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36화 (236/813)

〈 236화 〉 230+ 교상?上 마을 오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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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교상?上 마을 오울링

환인의 눈이 인사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인호족을 해체할 듯이 응시한다.

귀족임을 드러내듯 품이 넉넉한 디자인의 고급 의복.

여우 주둥이의 입을 기준으로 콧잔등 위로 뒤덮은 갈색 털은 잘 관리받은 듯 몽실몽실하며 아래턱에서부터 목으로 내려가는 하얀 털은 솜털이 저럴까 싶을 만큼 하늘거려 인상이 무척 선해 보인다.

검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귀 끝과 새까만 코는 여우의 귀여움을 강조하는 방점이었고 여우답지 않게 살짝 처진 눈매는 야비하고 약간 비열해 보이던 다른 인호족들과 자연스럽게 비교되는 수준이었다.

‘……환상에서 본 것보다 어린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다르기도 하고.

고족, 말빈=루브이주를 티 나지 않게 살펴본 환인은 머릿속에 의문을 떠올리며 가벼운 예의를 차렸다.

“일행을 이끌고 세상을 여행 중인 환인입니다. 이쪽은 차례대로 제 여자들인 이실리테, 안느, 유르파.”

환인의 소개에 세 여자가 차례대로 묵례하거나 고개를 까닥이거나 로브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예의를 보인다.

그 인사에 말빈=루브이주가 눈을 반짝이며 환인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토록 아리따우며 강한 아가씨들과 함께 여행 중이시라니, 같은 남자로서 부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세 분과 함께 되었는지 저도 꼭 배우고 싶은 마음이네요.=

“그녀들이 저를 받아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고마울 따름이지요.”

눈을 한차례 끔뻑인 말빈은 곧 환히 웃으며 환인을 추켜세웠다.

=어째서인지 아가씨들이 환인 경을 따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방금 만났지만 환인 경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느껴지네요.=

“어떻게 겸양해야 할지 난감한 말씀이군요.”

환인은 겉보기에 한 치 의심 가지 않는 훈훈한 모습으로 말빈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말빈의 호의를 받으며 응접실에 도착한 뒤로도 그와 칭찬을 주고받으면서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대화의 흐름은 지극히 평범한 환담이었다.

말빈이 환인의 외모를 칭찬하면 환인도 그의 모피를 칭찬했고 말빈이 여자들을 찬양하면 환인은 마을의 풍경과 평화로움을 칭찬했다.

그렇게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던 말빈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환인 경의 말씀이며 품행 예절은 익숙하지 않은 식이지만 무척 절도있게 느껴지네요. 혹시 타국의 이름 높은 가문에 소속되어있으십니까?=

“그저 떠돌아다니는 여행자일 뿐입니다.”

혹시 질문에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은지 생각하며 겸양을 차린 환인은 불현듯 우스워졌다.

한국에서 배우고 익힌 예의를 차렸을 뿐인데 만나는 이마다 귀족이 아니냐고 물으니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조금 궁금해질 지경이다.

이 질문과 대답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신변의 이야기로 화제가 이동했다.

어떤 목적으로 여행 중인지, 어디에서 오는 길인지, 여자 친구들과는 어떻게 만났는지. 말빈=루브이주는 특히 여자 친구들과의 만남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환인은 자신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하는 질문인가 의심했지만 그런 기색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숨기는데 능한 백 년 묵은 여우인가, 아니면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어린 인호족인가.

=이토록 아름다운 분들을 연인으로 맞이하신 것은 역시 모험에서인가요?=

“세상에는 무수한 인연의 실이 복잡하고 어지럽게 꼬여있습니다. 그녀들과 연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꼽자면 말씀대로 역시 모험이겠지요.”

그가 만족할만한 이야기를 적당히 푸는 동시에 말빈=루브이주를 계속 분석한다.

그 결과 차이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여러 개 발견했다.

일단 눈앞의 고족이 연기를 한다는 느낌은 없다. 털의 색도 현 보복 1순위인 검은 여자 영혼의 원수, 마르테와 달리 이쪽이 조금 더 진하다.

환인이 중점적으로 기억한 털의 형태와 패턴, 귀의 모양, 주둥이의 형태도 마르테와 미묘하게 다르다. 키도 이쪽이 좀 더 작고 체격도 가느다랗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인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털색이 다른 것은 염색이라는 방법이 있다. 자기 눈이 완벽한 관찰안도 아니고 상대의 연기를 파악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이름이 다르지만, 가명을 쓴다는 방식도 있고.

어쩌면 본인이 아닌 일가친척일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말이 안 돼.’

카턴 마을에서 사건이 벌어진 지 몇 년이 지났다지만 전문적인 조합의 추적마저 피할 만큼 교활하고 조용히 움직인 놈이다.

그런 놈이 무방비하고 부주의하게 자기 본거지에서 백여 건에 가까운 살인 사건을 저지를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만찬 준비가 끝났고, 환인 일행은 말빈의 안내에 따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을 들며 계속해서 담소를 이어 나간다.

=…그때 도령을 만난 거야.=

안느가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에 흥미진진한 얼굴로 경청하던 말빈이 웃으며 손뼉을 쳤다.

=다른 곳에서 출발한 두 분이 동시에 도시로 들어서며 마주하다니, 그야말로 운명이었군요! 정말 멋진 이야기입니다!=

=나도 그건 정말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뭐, 그때 마주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언젠가 만났겠지만. 그치, 도령?=

“그래. 서로 만나기 위해 파르히스트에 도착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지.”

말빈은 두 사람의 대화에 부러움과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포크와 나이프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부럽기 그지없는 인연입니다. 저도 두 분과 같은 만남으로 반려를 맞이하고 싶어질 정도예요.=

=흐음~. 말빈 양반, 이제 솔직하게 말해봐. 내 얼굴 때문에 우리를 초대한 거지?=

=네? 아…… 하하. 들켜버렸네요. 낮에 마을을 방문하신 성직자님이 1000년에 한 분 뵐까 말까 한 무척 아름다운 분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온통 퍼져서요.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지 꼭 보고 싶은 마음에 그만…….=

=초대해서 잘 대해주고 잘 먹여서 호감을 사려고?=

안느의 장난스러운 지적에 말빈은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이야기 도중 만찬 준비가 완료되어 이동한 식당은 10명은 족히 착석할 수 있는 넓은 곳이었고 길쭉한 식탁에 장만된 요리는 가짓수도 다양했다.

숲과 땅과 물, 세 곳에서 나는 고기와 채소가 아낌없이 사용된 서른 가지가 넘는 요리들.

맛은 이실리테도 감동할 만큼 훌륭했다.

평범한 여행자였다면 이런 대접에 호감을 느끼기 충분한 수준.

=그으, 딱히 그런 건 아니고요. 평소에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초대할만한 모험가님이나 여행자님들이 방문하면 초대를 핑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맛있는 걸 먹는 거죠. 하하하.=

=오? 생각이 깨어있는 도련님이네. 훌륭한걸.=

환인은 안느와 말빈의 대화를 들으며 조긴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조용히 들었다.

음식에 장난질을 했을까 의심하며 영혼 시야로 살펴봤지만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요리의 색계통은 대부분 연녹색으로, 연녹색이 아닌 것도 먹더라도 몸에 지장이 없는 색이었으며 회복에 관련된 유백색의 요리도 존재했을 정도.

“…….”

그리고 식사를 마친 환인 일행은 말빈과 다시 응접실로 자리를 옮겨 차와 술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주로 하는 쪽은 안느와 말빈. 때때로 환인이 이야기를 거들며 이실리테와 유르파는 말없이 조용히 곁을 지키는 수준이다.

안느는 저택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적진에 들어온 것처럼 긴장하고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선천 능력으로 말빈이 하는 말에서 거짓을 이 한 점도 없다는 걸 느꼈는지 경계심을 많이 푼 상태.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면 그것도 나름 이상하게 보일 수 있기에 환인이 의도한 분위기였다.

안느가 붉은 포도주를 마시며 후흐 웃었다.

=차림새만 보면 먹을 걸로 여자를 유혹하려는 모습이었는데, 혹시 당신도 막 부인이 열 명 넘고 그런 난봉꾼 아냐? 인호족은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난봉꾼이 많다고 그러던데 말이야.=

=윽. 우리 종이 그런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요. 저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요.=

=엥? 오울링의 주인이면서?=

이미 다섯 정도는 부인으로 맞이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거 아니냐는 질문에 말빈은 부끄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 저는 작년에 성인이 됐거든요. 첫 결혼은 마음에 맞는 여성분이랑 하고 싶어서…….=

=오? 늦었지만 성인이 된거 축하해. 그보다 당신도 꽤 낭만적이잖아? 첫 아내는 교감을 나눈 여성으로 삼고 싶다니.=

=안느 양도 이해해주시는 겁니까?!=

=그럼~ 나도 30년을 헤맨 끝에 이 사람을 만났는걸?=

이실리테와 같은 소파에서 일어난 안느가 환인의 1인용 소파 팔걸이에 앉아 환인의 목을 살짝 끌어안으며 웃는다.

이 남자를 사랑한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 행동에 말빈은 작은 탄성과 함께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지인들은 다들 이런 저를 바보 같다며 비웃었어요. 그런데 안느 양처럼 곱고 아름다운 분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까… 용기가 나네요!=

“…….”

환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말빈을 예의 주시했지만 좀처럼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마법 같은 일이 많은 니오네브레스다. 의심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의심이 들고 의심을 반박하자면 전부 다 반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심의 저울은 눈앞의 말빈=루브이주가 결백하다는 쪽으로 기우는 중.

하지만 저택에서 눈치챈 한 가지 사실이 환인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어 결백하다는 쪽에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확인은 다른 방식으로 해야겠군.’

그게 어떠한 이유 때문인가에 따라 환인의 행동은 전과 후로 확연히 나뉠 것이다.

말빈=루브이주는 환인 일행이 저택에 머물렀으면 했고 실제로도 권유했지만, 환인은 정중히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저녁 만찬만으로도 자신들은 정말 만족했으며 이 이상의 향응은 종교상의 이유로 살짝 곤란하다 했더니 만능의 핑계답게 말빈은 굉장히 아쉬워하면서도 수긍했던 것.

달빛이 은은히 비추는 거리.

밀려와 섬의 벼랑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민가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그리고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여관으로 돌아오자 떠들썩한 소음이 일행을 반겼다.

“…….”

딱히 수상하다거나 이상한 시선은 없다.

3층의 객실로 들어와 문을 닫으니 소음이 꽤 차단되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인기척이 전달된다.

아래층 객실의 말소리. 쿵쿵거리는 진동과 가끔 들려오는 괴성에 가까운 소리들.

잠재적으로 환인과 이실리테의 방으로 정해진 객실로 들어오자마자 유르파가 손가락을 딱­ 튕겨 빛을 만들어냈다.

어두컴컴하던 객실 내부가 환히 밝아지고, 안느가 끄응~ 답답한 신음을 내면서 제복 상의를 곧장 벗어 던졌다.

=후아.=

제복을 입고 있을 땐 절벽이던 몸매에 소담스럽지만 탐스러운 젖무덤이 출현한 걸 본 유르파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안느 아가씨. 옷이 너무 꽉 끼는 거 아니니?=

=동족들 체형으로 양산된 것들이라 그래. 내가 이래 봬도 동족들 사이에서는 거유라서 어쩔 수 없네.=

흐흥, 웃으며 밑가슴을 손으로 받치고 위아래로 살짝 흔들자 얇은 셔츠 너머로 젖무덤의 율동적인 움직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저질스런 행동에 유르파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안느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이실리테가 환인이 옷을 갈아입는데 옆에서 시중을 드는 것을 구경하며 물었다.

=근데 도령 있잖아. 도령도 믿는 종교가 있었어?=

“모태 신앙이 있긴 하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어? 왜?=

모태 신앙은 이 세계에도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설마 그러고도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지 여자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신이 실재하는 세상에서 무신론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 환인은 옷을 갈아입는 척하며 대충 넘어갔다.

=신도 믿지 않으면서 종교를 핑계 대다니, 그러면 벌 받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것보다, 저택에서 무언가 느낀 점이 있나. 사소한 거라도 괜찮다.”

이실리테가 먼저 대답했다.

=저택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어요.=

=어. 저택을 관리하는 사용인은 느껴지는데 정작 사는 사람이 없는 거 같더라. 근래에 사용한 감이 엄청 적다고 해야 하나.=

=으응. 말빈 루브이주는 이제 갓 성인인데 벌써 주인을 이어받은 것도 놀라웠어. 보통 연륜이 생겼을 때 이어받거나 물려주기 마련인데 말이야.=

“그 외에는?”

옷을 다 갈아입고 창가로 걸어간 환인은 나무 창문을 열고 아래 마굿간을 내려다보았다. 마침 마굿간 밖에서 서성이던 비상이 그런 환인을 발견하곤 날개를 파닥거리며 큐삣! 운다.

유르파는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허리를 끌어안는 안느의 팔에 손을 얹으며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결혼에 되게 관심이 커 보이지 않았니? 마치 피를 잇는 게 급한 거처럼 말이야.=

=확실히…… 말빈이 나랑 이슬이를 보는 눈빛이 뜨거웠어. 도령의 소개말이 없었으면 틀림없이 들이댔을걸?=

=음. 제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빈이란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안 보였어요.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아무리 착한 척해도 그, 보이지 않는 느낌이라는 게 있는데…….=

=이슬이 말대로야. 진실의 주시자로 쭉 지켜봤는데 말에 거짓말도 섞지 않고 줄곧 솔직하더라. 수십 명을 죽이고 멀쩡한 척하는 나쁜 놈은 아녔어.=

=그래도 눈빛은 좀 기분 나빴지만=

이실리테의 떨떠름한 대답에 유르파가 킥킥 웃었다.

=아가씨들을 보는 눈이 꼭 첫사랑을 보는 소년 같던걸.=

=기분 나쁘니까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해요.=

환인의 옷을 고급 옷을 가지런히 정리한 이실리테가 눈썹을 살짝 찡그린다. 그때 안느가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러고 보니 도령이 유령 엄청 많다고 했잖아. 저택 아래 벼랑에 가문 묘에 열둘이나 되는 유령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그 유령이 말빈의 가족들 아닐까?=

=으응? 그건 일족이 다 죽었다는 이야기니?=

여자 친구들의 시선에 환인은 창틀에 허리를 기대고 서서 말했다.

“그에 관한 확인은 잠시 후에 할 생각이다. 그리고 안느, 유령과 영혼은 엄연히 다른 존재이니 언급할 때 확실히 분간해서 입에 담도록 해라.”

이 세상에서 유령은 주로 실체가 없는 허깨비 등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이고 영혼은 육체에 깃들어 생명과 마음의 작용을 맡는 비물질적인 실체로 여겨진다.

이엘카타가 알려준 이야기다.

영혼사와 영혼사를 따르는 무리 앞에서 유령과 영혼을 혼용하거나 하면 경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자 세 여자는 미처 몰랐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마땅히 훈련을 할 만한 장소도 없고 주위에 보는 눈도 많으니 오늘 저녁 훈련은 넘어가지. 다들 편히 쉬도록.”

그 후 여관이라는 장소의 문제로 저녁 훈련을 건너뛴 여자들은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유르파는 옆방으로 건너가 마도구 제작을 시작했고 이실리테도 함께 넘어가서 야영할 때 사용할 식자재를 다듬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안느는 환인이 정신 집중과 명상, 영혼 구슬 핸들링에 감각 확장 훈련까지 하는 것을 옆에서 구경했다.

‘어쩜 저렇게 시간을 알뜰살뜰 쪼개 쓰는 걸까.’

저 정도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족히 두 배는 더 열심히 살아가는 수준이다. 도령이 저렇게 강한 이유는 혹시 짧은 수명만큼 열심히 살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침대에 앉아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던 안느는 훈련을 끝마친 환인이 방을 나가는 걸 보다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뭔가 저녁 훈련을 건너뛰니 몸이 근질근질하는 기분이네. 맨몸 신체 단련은 의미가 없고…….

큐삣!

[다른 사람도 있으니 조용히 해라.]

쿠우? 쿠쿳.

[그래. 바람을…….]

비상이한테 바람 먹이러 간 건가. 나도 따라 내려갈 걸 그랬나?

심심해하며 10분 정도 침대 위를 뒹굴뒹굴하던 안느는 돌아온 환인이 갑자기 웃옷을 벗는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당히 근육이 들어찬 보기 좋은 상반신에 눈을 준 것도 잠시, 환인이 작게 웃으며 다가오는 것을 본 안느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모으고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뺨을 붉혔다.

=어, 도령? 지, 지금 하게?=

“그래. 밤에 나갈 생각이니 그전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군.”

=아흣. 도…령도 참…… 으응.=

옷 안으로 들어와 서슴없이 젖가슴을 주무르는 환인의 손길에 강한 자극을 느낀 안느는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방심하면 목소리가 크게 날 것 같은 기분.

‘여기 방음이 영 부실하던데. 신음을 참을 수 있을까?’

이슬이나 유리 언니에게 들려주는 건 상관없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신음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뭔가 싫은 안느였다.

그런 기색을 읽은 환인은 그녀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치골에만 살짝 난 은색 털을 보스락거리며 말했다.

“상냥하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응… 정말이지? 내 신음을 생판 남이 듣는 건 싫어. 여긴 방음이 안 좋은 거 같으니까… 강하게 하면 안 된다?=

“그래. 하지만 그만큼 기분 좋지는 않을 거다.”

=킥킥. 그런 건 상관없어. 난 도령이 안아만 줘도 행복하니까.=

환인이 보지를 한결 만지기 쉽게 허벅지를 벌려준 안느는 손을 뻗어 키스해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그러자 척하면 척하듯 자신의 뒷목을 감싸며 입을 맞춰주는 환인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안느였다.

혀를 교환하자 입안이 화­ 해지는 느낌. 나간 김에 성수로 양치까지 하고 왔나 보다. 난 양치 안 했는데… 냄새 안 나려나? 요즘 채식만 했으니까 괜찮을거 같기도 하고?

자신의 골짜기 안으로 들어와 음핵을 가볍게 터치하는 손길에 짜릿함을 느낀 안느는 움찔, 허벅지를 모으며 눈썹을 관능적으로 찡그렸다.

하으, 짧은 신음을 입안에 가두고 자기 몸을 뒤덮다시피 한 환인을 끌어안으며 더욱더 강하게 그의 입술과 혀를 탐한다.

그가 자기 옷을 벗기는 것을 호응해준 안느는 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젖무덤을 베어 무는 걸 보며 으응, 작게 콧숨을 흘렸다.

=빨리고 깨물리는 것은 젖꼭지인데 왜 다리 사이가 찌릿찌릿한 거지?=

“전신의 성감대는 이곳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지.”

=응긋.=

푸욱­ 보지 속으로 들어온 손가락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던 안느는 프히히 웃으며 애정이 깃든 눈빛으로 자신의 가슴을 빠는 환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보지 속에서 꾸물거리는 손가락에 집중하며 할딱이던 안느는 그가 손을 쓰기 쉽게 허벅지를 벌려주며 환인의 귀에 속삭였다.

=도려엉, 그거 알아…?=

“음?”

=식목화한 몸은 체질이 본격적으로 변해서 배변 활동도 안 하게 되거덩…. 그때가 되면 엉덩이 구멍으로도 할 수 있다?=

“지금도 할 수 있다만.”

=그건 안돼. 더럽단 말이야…. 으힝? 아잇, 손대지 마! 건드리면 안돼!=

항문의 주름을 건드리는 손길에 질겁한 안느가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난리를 피운다.

그런 그녀의 무릎과 발끝에 얻어맞은 환인이 윽, 작게 신음을 흘리며 황급히 달랬다.

“안 할 테니까 그만. 얌전히 있어.”

씩씩거리던 안느는 콱, 환인의 머리를 가슴에 강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무튼, 식목화하면 여러 가지로 바뀐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기대해.=

“어떻게 바뀔지 기대되는데…….”

=앗, 아응…….=

아래로 내려간 환인이 자신의 조개를 핥는 느낌에 안느는 본격적으로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허리를 꿈틀거렸다.

가랑이 사이가 점차 뜨거워져 간다…….

=……?=

채소를 손질하던 이실리테가 여자의 신음을 들은 것은 순전히 그 신음이 귀에 익어서였다.

밤이 되자 파도 소리가 더욱 선명해졌기에 어지간한 생활 소음은 그 파도 소리에 파묻혔는데도 들려오는 여자의 교성에 가까운 흐느낌.

시선이 저절로 벽 너머 옆방으로 향했다. 왠지 주인님과 안느가 침대 위에 포개어져 있는 게 보이는 기분이다.

‘오늘은 조금 일찍 시작하셨네. 밤에 나가신다고 하셔서 그런가.’

아, 또 들렸다.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건지 소리가 작고 뭉개져 있다. 이실리테는 옆에서 무언가 설계도 같은 것을 그리는 유르파를 힐끔거렸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옆방에서 시작된 열락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다.

이실리테는 채소 뿌리를 다듬으며 여행 중 밤에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미궁을 탐사할 때와 다르게 유르파가 있었고, 유르파는 아직까지 관찰 기간이라는 이유로 환인과 몸을 섞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배려해 불침번 교대 시간에 몰래 환인과 몰래 몸을 섞은 이실리테와 안느였다.

불편한 야외에서 살짝, 그것도 한 번만 하는 것은 여러모로 감질났었지.

귀를 쫑긋 세워 옆방의 기척을 느끼려 했지만, 방음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걸 안느도 알고 있는지 신음이나 교성은 거의 안 들린다.

이만큼이나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무척이나 부드럽고 상냥한 섹스를 하고 있을 거다.

=…….=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허벅지 사이가 근질거리고 아랫배가 두근거리는 기분이라 이실리테는 채소 다듬기에 좀 더 집중했다.

그렇게 40분가량 지났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왠지 발개진 얼굴과 살짝 흐트러진 옷차림의 안느가 호다닥 들어와 문을 닫는다.

문에 기대고 서 있는 그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니 안느는 어색하게 웃으며 마도기 제작에 몰두 중인 유르파를 힐끔 보곤 이실리테의 귀에 속삭였다.

=이슬아, 도령이 건너오래.=

=아, 응.=

무슨 일로 건너오라는 것인지 명백한 상황.

이실리테는 기대감에 몸이 살짝 붕 뜨는 걸 느끼며 재빨리 다듬던 채소를 보존 주머니에 쓸어 담고 정리한 뒤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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