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48화 (148/813)

〈 148화 〉 144 성도 파르히스트

* * *

신전에서는 기타 수입을 위해 각종 회복제와 치료제 및 축성 받은 물건을 판매한다.

귀부인이 추천해주었던 축성 받은 입 가리개에서부터 소금물이 아닌 진짜 성수??와 성력이라고 주장하는 위상력을 가미한 무기와 방어구, 소소하게는 신전의 상징물로 만든 액세서리까지.

어지간한 건 다 취급한다고 보면 된다.

환인은 신전 입구, 포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인파의 벽과 마주쳤다.

오페라 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어두컴컴하면서도 높은 아치형 천장과 복잡한 세공보다…….

웅성웅성­

거의 한 덩어리로 뭉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말문이 막히는 환인이었다.

“실례합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앗, 밀지 말아요.=

=아야, 아야야.=

남자가 1명이면 여자는 9명일 정도로 성비가 편중되어 여자 냄새가 가득한 배랑nave 입구를 지나려니 적잖이 곤혹스럽다.

여길 지나야 성물방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리 움직여도 여자가 있고 저리 움직여도 여자가 있으니 움직일 때마다 여자의 팔이나 어깨가 닿고 어떨 땐 팔꿈치가 젖무덤을 건드릴 때도 있다.

=꺅.=

“미안합니다.”

팔꿈치에 닿은 물컹한 감촉에 어떤 여성의 가슴을 눌렀음을 깨닫고 즉시 사과했다.

=아, 아니에요…….=

다행히 여성은 힐난하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그 후 어디에 걸렸는지 후드가 벗겨졌고, 그때부터 어쩐지 여자들이 몸으로 막아서는 느낌을 받으며 다시 후드를 쓸 엄두도 못 내고 곤욕을 치른 끝에야 배랑을 지날 수 있었다.

=…어디 갔…….=

=……멋진 남… 사라졌…….=

=…아쉽…….=

환인은 조금 진이 빠져 이상할 정도로 헝클어진 옷차림을 똑바로 하며 신전 내부를 눈에 담았다.

수직선을 강조하는 내부는 족히 수백 평은 될 만큼 넓었다.

좌우 벽 쪽에 보조 기둥이 일정 간격으로 늘어서서 뾰족아치의 아케이드를 형성하고 있고, 천장에는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불투명한 갈색 유리창이 붙어있었는데 그곳에서 금색으로 물든 빛줄기가 어두운 내부를 비추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이다.

인파는 배랑 뿐만 아니라 신랑의 좌우 회랑에도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안쪽 제대 앞 예배 미사 공간에는 빈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이 미사포를 쓰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이고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대부분 여자) 배랑 근처에 모여 서있는 상태.

그때 입구 쪽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어딜 만지는 거예요!=

철썩!

=큭. 미, 미안합니다. 실수였…….=

=꺄악! 당신 지금 제 엉덩이 만진 거예요?! 이 사람 변태 아냐?!=

짝!

=억!=

=여러분! 이 사람 아까부터 주변 여자들 막 만지고 있어요! 불순한 의도 아니에요?!=

=예?! 아, 아닙니다! 저 안쪽 성물방에 볼일이 있어서……!=

=이 여자의 적!=

=윽, 억! 잠, 잠시만요…… 크억! 갈기 잡아당기지 마시고 말로 좀……!=

남자의 다급한 외침, 여자들의 고성에 힐끔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사람의 장벽 탓에 잘 보이지 않는다.

환인은 다시 시선을 돌려 금색을 닮은 햇빛에 거룩한 음영이 진 짐승신의 신상을 보고 배랑 좌우에 줄을 선 사람들을 돌아본다.

성수에 손을 씻기 위해 배랑 좌우의 입식 대리석 그릇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들.

이 사람들과 회랑에 서있는 사람들, 그리고 짐승신의 신상 앞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수백 명은 가뿐히 넘을 광경.

‘오늘은 예식이 있는 날인가.’

축성 받은 마스크만 사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래서야 성물방으로 들어가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릴 느낌이다.

‘돌아갔다가 다음에 올까.’

음영이 져서 얼핏 거룩하게까지 느껴지는 신상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중 환인의 귀가 두 명의 대화를 포착했다.

=어휴, 사람 진짜 많다. 이 사람들이 전부 영혼사님을 뵈러 온 거야?=

=다들 우리 같은 거지 뭐.=

=그래도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데……. 야아아, 돌아갔다가 내일 오면 안 돼? =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오늘은 어제보다 사람이 더 많아. 내일은 그보다 더 많을걸? 그리고 영혼사님이 언제 가실지 어떻게 알고?=

=어휴.=

‘영혼사가 여기에 와있다고?’

두 명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동요가 없는 것을 보면 신빙성은 확실해 보인다.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던 마음이 단숨에 기다리는 쪽으로 돌아섰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영혼사의 아우라만 볼 수 있어도 이득이다.

거기다 만약 다른 영혼사도 자신처럼 영혼 구슬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면? 상대 영혼사가 자신의 팔을 보고 반응을 보인다면?

환인은 영혼사가 언제 나올까 기다리며 성수대 앞에서 줄을 섰다가 손을 씻었다.

그리고 성물방으로 가는 길을 근처 아가씨에게 물어본 뒤 회랑에 들어섰고, 성물방에서 헌금(은화 1닢)을 내고 성수, 소금물이 아니라 진짜 성술사들의 위상력이 스며든 물에 30일을 적신 천으로 만든 마스크 20장(은화 10닢)을 주고 성물방을 나왔지만.

‘나오지 않는군.’

영혼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신전 안으로 들어온 지 1시간 가까이 지났다. 잠시 후면 저녁이고 해가 질 시간인데…….

웅성.

=나오신대.=

=지금? 지금 나오셔?=

=영혼 기사님들이 채플로 오고 계신대!=

저 앞 채플 쪽에서 시작된 웅성거림이 빠르게 배랑까지 전달되었다.

환인은 밖으로 옮기려던 발걸음을 즉시 돌려 배랑과 신랑을 나누는 난간까지 인파를 헤치고 나아갔다.

앞을 여자들이 막고 있었지만.

“실례합니다.”

가까이서 살짝 말을 걸면 여자들이 남자 목소리에 돌아보고, 키 차이 + 가까운 거리로 후드 안쪽을 들여다본 여인들은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옆으로 길을 만들어주었기에 난간까지 나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 등이며 팔, 어깨를 슬쩍슬쩍 터치하는 것을 느꼈지만 소매치기만 아니면 상관없다.

그렇게 잠시 기다린 환인은 촛대로 옅게 밝힌 채플을 걸어들어오는 회색 판금 갑주 차림의 전사 두 명을 볼 수 있었다.

아누비스와 비슷한 머리 형태의 인견족과 흑표범을 연상케 하는 귀와 꼬리 모양의 여전사가 먼저 주위를 둘러본 뒤 북쪽 입면을 향해 손짓했다.

그리고 일단의 사제들과 함께 나타난 영혼사.

영혼의 색과 똑같은 밝은 회색의 민무늬 2겹 로브와 머리에 쓴 미사포. 그리고 어두운 채플 속에서 주위를 밝히는 아우라.

빛 내림 현상처럼 몸 주위를 감싼 아우라는 이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였다.

그러나 환인은 신비한 아우라의 형태보다 미사포 너머로 얼핏 보이는 길다란 플뢰의 귀와 옅은 금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머리카락 색과 귀의 모양.

‘이엘카타?’

거리 탓, 그리고 떨어지는 제작 기술 탓에 조금 두꺼운 미사포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 확인할 방도가 없어 안타깝다.

만약 이엘카타가 맞다면?

‘편지에는 영혼 기사들과 함께 영도로 떠난다고 적혀있었다. 영도가 어느 방향인지 모르지만, 만약 여길 지나치는 일정이라면…….’

일정과 희미한 저 외모, 호위 중인 전사들까지 생각해보면 이엘카타가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사이 영혼사는 짐승신의 신상에 올리는 기도를 마쳤고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

이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렸지만, 미사포가 코 아래까지 가리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로브도 두터워 몸의 굴곡을 보기 어렵고 턱만으로 사람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목소리를 내면 좋을 텐데 영혼사는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다. 그 행동에 신전 안의 사람들도 같은 행동을 따라 한다.

그리고 10분 뒤, 영혼사는 옅은 회백색의 파동 같은 것을 한차례 퍼트린 뒤…….

=아아, 영혼사님……!=

=제 죄를 용서해주세요, 흑흑…….=

=구원을, 부디 자비를…….=

울먹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왔던 입면으로 돌아가 버렸다.

=주인님! 너무 늦으셔서 걱정했어요.=

신전에서 나오는 환인을 이실리테가 맞이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할 일이 뭐가 있다고.”

=그치만 들어가신 지 1시간이 훌쩍 넘었는걸요.=

환인도 좀 늦었다는 자각이 있었기에 별말 없이 이실리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신전 안에서 본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신전에 영혼사가 머물고 있더군. 기다리면 볼 수 있을 것 같아 영혼사를 보느라 늦었다.”

=와, 정말요? 그래서 보셨어요?=

“그래. 아우라가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찬란하더군.”

때마침 신전 입구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다들 얼굴이 적잖게 상기된 것이 안에서 흥분할만한 체험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이실리테는 환인이 내미는 축성 받은 마스크를 챙기고 비상식량의 고삐를 내어주며 물었다.

=오늘 더 돌아보실 곳 있으세요?=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넵. 아루루, 언니 손 잡아.=

=넷!=

아루루를 앞에 태운 이실리테는 먼저 출발한 환인의 뒤를 따르며 힐끔, 신전을 돌아보았다.

주인님이 아닌 영혼사라니.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보러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주인님과 같은 직업이라고 해서 약간 궁금한 정도.

문득 궁금증이 생겨서 자신의 앞에 얌전히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루루에게 물었다.

=아루루. 영혼사님이 도시를 자주 방문하시니?=

=네. 일년에 한 분은 꼭 오시곤 했어요. 근데 올해는 세 분이나 왔어요.=

역시 성도라서 그런지 영혼사가 자주 방문하는구나.

나의 주인님은 사방팔방 ‘나 영혼사요! 날 받드시오!’하는 분도 아니시니까 그 사람들하고 부딪칠 일도 없을 테니 신경 쓸 일은 없겠지?

이내 머릿속에서 다른 영혼사의 존재를 지워버린 이실리테는 소장원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고, 아루루도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하며 다가왔기에 아루루를 귀여워하며 저녁 식사를 준비를 시작했다.

꺄아~ 꺅!

아하하하!

2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온 거실의 소파에 앉은 환인은 주방에서 들려오는 아루루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

신전의 영혼사가 기도를 끝마친 순간 부드럽게 신전 내부를 뒤덮은 회백색의 반투명한 파동. 그건 뭐였을까.

그 기운에 휩싸였던 환인은 부드럽고 포근한 감각을 느꼈지만, 그 외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효과도 없었고.

‘마력류 체질 때문에 비켜 흘린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자신이 느꼈던 안락한 감각이 의문이었고, 그건 자신만 느낀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느낀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파동의 효과를 받았거나, 혹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은 플라시보 효과를 느꼈단 말인데…….

‘말이 안 되지.’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 전원이 동시에 똑같은 플라시보 효과를 느낀 것을 확률로 내면 소수점 몇 자리까지 내려갈까.

자신의 마력류는 유르파가 말했다시피 약한 위상력에 대해서는 반발 효과가 낮아진다. 즉, 그 파동의 효과를 일부나마 체감했다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

‘게다가 영혼 기술도 내 마력류에 간섭받는다는 것도 확인한 사실이니…….’

그렇다면 그건 어떻게 쓰는 걸까.

‘영혼사마다 쓸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없는 기술이 있는 건가?’

영혼…… 파동이라고 할까. 그 파동이 만약 자신의 생각과 맞아떨어진다면 꽤 유용한 기술이다. 흥분하거나 화난 영혼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크게 유용할 테니까.

덩달아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약하지만 긍정적인 진정 효과를 줄 테고.

크흥.

가설의 정리를 마무리 짓느라 손을 멈췄더니 팔걸이에 머리를 올리고 있던 비상식량이 얼른 머리를 쓰다듬으라고 콧김을 내뿜는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단단하고 억센 부리로 손을 살살 물며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도 무시하면 물기의 강도가 점차 강해진다.

환인은 살짝 웃으며 다시 비상식량의 매끈한 부리며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약간의 불평불만도 없이 자신의 다리가 되어주는 녀석이다. 이 정도는 고생이랄 것도 없다.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영혼사는 이엘카타가 맞다. 맞지만, 입면으로 돌아가는 길에 분명 자신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한 것을 생각해보면…….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녀의 성격이라면 내가 접근하기 전에 그쪽에서 먼저 다가왔을 터.’

편지에 적혀있던 여의찮다는 상황, 설명하지 않은 그 상황이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밤에 신전을 찾아가서 면회를 신청해볼까 했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나자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그녀 쪽에서 외면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확인한 것은 틀림없으니 문제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녀 쪽에서 먼저 다가올 것이다.

그 불가사의한 파동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건 멀찍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듯하다.

‘아니, 시간 내서 신전을 다시 방문해볼까.’

그곳의 여사제라면 그 파동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생각의 정리가 끝났을 즈음 이실리테와 아루루가 갖은 음식을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쿠엣!

줄지어나오는 기름지고 달콤매콤한 각종 고기구이의 모습에 비상식량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일어서서 꽁지깃을 살랑인다.

환인은 고기 요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비상식량의 모습에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앞에 앉았다.

비상식량도 환인이 앉은 자리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잠시 후 주방에서 음식을 모두 가지고 나온 이실리테도 환인의 맞은편에 앉는다.

아루루도 음식의 볼륨과 질에 놀라고 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이실리테의 옆에 붙는다.

“음식 만드느라 수고했다. 아루루 양도 고생했습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즐거웠는걸요.=

=저, 저도요!=

“그럼 먹지.”

환인은 자신이 나이프와 포크를 들기만을 기다리는 비상식량과 연신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아루루를 보고 작게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의 종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다양했다. 아루루가 옆에서 보조해준 덕분일까.

그중에는 빠에야 스타일의 노란 쌀 요리가 있었기에 호기심에 먹어보니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의 향이 조금 강했지만 그만큼 맛있었다.

보통 빠에야는 해물 비빔밥과 비슷한 느낌인데 이실리테가 만든 것은 해물이 아니라 닭과 소고기의 육즙을 듬뿍 먹은 철판 볶음밥이라고 할까. 싫어할 요소가 없는 음식이다.

환인은 철판에 눌어붙은 쌀이 누룽지 느낌도 나서 꽤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가 픽 웃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군.’

빠에야를 주식으로 다른 고기와 채소, 국 요리를 먹고 있음을 깨달은 환인이 피식 웃자 이실리테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주인님. 그 요리가 마음에 드세요?=

“고향의 주식과 비슷해서 좋군.”

오랜만에 먹었더니 향수도 조금 느껴지고, 다양한 쌀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고 하자 이실리테가 의욕을 보이며 기대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가 끝나고, 아루루가 식사 뒷정리까지 마무리 짓는 것을 보고 불렀다.

“아루루 양. 내일은 미궁에 대해서 조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둔 고트모그의 감옥 말씀이신가요?=

“예. 일부러 미궁 근처에서 정보를 모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루루 양 정도 되는 가이드라면 정보 입수의 출처가 따로 있겠지요. 거기서 수집한 정보로도 괜찮습니다.”

=넵! 열심히 정보를 모아올게요!=

“아, 그리고 혹시 키가 이 정도 되고 덩치는 이만한…… 은발의 플뢰를 보신다면 그 위치를 기억해뒀다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환인의 요청에 아루루가 헤에 하고 입을 벌렸다. 플뢰인데 그렇게 큰 사람이라…… 아?

=혹시 첫날에 봤던 그 크신 분 말씀이신가요?=

“예.”

=그분은 효고랑 갔으니까 효고한테 물어보면 어디서 묵고 계시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분이 위치를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 말씀 못 드리는데…….=

“만약 거절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주십시오. 귀찮고 성가신 일을 많이 겪었음을 이해하며, 나쁘지 않은 제안을 위해서 보고 싶다고, 잠깐 이야기만 하고 싶다고 전하면 됩니다.”

=……네! 제가 효고랑 같이 가서 말씀드려볼게요!=

“부탁합니다.”

=맡겨주세요!=

아루루는 맛있는 고기 요리와 보기 힘든 생선 요리까지 얻어먹었기 때문일까. 의욕이 하늘을 뚫을 듯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밤 늦은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그 거구의 플뢰를 만나더라도 파티 영입은 어려울 것이다.

일단 파티 없이 혼자일 가능성은 크다. 홀로 가이드 소년을 고용해 도시로 들어갔으니까. 이후 동료와 합류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 거구의 플뢰가 내비친 정보에서 동료의 흔적은 읽히지 않았다.

그 말은 즉 6급에 가까운 직업자가 혼자 다닌다는 것.

혼자 다닌 만큼 온갖 러브콜을 다 받아보았을 것이고, 그런데도 혼자라는 뜻은 사정이나 이유가 있다는 거니까.

‘여러모로 괜찮았는데.’

환인은 생각을 정리하며 이실리테를 불러 대련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뒤뜰 정원에서 저녁 대련까지 마친 뒤 이실리테, 비상식량과 함께 거실에 모여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환인은 시두르에게서 받은 원두를 직접 골라내고 꼼꼼하게 갈아서 내린 커피를 음미 중이고 이실리테는 그런 환인을 훔쳐보며 차를 마시는 중.

쿠우?

거실의 한쪽, 이실리테가 깔아준 깔개 위에 웅크리고 쉬던 비상식량이 고개를 들어 출입구 쪽을 보는 행동에 이실리테가 비상식량에게 물었다.

=왜? 누가 왔어?=

쿠웃, 비상식량의 울음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노크 소리.

환인은 슬그머니 소울 스틱에 손을 뻗어 탁자 밑으로 숨겼다.

자신이나 이실리테에게 이런 밤중에 찾아올 손님은 없다. 있다면 하나뿐이겠지.

‘이엘카타가 보낸 건가.’

일단은 좋은 쪽과 나쁜 쪽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하는만큼, 그중 좋지 않은 쪽을 대비해 자신과 이실리테, 비상식량에게 영혼 구슬로 소리 없이 최하급 강령을 펼쳤다.

=……!=

이실리테가 긴장한 얼굴로 환인을 돌아보고, 환인은 그런 이실리테에게 눈짓했다.

전투를 상정한 듯한 상황에 이실리테도 긴장을 겉으로 숨기며 문을 열었고.

=안녕하십니까.=

문 앞에 서 있던 회백색 가죽옷을 위아래 세트로 입은 여자가 문이 열리자마자 살짝 허리를 숙였다.

=누구신가요?=

=엘위드리스 님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받으실 분의 성함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환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