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막간 이실리테의 싱글벙글 요리수업
* * *
대련 훈련 아침 식사의 오전 일과를 끝마친 이실리테는 환인이 비상이와 함께 함정술 교육을 위해 외출한 사이, 쿠르티를 타고 시내 번화가로 나왔다.
쿠에~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서인지 기분이 좋은 듯한 콧소리를 내는 쿠르티에게 이실리테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사과한다.
=미안해. 정원에서만 지내느라 답답했지?=
쿠엣~
=후후.=
작게 웃은 이실리테는 주변에 즐비한 고급 음식점을 둘러보며 살짝 고민에 빠졌다.
어제 이실리테가 누구보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흠모하고 사모하는 주인님이 지나가듯 짧게 중얼거린 것을 들은 것이 발단이었다.
‘커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상황과 주인님이 말씀하실 때의 느낌에 따르면 ‘커리’라는 것은 음식이 틀림없었다.
커리라는 걸 들었을 때 주인님께 여쭈어봤다면 커리라는 것을 찾을 힌트가 풍부해졌겠지만.
‘주인님 몰래 배워서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
다소 소녀틱한 생각의 발로로 이실리테는 안느와 유르파에게도 잠시 볼일이 있어 외출한다는 말만 남기고 홀로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어디를 가야 커리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아루루에게 알아봐달라고 하면 금방 찾아주겠지만, 아루루에게 부탁하는 것도 조금 그렇다.
‘아루루는 착하긴 한데 입이 너무 가벼워.’
그 아이에게 말했다간 비밀이고 뭐고 없다. 안느와 주인님에게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겠지.
뭐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실리테였다. 친화력은 그러한 입담에서 나오며 도시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기술,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일테니까.
윤이 나는 갈색 가죽 바지에 하얀 셔츠, 몸매를 잡아주는 가죽 코르셋을 위에 입고 나온 이실리테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줄도 모르고 고민에 잠겨있다가 결단을 내렸다.
=저기요. 잠시 말씀 좀 여쭈어봐도 될까요?=
이실리테의 여신같은 외모를 힐끔거리며 지나가던 사슴 머리 남자가 화들짝 놀리며 대답한다.
=네, 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제 뿔을 어떻게 가꾸는지 궁금하세요? 아니면 털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아니요. 혹시 주변에 커리라는 음식을 하는 가게를 아시나 싶어서요.=
=어, 그건 모르는데.=
=네. 그럼 수고하세요.=
멍청하게 서 있는 인록족 남자를 뒤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좀처럼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이실리테는 입을 꾹 다물더니 쿠르티를 재촉해 가장 가까운 성문으로 향했다.
=여기예요!=
=고마워요. 여기 사례비예요.=
=감사합니다~!=
도시 가이드 아이 중 커리에 대해서 아는 소년을 뽑아 위치를 안내받은 이실리테는 뭔가 매콤하면서도 강렬한 음식 향기가 나오는 음식점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유세프의 커리 전문점]
역시 가이드 아이들에게 물어보길 잘했어. 아니었다면 찾는 데만 며칠이 걸렸을 거야.
이실리테는 거두절미하고 가게로 들어가 가게 주인을 붙잡고 레시피를 알려달라 부탁했다.
=모시는 주인님께서 커리를 드시고 싶어 하셔서 그래요. 부탁드려요.=
=아니, 요리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덥석 가르쳐줄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그분이 드시고 싶다면 저희 가게로 모셔 오시면 되잖습니까.=
=저희는 여행자예요. 도시를 떠난 뒤에 먹고 싶어지면 곤란해지니까…… 부탁드릴게요. 어떻게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저도 이 요리를 배우는데 돈과 시간을 꽤나 썼단 말입니다. 직업자라고 무리한 요구하지 말고 얼른 나가…….=
=10은화 드릴게요. 제가 꼭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10은화요?=
이실리테는 식당 주인이 고민에 빠진 것을 눈치채고 가격을 더 올렸다.
=15은화 드릴게요.=
=으, 음. 그래도…….=
=20은화 드릴게요. 절대 배운 요리로 음식점을 차리지 않을 테니까 부디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도, 돈 때문이 아니라 아가씨가 주인님을 생각하는 마음씨가 갸륵해서 알려드리는 거예요.=
=물론이에요. 감사합니다.=
나를 돈으로 사려 하는 겐가! 날 모욕할 셈인가!
……라고 꾸짖기에는 식당 주인에게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커리를 팔아 20은화의 순수익을 올리려면 족히 2만 그릇을 팔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여신처럼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요리법을 전수하던 식당 주인은 ‘무섭군. 이게 천재인가…!’ 속으로 전율했다.
자신이 수년을 노예처럼 일해 배운 커리 향신료 종류와 관리, 손질법, 배합법과 요리법을 여신처럼 아름다운 아가씨는 고작 이틀 만에 모두 흡수하듯 배워버린 것이다.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그…… 약속하신 겁니다. 적어도 저희 가게 근처에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못 해도 한 달 뒤에는 도시를 떠날 거니까요.=
그리 말하고 떠나가는 아가씨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멍청히 바라보던 식당 주인은 쩝,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직업자 아가씨가 주인님 주인님 하면서 공경하는 사람이라니.=
자신에게 커리를 배우며 보여준 이런저런 모습을 떠올리던 식당 주인은 부러움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저렇게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자에게 섬김 받으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밤마다 밤시중도 받겠지? 주인님, 주인님 하면서.
저 아가씨의 반응을 보면 주인은 틀림없이 남자일텐데 얼마나 잘나고 능력이 뛰어나길래 저런 여자를 휘어잡은 건지 식당 주인은 정말로 궁금했다.
=케헥!우어, 매웟! 하앜!=
=흡, 흐읍……. 저기… 이슬이 아가씨? 나 물 좀…… 콜록.=
이실리테는 매워서 찔끔 눈물을 보이거나 파래진 얼굴로 콜록콜록 기침하는 안느와 유르파의 반응에 걱정이 max를 찍었다.
이게 진짜 본고장 커리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그래도 향과 맛이 강한 거 같아서 절반으로 줄였는데도 저러다니.
주인님도 저러시면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돌려받아서 새로 만들어드릴까?
유르파에게 물 대신 식초를 건네준 줄도 모르고 초조해하며 주인님을 바라보던 이실리테는.
“……굉장하군. 본고장 커리 수준이야.”
=저, 주인님? 드시기 힘드시면 뱉으셔도 돼요.=
“아니, 맛있군. 오히려 향수가 느껴져. 잘 만들었다.”
환인의 칭찬에 속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맛있으시다니, 다행이야!
“배우기 어려웠을 텐데, 고생했군.”
그리고 이어진 칭찬 2연타에 이실리테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끄으윽.=
=허읍, 유리 어니?! 괘아나!? 저시차여!=
뒤에서는 식초를 들이마시곤 까맣게 죽은 얼굴로 쓰러지는 유르파와, 매워서 입술이 팅팅 부운 안느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유르파를 붙잡아 흔드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실리테는 기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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