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155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 * *
문짝이 달려있지 않은 폭 3m의 입구를 지난 환인은 폭발음으로 추측한 것처럼 황색의 밀가루 구름 같은 것이 통로를 채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황색 운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직업자 네 명.
미리 숨을 멈추고 있던 환인은 염소 머리 남자 하나와 여자 셋을 목격하고 장전해놓았던 4중첩 영혼 화살 4발을 장비 수준에 따라 목과 사타구니 사이 국부, 머리, 심장 등에 쏘았다.
퍼버버벅!
=끅?!=
=컥.=
=끄아악!?=
=흐컥.=
목과 머리를 관통당한 여자 둘은 즉사. 국부에 맞아 성기가 통째로 갈려버린 염소 머리는 사타구니를 감싸며 풀썩 주저앉았고 얇은 가죽 갑옷을 입은 여자는 생각보다 높은 방어력 덕에 가슴에 얕은 구멍이 나는 정도로 목숨을 건졌다.
“…….”
콰직!
=꼑.=
말없이 켈틱 돌도끼를 들어 경화 가죽 투구를 쓴 염소 머리의 이마를 찍어 죽인 환인은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진 엽사 직업의 여자에게 힐끔 시선을 준 뒤 통로의 앞뒤를 살폈다.
영혼 시야로 보이는 회색 통로 끝과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
그래도 추가 습격자를 염두에 두는 게 좋겠지.
=대장!=
=주인님!=
마악 방을 나오려는 안느와 이실리테에게 숨 쉬지 말고 방으로 다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고 뒤따라 들어간다.
=뭐야? 무슨 일인데?=
다급하게 질문하는 안느에게 고개를 작게 흔들고 안느와 이실리테에게 좀 더 물러나라고 한 뒤 두 손으로 몸을 툭툭 털자 황색의 옅은 먼지가 풀풀 날리기 시작했다.
척 봐도 몸에 안 좋아 보이는 가루 구름에 안느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린다.
=뭐지? 황색이면 투르키스트의 마비 가루인가? 오헨바움의 실명 가루일 수도 있고…….=
=로레타의 신경마비독일 수도 있어요!=
=……대장! 숨 쉬면 안 돼!=
방금 자신이 숨 쉬지 말라는 경고를 한 걸 잊은 건가. 환인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몸을 털어나간다.
쿠엣.
그때 비상이 환인의 앞에서 날개를 펄럭펄럭 퍼덕이기 시작했다. 그 날갯짓을 따라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황색 가루를 입구 너머로 날려 보낸다.
덕분에 한결 수월히 몸을 털어낸 환인에게 안느가 다가가며 주머니에서 커다란 성수 병을 꺼내 들었다.
=대장. 성수야. 머리 숙여봐.=
후드까지 털어낸 환인이 고개를 숙이자 머리 위로 성수를 뿌리며 웅얼웅얼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성수에 옅은 빛이 스며들면서 환인의 머리와 얼굴을 적시기 시작했다.
‘질병 치료나 독 치료 주문인가.’
약 2ℓ 정도 되는 성수로 얼굴과 손까지 씻은 환인은 두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후우, 숨을 내쉬고 안느에게 인사했다.
“고맙다.”
=……어? 어어! 응. 아니야. 괜찮아.=
멍하니 환인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안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황급히 대답했다.
물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 붓으로 그린 듯한 짙은 눈썹. 우수에 잠긴 듯한 눈동자와 날렵한 콧날. 꾹 다문 남자다운 입술…….
정신없이 환인을 훔쳐보는 중에 이실리테가 수건을 환인에게 넘겨주며 물었다.
=주인님, 적인가요?=
“그래.”
=……음! 위층의 그 후레자식들이 쫓아온 거야?=
“아니다. 얼굴 면면이 다르더군.”
짐작하자면 처음 발을 내디뎠던 방에 저 네 명이 대기 중이었다가 비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피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앞서 나아갔겠지. 언데드는 온기를 감지한다고 했으니 온기를 감추는 마도구를 쓰면 싸우지 않고 피할 수 있을 터.
놈들 전원이 소리가 덜 나고 눈에 안 띄는 검은색 가죽 갑옷이나 가죽옷을 걸치고 있었다는 게 심증을 더한다.
“아니면 우리 뒤를 쫓아왔을 가능성도 있고.”
=그렇군. 다 죽였어?=
“셋은 죽였고 하나는 살아있다. 비상, 방금처럼 날갯짓으로 바람을 일으키면서 천천히 나가자.”
쿠엣!
안 그래도 뒤에서 구경만 하느라 심심했는데!
환인의 지시에 비상은 신난 듯이 날개를 펄럭여 앞으로 바람을 날려 보내며 천천히 걸어간다.
그렇게 통로로 나온 환인은 재차 사납게 일어나는 황색 가루 구름 사이로 가슴에 구멍이 난 엽사 여자가 비틀거리며 도망가는 것을 보고 단검을 던져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종아릴 맞췄다.
파박
=아악!=
“비상. 계속 바람을 일으켜라.”
쿠에~.
비상이 날개를 크게 펄럭일 때마다 땅에 내려앉은 가루가 다시 풀풀 날리며 쓰러진 엽사 여자 너머 통로 저편으로 날아간다.
그사이 환인은 마스크 세 개를 꺼내 안느와 이실리테에게 쓰라고 넘겨주고 자신도 쓴 뒤 축성 받은 천을 꺼내 비상식량의 코가 있는 우리 쪽에 걸어주었다.
아라비아풍 면사포를 쓴 비상도 꽤 잘 어울린다고 잠깐 생각한 환인은 멍하니 자기 시체 위에 멍하니 서있는 영혼 셋을 끌어당겨 영혼 구슬로 만들었다.
이어 황색 가루가 다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벌레처럼 기고 있는 엽사 여자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끌고 온다.
=아, 아악! 아으윽! 흐윽!=
허벅지에 박힌 단검이 땅에 걸릴 때마다 상처를 헤집는 고통에 여자가 몸부림친다. 그럴 때면 머리카락이 뚜두둑 소릴 내며 한 움큼씩 뜯겨나가고 그때도 고통에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그러면 허벅지에 단검이…… 이하 반복.
“비상. 그만해도 된다. 잘했다.”
쿠엣!
그때까지 날개를 열심히 펄럭이고 있던 비상에게 칭찬해준 환인은 방 안으로 엽사 여자를 끌고 와 내팽개쳤다.
까악, 까마귀 우는 소리와 비슷한 비명과 함께 나동그라진 여자는 몸을 웅크리며 고통과 두려움에 흐느꼈다.
이 남자는 뭐야?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손가락 사이에 뭉텅이로 걸린 노란색의 머리카락을 털어낸 환인은 동맥이라도 잘렸는지 허벅지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여자를 보며 안느에게 물었다.
“성술로 이 여자를 치료할 수 있나.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된다.”
어깨에 워 해머를 걸치고 잠시 상처를 건드려본 안느는 필요 없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회복 물약을 마셨네. 상처가 아물고 있으니 이대로 내버려 둬도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을 거야.=
“그래?”
=자, 잠깐만요! 오해에요! 오해세요! 우리는……!=
무감정한 얼굴로 다가오는 환인의 모습에 엽사 여자가 새우처럼 펄떡이며 다급히 말했지만, 환인은 일체의 변명을 무시하고 엽사 여자의 다리에 박힌 단검을 뽑은 뒤 망설임 없이 엽사 여자의 양 허벅지를 밟아 분질렀다.
우둑, 뚝! 뚜둑!
=아아, 끄아악! 끼아악!!=
이어 켈틱 돌도끼를 망치처럼 잡고 날의 반대쪽 뭉툭한 부분으로 왼쪽 어깨를 내려쳐 어깨뼈까지 박살 낸다.
그렇게 무력화시키고 나자 엽사 여자가 죽을 듯이 신음을 흘리며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끄윽, 끄어억…….=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벌벌 떠는 엽사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노란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안느가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야. 우리 대장 손속에 자비가 없는걸.=
“적에게 자비가 필요한가.”
=없지. 어설픈 관용이나 아량을 베풀었다가 동료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어디 있어.=
척 봐도 이쪽을 노리고 독 연기 공을 던진 놈들이다. 심증과 물증까지 완벽한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 틈에 바깥 통로의 시체 세 구를 끌고 온 이실리테는 다람쥐 귀를 한 엽사 여자는 물론 시체의 품도 뒤지기 시작했다.
=윽, 아각……!=
엽사 여자의 가죽옷을 강제로 벗기고 상의도 찢어버리다시피 벗겨 속옷까지 털어본 이실리테는 몇 개의 물약 파우치를 가져와 안에 든 약병을 환인의 앞에서 모두 꺼냈다.
=주인님. 이게 아까 그 독의 해독제가 아닐까요?=
이실리테가 양손에 든 것은 엄지 크기만 한 작은 유리병이었다. 하나는 갈색의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비워져 약간만 남아있는 병.
둘 다 액체가 같은 색이다.
=빈 병은 통로 바닥에서 주웠고 이건 다른 도적의 주머니에서 나왔어요.=
“그럴 확률은 높겠군.”
대답하며 갈색 병을 받은 환인은 벽에 던져 깨버렸다.
=앗?!=
=어어, 뭐 하는 거야?=
“독약과 해독제는 검증된 곳에서 구매한 게 아닌 이상 믿는 게 아니라고 했지. 독을 가진 놈들이니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모른다. 회복제도 다 버려라.”
=네.=
이실리테는 망설임 없이 물약 파우치를 멀찍이 던져버린다. 그걸 본 안느는 환인이 지팡이를 허공에 대고 흔드는 걸 보며 중얼거렸다.
=이놈들이 카락스의 암살자처럼 독술의 대가도 아닌 거 같은데…….=
=하지만 틀린 말씀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환인도 영혼을 불러내 안전성을 확인한다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검회색 늑대 머리 남자가 물약을 배포해주고 내용물의 안전성은 그 자신만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할 텐가.
안느와 작게 소곤거리던 이실리테는 환인이 내민 스틱 끄트머리에 희끄무레한 염소 머리 영혼 하나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긴장했다.
“…….”
환인이 스틱으로 반쯤 죽은 눈으로 쓰러져있는 인서족 여자를 가리키자 염소 머리 남자의 영혼이 다시 희미해지며 여자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대답해라. 네놈들 정체는 뭐지?”
=끄. 끄으…… 흐억, 저으……히는, 나암…서 쪼옥…….=
간질이 일어난 것처럼 눈물 콧물 침을 흘리며 벌벌 떠는 엽사 여자의 모습에 환인의 눈빛이 깊어진다.
사람의 영혼으로 강령을 펼쳤는데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온 것이다.
‘정신력으로 영혼의 지배를 저항하는 건가. 아니면 영혼과 육체가 맞지 않아서?’
하지만 엽사 여자의 정신력은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았는데. 뭔가 조건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성별의 동일성이라던가 개체별 영혼 감응, 적응치라던가.
마에스티그의 소녀 영혼을 떠올리며 엽사 여자에게 이것저것 시험해본 환인은 자신의 예상 중 몇 가지가 맞아떨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같은 성별의 영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벌어져 강제력이 잘 듣지 않는다. 물론 육체와 영혼 간의 괴리때문에 강령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영혼과 동조율도 있어 동조율이 높을수록 영혼이 육체를 쉽게 지배할 수 있다. 힘도 더 강하게 낼 수 있는 듯 하다.
실험을 끝마친 환인은 팬티만 입고 젖가슴을 깐 모습으로 죽을 듯이 헐떡이는 여자를 응시하다가 강제력을 담아 물었다.
“네놈들 정체는?”
=우리……는, 크라버리에서 활동하는…… 미궁 강도…….=
다른 여자의 영혼이 강령된 엽사 여자가 힘겹게 대답하자 안느가 보충 설명을 해준다.
=크라버리면 여기서 걸어서 한 달 거리에 있는 중급 도시야. 꽤 오래된 도시인데 성주가 좀 그래서 그다지 좋은 곳이라고는 못해. 도시 풍경도 좀 어두침침하고.=
“음. 일행은 몇이나 더 있지.”
=세, 셋……=
“세 명이라는 건가 세 팀이라는 건가.”
=…세, 팀…….=
“위층 통로 앞에 있는 여섯도 네놈 일행인가.”
=그렇… 그래요…….=
뒤에서 =망할 자식들.=하고 씹어 내뱉는듯한 안느의 목소리가 들린다.
환인은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믿는 구석이 있나? 네놈들을 뒤에서 봐주는 뒷배 같은 것. 숨기는 것 없이 모두 사실대로 말해라.”
=없, 없어…….=
없다고? 그럴 리가.
환인의 기억 속에 검회색 늑대 머리 인간의 그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 눈을 하고 있으면서 아무런 뒷배도 없이 미궁에서 강도질을 하고 있다고?
나 같은 놈이?
“…….”
환인의 눈빛이 재차 깊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