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158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 * *
지상층으로 올라오기 전, 안느는 환인에게 한 가지 지시를 받았었다.
‘안느. 1층에 있을 인간 부스러기들의 이목을 최대한 끌어주었으면 한다.’
‘수단과 방법은 네게 일임하지.’
지시를 받을 때만 해도 어떻게 해야 이목을 끌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이형종이나 괴수, 마수를 상대로라면 방패를 두들겨 쇳소리를 내면 금방 이목이 끌렸지만, 미궁 강도들은 지성이 있는 인간이 아닌가.
그런데 막상 1층에 올라와 미궁 강도로 추측되는 인간 사냥꾼들과 마주했더니 일이 아주 쉽게 풀렸다.
조금 이죽거리면서 정론만 꺼냈는데도 환인이 말한 어그로가 팍팍 끌렸던 것.
=아하하하. 머릿수만 믿고 멍멍 짖는 거야? 누가 강아지족 아니라고 할까봐? 귀엽네~.=
=저 썅놈이 진짜!=
=뭐이씨?=
......그 와중에 자길 남자로 봐서 울컥하는 안느.
그렇게 어그로를 끌던 중 안느는 뒤에 서 있던 환인이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다. 직후…….
끄악!!
컥?!
엽사 넷에 술사 둘의 목과 가슴, 어깨, 허벅지 등에 단검 자루가 돋아나고 일부는 허물어지듯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
그것이 신호인 양, 안느는 조건반사처럼 움직여 자이언트 타워 실드를 내세워 돌진, 열네 명(2명은 은신) 중 가장 등급이 높은 4급 전사인 인간 사냥꾼을 벽에 처박았다.
콰과광!!
뿌지직!
굉음과 함께 벽 일부가 무너지며 벽과 방패 사이에 끼인 여자는 눈알이 튀어나오며 입으로, 항문과 질 구멍으로 내장을 케첩처럼 뿜어내며 즉사한다.
=…….=
=……?=
갑작스레 벌어진 사태에 인간 사냥꾼들이 얼어붙었을 때 이실리테 혼자 소리 없이 움직여 가슴과 어깨에 단검이 박혀 신음하는 술사 두 명에게 질주,
스걱
힘과 원심력을 십분 이용해 중철 대검을 초승달처럼 휘둘러 쳤다.
푸확 퍽!
원래의 강한 힘에 강령까지 받은 근력은 사람의 허리를 썩은 짚단처럼 잘라버리며 상체와 하체를 나누어버린다.
망토를 걸친 남자 동료의 상체가 허공에서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며 내장과 피를 사방에 뿌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두목 격의 여자는 뒤늦게 사자 꼬리를 치켜올리며 고함쳤다.
=……씨발, 쳐!!=
팔짱을 끼고 실실 웃던 조금 전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은 두목 여자였다.
내려간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올라온 연놈들이었다. 이상함을 눈치채고 경계했어야 했는데……!
후회했지만 늦었다. 16명 중 6명이 앗 하는 순간 당한 것이다.
이미 3명이 죽고 3명이 병신이 되어버린 상황. 그중 원거리를 담당하는 놈들 대다수가 당한 게 치명적이다.
입술을 짓씹으며 속으로 분노를 터트렸다.
‘빌어먹을. 숨어있는 년들아, 제발 부탁한다!!’
두목은 눈짓으로 3급 아우라의 여전사에게 3명을 붙이고 자신은 나머지 다섯과 함께 6급 괴물을 향해 몸을 던진 순간——
‘……길레스, 이 씨발 좆고자 새끼 어디 갔어?!’
여기까지 출장 오게 만든 개새끼가 사라졌다. 그런데 검은 후드 망토를 쓴 이상한 새끼도 없다. 언제 사라진 거지?
으득, 이빨을 깨문 두목은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며 독 바른 비수로 은색 거구의 목덜미, 피부가 드러난 곳을 찌르려 한 순간…….
꽤애액!!
퍽!
=끄흑!?=
녹색 커다란 덩어리에게 옆을 들이받혀 땅을 크게 나뒹굴었다.
내장을 뒤흔드는 격통.
=씨……이발! 뭐야?!!=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욕설로 치환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두목은 방어구를 착용한 녹색의 쿠에가 학처럼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외발로 서서 꾸우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인은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검회색 가죽옷을 걸친 인랑족을 뒤쫓아 문이 달리지 않은 아치형 통로로 뛰어들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과 시선을 교환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도주를 선택하다니, 저것은 신중함일까 아니면 겁이 많은 걸까.
‘겁일 리 없다.’
아주 잠깐 보았던 유리알 같던 눈은 겁에 질린 것이 아니라 희열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도망친다?
꽉 문 어금니에 힘을 주며 통로를 벗어난 환인은 인랑족의 진로가 왼쪽, 출구로 나가는 길이 아니라 정면의 건너편 방, 아치형 통로로 향하는 것을 보며 뭔가 있음을 직감했다.
“…….”
아쉽다. 최단거리로 탈출하기 위해 왼쪽이나 오른쪽의 문으로 향했다면문을 열려는 찰나의 틈을 노려 영혼 화살을 쏘았을 텐데.
그렇다고 지금 영혼 화살을 쏘자니 보지도 않은 사격을 염두에 둔 건지 좌우 앞으로 쉴 새 없이 회피 동작을 펼친다. 그러면서도 도주 속도가 강령을 받은 자신과 별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에 조금 생각에 잠기는 환인이었다.
통로 입구의 문, 그리고 통로가 끝날 때의 문.
둘 다 직선거리가 있었고 오히려 폭이 좁은 통로라서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설마?
21미터 정도 폭의 방을 가로질러 다음 방으로 넘어가는 검회색 인랑족의 뒤를 바짝 추격하며 환인은 머릿속에 저장해둔 고트모그의 미궁 지도를 떠올렸다.
‘지하 1층처럼 빙 둘러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저 인랑족도 알고 있었던 거다. 문을 열고 도망치려다간 자신이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환인도 그제야 깨달았다. 저 인랑족은 달리기에 자신이 있는 만큼 통로와 방을 빙 돌아 거리를 벌린 뒤 밖으로 도망칠 생각이다.
두 번째 방까지 쫓아가자 인랑족은 이번에도 맞은 편의 아치형 통로를 통해 세 번째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북쪽에도 문이 있는데 역시 추격을 의식해 문이 달리지 않은 곳으로 뛰어드는 모양새다.
저 곳은 두 번째 방보다 더 작은 방이고 남쪽에 문이 두 개 달려있다. 환인도 세 번째 방으로 뛰어들었고 그 순간 콰자작! 나무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인랑족이 기나긴 통로로 뛰어든다.
‘저 너머는 통로. 동쪽은 가로막혀있다.’
왼쪽으로 가면 두 번의 코너를 통해 북쪽 구역으로 들어가는 방이 나온다. 거기서 방을 6개, 통로를 5개 더 이동하면 앞뒤가 바뀌며 도망칠 길이……?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저 인랑족은 이대로 거리를 벌린 뒤 미궁을 빠져나갈 속셈이다.
쉬익 꽈과광!
설마 문 옆에 매복해있을까 싶어 영혼 폭발을 날려봤지만, 애꿎은 문의 파편만 흩날릴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어 불어닥치는 충격파를 뚫고 환인도 통로로 나왔다.
매복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즉시 통로의 서쪽으로 달려간 뒤 북쪽으로 꺾인 코너를 돌자 영혼 시야의 회색빛 세상 속에 48m 직선 코스의 중간 즈음, 연녹색 색계통의 인랑족이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는 게 보인다.
그 뒤를 쫓는다. 그런데 회피 동작을 그만둬서인지 속도가 이전에 비해 2배는 빠르다.
‘달리기 관련 기술도 있겠군.’
현재 남은 영혼 구슬은 21개. 영혼 폭발로 진로를 방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영혼 폭발 구슬의 발사 속도는 저 속도에 못 미친다.
“…….”
잠시 후면 인랑족이 직선 코스 끝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부터는 죽일 확률이 대폭 낮아지는 코스의 시작과 다름없다. 방만 7개이며 이형종이 나타나 이쪽을 방해하면 놓칠 가능성이 대폭 늘겠지.
이런 직선 코스도 두 곳이 더 있는데 그때마다 거리가 멀어질 거다.
문제라면 저 인랑족이 함정으로 유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이해가 안 된다. 저 인랑족은 어째서 무직자로 보이는 자신을 보자마자 도망가는 거지? 맞서 싸우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게 평범할 텐데?
“…….”
생각은 매우 짧았고 행동은 무척 빨랐다.
영혼 구슬이 얼마 없지만, 일반 영혼 화살 네 발을 장전, 동시에 발사한 뒤 재차 4발을 장전해 또다시 발사한다.
시차를 두고 피할 공간도 없이 쏜살같이 날아가는 영혼 화살들.
아니나 다를까 검회색 인랑족의 귀가 쫑긋하는 것이 환인의 눈에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기착까지 없는 것은 아니니까.
개수까지 파악했는지 움직임이 멈칫한다. 그 틈에 환인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가속해서 달려가는데.
=대단하시군요.=
검회색 인랑족의 손이 바지 주머니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손에는 두 장의 종이가 들려져 있다. 안느와 대결하던 날 밤 본 빛 구체 소환 종이와 비슷한 종이.
방어용? 공격용?
짧게 고민한 환인은 속도를 줄이는 대신 2 중첩 영혼 방패 두 장을 소환해 겹치고 동시에 영혼 폭발을 장전해놓는다.
위상류 체질이 있다지만 전적으로 신용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희미한 빛을 머금고 날아오는 종이. 언뜻 적색의 불빛이 어른거린 순간.
콰아아아
종이에서 새빨간 화염이 터져나 나오며 통로를 가득 메웠다.
전면에 세워둔 영혼 방패 너머로 불길이 일렁이다 방패가 막지 못한 틈새로 불길이 쏟아진다.
찌이잉…….
그 불길이, 후끈하고 뜨거운 감각이 몸을 훑을 때 척추 안쪽의 무언가 심心 같은 게 진동하는 것을 느낀 환인은 본능적으로 이게 위상류의 근본??임을 알아차렸다.
피해는 없다. 손해라면 후드 망토가 살짝 그슬린 정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후드를 푹 눌러쓴 덕분이다.
퍼버벅
=크윽……!=
그때 불길 너머에서 파열음과 함께 인랑족의 신음이 흐른 것을 환인의 청력이 포착했다.
이쪽이 입은 피해는 없다. 저쪽은 영혼 화살에 의한 관통상???.
불길을 뛰쳐나오자 검회색 인랑족이 오른쪽 허벅지와 왼쪽 어깨, 옆구리에 구멍이 뚫려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달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속도 또한 다소 느려진 상태.
다시 추격전이 이루어진다. 먼저 코너에 도달한 인랑족이 동쪽으로 꺾인 통로로 들어가고 환인도 그 코너를 돈 순간.
그워어어!
좀비가 괴성을 지르며 날아왔다.
인랑족이 좀비를 잡아 던진 듯 놈은 잠시 멈춰 있었고 그 앞에 문이 보인다.
환인은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허리춤의 켈틱 돌도끼로 날아오는 좀비를 턱부터 정수리까지 올려 쳐 쪼개버린 뒤 문에 달라붙어 있는 인랑족을 향해 마지막 단검 두 자루를 투척한다.
쉬쉭 퍼벅.
=크끅!=
허벅지와 어깨에 칼을 맞는 동시에 인랑족도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영혼 화살을 쏴서 마무리했으면 좋았겠지만 남은 영혼 구슬은 10개.
추격전 중간에 정령이 보여 불러들였지만, 날아오는 속도가 느려 거리가 일정 이상 벌어지자 되돌아가 버렸기에 보충하지 못한 상태다.
‘최소 8개는 남겨 놔야 하니.’
그 뒤를 쫓아 독방처럼 작은 방에 들어간 환인은 곧장 다음 통로로 뛰쳐나갔고, 구불구불한 통로에 들어선 환인은 인랑족의 발소리를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급격하게 꺾으며 다음 방에 도착한 순간 입을 다물었다.
일반인이라면 기막혀할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도와주십시오! 미궁 강도가 동료들을 살해하고 쫓아왔습니다!=
=예? 강도?=
=미궁에서 강도질이라니! 짐승신님께 천벌 받을 짓을!!=
풋내기라고 해야 어울릴 어린 남녀 세 명이 뒤에 숨은 검회색 인랑족의 호소에 분개하며 환인을 향해 무기를 들이민다.
“…….”
환인의 기억에 있는 3명이다. 며칠 전 미궁 지도를 사러 왔을 때 암매상의 사탕발림에 속아 가짜 지도를 산 풋내기들.
가로세로 15m의 작은 방. 바닥에는 해골 잔해가 널려있고 다음 방으로 넘어가는 문은 단단히 잠겨있다.
방 내부를 빠르게 파악한 환인은 영혼 화살 두 발을 장전하는 동시에 검회색 인랑족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미궁 강도는 당신들의 뒤에 숨은 저 자입니다.”
=……어?=
=뭐라고요?=
=지, 진짜요……?=
=거짓말입니다! 제가 미궁 강도라면 직업자인 제가 아우라도 없는 저 사람을 상대로 어째서 이렇게 도망치고 있겠습니까……! 캠핑 도중에 저자의 파티가 우리를 공격…… 쿨럭. 사, 상처가…….=
검회색 인랑족의 어설픈 연기에 홀딱 넘어간 듯,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풋내기 셋은 다시 환인을 향해 적개심을 내비쳤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잖아!=
=미궁 강도 아니랄까봐 혓바닥에 꿀을 발랐네!=
=이 나쁜 놈! 용서할 수 없어요!=
환인은 연기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멍청한 핏덩어리들을 향해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검회색 인랑족에게 허튼짓했다간 도끼를 던지겠다고 위협 섞인 행동을 하며 설득했다.
“저는 영혼사입니다.”
=……흐엥?=
=어?=
=……!=
인랑족이 `여기서 사칭을?`하며 기막혀했지만, 환인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저자에게 살해당한 영혼이 구천을 떠돌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여러분들은 그 한 맺힌 외침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미궁 강도라 그런지 말도 안 되는 사칭을 하는군요! 당신은 아우라도 없는 무직자……!=
검회색 인랑족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항변하는 순간 환인은 훈기와 한기를 손바닥에 일으켜 기도하듯 맞잡고 평온의 파동을 쏘았다.
파아악—
회백색 빛의 파동이 환인을 중심으로 폭발하듯 퍼져나간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영혼사의 증명에 풋내기 핏덩어리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평온을 주는 효과보다 자신들이 무기를 들이민 상대가 영혼사라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
=힉! 펴, 펴펴펴평온의 파동이야…!=
=어어어?! 지, 진짜 영혼사님이었어?!=
핏덩어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상황이 일변했음을 깨달은 인랑족, 길레스=벡슬이 홱 몸을 돌려 문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저 문은 함정 문이다. 그냥은 지나칠 수 없다. 무엇보다…….
=어딜 도망가냐, 이 강도야!!=
=잡아!!=
=이 악당! 얌전히 잡혀서 벌을 받으세욧!!=
……함정 문을 건드리기도 전에 풋내기들의 공격을 받았다.
회색 강아지 귀와 검은색 꼬리의 여전사에게 백 태클을 당한 길레스=벡슬이 문에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부딪친 뒤 저먼 스플렉스로 바닥에 내다 꽂히고 =끄윽!?=, 이어서 달려든 아직 강아지 티를 채 벗지 못한 비글 계통의 인견족이 길레스=벡슬의 다리를 밧줄로 묶는다.
그리고 갈색 여우귀를 한 성술사 소녀가 아기자기한 나무망치 같은 것으로 길레스=벡슬의 머리를 꽁꽁 내려친다.
“…….”
=…….=
환인과 길레스=벡슬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전까지 목숨 걸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펼쳤건만 그 무겁고 긴장감 넘치던 전율은 어디 가고…….
그러는 사이 길레스=벡슬은 엽사 소년에게 단단히 포박당했고 세 풋내기는 큰일을 해낸 것처럼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길레스=벡슬을 환인 앞으로 끌고 왔다.
길레스=벡슬을 무릎 꿇린 풋내기들이 기대감이 넘치는 얼굴로 환인을 빤히 바라본다.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은 그 모습에 환인은 형용 못할 감정을 느끼면서 세 명 소년 소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어처구니없이 잡혔군요. 차라리 이들을 인질로 잡고 방패로 내세웠다면 무사히 도망쳤을 텐데요.=
헛웃음을 짓는 검회색 인랑족의 손이 등 뒤에서 꾸물거리는 것을 감지한 환인은 아무런 대꾸 없이 켈틱 돌도끼로 길레스=벡슬의 목을 쳐 날렸다.
터엉 턱, 데구르르르…….
=…….=
=…….=
=…….=
눈앞에서 사람의 머리가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땅에 떨어져 구르는 것을 척추반사처럼 바라보던 세 풋내기는 이윽고 잘린 목의 단면에서 피가 푸화확 뿜어지자 힉, 짧게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물러난다.
그리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겁먹은 얼굴로 덜덜 떨며 환인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풋내기들은 사악한 악당을 붙잡았으니 이제 도시 병사들에게 인계해 칭찬받는다거나 영웅이 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런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위험을 자초할 생각은 없는 환인이었다.
명백히 두려움에 물든 그 시선에 환인은 말없이 소울 스틱을 꺼내 (보란듯이) 끝을 흔들며 시체에서 일어나는 길레스=벡슬의 영혼에 대고 영기를 일부 흘려 넣었다.
「끄으으으…….」
=히익! 여, 영혼!=
=어, 엄마야…….=
=으어어. 어버법.=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세 명 풋내기에게 환인은 부드러운 표정을 꾸미며 말을 걸었다.
“이자는 여태까지 몇 명을 죽였는지 알 수 없는 인외마경의 주민입니다.”
=…….=
=…….=
“살아서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당하는 것보다, 미궁에서 죽어 영혼이 신의 정원에 들지도 못하고 영겁의 고통을 받는 것이 마땅한 처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환인의 이야기에 반박할 생각도 못 하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풋내기들.
그러한 행동을 칭찬하듯 길레스=벡슬을 잡는 데 도움을 준 것을 영혼사의 이름으로 치하하고 다독여준 환인은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고족과 호족의 높은 분들을 위한 성불행이 아닌, 밑바닥의 사정이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한 성불행을 하고 있습니다.”
=…….=
=호아아….=
“그러기 위해서는 제 정체가 알려져서는 곤란합니다. 영혼사라는게 밝혀지면 높은 분들이 저를 억지로 데려가려 하실 테니까요.”
=그…렇겠죠……?=
“그래서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 저를 보고 이 악당을 본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비밀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그럴게요…….=
=비밀로, 하겠습니다….=
“착한 아이들이군요. 여러분들의 앞날에 짐승신님의 가호가 있길 빌겠습니다.”
약간 예상 밖의 일을 겪어 조금 지쳤지만, 어쨌든 후환을 제거한 환인은 길레스=벡슬의 시체를 짊어지고 인간 사냥꾼들이 캠핑하던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실리테와 비상, 안느 셋 다 무사한 것을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실리테는 사슬철판 갑옷을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꼼꼼하게 감싸고 있다. 안느는 두말할 것도 없고 비상도 깃털이 마수 가죽만큼이나 튼튼한 방어구 역할을 한다.
더욱이 실력은 개개인이 최소 4급의 직업자를 상대할 정도.
다만 이실리테는 몇 번 공격을 허용한 듯 판금 일부가 우그러져 있었지만, 저 정도는 수리하면 말끔해지는 수준이다.
=대장 왔어? 도망간 놈은 어떻게 됐…… 아, 그게 그놈이야?=
“그래. 미궁 강도들의 흑막 같은 놈이다.”
머리 없는 시체를 땅에 쿵, 떨어트리자 안느와 이실리테가 냉랭한 얼굴로 이름도 모르는 검회색 인랑족의 시체를 훑는다.
환인도 방을 둘러보았다. 깨끗하다. 영혼 시야로 겨우 보이는 거무튀튀한 핏자국을 제외하면 사람 간의 싸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전부 아공간 주머니에 담은 건가.”
=응. 이것도 담아?=
“부탁하지.”
=앗! 주인님 망토에 그을음이……!=
그러는 사이 환인이 쓰고 있는 검회색 망토에 그슬음이 붙은 것을 발견한 이실리테가 눈을 크게 뜨며 환인의 팔을 잡았다.
“별거 아니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파티가 있으니 일단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네, 네.=
=어어.=
환인은 툭툭, 길레스=벡셀을 짊어지고 온 어깨를 털고 아래층,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지하 2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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