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11화 (211/813)

〈 211화 〉 205+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 * *

“…….”

사람의 혀가 저렇게나 길 수 있는 건가.

엉덩이를 뒤로 쭉 내민 자세로 벽을 잡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던 안느가 결국 자극에 패배해 주르륵 흘러내릴 때, 그녀의 보지에서 빠져나온 이실리테의 혀 길이는 일반인의 서너 배는 되어 보였다.

지구의 기네스북에 기록된 혀가 가장 긴 사람도 10cm 정도일 텐데 다른 종족이라서 그런가.

하긴, 이실리테는 인성족의 피를 이어받은 루크랑 족 여자다. 그럴 수도 있겠지.

다만 성성이 중에 혀가 긴 동물이 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호랑꼬리여우원숭이의 혀가 길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건 원숭이?지 성성이??이가 아니고.

‘15cm정도군.’

길긴 길다. 안느가 다리를 바들바들 떨다가 쓰러진 것도 이해가 간다.

=안느. 여기서 자면 감기들어.=

이실리테가 뽀얀 엉덩이를 드러낸 채 쓰러져있는 안느를 흔들며 말했지만, 안느는 반응이 없었다. 자극과 정신적인 충격에 정신을 셧다운해버린 모습이다.

=어휴.=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에 이실리테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옷차림을 바로잡아준 뒤 침낭 안에 밀어 넣어주었다.

환인도 문 쪽을 힐끔 바라본 뒤 이실리테에게 말했다.

“너도 그만 눈을 붙여라.”

=네, 주인님.=

무탈한 밤이 지나고 다음날, 비상에게 기대고 앉아 밤을 보낸 환인은 이실리테와 안느의 속삭이는 대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까지 핥을 필요는 없었잖아아. 내가,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보이지도 않고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어쩔 수 없었어.=

=으~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그렇게 깊게 넣을 필요는……!=

=안그럼 주인님 아기씨가 다 흘러내렸을걸. 만약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봐.=

=……손으로 받아서 먹는다거나?=

=손에 묻는 건 어쩌고? 주인님 앞에서 더럽게 손가락 핥는 걸 보여드리게? 아니면 그릇으로 받아서 먹는걸 보여드릴 거야? 주인님이 참 좋아하시겠다. 그치?=

=씨이……. 너어, 오늘 밤에 두고 봐. 내가 어떻게 하나 보여준다.=

=풋. 혀도 짧은 게.=

=으.=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두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이다.

요즘 들어 부쩍 둘이서 투닥이는 일이 늘었지만 환인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실리테와 안느의 사이가 어중간하게 좋은 친구 사이를 넘어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알아서 유대감이 깊어지겠지.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일어나자 이실리테가 재빨리 성수포를 가져와 환인에게 두 손으로 내밀었다.

=주인님, 성수포예요.=

“고맙다.”

입술을 삐죽거리던 안느도 금방 평소처럼 돌아와 성수포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도령, 이 성수포 아이디어 되게 좋은 거 같아. 설마 성수에 적신 수건을 보존 주머니에 넣어놨다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닦는다니.=

“청결은 중요하다. 손과 얼굴만 깨끗하게 하고 다녀도 평균 수명이 10년은 늘어날 정도니까.”

=……그 정도야?=

안느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실리테도 성수포를 놀란 눈으로 내려다본다.

정화의 힘이 담긴 성수는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인다.

오염물질의 소독에서부터 약한 마물, 마수의 퇴치에 유령이나 걸어 다니는 시체 같은 죽은 자의 퇴마에도 쓰이며 미약한 상처 치료의 효과도 있다.

소독 효과도 있기에 당연히 질병이나 독에도 약간이지만 효과를 보인다.

한마디로 열화판 만능약인 셈.

가르르르­

샌드위치와 과일, 우유로 아침 식사를 마친 안느가 가글하듯 입안을 헹구고는 이실리테에게 이~ 하며 눈처럼 새하얀 치아를 체크받는다.

보다시피 가글액 대용으로도 쓸 수 있을 만큼 유용하지만…….

환인도 성수로 입 안을 헹구며 빈 유리 술병에 담긴 희석한 성수를 보았다.

원래 성수는 50ml의 유리 용기에 담겨서 판매된다. 가격은 20동화로 한화 20만원 수준.

식사까지 마친 안느는 갑옷을 입기 전, 크롭티를 훌렁 벗어 반라 차림으로 몸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효과도 좋고 편하긴 한데 다른 사람들은 쓰기 힘들겠는걸.=

=성수포를 쓰려면 한 장에 4동화씩은 드는 셈이니까. 수건은 다시 세탁해서 재사용한다고 해도 청결을 위해서 매번 4동화씩 쓰는 사람은 없을 거로 생각해.=

이 말이 핵심이었다.

물 한 모금 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 무려 20동화다.

성수포 다섯 장을 만드는데 성수 한 병을 물에 희석시켜 사용한다. 아침저녁으로 얼굴과 손, 몸을 닦는다고 치면 5인 파티가 하루에 성수 2병씩 쓰는 셈이다.

여기에 양치하고 뭐 하고 사용하면 하루에 3병은 쓰는데, 청결을 위해 하루에 0.5은화 씩 쓰는 파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환인 일행은 사정이 달랐다.

성수는 물과 정화된 소금 그리고 치유술로 만들 수 있다. 즉, 성술사들은 위상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성수를 얼마든지 생산해낼 수 있다는 뜻.

그리고 안느는 투사와 성술사의 혼합 직업자다. 성수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

성수포로 가슴까지 깨끗하게 닦은 안느는 개운함을 느끼면서 식기 정리를 끝마치고 성수포로 손을 닦던 이실리테에게 물었다.

=이슬아. 우리 돌아가면 성수로 목욕해볼까?=

=음…… 솔깃하긴 한데 그랬다간 땅신님이 노하시지 않을까? 기껏 힘을 내려줬는데 목욕하는데 쓰다니! 하고 말이야.=

=어? 그런 거면 내가 제일 먼저 땅신님의 벼락을 맞을 거 같은데…….=

=……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도, 돈이 없을 때 성수를 조금 팔고 다닌 거뿐이야.=

=…….=

=…….=

자신들이 사용한 성수포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불안해하는 여자 친구들의 모습에 속으로 실소를 흘린 환인이 입을 열었다.

“땅신님께서 고작 그런 일에 벌을 내리실 만큼 편협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면 매일 밤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가끔 교단의 신전을 방문해 헌금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음…. 미궁을 나가면 오랜만에 교단을 찾아가야겠네.=

그러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안느였다.

6층, 2계층부터는 출몰하는 이형종의 종류가 하나 더 늘었다.

걸어 다니는 시체의 강화판인 시체 먹는 악귀, 식시귀가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조우는 ㄷ자 모양으로 꺾이는 통로의 코너였다.

오로로로롤­!

함정을 빨리 발견하기 위해 선두에서 통로의 벽과 바닥을 유심히 살피던 환인은 코너를 돌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거무튀튀한 것과 마주쳤다.

훅­ 끼쳐오는 불쾌한 냄새와 축축한 무언가로 귓속을 핥는 불쾌한 소리.

뻐걱!

말없이 천칭을 휘둘러 그것을 날려 보낸 환인은 그제야 황태처럼 말라비틀어진 시체, 식시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뭐야. 식시귀잖아?=

=1계층에서 안 나오길래 사라진 줄 알았는데 2계층에서 나오네요.=

강한 타격을 가슴에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던 식시귀는 얻어맞은 게 화난다는 듯이 오로로롴­! 기분 나쁜 소리를 지르며 재차 달려들었다.

고목 같은 팔과 손가락, 그리고 끝에 불거진 흉흉한 손톱.

마구 할퀴려 드는 동시에 물어뜯으려는 의도까지 숨겨놓은 공격이었지만, 환인은 손에 쥔 천칭을 일직선으로 내질러 식시귀의 머리통에 바람구멍을 내주었다.

긱, 기긱…….

안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나 부들거리는 식시귀를 밀어내듯이 걷어차자 나동그라져서는 움직임을 멈춘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앞세웠던 방패를 내린 안느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소리 진짜……. 도령 괜찮아? 어두워지니까 잘 보이지도 않던데 긁히거나 다친 덴 없지?=

“그래.”

기척 감추기가 제법이었다. 소리 지르며 달려들기 전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으니까.

‘숨어있던 건가. 생각하고 움직인 거라면…….’

징표를 꺼내 식시귀의 시체를 정화하려는 안느를 불러세운 환인은 잠시 그대로 지켜보았지만, 영혼은 빠져나오지 않았다.

‘감정이 아니라 그저 생전의 경험이 몸에 새겨져 움직이게 한 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으니 탐지 도구로 위상석의 유무를 살핀 이실리테가 안느에게 물었다.

=이형종의 분포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

=들어본 적 없지만 뭐, 있지 않을까?=

대답하며 잠시 고민한 안느는 천칭에 묻은 식시귀의 체액을 닦는 환인에게 말했다.

=도령. 이제부터 내가 앞장서는 게 나을 거 같은데.=

“…….”

폭이 5~6m 정도 되는 통로를 둘러본 환인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함정이 존재하는 미궁에서는 함정 전문가가 선두에 서는 게 맞는 일이다.”

좀 전처럼 이형종의 습격이 일어날 상황은 흔치 않으니 자신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하자 안느는 조금 우려하긴 했지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인의 뒤로 물러난 안느는 품에서 교단의 징표를 꺼내 방패 안쪽의 홈에 끼운다.

=안느, 그건 뭐야?=

=가까이에 있는 죽은 자를 탐지하는 술법이야. 이렇게 징표를 끼워두고 위상력을 조금 밀어 넣으면…….=

징표가 아주 희미하게 주황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상태로 방패를 이리저리 옮기자 빛이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쉴 새 없이 변한다.

=응, 거의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될까 싶었는데 제대로 기동하네.=

=죽은 자가 가까울수록 빛이 강하게 나는 거구나. 탐지에 좋은 거 같은데 왜 이때까지 안 썼어?=

=탐지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아. 그리고 미궁 밖에서는 죽은 자를 볼 일이 거의 없고 미궁 안에서는 그냥 돌아다니다 보면 만나니까……. 나도 잊고 있다가 방금 생각났어.=

듣고 있던 환인이 물었다.

“위상력의 소모는 어느 정도지.”

=하루종일 써도 부담 없는 수준이야.=

그 정도면 상관없겠군.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식시귀의 시체를 지나쳐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감옥 미궁 지하 6층의 특징을 꼽자면 해당 층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원형 투기장 같은 것과, 그 주변을 둘러싼 8개의 작은 원형 방의 존재다.

우선 그 주변의 작은 방을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이형종을 모두 정리한 환인은 마지막으로 원형 투기장 비슷한 장소로 일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한 번은 지나쳤던 통로, 60미터 남짓한 직선 통로를 걷던 환인은 문득 고전적인 트랩 발동 방식을 발견하곤 일행을 멈춰 세웠다.

=왜?=

대답 없이 돌멩이를 던져 통로 좌우를 잇는 아주 가느다란 실을 끊자 천장에서 녹슨 철제 샤프트와 날붙이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카가강­! 따당!!

녹슬긴 했지만 날카로운 날붙이들이 쇳소리를 내며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본 이실리테와 안느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뭐야 이거. 아깐 이런 함정 없었잖아.=

=누가 와서 설치한 걸까?=

“미궁이 한 짓이겠지.”

철제 샤프트와 장검날, 도끼날, 화살촉과 창날 등의 날붙이들은 좀 녹슬긴 했지만 제대로 단조된 물건들이었다.

팔면 1은화 정도는 나올 양이었기에 이실리테가 혹시 몰라 챙겨둔 시체의 망토를 꺼내 둘둘 말아서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함정은 말고도 여럿 있었다.

퓨퓨퓻!

=그냥 화살이네.=

일반 화살을 쏘는 함정.

푸화아아악!

=앗 뜨거.=

좌우 벽에서 화염방사기처럼 불을 확 뿜는 함정.

덜컹!

“아래층과 연결되어있나 보군.”

=여기서 떨어졌다간 다리 하나는 부러지겠어요.=

바닥이 꺼지는 함정 등.

안느가 혀를 내두른다.

=겨우 1계층이 바뀌었을 뿐인데 함정이 너무 많이 늘어난 거 아냐?=

=이러니까 노동자들이 깊게 안 내려오는 거려나.=

“6층의 구조가 함정 설치에 편리한 형태라서 유독 함정이 많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환인의 예리한 눈을 피하지 못한 함정은 모두 환인의 손에 부서지거나 망가졌고, 일행은 반나절을 소모한 뒤에야 6층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는 거대한 원형 방에 도달했는데…….

=이제야 힘 좀 써보겠네.=

절그럭, 차각!

=그러게.=

철컥.

“괴물방이군. 축복을 걸어주지.”

지름이 100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방 한복판, 30마리에 가까운 이형종이 모여있는 것을 목격한 이실리테와 안느가 앞으로 걸어 나간다.

두 명에게 저 정도는 식후 운동 거리 정도밖에 안 되지만, 어차피 영혼 구슬의 유지 시간이 1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이실리테와 안느, 비상에게도 최하급 정령으로 축복을 걸어주고 환인 자신에게도 건다.

그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방에 한가득 모여있던 이형종이 모두 쓸려나갔다.

한 번의 공격에 2~3마리씩 쓸어버리던 이실리테와 안느는 더 이상 서 있는 이형종이 없는 것을 보고 무기를 내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여긴 꼭 투기장 같은 형태네요. 아까 작은 방은 대기실 같구요.=

=근데 여긴 감옥이라고 하지 않았어? 마을인가 촌락 시절에 만들어진 감옥이라 들었는데 투기장이라니, 좀 이해가 안 가네.=

“미궁이 임의로 형성해낸 구조일지도 모르지.”

=들어온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그래.”

징표를 들고 돌아다니며 죽인 이형종을 정화하던 안느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교단에서는 미궁을 땅신님의 축복이라고 가르치지만, 이런 걸 보면 축복이라기보단 저주가 아닐까 싶기도 해.=

“…….”

신을 믿지 않는 자신이 종교인과 종교 관련 문답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수첩을 꺼내 6층에서 얻은 수입과 목격한 함정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걸 본 안느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이형종의 정화 작업을 묵묵히 해나갔고 이실리테도 탐지 도구로 위상석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참이나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서 돌아다니던 이실리테는 갑갑한지 무의식중에 마스크를 건드리려다 멈칫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니고 싸우고 하니까 갑갑하네요……. 주인님은 괜찮으세요?=

“그래.”

웨이트 밴드의 효과 중 기압을 낮추는 기능 덕분에 저산소 환경에 나름 익숙해진 환인이다.

그걸 기억해낸 이실리테가 조그맣게 =나도 유리 언니한테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야지.= 중얼거리자 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악마의 도구를 써서라도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 싸울 일은 의외로 많으니까.=

=으응. 아, 2급 위상석이다.=

유령이 소멸하며 만들어진 액체 더미에서 회색 위상석을 건져낸 이실리테는 그걸 잘 닦아 환인에게 넘겨주었다.

보통 이형종 15~20마리마다 위상석을 하나씩 얻는 편인데 2급 섞인 30마리를 잡고도 2급 위상석 1개만 나오다니, 운이 없다고 해야 할지.

그즈음 이형종을 모두 정화한 안느가 허리를 펴고 끄응,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거, 액토플라즘도 무슨 마도구 재료라고 들었는데 모아서 유리 언니한테 가져다주면 좋아하려나?=

=음, 챙겨 가볼까?=

액토플라즘. 액체라기보단 반 영체?? 물질로 영적인 존재, 비물질적인 존재에 타격을 주는 도구의 재료로 들어간다.

이실리테가 짐에서 일반 주머니를 꺼내 흩어진 액토플라즘을 담은 뒤 입구를 동여매고 보존 주머니에 집어넣자 그걸 목격한 안느가 으엑, 질색하며 걱정을 드러낸다.

=거기 넣었다가 막, 식자재랑 뒤섞이는 거 아냐?=

=안 뒤섞여. 그리고 혹시 몰라서 가방에 따로 담았잖아.=

=아, 알긴 알지만 그래도…….=

안느가 우물쭈물하며 계속 가방을 힐끔거리자 이실리테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네 가방에 넣을래? 파티 보존 가방은 전부 식재료나 식수가 담겨있어서 빈 가방이 없어.=

=응. 차라리 그게 낫겠다.=

냉큼 비상의 등짐에서 다시 액토플라즘 주머니를 꺼내 자신의 허리띠에 묶여있는 보존 주머니에 집어넣는 안느.

만약 속에서 터지고 쏟아져도 안에는 술밖에 없으니까 닦으면 된다. 하지만 식자재 주머니에서 터지면…….

끔찍한 상상을 해버린 안느는 속으로 헛구역질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거로 만든 음식은 절대 먹고 싶지 않아.’

=주인님. 정리 끝났어요.=

“그럼 다음 층으로 내려가지.”

수첩을 덮은 환인은 투기장 같은 공동 내부를 마지막으로 둘러본 뒤 일행을 이끌고 7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계산해보니 6층까지 총 215마리의 이형종을 정화했다.

안느의 성투사 의무 중 남은 이형종은 517마리.

운이 좋다고 할지, 이번 미궁 탐사에서 여유롭게 1000마리 정화를 달성할 듯하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