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 203 우둔=고트모그의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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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벽의 검문소와 미궁 출입구의 검문소에서 두 번의 거름망을 해주고 있어서일까. 미궁 내부에는 상상 이상으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파티와 마주치는 일 없이 각 층을 전체적으로 훑으며 함정의 확인과 이형종의 정화를 실행하며 지하 5층까지 무난히 도달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번 미궁행은 의뢰나 급한 임무, 시간 제약 등이 없는 탐사적인 의미가 강한 입장이다.
거기다 일행의 실력도 확실한 마당.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니 문제가 발생할 리 없는 것이다.
콰득!
가벼운 검격에 두개골이 박살난 해골 늑대가 와그르르 무너진다.
=빛이 닿지 않는 미궁과 비교하면 감옥 미궁의 이형종은 오히려 약한 편이네요.=
웨이포드의 미궁은 경험해보지 못한 안느가 되물었다.
=그정도로 차이나?=
=응. 거기 나오는 이형종은 지네하고 거미, 날개 달린 머리 등인데 독이나 질병, 마비도 쓰고 그랬거든. 숫자도 대여섯 마리가 한데 모여있기도 했고.=
그에 비하면 이곳 감옥 미궁의 이형종은 굼떴고 이동 속도는 느렸으며 해골은 내구도가 형편없어 위협이 되지 못했다.
거기다 출몰하는 숫자도 빛이 닿지 않는 미궁에 비해 적으며 문과 방의 존재로 야영시 이형종에게 습격당할 위험성도 낮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감옥 미궁 쪽이 쉬운 것으로 보이지만, 감옥 미궁은 층마다 존재하는 함정과 이리저리 꼬인 구조로 인해 지도가 없다면 길을 헤매기 쉬운 점이 있다.
전체적인 수준을 보자면 두 미궁의 난이도는 엇비슷하다.
수입 측면도 두 미궁의 차이는 얼마 없다.
빛이 닿지 않는 미궁은 이형종의 부산물과 위상석이 주요한 수입이지만, 감옥 미궁은 거기에 더해 보물상자도 출현하고 미궁에서 각종 금속품과 소재까지 입수 가능하기에 노동적인 측면에서는 감옥 미궁 쪽이 더 낫다.
하지만 시설을 해체해서 수입을 늘리지 않는다면 빛이 닿지 않는 미궁 쪽이 수익 면에서 뛰어나지만…….
=확실히 사람이 없으니까 좋은걸.=
=응. 신경 쓸 것도 적고 이형종을 많이 잡으니 위상석도 자주 나오고.=
환인 일행은 오히려 더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검문을 프리패스하다시피 하며 들어온 덕분에 층별 이형종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사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층까지 내려올 동안 이형종은 총 125마리를 정화했고 1급 위상석 6개와 은화 17닢 분량의 귀금속과 그럭저럭 무기의 형태를 하고 있는 녹슨 검, 녹슨 방패, 녹슨 사슬 갑옷 한 점씩을 회수했다.
이미 위상석만으로 약 78은화를 벌었다. 여기에 귀금속과 무구의 판매가를 더하면 1금화에 해당된다.
1금화라면 일반적인 3급 파티의 2~3일 수익이다.
평범한 파티라면 좋아서 입이 벌어질 일이었지만, 안느는 개인용 아공간 주머니를 2개 이상 들고 다니는 부자고 환인이나 이실리테도 그다지 돈에 연연해하지 않기에 그냥저냥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6층으로 내려온 일행은 1계층과 다른 분위기를 접할 수 있었다.
먼저 미궁이 좀 더 크고 넓어졌다.
층고가 5층보다 50cm는 더 높아졌고 통로도 3미터 정도에서 5미터까지 늘어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약간 폐쇄증을 자극받는 환경이었다면 2계층은 본격적인 미궁이라는 느낌.
규모도 이전 층에 비해 3배가량 커졌고 방의 개수도 2배 이상 늘었다.
이제부터 한 층의 탐색에 최소 3배의 시간이 들겠지. 열심히 움직인다면 하루에 2층 정도를 내려갈 수 있을까.
환인이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마주친 좌우 갈림길을 둘러보며 분위기를 살피고 있을 때, 벽을 만져보던 안느가 흠, 하며 말한다.
=벽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희미해진 건지 아니면 통로가 넓어져서 옅어진 건지 모르겠네.=
안느의 감상대로 통로 가운데 서면 천장이랑 좌우 벽이 잘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이 미궁에서 등장하는 이형종은 전부 기척을 숨기지 않으니 암습당할 일은 없겠지만, 어둠은 사람에게 원초적인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이실리테, 랜턴을.”
마도구인 철제 랜턴을 건네받아 불을 켜자 옅은 노란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주변을 밝힌다.
지금은 멀쩡하니 괜찮지만, 피로가 쌓일 경우 이런 어둠에도 불편함을 느낄테고, 그런 불편을 느끼기 시작하면 정신력이 실시간으로 깎여나갈 것이다.
불편함이 클수록 그 속도는 가중될 테니 미리미리 예방하는 것이 좋을 터.
그렇게 랜턴을 켜고 왼편의 방을 살핀 일행은 통로를 따라 이동하며 마주치는 이형종을 처리해나갔다.
“시체 셋. 유령 둘. 해골 쥐와 해골 개 둘이다.”
=통로가 넓어져서 나오는 놈들 숫자도 늘어났구만!=
안느가 투지를 발휘해 이형종을 향해 돌진하고 이실리테가 그 뒤를 따른다.
환인은 비상과 함께 뒤에서 대기하며 안느와 이형종의 전투를 눈에 담았다.
=오, 이것들 좀 더 세졌네!=
시체의 움직임이 사람에 좀 더 가까워졌고 반응속도도 확실히 더 좋아졌다. 유령의 이동 속도도 늘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1급과 2급 사이의 이형종.
두더지 잡기 하듯 시체의 머리를 쾅쾅 내려찍고 유령 두 마리를 자이언트 타워 실드로 후려쳐 소멸시키는 사이 안느의 좌우로 피해서 달려오는 해골 개 두 마리를 레드릭으로 부숴버린 이실리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골도 약간 더 단단해진 느낌이네요. 안느, 2계층 초입이 이정도라면 4계층부터는 확실히 강해지겠지?=
=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던 안느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형종은 3급부터가 본격적이니까. 4계층의 4급이면 싸울 맛이 날 거야.=
=그거뿐이야? 뭐 더 할 말 있는 거 같은데.=
처리한 이형종을 위상석 탐지 도구로 살피던 이실리테가 묻자 으음, 침음성을 흘린 안느가 캉, 워 해머를 어깨에 걸친다.
=감옥 미궁이 성장했잖아. 4계층에 뭔가 일이 벌어졌을 거 같긴 한 데 아닐 수도 있어서 섣불리 말하기 곤란하네.=
=4계층이면 16층?=
=어.=
“확실하지 않은 것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확인은 4계층에서 하기로 하고, 둘 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방심은 하지 않도록”
=응.=
=네, 주인님.=
아가씨들의 대답을 들은 환인은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는 비상을 확인한 뒤 옅은 빛에 뒤덮인 왼팔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만 야영지를 찾아야겠군.”
영혼 구슬의 유지 시각을 확인해본 결과 현재 시각은 오후 9시.
미궁에 입장한 지 12시간째다. 거기다 단숨에 6층까지 내려왔지만, 다들 직업자이고 단련도 빼먹지 않아 체력은 충분하다.
밤낮을 알 수 없는 지하 미궁이니만큼 좀 더 탐색을 진행해도 무방하겠지만…….
‘보름은 미궁에서 보내야 하는 만큼 페이스 배분해야겠지.’
=근처에 야영할만한 방이 있어? 5층에는 방이 전부 이어져 있던데.=
“그래. 북서쪽 끝에 적당한 방이 있다.”
=그럼 빨리 가자. 나 슬슬 배고파. 비상이도 배고프지?=
꾸우.
안느의 이야기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비상을 쓰다듬어준 환인은 6층의 지도를 떠올리며 38번으로 적힌 방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전, 안느가 이야기했던 것이 조금 신경 쓰인다.
4계층에 무언가가 벌어졌을 거 같다는 이야기.
“…….”
이형종이 강화되었다면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실리테의 검술은 토너먼트를 거치며 4급과 5급을 지나 6급에 닿을 만큼 강해졌고 안느는 애초에 6급 성투사.
비록 정령의 출현이 매우 적어 강령의 지원을 받지 못하지만, 4계층 이형종까지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면 함정 쪽이다.
이래저래 고민하며 다음 18번으로 표시된 방에 들어선 환인은 말만 한 크기의 해골 늑대와 마주쳤다.
가로세로 13m, 22m 정도 되는 내부. 방 자체는 넓었지만, 보관을 위한 창고 느낌의 난간이 동쪽 벽과 남쪽 벽에 붙어있어 두 명이 커다란 적 하나를 상대로 날뛰기에는 비좁다.
“이실리테.”
=네.=
이름을 부르자마자 레드릭을 어깨에 걸친 이실리테가 대가리를 잔뜩 낮춰 공격 태세를 보이는 거대 해골 늑대에게 쇄도한다.
달그락!!
거대 해골 늑대도 이실리테를 향해 뼈 소리를 내며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지만.
콰아앙!!
이실리테는 섬광처럼 대검을 내리꽂아 거대 해골 늑대의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피하고 자시고 할 것 없는 깨끗하고 깔끔한 일격이다.
징표를 들고 다가간 안느가 거대 해골 늑대를 정화하는 것까지 지켜본 환인은 흙과 자갈, 돌조각 등이 어지러이 널려진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때까지는 감옥처럼 그저 네모난 방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런 난간 같은 구조물이 있는 방은 처음이었기 때문.
부서진 투구가 방의 남동쪽 난간 끄트머리에 올려져 있었기에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해서 더더욱 자세히 살폈지만…….
‘별거 없군.’
그저 부서진 투구일 뿐이었고 평범한 방일 뿐이었다.
안느가 부서진 투구를 들어보며 중얼거린다.
=와. 이거 쓰고 있었던 사람은 머리가 깨져 죽었겠네.=
=방금 해골 늑대한테 죽은…… 건 아니겠네. 누가 지나가다가 버린 걸까?=
=글쎄?=
다음 방으로 넘어간 환인은 이번에는 빛바래고 찢어진 태피스트리가 북쪽 벽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람에 물결치는 밀밭과 지평선으로 지는 붉은 노을, 그리고 나무방책으로 둘러싸인 정감 가는 촌락 풍경.
여기저기 찢어지고 풍화된 태피스트리는 아직 도시가 되기 전의 파르히스트를 그리고 있었다.
이실리테도 그것을 보곤 호기심을 비춘다.
=이건…… 파르히스트인가요? 풍경이 왠지 정답네요.=
“미궁이 생전의 역할을 하던 건축물의 기억 같군.”
이전 방의 난간과 투구도 그런 거라면 납득이 간다.
3층의 ‘금은 저주받았다.’라는 문구도 그러한 경위에서 나타난 것일테지. 파르히스트는 주변에 금은광을 발견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하지 않았던가.
돈 문제로 감옥에 잡혀들어온 죄수가 벽에 글귀를 새긴 것이 아닐까.
태피에서 관심을 거둔 환인은 방을 한차례 살폈다가 북쪽으로 난 문에 다가갔다.
방의 구조물이나 장식이 대부분 이런 식이라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
달칵, 쐑
문을 연 순간 정면에서 날아든 화살 두 발을 천칭으로 툭툭 쳐낸 환인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 뭐야, 화살?=
=독화살이네……. 주인님 안 맞으셨죠?=
“그래.”
성주에게 받은 바람 가호의 반지가 있어 애초에 가만히 있었어도 안 맞았겠지만, 뒤에 있는 일행을 위해 일부러 쳐낸 환인이다.
독은 날에만 묻어있었고 화살을 쳐낸 것도 화살대를 친 거라 무기를 닦을 필요도 없었지만, 이실리테는 혹시 모른다며 천칭을 받아 가서 성수포???와 범용 하급 해독제로 깨끗하게 닦기 시작했다.
이실리테에게 천칭을 건네준 환인은 그사이 함정의 구조를 살폈다.
‘꽤 악의적인 구조군.’
안쪽에서 문을 열면 문이 열리며 바닥의 함정 스위치를 자연스레 건드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스위치가 건드려지면 정면의 벽에서 독화살이 날아오는 식이다.
문밖에서 문을 열 때는 자연스럽게 밟는 위치였기에 잘못했다간 등에 독화살 두 발이 돋아날 수도 있는 디자인.
안느가 함정을 밟지 않게 조심히 지나가면서 혀를 내두른다.
=2계층이라고 이제 독화살도 날아오네. 4계층에서 술법 함정도 나오는 거 아냐? 막 전이 함정이라던가 폭발 함정, 변화 함정 같은 거.=
=안느. 말 좀 조심하라니까. 말이 씨가 된다고 하잖아.=
인상을 살짝 쓴 이실리테가 으르릉거리자 흠칫 놀란 안느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아니! 이건 내가 말하든 안 하든 이미 결정되어있는 사항이잖아? 미궁이 뭐 내 말을 듣고 함정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구.=
=그래서, 앞으로도 아무 말이나 막 하시겠다?=
=……제숑합뉘다아앙!=
불리함을 간파했는지 먼저 사과하지만 말투에서 띠껍다는 티를 팍팍 내서일까, 이실리테가 안느의 등을 퍽 때린다.
깡!
=아얏. 도려어엉! 이슬이가 나 괴롭혀어!=
=내, 내가 언제?! 안느가 먼저……!=
함정을 살피며 알아낸 것을 수첩에 적고 있던 환인은 서로 아웅다웅하는 여자들에게 물끄러미 시선을 던졌다.
환인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서로에게서 떨어지는 이실리테와 안느.
저렇게 장난치면서도 사주경계는 확실히 하고 있다. 본분과 장소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을 훌륭하다고 해야 할지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큐우.
그런 여자들을 향해 한심하다며 우는 비상이었다.
[감옥 미궁 지하 6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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