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37화 (237/813)

〈 237화 〉 231+ 교상?上 마을 오울링

* * *

=히얏?!=

환인이 기다리는 방으로 넘어간 이실리테는 곧장 그의 팔에 붙잡혀 침대에 눕혀졌다.

=앗, 아읏. 주인님, 잠시만요. 아앙.=

“왜 그러지.”

이실리테의 허리를 감고 그녀의 하얀 쇄골을 입술로 핥던 환인은 다급한 그녀의 목소리에 애무를 멈췄다.

=그, 그게.=

채소를 다듬다가 손도 씻지 않고 그냥 와버렸다고 이 분위기에 어떻게 말할까.

이실리테는 우물거리다가 몸을 버둥거리며 도망가려 했지만, 이유를 눈치챈 환인은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허리에 팔을 감고 성수포를 가져와 손을 직접 닦아주었다.

“말을 하지 그랬나.”

=으웃…….=

창피한지 품 안에서 꼼실거리는 게 마치 밖에서 놀고 온 강아지를 붙잡아 앞발을 닦아주는 느낌이다.

그렇게 손을 깨끗하게 닦아준 환인은 다짜고짜 치마 아래로 손을 넣어 능숙하게 팬티를 벗겨버렸다. 이어 치마의 후크도 풀어서 치마까지 침대 아래로 던져버린다.

“이제 도망가고 싶어도 못 도망가겠지.”

=아으, 주인님…….=

아랫도리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 이실리테는 자신을 원하는듯한 주인님의 행동에 부끄러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이실리테. 봐라.”

그 귀여운 행동에 웃으며 그녀의 보지에 손을 가져다 댄 환인은 손을 들어 손에 한가득 묻은 투명한 액체를 보여주었다.

이실리테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였다.

“손만 닦아주었는데 여기가 왜 이렇게 젖어있는 거지.”

=그, 그게.=

적갈색 음모가 귀엽게 난 그녀의 생식기는 당장 남자를 받아들여도 될 만큼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환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찰박짤박 음란한 물소리가 연신 들려와 이실리테의 수치심을 자극한다.

이실리테는 차마 대답을 못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손을 닦이는 느낌이 마치 보지를 애무 당하는 기분이어서, 주인님의 굵은 손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매만져 주는 게 너무 야해서 젖어버렸다고는 절대 말 못한다.

아무튼, 그 덕분에 전희를 생략한 두 명은 곧바로 본 게임에 들어갔다.

침대에 모로 누워 뒤로 작은 주인님을 받아들이는 이실리테.

작은 주인님이 쑤욱­ 단숨에 뿌리까지 들어오고, 엉덩이에 주인님의 치골이 닿는 것을 느낀 이실리테는 앓는듯한 신음과 함께 엉덩이를 살짝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감상을 입에 담았다.

=흐으으윽… 주, 주인님. 너무 좋아요….=

“이런 슬로우 섹스도 좋은건가.”

=하악….=

아래를 가득 채운 작은 주인님의 존재감에 주인님의 목소리가 고막을 울리니 이실리테는 심장이터질 것만 같았다.

이어 천천히 이어지는 진퇴 운동.

숨이 넘어가고 목이 막혀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그런 쾌감의 극치는 아니었다. 표현하자면 둥실둥실 구름 위를 떠다니고 가슴 속과 자궁이 간질간질한 기분?

이실리테는 어째서 안느가 교성을 크게 지르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쉴 새 없이 성감대를 자극당하고 자궁을 쿵쿵 공격받는 격렬한 교배가 아니라 맞잡은 손에서 체온을 느끼며 때때로 가볍게 자궁과 지스팟을 애무당하는 지극히 부드러운 섹스다.

발가락이 자꾸만 오그라들고 두 다리를 바동거리고 싶지만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억누르면 어떻게든 참아지는 수준.

다만 이러한 행위가 평소의 섹스와 달라 생경한 감각에 이실리테는 평소보다 더 많은 절정을 느꼈다.

억눌린 숨소리, 하반신만 밀착해 비비적거리듯 나누는 사랑의 행위. 아쉬운 점은 서로 마주 보지 못해 주인님의 체취를 맡지 못하는 점일까.

그것만 해결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으극.=

방심한 사이 자궁 입구까지 불쑥 들어온 작은 주인님의 존재에 이실리테는 다시 입을 틀어막고 발가락을 꽈악 움츠렸다.

으응… 시원하게 소리를 내고 싶은데.

뱃속 깊이 들어온 작은 주인님을 보지로 꽉꽉 조여주며 이실리테는 ‘다음번에는 꼭 앞으로 해보자고 부탁해야지.’ 다짐했다.

=하움~.=

혀로 작은 주인님을 깨끗하게 청소해준 이실리테는 정액이 흐르지 않도록 아래를 꽉 조인 뒤 치마만 걸치고 재빨리 옆방으로 넘어갔다.

여관 3층이라고 해도 다른 방이 몇 개 더 있어 누가 볼 수도 있지만, 무릎까지 내려오는 모험가 치마를 입고 있어 대담하게 행동한다.

달칵, 문이 닫히는 걸 본 환인도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돈한 뒤 눈을 감고 훈기의 잔량을 확인했다.

‘모두 회복됐군.’

시작하기 전 비상에게 바람을 먹여 훈기의 잔량이 20%까지 내려갔었는데 그녀들을 품은 덕에 훈기가 다시 100%로 회복됐다.

영혼 구슬이 20개도 채 안 되던 시절, 훈기가 5% 미만까지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땐 80%까지 회복하는 데만 류히를 몇 번이나 안아야 했을 정도였고 그럼에도 이틀인가 걸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전부 안느와 이실리테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안느의 도움이 컸다.

사람당 최대 영기량은 정해져 있으며 그 크기는 대체로 주먹만 한 크기(일반인)에서부터 농구공만 한 크기(직업자)로 갈라진다. 그리고 이 영기가 동전 크기 이하로 떨어지면 그때부터 페널티를 겪기 시작한다.

하복부의 고통과 컨디션 난조, 체온 저하, 신체기능의 하향 등 활동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부작용이다.

때문에 환인은 여자 친구의 영기가 최저한 골프공 이하로 줄어들지 않게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그건 이실리테 뿐이지.’

이실리테는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 더 큰 영기 통을 가지고 있고 회복량도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나지만, 3주간 쉬지 않고 영기를 흡수하면 결국 그녀도 페널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안느는 이런 ‘관리’가 필요 없다.

그녀의 영기는 195cm의 모델 체형인 육체를 거의 한가득 채우고 있다. 아무리 흡수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영기가 흘러나온다.

물론 거구근육헬창 시절일 때와 비교하면 부피가 절반 이하로 감소했으니 영기의 총량이 줄긴 줄었을 거다.

그마저도 2주 전까지의 이야기. 요즘은 그 감소마저도 사라졌다. 이 이상은 줄지 않는다는 것처럼 매일 밤 그녀의 영기를 흡수하고 있지만 총량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환인은 궁금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성관계를 한 달 정도 중단하면 그녀의 신체는 어떻게 될까.

예전의 거구근육헬창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지금의 슬림한 모델 체형이 유지될까.

안느는 부정적으로 보았다.

‘예전의 그 근육 고릴라로 돌아가 버릴 거야. 근거? 내 눈물이 근거야! 그러니까 끝까지 나 책임져줘야 한다?’

그때 안느는 만약 자길 버리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닐 거라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환인은 그녀의 은색 눈동자 속에서 원초적인 두려움을 읽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예전의 끔찍한 몸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

환인은 그녀를 포근히 안아주며 절대 널 떠나지 않고 널 포기하지 않는다고 속삭여주었고 안느는 그런 환인의 품 안에서 안정을 되찾았었다.

아무튼.

컨디션을 점검한 환인은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후드도 회색이 아니라 웨이포드에서 샀던 검은색 후드 망토를 걸친다.

오늘은 달도 초승달이고 구름도 많아 평소보다 어둡다. 여기에 유르파가 만들어준 검은색 마스크까지 은밀히 움직이면 이런 작은 마을의 순찰대와 경비는 절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겠지.

장갑까지 마저 꼈을 때 옆방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여자들이 우르르 건너왔다.

=오, 지금 나가는 거야? 잠깐 기다려. 나도 옷 갈아입고 올게.=

=금방 준비할게요.=

이실리테는 하녀로써 당연한 호위를, 안느는 성불행이라는 것에 큰 호기심을 가지고 나섰지만 환인은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나 혼자 간다.”

=엥? 왜?=

따라올 생각 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안느가 `어째서?` 의아해했지만, 이실리테는 이유를 금방 눈치챘다.

=저희는 은밀 기술이 없으니까…….=

“그래. 조용히 움직일 생각인데 너희를 데리고 가면 은밀에 의미가 없어지지.”

=……나도 은밀 행동 기술을 배울까?=

눈썹을 찡그린 안느의 혼잣말에 이실리테가 비웃는다.

=풉. 걸을 때마다 쿵쿵 땅이 울리는 그 몸무게로 은밀 행동을 배우겠다고?=

=…….=

=앗… 안돼, 오지마. 하지…… 으브븝!=

안느에게 제압당한 이실리테가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잠시 웃은 유르파는 벨트 파우치에서 무난하게 생긴 가죽 토시 한 짝을 꺼내 환인의 팔에 채워주었다.

=휴대용 기척 감소 마도구야. 착용자의 몸 주위에 옅은 막을 쳐서 작은 소음을 줄여 주는 도구니까 자기한테 도움 될 거로 생각해.=

“고맙습니다.”

팔찌를 착용하자마자 묘한 느낌이 몸을 감싼다. 공기로 이루어진 옅은 막을 한 겹 뒤집어쓴 느낌.

=유리 언니. 그거 더 없어? 그거 끼면 우리도 같이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있지만 너희한테는 소용 없을걸? 기척을 줄이는 것도 은밀 기술이 있어야 효과를 보는 거니까.=

그녀가 실망하는 모습에 환인은 일부러 나무 바닥을 밟았다. 삐걱­ 나무가 비명을 지른다. 이번에는 단단한 곳을 밟고 조용히 움직이자 말 그대로 옷깃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고 유령처럼 스륵­ 움직여진다.

=……저래서 우리한테는 소용없다고 한 거구나.=

대충 원리를 확인한 환인은 시무룩해진 안느와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 친구들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최하급 강령을 펼치고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적당한 높이에 몸을 비틀어 여관의 돌벽을 밀어내듯이 차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 낙하 속도를 줄이는 동시에 몸을 회전해 뒤뜰에 착지하니 말 그대로 소음이 거의 나지 않았다.

꾸우?

갑자기 위에서 떨어진 환인을 보곤 비상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쉿.

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부리를 꾹 다무는 비상.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가벼운 몸놀림으로 여관 뒤뜰 담장을 뛰어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소리 없는 그 움직임을 3층에서 지켜보던 유르파는 작게 혀를 내둘렀다.

=자기는 영혼사가 되지 않았다면 암살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네.=

이실리테와 안느도 동감이라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고 감각을 확장한 환인은 커다란 벽처럼 느껴지는 민가 사이사이 통로를 감지하면서 말빈=루브이주의 저택을 향해 움직였다.

‘또 오는군.’

저 앞 골목길에서 누군가 나오는 기척에 환인은 재빨리 담벼락 아래 그늘에 몸을 숨겼다.

자신이 제대로 본 마을은 카턴 마을 하나뿐이다. 그곳의 순찰대도 밤에 마을을 순찰하긴 했지만 여기만큼은 아니었다.

거의 전시戰? 군영의 순찰처럼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병사들을 피해 움직인 환인은 얼마 안 가 목적지로 삼았던 북쪽 벼랑에 도달했다.

높이 20m 정도에 살짝 기울어져있고 울퉁불퉁해서 발을 디딜 곳과 잡을 곳이 많이 보이는 암석 벼랑.

눈앞의 벼랑을 오르면 루브이주 고족 가문의 가문묘가 나온다.

저택을 방문할 때 올랐던 길을 따라가면 편하겠지만, 저택으로 올라갈 때 봤던 감시탑은 물론이고 집 한 채의 창문이 오르막길은 물론 오르막길과 가문묘를 이어주는 돌계단까지 감시하는 방향이라 그곳을 이용하는 것은 무리.

“…….”

환인은 말없이 조용히 벼랑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 꼬리 원숭이의 나무타기 기술을 쓰지 않는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는 게 없지만, 이 정도라면 신체 능력만으로도 등반할 수 있다.

최하급이라지만 1.2배의 신체 강화 효과와 그간 그녀들과 대련해주고 매일같이 체력 단련을 한 덕분에 근력과 체력이 크게 늘었으니까.

순찰 중인 경비병들의 감시 범위에 신경 쓰며 재빨리 벼랑을 기어오른 환인은 후우, 작게 한숨을 쉬면서 주위를 살폈다.

낮지만 돌담도 있고 아래쪽에서는 시야각 때문에 이쪽이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킨 환인은 천천히 두 개의 가문 납골묘 중 왼쪽 계단 근처 납골묘로 움직였다.

“…….”

환인의 시선이 흐리멍덩하게 서 있거나 앉아있는 여섯의 영혼으로 향한다.

묘지 이곳저곳에 웅크리고 있거나 서 있거나 주저앉아있는 여섯 명의 영혼. 나머지 여섯은 어디로 간 걸까.

‘그보다 납골묘지만 영혼들의 의식이 뚜렷하지 않군. 역시 신상이 영혼의 의식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건가.’

환인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목소리를 냈지만 반응하는 영혼은 하나뿐. 노란색 여우귀를 하고 노란 여우 꼬리 2개가 엉덩이 쪽에 난 미망인 느낌의 여자다.

분노와 원한으로 자의식마저 잃은 다른 영혼들과 달리 체념과 한탄이 물씬 풍기는 데다 묘비 하나를 의자처럼 앉아있는 태도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영혼.

환인을 힐끗 바라본 인호족의 여자 영혼은 서쪽 강변의 공동묘지로 다시 눈길을 주며 느릿하게 중얼거린다.

「이상한 사람이네. 아무도 없는 곳에 인사나 하고…….」

“아무도 없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환인이며 정처 없이 유랑하는 영혼사입니다.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환인의 자기소개에 미망인 느낌의 여자 영혼이 눈과 입을 살짝 벌렸다.

=안느. 오늘은 약 먹어야 해.=

=아, 깜빡했다.=

환인이 나간 뒤 잠시 방을 서성이던 안느는 이실리테의 지적에 포켓 아공간 주머니에서 고급스러운 유리 약병을 꺼냈다.

피임 환약. 약사 조합이나 연금술협회에서 제작한 게 아니라 신전에서 제작 판매하는 것으로, 복용하면 자궁 외벽이 일주일가량 코팅되어 착상을 막아주는 환약이다.

먹으면 자궁이 약간 아릿한 느낌이 들지만 몸에 부담이 없어 부호나 고족, 호족들이 애용하는 피임약으로 한 알에 50동화나 하는 고급품.

새끼손톱만 한 녹색 환약 두 알을 꺼내 하나는 이실리테에게 주고 하나는 자기가 꿀꺽 삼킨 안느는 약병을 흔들어보았다.

=아, 약이 몇 개 안 남았네.=

=몇 개 남았는데?=

=6개. 오늘 먹었으니까 4주치 밖에 안돼. 으음, 한 달 안에 교단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이동만 하면 충분하겠지만 주인님이 성불행을 하시면…….=

힘들겠지. 안느가 곤란한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파르히스트를 떠나기 전에 좀 사놨어야 했는데 깜빡했어.=

=그러게.=

거점을 정해서 정착한 것도 아니고 여행 중에 임신하는 것만큼 곤란한 일은 없다. 더욱이 주인님의 아이가 들어섰는데 외과 수술로 떼어내는 일 같은 것은 절대 못 한다.

잠시 생각하던 이실리테는 창틀에 엎드려 머리를 괴고 환인이 언제 오나 기다리던 유르파를 불렀다.

=언니, 언니.=

=응? 왜?=

=혹시 피임약 만들 수 있나요?=

예상 밖의 질문에 눈을 깜빡인 유르파는 상황을 대충 눈치채곤 고개를 젓는다.

=만들 수는 있는데 약제 피임약은 몸에 데미지를 너무 많이 줘서 추천하지 못하겠는걸. 나중에 자기 아이를 품어야 하는 소중한 곳인데 건강하지 못한 자궁은 곤란하지 않겠니?=

자신의 아랫배를 보며 말하는 모습에 이실리테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남은 건 안느 네가 먹어.=

=엥? 이슬이 넌 어쩌려고?=

=솔직히 말씀드리고 잠자리는 피해야지. 네 체질을 생각해봐도, 주인님의 영기 흡수를 생각해봐도 안느 네가 먹는 게 나아.=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양보하는 이실리테를 미안함과 고마움이 강하게 공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안느는 그녀를 포옥 끌어안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마워~. 대신 약 구하면 네가 잠자리 못한만큼 후반부 양보할게!=

=됐어. 잠자리만 양보한다고 했지 다른 건 양보한다고 안 했으니까.=

키 차이로 안느의 가슴에 얼굴을 묻게 된 이실리테지만,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내려놓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좋겠다~. 나도 자기한테 안기고 싶은데. 언제 관찰 기간이 끝나려나.=

유르파가 그런 두 명을 부러워할 때 검은색이 아니라 회색 후드 망토를 둘러쓴 환인이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후드를 벗자 화난 듯한 표정이 드러난다.

잔뜩 찌푸려진 눈썹. 주름이 확실하게 진 미간. 눈빛은 불쾌함이 가득하고 입매는 짜증을 표현한다.

환인이 저토록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은 맹세코 한 번도 본 적 없던 여자들은 깜짝 놀랐다.

불쾌감을 드러내는 방식도 눈썹을 살짝 찡그리는 정도에 그치던 환인이었는데 저렇게 적나라한 표정이라니?

이실리테를 풀어준 안느가 환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도령,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안 좋아.=

“……나간 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들려줄 것이 있다. 유르파, 차음 결계를 부탁합니다.”

=응.=

유르파가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밖에서 들려오던 파도 소리, 여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침대 프레임의 마찰음 등이 단숨에 사라졌다.

이 현상에 ‘차음 결계가 있으면 섹스할 때 소리를 마음껏 내도 괜찮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누군가가 하게 된 것은 그녀들이 음란해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탁, 나무 창문까지 닫은 환인은 창틀에 등을 기대며 카턴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연인이 사주한 불량배들에게 집단강간 당하고 연인에게 잔인하게 난도질당해 죽은 여자 영혼을 성불시킨 일.

그 여자의 정체는 모르지만 여자를 살해한 인호족은 여자의 기억에서 본 것까지.

=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파르히스트에서 합류해 그 전의 이야기는 자세히 모르던 안느와 마찬가지로 이실리테도 그저 검은 영혼을 성불시켰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눈을 크게 떴다.

갈색 인호족 범인.

오울링을 뒤덮고 있는 대량의 살해 피해자 영혼.

잠행을 나갔다 돌아와 분노한 기색을 드러내는 환인.

유르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그 사건이 이 마을이랑 관련이 있다는 거니?=

“예. 이 마을에서 벌어진 대량의 살인 사건은 그자가 저지른 짓으로 판단됩니다. 오울링을 다스리는 루브이주 가문은 이 학살과 관계가 없더군요. 문제는…….”

마악 분노하려던 안느가 멈칫하며 환인의 뒷말을 기다렸다.

“……학살을 저지른 그놈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주변 온도를 2도 정도는 낮추는 듯한, 서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