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215 성도 파르히스트
* * *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욕탕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던 환인은 시중을 들겠다며 들어온 유르파의 목욕 봉사에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1차로 손톱 끝에서부터 발가락 사이까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꼼꼼하게 씻겨주는 비누칠.
2차로 욕실 바닥의 매트 위에서 이루어진 오일 마사지.
오일이 발린 곳이 후끈거리며 열기가 피어오르고, 조물조물 주물러주는 마사지에 뭉친 근육이 풀어질 즈음 이어진 3차.
두 손과 자그마한 입, 그리고 물풍선처럼 출렁이는 거유를 이용한 사정 봉사.
힘차게 분출한 정액이 가슴골과 젖무덤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미련이 넘치는 얼굴로 보는 모습이, 만약 ‘허락하기 전까지 정액의 섭취는 금지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두 손으로 싹싹 긁어모아서 먹었을 모습이었다.
그렇게 3단계의 봉사를 받아 노곤해진 몸을 다시 뜨거운 욕탕에 밀어 넣고 말랑말랑하기 그지없는 여체를 껴안고 있으니 환인은 정신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물에 젖어 조금 더 어두워진 유르파의 회색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경과대로라면 두 달 정도 뒤에 머리카락이 까맣게 변하겠군요.”
=그러려나.=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투로 유르파가 나른하게 대꾸했다.
환인의 온몸을 주무르며, 특히 두 번째 봉사 코스인 오일 마사지 중에는 젖무덤과 보지 둔덕까지 사용해 그를 주물렀었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그의 피부와 내 피부가 닿는 것도 좋았고 식물성 기름의 그 기름기가 만들어내는 매끄러움도 좋았고 약한 보지 점막에 스며든 기름이 화 한 느낌을 주는 것도 좋았고 특히 팔꿈치의 그 오돌토돌한 부분에 보지를 문지를 때마다 클리가 긁히며 척추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짜릿하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그와 스킨십을 한데다 정액의 그 강렬한 냄새까지 맡은 유르파는 환인 못지않게 나른해진 상태였다.
빈말 보태지 않고 물에 그대로 녹아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수준.
“…….”
유르파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었지만, 자신보다 더 늘어진 유르파의 상태를 보니 제대로 대화가 안될 것 같아 그녀를 부축해 욕조에서 일어섰다.
환인과 유르파가 나오고 안느까지 목욕을 마쳤을 때 이실리테가 푸짐한 저녁 식사를 내왔다.
홀로렌 강 상류에서 잡힌다는 1m짜리 생선으로 만든 생선야채구이, 비주얼은 소고기국밥 비슷한 탕? 요리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굽고 찐 요리에 입안 텁텁해지지 말라고 달콤하고 새콤한 과일과 살짝 쓴맛 나는 채소로 만든 샐러드에 도삭면 종류의 면 요리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까지.
준비에만 2시간이 걸릴 만찬에 안느와 유르파, 비상이 이실리테에게 환호를 보냈다.
=와~ 생선구이 대박. 짭조름한 맛하고 포슬포슬한 속살이랑 바삭한 껍질이 어쩜 이렇게 딱딱 나누어지지? 유리 언니, 이거 먹어봐.=
=으음~ 생선구이도 맛있지만 나는 이 샐러드가 진짜 좋아. 그런데 어째서 내가 만들면 이 맛이 안 나는 걸까……. 이슬이 아가씨가 가르쳐준 대로 만들었는데.=
=이런 말 하는 사람 특, 가르쳐준 대로 안만듬.=
=인정.=
큐웃, 우물우물. 쿠웃, 우물우물.
“비상. 안 뺏어 먹을 테니 천천히 먹어라.”
우물우물우물우물.
자신의 제지에도 깊은 그릇에 잔뜩 쌓인 볶음면 요리를 흡입하다시피 먹는 비상의 모습에 환인이 쓰게 웃었다.
“이실리테. 도삭면 요리는 조금씩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비상에게 주는 게 좋겠군.”
=후후. 그럴게요.=
음식 취향은 전원이 다르다. 약간 겹치는 것이 있지만 선호하는 것은 명백히 갈리는 것이다.
환인은 대체로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찍먹부먹, 물복딱복, 얇삼두삼, 민트초코, 파인애플 피자, 오이, 고수, 건포도빵, 먹는 거라면 가리지 않는다.
환인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저놈은 입이 아니라 주둥이.”라고 말하길 서슴지 않을 정도.
비상은 매콤하고 짭짤한 면 요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처음 이실리테가 만들어준 볶음우동이 있으면 다른 음식도 마다할 정도.
이실리테는 심플하게 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육류라면 가리지 않지만 그중 짐승 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안느는 종족적인 체질 탓에 채소와 과일이 주식이지만 고기를 못 먹는 건 아니다. 많이 먹으면 다음 날 배탈 나기 때문에 적당히 먹지만, 그녀의 선호 음식도 이실리테처럼 고기다. 그중에서도 생선을 특히나 좋아한다.
“패시지는 섬이거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생선 요리를 많이 먹어. 그 탓인가 메리아놀 시민들은 다들 어패류를 좋아해. 물론 나도 좋아하고.”
유르파는 살이 잘 찐다는 이유로 채소 요리를 주식으로 삼고 또 좋아한다. 특히 이실리테가 해주는 야채 볶음밥은 처음 먹어본 그 자리에서 그녀의 인생 픽 1위가 되어버렸다.
오늘 저녁 만찬에 볶음밥이 없어서 아쉬워하다가 이실리테가 비빔밥을 해주니까 얼굴이 활짝 폈을 정도.
그렇게 모두가 만족하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세 여자가 힘을 합쳐 설거지를 후딱 끝내고 돌아온 자리에서 환인이 입을 열었다.
“이번 미궁 탐사, 모두 고생 많았다. 유르파도 고생했습니다.”
환인은 식사하면서 들었다. 후드 안쪽으로 약한 인식 저해가 걸린 회색 후드 로브를 4벌 만들었고 그외에 몇 가지 인기 많은 생활 마도구도 4점이나 만들어서 팔았다고.
=나야 안전한 데서 물건만 만드는걸? 진짜 고생은 자기랑 아가씨들하고 비상이 다 했지. 어휴, 4계층 강화 미궁이라니…….=
“덕분에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약간이지만 성과도 있었고요. 그리고 이게 이번 11일에 걸친 미궁 탐사의 결과물입니다.”
환인이 피지에 이번 수익 목록을 재차 정리해서 적은 것을 탁자 위에 내밀었다.
작고 동글동글해 귀여운 머리 세 개가 모여든다.
660kg의 금속제 날붙이와 잡스러운 장비 및 해골 전사의 장비 세트 등을 팔아 번 돈 약 6금화 80은화.
1급 위상석 7개, 2급 위상석 2개, 3급 위상석 4개, 4급 위상석 2개. 약 25금화 7은화.
1~3계층의 해골을 부수고 채집해놓은 자질구레한 뼈조각 이빨, 발톱들 7kg.
유령을 소멸시키고 회수한 액토플라즘 여섯 자루.
소울파이어의 기사검과 기사갑주 6벌과 미이라 투사의 수갑, 각갑 3벌. 예상 수입 9금화 61은화.
붉은비늘 해츨링 좀비의 머리*1 앞발*2 뒷다리*2 꼬리*1
쉐도우가 떨어트린 하급 품질 보석 12알.
맹금룡 해골, 에틴 스켈레톤, 올빼미곰 해골, 외눈목 거인 해골 등의 4급 이상 뼈다귀 부산물 72kg.
보물상자에서 회수한 3금화 15은화 82동화, 마도구구리 반지*1, 약간 가공된 새끼 손톱 크기의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세 알, 금, 은, 백금 같은 귀금속 7kg.
마지막으로 풋내기들에게서 강탈한 7은화, 32동화, 1급 위상석 4개, 2급 위상석 1개.
유르파가 마지막 항목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게 뭐냐고.
“새벽 3시쯤인가, 야영지에 난입해온 다섯 명이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자 유르파가 흠흠 고개를 주억인다.
=자기한테 걸려서 다행이네.=
“아무튼 저품질의 무기와 방어구, 금속은 미궁 앞에서 적당한 가격에 팔아넘겼습니다. 나머지 귀금속, 보석, 부산물은 혹시 유르파가 마도구, 마도기 제작 소재로 사용할까 싶어 챙겨왔습니다.”
슬쩍 시선을 돌려 거실 한곳에 쌓여있는 소울파이어의 고대 무구를 본 유르파가 진회색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곤란함을 드러냈다.
=응~ 내 주 품목은 귀금속이랑 보석류라서……. 골재랑 마수 비늘도 쓸 수는 있는데 주요 품목이 아니라서 이걸로 제작하면 상품 가치가 많이 떨어질 거야.=
=유리 언니가 만든 마도구에 천이랑 가죽 소재도 있었잖아. 나무도 있었고.=
회색 후드 로브도 가죽으로 제작 중인 거 아니냐고 안느가 묻자 유르파가 민망해한다.
=그건 기성품을 구매해서 재단한거구…….=
“그래서 유기물의 기초 가공이 불가능 하다는 겁니까, 아니면 유기물 종류에는 부여 술법을 쓸 수 없다는 겁니까.”
=기초 가공 실력도 떨어지고 유기물에 부여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유기물은 나랑 궁합이 잘 맞지 않아서 부여 마법의 효과가 떨어져. 귀금속과 보석류에 부여한 것의 20%나 될까?=
“그렇군요. 이 기사검과 기사 갑주는 가능합니까? 들이는 수고에 비해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장간에 처분할까 합니다.”
=응……. 부여 술법이 제일 잘 새겨지는 건 갓 만든 물건이거든. 특히 이런 금속류는 가공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을 때 해야 가장 효율이 잘 나와. 녹을 제거하고 정화해서 탈감?? 작업을 거치면 못할 건 없겠지만, 그 시간에 새 마도구를 만들어서 파는 게 더 이득일 거야.=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 효율이 떨어진다는 거군요.”
=응. 그러니까 귀금속이랑 보석 외에는 소재상에 파는 게 좋아. 마침 조합 소속 소재상 지인도 있으니까 괜찮은 가격에 넘길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러면……. 해츨링 좀비와 이형종에게서 채집한 유기물은 팔고 위상석과 귀금속, 보석은 유르파가 관리하면서 쓸 곳이 있다면 사용하십시오.”
=응? 아냐. 위상석은 필요할 때 요청할 테니까 돈처럼 보관은 자기가 해. 아, 액토플라즘도 가져갈게.=
“예.”
유르파에게 보석류, 귀금속을 전부 넘겨준다. 그리고 몇 가지 마도기의 제작을 의뢰했다.
회색 위상석 하나와 색농도에서 차이가 나는 파란색 위상석들의 마도기 가공이다.
“회색 위상석은 방어 능력 향상이고 파란색 위상석은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효과였습니다. 재료비는 공금에서 사용하면 됩니다. 특히 이 회색 위상석은 방어 계통으로 추측되는데 반지나 팔찌, 목걸이로 만들어주면 좋겠군요.”
=응응. 회색 위상석은 누가 쓸 거야?=
“이실리테가 쓸 겁니다.”
=앗, 저보다는 주인님이!=
“전위에서 이실리테의 방어력이 가장 떨어지니 네 방어력의 확보가 먼저다. 안느는 최상급 마도구를 쓰고 있으니 당장은 급하지 않겠지.”
=어. 내가 생각해도 이슬이가 쓰는 게 좋아 보여.=
안느와 함께 이실리테의 반론을 찍어누른 환인은 마도구로 짐작되는 구리 반지의 감정을 부탁했다.
=이건 가벼운 충격 보호의 반지네. 하루에 일정량의 충격을 대신 받아주는데 그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깨지는 소모품이야.=
=비싼 건가요?=
외눈 안경을 끼고 반지를 살피던 유르파는 이실리테의 질문에 아쉽다는 투로 대답했다.
=충격 흡수 반지의 충격 흡수한계량은 반지의 재질에 좌우돼. 금반지였으면 몸이 약한 술법사들이 선호했을 텐데 구리반지라서……. 없는 것보단 낫지만 팔릴 정도는 아닐 거야.=
=금반지를 구하기 전까지 도령이 쓰면 되겠네. 우리는 맞는 게 일이기도 하고 튼튼하지만 도령은 아니니까.=
애초에 맞아주질 않지만, 어쩌다 한 번 맞으면 그게 치명타가 될 테니까.
그리 말한 안느가 이실리테와 유르파에게 동의를 구하고 반지를 환인에게 내밀었다.
“잘 쓰지.”
손가락에 무언가를 거는 것은 그리 선호하지 않지만, 목숨을 보호해주는 것이기에 군말 없이 바람 가호의 반지를 낀 중지에 구리반지를 낀다. 그런 환인의 행동을 유르파가 제지했다.
=자기야. 잠깐만, 반지는 한 손가락에 하나씩 끼는 게 좋아. 둘이 가까이 붙으면 마력 반발 작용 때문에 효과가 반감되거나 심하면 약한 마도기 쪽이 부서지거든?=
“그렇습니까.”
구리반지를 검지로 옮긴 환인은 이어 내일 할 일을 지시했다.
“유르파는 아까 말한 지인에게 유기물의 판매를 부탁합니다. 이실리테는 북서부 대장간 거리의 아흐라바 대장간을 찾아가서 소울파이어의 장비를 팔고 와라. 그곳의 주인 대장장이가 양심적이라더군. 안느는 이실리테와 함께 나가서 교단에 녹색 쿠에의 성장과 생육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고. 그걸 하고 난 뒤에는 쉬어도 된다.”
=도령은 뭐 할 거야?=
눈에서 은근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묻는 안느. 별일 없이 훈련한다거나 쉰다고 하면 데이트하자고 말을 꺼낼 분위기다.
하지만 이미 할 일을 정해놓은 탓에 환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엽사 조합을 찾아서 술법 함정 교육 상담받을 생각이다.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군.”
기대가 무너져서일까. 아쉬운 듯이 입술을 삐죽거리는 안느에게 작게 웃어주는 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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