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164 성도 파르히스트
* * *
이실리테와 안느가 해골 거인의 부산물을 도로 챙기고 있을 무렵, 아클라멘토의 교수 중 한 명이 다가와 정중한 태도로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잠시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아클라멘토의 교수, 고슴도치를 닮은 머리의 남자는 6급의 희소한 아우라를 지닌 직업자가 아니라 아무 아우라도 없는 남자가 대답하는 것을 보며 눈을 한차례 빛냈다.
그리고 남자의 기도에서 직업자 특유의 느낌을 받으며 두 번 놀라움을 느꼈다.
겉보기에는 무직자인데……?
=기사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성도 파르히스트 아클라멘토 성립 대학원 미궁생명학과의 릭시위니 게르기입니다.=
“환인입니다. 파티의 리더입니다.”
악수를 나눈 릭시위니 교수는 잠시 환인을 이채 섞인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윽고 슬픈 눈으로 다섯 개의 시체 자루를 돌아보며 묻는다.
=기사분들께 들었습니다. 저 아이들을 발견하신 분이 환인 씨라고 말입니다. 정말…… 저 자루 속의 아이들이 정말 저희 학원생입니까?=
“사망하신 분들의 소지품을 시라크 부대장님께 전해드렸더니 여러분께 연락을 넣었습니다. 부대장님의 판단이시니 맞지 않을까요.”
=아아…….=
양손을 마주 잡은 릭시위니는 재차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기도문을 읊는다.
환인은 그런 릭시위니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시체의 확인이라면 두어 명만 와도 될 텐데 왜 다섯이나 온 걸까. 역시 죽은 여자들은 상류층 집안의 자제였나? 하지만 반응이 평범한 상류층이라기에는 심상치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때 교수 세 명이 품에서 비닐과 비슷한 재질의 넓은 돗자리 다섯 개를 꺼내 깔고 그 위에 자루를 하나씩 쏟아붓는다.
피 냄새와 함께 육편이라 할만한 살점과 부러진 뼛조각 등이 확 퍼져나간다.
사람을 절구에 넣고 빻은 듯한 흔적에 주변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인상을 쓰는 가운데 기도문을 암송한 릭시위니가 입을 열었다.
=먼저 우리 학원의 아이들을 미궁의 먹이로 내버려 두지 않고 챙겨주신 것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후 확인 절차에 따라 학원에서 응당한 사례를 드릴 겁니다.=
“사례를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닙니다. 희생당한 분들의 추모에 쓰셨으면 좋겠군요.”
=아아,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만, 선한 행위에는 그에 걸맞은 보답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저희 학원장님의 뜻이시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
예감이 좋지 않다. 뭔가 질척거리면서 달라붙는 꼴이 현장검증에 불려 다닐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혹 괜찮으시다면 저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 경위를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의 전개가 이어지려 한다.
여기서 끊지 않으면 매우 귀찮아질 것을 예감한 환인은 살짝 불편하다는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클라멘토의 학식 있는 분들은 선의의 뜻으로 시신을 수습해온 사람을 이리저리 불러대며 괴롭히는데 취미가 있으십니까?”
=…….=
말문이 턱 막힌 얼굴로 어버버하는 릭시위니 교수에게 환인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내보인다.
“게르거 씨. 저와 제 일행이 평범한 모험가로 보이십니까?”
릭시위니의 시선이 환인의 뒤에 서 있는 안느와 비상, 그리고 이실리테를 스쳤다가 환인에게 다시 안착한다.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평범한 모험가들이 사고로 사망한 분들의 시신을 수습해 나올 것 같습니까?”
=그러지 않겠지요…….=
“부디 이쪽에도 이쪽의 사정이 있음을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눈에 띄게 풀죽은 릭시위니의 모습을 보면 직책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한 느낌이다.
환인은 그런 릭시위니를 잠시 응시하다가 시체를 발견하게 된 경위를 시라크 부대장에게 말했던 대로 육하원칙에 따라 짧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말을 덧붙인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하겠지만, 저희도 할 일이 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말하며 안느를 눈짓으로 가리키자 릭시위니는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겠습니다. 귀찮게 해드려서 정말…… 면목 없고 송구스럽습니다.=
정중히 사과한 릭시위니는 동료 교수들에게 돌아갔다.
환인은 시체의 형태를 짜 맞추는 교수들을 바라보다가 이실리테와 안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만 돌아가지.”
=네.=
=응.=
안느는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 눈치였지만, 바로 앞에 들은 당부가 있어 입을 다물고 있는 모양새다.
하늘은 이미 까맣게 변했다. 이야기는 집에 돌아가서 할 생각으로 일행을 챙겼을 때 시라크 부대장의 부관이 다시 찾아왔다.
=환인 공.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예.”
=부대장님께서 정신이 없어 미처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혹시 중핵의 잔해와 부산물을 매각하실 계획이라면 저희 미궁 관리부대를 고려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가는 시세의 1.3배 정도로 쳐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해골 거인의 부피와 질량, 등급에 미궁 중핵이었음을 고려한 가치는 금화 6닢이라고 알려준다.
환인은 뼈 소재의 특성상 비싼 값은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5급 수컷 우르거의 불알을 포함한 사체는 시세가 금화 3닢이었다. 다만 젊은 수컷이며 품질 상태가 특출나게 양호했기 때문에 비술사 조합의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9금화를 냈을 뿐.
그에 비해 해골 거인은 뼈뿐이다. 다만 미궁 중핵이라는 특징 때문에 금화 1닢, 혹은 2닢 정도 하지 않을까 했는데 6금화라니.
더욱이 이들에게 인상을 좋게 유지해야하는 이상 팔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핵이라는 점 때문에 비싼 가격대가 형성되어있나 봅니다.”
=예. 위상력 농도가 진해서 분쇄해 시약 재료로 활용될 겁니다. 전부 부대 내에서 소비되겠지요. 경매에 올린다면 시세의 1.4배는 받을 수 있으실텐데, 고민하지 않고 저희에게 판매해주시는 것, 감사드립니다.=
병사가 끌고 온 수레 세 대에 가져온 해골 거인의 뼈다귀와 뼛조각을 모두 붓고 금화 6닢을 챙긴다.
=혹시 장비품과 위상석은…….=
“장비는 거대한 통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습니다만 딱히 특별한 소재도 아니었고 마도기도 아니었기에 버렸습니다. 위상석도 나오지 않았지요.”
=저런. 운이 좋지 않으셨군요.=
위로를 전하는 부관을 향해 환인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미궁에서 오래 살아남는 비결이지요.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예. 기사님도 고생하십시오.”
그리고 비상의 고삐를 쥐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환인은 무엇하나 거짓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실리테와 안느는 그런 환인을 보며 눈이 뜨였다는 듯이 속으로 감탄했다.
말이 아무리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진실만을 말했는데도 오해를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화술이라니.
모르면 눈뜨고 코 베일 수준이 아닌가.
‘무기가 마도기화 했다면 기사단이 관심을 보일 게 당연하지.’
더욱이 그 무기는 중철 대검으로 질 좋은 강철로 튼튼하게 제작된 뛰어난 무기다. 기사단이 강제로 매입하려 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숨기는 것이 당연한 것.
그렇게 아클라멘토 교수들이 시체를 펼쳐놓은 장소를 지나려던 환인은 문득 한 명이 눈에 밟혔다.
하얀 여우 귀에 하얀 머리카락.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듯한 외모. 로브는 신전의 사제 로브와 흡사하지만 좀 더 세밀한 무늬가 수 놓여있었고 어깨에 두른 망토는 얇고 치렁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아우라의 농도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소용돌이처럼 느릿하게 흐르는 성술사의 아우라가 너무 짙어 불투명하게 보일 정도다. 안느도 그것을 보고 놀라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와. 저 정도 농도면 7급하고 8급 사이인데. 짐승신님의 교단 신관장인가?=
여자 성술사는 나무뿌리로 복잡하게 얽은 듯한 지팡이를 쥐고 있었는데 다섯의 고기 더미에 무언가 가루 같은 것을 뿌리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
환인은 영혼 시야를 전개해 여자 성술사를 살폈지만 눈여겨볼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수준의 영기와 평범한 연녹색 색계통일 뿐.
온몸이 영기 덩어리인 안느를 잠깐 쳐다보았다가 여자 성술사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성술사가 쥔 지팡이 끝에서 환한 백색 빛이 아름답게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광장의 절반을 뒤덮을 정도로 퍼져나갔다가…….
=허어!=
=우와…….=
=오오오.=
다섯 갈래로 나누어져 각각 시체로 스며들어 간다.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빛이 스며들수록 짓밟혀서 반쯤 부서지거나 박살 난 두개골을 기점으로 빛에 물들더니 뼈가 붙고 그 위를 살점과 힘줄이 뒤덮어가기 시작한 것.
빛에서부터 재생되며 육편??일 뿐이던 고기 조각이 점차 사람의 형태를 되찾아간다.
=세상에…….=
이실리테의 입에서 놀람과 경외의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이실리테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놀라워한다.
환인은 다른 의미로 놀라는 중이었다.
설마 죽은 자를 살리는 건가?
‘그럴 리 없다.’
만약 사자소생死者??이 가능했다면 촌락과 마을은 몰라도 웨이포드에서는 그러한 사회적 문화를 일부라도 엿볼 수 있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환인은 공동묘지를 돌아다니고 영혼을 모아 성불하면서도 그러한 사자소생의 키워드를 눈치챌 느낌도, 자그마한 힌트나 단서도 접하지 못했다.
그러니 저것은 부서지거나 박살 난 시체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재구성의 술법 같은 거겠지.
지구에도 큰 사고로 인해 엉망으로 훼손된 시체를 깁고 화장(메이크업 의미로)해서 최대한 생전의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짜깁는 직업이 있다.
그 직업을 알고 있는 환인이었기에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잠시 후 빛이 모두 스며든 사람이었던 것은, 환인이 기억하고 있던 여자들의 영혼과 똑같이 생긴 알몸의 여자들로 변해있었다.
만에 하나 가능성이 있기에 영혼 시야로 시체를 살펴본 환인은 죽은 자만 보이는 특징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심장과 자궁에 영기가 한톨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영혼도 존재하지 않고 온기??라고 할 수 있는 영기도 전무하다.
‘저러면 수십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일 뿐이지.’
그나마 유지되던 환인의 관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기점으로 모여있던 군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뭐…….=
=진짜? 진짜라고?=
=이런 말이 안 되는…….=
=어째서…….=
웅성거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심한 것은 기사들이었다.
마치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 속에 시라크 부대장은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고 아클라멘토의 교수들도, 시체를 원래대로 되돌렸던 세련된 인호족 여사제도 얼어붙은 상태다.
“…….”
환인은 크게 문제 될 상황임을 간파하고 소리죽여 일행에게 속삭였다.
“즉시 조용히 빠져나간다.”
마침 모두의 시선은 재생된 여자들의 시체에 집중되어있었다.
세 사람과 한 마리는 누구의 이목도 끌지 않고 조용히 백원벽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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