기한테 생긴 마음의 빚이 크긴 했나봐.=

그 이야기에 루비 브로치를 두 사람에게 주었다고 이야기를 안 한게 생각나 알려주자 유르파가 조금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치운다.

=뭐 그정도면 엇비슷하려나? 일단 이 반지 2개는 둘이 세트야.=

파란색과 보라색 반지를 집어든 유르파가 환인의 손에 올려주며 설명한다.

=이 푸른색 반지는 위상력의 회복을 촉진하고 보라색 반지는 위상력을 충전할 수 있어. 충전한 위상력은 언제든지 원할 때 쓸 수 있고.=

“설명만 들어도 비쌀 것 같군요.”

=맞아. 두 개 세트면 가격이 50금화는 족히 할걸?=

우와, 안느가 작게 탄성을 지르는 것을 들으며 환인도 살짝 놀라 반지를 살펴보았다.

엄지손톱만 한 파란색 보석이 박힌 파란색 반투명한 반지와 비슷한 크기의 보라색 보석이 박힌 보라색 반투명 반지 두 개.

‘파란색 위상석이 위상력 회복 관련이고 보라색이 위상력의 흡수와 방출 관련이었나.’

환인은 불투명성이 높은 반지를 살피다 안쪽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선이 빼곡히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술법 문장이다. 각각의 반지 색으로 명멸하는 문자들. 그리고 사이사이 박힌 깨알 같은 크기의 작은 위상석들.

“반지에 작은 위상석이 많이 박혀있군요.”

=그게 비싼 이유 중에 하나야. 핵심 위상석의 위상 에너지 잔량을 유지해주는 보조 술법 문장이거든. 그 작은 위상석만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면 영구히 쓸 수 있어. 핵심 위상석도 각각 4급이라 효과도 상당한 수준이고.=

“……그 정도 옵션이 50금화입니까?”

4급 위상석은 흔한 색일 경우 7~8금화 정도 한다. 희귀한 색일 경우에는 그 가격이 2배까지 껑충 뛰어오르는 편이다.

위상력 회복과 관련된 위상석은 싯가의 2배를 훌쩍 넘기는게 보통.

반지 두 개에 쓰인 위상석이 합쳐서 30금화 정도라고 하면 기타 보조 위상석과 반지의 소재, 가공비가 전부 해서 20금화란 뜻이 아닌가.

제작자의 등급이 높을수록 브랜드 가치로 인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이 반지 한 쌍이 50금화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애초에 금화로 형성되는 시장 자체가 이해되지 않긴 하지만.

유르파가 웃으며 말했다.

=제작자의 관점에서 상점 판매가로 매긴 게 50금화란 뜻이야. 성도나 주도의 유명 경매장에 내놓으면 80금화? 그쯤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위상력 회복, 보존 관련 마도기는 언제나 희귀하고 큰 인기를 끄는 제품군이니까.=

그렇습니까, 하고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귀걸이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유르파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이 귀걸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진주색 위상석이랑 같은 효과야. 소지자의 기술 위력을 올려주는 마도기. 나머지는 반지랑 동일해. 아마 같은 제작자가 만들었나 봐.=

확실히 반지와 귀걸이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무늬라던가 광택의 질감이라던가.

귀걸이와 반지를 건네받은 환인은 여자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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