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56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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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 결핍 환자라도 성격은 다양하다.
당연한 일이다. 단지 감정에 관여하는 전두엽이 일반인처럼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남의 감정에 공감을 못 할 뿐, 지성은 평범한 사람과 같으니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기에 이기적이다. 또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을 자주 하기에 공감 능력 결핍 환자는 일반인보다 범죄자, 혹은 살인마가 되기 쉬운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마음에 브레이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일반인은 범죄를 저지르기에 앞서 심리적인 위축 현상을 겪는다.
어렸을 때의 교육을 통해 이 행동은 나쁜 짓이라는 걸 인지한데서 오는 죄책감과, 이런 짓을 저지르면 상대가 겪을 불합리한 고통에 공감해서다.
하지만 공감 능력 결핍 환자는 다르다. 남의 감정에 공감을 못 하기에 심리적으로 거리낌이 없고 충동적이기에 생각이 들면 곧장 실행에 옮긴다.
“…….”
환인은 그 검회색 늑대 머리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라는 것을 그 유리알 같은 눈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자신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심리적 브레이크를 만들어주었고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갖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자는?
자신처럼 진심으로 자길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셔서 그러한 제동장치를 지니고 있을까?
이 세상의 가족관과 시대상을 보았을 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환인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제동장치가 있다면 적어도 미궁 강도 같은 짓은 하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다른 이유로 이성을 유지하고 감정을 능숙하게 숨기고 있다는 뜻일 텐데 그것은…….
‘살인인가. 이런 살인 욕망을 충족할 방법은 비합법적인 일 뿐이지.’
그러려면 불법적인 일을 줄곧 해오면서도 들통나지 않게 해줄 뒷배의 존재가 필수다.
즉, 검회색 늑대 머리는 체스 플레이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궁 강도들은 체스판 위의 말이고.
플레이어가 체스 말에게 자신의 신상을 시시콜콜 말하며 다룰까?
‘그럴리없지.’
그렇기에 환인은 뒷배가 없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모를 수가 없는 거다. 자신도 현재 쾌락 살인까지는 아니지만, 희열을 쫓는 전투광 비슷한 상태니까.
이실리테와 대련해주며 이실리테를 키우는 동시에 폭력성을 다스리고 있으니까 알 수 있는 것이다.
검회색 늑대 머리는 지금 평범이라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자신처럼 선을 넘을랑말랑 한 상태가 아니라 확실히 저 너머에 들어간 상태라고.
‘명령이다. 육체에 대한 지배권을 내려놓고 육체 원 소유자의 의사에 무조건 협력해라.’
마지막 실험을 위해 강제력으로 엽사 여자에게 쓰인 영혼에게 명령을 내려놓은 환인은 적당히 10m 정도 떨어져 엽사 여자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안느와 이실리테도 불러 대충 상황을 설명하는 척, 빈틈을 있는 대로 마구 드러낸다.
=……그러니까 위에 있는 그 검회색 인랑족이 위험한 놈이라는 거지?=
“그래. 아마도 네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 나쁜 쪽으로 가장 똑똑할 가능성이 크다.”
=참 거지 같은 일이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런 놈들이 활개 치는 건지.=
얼굴을 찡그린 안느가 한탄하자 이실리테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원래 이런 세상이지 않았어?=
=그, 그랬어?=
=가진 사람들이 살기 편한 세상이잖아. 그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고족, 호족이고.=
=으음…… 이슬이는 혹시 과거에 좀, 힘든 일을 많이 겪었나……?=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야. 아, 그렇다고 그분들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도 아냐.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 그래? 뭐 그러면 다행—— 음?! 대자……!=
순간 살기와 함께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것을 포착한 안느는 그 목표가 환인임을 깨닫고 방패로 지키려 했지만.
‘……?’
방패를 들어 올리다 말고 눈앞으로 인서족 여자의 머리가 날아가는 장면, 그리고 몸은 그보다 한발 빠르게 떨어지는 모습에 안느는 머릿속에 의문 부호를 마구 그렸다.
누구지?
습격자다. 대장을 공격하려 한 년.
그런데 언제 목이 떨어졌지? 누구한테?
대장이 했나?
시선이 자연스레 환인을 향해 돌아간다. 그리고 어느샌가 옆으로 한 걸음 움직인 채 장식이 멋진 묵빛 돌도끼를 천장으로 들어 올린 것을 보게 되었다.
풀썩. —터덩, 텅.
머리를 잃은 몸이 먼저 땅에 떨어지고 이어 몸 잃은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간다.
그걸 본 안느는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가 머리를 긁었다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끄응…… 앓는 소릴 냈다.
그리고 묻는다.
=대장. 혹시 나랑 대결할 때 봐주고 했어?=
“대련과 살해는 같을 수 없다.”
즉, 그땐 자신의 실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말.
안느의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진 것을 본 이실리테가 안느의 등을 토닥였다.
=안느라고 해도 주인님의 흑창 앞에서는 1분도 못 버틸 거야.=
=…….=
=주인님이 진심을 낸 공격을 피하는 사람이나 괴물은 한 번도 못 봤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똑같을 거다. 그러니 풀죽지 마라.
이거 위로 맞나? 위로 맞겠지?
=야.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해?=
=상급 무관의 무관장 딸도 5급 투사인데 주인님한테 개 맞듯이 맞았는걸. 안느라고 해도 별로 다를 거 같지 않은데?=
=나도 본심을 내면 장난 아니거든?! 대장도 나한테 한 방 맞았잖아!=
=그건 반칙 비슷한거였잖아.=
“그만. 조용히 해라.”
아웅다웅하려는 이실리테와 안느를 조용히 시킨 환인은 억울함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엽사 여자 영혼을 불러들여 강제력으로 물었다.
‘방금 공격은 네 의사였나. 대답해라.’
「그래! 내가 했어! 널 죽이고 싶어서! 억울해!! 미칠거같애!! 아아아악——!!!」
후, 작게 웃은 환인은 발악과 발광을 동시에 하는 인서족 여자 영혼을 응시했다.
우연히 발상을 전환해서 생각해낸 한 가지 가설.
강제력으로 영혼에게 얌전히 있으라는 명령을 내려놓으면 사람에게 사람의 영혼을 강령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을 확인한 환인이다. 흡족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웨이포드를 나와 마에스티그 촌락에 도착하기 전, 가닌 평원에서 했던 강령 실험의 연장을 마무리 지은 환인은 엽사 여자의 시체를 다른 시체들과 함께 구석으로 치우고 말했다.
“여기서 1시간 정도 쉬었다 이동하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확인하면 죽인 사람의 영혼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고,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라.’
강제력이 얼마나 지속되는지에 관한 확인이다.
명령을 내린 환인은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굳은 나체의 인서족 여자 영혼을 응시하며 켈틱 돌도끼에 묻은 핏자국을 닦기 시작했다.
처음에 환인은 저 여자를 살려놓고 위층의 끄나풀 협잡꾼 여섯까지 죽인 뒤 그자들의 시체까지 들고 나가서 병사에게 인계하려 했었다.
하지만 검회색 늑대 머리를 떠올리곤 생각을 접었다.
시체와 범죄자를 인도해보았자 특별한 메리트가 없다. 미궁 강도를 넘겨주면 약간의 금전적인 보상이 나오지만, 말 그대로 약간이다.
하지만 검회색 늑대 머리를 죽이고 시체를 밖에 내보냈다간 그자의 뒷배로 인한 성가신 일이 발생할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환인은 문득 아공간 가방에 시체 네 구가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미궁 깊은 곳에 버려서 흔적을 지우고 싶은데.
소년이 좋아하는 소녀를 괴롭히듯 이실리테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괴롭히던 안느가 환인을 돌아보며 묻는다.
=그래서, 대장은 뭘 실험해본 거야?=
“이런 거다.”
정령으로 안느에게 최하급 강령을 펼쳐준다. 그러자 헉? 외마디 탄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 안느가 자이언트 워 해머와 자이언트 타워 실드를 들었다 내리고 다리도 들었다 내리며 놀라워했다.
=세상에. 이거 뭐야? 힘뿐만이 아니라…… 그냥 신체 능력이 전체적으로 좋아졌는데? 몸에 막 힘이 넘쳐흐르잖아! 무슨 축복인데 이거?!=
“영혼을 다스리면 그것보다 몇 배나 더 강한 축복을 걸 수 있다. 아직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바로 쓰진 못하겠지만, 조만간 쓸 수 있게 되겠지.”
=…….=
안느의 머릿속이 팽이처럼 팽팽 돌아간다.
무술 실력만큼은 7급을 뛰어넘는다. 영혼사로서 확실한 능력에 뭐, 이런 미친 강화 축복을 걸 수 있어? 강화 술사들도 힘이면 힘, 순발력이면 순발력, 체력이면 체력 하나씩 밖에 못 거는 걸?
이슬이가 말하긴 했었다. 4~5급 정도 되는 축복을 걸 수 있다고. 하지만 뭔가 특별한 조건이 있다거나 뭐 그런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막 뿌릴 수 있는 거였어?
그런데 이 축복보다 몇 배나 더 강한 걸 걸 수 있다고?
‘……미쳤는데?’
거기다 저 지식. 지능과 탐구열까지.
=으음. 대장?=
“……?”
=미안. 지금까지 대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거 같아.=
“음.”
=새로 바뀐 인식으로 생각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장은 호족과 성족의 욕심을 얕보고 있는 거 같네.=
“…….”
=5년 이내에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대장이 8급의 완숙한 대영웅이 되지 않는 이상 대장을 귀찮게 할 놈들은 널리고 널렸어. 그냥 앞으로도 계속 입 다물고 정체를 숨겨야겠는데?=
“음…….”
8급이면 전술 병기를 넘어 전략 병기 취급을 받는 수준일 텐데 그 정도는 되어야 귀찮은 일을 걷어낼 수 있을 거라고?
환인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을 무렵 1시간이 흘렀고, 아직도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있는 알몸의 여자 영혼을 힐끔 바라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부분은 나가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지. 안느, 혹시 아공간 가방에 여유가 있나.”
=어느 정도는.=
“저 시체를 다 담아서 저층에 버리고 싶다. 지금 흔적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데 도와주면 고맙겠군.”
=뭐 그런 걸 가지고.=
안느는 군말 없이 허리띠에 매달려있는 여러 개의 주머니 중 비단 자루처럼 생긴 것을 꺼내 시체를 하나씩 담아나갔다.
그러면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있는 환인을 힐끔거린다.
대체 대장은 원래 세계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그만한 힘을 가지고도 으스대거나 우쭐대는 것 없이 사회의 밑바닥 같은 곳에서 부평초처럼 돌아다니는 걸까.
‘…….’
안느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싹이 트고 있는 감정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자조적인 웃음을 작게 흘렸다.
내 주제에 무슨…….
=왜 그래?=
=암것도 아냐.=
옆에서 일을 돕던 이실리테가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가 다시 미궁 강도들의 시체를 끌고 온다.
그런 이실리테의 뒷모습을 보며 안느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이런 식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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