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154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 * *
[감옥 미궁 1층]
=해골 늑대 한 마리.=
그르르륵.
안느의 목소리에 반응한 해골 늑대가 눈구멍이 있는 곳에서 시뻘건 광채를 뿌리며 자세를 낮추고 이쪽을 향해 이빨을 딱딱거린다.
어떻게 하지? 지시는?
첫 방에서 바로 적과 마주칠 거라고 생각 하지 못한 안느였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야 돌연변이 미궁도 아니고 1층에 마주치는 이형종은 고작해야 1급인 게 당연하다. 당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이실리테. 네가 상대해라.”
=네.=
해골 늑대와 조우하자마자 2초, 영혼 시야로 해골 늑대를 확인하며 견적을 뽑은 환인은 바로 이실리테를 투입했다.
뼈다귀는 얄팍하고 크기도 몸길이가 1m 정도로 작은 수준이다. 움직임도 느릿하니 강해봤자 1.5급 수준이겠지.
환인의 지시에 즉각 근력을 허벅지에 집중, 순간적으로 튀어간 이실리테는 중철 대검을 번개같이 휘둘렀고.
붕 콰자작!
대검의 궤적에 놓여있던 해골 늑대는 그 일격에 박살 나 8평 남짓한 감옥 방에 흩뿌려졌다.
두개골이 천장과 벽에 두 번 바운드 하고 데굴데굴 굴러간다.
수십 개의 뼛조각으로 변해버린 해골 늑대지만, 죽은 자는 쉽게 소멸하지 않는단 사실을 알고 있던 이실리테는 해골 늑대를 응시하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
그리고 커다란 뼛조각 몇 개가 미묘하게 움직인 것을 포착하자마자 순간적으로 몇 가지 해결법을 떠올린 이실리테는 해골 늑대의 두개골을 포함한 모든 뼈를 짓밟아 박살 내버렸다.
산산조각 내버리면 재생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해골 늑대의 두개골이 이실리테의 발길질에 박살 난 순간 검회색의 색계통으로 물들어있던 해골 늑대의 뼈다귀가 무색으로 변한다.
환인은 이실리테를 조용히 불렀다.
“해골 늑대가 박살나기 전, 그리고 박살 난 후를 잘 보았다면 뼈가 해골 늑대의 두개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걸 눈치챘을 거다. 두개골만 박살 냈으면 재구성하지 못했겠지.”
=아…… 저는 확신을 못 했어요.=
“그래. 하지만 그중 확실한 방법을 선택한 것은 나쁘지 않았다. 판단력 부분에서 턱걸이로 합격점은 줄 수 있겠군.”
턱걸이긴 해도 합격이다. 미궁이라서 기쁨을 드러내지 못하고 미묘하게 꼼질 거리던 이실리테는 안느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대장, 이슬아. 이거 보물상자 아냐?=
어두컴컴하고 돌가루 날리는 음침한 방구석, 안느가 가리킨 곳에는 낡은 수납장 비슷하게 생긴 나무 구조물이 있었다.
“보물상자가 맞나?”
=미궁에 이런 상자 형태는 대부분 보물상자라고 봐야지. 보물상자로 의태한 괴물도 있긴 한데…… 여긴 1층이니 그런 게 있진 않을 거야. 있어도 약할 테고.=
미믹 박스가 있을 수도 있는 건가. 환인은 거무튀튀하고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형편없는 상자를 살펴보며 말했다.
“함정 상자일 가능성은?”
=이런 낡은 상자에 함정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한 안느는 환인에게 물러서라고 한 뒤 자이언트 타워실드 끝으로 수납장을 가볍게 툭, 쳤다.
와자작.
가볍게 반쪽으로 쪼개지는 목제 수납장.
‘함정은 없군.’
쪼개진 나무 상자의 잔해를 발로 치우고 내부를 들여다본다. 내부에는 형편없이 녹슨 철 단검 한 자루와 은으로 보이는 엄지 굵기의 귀금속 덩어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집어보니 150g 정도 되는 무게. 이 정도면 대강 5온스, 12동화 정도 되는 가치다.
1층 상자에서 이런 게 나온다면 심층의 상자는 꽤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환인이었다.
안느도 옆에서 보곤 씩 웃으며 말했다.
=시작부터 보물상자라니, 괜찮은데?=
=그런 거야?=
=이건 미신일 뿐이지만 미궁에서 성과가 나쁘면 파티 리더를 탓하기도 해. 신의 저주를 받았다거나 신에게 총애를 못 받았다고 말이야. 반대로 성과가 좋으면 신에게 선택받았다며 좋아들 하고.=
=그건 운이잖아.=
=그런 거에 기대는 게 사람인 거지.=
이실리테와 안느의 대화를 들으며 녹슨 철 단검과 은 5온스를 챙겨 비상의 등 주머니에 넣은 환인이 말했다.
“운이라는 것은 말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사색과 고찰의 소재로 몇 년, 몇십 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 운이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신의 축복과 저주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아…….=
“그래서, 1,000마리 정화는 어떤 식으로 체크하는 거지?”
=응, 잠깐 기다려.=
자이언트 워 해머를 등에 진 안느는 허리춤에서 앙크ankh와 비슷하게 생긴 황토색 징표를 꺼내 이실리테가 밟아 부순 두개골 잔해 근처에 가져다 대었다.
시이이잉…….
약간 시린 효과음과 함께 두개골의 잔해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빠져나오더니 징표로 빨려 들어간다.
그걸 본 환인은 미간에 살짝 힘을 주었다가 이실리테를 보았다. 이실리테도 그 희끄무레한 것을 보았는지 신기해하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영혼이 아니라는 뜻인데.’
잠시 기다렸지만, 해골 잔해에서 영혼은 나타나지 않았다.
죽은 자가 일어나서 움직이는 거다. 영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오지 않는 것을 본 환인은 약간 곤란함을 느꼈다.
‘기술을 아껴야겠군.’
정령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많은 것도 아니다. 정령이 무한으로 리필 되는 것도 아닌듯하니 감옥 미궁을 탐사할 때는 영혼 구슬을 아껴 써야 할 듯 하다.
환인은 비상이 입구 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안느에게 말했다.
“누군가 새로 입장한 것 같군. 안느, 출발해라.”
=응.=
북쪽으로 난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직각으로 두 번 꺾이는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 접어든 두 번째 방은 처음 마주쳤던 방보다 4배는 큰 장소였다.
천장도 5m 정도로 높고 자질구레한 나무 파편과 나무 조각, 돌덩어리와 먼지가 널려있는 어둡고 거무튀튀한 방.
도배가 벗겨지는 듯한 벽과 구석에 쳐진 거미줄. 고문 도구가 있다면 적당할 것 같은 음침하고 음울한 느낌의 방을 둘러본 환인은 들어왔던 문을 돌아보았다.
‘지도의 통로 끝에 붙어있는 네모 표식은 문이라는 뜻인가. 그럼 안에 그어진 두 종류의 선은…… 함정?’
환인은 오른쪽 벽의 세 개 통로 중 유일하게 문이 달렸지 않은 가운데 아치형 통로를 가리켰다.
“바로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바로 내려가게? 미궁 강도 새끼들은 1층에서 많이 활동하지 않을까?=
“내가 습격자라면 지하층에서 기다릴 거다. 1층은 겁이 많거나 장비가 부실한 파티들이 활동할 테니까.”
게다가 혹시라도 사냥감을 놓친다면 바로 미궁을 탈출해버릴 테고 그러면 분노한 병사들이 들이닥치게 된다. 위험 요소가 많다.
반면 지하 1층으로 내려온 먹잇감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고 장비도 그만큼 갖춘 자들일 가능성이 크다. 수익과 안전이라는 측면에서는 1층보다 지하 1층이 훨씬 나은 것.
이런 설명은 해주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한 환인은 」자로 꺾인 통로를 지나 다음 방으로 넘어간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4급, 3급, 3급, 2급, 2급.
다섯 명이 널찍하고 어두컴컴한 방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다섯은 환인의 눈에 절대 평범하지 않아 보였다.
다섯 중 검회색 늑대 머리의 인랑족이 느긋한 목소리로 환인 일행을 보며 말한다.
=오, 여긴 저희가 캠핑 중입니다. 지나가시거나 다른 곳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
캠핑, 방에서 대기하며 주변 방에 리젠되는 이형종을 사냥한다는 조어다.
하지만 환인은 저 말이 거짓임을 간파했다
머릿속에 지도가 담겨있는 환인에게 이 장소에서 캠핑한다는 이유는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형태의 미궁이라면 캠핑 장소는 주변에 방이 많은 곳, 혹은 통로가 하나뿐인 곳이 선호된다. 반대로 계단이 길목에 있는 방은 캠핑 장소로 기피된다.
사람의 유동량이 많으면 리젠되는 이형종도 적어지기 때문.
방의 가로 길이가 약 21m인 직사각형의 이 방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캠핑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다. 횃불을 켜놨긴 했지만 빛이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구석, 아무도 없는 장소에 웅크린 듯한 연녹색 색계통이 보인다.
‘그림자 속에 숨어있나.’
어떻게 숨은 걸까. 전사나 투사는 아닐테고 엽사? 술사들이 위상력으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특수한 능력이 있나?
카턴 마을에 만났던 식객인 아센이 말했던 은신이 저런 식?
‘나도 아직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군.’
그때 아센에게 은신에 대해서 물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하는데 몇 초 들지 않은 중에 안느가 입을 열었다.
=장비도 좋아 보이고 능력도 훌륭해 보이는데 1층에서 캠핑해? 2계층에서 사냥해도 될 거 같은데.=
의아해하는 기색이 묻어나는 물음에 검회색 늑대 머리의 남자가 씨익, 송곳니가 드러나는 미소를 지었다.
=미궁이 성장할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심층에서 활동하다가 그런 사태에 맞닥뜨리면 위험하니까 말이죠. 그렇다고 활동을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여기서 푼돈 벌이라도 하는 거지요.=
그냥 보내준다면 이들은 길을 가로막고 사람을 사냥하는 놈들이 아니다.
‘그물 역할인가.’
환인은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 싶었던 것을 실제로 하는 퇴로 차단 역할의 파티를 한 번씩 살펴본 뒤 소울 스틱으로 땅을 탁, 찍었다.
그 신호에 담긴 뜻을 눈치챈 안느가 =수고해.= 짧은 인사를 남기고 문이 달렸지 않은 남쪽 방으로 넘어간다.
이실리테가 뒤를 따르고 환인은 비상을 먼저 보낸 뒤 가장 마지막에 아치형으로 개방된 문을 통과했다.
=…….=
환인을 돌아보며 하나 물어보려던 안느는 환인이 손가락을 세워 입에 대고 있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환인이 가리키는 정면 쪽의 문으로 걸어가 연다.
안쪽을 보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어둠에 잠겨있었다.
[감옥 미궁 지하 1층]
아래층으로 내려온 안느는 방이 아니라 통로임을 보고 방패를 세워 전방을 경계하는 채로 입을 열었다.
=대장?=
“안으로 계속 들어간다. 저 앞 꺾어지는 곳에서 오른쪽에 문이 있으니 거기까지 가지.”
=응.=
자박자박, 돌조각을 밟는 소리가 그럭저럭 넓은 통로를 울린다.
안느의 뒤를 따라가던 환인은 문득 벽을 따라 자라는 덩굴을 보다가 소울 스틱으로 덩굴을 살짝 치웠다.
기묘하게 생긴 글자가 보인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파낸 듯한 흔적이다.
“…….”
문자를 향해 영혼 화살을 쏘았다.
팍
작은 소리와 함께 글자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마법적인 함정이었다면 무언가 반응이 있었을 텐데 없는 걸 보니 별것 아니겠지.
쿠우?
안 오고 뭐해? 고개를 갸웃하는 비상의 날개를 툭툭 건드려주고 통로를 꺾는 중인 이실리테의 뒤에 따라붙었다.
“비상. 인기척이 느껴지나.”
쿠엣.
아니, 작게 대답하는 비상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환인은 마악 두 번째 코너를 돌려 하는 안느에게 말했다.
“정지.”
=응.=
……여기에 문이 있어야 하는데.
지도에 표기된 문이 없는 상황에 잠깐 미간을 좁힌 환인은 덩굴이 바닥까지 늘어져 있는 왼쪽 벽을 살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는 벽이지만 지도에는 선을 그려놓고 머리글자 하나가 적혀있었다.
잠시 각양각색의 돌로 만든 벽을 더듬던 환인은 유달리 돌출된 손바닥만 한 작은 돌을 발견했고.
덜걱.
그것을 누르자 무언가 기관이 작동한 소리가 들렸다.
=뭐야. 함정?=
“비밀 문이군.”
짧게 대답한 환인이 문을 약간 힘줘서 밀자 그그그극 맷돌 소리와 함께 벽이 외 여닫이식 문처럼 천천히 열린다.
=오.=
=와…….=
뒤에서 두 여자가 지르는 탄성을 듣고 흘린 환인은 안쪽의 방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먼저 입장한 뒤 쫓아오는 두 여자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 지도를 안 봤군.”
=으, 응?=
=보긴 했는데요…….=
작게 대답하는 이실리테는 보긴 했지만 외우진 못한 것으로 보였다.
“모든 층의 기믹을 외우라고는 하지 않는다. 적어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봐두도록 해라. 지도를 사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니까.”
=으응. 알았어.=
=네, 주인님.=
“이실리테. 비밀 문을 닫도록.”
지시받은 이실리테는 군말 없이 반쯤 열린 비밀 문을 밀어 닫고 돌아온다.
그런 이실리테와 자이언트 워 해머를 지팡이처럼 짚고 있는 안느에게 말했다.
“위층에서 캠핑 중이라고 말한 놈을 포함한 다섯, 그리고 숨어있는 한 놈까지 해서 여섯 놈 전부 인간 백정이다.”
=이, 인간 백정이요?=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놈들 특유의 비인간적인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확률은 100%겠지.”
=역시…… 그런데 한 놈이 숨어있었다고?=
“구석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비인간적인 분위기라는 것은 그녀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듬은 표현이었고, 실상은 검회색 인랑족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기질을 느낀 환인이었다.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고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인랑족의 눈에서 자신처럼 선천적 감정 결핍증이라는 걸 느낀 것이다.
“놈들의 역할은 아래층에서 사냥하다 놓친 사냥감이 위층으로 도망치면 거기서 낚아채는 그물망일 거다.”
환인의 짧은 설명에 안느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그놈들, 내버려 둘 거야?=
“지금은 내버려 둔다. 돌아나가는 길에 처리하기로 하고, 당초 목표대로 움직이지.”
=……알았어.=
잠깐 망설이다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인 안느와 함께 환인은 다시 미궁의 탐색을 개시했다.
=어잇?=
퍽!
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반쯤 썩어 내린 개과의 인간형 좀비를 보고 놀란 안느가 통나무 같은 다리로 퍽, 걷어차 박살 내버리기도 하고.
=세상에. 발차기에 사지가 박살 나다니…….=
=다리에 위상력을 담으면 이슬이 너도 할 수 있어.=
어둠에 잡아먹힌 통로 너머에서 다닥다그닥 소리와 함께 해골마가 나타나 돌진해오기도 하고.
콰광!!
=별것도 아닌 게.=
=……그거 방패 맞지? 방패 둔기 아니지?=
=넓은 범주에서 보면 이것도 타격 무기긴 해.=
9m * 9m 넓이의 방 안에 우뚝 서 있던 말라붙은 시체가 “오로로로롱!!” 귓구멍에 찬물을 쑤셔 넣는 귀곡성과 함께 날듯이 뛰어드는 것을 워 해머로 골통만 날려버리기도 하는 등, 전반적으로 큰 문제 없이 미궁을 탐색해나갔다.
=식시귀의 비명은 언제 들어도 최악이라니까.=
=방금 그게 식시귀라는 괴물이야?=
=맞아. 보통은 시체가 일어나서 퇴치당하지 않고 한참을 지나 말라비틀어진 뒤에 악귀로서 더 강화된 것들을 말해. 하지만 여긴 미궁이라서 그런가? 그냥 튀어나오기도 하네.=
=……기분 나쁜 괴물이었어.=
=죽음에서 일어난 괴물들이 다 그렇지 뭐. 그게 혼재의 재앙이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는 이유고.=
지도에서 6시 방향의 커다란 방에 도착해 식시귀???를 처단한 안느와 이실리테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던 환인은 뒤에서 팔짱을 꼈다.
지하 1층에서 활동하는 인간 부스러기는 없는 건가.
중복을 포함해 9개의 방을 지나치는데 2시간 30분이 걸렸다. 1층에서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을 더한다면 입장한 지 이제 3시간째.
그동안 마주친 이형종은 해골 늑대, 해골마, 시귀라고 부르는 좀비, 식시귀라고 부르는 강화 좀비까지 해서 4마리.
생각보다 이형종의 숫자가 많은 편이 아니다. 빛이 닿지 않는 미궁에서는 이형종을 만나면 셋 씩, 넷 씩 몰려나왔는데 여긴 방마다 1마리, 간혹 통로에도 1마리씩 있을 뿐.
이대로면 퀴퀴하고 시체 썩는 냄새가 가득하며 어두컴컴한데다 공기도 별로 좋지 않은 감옥 미궁에서 100일을 보내야 할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희열보다 안정과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이런 곳에서 3달을 넘게 보낸다는 건…….
‘미궁 저층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이형종이 더 많아질까.’
팔짱을 낀 채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다시 죽은 식시귀, 그 시체에 대고 위상석 탐지 도구를 돌리는 이실리테를 쳐다보며 이후 일정의 조절을 염두에 두던 환인은 쿳? 비상의 인기척에 즉시 들어온 통로 쪽을 보았다.
이 방은 출입구가 서쪽의 하나뿐.
그리고 그 하나뿐인 통로에서 작고 하얀 공 같은 것이 탁 입구 쪽 벽에 부딪혀 원 바운드로 방에 들어오는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환인의 눈에 박혀 들었다.
‘…….’
환인의 사고가 맹렬하게 가속하는 동시에 짤막한 아쉬움의 감정을 출력한다.
‘귀찮더라도 사람 영혼을 하나 데려왔어야 했어.’
동시에 소울 스틱을 들어 하얀 공의 예측 동선과 각도를 계산한다. 이어 영혼 폭발을 장전, 계산이 끝나자마자 발사.
‘터져라.’
콰—… 광!!
영혼 폭발의 구슬이 지정한 장소에서 터지는 것과 함께 사고 가속이 종료되었고, 폭발의 충격파에 밀쳐진 하얀 공이 들어왔던 궤적을 따라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갔다.
[…씨발?!]
벽 너머에서 들려온 욕설. 그리고 이어진 작은 폭발 소리
펑…!
환인은 즉시 켈틱 돌도끼를 뽑아 들고 오른손의 소울 스틱과 스위칭하며 입구 쪽으로 튀어 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