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157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 * *
미궁 강도 넷의 시체를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 방을 나온 환인은 머릿속에 기억해둔 지도를 떠올리며 위층으로 돌아가는 통로를 걸었다.
귀신의 집처럼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진한 회백색의 통로를 지나가며 몇 가지 장비와 기술을 점검한다.
단검의 자루 상태는 괜찮은지, 켈틱 돌도끼의 밸런스용 죔쇠는 멀쩡한지, 소울 스틱에 금이나 균열은 없는지.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환인은 자신과 같은 사람을 이때까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기가 사이코패스 같다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조사해보면 유사 정신병자였고, 분노조절장애라는 사이코패스와 비슷한 감정 결여 환자도 실상은 분노조절잘해였다.
그렇다 보니 처음 만나는 동류가 적지 않은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환인이 느꼈다는 위협도 알고 보면 일반인이 목줄에 묶인 애완견을 보고 ‘저 개가 날 물면 어떡하지?’ 수준이지만 아무튼.
만약 검회색 늑대 머리가 자신과 같은 부류라면? 자신처럼 음흉하고 흉계와 모략을 꾸미는 성격이라면?
어둡고 퀴퀴한 통로를 떠다니는 검은색 정령을 불러들여 소비한 영혼 구슬을 보충하고 영혼 화살과 영혼 폭발, 영혼 방패도 점검하고 있을 때 전방을 주시하며 걸음을 옮기던 안느가 질문했다.
=그런데 대장. 아까 들었던 게 계속 신경 쓰여서 그러는데 말이야.=
“무엇이 신경 쓰이지.”
=미궁이 성장할지도 모른다는 거, 사실일까?=
전투 채비를 끝낸 환인은 이실리테의 너머에서 통로를 천천히 이동하는 안느의 듬직한 등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알게 모르게 퍼지고 있는 이야기더군.”
=흐음. 그러면 성장이 이루어질 때까지 탐색을 중단하는 게 좋지 않아?=
“어째서지?”
=……응? 그야 미궁이 성장할 때는 위험해지니까 그렇지.=
“어떤 점이 위험하단 거지.”
미궁이 성장한다고 해서 미궁 내부가 크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웨이포드에서 신중히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성장에 필요한 위상력을 모은 미궁은 최하층이 최소 1층에서 최대 5층까지 늘어난다.
기존에 존재하던 층의 변화는 거의 없다. 애초에 층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미궁이 이 정도면 되겠다고 판단한 결과물인 만큼 유의미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나마 위협이 되는 부분은 이형종의 대량 발생인데…….
“대량 발생의 경우 미궁이 성장하며 남는 위상력의 잉여분이 미궁에 퍼져 이형종이 폭주하듯 발생한다는 거다. 그러나 이곳은 지하 1층이지. 나오는 이형종은 대부분이 1급이다.”
미궁이 성장하더라도 기존 층의 변경 점은 거의 없다. 4급 미궁이 그저 5급 미궁이 될 뿐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미궁이 갑자기 돌연변히화 한다 해도 그땐 미궁을 빠르게 빠져나가면 그만인 일.
환인의 대답에 안느가 기막혀했다.
=아니 이형종이 대량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잖아?=
“대량으로 발생하면 일정이 좀 더 일찍 마무리되겠군.”
안느는 살짝 어이가 없어서 환인을 돌아보았다. 혹시 농담하는 건가 싶어서.
“……?”
그런데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실리테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한 모습이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이상한 거야?
그럴 리 없지!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수십, 수백 마리한테 둘러싸이면 위험한 게 당연한 거잖아!=
답답해하는 안느의 모습에 이실리테가 쓴웃음을 작게 지으며 안느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안느. 주인님은 미궁 역류로 풀려난 3급 이형종 30마리 떼를 홀로 처단하신 적이 있어.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뭐? 진짜?=
=응. 그러니까 상식으로 주인님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
=주인님이랑 같이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겠지만, 적응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자신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환인의 모습에 안느는 복잡한 얼굴로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후,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이나 이슬이는 1급이라도 물리면 다칠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인데…… 뭐 가장 걱정되는 대장이 그렇다면 괜찮겠지…….=
환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의 파티에 가입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오늘처럼 자신을 혼란스럽게 할 일이 자주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자 살짝 회한 비슷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그야 비상식을 상식인 양 자꾸만 들이대는데 당황스럽지.
다시 긴 통로를 따라 걷던 안느는 아치형 문짝에 도달했고, 이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려고 했다가 환인의 제지에 손을 내민 자세 그대로 멈췄다.
“기다려. 문에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지도에 표기된 걸 보면 함정이라 생각하는 게 맞겠지.”
기호가 적힌 문은 네 종류였다. 하나는 머리글자가 적힌 비밀 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닫혀있는 문이었다.
그리고 잠겨있는 문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함정 문밖에 더 있을까.’
환인은 곧장 엽사 여자 영혼을 불러냈다. 그리고 강제력으로 명령을 내린다.
‘문에 어떤 함정이 있는지 살펴보고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해라.’
「…….」
영혼 구슬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고통과 분노에 발광하던 여자 영혼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습으로 명령을 수행한다.
문과 이어진 돌벽 속에 머리를 쑥 집어넣더니 상체까지 쑥 밀어 넣고 벽 안쪽을 살피는 여자 영혼.
“…….”
벽에 박혀 하반신만 내민 꼴로 반투명한 항문과 음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에 환인은 잠시 복숭아 모양의 엉덩이와 그 사이 골짜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환인도 나름대로 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문의 형태는 간단했다. 좌우로 밀어서 닫고 여는 미닫이 방식의 철판으로 보강한 두꺼운 나무 문이다.
나름대로 이상한 점을 찾아보기 위해 자세히 살폈지만, 비전문가가 지식도 없이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4급 미궁이라 함정의 등급도 높은 건가. 아니면…….’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함정 관련 서적을 구하거나 엽사 직업자를 찾아 기술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함정 발견과 해체도 지식 쪽의 기술일 테니 적지 않은 비용이 들겠지. 하지만 엽사 직업의 동료를 구하는 것보다 자신이 함정 관련 기술을 익히는 쪽이 나은 듯 하다.
한동안 문을 살펴봤지만, 어떤 함정인지는커녕 함정이 있는지도 의문인 환인은 수확 없이 문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때까지도 여자 영혼은 벽 이곳저곳에 머리만 넣어본다던가 상체를 통째로 밀어 넣는다던가 하며 찾고 있었다.
비전문가가 아닐까 의심되는 모습에 환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엽사 직업자라서 함정 관련 기술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강제력으로 불러와 무엇을 알아냈냐고 캐묻자 문의 왼쪽 벽 안쪽을 가리킨다.
「감압식… 함정……. 문, 열면. 작동.」
‘해제 방법은? 누락 없이 상세하게 설명해라.’
「문 상단 홈에 끈이…….」
알몸의 여자 영혼이 손으로 함정의 구조와 해제 방법을 차분히 설명해준다.
알고 보니 문의 함정은 매우 간단한 방식이었다.
문의 상부 슬라이딩 홈에 실을 묶어 초소형 도르래로 이어놓은 함정.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면 연결된 실이 끊어지며 실의 끝에 걸린 슬라이딩 도어 안쪽의 주머니가 무게 중심에 의해 뒤집어지고, 그 안에 담긴 화학 약품이 바닥의 약품과 섞여 반응을 일으켜 폭발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요점은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잡아두는 게 중요하다.
문에 대고 살짝 힘을 주며 밀자 유격으로 틈이 드러나고 안쪽에 작은 선이 연결된 게 눈에 들어온다.
문제는 틀의 홈 깊이가 약 15cm인데 틈은 1cm가 겨우 된다는 것.
남자인 환인의 손가락은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자신보다 2배는 더 굵은 안느의 손도 마찬가지.
“이실리테. 장갑 벗고 손가락을 이 사이에 넣어보겠나.”
=네.=
이실리테의 손가락이 1cm 남짓한 틀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안쪽에 실이 있을 거다. 구조는 이렇게 되어있는데…….”
짧게 설명한 뒤 그 끈이 풀리지 않도록 꽉 잡고 있으라고 한 다음 문을 살짝 열었다. 다행히 방 안에는 이형종이나 인간 부스러기는 없다.
“안느. 먼저 지나가라.”
=오. 저게 함정을 발동시키는 실인가?=
문을 지나가며 이실리테가 잡은 실을 본 안느가 감탄한다.
환인은 그 실을 받아들고 이실리테와 비상을 방 안으로 들여보낸 뒤 문을 닫고 문에 돌출된 철판의 리벳에 실을 묶은 다음 문에서 떨어졌다.
다행이라고 할지, 그사이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끝이야?=
“아직이다.”
안느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환인은 단검을 꺼내 투척, 실을 끊었고 반응은 즉각 이루어졌다.
퍼펑!
모닥불을 걷어찼을 때 벌어질 법한 불티의 향연이 슬라이딩 도어의 틈새로 훅 쏟아진 것. 그걸 본 안느가 음, 하며 물었다.
=저게 1계층의 함정이군. 방패로 막고 그냥 열었어도 됐겠는걸.=
“지하 1층의 함정이라서겠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함정을 발견하고 해체는 못 할 거다. 함정의 위험도도 더 오를 테고.”
=역시 이런 감옥형이나 건물형 미궁이 가장 성가시네.=
안느가 푸념 같은 말을 흘리는 것을 들으며 환인은 직사각형으로 길쭉한 방을 둘러보았다.
겉보기로는 좀 전의 방처럼 막힌 방이지만, 이 방에도 숨겨진 문이 존재한다.
지도에 따르면 위치상…….
‘저 해골 더미 뒤쪽인가.’
방의 중간쯤, 서쪽 벽에 쏟아져 있는 모양새의 사람 두셋은 파묻힐 만큼 쌓여있는 해골 더미로 다가가자 이실리테와 안느, 비상이 뒤따라온다.
시선을 환인에게 고정한 이실리테가 작은 목소리로 안느에게 물었다.
=안느는 낮은 계층 경험이 적어?=
=어. 난 개방형만 돌다가 6급이 된 뒤로 지하형 4계층부터 시작했거든. 그래서 이런 낮은 계층에서 함정이 발동하는 건 처음 봤어.=
=그럼 혹시 미궁 안에 바다나 하늘을 본 적 있어?=
=지하형 미궁의 바다하고 하늘 말하는 거지? 바다는 봤는데 하늘은 아직 못 봤어.=
=미궁이 바닷가 근처에 있어서 바닷물이 미궁 안으로 흘러들어온 게 아니고 진짜 바다야?=
=거긴 물도 없는 사막 한복판이었으니까 바다는 절대 아니지. 물도 짰고. 왜, 보고 싶어?=
=응. 신기하잖아. 미궁 안에 바다도 있고 하늘도 있고.=
=대장하고 같이 다니다 보면 언젠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실리테와 안느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벽을 살피던 환인은 문득 해골 더미를 응시하다가 영혼 폭발을 한 발 발사했다.
콰앙!
폭발의 충격파가 해골 더미를 강하게 후려친다. 사방으로 어지럽게 날아가는 뼛조각 사이로 두 개의 짐승 두개골 안구 안쪽에 붉은빛이 맺힌 것을 포착한 환인은 단검 두 자루를 날려 두개골을 꿰뚫었다.
=어, 뭐야. 이형종이야?=
“그래. 단검 꽂힌 두 개가 이형종이니 가서 정화해라.”
=동체시력도 미쳤네…….=
중얼거리며 단검 박힌 두개골 쪽으로 걸어가는 안느.
환인은 천장까지 쌓인 뼈 무더기로 가려져 있던 벽을 살펴보다가 천장 쪽 벽이 수상해 보여 이실리테에게 이리 오라고 하고 비상에게는 입구를 감시하라고 지시한다.
“밑에서 발 좀 받쳐주면 좋겠군.”
=네. 제 어깨를 밟고 올라가세요.=
한쪽 무릎을 꿇고 자기 무릎을 톡톡 건드리는 이실리테의 이야기에 망설임 없이 그녀의 무릎을 밟고 어깨를 밟아 올라선다. 그러자 이실리테는 환인의 몸무게쯤이야 깃털 같다는 듯이 가볍게 일어섰다.
“오른쪽으로 한 걸음. 반걸음 더. 그래, 정지.”
해골 더미를 날린 뒤 그 뒤에 보인 약간 색이 다른 벽. 천장과 가까운 그 부분에 손을 대고 누르자 구르륵 바위 갈리는 소리와 함께 뒤로 살짝 밀려나다가 쿵, 소리를 내며 벽 일부가 아래로 내려앉는다.
해골 이형종 둘을 정화하며 그걸 보던 안느가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비밀통로네. 그런데 그 통로는 비상이가 못쓰겠는데?=
“…….”
안느의 말대로 통로는 지상에서 2m 높이에 나 있었는데, 높이는 문제가 안 되지만 폭이 문제다.
둥그런 모양의 통로는 폭이 1m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이실리테의 어깨 위에서 내려온 환인은 먼지가 묻은 그녀의 어깨를 털어주고 말했다.
“확실히 비상이 통과하기 좁아 보이는군. 왔던 길을 돌아가지.”
뀨우…….
자기 때문이라는 걸 눈치챈 비상이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시무룩해지자 안느가 큭큭 웃으며 괜찮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지나가고 이실리테도 목을 긁어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해준다.
“이런 거로 뭐라 하지 않는다. 너도 엄연한 파티의 일원이니까.”
……꾸엣!
비상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왔던 길을 되짚어나가는 길에는 이형종을 더 많이 마주쳤다.
지하 1층으로 내려와 처음 들어왔던 방에 도착하기까지, 다른 방은 방문하지 않고 수백 미터에 이르는 통로만 걸었는데도 7마리나 되는 시체와 해골하고 마주쳤던 것.
폭 3m 정도의 좁은 통로에서 대검으로 싸우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실리테는 언제 챙겨뒀는지 녹슨 파이프 같은 것으로 평범하게 싸웠다.
해골의 공격은 단단한 철판 건틀릿으로 비껴내거나 쳐낸 뒤 힘으로 두개골을 박살내는 식이고 시체는…….
퍼벙
환인이 영혼 화살로 머리를 꿰뚫어 처리했다.
축성 받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지만 시체와 드잡이질을 벌이면 질병 감염의 가능성이 커지니까.
콰직! 퍼벅, 쾅!
우두둑
해골과 몇 번 싸워봤다고 동작이 체계적이고 매끄러워진 이실리테의 싸움을 지켜보는 환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안느와 이실리테는 이 상황에 별생각이 없었지만, 환인은 달랐다.
‘인간 부스러기들이 없어진 건가.’
부스러기들이 동족을 사냥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이형종을 정리해놓았던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환인은 자신의 왼팔을 보았다. 회백색에 가까운 하얀 영혼 구슬 사이에 박혀있는 하나의 빨간 구슬.
엽사 여자는 동료가 세 팀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형종이 늘어난 지금 할 수 있는 가설은?
일정 시간마다 부스러기들이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는 것.
지정 장소에서 동료를 만나지 못한 다른 부스러기가 지상층으로 올라갔거나 지하 2층으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렇게 내려가거나 올라간 놈들이 다른 동료들과 합류했을 가능성.
여자를 불러내 캐물으면 가설이 간단히 증명될 테지만, 왠지 이번에 불러냈다간 얼마 안 가 성불해버릴 느낌이어서 불러내기 아깝다.
“…….”
환인이 후, 한숨을 내쉬자 워 해머에 성수를 뿌려가며 천으로 닦던 안느가 돌아보며 묻는다.
=뭐가 그렇게 기대돼?=
“……내가 기대하고 있다고?”
=기대감에 숨을 길게 내쉰 거 아냐?=
잠시 생각해보던 환인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비밀 문으로 향하며 말한다.
“올라가지. 아까 그 방에 있던 놈들, 그때 다섯 놈 외에 다른 놈들이 더 있다면 그놈들도 적이라고 간주해라.”
=흠. 세 팀이라고 했고 한 팀은 우리가 조졌으니 남은 한 팀이 그놈들하고 합류했겠군.=
눈에 스산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하는 안느의 이야기에 이실리테가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중얼거린다.
=아……. 그래서 아까보다 이형종이 더 많았나 보네. 그 팀이 이형종을 미리 정리하고 있었나 봐.=
=응? 어, 그런가.=
비밀 문의 홈을 잡고 당겨 문을 연 환인은 안느와 이실리테를 앞세워 지상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있어 정보를 수집하기에 편리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아우라를 가진 직업자라면 대상이 어떤 직업인지 육안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검회색 늑대 머리를 포함해 다섯은 전사와 투사, 엽사였고 구석에 숨어있던 놈도 은신한 것을 보면 엽사 쪽 직업일 가능성이 크다.
근접전을 염두에 둔다면 이실리테도 이제 믿을 만 하다. 안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라면 독을 썼다는 점과 원거리 공격의 여부.
위층은 출구와 가깝다. 범용 중급 해독제는 준비되어있으니 범용 해독제를 먹이고 그사이 신전으로 달려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환인은 살기는 물론 감정까지 가슴 속 깊숙이 갈무리하며 후드 망토에 가려진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1층으로 올라오자마자 엽사 여자 영혼을 불러낸 뒤 정찰을 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껴서는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
「14명이 모여있……어요.」
‘네 동료가 맞나.’
「……네….」
슬픔과 누굴 향하는지 모를 조그만 분노를 드러내는 엽사 여자를 이실리테에게 강령할까 생각하다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포기했다.
여자 영혼을 다시 영혼 구슬화한 환인은 동료들에게 최하급 강령을 펼쳐주며 말했다.
“방 안에 14명이 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올 때 이야기한 대로 움직여라. 비상은 다음 방에서 대기하도록.”
=응.=
=네.=
쿠엣.
그 후 최대한 늘린 갯수, 4중첩 영혼 화살을 4발 전부 장전한 환인은 마름모꼴 형태로 선두에 안느, 후방에 비상을 두고 자신과 이실리테가 중앙에 선 포지션으로 부스러기들이 모여있는 방에 입장했다.
“…….”
=…….=
=…….=
인간 사냥꾼들 아니랄까 봐 방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포위하는 형태로 벽 쪽에 붙어있는 것을 본 안느가 입술 끝을 삐죽이며 말한다.
=뭐야. 다들 서있는 모양새가 꼭 포위 공격할 것처럼 보이는데, 내 착각인가?=
쿵!
위상력을 담은 자이언트 타워 실드로 바닥을 찍자 큰 소리와 함께 약한 진동이 방을 뒤덮는다.
천장 곳곳에서 흙가루가 살짝 떨어지는 모습에 모여있던 2급에서 4급 사이의 인간들이 살짝 질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때 붉은 여우 머리의 남자가 캥캥거리듯이 이죽거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이렇게 위협하면 피차 곤란할 텐데 무슨 생각이지?=
=그건 이쪽이 할 말이야. 보아하니 다 같은 파티인가 본데 아무런 의도가 없다면 미궁의 불문율대로 한쪽 벽에 모여. 지나가게.=
=아 귀찮게.=
=리더도 아닌 게 뭘 이래라저래라야.=
자신들의 정체가 들통난 줄 모르는 인간 사냥꾼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평범한 사람이면 겁먹기 충분할 만큼 위협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이 정도로 겁먹기에는 안느가 먹은 미궁 밥이 너무 많다.
=누가 모기만 한 것들 아니랄까 봐 앵앵거리기는. 뒤지게 처맞고 질질 짜기 싫으면 닥치고 얼른 움직여.=
=……씨발. 덩치만 믿고 나대네.=
=불알 단 사내새끼가 여자 뒤에서 주둥아리 털지 마. 약해 보이잖아.=
=뭐?!=
=할 말 있으면 앞에 나와서 하라고, 등신 새끼야.=
=좆같은 귀쟁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하! 뭘 믿고 지랄이지? 급수가 높으면 단 줄 아나. 씨발..=
분위기가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안느의 거구에 훌륭한 장비, 그리고 급수에 살짝 쫄아있던 인간 사냥꾼들이었지만, 머릿수의 우세를 믿었는지 점차 험악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안느가 앞장서서 어그로를 끄는 사이 환인은 안느를 주시하는 검회색 늑대 머리를 응시하며 14명과 숨어있는 2명의 수준의 분석을 끝낸 상태.
그 순간 검회색 늑대 머리의 유리알 같은 눈깔과 시선이 마주쳤고.
“…….”
=…….=
환인은 정수리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감각과 함께 일종의 예감을 느꼈다.
저자를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으면 놓치면 어마어마한 후환이 미칠 거라는 예감.
그 비슷한 예감을 받은 것은 검회색 늑대 머리, 길레스=벡슬도 마찬가지였다.
저 검은 후드 망토의 남자가 자신의 무료하고 권태스러운 이 삶에 크나큰 자극이 되어줄 거라는 예감. 거기다 이 자리에 계속 있다간 자신도 죽을 거라는 직감.
무기질로 빚은 듯한 미소가 길레스=벡슬의 얼굴을 뒤덮은 순간, 소리 없이 통로 밖으로 튀어 나간다.
쉬이이익—!
환인도 여섯 자루의 비수를 방안의 엽사, 술사들에게 날리는 동시에 길레스=벡슬을 쫓아 몸을 날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