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217 성도 파르히스트
* * *
다음날, 평소의 아침 일과(체력단련대련식사)를 끝낸 일행은 각자 맡은 일과 개인적인 용무를 해결하러 외출했다.
환인이 조금 의아했던 것은 이실리테, 안느, 유르파 셋이 사이좋게 집을 나선 것이었다.
‘유르파도 생각보다 빠르게 일행에 녹아들었군.’
회사의 노예이던 시절 그가 무탈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정확한 눈치였다.
누구와 누가 사이좋고 사이 나쁜지, 오늘 누구의 기분이 어떤지, 누가 오늘 무엇을 하려 하는지 등등.
그 눈치는 세 명이 거짓 없이 친한 사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무엇이 그녀들로 하여금 사이좋게 지내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게 한 남자를 여자 셋이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환경이 지구와 다르다고 해도…….”
루크랑 종족의 생활방식은 여러모로 지구인과 흡사한 면이 많다. 그리고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건 곧 사고방식도 비슷하다는 것을 뜻한다.
루크랑 종족 자체가 남자보다 여자가 세 배가량 많은 국가라지만, 그렇다고 일부다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문화가 떨어지는 촌락, 마을서는 일부다처가 문화적으로 허용되지만, 도시에서는 일부일처가 많다는 게 그걸 증명하지 않나.
환인도 마찬가지다. 21세기 지구에서 살던 그의 기준에 일부다처제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독점욕과 소유욕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궁금했다.
어째서 셋이 사이좋게 지내는지.
‘……모르겠군.’
뭐, 여자들끼리 내분을 일으키고 캣파이트를 벌여 분란의 원인이 되는 쪽을 추방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모르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설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 자신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꼽은 것은 하나다.
자기 자신의 외모와 성행위 능력이 세 여자의 본능적인 질투와 반발을 억누를 정도라는 것.
‘말이 안 된다.’
고작 외모와 생식 능력이 인류의 근간을 지탱해온 큰 감정 두 개를 억누르게 만든다고?
뭐,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이 가설을 세운 것도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배우이자 전설적인 미남으로 알려진 알랭 파비앵 모리스 마르셀 들롱, 흔히 알랭 들롱이라 알려진 남자는 여자의 본질이라 말하는 질투를 근본적으로 거세시켜버리는 외모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파티에 그 남자가 등장하면 주변이 조용해질 정도였으며 같은 남자도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
사진이 영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영상이 실물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알려진 데다 실제로 바람기가 많은 그와 사귀었던 여자들이 모두 그를 옹호하고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한 외모의 소유자라면 일부다처도 문제 되지 않을 테지만, 자신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 흔한 말로 번따, 여자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란 이야기를 몇 번 들어본 적 있었고 그게 교제로도 이어졌지만, 그렇게 다가온 여자들은 전부 몇 달 버티지 못하고 이별을 통보해왔다.
‘환인 씨는 어딘가 이상해요.’
‘넌 사람이 아닌 거 같아. 가끔 소름 끼쳐.’
‘미안. 너랑은 미래를 함께한다는 이미지가 안 그려져.’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날 거야. 안녕.’
따라서 환인은 몇 가지 가설(직업적인 능력, 섹스 테크닉, 정상인 연기로 보여주는 성격 등등) 중 이게 이유라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들 개개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알고 있지만, 그게 셋이 사이좋게 지낼 이유는 되지 않으니…….
환인은 모든 것을 대체로 이성적, 논리적으로 따지기에 알지 못했다.
몇 달간의 야지 생활을 통해 몸에 스며든 야성적인 분위기가 자신의 외모와 어울려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성기가 여자들의 마음 속 소녀를 깨우는 열쇠가 되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여자 친구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거기에 의외로 한 남자를 공유하는 여자들의 마음이 잘 맞는 편이며 상대가 같은 여자라도 반할 만큼 예쁘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들을 한데 묶은 이 이유는, 환인이 일반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기 전까지는 죽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비상. 외출하자.”
쿠우~!
외출하기 전에 유르파가 완성했다며 모두에게 나누어준 회색 후드 망토를 걸친 환인은 착용감에서부터 놀랐다.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 팔을 움직이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믿을 수 없는 부드러움, 여기에 후드를 깊게 눌러써도 베일veil을 쓴 것처럼 바깥이 보이는 것까지.
“굉장하군.”
그뿐만이 아니다.
화염질주라는 4급 이형종 수준의 마수 가죽을 무두질한 것에 올토스 숲비단거미의 거미줄에 특수 처리를 한 비싼 옷감을 덧대서 만들었다는 후드 망토는 외투 바깥의 뜨거운 태양을 완벽하게 막아주면서도 망토 안쪽은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해준다.
디자인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질감에서부터 고급스러움이 묻어나지만, 멀리서 보거나 대충 보면 특색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점이다.
법사 복장은 이실리테가 어제 세탁해버렸기에 평범한 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비상과 함께 집을 나선 환인은 엽사 조합으로 느긋하게 이동했다.
“널 타고 이동하니 망토와 관계없이 시선이 집중되는군.”
쿠엣?
“싫은 것은 아니지만, 도시에서는 네가 아니라 쿠르티를 타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
날 두고 딴 애들을 타고 다닐 거란 말이야? 비상이 돌아보며 불퉁한 시선을 보내는 것에 환인이 작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농담이다.”
쿠엣
그런 농담 하면 앞으로 안 태워줄 거야 하고 협박하는 비상에게 환인은 큭큭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 도로를 건너 엽사 조합으로 가는 지름길, 그늘이 잔뜩 진 건물 사이 골목길로 들어선 환인은 어둠 곳곳에 숨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
뿔난 눈으로 자신을 째려보는…… 어둠의 정령들.
시선을 위로 들자 녹색 바람의 정령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까르르 웃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어둠의 정령만 날 미워하는 건가.’
어느 집 뒷문 근처의 화단, 그 구석의 그늘진 곳에 숨어있는 어둠의 정령 곁을 지나쳤지만 해코지를 해오지 않았다. 그저 째려보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환인은 아쉬웠다. 해코지를 해왔다면 합법적으로 이것저것을 시험해봤을 텐데.
「나쁜 놈.」
「저거 순 나쁜 놈이야.」
「우리 때리기나 하고.」
‘역시 하급 정령부터는 소셜 커뮤니티가 존재하는군.’
이름 짓자면 하급 어둠의 정령 마이너 갤러리 정도일까.
손을 뻗어 이리 오라고 속으로 말하자 건물이 만들어낸 그늘 속을 유영하던 최하급 어둠의 정령이 여럿 다가온다.
그걸 어루만지듯 쓰다듬으며 영혼 구슬로 만들어 왼손으로 핸들링을 시작했다.
「까르르…….」
「꺄아, 꺄아~…….」
영혼 구슬로 변한 정령들이 왼팔을 중심으로 기하학적인 선을 그리며 회전한다. 거기에 어린아이가 신나서 내는 아스라한 소리가 주변을 채우자 하급 어둠의 정령들의 눈이 명백하게 환인의 왼팔로 향했다.
재미있겠다. 나도 해보고 싶어. 부럽다.
솔직한 감정이 느껴지는 시선이지만, 자존심은 확고한지 어린 소녀 소년 모습의 하급 어둠 정령들은 흥! 세찬 콧방귀를 뀌면서 포포퐁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
어둠의 정령과 관계를 개선하긴 해야 하는데.
개방형 야외 미궁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지하형 미궁에는 최하급 정령이 없다.
들어오지 못하는 건지 미궁의 뱃속이라 약한 최하급 정령은 들어오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미궁 안에 최하급 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감옥 미궁에는 미약한 빛을 제외하곤 다른 생명이나 속성의 흐름이 없어서일까, 일반적인 빛이나 불, 바람의 하급 정령도 없었다.
땅이나 돌, 금속의 정령 정도는 있을법한데 그마저도 존재하지 않았다.
본 것은 오직 하급 어둠의 정령뿐.
다른 지하 미궁에서도 하급 어둠의 정령 밖에 못 본다면, 그리고 감옥 미궁처럼 영혼의 수급이 불가능한 장소라면…….
생각하는 사이 골목길을 빠져나온 비상은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엽사 조합이 있는 길을 따라 이동한다.
환인은 점점 멀어져가는 골목길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엽사 조합을 방문해 데스크에서 갈롯의 개인 상담 신청을 넣자 3층에 있는 갈롯의 개인 사무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문을 노크하자 달칵, 문이 열리며 갈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복장이 의외라 환인은 눈을 약간 크게 떴다.
가슴 부분이 보기 좋게 솟아오른 하얀 반소매 와이셔츠에 검은색 넥타이, 그리고 검은색 치마와 검은색 스타킹, 마지막으로 검은색 하이힐을 신은 모습.
=어서 와요.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습니까. 아, 이건 선물입니다.”
설마 이곳에서 여교사 룩을 볼 줄 몰랐던 환인은 아주 짧게 굳었다가 준비해온 과일 바구니를 건네주었다.
=어머. 뭐 이런 걸 다 가지고 오셨대? 들어와요.=
3평 남짓한 방은 말 그대로 개인용 사무실 풍경이었다.
한쪽 벽은 책으로 꽉 찬 책장이 가득 채우고 있었고 평범한 책상 위에는 이런저런 서류와 책, 잉크와 깃펜, 몇 가지 함정 도구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바닥도 깔끔하지는 않았다. 실습용 표본인지 여러 종류의 잠금장치와 자물쇠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뭐가 들어있는지 모를 나무상자도 몇 개가 쌓여 먼지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나마 방문객을 받는 의자와 탁자는 멀쩡하다.
=거기 앉으세요.=
환인을 의자에 앉힌 갈롯은 사무실 귀퉁이에 있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책장 아래 수납장을 열어 접시와 과도를 꺼내 환인이 가져온 과일을 깎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환인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살풋 웃은 갈롯이 말했다.
=이 차림이 신기한가요?=
“예, 조금.”
이런 데서 볼 줄 몰랐기에 신기하다는 뜻이었지만, 갈롯은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았기에 여상한 어조로 대답했다.
=흔히 못 보는 신기한 복장이죠? 아클라멘토 대학원의 정식 교수 복이에요. 여기에 저 하얀 가운을 걸쳐야 하는 게 교칙이죠. 저 멀리 메리아놀에서는 꽤 유명한 복장이라는데 몸이 끼기만 하고 치마도 짧아서 안이 훤히 보일 거 같은데 뭐가 좋다는지 참.=
남자들이 좋아하는 복장이라고 속으로 대답하는 것을 당연히 듣지 못한 갈롯은 그러면서 이 옷 한 벌이 7은화나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여성의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훗. 환인 씨도 그런 말씀을 할 줄 아시네요.=
“수업받는 입장에서는 허튼소리를 할 수 없었으니까요.”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일까. 환인은 그녀의 동그란 퓨마 귀가 쫑긋하고 아래로 나있는 부들같은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갈롯은 대놓고 자신 같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 대상에게 허튼소리로 기분 나쁘게 했다간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어떻게 흰소리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녀에게 교육받을 때 환인은 웃음 한 번, 미소 한 번 짓지 않았었다.
과일을 깎아 환인의 앞에 내려놓은 갈롯도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자연스럽게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그냥 앉았다간 치마 속이 훤히 보이는 각도란걸 아는 눈치.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기본 과정이랑 심화 과정을 저한테 배우러 오신 것은 아니죠?=
“절 가르치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셨습니까?”
후드를 벗은 환인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묻자 갈롯이 과일 조각을 입에 가져가려다가 움직임을 딱 멈춘다.
환인의 외모에 갈색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갈피를 잃고 방황하다가 시선을 책장으로 돌리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니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단 환인 씨한테 밑천을 다 털릴 것 같아서 그래요. 입문 과정 20일 동안 당신한테 빨린 기술이 기본 과정의 절반까지 포함되었다는 거 알아요?=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빙그레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니 입술을 앙다문 갈롯이 민망한 듯 시선을 내리깔며 주제를 바꾼다.
=그,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냐니까요?=
“대축제가 끝나고 감옥 미궁을 18층까지 다녀왔습니다.”
=벌써요? 아니 어떻게 그새…….=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지요. 이번 익스퍼트 토너먼트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제 파티 구성원입니다.”
=놀…랍네요. 그렇지 않아도 그 두 명이 한 남자와 미궁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는데 그 남자가 설마 환인 씨였을 줄은.=
진지한 얼굴로 갸름한 턱을 쓰다듬던 갈롯이 눈빛으로 ‘그래서요?’ 하고 묻는다.
“18층부터 술법 함정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제가 조우한 계층별 함정 목록과 구조입니다.”
품에서 말아놓은 종이 몇 장을 내놓자 갈롯의 눈이 대번에 꽂힌다.
=어, 저한테 보여주신다고요? 그런 정보라면 조합에 제공하면 평가 점수와 보상이 나올 물건인데요.=
“갈롯 씨를 믿습니다. 아니면 갈롯 씨의 밑천을 빼앗은 답례라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아하하, 짧게 웃은 갈롯은 환인이 내민 두루마리 뭉치를 받아 10분 정도 살펴보고는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궁의 함정 위험도가 1등급은 올라갔네요. 그러니까, 환인 씨가 절 찾아오신 이유는 술법 함정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라는 거죠?=
“들켰군요.”
=들키긴요.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구만. 아무튼 이런 함정까지 간파하고 해제했을 정도면 심화 과정까지 익힌 수준인데 참, 대단하다고 할지…….=
종이를 다시 말아서 환인에게 돌려준 갈롯은 다리를 바꿔 꼰다. 그 과정에 팬티스타킹에 감싸인 회색 팬티가 보였지만, 환인은 못 본 척 이쑤시개로 보라색 과육의 과일을 찍어 입에 가져갔다.
=파르히스트 엽사 조합은 술법 함정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지 않아요. 정확히는 못 하죠.=
“그렇습니까.”
=술법 함정 해체술은 함정 관련 중에서도 최상급 기술이에요. 주도 라수비탄의 엽사 조합 본부, 주도 패시지의 스트라이더 클랜 메인 홀에서나 배울 수 있는 기술이죠.=
“배우려면 주도를 찾아가야 한 단 말씀이군요.”
=네. 제가 술법 함정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다지만 이건 그저 자격 증명이지 교습 권한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시겠죠?=
“안타깝습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저 먼 라수비탄까지 가야 한다니…….”
=…읏, 그렇게 봐도 술법 함정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드릴 수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정보를 더 요구해서 갈롯 씨를 곤란하게 할 생각도 마찬가지도 없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냐는 겁니까? 그건 갈롯 씨가 더 잘 알지 않을까요.”
함정술을 배우던 20일 중 며칠, 갈롯은 부단히도 환인을 유혹하려 했었다.
시기는 제하=메샤를 추적해 살해한 직후.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수업을 빙자해 등에 가슴을 비비는 건 예사였고 팬티를 입지 않은 얇은 바지 차림으로 환인의 앞에서 돌아다니며 도끼 자국을 드러내며 유혹까지 했었다.
그러는 이유를 환인은 정확히 유추해냈기에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제하 메샤가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엽사 조합에서 알아내 보라는 지령을 받았겠지.’
정보상 역할도 하는 엽사 조합이다. 파르히스트 기사단에 입단까지 했던 제하=메샤를 어떤 방도로 죽였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겠지.
그도 그럴 게 제하=메샤는 날카로운 날붙이로 배꼽부터 가랑이까지 절단되어 살해당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제하=메샤를 찾은 일행은 자신들이며, 자신의 파티에는 그런 날카로운 날붙이를 쓰는 인물이 (공개적으로) 없다.
의구심은 자신에게 향했을 거다. 그런데 자신은 (공개적으로) 무직자다. 제하=메샤는 무려 6급 전사.
이런저런 가설이 생겨나는데 하나같이 말이 되지 않는 가설들 뿐. 엽사 조합 처지에서는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은 정보여서 애간장이 탔을 것이다. 조합의 상급 조합원인 갈롯을 미인계로 쓸 생각을 할 만큼 말이다.
그러나 미인계는 일절 통하지 않았고, 파르히스트 기사단이 제하=메샤 사건에 개입했으며 그 수집 대상에 환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조합은 깔끔하게 손을 털고 물러났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다.
눈앞에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영기 덩어리가 있다는 것.
만약 갈롯에게 배울 게 남아있다면 건드리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갈롯은 술법 함정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거기다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다. 더욱이 자신을 유혹하려 한 전적이 있다.
눈앞에 차려진 밥상을 먹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나 수업 태도의 중요성을 언급해놓고 절 유혹한 주제에 이제 와서 조신한 처녀처럼 굴겠다는 겁니까.”
갈롯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동그란 퓨마 귀가 빠르게 파닥인다.
아니, 확실히 유혹하려 한 것은 맞지만! 그렇지만!
=환인 씨, 그건…….=
“그건?”
=…….=
갈롯은 입을 열 수 없었다. 미인계로 당신을 유혹해서 정보를 캐내려 한 거였다고 어떻게 말을 할까. 그리고 이어서 생각했다.
딱히 오해해도 상관없지 않나?
……라고.
눈앞의 남자는 일단…… 가슴 설레게 잘생겼다. 20일간 함정술을 가르칠땐 매일 무표정이어서 잘 몰랐는데, 살짝 웃음을 짓는 순간 아래쪽 귀가 뜨거워지는게 느껴질 정도로 잘생겼다.
게다가 조합장 그 돼지 새끼하곤 다르게 매너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성격도 좋고 몸도 탄탄한데다 그가 지닌 함정술의 자질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안다.
만약 자기 자질과 눈앞 남자의 자질이 섞인 아이가 태어난다면?
유혹해야 할 당시에는 뭐 이런 좆같은 지령을 내리나 싶어 조합장 새끼한테 짜증만 났는데, 공적인 관계는 사라지고 사적인 관계만 남은 지금은 그와 몸을 섞는다는 것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읍!=
남자의 따스한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덮었다. 갈롯은 자신도 모르게 환인의 어깨를 잡고 밀어 내려 했지만, 그보다는 환인이 갈롯의 손목을 붙잡는게 먼저였다.
=흥?!=
환인은 갈롯의 양손의 손가락을 강제로 깍지 끼게 만든 뒤 그 손에 자신의 손도 겹쳐서 깍지 껴 붙잡는다.
남자의 굵고 억센 손가락이 얽혀들자 손가락을 옴짝달싹 못하겠다.
힘을 쓴다면 이런 봉쇄 따윈 가볍게 풀 수 있지만 눈앞의 남자는 무직자다. 그랬다간 크게 다치겠지.
=흐으응…….=
거기다 거리가 급격하게 가까워지자 남자의 진한 체취가 물씬 풍겨와 아랫배가 징징 떨려 힘이 안 들어간다.
두 손이 묶인 갈롯에 비해 환인은 한 손이 자유로웠기에 갈롯의 입술을 훔치며 남은 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이며 엉덩이를 마음껏 주무르고 희롱한다.
=으으응…!=
환인의 손이 옷 위로 자신의 몸을 누비는 것에 갈롯은 강한 흥분을 느꼈다.
젖무덤에 남자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자 젖꼭지가 바짝 서고 엉덩이에 남자의 손길이 닿자 가랑이 사이가 뜨거워진다. 게다가 손이 묶여 뒤로 젖혀진 채 희롱당하는 이게 무척이나 배덕적이어서…….
‘흥분돼!’
그 흥분과 자극이 환인의 원기 방출 때문이라고는 짐작도 못 한 갈롯은 살짝 허리를 떨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작은 의자에 앉은 채로는 자세가 잘 안 나와 감질난다.
자신을 밀어붙이고 좀 더 강하게, 좀 더 격하게 희롱해줬으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갈롯은 자신의 몸이 번쩍 들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가 여자를 안아 드는 그런 상냥한 게 아니다. 수갑이 채워진 채 채찍 고문을 당하는 죄수처럼 번쩍 들렸다.
=아읏!=
이렇게 죄수처럼 다루다니, 갈롯은 가랑이 사이가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워 허벅지를 오므렸다.
직후 벽에 쿵 부딪힌 갈롯은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고, 환인은 그런 갈롯의 기대감을 훌륭히 충족시켰다.
갈롯의 허벅지 사이로 무릎을 밀어 넣고 그녀의 보지를 팬티 위로 강하게 문지르며 재차 난폭하게 입술을 훔친 것.
=응, 으읍!=
환인은 갈롯의 눈에 드러나는 그녀의 성욕을 읽으며 그녀의 몸을 물건처럼 휘둘렀다.
허벅지로는 그녀의 음부를 누르고 문지르고 빈손으로는 블라우스 아래로 손을 밀어 넣어 평범한 젖가슴을 우악스럽게 움켜쥔다.
입술로는 목덜미, 아래쪽 귀를 물고 강하게 빨며 애무하니 허벅지에 닿아있는 그녀의 음부가 급속도로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하윽, 윽. 화, 환인 씨. 잠깐만요……. 하앙. 이, 이 옷 비싼… 건데……!=
“개처럼 따먹히고 싶다는 게 눈빛에서 느껴지는데 속과 겉이 다른 걸 보면 아직은 견딜 만 하는가 보군요.”
=하흑…….=
개, 개처럼? 그 더럽고 시끄럽기만 한 개들처럼…… 내가 따먹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환인은 잠깐 개인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땅한 도구 두 개를 발견했다.
책상 앞의 헤드레스 체어. 그리고 꽤 비싸보이는 밧줄.
생각과 행동은 빨랐다. 갈롯하고 깍지 낀 손을 푼 환인은 그녀의 팔을 잡아 강하게 밀쳐 최대 높이가 70cm 밖에 되지 않는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게 한다.
=앗!=
그리고 갈롯의 안쪽 다리를 툭툭 쳐서 좌우로 벌리게 한 다음 두 팔을 뒤로 돌려 팔뚝과 팔뚝을 황금 밧줄로 묶어버렸다.
상체를 ㄱ자로 숙인 채 엉덩이만 뒤로 쭉 내민 모양새.
‘이, 이 자세는!’
갈롯은 기억해냈다.
예전에 미궁 탐사 의뢰받아 방문했던 촌락이었다. 죄를 지은 여자가 발가벗겨진 뒤 이런 식으로 낮은 기둥에 매여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여자의 보지를 막대기로 쑤시거나 강간하면서 놀던 장면.
남의 남자를 유혹하다 걸렸다던가. 단정치 못한 여자를 벌하던 거라고 들었는데!
=나, 날 이렇게 죄수처럼 다루다니……!=
환인은 헐떡이는 갈롯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이렇게 죄수처럼 다루어지면서 흥분하다니, 갈롯은 어쩔 수 없는 변태였군요.”
귓가에서 들려오는 배덕적인 말에 이어 찰싹, 엉덩이에 흐르는 짜릿한 통증. 허벅지를 오므리며 크게 헐떡인 갈롯은 환인의 속삭임을 듣고 애액을 주륵 흘리고 말았다.
“갈롯. 이제부터 당신을 성노예처럼 강제로 따먹어주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