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31화 (231/813)

〈 231화 〉 225 오울링으로 가는 길

* * *

=뭐?!=

=정말!?=

상대방의 수명을 늘려주는 능력이라는 이야기에 크게 놀라는 이실리테와 유르파. 그러나 환인의 눈빛은 깊어졌다.

안느가 자신에게 해가 될만한 일을 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나무 인간으로 만들려는 건 아닐까, 낮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안느가 저리 말할 정도면 수명을 1~2년 늘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리턴이 있다면 당연히 리스크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수명을 늘린다는 하이 리턴에 걸맞은 하이 리스크는 환인의 생각에 어느 SF 영화에 등장했던 나무 인간 같은 것뿐.

=역시 도령은 안 놀라네.=

“……내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여서 그렇지 놀라고는 있다.”

=흐흐. 아무튼, 이 선천 능력은 플뢰라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인데? 말만 하렴. 언니가 모든 능력을 다 써서라도 도와줄 테니까!=

=나도 도울게. 음식과 관련된 거면,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도와줄게.=

두 여자의 전면적인 협조 선언에 안느가 히히 웃는다. 역시 나만 도령이 일찍 죽는 걸 신경 쓰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

=하나는 플뢰 족 중에서도 고대의 피가 짙은 사람일 것, 다른 하나는 직업자로서 높은 등급에 오른 사람일 것. 이 두 가지야. 두 가지 다 해당하지 않아도 할 수는 있지만 그 효과가 크지 않아. 둘 다 해당되면 효과도 커지고 가능성도 커져. 그리고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플뢰가 인정한 반려뿐이야.=

“그게 채식하는 이유와 상관이 있는 건가.”

=응. 고기에 들어있는 성분을 멀리하고 채소와 과일에 든 성분만 계속 받아들이다 보면 플뢰의 몸은 일종의 여과기가 돼.=

“…….”

=그렇게 몸이 여과기가 되면 그때부터 대자연의 기운이 풍부한 것을 먹고 정화해서 체외로 정수를 배출하는데, 그 정수가 하나의 꽃을 피우는 데 필수이자 전부야. 그리고 그 정수로 키운 특정 꽃의 잎이랑 열매를 특수하게 연단 해서 만든 약을 먹으면 먹은 사람의 수명이 여과 기능을 한 플뢰의 수명만큼 늘어나. 물론 그냥 먹어도 수명이 늘어나긴 하지만 꽃잎 한 장에 몇 년, 열매 한 알에 몇 년 이 정도니까 연단 해서 먹는 게 가장 좋아.=

=어머나…….=

유르파의 얼굴이 여심을 자극받은 것처럼 살짝 발그레해진다. 그건 말 그대로 사랑하는 님을 위해 몸으로 만들어내는 사랑의 영약이 아닌가.

이실리테도 뺨을 살짝 붉히며 물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널리 알려질 법도 한데 왜 알려지지 않았어?=

=일단 이건 플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상대, 그것도 동족이 아니라 이종족이 상대일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거든. 그리고 약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도 그 플뢰가 사랑하는 상대 한 명뿐이고. 그래서 플뢰의 피가 옅은 일반인들은 모르는 거야.=

“특이하군.”

=그치? 나도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런 능력을 쓸 일이 있을까 생각했어.=

그 꽃을 키우는 방법도 조금 손이 많이 간다.

낮에는 햇빛을 가려주고 밤에는 달빛을 받게 해줘야 하며 매일매일 그 정수를 꽃에 뿌려주어야 한다. 이걸 100일 동안 반복해야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고.

=알려지지 않을 법한 능력이네. 플뢰는 애초에 타 종족이랑 결혼을 거의 안 하잖아. 게다가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니까 강제하거나 할 수도 없을 테고.=

=으응. 되게 낭만적인 능력이야. 종족과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 시작은 달라도 같은 끝을 맞이하게 해주는 능력이라니…… 하아.=

뺨을 감싸 쥐고 달뜬 한숨을 내쉬는 유르파에게 웃어준 안느는 틀어 올려 묶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다만 문제인 게, 내가 육류를 섭취한 지 좀 오래됐거든? 길면 몇 년, 짧아도 수개월은 꾸준히 채식하면서 몸 안에 있는 고기의 성분을 모두 내보내야 해. 그리고 채소랑 과일도 정갈하고 깨끗하고 신선한 걸 계속 먹어야 하고.=

고생이 될 거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이실리테는 누구보다 불타는 눈으로 안느의 두손을 꼭 잡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내 역량을 모두 동원해서 네가 신선한 채소랑 과일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요리해줄게.=

유르파도 마찬가지였다. 이실리테와 안느가 붙잡고 있는 손을 옆에서 잡으며 강하게 다짐한다.

=언니를 믿으렴. 매일 신선한 채소랑 과일을 잔뜩 먹을 수 있게 강력한 보존 효과를 지닌 가방을 만들 테니까. 그리고 나, 연금술이랑 약제술에도 조금 자신 있거든? 실력을 더 키울 테니까!=

세 여자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것은 남자 친구인 환인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세 여자 친구의 불타는 시선, 널 반드시 무병장수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뜨거운 눈빛에 환인은 드물게 곤혹을 느꼈다.

내가 오래 못 사는 게 그렇게 싫었던 건가.

환인은 잠시 그녀들의 시선을 받다가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것을 물었다.

“그 약을 먹으면 나무 인간이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여자 친구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안느의 식단 조절은 그날 바로 진행되었다.

두 달 전, 이실리테는 환인에게 모든 식단, 식자재 관리를 일임받으며 1금화를 식비로 하사받았다.

그후 파르히스트 시장을 돌아다니며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와 채소, 과일을 듬뿍 사서 하루 세 끼 진수성찬을 차렸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환인 일행이 하루 소비하는 식사량은 하루에 약 45인분.

환인이 하루 세끼, 매 끼니 약 3인분씩 하루 9인분을 먹으며 비상이 15인분, 이실리테가 5인분, 안느가 4인분, 유르파, 쿠르티, 쿠핀, 쿠라가 각각 3인분씩을 먹는다.

덕분에 하루 식비가 30동화씩은 지출되었다.

일반 5인 가정(하루 2끼)의 한 달 식비가 70동화를 오락가락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양.

식자재를 대량으로 사며 이런저런 할인과 서비스를 받은 덕분에 30동화만 나간 거지, 아니였다면 40동화는 나가지 않았을까.

덕분에 이실리테의 요리 솜씨는 일취월장해서 식비를 절약하는 방법과 요리 실력이 늘었고 식재료를 다루는 기술도 늘었다.

그렇게 늘어난 기술 덕에 식재료를 보관해두는 가방에는 이실리테가 엄선한 싱싱한 채소와 과일, 고기가 한가득 들어있었는데 그중 채소와 과일의 적지 않은 비율이 안느의 몫으로 재분배되었다.

=다음 마을에서 채소랑 과일의 비율을 늘려야겠어요.=

=지금은 부족하지 않니? 나도 고기 먹으면 되니까 만약 부족하면 내 몫의 채소랑 과일을 안느한테 줘도 돼.=

=……미안해요, 언니. 오울링에 도착할 때까지만 참아주세요.=

=괜찮아~.=

주인님이 드실 식사에서 채소를 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안느가 먹을 것을 줄일 수는 없으니 자신과 유르파의 몫을 모두 안느에게 밀어주고 비상이의 채소와 과일 양도 좀 줄여서 안느 몫으로 빼야 한다.

타닥, 타닥­ 모닥불 장작 타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밤하늘의 선명한 은하수를 구경하며 뜨거운 커피를 즐기던 환인이 물었다.

“이실리테. 식비는 얼마나 남았지.”

=식재료비와 향신료, 조미료 구매로 70일동안 21은화를 썼어요. 79은화가 남았어요.=

두 달 동안 거의 2천만 원을 식비로 썼다는 이야기에 환인은 짧게 계산을 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과 비상의 식사량이 많다. 둘이서 하루에 25인분 가까이 먹으니 이건 일반 4인 가정의 2~3일치 양이다. 식재료가 고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주일 치나 다름없을 지경.

싸게 끼니를 때우고자 하면 식품의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싼 만큼 지출을 1/3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간 식품의 질이 현격히 떨어질 수 있고 영양 불균형이 올 수도 있는 일.

“식비는 아끼지 말고. 식비가 떨어질 것 같으면 바로 말하도록.”

=네, 주인님.=

식비를 아끼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직은 사치스러운 요리 재료를 쓸 때는 아니다. 하루 1금화의 수익이 날 정도는 되어야 환상의 요리 재료라는 것을 쓸 수 있겠지.

환인을 흉내내 용돈으로 마련한 수첩을 펼친 이실리테는 가계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안느는 고기를 많이 안 먹으니까 고기 양을 줄일 필요는 없고…… 채소랑 과일은 20%정도 더 늘리면 되려나?

가계부를 들여다보는 이실리테에게서 시선을 돌린 환인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명상 중인 안느를 바라보았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눈을 감은 채 집중하고 있는 은발의 아름다운 플뢰. 모닥불의 불빛에 노란색으로 물든 안색이 평온해 보인다.

그 모습을 응시하고 있던 환인은 잠시 후 눈을 뜬 안느와 시선이 마주쳤다.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오른다.

=뭐 궁금한 거 있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도 괜찮아. 마음 넓은 여자 친구는 무엇이든 들어 줄 테니까!=

장난이지만 반쯤은 진심이 담긴 이야기에 작게 웃은 환인은 그 장난에 응했다.

“안느, 너는 정액 먹는 걸 좋아하지.”

=으, 응?=

“정액도 성분을 보면 일종의 육식과 다름없을 텐데, 윗입으로든 아랫입으로든 그걸 먹는 것은 괜찮은 건가.”

허를 찔렸다는 듯이 안느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지면서 당황한 듯한 몸짓을 보였다.

실제로 안느는 4번을 사정하면 2번은 자기 입으로 받아낸다. 말도 안 되게 엄청난 풍미가 있어 중독된다던가.

몸을 섞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정액을 받아먹은 입으로 키스하려 해서 환인을 곤혹스럽게 했었고, 환인이 곤혹스러워하는 걸 눈치채고 그걸로 장난치려다 환인에게 꿀밤을 맞은 뒤에는 자제하게 됐지만 아무튼.

=어, 어어. 괜찮… 응. 괜찮다고 생각해. 고기를 입에 가져갈 때면 특유의 느낌이 있거든. 근데 도령의 그…으걸 먹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런 거면 다행이군.”

=솔직히 고기를 간단히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도령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령의 정…액 덕분이기도 해. 고기를 안 먹어도 그걸 먹으면 식도락의 욕구가 굉장히 충족되거든.=

그때 모닥불 근처에서 간이 탁자를 펼쳐놓고 무언가를 설계하던 유르파가 끼어들었다.

=자기의 정액이 그렇게 맛있니?=

=응. 진짜 맛있어. 언니는 못 먹어 봤어?=

=먹어보기야 했지만…….=

환인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리는 유르파를 향해 고개를 갸웃한 안느가 물었다.

=다른 남자들 건 안 그래?=

안느의 반문에 찔끔하면서 다시 환인의 눈치를 살핀 유르파가 고개를 젓는다.

=남자가 좋아하니까 먹어준다는 여자는 봤어도 맛있다는 여자는 못 봤는데. 이슬이 아가씨는 어떠니?=

=네? 아, 저… 저도 주인님 것을 먹는 건 좋아하지만 맛은… 잘 모르겠어요.=

=음……. 야한 소설에서 보면 맛있어 죽겠다는 묘사는 거의 없었으니까 다 똑같겠지 뭐.=

안느의 태평한 소리에 유르파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느 아가씨, 앞으로 야한 소설 금지.=

=엥? 나 그거 끊은 지 오래되긴 했지만…… 갑자기 왜?=

=야한 소설로 얻은 지식도 우리말고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거 금지야. 그게 얼마나 그릇된 지식을 주는지 안느 아가씨도 이제 알 때 되지 않았니?=

=…….=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일부는 도령도 좋아했는데. 한참 박히던 중에 양손으로 브이 하면서 혀를 쭉 내밀고 흐헤헤 웃는 거나 도령 자지즙 너무 좋아~ 같은 말 하는 거.

안느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수긍하지 못한 눈치를 보이자 유르파가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한건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그거, 도령이 좋아서 웃은게 아니라 어처구니없어서 웃었다는데 1금화 걸 수 있어.=

=엑. 진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돌아보는 안느의 시선을 환인이 피하자 판타지 소설의 엘프와 흡사한 귀가 축 늘어진다.

=안느 아가씨는 어디 이야기 속 플뢰 공주님처럼 아름답고 고아하게 생겼단 말야. 그런 얼굴로 저질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하는게 얼마나 부조화한 지 아니?=

=…….=

시무룩해지는 안느의 뒷모습에 환인이 작게 웃으며 안느의 편을 들어준다.

“괜찮습니다. 저런 공주님 같은 얼굴로 자지 즙이 좋다고 하거나 보지가 기뻐서 울고 있다고 하는 걸 들으면 재미있으니까요.”

=와아, 얼굴이 아까워…….=

=깬다….=

빨개진 얼굴로 이실리테와 유르파에게 나뭇가지를 집어 던지는 안느였다.

비상의 옆구리에 등을 기댄 채 불침번을 서던 환인은 정신 집중과 명상, 영혼 구슬의 핸들링 훈련을 하던 도중 자신의 감각이 또다시 한층 더 예리하고 예민해진 것을 알아차렸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평소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 꽤 신기한 느낌으로 세상이 변한다.

2m 안쪽은 쿠알을 강령했을때 정도는 아니지만 꽤 선명하게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평범한 모습에 강도가 약한 모자이크를 씌워놓은 느낌이다.

2m부터 5m까지는 야간 투시경으로 보는 것처럼 울긋불긋하게 대상이 느껴진다. 5m부터 그 너머, 대략 30m까지는 두루뭉술하지만 저게 어떤 건지, 동물인지 식물인지,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낮에 쿠알의 영혼을 강령해서인가.’

쿠알의 강령 효과는 민첩 위주 상승과 기술로 감각 증폭이었다.

눈을 감으면 두통이 생길 정도로 반경 십수 미터 안쪽이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 모두 파악될 정도로 기감이 예리해졌다.

그 기술이 이런 식으로 변화한 거겠지. 감각 확장이라고 하면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용한 기술은 아니군.’

영혼 시야가 없다면 밤에 불침번을 설 때 꽤 유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 시야가 있는 만큼 색적은 큰 어려움이 없다. 감각 확장이 땅속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미궁의 벽 너머도 못 보지 않을까.

그때 환인의 감각 범위 안에 새로운 생물이 나타났다. 아니, 생물이 아니라 무생물과 흡사한데 생물처럼 꼬물거리며 움직인다.

키는 20cm 정도. 거리는…… 28m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영혼 시야를 켜 그쪽을 보자 총천연색으로 물든 회백색 세상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사이에 하나, 어둠과 동화된 듯이 꼬물거리는 작은 사람 그림자.

하급 어둠의 정령이다.

“비상.”

……꾸우?

자신이 불침번을 설 때면 같이 깨어있던 비상이 환인의 작은 부름에 고개를 돌린다.

“잠시 저쪽에 다녀오마. 뭔가가 접근하면 그녀들을 깨워라.”

쿳.

모포를 내려놓은 환인은 이제 숙달된 은밀 기술을 이용,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꼬물거리는 하급 어둠의 정령을 향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소리 없이, 어디를 밟으면 소리가 안 나고 어딜 밟으면 소리가 크게 나는지 본능적으로 감지하며 소리가 덜 나는 곳으로만 이동하던 환인은 얼마 안 가 하급 어둠의 정령이 뭘 하는 중인지 볼 수 있었다.

‘저건…….’

풀과 작은 바위 사이 틈. 하급 어둠의 정령은 그 틈새에 조막만 한 팔을 집어넣었다가 주먹을 쥐고 빼내서는 입에 가져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바위틈의 무언가를 꺼내먹는 듯한 동작.

먹는 데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환인이 가까워져 감에도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바위 틈새에 손을 집어넣었다 빼길 반복하고 있다.

「마시땅~.」

맛있다니. 정말로 무언가를 먹고 있었군.

강제력이 확실하게 통하는 곳에서 멈춰선 환인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하급 어둠의 정령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도중에 중단당하면 당연히 기분 나쁠 테니까.

중간중간 맛있다느니, 행복하다느니, 혼잣말하는 것을 들어주다 보니 환인의 머릿속에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나는 마력 방출 기관도 없는데 어떻게 정령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정령어를 듣는 데는 딱히 조건이 필요 없는 건가 아니면…….

잠시 고찰하는 사이 어둠의 정령의 반복 행동이 멈추었다.

「에이…… 벌써 다묵엇네.」

바위틈에 뭐가 있길래. 아무튼 어둠의 정령이 반감을 품지 않도록 다 먹길 기다려준 환인은 그대로 강제력을 발현했다.

“이리 와라.”

「흐걍?!」

환인의 강제력에 어둠의 정령은 깜짝 놀라 허우적거리며 끌려오다가 영혼 구슬로 변해 왼손을 뒤덮은 빛의 건틀릿으로 들어왔다.

빛의 건틀릿으로 시선을 주자 방금 갈무리한 하급 어둠의 정령의 특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영혼 구슬 유지 시간 56시간. 저주 시 시야 봉쇄.

아닌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생명체는 시야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환인 자신이라면 전투 중 갑자기 시야가 막히더라도 기척 감지와 감각 확장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만, 평범한 직업자나 일반인이라면 사망은 기정사실이 된다.

‘유지 시간이 다 될 때까지 핸들링하다가 마지막에 저주를 걸어봐야겠군.’

정령들의 이전 반응을 보면 강령도, 저주도, 핸들링도 무척이나 재미있어했다. 그러니 56시간 동안 열심히 놀아주면 반감이 꽤 줄어들지 않을까. 어쩌면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좋은 소문을 퍼트릴 수도 있고.

곧장 어둠의 정령으로 만든 영혼 구슬을 핸들링하기 시작한다.

「흐이야앙~ 으히헤헤헿~.」

‘역시 좋아하는군.’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환인은 핸들링을 유지하며 야영지로 걸음을 옮겼다.

야영지가 가까워지니 비상이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게 모닥불의 불빛에 비쳐 보인다.

자리로 돌아와 모닥불에 장작과 나뭇가지를 더 넣고 비상에게 등을 기대자 비상이 환인의 다리 위로 고개를 내린다.

모닥불 소리와 풀벌레 소리, 정령의 웃음소리가 밤과 함께 흘러간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