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147 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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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로 고용한 소년, 효고를 통해 환인의 연락을 받은 안느는 한숨부터 쉬었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하루나 이틀 뒤에 이런 식으로 만나자고 접근하는 인간들이 매번 십수 명씩 나타났었기 때문.
자신처럼 혼자 다니는 5급 이상의 직업자는 주인 없는 보물 취급인 건 알고 있었고 줄곧 비슷한 경험을 해왔기에 이런 일에는 익숙했다.
익숙하다 해서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익숙했기에 안느는 약속 없이 찾아오는 사람에게 칼같이 대응했다.
그런 의미에서 환인은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다가왔고 자신을 보고도 무례하거나 짜증 나는 태도를 참새 눈물만큼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는데.
‘이 남자는 대체 뭐야?’
대체 정체가 뭐길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시선이 별로지? 자리를 옮기자고.=
안느는 환인과 이실리테를 데리고 자신의 객실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적당히 라운지나 바에서 얼굴만 보고 치울 생각이었다. 가이드 소년을 고용하는데 받은 약간의 도움은 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환인과 잠깐 대화하며 그를 살핀 안느는 호기심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걸 느꼈다.
이 남자, 환인이라고 했나? 그의 움직임이나 행동은 무사??라기보단 일반인이다. 단련된 흔적도 보이지 않고 몸놀림이나 손짓에서도 무술을 익힌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주로 쓰는 무기에 따라 평소의 행동이 변하기 마련이다.
이실리테라는 여자는 두 다리와 허리, 손과 어깨에 집중된 단련 흔적이 보인다. 대검이나 리치가 긴 병장기를 쓰는 사람들의 흔적이다.
그런데 환인이라는 남자는…… 모르겠다. 무슨 무기를 쓰는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도통 모르겠다.
거기다 약점.
아무리 단련된 직업자라고 해도, 7급의 2차 각성자라고 해도 허점이나 빈틈이 두어곳은 보이기 마련인데 이 남자는 그런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약점이 보이긴 하는데 볼 때마다 약점의 위치가 변한다.
이런 마당에 어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까.
=여기야.=
환인이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던 안느는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객실로 데려왔다.
그리고 환인은 안느의 뒤를 따라가며 줄곧 그녀를 읽었다.
‘근육이 대단하군. 하지만 동작과 움직임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그 말은 단순히 단단하기만 한 근육이 아니라는 뜻.
보통 겨드랑이 쪽의 상완이두근과 전거근이 단단하게 불거지면 일단 팔의 가동 범위 자체가 협소해진다. 허벅지 안쪽 대내전근 전반과 내측광근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팔자걸음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안느의 움직임은 저 근육이 전부 환상이 아닐까 싶을 만큼 부드럽기 그지없다.
더욱이 걸음걸이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곧고 무게 중심이 매번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에서 아우라의 농도 외에 실제 무술 실력도 상당한 편임을 알게 되었다.
비교하자면 웨이포드 상급 무관의 하이에른=조드 무관장 정도일까. 그와 비슷한 수준의 몸놀림이다.
=와. 객실이 굉장히 호화스럽네요…….=
=호화스러운지는 모르겠고 그냥 편해서 지내고 있어. 여기 있으면 빨래부터 청소에 먹을 것까지 다 알아서 해주거든.=
“…….”
안느가 빌렸다는 객실로 들어온 환인은 그녀의 행동과 반응에 동료 영입을 위해 마련한 제안 중 금전적인 부분을 제외했다.
남은 것은 사후 영혼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영혼사님의 동료라는 존중과 흠모 같은 명예를 주는 것, 혹은 미궁 탐험에서 가끔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무구??나 도구??의 우선 선택권을 주는 정도뿐인데…….
그런 것으로는 안느를 끌어들이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영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처음 안느가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표정에서 환인은 예의상 얼굴을 비췄을 뿐이란 것을 읽었다.
이쪽에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영입 제안을 해봤자 안 먹히는 게 당연한 일.
=거기 앉아. 뭣 좀 마실래? 일단 마실 건 대부분 있어. 아, 물론 술이야. 난 차 같은 건 못 끓이거든.=
=차라면 제가 조금 탈 줄 알아요. 저녁 식사 전에 술을 마시기도 그러니 제가 타 드릴게요.=
=정말? 그렇지 않아도 누가 타준 차가 그리웠는데, 고마워.=
=차 정도는 레스토랑에서 나오지 않나요……?=
=에이. 돈 받고 파는 차가 마음으로 내려주는 차하고 같을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죠.=
=무슨 차를 타 줄 거야?=
=좀 보고요. 저도 아직 차는 잘 끓이지 못해서…… 아, 화이트 록시가 있네요.=
=좋지, 그거. 마시고 밥 먹으러 가면 되겠네.=
“……?”
속으로 이것저것 제시할 조건을 검토하던 환인은 이실리테가 안느와 순식간에 친해지는 것을 보고 눈썹을 살짝 들었다.
이건 뭐지.
가끔 코드가 잘 맞아서 처음 만났어도 10년은 만난 것처럼 사이가 좋아지는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회사 동료들과 선후배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환인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고 경험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실리테와 안느를 보고 있자니 혹시 저게 그런 건가 싶은 마음이다.
환인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이실리테와 안느를 응시했다.
=화이트 록시에 카드보 몇 방울 떨어트리면 맛이 완전히 변한다던데, 알아?=
=……차에 술을 넣어 마신다고요?=
=주목해야 할 건 그 부분이 아니고 맛이 멋지게 변한다는 거야. 한 번 넣어보자.=
=앗, 잠깐만요. 주인님이 마실 것은 빼고…… 아니아니! 뭘 통째로 부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응? 술을 섞는다면 1:1 비율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칵테일 만들 일 있어요……? 그리고 알콜은 끓이면 술이 아니라 물이 된다구요. 그 술병 이리 주세요.=
=어어……. 아니이, 그것밖에 안 넣어? 술 냄새도 안 나겠다!=
=이것도 다 넣는 거 아니에요. 몇 방울만 첨가하는 식으로 쓰는 거라구요.=
=조금만 더 넣자. 조금만, 응?=
찻잔에 술을 절반 정도 옮겨 담는 것을 본 안느가 작게 항의하고 이실리테는 그런 항의를 묵살하며 차를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환인은 그 사이에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호감이 생기면 없던 마음도 생겨난다.
가만히 지켜만 봐도 이실리테와 안느의 사이가 실시간으로 좋아지는 게 보이는데 괜히 끼어들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킥킥 웃으며 환인이 앉아있는 응접 공간으로 온 안느는 3인용 소파를 1인용으로 만들어버리며 자리에 앉았고, 이실리테가 따라주는 차를 받아 똑, 똑, 똑 술을 세 방울 첨가한 뒤 스읍 냄새를 맡아본다.
=오, 향이 완전히 변했어. 설산 고원에 홀로 핀 한 떨기 꽃망울이 활짝 피어나는 느낌인걸. 아, 넌 저기 1인용 소파에 앉아. 난 덩치 때문에 1인용 소파에 못 앉거든.=
차를 따라준 이실리테가 혼자 3인용 소파를 쓰고 있는 자신을 보며 당황하자 안느가 씨익 웃으며 환인의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환인도 찻잔을 들어 눈이 듬성듬성 남아있는 고원의 향기 비슷한 것을 맡으며 살짝 입술을 축여본 뒤 티스푼으로 독한 향기의 증류주를 살짝 떨어트렸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살짝 푸른 기운이 감돌던 찻물이 금세 황금빛으로 변하더니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기 시작한 것.
맛도 한겨울의 쌉싸름한 맛이 한층 부드러워져 마시기 편해진 느낌이다.
“확실히 독특하군요. 풍취가 마음에 듭니다.”
=그치?=
차의 향기를 음미하며 조금씩 잔을 기울이는 환인의 모습에 안느가 씩 웃는다.
겉보기에는 고리타분한 고족이었는데, 아닌가?
차에 술을 탄다는 것은 고지식한 고족이나 호족이 봤다간 노발대발할 일이다. 그런데 저렇게 차분한 것을 보면 고족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멀쩡한 얼굴의 환인이 노발대발하는 것을 상상하던 안느는 속으로 큭큭 웃으며 잠시 말없이 티 타임을 가졌다.
잠시 뒤 빈 찻잔을 내려놓은 안느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좋은 제안이라는 게 뭐야?=
외형만큼이나 직선적이군.
마침 적당한 시나리오를 계획한 환인은 작게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 못지않게 직설적으로 입을 열었다.
“안느 양. 저와 함께 갑시다.”
=내가 그 말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들르는 곳마다 당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대여섯씩은 나왔겠지요.”
=뭐야. 내 뒷조사를 해본 거야? 숫자가 되게 정확한데.=
웃음 지으며 카드보, 아무리 봐도 보드카 같은 술병을 가져와 찻잔에 따르는 안느에게 환인도 탁자 위의 컵을 내밀며 말했다.
“이런 고급 호텔 생활을 짧게 해본 것 같지 않을 만큼 익숙한 모습, 홀로 활동해온 기간이 호텔 생활만큼 길었다면 간단히 낼 수 있는 계산입니다.”
=잘됐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어. 뭐, 그런 인간들보단 당신이 마음에 들어. 배배 꼬고 은근히 자신들과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주둥이를 나불대는 놈들은 체질적으로 안 맞거든.=
그런데 당신은 고루하지도 않고 가식적이지도, 위선적이지도 않아 보여서 마음에 든다며 웃는 안느였다.
=난 당신 같은 사람 좋아해. 속으로 저놈은 어떠니 저년은 어떠니 품평하면서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놈을 보면 해머로 머리를 부수고 싶어지거든. 정말로. 그런데 당신은 날 보자마자 외모는 안 보고 동료 삼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단 말이야?=
환인의 찻잔에도 술을 따라준 안느는 자신의 잔 속에 찰랑이는 투명한 63도수의 카드보를 단숨에 위장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이실리테를 보며 피식 웃는다.
=이실리테도 순간적이지만 날 질리언트플뢰 혼혈이라고 봤을 정돈데 말이야.=
=앗……. 미, 미안해요. 하지만 그 생각은 정말 한순간만 했어요.=
=알아. 그래도 이실리테 너 정도면 엄청 예의 바른 거야. 심한 연놈들은 날 우르거 혼혈 아니냐고 묻거든. 물론 그런 연놈들은 면상하고 두 다리를 묵사발 내놓지만.=
=세상에.=
푸념하는 안느의 찻잔에 환인이 카드보를 따라주며 말했다.
“저도 속으로 거리를 재면서 간 보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호불호는 별개로 필요하다면 인맥은 쌓겠지만 말입니다.”
=크, 당신 말이 맞아. 인맥은 중요하지. 난 그것마저도 두드러기가 나고 짜증 나서 못하지만 말이야. 아, 반말하는 거 괜찮지? 당신도 말 편하게 해.=
“그럴까. 다시 말하지. 안느, 나와 함께 가자.”
=푸흐흐흐. 너 진짜 저돌적이네. 그럼 나도 저돌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지. 내가 널 따라갈 이유가 있어? 이실리테는 3급 전사지? 아우라의 농도에 비해 무술 실력은 높아 보이지만 3급밖에 안 돼. 넌 잘 모르겠지만 무직자고. 혹시 다른 동료가 있어?=
“없다. 나와 이실리테, 억지로 하나 더 끼우자면 비상식량이 있지.”
=……비상식량은 누군데?=
“아성체 녹색 쿠에다. 여왕의 핏줄을 이은 게 아닌가 싶은 희귀 쿠에. 현재로서는 이실리테가 비상식량보다 약하다.”
안느의 표정이 괴상해진다. 말해두지만 표정이 이상해지는 안느가 정상이다.
=진짜 골 때리네. 뭐 그렇다고 쳐. 너도 짐작하겠지만 난 6급이야. 그리고 평범한 직업 각성자가 아니라 성투사의 길을 걷고 있지.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고 생각 들지 않아?=
성투사??. 성술사와 투사의 혼합직업인가. 그래서 아우라가 저런 모습이군.
그 말은 회복 술법도 쓸 수 있다는 뜻?
환인은 더더욱 안느가 탐이 났다.
“걱정하지 않아도 이실리테는 내가 거두어들인 하녀다. 물론 앞으로의 여정에 도움 되길 바라며 무술 단련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무력이 부족하다면 파티 후방 지원으로 돌려서 데리고 다니면 될 일이다.”
=어 그랬어?=
=네. 주인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아직도 사람 구실 못하고 살고 있었을 거예요.=
이실리테의 솔직한 인정에 안느가 놀랐다는 눈으로 천상 숙녀처럼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가씨를 쳐다본다.
그랬다가 깜짝 놀랐다.
=……뭐? 잠깐, 당신이 이실리테한테 무술을 가르치고 있다고?=
“무엇보다 이실리테는 요리 및 살림을 매우 잘한다. 요리에 관해서는 본인의 무술 실력을 월등히 능가하지.”
호텔에 머물면 요리에서 빨래, 청소까지 다 해준다고 언급했던 안느를 향해 먹이를 투척하는 환인이다.
=……?? 그건 되게 구미가 당기네. 본인을 앞에 두고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이실리테는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거든. 성격도 나랑 잘 맞는 거 같고 외모도 예쁘잖아. 거기다 요리에 청소까지 잘한다니, 솔직한 말로 어떻게든 구슬려서 데려가고 싶을 정도야.=
“그건 허락하지 못하겠군. 그녀는 내 것이니까.”
환인의 적나라한 선언에 무어라 말하려던 이실리테의 뺨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었고 안느는 중년 아저씨처럼 으흐흐 웃었다.
=좋으네. 뭐, 이실리테의 자랑은 알아들었어. 착하고 참하고 요리 잘하고 3급 전사라서 튼튼한데다 무술 실력도 뛰어난 환인의 하녀 아가씨. 그래서, 그런 아가씨가 주인님으로 모시는 너는 어때? 아까부터 요리조리 자기 이야기만 빼던데 설마 미궁 파견 조직의 리더가 될 생각인 거야?=
그런 거라면 당장 내쫓을 거라는 눈빛에 환인이 작게 미소 지었다.
일부러 안느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환인이었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 자기 입으로 자기 자랑을 해봤자 와닿지 않는 법이다. 흥미를 끌어낸 뒤에 이야기를 전개해야 듣는 사람 처지에서도 재미있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법.
“일단 한 가지 약속을 받아야겠군.”
=무슨 약속인데? 들으면 파티에 들어와야 한다는 수작질은 아니지?=
“그런 비합리적인 요구는 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듣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알리지도 말라는 거다. 평생 그러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래, 앞으로 5년은 비밀로 해주었으면 좋겠군.”
=얼마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길래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예상대로 점점 호기심과 관심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보인다.
=알았어. 땅신님의 존재와 밝힐 수 없는 내 근본에 맹세코, 5년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않겠어. 됐지?=
“그래. 난 영혼사다.”
=그래 영혼…… 으으으으응?=
안느의 표정이 또 한차례 괴상하게 변했고 이실리테는 작게 실소를 흘렸다. 그만큼 안느의 표정과 반응이 희극적이었다.
“영도 출신도 아니고 나 이외에 다른 영혼사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영혼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이런 내가 파티에 어떤 도움이 될지 궁금하겠지. 일단 네가 영입된다면 너는 전열 방위를 맡게 될 거다. 이실리테는 실력이 이대로 계속 쌓이면 근력 대검 전사로 파티의 공격력을 담당하겠지.”
=너…… 당신…… 영혼사님…… 그러니까.=
“편하게 말해도 된다.”
=……너는? 너도 담당할 부분이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주인님은 혼자서도 5급 우르거를 사냥하실 수 있는 분이에요.=
=……….=
이실리테의 시의적절한 서포트에 안느의 표정이 볼만하게 변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번번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가 내려가길 반복하는 모습이다.
육중한 근육질 몸과 어울리지 않는 작고 고운 얼굴이 잔뜩 찡그려진다. 이맛살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미간에 주름까지 가득 잡던 안느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그리고 강화 축복을 내려주실 수도 있으세요. 4급 혹은 5급의 전문 강화 술사 정도 되는 수준이죠.=
=………….=
=강력한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시고요.=
=자, 잠깐만.=
손을 든 안느가 이실리테의 말을 막았다.
지금까지 배워왔던 통상적인 지식이 눈앞의 한 쌍이 하는 말과 충돌하며 두통을 빚어낸다.
뭐? 환인이 우르거를 혼자서 잡았다고? 환인이 우르거를 상대하라면 나도 할 수야 있지만 그래도 반쯤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영혼사가 무술만으로?
‘아니 강화 축복을 쓸 수 있다고 했으니까 축복을 걸고 싸웠겠지. ……아니아니 그래도 술사 계통이잖아. 저 비실비실한 몸으로 환인이 우르거를 잡았다고? 그게 가능한가?’
환인은 이실리테가 적당히 끼어들어 준 덕분에 안느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걸 느끼고 그녀에게 잘했다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이실리테의 말대로다. 하지만 나는 너나 이실리테처럼 근접 각성 직업자가 아니야. 한계는 명확하지.”
=그건… 그렇지…….=
“때문에 전방위 올라운드를 생각 중이다. 후방에서 기술로 적의 빈틈을 만들고 축복으로 동료를 강화하고 때때로 견제하기도 하는 전천후 포지션.”
=……5년이란 기간을 내세운 걸 보면 그 5년 이내에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는 자신이 있는 건가?=
“현재로서는 영혼사라는 사실을 숨기고 성불행을 하고 있다.”
주제가 또 바뀌는 느낌에 안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환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마음에 든 인물을 영입하기 위해서라지만,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해서 조금 지치는 느낌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성가시고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내가 가진 능력이라면 네가 겪은 것 이상의 귀찮은 일에 시달릴 테니까.”
=뭐 그렇지. 그런 집안 놈들은 영혼사를 귀하게 여기고 나보다 더 귀찮게 할 테지. 실제로 고족이나 호족, 성족의 간섭이 싫어서 촌락이나 마을을 위주로 순회하는 영혼사님들도 많으시고……. 그래서 5년 뒤면 명성이나 명예로도, 실력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거군.=
하, 기막혀하는 웃음 소릴 낸 안느는 환인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아우라가 발현되지 않는 특이체질, 있다는 건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네가 영혼사라는 걸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줄 수 있어?=
“보여준다면 나와 함께 갈 건가.”
아니라면 일부러 보여주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반문에 안느는 이실리테의 허리만큼 굵은 팔뚝으로 팔짱을 끼며 으음, 신음을 흘렸다.
=……영혼사라는걸 확인시켜주고 나와 대결…… 아니, 대전…… 끄응. 대련 한 번 해주면 매우 긍정적으로 고민해볼게.=
“성투사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영입할 가치가 있지.”
환인은 속으로 절반 정도 넘어왔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매끈한 유리창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하다.
“저녁 시간이 되었으니 식사한 뒤에 밤이 깊으면 나가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싫으니 후드 로브도 준비하고.”
=알았어.=
그렇게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끝낸 환인과 이실리테, 안느는 달이 머리 위로 솟아올랐을 무렵 회백색 후드 로브를 쓴 뒤 도시를 배회하기 시작했고.
‘미친…… 상급 영혼사였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손을 휘적거리던 환인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안느는 어떤 가정집을 방문했을 때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영기 충전을 받은 영혼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 집의 가족들과 감격의 상봉을 이루는 걸 목격한 탓이었다.
죽어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가족과 상봉한 사람들이 눈물을 쏟으며 해후를 나누는 걸 응시하던 안느는 회백색 후드 로브를 쓰고 가만히 서있는 환인을 응시했다.
‘이실리테는 환인이 우르거를 혼자 사냥할 수 있다고 했었지?’
상급 영혼사나 되는 사람이, 상급 영혼사를 시중드는 사람이 헛소리할 리 없다. 그렇다면 이실리테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라는 뜻.
괴물이나 괴수, 이형종과 전문적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같은 사람과 전문적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람과 싸우는 게 업인 사람은 괴물과의 싸움에서 약간 약한 면모를 보이고, 반대로 괴물과 싸우는 게 업인 사람은 사람과 싸우는 게 약한 편이다.
전문성의 차이 때문인데, 심증뿐이지만 안느는 환인이 괴물보다 사람과 더 잘 싸울 것 처럼 보였다.
‘생각 없이 대결했다간 내가 지겠는걸.’
안느의 커다란 손바닥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