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15화 (215/813)

〈 215화 〉 209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 * *

해골도, 시체도 이족 보행은 달리기 속도가 느린 편이다. 특히 해골류는 이동할 때의 충격 흡수가 불가능해 전신의 뼈다귀가 출렁이다 보니 소음도 남다른 편이고.

기존에 파악해둔 함정을 피해가며 적당히 해골 전사를 유인해 여자 친구들이 대기 중인 방으로 들어선다.

“해골 전사 세 마리다. 이실리테, 안느가 각각 한 마리씩 상대하도록.”

직후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해골 전사 세 마리가 입장, 안느의 방패 두드리기에 두 마리가 그쪽으로 들러붙고 돌팔매를 맞은 한 마리는 그대로 환인에게 달려든다.

환인은 이 해골 전사를 상대로 좀 전에 벌어졌던 이상 현상을 조사해볼 생각이다.

이실리테와 안느가 각각 한 마리씩 떼어가는 것을 확인한 환인이 천칭을 쥐고 자세를 잡자 해골 전사가 달려들기를 그만둔다.

따닥!

턱을 움직여 이빨을 딱딱거린 해골 전사가 슬금슬금 횡이동을 하며 간을 보기 시작한다.

저것은 생전의 기억일까, 아니면 미궁이 짜넣은 단순 반응 행동일까.

주자가 도루를 시도하는 것처럼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이 어째서인지 보기 싫었던 환인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타일 파편을 발로 차서 해골 전사의 어깨뼈를 퍽­ 맞춘다.

딸그락!

잠깐 어깨가 휘청한 해골 전사는 도움닫기에 이어 펄쩍 뛰어 내려치기를 시도한 순간­

콰득! 와그르르르.

환인이 반사적으로 내지른 천칭에 미간을 강하게 찍히곤 뼈가 그대로 해체되어 쏟아져 내렸다.

맞은 자리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나머지 뼈들도 움찔거리기만 할 뿐 조립되려는 기색이 없다.

“……실수했군.”

적이 너무 약해 알아볼 틈도 없이 전투가 끝나버렸다. 소울파이어가 호족의 기사라는 느낌이었다면 해골 전사는 백인장이라는 느낌?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한숨을 내쉰 환인은 발로 해골 전사의 두개골을 밟아 부수고 으음, 작게 신음을 흘렸다.

‘아까 그건 뭐였지.’

시각화 현상을 생각하며 허리를 숙여 약간 녹슨 강철 검과 강철방패, 강철 투구를 회수해 돌아서자?

쾅, 쾅! 쾅!!

안느의 자이언트 워 해머, 천벌의 망치가 해골 전사의 두개골을 투구째 내려치는 것이 보인다.

잠시 후 와그작!!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투구째 박살 난 해골 전사의 뼈다귀가 어지럽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실리테의 전투는 안느보다 더 단순했다.

레드릭으로 해골 전사의 강철 검을 튕겨내고 넙적한 면으로 몸통을 후려친 이실리테는 그대로 공중에 뜬 해골 전사의 두개골을 낚아채 주먹으로 내려쳐 박살 내버린 것이다.

=휴~.=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만들어놓은 천벌의 망치에서 손을 뗀 안느는 축성받은 마스크를 벗고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이마와 목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놈이 16층의 평범한 이형종 같네.=

=응. 소울파이어보다 훨씬 약해. 아, 고마워.=

안느에게 새 수건을 받은 이실리테도 마스크를 한 귀에 건 채 얼굴과 목의 땀을 닦으며 5번째 전투에서 마주쳤던 소울파이어를 떠올렸다.

고대의 기사 같은 소울파이어의 검기??는 말 그대로 기사의 검술이었다.

주인님의 무기??는 자신의 공격을 다 읽고 빈틈과 허점을 노리고 들어오는 식이었다면, 소울파이어의 검기는 공격 일변도로 자신이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 기술이었다.

더욱이 살아있는 사람을 증오하는 듯한 그 기백.

‘주인님의 투기를 몇 번 받아보지 않았다면 제 실력을 내지 못했을 거야.’

환인이 진심을 낼 때 느껴지는 기세는 오줌을 지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살벌하다.

그런 투기를 받아보며 두려움의 역치가 높아진 이실리테는 소울파이어 기백에 굴하지 않고 정면에서 탱킹하는 안느를 도와 다리뼈와 어깨뼈를 쳐낼 수 있었다.

그 후 사지 중 셋이 잠시지만 무력화된 소울파이어의 두개골은 안느의 워 해머에 그대로 분쇄됐지만, 소울파이어와의 접전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무려 3분이나 드잡이질을 벌였으니까.

=어?=

겨우 숨을 돌린 안느는 마스크를 다시 귀에 걸다 말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하는 환인을 황급히 붙잡았다.

=도, 도령! 잠깐만!=

“왜 그러지.”

=나나 위상력이 곧 바닥이야. 이슬이도 비슷한 상태거든?=

“한 번 정도는 더 싸울 수 있을 텐데.”

=어, 그거야 가능하지만 그랬다간 탈진할 거라구. 탈진 상태가 되면 회복이 더 느려져.=

이실리테를 돌아보자 수건으로 가슴골의 땀을 닦고 있던 이실리테가 움찔하더니 자신은 괜찮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손에 든 수건의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반대쪽 어둠 속을 보며 흠, 작은 숨을 흘린 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강한 놈을 상대로 싸워보면 뭔지 알 것 같은데 이래서야 무리겠군.

홀로 미궁을 누비며 한껏 예리해져 있던 환인의 감각이 바람 빠지듯 원상태로 되돌아간다.

내일을 기대하며 여자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환인은 장갑을 벗고 그녀들의 뒷목에 손을 얹어 원기를 흘려주기 시작했다.

=아? 흐으으.=

=하아…….=

육체노동으로 잔뜩 뜨거워진 몸에 차가운 이온 음료가 들어간 것처럼 앓는 소리를 내는 여자들.

환인은 단단해진 그녀들의 목덜미를 꾹꾹 눌러 안마해주며 말했다.

“4계층에서 출몰하는 이형종이 예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이대로는 5계층까지 돌파하는 건 무리일 것 같군.”

=어어. 여긴 강화 계층이니까항…… 아읏! 하아, 시원해…….=

“강화 계층인가. 네가 말했던 4계층의 변화가 이거였나.”

목은 물론 어깨도 많이 굳어있는 듯해 넥가드와 숄더 아머를 떼어내 주물러주기 시작하자 안느가 어깨를 움츠리며 흠칫흠칫한다.

=어어흣. 맞아아. 미궁이 살아있다는 건…… 알지? 특히 자주 돌파당한 미궁은 그걸 기억해서 특정 계층을 강하게 만들어버려. 하으으…….=

야한 신음을 흘렸다가 흠칫하며 입을 가린 안느는 귀를 빨갛게 물들인 채 슬금슬금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환인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화 계층인 거군.”

=아응…. 여기 감옥 미궁은 못 해도 백수십 년 만에 성장했으니 그동안 4계층까지 수만 번은 돌파당했을 거 아냐. 그래서응, 4계층에 강력한 이형종이 배치된 거야. 에틴 스켈레톤이나 소울파이어, 올빼미곰 해골처럼 1등급 더 강한 개체드으을.=

=그러면 5계층도 더 강해진 거야?=

쓰러트린 해골 전사의 녹슨 장비를 챙겨온 이실리테가 묻자 =하윽, 이제 됐어. 고마워.= 환인의 손아귀에서 도망쳐 어깨 갑주를 다시 착용하며 대답했다.

=아니. 4계층만 강화됐을 거야. 그러니까 4계층이 사라지고 5계층이 둘이 됐다고 보는 게 좋아.=

“중간 층이 사라졌지만 파르히스트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군.”

=엉. 오히려 좋아할걸? 봐봐.=

근처에 앉아있는 비상의 등짐에서 소울파이어의 낡은 기사검을 꺼내고 방금 잡은 해골 전사의 강철 검을 가져와 보여준다.

=조금 낡고 약간 녹슬긴 했지만, 다시 연마하고 조율하면 당장이라도 다시 쓸 수 있는 것들이야. 특히 강철 검은 모아서 일반병들한테 무장시켜도 되고 이 기사검은 무기점에서 중고 검으로 진열해도 비싸게 팔릴 수준이라구? 이런 비싼 장비가 막 떨어지고 검술을 사용하는 괴물까지 나온다고 알려지면 수준 높은 직업자들이 꽤 모여들 거야.=

=확실히……. 소울파이어의 검술은 보고 배울 점이 있었어.=

거기다 이런 이형종들을 노리는 고위 직업자들은 주머니 사정도 풍부한 편이다.

그들이 파르히스트에서 머물며 쓰는 돈이면 서민 경제가 자연스레 활성화되는 데다, 그들이 짐꾼 역할의 저등급 직업자들도 고용할 수 있는 일이고 고등급 직업자가 운 좋으면 파르히스트에 자리 잡을 수도 있으니 성주로서는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인 것.

환인이 잠시 생각하고 있으니 기사검과 철검 등을 다시 등짐에 쑤셔 넣은 안느가 물었다.

=그래서? 술법 함정은 발견했어?=

“아니.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16층에는 함정문이 없으니까.”

바닥 함정과 함정문은 명백히 장르가 다르다. 바닥에 일반 기관함정만 있다고 문에도 기관함정뿐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쿠우? 쿠우웃. 쿠에~

그때 비상이 다수의 발소리가 들린다며 울었다. 환인은 즉시 후드를 뒤집어썼고 이실리테와 안느도 눈치껏 무기를 챙겨 든다.

철컥철컥철컥철컥­

직후 서쪽의 문이 열리며 일치감이 느껴지는 철갑 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리가 넘어왔다.

무리가 든 빛 막대의 광원 속에 동일한 디자인의 백색 판금 갑주를 걸친 여섯 명과 하얀 로브를 걸친 두 명이 드러난다.

안느가 속삭였다.

=파르히스트 기사단이랑 짐승신 교단의 성술사들이야.=

저쪽도 환인 일행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가 이윽고 호의 가득한 기색을 드러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실리테와 안느를 알아본 눈치다.

환인은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6명의 기사 중 다섯은 5급, 한 명은 6급이며 성술사들은 4급과 3급 두 명이다. 다들 미궁에서 며칠 시간을 보낸 듯 장비에 때가 끼어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기사들 중 선두에 있던 6급의 금발금안의 고양이 귀 여기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설마 이곳에서 익스퍼트 토너먼트의 영웅들과 마주칠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요. 반갑습니다, 파르히스트 기사단 제3 기사대 소속의 율리아 로랑이에요.=

그녀뿐만이 아닌 다른 기사들도 유명인을 만난 일반인들처럼 얼굴색이 호의에 물들어있다.

안느는 자신에게 손을 내민 여기사를 보고 눈을 끔뻑이다가 슬쩍 옆을 가리켰다.

=어, 만나서 반가워. 내가 안느야. 그리고 파티 리더는 이쪽이거든?=

=어머? 이런, 실례했어요.=

“괜찮습니다. 파티 리더인 환인입니다.”

율리아=로랑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하자 아는 척을 해온다.

=아? 당신이?=

“저에 대해 아십니까?”

=기사단 내에서 당신을 주제로 가벼운 결투가 세 번이나 벌어졌는걸요.=

“…….”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녀들이 그토록 진지해졌는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했었어요.=

여기사의 이야기에 안느는 물론 율리아=로랑의 뒤에 서있는 기사들과 성술사들의 시선까지 모이는 게 느껴졌지만, 환인은 태연한 기색으로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후후. 기사단장님이 엄포를 놓으셨거든요. 누구든 일반인과 얽혀서 문제를 빚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요.=

작게 웃은 율리아=로랑은 환인 일행을 잠시 둘러보곤 살짝 깊어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보다 놀랍군요. 근방의 이형종이 모두 정리되어있기에 실력 있는 중규모 파티가 내려왔나 했는데 설마 세 분이셨다니.=

“동료들의 덕을 크게 보고 있습니다.”

환인의 대답에 율리아=로랑의 시선이 안느로 향한다.

=아무튼, 이 계층이 어떤 곳인지는 파악하셨나요?=

“예. 동료가 강화 계층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대답하며 안느에게 눈길을 주자 =과연.= 풍성한 금발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기사단은 미궁 공략에 앞장서고 계신 분들의 안전을 도모할 겸 미궁의 변화 파악과 위험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16층에 계시는 거군요.”

=네. 수행을 겸하는 거죠. 우리가 16층과 17층, 18층을 맡고 다른 동료는 19층과 20층을 맡고 있어요. 요점은 이 계층에 등장하는 이형종은 대부분 강화된 특수 개체들이며 5계층에 출몰하는 이형종과 맞먹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18층부터는 술법 함정 또한 등장하니 만약 고등 함정 기능이 없으시다면 17층 아래로 내려가시는 것을 생각해보셔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함정에 대해 고민이 많던 차였습니다.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주어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후후후.=

갑자기 귀족 영애처럼 웃은 율리아=로랑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환인 님과 몇 마디 나누어보니 그녀들이 결투를 벌인 게 이해가 되는군요.=

환인은 뒤통수에 뾰족한 눈빛이 닿는 것을 느꼈다. 이건 안느의 시선인가.

그것을 율리아=로랑도 보았는지 빙그레 웃으면서 주먹을 왼쪽 가슴에 대는 경례와 함께 말했다.

=순찰을 계속하여야 하니 우리는 이만 가보겠어요. 몸조심하시길.=

그 말을 남기고 율리아=로랑은 파르히스트 기사들과 성술사들을 인솔해 남쪽 벽과 서쪽 벽이 만나는 곳의 통로로 빠져나갔다.

묵묵히 그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본 환인은 여자 친구들을 돌아보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가리켰다.

“우리도 올라가지.”

위층, 15층으로 돌아온 환인은 4계층과 비교하면 호랑이와 고양이만큼이나 차이나는 이형종을 정리하며 쉴 장소로 이동했다.

가까운 곳에 막다른 방이 없다 보니 1시간가량 움직여 지도의 33번 방에 도달한 환인 일행은 여러 조각의 썩은 가죽이 널린 방을 우선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엘프처럼 기다란 귀를 쫑긋거린 안느가 동쪽 벽을 보며 중얼거린다.

=이쪽 벽에 왠지 물소리가 들리는데.=

“벽 속에 지하수가 흐르는 거겠지.”

=그러려나.=

가로세로 20m 정도 되는 방의 청소를 끝내고 쿵, 천벌의 망치와 성벽의 방패를 내려놓은 안느는 차근차근 구세의 빛까지 벗어 내려놓은 뒤 굳어있는 몸을 풀기 시작한다.

=도령. 18층부터 술법 함정이 나온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내려가 볼 생각?=

이실리테에게 녹슬고 구부러진 철검을 받아 걸쇠에 고정한 환인은 질문한 안느를 돌아보았다.

크롭티를 입어 드러난 11자 복근, 그리고 티를 밀어내며 존재감을 발휘하는 작은 유실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술법 함정을 한 번쯤은 견식 해보고 싶다. 내일은 곧장 18층까지 내려가서 확인해본 뒤 16층과 17층을 돌며 이형종을 잡도록 하지.”

=훈련 좀 되겠네.=

바닥에 망토를 깔고 그 위에 앉은 안느는 본격적으로 필라테스와 비슷한 스트레칭을 하며 갑옷을 입고 싸우느라 배긴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해버리는 이실리테와 다르게 붙고 싸우며 적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팔과 허벅지 등에 퍼런 멍이 생긴 게 보인다.

환인은 비상의 등에서 짐을 내리는 이실리테에게 다가가 내리는 것을 도와주며 물었다.

“이실리테, 가방 내부는 여유 공간이 어느 정도 남았지.”

=20%정도예요. 장작을 다 버리면 15%정도 여유가 더 생길 거예요.=

“비상, 등짐의 무게는 괜찮나.”

쿠우~ 쿠으으.

멀쩡하다며 고개를 쭉 내밀고 으쓱거리는 비상.

목과 등, 날갯죽지 등을 긁어주며 오늘 노획한 장비를 떠올린 환인은 긴 시간 사냥은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16층에서 사냥한 이형종은 에틴 스켈레톤, 소울파이어, 해골 전사, 썩어 흘러내리는 비계인간과 악마의 날개 같은 게 달린 네발짐승의 시체로 다 합쳐서 23마리.

획득한 부산물은 몇 되지 않았다. 소울 파이어 3마리의 낡은 기사검과 기사 갑주 3벌, 해골 전사의 강철 검 세 자루와 강철방패, 강철 투구 3벌. 그리고 4급 위상석 하나.

끔찍한 악취가 나는 비계 인간이나 와이번 좀비가 아닐까 싶은 거대 날짐승 시체는 어느 부분이 돈이 되는지 아무도 몰라 이빨과 발톱 정도만 대강 챙겼다.

그렇게 챙긴 부산물과 장구류의 부피가 꽤 되는 편이니…….

짐을 모두 내리고 자기 전용 깔개에 앉아 후우­ 휴식하는 비상. 환인은 그 옆구리에 기대고 앉아 수첩에 이번 미궁에서 올린 수익을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보물상자에서 획득한 7kg 분량의 귀금속.

1~3계층에서 획득한 잡스러운 장비들 및 함정에 설치되거나 사용된 금속제 날붙이들 약 500kg(62은화).

1급 위상석 7개 (91은화).

2급 위상석 2개 (64은화).

자질구레한 뼈조각 이빨, 발톱들 약 5kg.

3급 회색 위상석 2개 (약 4금화).

소울 파이어 세 마리의 낡은 기사검 3자루와 멀쩡한 철판 갑주 3벌.

와이번 좀비의 발톱과 어금니 6개.

에틴 스켈레톤의 팔뼈와 정강이뼈, 허벅지뼈.

해골 전사의 강철 장비 3벌.

4급 위상석 1개 7.5금화.

‘수입이 꽤 크군.’

시세 조사를 하지 못해 대략적인 가치조차 내지 못하는 장비와 부산물을 제외하고도 대략 13금화 67은화다.

들어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낸 성과치곤 뛰어난 편이다. 앞으로 5~6일 정도는 더 머무를 수 있으니 수익은 점점 더 많이 늘어나겠지.

수첩을 접고 고개를 든 환인은 노출도 높은 숏팬츠와 크롭티 차림으로 이실리테와 자신의 장비를 손질하고 있는 안느와, 하얀 셔츠에 가죽 바지를 입고 저녁을 준비중인 이실리테를 볼 수 있었다.

미궁 6일 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사하고 아름다운 그녀들을 감상하다가 안느를 부른다.

“함정을 발견하는 마도기나 마도구도 있나.”

=음? 몰라. 있다는 소문은 못 들었어. 관심이 없기도 했고.=

=마도구는 종류가 굉장히 많으니까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요? 있어도 굉장히 비쌀 것 같지만요.=

=그건 왜 물어?=

이실리테의 대답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환인은 아까 만났던 기사들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기사 중에 함정 전문가로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아~. 짐승신 교단에 간단한 함정 감지 술법이 있다고 들었어. 기사들이 성술사를 둘이나 데리고 다니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거야. 회복하고 함정 감지.=

“……성술에 그런 것도 있나.”

=의외로 다재다능한 게 성술이야. 오죽하면 음식이랑 먹는 물 생성도 있을까. 맛은 끔찍하지만.=

“허.”

환인은 진심으로 놀랐다. 위상력으로 먹을 것을 만들어낸다니 그건 창조의 영역이 아닌가.

치유나 회복 쪽은 과학의 영역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물과 음식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너도 쓸 수 있나.”

=응. 쓸 수는 있는데 위상력 소모가 높은 편이라 지금은 안돼.=

“그건 아쉽군.”

=궁금하면 미궁에 나가서 써줄 게 그때 먹어봐.=

안느는 이실리테도 호기심을 비추는 걸 보며 으흐흐­ 악동처럼 웃었다.

그 끔찍한 걸 먹은 도령이랑 이슬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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