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153 우둔=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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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티를 소장원 근처 쿠에 관리소에 맡긴 환인은 일행과 함께 걸어서 감옥 미궁이 있는 도시의 북동쪽, 백원벽白??으로 향했다.
기성품으로는 맞는 게 없어서 수제로 10벌 정도 주문한 뒤 입고 다닌다는 망토를 걸친 안느가 홀가분하다는 투로 말한다.
=비상이 있으니까 몸이 가벼워서 좋네.=
쿠엣.
비상의 등에는 일행의 짐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환인과 이실리테, 안느의 소지품이 든 가방에 미궁에서 사용할 식자재가 든 보존 주머니와 장작이 가득 든 아공간 주머니, 정화 물 주머니 2개와 각종 야영 도구가 든 가방이다.
부산물을 담아오기 위한 주머니는 없었다.
2~3일간 1계층을 둘러볼 예정인데 1계층에서 나오는 이형종의 부산물은 돈 안 되는 저품질이었고 시체가 들고나오는 썩은 무기나 방어구 등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노동자들은 미궁에서 재생성되는 쇠창살이며 나무 구조물의 재질을 보고 그런 것도 다 챙긴다고 하지만, 환인은 간단하게 몇 가지만 챙길 생각이었다.
이형종의 위상석, 벽에 박혀 빛을 낸다는 야광석?光?, 보물 상자.
이 세 가지는 1계층에서 운이 좋아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인데다 부피도 적으니 지금 가져가는 가방에 충분히 담을 수 있다.
덕분에 일행은 몸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안느는 처음 만났을 때 착용 중이던 눈에 띄는 워 해머와 회색 전신 철판 갑옷, 그리고 회색 망토를 두른 차림.
이실리테도 비슷한 망토를 사슬철판 갑옷의 위에 걸치고 중철 대검을 비껴 멨으며 환인은 위아래 검회색 가죽옷에 회색 후드 로브를 입고 소울 스틱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는 상태.
비상의 안장에 채워진 흑창을 힐끔거리던 안느가 환인의 옆에 서며 묻는다.
=근데 대장. 저 흑창은 보통 무기가 아니던데 어디서 구한 거야?=
“창날은 성수라고 불리던 멧돼지의 어금니를 갈아서 만들었다. 번개를 쏘던 하얀 멧돼지였는데 5급이 아니었을까 싶군. 창대는 6급 삼림형 미궁에서 호브가 들고 돌아다니는 걸 강탈했지.”
=번개를 쓰는 하얀 멧돼지라니, 정말 세상에는 희한한 짐승이 많다니까……. 그래서 창에 강한 힘이 느껴진 건가?=
안느의 혼잣말을 들은 이실리테가 =강한 힘?=하고 묻자 설명을 덧붙인다.
=위상석으로 마도기나 마도구처럼 무기나 방어구에 옵션을 부여하는 건 알지?=
=응.=
=너도 더 성장하면 그런 무기나 방어구의 위상력을 느낄 수 있게 될 거야.=
=아. 주인님의 흑창에서 마도기 같은 힘이 느껴진다는 거였어?=
=응. 저정도면 4~5급은 되지 않을까 싶네. 허리춤에 찬 도끼는 그보다 훨씬 못하지만 작은 힘이 느껴지고.=
“…….”
환인은 이때까지 3급 이상의 마수나 5급 우르거에게도 자신의 창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에 약간의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오늘까지는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사용했지만, 안느와 이실리테의 대화 덕분에 그 이유를 찾았다.
‘그래서 이형종의 외피나 가죽도 수월하게 베어낸 거였나.’
그렇다면 율캄 마을의 후이니, 엔넬 자매의 부친이 마도기로 만들어주었다는 뜻?
자매의 부친, 벨비도가 했던 말을 떠올려봤지만 애매하다. 마도기를 만들어주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그 반대로도 해석되는 태도였으니.
하지만 두 딸을 살려서 데려와 주었다. 고마움을 느낀 벨비도가 전력을 다해 마도기를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즈음 저 멀리 건물 지붕 위로 백원벽이 보이기 시작하자 환인은 이실리테와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는 안느를 불렀다.
“안느.”
=응?”
“입장할 때는 네가 리더인 것처럼 행동해라.”
=흠? 아우라가 없는 것 때문에 그래?=
“그래. 무직자가 파티의 리더라고 하면 이래저래 성가신 일에 휘말릴 수도 있고, 평범하게 보면 네가 가장 리더 같으니까.”
안느는 셋 중 체구도 크고 장비도 가장 훌륭한데다 아우라도 6급에 가까울 만큼 짙다.
거기다 아우라의 형태도 보통의 투사와는 다르다. 평범한 투사의 아우라는 파도처럼 너울거리는 형태인데 안느의 아우라는 안개처럼 일정한 밀도로 퍼져나오는 형태.
얼핏 보면 후광처럼 보이는 아우라였기에 파티의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모습인 거다.
“비상을 데리고 다니는 것부터가 눈길을 받을만한 일이겠지. 괜한 의문의 시선을 받지 않으려면 6급 성투사인 네가 리더인 척하는 게 낫다.”
환인의 설명은 머리에 쏙쏙 들어올 만큼 이해하기 쉬웠기에 안느는 의문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장이 그러자는데 해야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대장이 리더를 해도 별문제 없을 거 같은데?=
“어째서지?”
=일단 외모. 대장의 얼굴만 보면 솔직히 어디 높은 관직을 하거나 머리 쓰는 일을 하게 생겼어. 그리고 그 지팡이도 평범한 지팡이로 안 보여. 어지간해서는 다들 법사로 볼걸?=
“평소 후드를 쓰고 다니니 얼굴은 드러날 일 없지만…… 법사라니?”
얼핏 인터넷 게임 용어 같은 명칭에 환인이 의문을 드러내자 안느가 ‘그것도 몰라?’하는 얼굴로 이야기를 꺼낸다.
=술사란 각성해서 여덟 가지 속성을 다루고 술을 익히는 사람을 말하지? 법사는 오직 지식과 의지만으로 위상력을 깨닫고 술법을 사용하는 사람을 말해.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아, 참. 대장은 다른 데서 왔다고 했지.=
=나도 몰랐는데…….=
옆에서 이실리테가 중얼거렸지만 안느는 못 들은 척 환인의 옷차림을 훑었다.
=다만 지금 대장의 장비는 법사라기보단 무사 같긴 해. 그것만 어떻게 하면 무직자가 미궁을 들어간다느니 무직자 주제에 유색 쿠에를 데리고 다닌다느니 말은 안 나올 거야. 법사들도 직업자를 따라 미궁에 은근히 들어가곤 하니까.=
“……무사는 뭐지.”
=근접 직업자로 각성하지 못했지만, 무예를 익히고 단련하는 사람들.=
“…….”
곰곰히 생각하던 환인은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빠져나왔다.
“이러면 괜찮은 것 같나.”
그리고 안느와 이실리테는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환인의 모습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오. 뭐야. 인상이 단번에 바뀌었는데?=
=주인님 그 모습도 멋…… 법사 같으세요.=
특별한 마술을 부린 것은 아니었다. 흑회색 가죽 재킷을 벗고 안에 겹쳐 입던 정장 조끼 같은 것만 바짝 조여 입었을 뿐.
입고 있던 셔츠는 일반 서민들이 입는 라운드넥 리넨 셔츠가 아닌 이실리테가 고급 의류점에서 구매해온 약간 광택 나는 목깃의 검은색 셔츠다.
검회색 가죽조끼와 가죽 바지는 류히가 환인이 입고 있던 정장을 참고해 제작한 핸드메이드 제품.
그러다 보니 이 세계에서 흔하지 않은 디자인이었으며 질감도 전투용 가죽옷이라기보다 약간이나마 방어력을 챙기려는 법사의 복장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막대기 같은 소울 스틱을 쥐고 있으니 좋은 의미에서 이질감이 환인의 외모와 어우러져 이지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낸다.
=응. 멋있어. 특히 가죽 바지가 적당히 마모된 게 베테랑이라는 느낌이야. 대장은 말투도 고풍스러운 편에 속하니까 그 정도면 헛짓거리하려고 접근하는 놈들은 대부분 걸러질 거라고 봐.=
=주인님. 이 후드 망토도 써보세요. 그러면 얼굴 특징도 가리면서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실리테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주는 검회색 후드 망토, 웨이포드에서 사둔 것을 받아들고 회색 후드 로브 대신 쓴다.
=이야, 아까보다 훨씬 낫다. 지금은 근접 전투도 약간 자신 있다는 느낌의 법사처럼 보여.=
“그러면 됐다. 인솔도 내가 하지.”
잠시 후 높고 하얀 백색 거벽巨?에 도착한 환인은 출입구에서 어제하고 다른 병사와 마주쳤고, 안느의 말대로 의심받지 않고 출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들어선 미궁 앞 광장에서 환인은 웨이포드의 미궁 입장 때와 달라진 시선을 느꼈다.
=저 복장은…… 뭔가 느낌 있군요.=
=가죽 바지인데 질감이…… 유케스 흑늑대의 가죽을 무두질 한 건가요?=
=맞습니다. 유케스 가죽이 아니면 특유의 치밀한 조직 질감은 구현 못 하죠. 그런데 조끼도 유케스인가 했는데 아니군요.=
=아라노드의 흑퓨마. 저 섬세한 모공과 탄성은 그것밖에 없지요.=
=명품 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게 어디서 구한 건지 참 궁금합니다.=
=저 남자 옷 잘 입는걸? 턱만 봐도 미남 같은데 한번 말 걸어봐?=
=관둬 미친년아. 옆에 여전사 안 보여? 너보다 몇 배는 이쁜데 니가 눈에 들어오겠냐.=
=남자 쪽은 플뢰같은데? 난 플뢰는 기생오라비 같아서 별로.=
=별로는 지랄. 니가 저 남자한테 별로겠지.=
=이년이 아까부터 자꾸 발 걸고 있네?=
=맞아. 남친하고 헤어졌다고 우리한테 화풀이 하지 마.=
=그 새끼 이야기는 하지 말랬지!=
주로 옷과 복장, 외모 등에 관한 이야기지만, 무직자 주제에 뭔데 직업자들을 이끌고 있느냐, 돈 많은 졸부가 미궁에 놀러 왔느냐던 소리와 인식이 하늘과 땅 차이다.
=헉. 저 사람은 무슨 종족이길래 덩치가 저래?=
=루크랑은 아닌 거 같은데…….=
=그보다 저만한 체격이 있으면 힘은 엄청나겠네.=
=야. 저기 저 여자 엄청 귀엽지 않냐?=
=저렇게 귀여운 애하고 미궁에 들어가면 좋겠지? 좋을 거야. 부럽다.=
=우리 파티는 왜 지긋지긋한 남자 새끼들만 있는 거지? 여자애를 파티에 왜 안 받아들이는 거야?=
=리더가 고자라서 그래.=
=쉬발럼아. 다 들리거든?=
그 외에는 안느의 덩치를 보고 기겁하거나 부러워하는 직업자들, 이실리테의 외모에 헤벌쭉한 남자들, 비상을 보며 녹색 쿠에를 짐차로 쓴다며 감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후드 달린 가죽 재킷을 벗은 것만으로 시선이 이렇게 분산되다니.’
실제 조언의 효과를 보니 이쪽 세계도 마찬가지로 외모에 대한 편견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지능을 가진 이상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편견을 뗄 수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환인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방어구 역할을 해주는 가죽 재킷을 벗었지만, 부담은 없었다. 이번에는 후방에서 영혼 화살과 영혼 폭발로 지원만 할 생각이기 때문.
오히려 몸을 꽉 조이던 가죽옷을 벗어서 선선하고 몸이 가볍다.
그때 안느가 옆에서 작게 중얼거린다.
=대장이 말한 분위기가 나쁘다는 뜻, 알 거 같아.=
“음. 어제보다 사람이 더 줄었군.”
=얼마나?=
“절반 정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출입 제한을 걸지도 모르겠다.”
=어? 그럼 안 되는데.=
안느가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에 환인은 일정을 떠올리며 물었다.
“죽은 자의 정화 임무에 기한이 있나?”
=그건 아니고.=
“그럼?”
=임무는 빨리 해결하고 속 편히 축제를 즐기고 싶으니까 그렇지. 당장 일주일 뒤부터 야간 시가행진을 한다고 들었단 말이야. 엄청나게 볼만하다던데.=
“…….”
=대축제 개최 일주일 전부터는 진짜 화끈하다더라. 특히 전야제에는 남자하고 여자들의 가장행렬이 이루어지는데 복장이 다들 헐벗어서…….=
“……그러니까 놀고 싶어서 빨리 해결하고 싶단 말이군.”
=어? 대충 그런 뜻이긴 한데…… 대장, 화난 거 아니지?=
“나지 않았다. 일정 관리는 융통성 있게 조율할 수 있으니 축제 준비 기간 중 하고 싶다거나 보고 싶은 게 있다면 미리 알아보고 이야기해라. 이실리테도 마찬가지다.”
=네, 주인님.=
=역시 대장이야. 멋져.=
환인에게 엄지를 척 세워 보인 안느는 옆에서 걷고 있는 이실리테의 어깨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데이트할 수 있겠다고 시시덕거린다.
이실리테는 당황하다가 환인의 옆모습을 힐끔거리며 주먹을 들어 올리고, 안느는 킥킥 웃으면서 그런 이실리테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아낸다.
그런 장난도 금방 끝났다.
미궁 출입구와 가까워지자 안느는 가벼운 분위기를 벗어던지고 무겁고 진지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
주의를 줘야하나 생각하던 환인은 노름으로 6급을 딴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미궁 입장 대기열에 섰다.
줄을 선지 30분.
앞선 대기자 팀이 입구부터 어둠에 가려져 있는 감옥 미궁으로 들어가고, 피곤과 짜증이 묻어나는 병사의 목소리가 환인의 귀를 찔렀다.
=다음.=
“안녕하십니까. 고생 많으십니다.”
굳은 얼굴로 두꺼운 목록판을 들여다보던 여자 병사는 정중한 인사에 힐끔 환인의 얼굴을 보곤 표정을 조금 풀며 묻는다.
=어서 오십시오. 입장은 세 분과 한 마리입니까.=
“예. 목적은 땅신님의 성투사인 일행의 불사자 정화 임무입니다.”
=…….=
고양이 상의 여자 병사는 환인과 이실리테, 안느를 차례대로 보고 마지막 안느를 잠시 응시하다가 피곤한 듯 한 손으로 푸석푸석한 얼굴을 문질렀다.
=뭐 알아서 들으셨겠지만, 지금 미궁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안에는 애비와 붙어 처먹을 씹할년들이 지랄 떨고 있고 미궁도 어딘가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세 분은 나름 실력 있는 파티 같은데…… 굳이 오물통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입장을 미루거나 다른 미궁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는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대답은 안느가 대신했다.
=그 오물을 정화하는 것이 땅신님의 성투사인 제가 할 일입니다.=
중후한 대답에 여자 병사는 나무 펜의 뒷머리로 관자놀이를 벅벅 긁으며 더욱 피곤하단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면 자기 파티를 제외한 인간은 전부 적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렇다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될 수 있으면 입구 근처 층에서 머무르시다가 이상한 거 같으면 즉시 미궁을 나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입장료는 세 분 해서 1은화, 쿠에…… 녹색 쿠에?=
뒤늦게 비상의 색을 눈치챈 병사가 다시 눈썹을 찡그렸다가 쿠에의 입장료는 5열동화라고 말한다.
환인은 입장료로 3은화 5열동화를 낸 뒤 어둠이 일렁이는듯한 감옥 미궁 입구로 발을…….
=내가 먼저 들어가지. 대장하고 이슬이는 1분 있다가 들어와.=
내딛으려다 뒤에서 안느가 환인의 어깨를 잡아 세운 뒤 방패를 세우고 먼저 들어간다.
“…….”
거구가 몸을 살짝 숙여 어둠의 벽을 통과하고 1분. 환인도 감옥 미궁 입구의 어둠에 손을 대며 통과했다.
‘이건…….’
검은 어둠에 닿자마자 밀도가 짙은 무언가를 통과하는 느낌이 차례차례 몸을 뒤덮는다.
웨이포드의 미궁이나 6급 삼림형 미궁하고는 또 다른 입장 방식.
진득한 뭔가가 몸에 달라붙는 느낌을 뿌리치며 어둠을 통과하자 분위기가 일변한 돌벽 감옥 내부의 모습이 환인의 눈앞에 펼쳐졌다.
일단 밝은 수준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수준도 아니다.
어딘가에서 희미한 광량이 들어와 10m 앞 정도는 볼 수 있는 정도. 천장 일부와 벽의 모서리 등에 아주 희미한 빛이 흐르고 있어 통로의 전체적인 윤곽이나 거리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발광체나 야광석은 없었기에 환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게 미궁의 기현상 중 하나인가.’
무거운 공기가 폐부를 찌르는 것을 느끼며 환인은 혹시 몰라 허리춤의 켈틱 돌도끼 자루를 쥐고 30m 앞쪽의 T자 형 갈림길을 살피는 안느에게 다가갔다.
이어 이실리테와 비상이 입구를 들어와 뒤쫓아오는 것을 보고 말한다.
“바로 2층으로 내려간다. 우둔 고트모그의 감옥 미궁, 앞서 말한 것처럼 앞으로 감옥 미궁이라고 하겠다. 감옥 미궁에서 진형은 일렬로, 전열은 안느, 중렬은 이실리테, 후열은 나와 비상 순이다.”
=네.=
=응.=
“이형종이 등장하면 가능한 이실리테가 상대하도록 하고, 미궁의 구조는 단순하다. 직사각형의 방과 통로로 이루어져 있으며 통로가 직각으로 꺾이는 장소도 있으니 인간 쓰레기들의 공격과 함정을 염두에 두고 신중히 이동하도록. 이형종보다 인간이 주적이라고 생각해라.”
=네.=
=응.=
안느의 눈빛이 투사의 그것으로 바뀐 것을 확인하고 이어서 지시를 내린다.
“안느가 하루에 질병 치료를 20번가량 할 수 있다고 했고 질병 치료제와 내성 물약도 다량 준비했으니, 내성 물약 복용은 첫 전투와 2층의 분위기를 확인한 뒤에 결정하겠다. 축성 받은 마스크 사용도 일단은 보류한다. 그럼 안느, 전진.”
=전진.=
일렬로 천천히 나아가는 안느와 이실리테의 뒤를 따라가며 주변 풍경을 살피는 한편 안느의 행동에 점수를 매긴다.
‘4급 미궁이라서 얕보고 자기 뜻대로 행동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순순히 따르는군.’
괜히 대장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 듯, 자신의 실력에 비해 약한 미궁이라 해도 대장인 환인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모습이다.
“앞쪽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좌측.=
지시에 복창하는 것도 좋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지시를 재확인하는 것도 고평가할 항목이니까.
환인은 바로 옆에 까무잡잡한 정령이 떠 있는 것을 보고 따라오라며 속으로 명령을 내리고 벽의 상태를 살폈다.
거무튀튀한 회색의 돌벽돌 감옥. 바닥은 풍화되고 있는지 돌가루가 굴러다니고 있고 천장이나 벽 일부에는 거미줄이 쳐져 거미가 돌아다니는 중이다.
‘거미가 사는 것을 보면 작은 곤충도 있다는 뜻일 테고,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위험한 환경은 없는 건가.’
저런 작은 거미가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 신경 쓰였지만 현재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일단 기억만 해두도록 하고…….
=문 연다.=
“그래.”
안느가 문짝만 한 방패를 내세워 문손잡이만 살짝 비튼 뒤 방패로 밀어 연다.
끼이이익
녹슨 경첩이 지르는 비명과 함께 열린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덜그럭.
늑대 크기의 개 골격을 가진 해골 짐승이 있었다.
[감옥 미궁 내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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