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204화 (204/813)

〈 204화 〉 198 파르히스트 토너먼트

* * *

노비스, 익스퍼트, 마스터 세 가지로 분류된 파르히스트 토너먼트가 개최되었다.

셋 중 어느 것이 대축제의 핵심이냐 하면 보통은 6급 이상의 직업자가 출전해 겨루는 마스터 토너먼트라고 대답하겠지만, 실상은 익스퍼트가 토너먼트 이벤트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마스터 토너먼트 참가자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데에 있었다.

마스터 토너먼트의 출전자는 매년 6명에서 10명 정도뿐. 경기는 9회 안으로 끝나며 격렬한 대결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조용히 기술을 주고받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승부가 나기 일쑤. 한 경기에 최단 10초가 걸린 적도 있다.

그렇다 보니 승부가 결정 나도 관중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

하지만 익스퍼트는 다르다.

비록 마스터와 비교하면 수준은 떨어지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관중의 눈높이에 맞아떨어졌다.

화려한 볼거리와 치열한 결투가 열광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거기다 대충 10회 안에 끝나는 마스터 토너먼트에 비해 익스퍼트 토너먼트는 예선을 포함, 수백 번의 경기를 치른다. 참가자가 매년 평균 1,500명에 이를 정도기 때문이다.

본선 진출자 128명을 뽑기 위해 치르는 예선전도 여러 가지.

한 번에 수십 명을 연무대 위에 올려 세 명을 뽑는 집단전,

일정 기량 이상을 모아 치르는 1:1 승자진출 단기 토너먼트.

위상력과 기량을 측정해 뛰어난 사람을 뽑는 계측전.

이 세 가지 대전이 별로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참가자의 화려한 외관, 눈에 띄는 폭력적인 전투, 위상력을 끌어올려 휘두르는 화려한 기술은 사람들의 말초적인 자극을 한껏 만족시켜준다.

그런 예선을 통과해 128명의 로스터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자웅을 겨루는 익스퍼트 토너먼트 본선이기에 파르히스트 대축제의 꽃이라 불리우는 것이다.

와아아아~.

“음.”

익스퍼트 토너먼트에 비하면 노비스 토너먼트는 아이들의 장기자랑 같다고 환인은 생각했다.

실제로 관중들도 비슷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클라멘토 재학생들은 물론 인근 마을과 촌락에서 재능 있다, 강하다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출전한다. 덕분에 참가자는 익스퍼트의 두 배가량.

여기에 출전자들의 연령대가 10대라는 게 그러한 분위기의 흐름을 촉진했다.

노비스 토너먼트는 대규모로 진행되기도 하고, 노비스 상위 결정전은 익스퍼트 토너먼트 사이사이 휴식 개념으로 치러져 특히 더 그런 분위기가 조장된 것이다.

=20대 이상의 출전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게 221회 토너먼트부터라고 해. 물론 3급 이상 직업자의 출전도 좋게 안 봐. `애들 노는데 어른이 뭐 하는 거냐`라고 하는 거지.=

“전도유망한 신진기예의 발굴에 초점이 맞춰진 거군요.”

팸플릿을 읽어주는 유르파의 옆에서 안느가 키득거리며 이실리테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킥킥킥. 이슬이 너 진짜 노비스 토너먼트 나가려고 했었어?=

=으…….=

=진짜였나 보네?! 꺄하하하!=

=웃지 마! 난 저런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단 말이야!=

챙­ 챙챙, 카강­

와아아~!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들이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싸우는 모습에 이실리테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만약 주인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바꿔 먹지 않았으면 엄청난 창피를 당했을 게 아닌가.

노비스 토너먼트 접수장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받는 것을 상상해본 이실리테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루루는 왜 이걸 말 해주지 않았담? 이야기해줬으면 노비스 토너먼트에 출전해서 우승 상금을 타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안 했을 텐데.

[승자는 릴라곤스 마을의 엘시가!]

와아아아~!!

노비스 결승전이 끝나고 관중석의 환호성에 안느가 이실리테의 팔을 툭 쳤다.

=우린 그만 내려가자. 도령, 유리 언니.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주인님.=

“그래. 힘내라.”

=힘내렴~.=

이실리테와 안느는 일주일간 진행된 예선전, 1,229명의 참가자들 속에서 여유롭게 본선 진출권을 따냈으며 128강전에서도 가볍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래서일까, 파르히스트 토너먼트 소식지는 본선 진출 128명 중 강력한 우승 후보로 이실리테와 안느를 주목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들 외에 28명의 샛별도 더 존재했지만, 외모에서부터 실력과 장비까지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는 그녀들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이실리테는 붉은 대검이라는 칭호를, 안느는 은빛 철벽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정도.

아무튼, A블럭과 B블럭으로 나뉜 대진표를 확인하던 환인은 간단히 우승자를 결론지었다. 여자 친구들의 손에 끌려다니며 128강전을 모두 지켜본 덕분이었다.

‘이변이 없는 한 안느가 우승하겠지.’

128강전을 통과한 64명 중에는 토너먼트의 샛별이라고 소개된 30명도 있었지만, 자신의 방어술을 어느 정도 전수받은 이실리테와 안느 정도는 아니었다.

남은 64명 중 6급은 안느를 포함해 4명. 하지만 그 4명 중 6급에 걸맞은(환인 기준) 실력을 갖춘 자는 안느 뿐이었던 거다.

이실리테도 나름 4급 중견 수준의 아우라를 지녔다. 거기다 환인에게 가장 오래 지도받은 덕분에 기량은 출중했지만…….

‘실전 경험과 1.5급에 가까운 아우라량의 차이는 메꾸지 못하겠지.’

더욱이 자이언트 타워 실드를 내려놓고 광휘의 빛으로 방패를 바꾼 안느는 대인전 기량이 월등히 상승했다.

방패를 바꾼 이후 이실리테에게 밀리던 안느의 대련 전적이 비등해졌을 정도.

그러나 대련은 모든 직업적인 능력을 봉인하고 무기와 방어술로만 겨루는 식이었다.

대전에서 직업의 능력을 모두 개방하면 이실리테가 승리할 확률은 20% 미만이라고 환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연무대에 이실리테가 오르자 4만 명 관중이 지르는 뜨거운 함성에 경기장이 들썩거렸다.

=이야, 붉은 대검의 인기가 엄청난데!=

=당연하지! 저렇게 아름다운데다 크고 우람한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루잖냐! 거기다 저 특유의 차가운 표정…! 크으~!=

=히야~! 저런 여자와 사귀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 깨! 이미 애인이 있다고 하더라고!=

=뭐?! 진짜?!=

=나도 들었어! 그 애인이 은빛 철벽의 애인하고 동일 인물이라고 하던데 진짜일까?!=

=뭐어?! 씨발! 존나 부럽잖아!!!=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유르파가 키득키득 웃으며 팔짱을 끼고 속삭였다.

=자기, 얼굴 잘 가리고 다녀야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자신이 그 주인공이라는 게 알려지면 야밤에 습격받을지도 모를 정도로 주변의 분위기가 뜨겁다.

그때 이실리테의 맞은편에서 30인의 샛별 중 한 명인 인우족 남자가 쿵, 쿵, 발소리를 내며 연무대로 올라온다.

검은 소머리에 예전의 안느를 능가하는 근육질의 거구. 그 체격에 어울리는 중갑과 육중한 거대 전투 도끼.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를 그대로 구현한 듯한 남자의 아우라의 농도는 5급이었다.

그의 상대인 이실리테는 보편적인 루크랑 여성의 평균 체격이었기에 누가 봐도 이실리테가 불리해 보였지만…….

깡­ 퍼걱!

꾸어어억……?!

우와아아아아아—!!!

승부는 허망할 정도로 쉽게 났다.

서로 돌진, 상대 인우족 남자가 내려찍는 도끼질을 대검으로 살짝 비껴 흘리는 동시에 상대의 거대한 무기 뒤에 숨어 물처럼 뒤로 돌아간 이실리테가 당황하는 인우족 남자의 허리를 뒤에서 후려쳐 날려버린 것이다.

근력 위주의 각성 신체 능력에 무기에 부여한 위상력이 만들어내는 위력과 빈틈을 노린 일격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클린 히트였다.

중갑이 박살 날 정도의 충격에 허리가 부러진 인우족 남자가 무대에서 끌려 내려가 치료받는 모습에 주변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저렇게 맥없이 승부를 결정지을 정도라면 무기술의 차이가 직업의 급수와 체급의 차이마저 누를 정도라는 뜻이 아닌가.

상황은 안느도 비슷했다.

이실리테가 무기에 필요한 양만큼의 위상력을 밀어 넣어 무기의 강도를 올린 뒤 회피와 무기막기, 반격으로 상대를 농락하며 패퇴시킨다면…….

캉­!

=이 씹……?!=

쾅!

=끄악!!=

와아아아아아……!!

안느는 정석적인 실드 파이팅을 선보이면서 상대의 공격을 실드 패링으로 쳐 낸 뒤 훤히 드러난 빈틈을 자이언트 워 해머로 후려쳐 날려버리는 식이었다.

=끄르륵…!=

축구공처럼 튕겨 나간 늑대 귀의 여자는 늑골 뼈가 모두 박살 나 코와 입에서 피거품을 토해내며 경련을 일으켰지만.

=신관님! 사제님!=

판정관의 외침에 날듯이 달려온 신관과 사제의 치료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1차 치료가 끝나고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인랑족 여전사를 바라보던 안느는 자신에게 열광적인 환호성을 보내는 관중에게 방패를 든 손으로 흔들어주고 연무대를 내려가며 생각했다.

‘도령의 공격에 비하면 죄다 한숨 나올 정도로 밋밋해.’

겉보기에는 가녀리고 호리호리하지만, 이 호리호리한 몸 안에는 엄청난 근육이 압축되어있다.

겉으로는 60kg이 될까 싶은 몸이지만 실제 체중은 118kg이나 되는 것이다.

‘이상하다니까.’

이 모습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99kg이었는데 벌써 20kg 가까이 쪘다. 식단 조절했는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겉모습에는 변화가 없다는 게 무서울 지경.

아무튼, 이 모습이 된 이후로 싸우는 게 더 쉬워진 안느였다.

120kg, 여기에 장비의 무게를 더 하면 150kg이 가볍게 넘어간다. 이 체중과 투사로써 강화된 신체 능력, 여기에 환인의 방어술이 더해지면 상대의 체급이 어떻든 간에 방패로 후려쳐 튕겨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하지만 이것도 환인에게는 안 통한다.

하급 정령 강령의 힘으로 몰아치는 공격은 진짜 비명이 절로 튀어나오는 수준이다. 자신의 무기가 자기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흠씬 얻어터지는 그 기분은 안 맞아보면 모를 정도.

뭐, 덕분에 실력이 크게 늘긴 했지만…….

‘분명 처음에는 실력이 비슷비슷했는데.’

요즘은 환인의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있다. 무기를 방패로 튕겨내고 쳐내는 것도 도령이 일부러 당해주어서 성공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게 한숨을 내쉰 안느는 자신에게 붙은 이명, 은빛 철벽을 연호하는 관중들을 뒤로하고 대기실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익스퍼트 토너먼트가 시작된 이후 안느는 노는 것을 잊고 훈련에 몰두했다.

시합이 없을 때면 신체 사이즈가 변한 것 때문에 새로 구한 은색 철판 갑옷을 입고 무기와 방패를 맹렬하게 휘두른다.

자신의 시합이 아니더라도 시합이 있으면 경기장을 찾아가 참가자를 직접 살핀다.

피로해지면 환인에게 부탁해 원기 보충을 받고 성술로 신체의 피로를 날린 다음 또다시 무기를 휘두른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너도 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만이라도 토너먼트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했지만…….

=주인님께 건방진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평소처럼 해서 내는 성적이 진짜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나 돌려 까는 거지?!=

훈련을 잠시 쉬고 있던 안느가 발끈해서 땀투성이 몸으로 이실리테를 껴안았고, 이실리테는 질색하면서 안느의 젖가슴을 쥐고 비틀었다.

=아야얏! 아파!=

환인은 신체의 고통에 취약한 부분을 쥐어뜯으며 안느를 밀어내는 이실리테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확고한 의지를 다지고 행동하는 거라면 존중해주어야지.

토너먼트는 일정에 따라 차례대로 진행되었다.

이실리테와 안느 두 명은 64강전에 이어 32강전과 16강전까지 승승장구해 A조에서는 이실리테가, B조에서는 안느가 본격적인 우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중간에 5급 적赤술사와 붙게된 이실리테는 술법사와 싸운다는 생경한 경험에 살짝 고전했고 안느는 사격을 주무기로 삼는 엽사와 맞붙어 경기를 오래 끈 것이다.

물론 이것은 환인의 시점이었다.

다른 관객들은 =술사도 붉은 대검한테는 안되네.=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환인이 보기에는 술사의 공격을 피하거나 쳐내는 게 어색하고 빈틈이 많이 보였지만, 관객의 눈에는 막거나 피하고 몸에 위상력을 얕게 둘러 받아내며 상대의 위상력 소모를 유도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 적술사와 대전은 비교적 싱겁게 결정 났다.

자신의 위상력 소모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적술사가 공격 빈도를 줄인 순간, 이실리테가 레드릭으로 연무대를 내려쳐 벽돌 파편을 띄운 뒤 대검의 면으로 후려쳐 탄환처럼 날렸고, 그 공격에 당황한 적술사가 잠깐 허둥거린 틈을 타 맹렬히 돌격.

=불이여!=

적술사가 화염벽을 세웠지만 레드릭으로 올려 치는 동시에 대시 점프, 화염벽을 베고 넘어가 적술사를 검면으로 후려쳐버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다.

물론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화염벽을 통과한 탓에 하얀 피부에 1도 화상을 입었고 머리카락도 그슬렸지만.

=짐승신님의 자비가 이곳에.=

5급 신관의 치유술 덕에 경기 시작 전의 모습을 되찾아 이실리테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흉해진 얼굴로 주인님의 밤시중을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안느는 16강전에서 사격을 주특기로 하는 엽사와 붙었다.

특성상 원거리 공격에 취약한 안느는 위상력으로 화살을 만들어 쏴대며 거리를 좁히지 않으려 계속 물러나는 상대로 끈질기게 버텼고 결국은 20분에 걸친 압박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져, 졌습니다.=

삵의 귀를 한 여자가 침울하고 자괴감이 가득한 모습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선언하는 모습에 관중은 잘 싸웠다며 두 사람에게 함성을 퍼부었다.

경기 개시 후 엽사 여자는 곡사, 직사, 회전시, 폭시, 연사 등 화려한 활 솜씨를 보이며 안느를 시종일 몰아갔다.

몰아갔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모든 공격은 화살에 불어넣은 위상력의 1/4도 안 되는 양으로 흘려버리거나, 각도가 좋을 땐 반사하기도 했으며 피할 수 있는 것은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위상력이 반절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엽사 여자는 초조해졌다. 갑옷도 맞춰야 손상을 줄 텐데 갑옷은커녕 모든 화살이 저 빌어먹을 연모양 방패에 다 막히고 있다.

여기에 자신이 실수할 때마다, 혹은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심장에 비수를 찌르는 것처럼 단거리 돌진으로 간격을 좁혀온다.

쿵, 여자의 진각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엽사 여자는 심장에 주먹질을 당한 것처럼 흠칫흠칫 놀랐다.

급기야 허용 소지 한계 개수인 20발의 화살을 꺼내 상황의 반전을 노렸지만,

=이야압!!=

씨아앙­!

팅.

자신은 위상력을 한계까지 담아 날렸는데 저쪽은 참새 눈물만 한 양으로 방패를 살짝 움직여 물처럼 흘려버렸고, 어떨 때는 더럽게 큰 워 해머로 쳐서 떨어트리기까지 했다.

결국 위상력도, 체력도, 화살도 모두 바닥난 엽사 여자는 지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항복을 선언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이실리테의 4강전에서 상대편을 확인한 환인은 눈을 살짝 빛냈다.

이실리테의 상대는 자신에게 기세 좋은 프로포즈를 던졌던 웨이포드 상급 무관장의 딸, 푸른 호랑이의 핏줄을 이은 하이엔=조드였던 것이었다.

눈을 빛냈던 것은 이실리테도 마찬가지였다.

‘주인님한테 프로포즈한 염치도 모르는 여자.’

백려강의 호위인 레심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들었었다.

주인님에게 시비 걸다가 얻어터졌고, 그 덕분에 주인님의 실력을 눈치채놓고는 결혼해달라고 졸랐다는 것. 그것도 애정이나 사랑이 아니라 지극히 물질적인 이유로!

이실리테는 분노에 가까운 투기를 내뿜으며 긴장한 하이엔=조드에게 쇄도했고…….

=승자, 붉은 대검 이실리테!!!=

우와아아아아아—!!!!

환인에게 배우고 안느를 통해 숙달시킨 최고급 방어술로 하이엔=조드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다가 빈틈을 잡아 오른쪽 허벅지와 어깨를 박살 내버렸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이엔=조드의 권각술 수준도 높았던데다 루크랑 종족의 선천 능력인 수인화까지 개화했는지 신체 일부를 푸른 호랑이화化해 맞서왔던 것.

질 수 없다며 투기를 일으킨 하이엔=조드였지만, 질 수 없는 것은 이실리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승리는 이실리테에게 돌아갔고 하이엔=조드는 사제와 신관에게 치료받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흑……. 인… 당신을 쫓아갈 수 없게 됐어…….=

=…….=

4급 전사의 몸으로 5급 투사, 그것도 상급 무관의 상급 교관을 패퇴시킨 이실리테에게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어지간해서는 급의 차이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승리를 쟁취해낸, 흔히 볼 수 없는 미녀 대검 전사에게서 관객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그리고 안느 또한 4강 대전 상대이던 6급 창전사와 서로 위상력을 폭발시키듯 관객들이 원하던 화려하고 사납기 짝이 없는 전투를 벌였고.

와아아아아—!!!

연무대의 70%가 완전히 박살나는 격전 끝에 창전사의 무기를 우그러트리다 못해 두 팔까지 뭉개버린 안느가 결승 진출권을 따냈다.

관중은 열광했다.

그토록 바라던 여신급 미녀들의 대전이 성사되었다.

얼마 안 가 패배하리라 여겼던 기량 중점의 4급 전사.

대다수가 우승하리라 점친 6급의 성투사.

이번 토너먼트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전이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