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56화 (156/813)

〈 156화 〉 152 안느 2

* * *

카페라떼를 모두 비운 안느는 물로 입안을 헹구며 옆에서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는 이슬이를 가리켰다.

=대장이 지시한 건 이슬이하고 모두 해놨어. 아, 그리고 이슬이한테 듣기로 위상석 채취를 엄청 무식하게 하던데, 탐지 도구 안 썼지?=

“음. 위상석을 편히 찾는 마도구라도 있는 건가.”

=당연히 있지. 없으면 키 수 미터 짜리 괴물은 거의 난도질하면서 찾아야 하잖아?=

=이게 위상석 탐지 도구에요.=

안느의 이야기에 이실리테가 주머니에서 검은색 경광봉 같은 것을 꺼낸다.

그리고 열선 플레이트에 사용하는 1급 위상석을 탁자 위에 올리고 탐지 도구의 스위치를 올리자 검은색 봉 부분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거였군.”

이제 생각난다.

우르거의 사체를 웨이포드의 비술사 협회에 가져가 팔았을 때 비서 같은 여자가 우르거 사체를 더듬었었지.

그때 손에 이런 막대기를 들고 있던 게 기억나는 환인이었다.

=거리에 따라 밝기도 조절되니까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어.=

“편리하군.”

이번 미궁에서 시체를 해체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거면 편히 채취할 수 있겠어.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주머니에서 감옥 미궁의 지도 책자를 올려놓으며 말한다.

“미궁 지도다. 구매하며 미궁 앞의 분위기를 보고 왔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대축제를 앞두고 미궁 범죄를 기획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도 많아 보였고 병사들도 신경이 예민해져 있더군.”

=하지만 들어갈 거지?=

“그래. 더 할 일이 없다면 내일 입장한다. 오는 길에 아루루 양에게 듣기로 쿠에를 잠시 맡아주는 농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환인의 말에 거실 한쪽에서 아루루, 효고와 놀아주던 비상식량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환인을 쳐다본다.

뭐야. 나 안데리고 가?

“비상식량은 데리고 들어가고 쿠르티만 맡길 생각이다.”

꾸우~.

안도하는 것처럼 작은 소리를 내는 비상식량을 재밌다는 듯이 쳐다보던 안느가 말했다.

=딱히 안 데리고 가도 괜찮지 않아? 보증 시스템도 적용했고 녹색 쿠에면 날아다닐 수도 있잖아. 나가서 놀다 오라고 해도 되지 않나?=

쿠엑!!

“싫다는군.”

=비상식량이 주인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절대로 안 떨어지려 할 거에요.=

=어. 말 안 해도 알 거 같아. 아! 야야, 그냥 해본 소리니까 너무 화내지 마. 미안해, 미안. 앞으로 안 그럴게.=

비상식량이 부리로 등을 꾹꾹 누르며 항의를 시작하자 결국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안느다.

=그런데 대장.=

말하라는 뜻으로 쳐다보자 안느는 비상식량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해 안 된단 투로 물었다.

=이녀석 이름 말이야. 비상식량이라는 뜻이 그거 맞지?=

쿠우?

고개를 갸우뚱하는 비상식량의 모습에 환인은 잠깐 침묵했다.

“……맞다.”

=큭큭큭. 기가 막혀서…… 왜 그런 이름을 붙인 거야?=

“…….”

환인이 비상식량에게 손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이 옆으로 다가와 머릴 쓰다듬어달란 듯이 탁자에 머리를 올린다.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잠깐 단어를 정리한 환인은…….

“……해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거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대명사화 된 거고.”

=와 대장 진짜 너무한다. 그럼 중간에라도 이름을 바꿔줬어야지! 비상식량이 뭐야, 비상식량이!=

안느의 힐난에 이실리테도 ‘아 그건 좀.’하는 표정인데다 아루루와 효고도 난감해하는 얼굴로 환인의 시선을 피했다.

비상식량도 탁자에 머릴 올린 채 실망했다는 눈으로 환인을 지그시 올려다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힐난의 눈초리에 환인은 턱을 한 번 쓸어내렸다가 말했다.

“날 비에 오를 상, 높이 날아오른다는 뜻의 비상은 어떠냐.”

쿠우?

=오? 그거 대장 나라의 단어야? 비수앙, 아니 비스앙? 비사앙?=

=비, 상. 비상이잖아요. 좋네요. 비상이. 비상. 어감도 괜찮고 뜻도 녹색 쿠에하고 잘 어울리는 이름이고.=

비상, 비상, 몇 번 입에 담던 이실리테가 좋은 이름이라고 인정하고 안느도 똑바로 발음하게 되면서 몇 번 입 밖으로 꺼내 보더니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그렇게 이름 지어주지. 그치? 비상아.=

쿠엣!

이로써 자신에게 꽂히던 힐난의 시선이 사라졌음을 느낀 환인은 약간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비상식량을 루크랑 어로 말하면 탭ㅣ브 R타ㅟ로 들린다. 하지만 비상?上이라는 단어는 루크랑 언어와 플뢰 언어에 없는지 한글로 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상식량에서 식량만 떼고 동음이의어를 선택했을 뿐인데.’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아끼는 환인이었다.

다음 날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몸단장하는 소리에 눈을 뜬 안느는 주먹만 한 팬티만 입은 채 팬티와 똑같은 하얀 브래지어를 착용 중인 이실리테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제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씻고 몸단장을 한 뒤 아침 식사 준비를 한 다음 뒤뜰에서 아침 대련을 진행했다.

그 뒤에 쉬는 시간이 있었냐고 하면 아니다.

대련을 끝낸 뒤 다시 몸단장하고 아침 식사를 만든 뒤 식기를 정리하고 다시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다 환인의 지시에 미궁 진입 준비를 했고 점심 식사. 이후 훈련을 하다 보니 저녁이 되었고 이실리테는 또 몸단장한 다음 쉬지 않고 바로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을 먹은 뒤 또다시 대련. 그리고 좀 쉬나 했더니 방에서 책을 꺼내 글 공부를 했다. 자기 전까지.

침대는 이실리테에게 내어주고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자던 안느가 몸을 일으키며 묻는다.

=이슬이 너 말이야. 매일 이렇게 생활해?=

=네. 주인님을 모시려면 부지런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아직 해도 안 떴잖아. 1시간 정도는 더 자고 빗질만 해도 될 것 같은데.=

=주인님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어요. 안느는 좀 더 자도 돼요.=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 사이로 속옷만 입은 채 벽에 곱게 걸어둔 하녀 복과 비슷하게 생긴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를 내리는 이실리테.

안느는 그 조각 같은 아름다운 몸매를 바라보다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젖가슴의 지방마저 근육으로 변한 것처럼 딱딱한 돌덩이 같은 근육들. 비교할만한 건 이실리테 못지않은 하얀 피부뿐이다.

속으로 잠시 한숨을 내쉰 안느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서며 대답했다.

=……일어났는데 또 자면 몸 찌뿌둥해져.=

거짓말이다. 저렇게 매일매일 24시간이 부족한 것처럼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이실리테를 보면 게으름을 피울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하녀 복을 챙겨입던 이실리테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찾는 안느를 힐끔 쳐다보곤 살짝 부러움 섞인 시선을 보냈다.저만한 체격이 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세질 텐데.

그렇게 이실리테와 함께 1층으로 내려온 안느는 아침식사 밑 준비를 하는 이실리테의 근처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곤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슬이 너 대장 좋아하지?=

=…….=

대답은 없었지만, 뺨에 홍조가 떠오르는 것이 대신 대답이 되어준다.

=와, 진짜였네. 어쩐지 몸단장에 온 힘을 다하더라. 대장한테 보여주려고 한 거였구나?=

=……….=

‘아, 달콤해.’

홍조가 좀 더 짙어지는 걸 본 안느는 설탕을 한 움큼 입에 넣은 기분이었다.

이실리테는 안느가 평소 생각하던 완벽한 여성상이었다.

작은 머리.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갈색 머릿결. 호박처럼 빛나는 예쁜 눈동자.

몸매는 어떤가. 어제 함께 씻을 때 봤는데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몸매였다.

절대 적지 않은 훈련량임에도 근육은 드러나지 않아 가녀리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고 가슴은 자신도 모르게 콕, 찔러봤을 정도로 완벽한 물방울 모양.

그래서 힘이 약하냐면 절대 아니다. 족히 20kg은 될 법한 중철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를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아름다운 이슬이가 사랑하는 남자, 대장은 플뢰를 기준으로 세워도 절대 밀리지 않는 미남이었다.

플뢰족 남자가 선이 가느다란 아름다운 남자라면 대장은 선이 조금 굵으면서 남자다운 느낌의 미남.

그런 미남 미녀가 서로를 보며 미소 짓는 상상을 해보니 입 안에 설탕을 퍼넣은 것처럼 달달하기 그지없다.

안느는 플뢰족.

플뢰 족의 남녀 성비는 루크랑보다는 나은 편이다.

루크랑이 2:8 정도라면 플뢰는 4:6 정도.

때문에 결혼은 다른 종족들에 비해 힘들지 않은 편이지만, 플뢰 족의 결혼은 거의 전체에 가까운 수가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해야하는 정략 결혼이다.

결혼에 당사자들의 의견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플뢰 부부의 사이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듯 무미건조하게 이어지며 부부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일종의 역할극 같은 결혼 생활이 이어진다.

물론 부부생활 중에 사랑이 싹트거나,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 부부생활을 이어나가는 예도 없진 않다.

극히 드물지만, 연애 끝에 서로의 부모님께 허락받아 결혼하는 예도 있고.

다만 플뢰 족의 평균적인 성격 탓에 저런 혀가 썩을 정도로 달달한 반응은 보기 어렵다.

루크랑 쪽은 남녀 성비의 불균형이 극심해 오히려 대놓고 성적인 분위기가 조장되는 편이라 마찬가지로 로맨틱한 연애담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렵다곤 해도 플뢰처럼 불가능하진 않다. 게다가 성적으로 개방되어있는 종족이기도 했기에 1:1의 로맨스에 환상을 가진 여자가 많다.

그것은 관련 상품의 증가로 이어졌다.

여심의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로맨스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 역하렘, 그리고 왜곡된 욕망이 낳은 동성애 서적들.

안느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다른 플뢰 아기들에 비해 1.5배 가량 컸었고, 그건 나이를 먹을수록 심각해졌다.

7살때 이미 성인 플뢰 수준으로 자란데다 15살 때는 오직 플뢰에서 그녀 하나 뿐일만큼 키도, 육체도 거대해졌던 것.

그때문에 태어날 때 예식적으로 맺는다는 약혼도 없었고 정략으로 인한 결혼도 없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떠졌을 때부터 몸뚱이가 컴플렉스였던 안느는 한때 그런 서적과 행위의 묘사가 자세히 들어간 불온 서적을 다수 탐독했었다. 한 10년 정도.

받는 용돈이 절대 적지 않았음에도 대부분을 그쪽에 퍼부었을 정도로 정말 푹 빠져 지냈다.

일종의 자기 도피 행위였지만, 환상은 영원하지 않았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며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안느는 그날, 모은 서적을 전부 불태워버렸다.

사실은 현실이 눈물 나도록 싫고 짜증이 나서. 보면 볼수록 자신은 절대 이룰 수 없는 저 하늘 위의 환상 같은 이야기였기에 눈물이 날 만큼 화나서가 그 이유였다.

이런 우르거 같은 몸뚱이로는 판타지 같은 하렘은커녕 평범한 연애는 물론 정략 결혼마저도 불가능하다.

남자를 경험하려면 남창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니, 남창관을 찾아가더라도 남자들이 거부하겠지. 자신이 남자라도 이런 여자는 거부할 테니까.

실제로 안느도 서적을 접하기 전, 몇 번 연애해보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물론 동족이 아니라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질리언트 족이나 여자라면 다 좋아하는 루크랑 남자들 및 타종족이 대상이었다.

=당신은 동족 여성들에 비해 너무 이질적이군.=

=어린아이처럼 느껴져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아. 미안하다.=

거인족, 질리언트들은 자신을 어린아이 같다며 거부했다.

=아, 난 좀 가녀린 여자가 좋아서.=

=으음. 근육을 좀 빼보는 게 어때? 내 허리만 한 허벅지는 좀 부담스러워.=

루크랑 남자들은 동족의 작고 가냘픈 여자만 원했다.

근처에 여자가 널려있는데 젖가슴 대신 이두박근과 대흉근이 있는 여자에게 다가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파충류인 사비 족 남자는 비늘 없는 여자는 여자로 보지도 않으며 마찬가지로 천사처럼 날개가 달린 플라비우스 족 남자에게 여자란 눈처럼 하얗고 깨끗한 날개가 달려있어야만 여자다.

조인족의 알록달록한 날개 색마저도 천박하다며 거부하는 자들이니까.

동족인 플뢰 족 남자에게 자신은 플뢰도 아니고 이형종도 아닌 그 사이의 ‘무엇인가’일 뿐…….

연애 시도는 그녀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갈기갈기 찢어 넝마로 만들어버렸다.

한때는 세상의 남자를 원망도 해봤지만, 그런 원망은 몇 시간도 가지 못했다.

‘남자들이 무슨 죄라고. 이렇게 태어난 내 죄고 잘못이지…….’

그 뒤로 안느는 연애 감정과 연애 세포를 모두 짓이겨 뭉개고 소멸시켰다. 그리고 신분도, 종족도 모두 버리고 세상을 떠돌았고, 나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세상에 행복한 연애 이후 결혼에 도달하는 사람은 정말 극히 보기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위안을 얻은 뒤에는 가끔 불태워버린 책들을 생각하며 후회했었다.

명작, 혹은 문학의 반열에 들어갈 작품 몇 개는 남겨놓을걸, 하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그런 서적을 구할 생각도, 의욕도 들지 않았기에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물이 흘러가는 대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랬는데…….

=이슬이는 어떻게 대장을 좋아하게 된 거야? 얼마나 좋아해? 음식도 일부러 배운 거야?=

=좋, 좋아한다기보단 사모하는 마음이에요. 보답 같은 것도 바라지 않고요. 그냥, 그냥…… 주인님이 맛있는 걸 드셨으면 해서.=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면서도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모습이라니, 사랑하는 님을 위해 음식을 배우고 요리를 하며 자기 손으로 그이에게 맛있는 것을 먹여주고자 하는 소녀 감성이라니!

거기다 육욕을 드러내는 저질 19금 삼류 연애 소설 같은 현실이 아니라 육신의 쾌락보다 정신적 충족감을 우선시하는 순애보라니!!

크으으, 죽이는구만!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설레고 자극적이다.

‘여기서 대장만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미남과 미녀가 서로를 생각하며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노력, 그리고 그런 노력으로 인해 벌어지는 자그마한 헤프닝과 조그만 고난을 거쳐 더욱 깊게 쌓아가는 애정.

그야말로 상사상애????.

꿀이 떨어지다 못해 혀가 썩어 문드러질 정도의 달달한 연애를 실시간 직관할 수 있지 않을까?

안느의 머릿속에서 내가 한 번 중매쟁이로 나서 봐?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 무렵 아침 밑 준비를 끝낸 이실리테가 안느에게서 도망치듯이 주방을 빠져나갔다.

이어진 것은 사랑하는 그이의 모닝콜이 아니라 자기 계발이라는 게 아쉬웠지만 아무튼.

대장 방에 찾아가서 귀엣말로 사랑을 속삭이며 깨워주는 게 좋지 않을까 말하려던 안느는 킥킥 웃으면서 욕심을 억눌렀다.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하자. 너무 놀리면 화낼 테니까. 저런 애가 화내면 무서운 법이다.

=대장이 나올 때까지 어울려줄게.=

=……한 수 부탁드립니다.=

어중간한 체면치레나 겸양 같은 것 없이 제안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안느도 웃으면서 자신의 자이언트 워 해머와 자이언트 타워 실드를 꺼내 들었다.

아침 대련과 아침 식사를 끝낸 환인은 이실리테와 안느의 사이가 더 친밀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아냐. 그런 게 맞아. 생각해봐 네가 지금 들이는 노력은 남자가 보기에…….=

=너어 목소리가 너무 커……!=

그저께부터 같은 방을 쓰는 것 같더니 언제 서로 반말을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진 건가.

무슨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지 모르겠지만, 환인은 다 먹은 식기를 챙기는 두 여자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기보다 미궁 지도를 펼쳐놓고 머릿속에 지도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미궁 탐사는 분위기를 익히는 정도로만 돌아보고…….’

일단 파르히스트에서 정리해야 할 일은 이 6일간 대부분 끝마쳤다.

적당한 노력 끝에 새로운 동료를 영입했고 필요한 마도구도 주문했으며 이엘카타의 일도 대강 마무리 지었다.

‘그 뒤로 연락이 없으니 잘 알아들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영혼사의 새로운 기술도 익혔다.

남은 것은 미궁에서 안느의 땅신 교단 의무, 1,000마리의 언데드를 처리하는 것과 인간 부스러기들의 영혼으로 강령 실험을 하는 것.

그 외에는 이실리테가 익스퍼트 토너먼트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고…….

‘창관에서 여자들을 상대로 영기를 흡수하는 것뿐인가.’

고급 창관의 위치는 안느의 가이드인 효고에게 들었다.

소녀인 아루루에게 묻는 것보다 그래도 남자인 효고가 나을 것 같아서.

그랬는데.

=고급 창관은 북부랑 남부 두 곳에 있어요. 북부에는 3곳의 고급 창관이 모여있는데 저는 그중 한 곳의 지배인 누나하고 계약을 맺어서 거기만 추천해드릴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시면 알려드릴게요. 제 소개로 왔다고 하면 할인이랑 추가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환인은 이 놀라운 세상에 다시 한 차례 감탄했다.

성인도 안된 어린아이에게 성매매 알선 호객행위까지 시키다니.

‘1,000마리의 언데드를 모두 처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가 관건이군.’

대축제 시작까지 40일 가까이 남았다. 그리고 대축제는 2주 동안 진행된다고 하니 근 2달에 가까운 시간이 있는 셈이다.

‘2박 3일로 한 번 입장할 때마다 100마리씩 정리한다 치면 10회 30일. 사이에 쉬는 시간 이틀씩 더하면 50일. 계산은 얼추 맞아떨어지지만 20일에 수백 명의 여자를 몇 번이고 안으려면……. 돈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군.’

안느가 공금으로 30금화를 추가해주었지만, 그 돈을 그 일에 쓸 수는 없다.

신전을 들르기 위해 돌아다니며 찾아본 결과 공동묘지에 영혼이 몇 있는 것을 보았었다. 공동묘지의 부잣집 영혼을 성불시켜주고 사례금을 강탈해서…….

=주인님.=

지도를 외우며 앞으로 일정 정리와 임시 수입 확보 방법을 정리하던 환인은 이실리테의 부름에 그쪽을 보았다.

“음.”

이실리테와 안느는 자기 무기와 방어구를 차려입은 상태. 이실리테가 두 손에 들고 있는 자신의 검회색 마수 가죽옷을 받아 그녀의 시중을 받아 가며 챙겨입는다.

그사이 안느는 탁자 위에 올려진 지도 19장을 보곤 살짝 당황한 얼굴로 환인에게 물었다.

=대장. 설마 그새 지도 19장을 전부 외운 거야?=

“그래.”

=왜? 필요할 때마다 보면 되잖아.=

“만약 전투 중에 지도를 망실하면 어쩔 셈이지.”

=어…….=

“지도를 꺼내 볼 수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면?”

=…….=

“모종의 이유로 시력을 상실하고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어 되돌아와야 하면?”

=아,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안느는 그간 몇 번 파티에 참여해보거나 파티를 결성해보기도 했지만, 환인처럼 행동 하는 리더는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2박 3일 예정으로 감옥 미궁은 모두가 처음이니 가볍게 입구 부근을 둘러보고 온다 했었다.

그런데 지도를 달달 외우다니. 무술 실력에 가진 능력­축복과 원거리 공격 수단­에 저런 성실함과 철두철미함까지 겸한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거다..

‘어지간해서는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겠네.’

미궁 안에서 환인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안느는 이실리테가 뺨을 보일 듯 말듯 붉힌 채 환인의 장비 착용 시중을 드는 걸 구경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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