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46화 (146/813)

〈 146화 〉 142 성도 파르히스트

* * *

행정관에서 등록 작업을 마친 환인은 이실리테와 아루루를 데리고 행정관 앞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서는 탈 것의 탑승 금지입니다.=

병사의 안내에 걸어서 광장으로 들어간 환인은 광장의 풍경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

만남의 광장이라는 비교적 익숙한 단어로 표현된 곳은 다른 차원의 인간인 환인의 눈에도 지구의 어느 곳과 흡사한 느낌이었다.

한국이 아니라 서양의 외국 같은 풍경, 비유하라면 로마의 스페인 광장과 느낌이 매우 흡사하다.

바닥이 네모나고 작은 돌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점.

주변을 2층 높이 상점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점.

나무 한 그루 없이 삭막한 바위 사이에 들어와 있는 느낌.

스페인 광장의 2단 분수는 바닥에 들어가 있었지만 여기는 위로 돌출되어 있고 스페인 광장의 폭은 대강 20m 정도이지만 여기는 50m 정도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행정관 직영 크레이프 노점]이라는 입간판과 함께 장사 중인 상인을 발견한 환인은 크레이프 5개를 주문해 두 마리와 두 명에게 나누어주었다.

‘설마 다른 세계로 넘어와서도 크레이프 노점을 볼 줄이야.’

이 세계 물가를 봤을 때 가격은 절대 싸지 않았다. 크레이프 하나에 5열철화였고 2개 이상만 팔았으니까. 2개면 아루루의 1일 가이드 요금과 같다.

=후왓, 엄청 맛있어요!=

큐삣!

=으음. 만들기 간단해 보이는데 이렇게 비싸단 말이야?=

=저 이동식 수레가 마도구래요.=

=아~ 그래서 비싸구나. 흠, 이만큼이나 비싸게 팔면 금방 부자 되겠네.=

여러 명이 크레이프를 주문하는 것을 바라보던 이실리테의 혼잣말에 아루루가 입가에 크림을 작게 묻힌 채 대답한다.

=그건 아니에요. 광장에서 장사할 수 있는 사람은 행정관에 고용된 지역 상인뿐이거든요. 다른 사람이 장사하면 순찰병 언니와 오빠들이 와서 잡아가요.=

환인은 생각보다 성주의 수완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도시가 넓은 만큼 이런 광장은 무수히 많을 테고 거기에 빠짐없이 이런 노점을 세워놨다면 하루에 금화 단위의 수익을 올릴 테니까.

환인도 빨간 과일이 하얀 크림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크레이프를 한 입 베어먹었다.

‘맛도 흡사하군.’

비록 안에 든 것은 딸기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과일이었지만, 딸기나 키위처럼 새콤달콤한 맛은 같았기에 오랜만에 지구의 향수를 기억해낸 환인은 곧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쯤 삼안 물산은 사방에서 뜯어먹혀 뼈대만 남았겠군.’

주식은 걸레 쪼가리가 됐을 테고 강부장과 강하연은 끈 떨어진 낙하산 신세가 되어있겠지. 아니면 감옥에 갇혀있거나.

세 입 먹은 환인은 생크림의 진한 단맛과 턱 안쪽을 자극하는 새콤한 맛에 먹는 것을 포기하고 입맛을 다시는 비상식량에게 주었다.

쿠에~.

크레이프의 맛이 행복을 주는 듯, 부리를 꼭 다물고 꽁지깃을 살랑살랑 흔드는 비상식량을 구경하던 환인은 아루루가 크레이프를 다 먹고 손가락을 핥는 것을 보며 물었다.

“아루루. 익스퍼트 토너먼트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합, 넷!=

어제 헤어진 뒤 자신이 알던 익스퍼트 토너먼트 정보에 더해 정보를 좀 더 수집한 아루루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리한 정보를 환인에게 알려주었다.

=토너먼트는 노비스, 익스퍼트, 마스터 세 단계로 나뉘어 있어요.=

노비스 경기장은 동서남북에 각각 4곳씩 총 16개의 경기장이 있으며 노비스 토너먼트는 무직자부터 3급 직업자까지 참가할 수 있지만, 무직자의 출전은 거의 없는 편이다.

익스퍼트는 4급부터 6급까지 참가가 가능하며 당사자가 원하면 3급도 참가 신청을 받아주지만, 참가자는 극소수라고.

=익스퍼트 경기장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각각 1곳씩 4개가 존재해요. 경기장이 4곳이지만 전부 사용해야 할 만큼 참가자가 많은 것은 아니구 한 곳의 경기장을 사용하다 대결 중 경기장이 부서지면 수리하고 수선하는 사이 다른 경기장을 이용하는 식이래요.=

마스터 토너먼트 참가자는 익스퍼트에서 1위~3위를 한 입상자, 그리고 파르히스트의 상급 무관마다 1명 씩 출전하며 파르히스트의 고족과 호족의 추천으로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마스터 토너먼트 경기장은 성에서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홀로렌 강 유역 고족 거리에 단 하나뿐.

=마스터 토너먼트는 성주님도 관람하시고 마스터 토너먼트가 벌어지면 도시의 모든 사람이 모여든다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요. 그래서 경기장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해요. 마스터 토너먼트 시합만 보셔도 대축제의 50%는 즐기신 거라고 봐도 돼요.=

“그렇군요. 시합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까?”

=네. 시합 20일 전부터 5일간 참가 신청을 받아요. 그러니까…… 23일 뒤부터네요. 접수가 끝난 뒤에 무작위로 조가 배치되고 대진표는 토너먼트 전날에 발표해요. 그리고 대축제 시작과 함께 토너먼트도 시작하죠.=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실리테가 손수건으로 손에 묻은 생크림의 흔적을 닦으며 묻는다.

=아루루. 토너먼트 상금은 어때?=

=마스터 토너먼트의 우승자는 파르히스트 근위무사 입단 시험을 받을 수 있어요. 입단 가산점도 크게 받고 파르히스트의 고급 저택이랑 마도기하고 상금도 듬뿍 받아요. 어른들이 그러시는데 총상금 규모가 3000금화랬어요.=

근위무사는 성주 직속의 검과 방패 같은 존재다. 오직 성주의 명령만 들으며 다른 호족, 고족들의 지시도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3000금화…… 굉장하네.=

=홀로렌 강하고 맞닿은 곳이라서 집도 비싸고 집사와 메이드, 시종과 하녀도 다 제공해준다고 했어요. 그리고 2등부터 4등까지는 각각 500금화, 300금화, 100금화, 50금화구요. 부상으로 성주님의 마도기 중에 한 개씩 높은 등수부터 하나만 고를 수 있다고 해요. 부상은 매년 바뀌구요.=

‘승자 독식에 가까운 시상이군.’

500금화가 소도시에서는 대저택을 사들일만한 돈이라지만 1등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난다. 1등은 저택을 제외한 상금만 1500금화라지 않는가.

=익스퍼트 토너먼트의 우승자는 성주님의 치하와 함께 기사단 입단 시험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구 마도기 하나랑 상금을 받을 수 있어요. 상금은 100금화에요. 2등부터는 마도구 1개씩이랑 50금화, 30금화, 10금화, 5금화를 받을 수 있어요.=

1등은 100금화!

이실리테의 귀가 쫑긋했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간다.

도적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이 일취월장했지만 그래봤자 아직 3급이다.

주인님이라면 모를까 4급 이상 6급 이하가 출전하는 토너먼트에서 우승은커녕 5등 안에 들 자신도 없다.

=노비스 토너먼트는 출전자 전원에게 1금화씩 지급하고 우승자는 성주님의 칭찬과 함께 마도구 1개, 10금화를 상금으로 받을 수 있어요. 대신 2등상부터는 없구요. 무직자의 참여는 시험에 통과해야 해요.=

이실리테의 고개가 환인을 향해 돌아갔다.

익스퍼트 토너먼트는 어려워도 노비스라면 우승을 점쳐볼 수 있다. 게다가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참여만 하면 1금화니까……!

=주인님.=

“노비스 토너먼트에 출전하고 싶나.”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대답을 요구하는 주인님에게 살짝 말문이 막혔던 이실리테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답한다.

=네. 노비스 토너먼트라면 우승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향상심이 중요하다고 하지. 그리고 향상심은 일종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실까 의아했지만 이실리테는 주인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었다.

“금을 더 모으고 싶다는 욕망. 좀 더 편히 살고 싶다는 욕망. 좀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그런 욕망이 모여 사람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성장시키는 법이지.”

=…….=

“돈을 원한 것이건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겨 인생 첫 우승을 만져보고 싶다는 것이건, 그게 욕망에서 비롯된 의사였다면 나도 존중했을 거다. 하지만 네 마음에는 그런 욕망이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아.”

이실리테는 환인의 밤하늘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점차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숨이 턱 막혔다.

이건…… 살기? 아냐, 기백……도 아니고, 위압감…도 아닌데.

용병 시절 어느 호족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7급 투사의 기백을 바로 앞에서 본 적이 있는 이실리테였다. 하지만 지금 주인님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그런 것들과 무언가 달랐다.

말하자면…….

존재감.

마치 절대적인 포식자를 코앞에 둔 것 같은…… 소름 돋는 감각.

그런 주인님의 존재감을 받고 있으니 이실리테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주인님이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지 알 것 같다. 그걸 대답하면 주인님은 고개를 끄덕이시겠지.

하지만 그게 정답일까? 주인님이 존재감까지 드러내시면서 대답을 원하셨는데 정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게 정답인 걸까?

왠지 아닐 것 같다.

=……죄송…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노비스 토너먼트에 출전해서 상금을 받으면 주인님한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해서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하는 것보다, 나는 네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향상심을 가지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주인님이 원하시는 걸 이루어줄 수 있을까?

나는…… 주인님이 만족할 수 있는 향상심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환인은 고개 숙인 이실리테를 말없이 응시했다.

‘조금 압박감을 줘서 제 입으로 익스퍼트 토너먼트에 출전하겠다고 말하게 하려 했는데.’

지금 이실리테의 실력이면 노비스 토너먼트에서 충분히 우승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서 배운 기술과 레심에게서 배운 기술로 고작 초보자들과 아웅다웅하려 하는 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환인이었다.

그래서 살짝 압박을 가했던 건데 이실리테는 어찌 된 일인지 내면에 질문을 던진 모습이다.

‘이쪽도 나쁘지 않지.’

내면에 던져진 질문에 성공적으로 답을 끌어내면 이실리테라는 인간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답을 내지 못하더라도 한 번 고뇌를 경험해보면 사람으로서의 맛이 한층 깊게 우러나겠지.

환인은 아루루와 비상식량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낸 뒤 근처 벤치에 가서 앉았다. 아루루와 비상식량, 쿠르티도 조용히 따라와 옆에 선다.

그 상태로 환인은 이실리테의 고뇌를 말없이 지켜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다.

해시계의 침 역할을 하는 기둥의 끝이 45도 가량 움직였을 때 옆에 앉아 땅에 닿지 않는 짧은 다리를 흔들거리던 아루루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환인 님. 이실리테 언니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감싼 껍질을 한 꺼풀 벗으려고 하는 겁니다.”

=……?? 애벌레처럼요? 사람도 탈피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린애다운 생각에 환인은 작게 웃으면서 아루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루루. 친구들 중에 갑자기 크게 변한 친구가 있습니까? 갑자기 어른스러워졌다거나 말입니다.”

=있어요. 요엘이라는 남자앤데 늘 여자애들 치마 들치고 엉덩이 때리면서 괴롭히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른들이랑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는 애들을 괴롭히지도 않고 열심히 일한다고 들었어요.=

“그게 어린아이라는 껍질을 한 꺼풀 벗고 정신적으로 성장한 모습입니다. 이제 철없이 굴어서는 안 되는걸 스스로 깨닫고 변한 거죠.”

=어…… 좋은 거네요?=

환인은 대답 없이 웃어주었다.

한 꺼풀 벗는다는 것은 마냥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법. 성격 좋은 사람이 안 좋은 일을 연이어 겪다가 비관적이고 염세적으로 변해버리는 것도 일종의 탈피이니 말이다.

그때 이실리테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며 가까이 다가가자 뒤늦게 환인을 발견하곤 다가와 깜짝 놀랐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사라져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말하는 이실리테의 분위기는 그다지 바뀐 게 없었다. 아주 약간 눈빛이 맑아지긴 했지만 유의미한 변화는 끌어내지 못한 듯 했다.

‘이게 정상이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지.

“네가 코 베여가도 모를 만큼 생각에 잠겼던 거다. 그래서, 고뇌에 대한 답은 내놨나?”

=네. 익스퍼트 토너먼트에 출전하겠어요!=

“…….”

억지로 등 떠밀려서 출전하겠다는 모습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뜻과 각오에 따른 모습.

‘그래도 조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긴 했군.’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 허락의 뜻을 비치었다.

“시상 후보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으니 후회하지 않을 만큼 실력을 펼쳐봐라. 너보다 강한 사람들과 무기를 나누다 보면 얻는 것도 있을 테니까.”

=네!=

이제 점심 시간인가.

해가 떠 있는 위치를 통해 대강의 시간을 확인한 환인은 아루루에게 음식이 맛있는 식당으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한 뒤 아루루의 뒤를 따라가며 이실리테에게 말했다.

“잘 생각했다.”

=네?=

“약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다. 진정한 희열과 쾌감은 강자와 싸울 때만 느낄 수 있지.”

그리고 약자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는 것은 추한 명성만 얻을 뿐이라고 말을 덧붙이자 속내를 읽힌 이실리테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네 아우라는 아직 3급이지만 무예는 적어도 4급 이상이니 주눅 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라.”

=……넵!=

토너먼트까지는 40일도 넘게 남았다.

환인은 그때까지 이실리테의 훈련을 조금 더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성도는 정말 엄청나게 넓구나. 그냥 둘러보는 데만 일주일은 넘게 걸리겠어.=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이 넓이에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세요. 그러니까 동서남북으로 위치를 기억해두고 숙소 이름이나 동네 이름을 기억해두시는 게 좋아요. 그 두 가지만 기억해두면 순찰병 언니 오빠들이 길 찾는 것을 도와드리니까요.=

약 10분 정도 이동해 도착한 식당은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테이블 서비스와 카운터 서비스를 합친 듯한 식당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앉아 주방에서 요리사가 요리하는 것을 보며 웨이트리스의 서빙을 받아 식사를 마친 환인은 다음으로 마도구점, 비술사 협회 직속의 가게를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마도구점은 북부에도 많지만 비술사 협회에서 운영하는 직영 마도구점은 남부에 모여있어요.=

=거기에만 있는 이유가 있어?=

=술사님들은 남부에 많이 계시거든요. 반대로 북문 쪽에는 무인님들이 모여 계시구요.=

=그래? 한데 모여있으면 편할 텐데 왜 서로 정 반대편에 있는 거지?=

=옛날에는 술사님들이랑 무인님들의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해요. 그래서 성주님이 홀로렌 강을 경계로 남쪽은 술사님들, 북쪽은 무사님들의 영역이라고 나누었어요.=

=흐응.=

이실리테와 아루루의 대화를 들으며 마차들이 오가는 도로를 통해 남쪽으로 향하던 환인은 파르히스트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홀로렌 강의 뚝방길에 도착했고.

=우와. 강이 엄청나게 크네요.=

“음.”

상상 이상으로 넓은 강폭에 살짝 놀라워했다.

폭이 200m에 가까운 굵고 거대한 강이 맑은 에메랄드빛으로 천천히 흐르고 있었던 것.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한강의 1/3이나 되는 홀로렌 강은 수심도 꽤 깊어서 범선도 지나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리가 별로 없군.”

=다리는 네 군데 있어요. 아니면 나루터를 이용해도 되는데 나루터를 이용하려면 2동화는 내셔야해요. 다리는 무료구요.=

=보통은 강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할텐데. 나루터도 행정관 직속인가 보네?=

=네. 그래서 강에 이물질을 버리거나 하면 잡혀가니까 조심해야 해요.=

“다리로 가지.”

홀로렌 강은 거의 직각에 가까웠던 덕분에 환인은 다리를 건너며 강 저편에 보이는 성벽과 거리를 통해 파르히스트의 폭을 어림잡아 계산할 수 있었다.

‘도시의 폭이 8km 정도인가. 엄청난 넓이군.’

서울이 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12km, 대충 24km 정도 된다. 넓이만 따지면 파르히스트는 서울의 1/3이라는 뜻.

시대상은 중세에 가까운데 어떻게 이런 거대한 도시가 생길 수 있는 걸까.

도시가 커지기 위해서는 인구가 필요하고, 인구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산업화와 함께 사망률을 낮출 일반 상식과 의료 기술, 식량의 자급자족 등이 필요하다.

그게 시민의식이 중세에 머무르고 있는 이 세상에 모두 마련되어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산업화 일부는 마도구로 대체하고 사망률은 신전과 물약, 제약 등으로 틀어막는 건가. 식량은 미궁의 토질 비옥화의 효과를 받고?’

도시 중앙의 우뚝 솟은 성, 인위적으로 축성??한 것처럼 20m 정도 높은 지대에 세워진 독일의 성 같은 것을 바라보며 환인은 북적북적한 다리를 건너 도시의 남쪽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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