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140 성도 파르히스트
* * *
=와…… 깜짝 놀랐어요.=
가슴에 손을 올린 이실리테가 작게 숨을 내쉰다.
그 모습이 환인의 눈에는 귀족 집안 영애처럼 다소곳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방금전 거구를 본 반작용이군.’
=귀나 머리카락, 피부색을 보면 플뢰는 맞는데 어쩜 덩치가 저렇게 육중한지…… 조금 부럽기까지 하네요.=
“…음. 전사로서의 의미인가.”
=네. 위상 능력이 같다면 체격이 좋은 쪽이 더 우월할 테니까요.=
단순히 전투 스펙만을 따지면 방금의 거구가 이실리테보다 훨씬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전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부러워할 법하다고 생각하며 환인도 수긍했다.
하지만.
“네 심정은 이해한다만, 나는 지금 네 모습이 마음에 든다.”
=……!=
“흠. 말하고보니 추행 발언이었군. 미안하다.”
=아, 아니, 아니에요…….=
이실리테의 머리와 가슴에 폭탄을 터트린 줄도 모르고 환인은 턱을 매만지며 거구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방금 그 거구는 환인이 바라는 동료 상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넉살과 친화력.
이제 조금씩 자세에서 실력이 묻어나기 시작하는 이실리테의 실력을 꿰뚫어 본 관찰력.
5급, 어쩌면 6급에 이르는 농도의 아우라는 물론이고 장비 또한 마도기로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 성격도, 실력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전열 탱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라는 것이 환인의 마음을 잡아끌고 있었다.
‘익스퍼트 토너먼트라…….’
환인은 두 단어를 기억해두며 모여있는 아이들에게 가서 말했다.
“파르히스트의 지리와 지역 정보에 자신 있는 분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지역 정보는 정확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예요?=
금발의 시바견 귀를 한 소녀가 손을 들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묻는다.
“말 그대로입니다. 도시 어디에 어떤 건물이 있고 상점 거리, 숙박 거리, 기타 파르히스트의 특징적인 건축물의 위치와 역사 등을 알고 있으면 좋겠군요.”
=파르히스트는 굉장히 넓은 곳이에요. 그래서 도시 전체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은 아마 없을 거예요. 우리는 각자 네 곳 구역 중 한 곳을 담당해서 활동하거든요. 여기 북문은 북문 근처 지역을 잘 알고 서문 애들은 서문 근처, 동문 남문 애들도 그 부근에 대해서 잘 아는 식으로요.=
“그렇습니까?”
환인의 대답에 검은색 점박이 강아지 머리의 소년이 처음 말한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아루루가 그중에 제일 잘 알 걸요. 쟤는 동서남북 다 돌아다니면서 안내하거든요.=
=그치만 너희들처럼 전문적이지는 않은걸.=
=저 여행자님도 현지 거주민 수준의 지식을 원하시는 건 아닐 거 아냐. 그쵸?=
“예.”
=거봐. 아루루 니가 제일 적임자 같은데? 여행자님, 그냥 쟤 데려가세요. 파르히스트를 전부 돌아다닐 거면 우리 중에서 쟤가 제일 나을 거에요.=
“그렇군요. 아루루, 당신만 괜찮다면 가이드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저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넵. 가이드 열심히 하겠습니다!=
환인은 키가 자신의 명치 부근에 겨우 오는 소녀와 악수한 뒤 검은색 점박이 강아지 소년에게 1동화의 팁을 건네주었다.
“조언 고맙습니다. 이건 팁입니다.”
=왓,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나으리!=
주변 소년 소녀들이 점박이 강아지 소년을 부러워하는 것을 들으며 환인은 인견족 소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저는 환인입니다. 여기는 여행 동료인 이실리테.”
=안녕? 이실리테라고해. 주인님의 몸종 겸 호위야.=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아루루구 인견족이에요. 파르히스트 서쪽 출신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목에 걸고 있는 떡갈나무 나무패를 보여준 아루루가 허리를 꾸벅 숙인다.
그런 아루루의 자기소개에 환인은 의문을 품었다.
파르히스트 ‘서쪽’ 출신이라니. 도시가 한국의 특별시에 가까울 만큼 넓어서 지역 출신 갈라치기가 존재하는 건가.
그 말은 이 도시에 지역 차별이 있다는 뜻?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한국의 도시는 구읍면동리 다섯 단계로 법정 구역을 구분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주소지 확인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이 세상의 도시에는 그런 법정동의 구분이 없다.
행정관이 존재하고 고족, 호족들의 거주지가 따로 정해지는 것을 보면 행정동의 구분이 있는 듯 하지만, 그런 것은 일반인에게 알려주지 않겠지.
즉 서쪽, 동쪽, 북쪽, 남쪽 출신 이런 수사는 말 그대로 어디에서 태어났냐를 알려주는 말일 수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현재로서는 떠돌이나 다름없는 환인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나중에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 같아 머리에서 지우지 않고 뇌의 한쪽에 정리해둔다.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환인은 아루루를 재차 살펴보았다.
‘나쁘지 않군.’
환인이 가이드로 아루루를 선택한 것은 점박이 강아지 소년의 이야기에 휩쓸려서가 아니었다.
아루루는 모여있던 열세 명 중 옷차림이나 행색이 가장 깨끗했지만, 신발은 누구보다 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죽신이 저 정도로 헤어질 정도라면 어지간히 돌아다녔다는 뜻. 도시에 대한 것도 잘 알고 있으리란 판단이 드는 건 당연하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환인은 북적북적한 거리로 걸어 들어가며 물었다.
“아루루. 가이드 계약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집니까?”
고개를 갸웃한 아루루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환인 님은 다른 도시의 고족이신가요?=
“아닙니다.”
=죄송해요. 고족님들은 계약서를 자주 쓰신다고 들어서 여쭈어본 거예요.=
그렇게 질문의 이유를 먼저 밝힌 아루루는 얼마 걷지 않아 로타리 비슷한 장소에 도착해서 멈추더니 환인을 돌아보며 말한다.
=우리 꼬마 가이드는 따로 계약서를 쓰지 않아요. 하루에 1동화씩 받고 가이드를 해드리거든요. 하루에 1동화씩 받는데 계약서 마도구를 매번 작성하면 그 부담이 여행자님들한테 전부 갈 텐데 그럼 아무도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아루루의 똑똑한 대답에 이실리테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환인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러면 가이드 안내는 하루 단위로 갱신되는 겁니까?”
=보통 하루 안내받고 마음에 들면 며칠 비용을 선불로 내고 고용하는 일도 있어요.=
예약하지 않으면 중간에 다른 사람의 가이드로 고용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렇군요. 일단 닷새 치 가이드를 부탁드리죠.”
=네? 그렇게 바로요?=
“예. 아루루 양도 매일 고용해줄 여행자를 찾기보단 이렇게 장기 고용이 낫겠지요.”
=그, 그건 그렇지만.=
“저와 이실리테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니만큼 복잡하거나 스케줄이 여유 없이 빼곡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도시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조사 정도는 부탁드릴지도 모르겠군요.”
잠깐 생각하던 아루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앞으로 5일 동안 잘 부탁드려요.=
“여기, 대금입니다.”
안주머니에서 동화 6닢을 꺼내주자 아루루가 즉시 동화 1닢을 빼서 올린다.
=1닢 더 주셨어요!=
“그건 팁입니다.”
와, 하고 표정이 밝아지는 아루루. 팁으로 하루치 일당이 들어왔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환한 미소의 소녀에게 환인은 첫 번째 가이드를 부탁했다.
“저희가 머물만한 곳을 안내받고 싶군요. 호텔 같은 밀집 숙박시설이 아니라 이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펜션 같은 곳이 좋겠습니다.”
이실리테의 손에 고삐가 잡혀있는 비상식량과 쿠르티를 가리키자 아루루가 조금 곤란한 얼굴로 되묻는다.
=어…… 페, 펜션이 뭐예요? 처음 듣는 단어에요.=
“음. 민박은 아십니까?”
=네! 이 시기는 여관이나 중저가 호텔이 거의 다 차서 여행자님들이 민박을 많이 이용해요. 돈 많으시면 고급 호텔에 머무셔도 되는데 아마 고급 호텔도 일반 룸은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펜션을 찾고 있습니다. 펜션은 민박 같은 가정집 비슷한 건물에 호텔의 편의성을 갖춘 개인 단위 숙박시설을 보통 펜션이라고 합니다.”
=아! 소장원 말씀이시네요. 마침 몇몇 부탁받은 소장원이 있는데 그쪽으로 안내해드릴까요?=
‘이 세상에도 알선 중개인이 있군.’
상업이 존재하는 곳에 없을 수 없겠지. 환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루루가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며 물었다.
=환인 님은 어느 정도 수준의 소장원을 원하세요? 하루 이용비가 5열동화에서 5은화까지 다양해요. 그보다 더 비싸고 고급인 장원은 행정관에 가서 소개받으셔야 하구요.=
“1은화 정도의 소장원 수준은 어떻습니까?”
질문을 받은 아루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외관은 나무로 꾸미고 벽과 내부는 벽돌로 지은 2층짜리 건물을 가리켰다.
=저 정도 크기에 작은 정원이 딸린 건물이에요.=
“한 번 보고 싶군요. 안내해주시겠습니까?”
=넵! 이쪽으로 오세요!=
아루루가 안내해준 곳은 소장원이 아니라 공인중개사무소와 비슷한 가게였다.
=실렌 언니. 손님 모셔왔어요.=
=어머? 호호호. 아루루는 올 때마다 아줌마를 웃게 만드는구나.=
조금 살이 쪄서 육덕한 느낌의 30대 여성이 웃으며 아루루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환인과 이실리테를 한 번씩 보고는 환인에게 살짝 허리를 숙였다.
=실렌 복덕방에 어서오세요, 손님. 음! 잠시만요. 손님이 원하시는 걸 제가 맞춰볼게요.=
마악 입을 열려던 환인은 다시 입을 닫고 실렌을 바라본다.
=아루루와 함께 오신 것을 보면 저 아이를 고용하신 거겠죠? 파르히스트에 오신지 얼마 안 되셨을 테고, 저 아이라면 비어있는 호텔이나 여관을 안내해줬을 텐데도 그러지 않고 절 찾아오신 것은 소음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여관을 원하시는 거죠?=
=실렌 언니. 틀렸어요.=
=으, 응?=
=환인 님은 소장원을 원하셨어요. 일일 은화 1닢 수준에 정원까지 딸린 거요. 북서쪽 장원 촌에 노란 지붕 집 아직 비어있죠? 거기 안내해줘요.=
아루루의 당찬 요구에 실렌이 작게 뺨을 부풀린다.
=누가 보면 네가 복덕방 주인인 줄 알겠다?=
=환인 님은 그런 립서비스나 긴말은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이라고요. 언니가 좋아하는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환인 님은 딴 데 가버리실 거예요.=
=내가 무슨 수다를 좋아한다는 거니?=
눈웃음치는 듯이 눈을 흘기는 실렌의 모습에 환인은 불현듯 한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눈을 뜬 그 모습이 일본의 유명 그라비아 아이돌을 매우 빼닮았기 때문.
그쪽으로는 1의 관심도 없던 환인이었지만, 한때 맥심이라는 잡지에 일본 그라비아 아이돌이 출연한다고 후배가 난리 쳤다가 회사에 그 잡지를 들고 오기까지 해서 기억하고 있는 환인이었다.
‘이름이…… 아이였던가.’
=언니, 얼른요.=
=알았다, 알았어.=
아루루의 재촉에 졌다는 듯이 손을 든 실렌은 외투를 챙겨 들고 눈웃음이 습관이 된 듯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아루루가 말한 소장원은 제가 가진 곳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좋은 곳이에요. 보시면 만족하실 거예요.=
“부탁드립니다.”
수다를 좋아한다는 아루루의 이야기대로 실렌은 환인과 함께 걸어가며 파르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풀어놓았다.
현 성주인 펜리 후스티오 파르히스트는 역대 성주들 중에서도 성군으로 칭송받는다는 것.
도시 정비 사업과 도시 개발 사업을 병행하면서 빈민과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사람들이 더욱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고 있다는 것.
게다가 매년 펼쳐지는 대축제도 현 파르히스트 성주가 어렸을 때 입안하고 추진해서 30년이 지난 현재 라드세아 중부에서 제일가는 축제로 손꼽히고 있다는 이야기에 환인은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그게 모두 사실이라면 중세에 가까운 시대상의 군주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명군이군.’
이런 시대상에서 축제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만한 축제를 매년 개최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잘 산다는 자랑이 된다.
축제가 펼쳐지면 일시적이라 해도 시민들의 만족감과 행복도가 오르고 불만과 불평이 낮아진다.
파르히스트의 대축제쯤 되면 여행 온 사람들이 쓰는 돈으로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있고 대축제 중 토너먼트를 통해 인재 발굴 사업도 진행된다.
재정적 손해만 감당된다면 축제를 열어 손해 볼게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나 군주는 얼마 없지. 특히 중세 시대라면.’
웨이포드만 봐도 그렇다. 4년에 1번씩 돌아온다는 윤일에 전 세계 어디에서나 치른다는 영령의 행진을 제외하면 축제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축제를 벌일 시간에 일이나 해서 세금을 내라는 생각이 보통인 거다.
그리고 환인은 실렌이 프로파간다에 선동당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임을 눈치챘다.
그림엽서에 등장할법한 영국 시골 마을 느낌의 길거리 곳곳이 좀 더 살기 좋도록 공사중이다.
로마식 도로포장이 이루어지는 것을 몇 군데나 보았고 뭔가 허전하다 싶은 곳은 가로수가 심어지고 있었으며 빈터에 새집이 올라가고 있는 곳도 있었다.
거기에 한달 뒤의 축제 준비인지 노점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거나 이미 집앞에 노점을 열어 뭔가 파는 사람도 있다.
환인 자신처럼 타지에서 온 여행자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거주지를 정한다면 이런 곳이겠지.’
파르히스트는 전체적으로 개방감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건물은 죄다 1층 아니면 2층. 여기까지 오는 길에 지나쳤던 상점 거리에 가끔 3층 건물이 있었지만, 평균 1.5층이다.
거기다 건물은 밝은색이고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푸른 하늘이 여지없이 보인다.
살기 좋고 넓고 사람들은 밝다. 성주는 도시에 신경을 많이 쓰고 경제도 앞으로도 성장할게 보이니 앞으로 더욱 살기 좋아지겠지.
일행은 어느덧 번화가와 멀어졌다는 느낌의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흡사 펜션 거리 같은 장소. 집이 널찍널찍하게 자리잡고 집집마다 크고 작은 정원이 딸려있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손님? 여기랍니다.=
그리고 실렌은 그런 집들 중 한곳으로 안내했다.
눈에 들어온 건물은 소장원小??이라기보단 그냥 유럽 시골 도시의 고풍스럽고 운치 있는 주택이었다.
집 구조는 심플했다.
특이점이라면 외관은 벽돌집인데 내부는 12세기 중세 유럽의 하프팀버 방식으로 지은 집이라는 점.
집은 2층으로 1층에 욕실, 식당, 주방, 세탁실, 다용도실, 창고 등이 있고 2층에는 방이 세 개.
옥상이 있어 빨래를 널 수 있게 되어있고 뒤뜰에는 쿠에 세 마리 정도는 들어가는 작은 우리와 40평 정도 되는 잔디 정원이 붙어있다.
=내부도 정갈하네요. 정원도 손질 잘 받은 것처럼 깨끗하고 햇볕도 잘 들고요.=
주택을 한차례 둘러본 이실리테가 1층 거실로 내려와 마음에 들어 했다.
집안의 벽은 회벽??으로 때가 타지 않은 회색이고 그런 회벽을 흑갈색 나무가 가로지르며 축이 되어주고 있다.
정문을 열고 들어오면 있는 장탁자가 있는 큰 거실이 있는 것도 좋았다. 비상식량이 머무르고 여기서 식사도 하기에 좋은 장소였기 때문.
정문의 맞은편에는 뒤뜰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는 것도 좋았고 비록 두께가 균열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지만 창문에는 유리창도 붙어있어 햇볕이 내부를 밝게 비추는 것도 좋았다.
바닥은 넓적한 돌이 평평하게 깔린 단단한 돌바닥이라 비상식량이 돌아다녀도 먼지가 나지 않는 형태이며, 기본적인 가구소파, 탁자, 의자, 침대, 캐비닛 정도는 제대로 구비되어있다.
식기 같은 것은 따로 사야겠지만 일단 환인의 기준에도 일반 펜션보다는 월등히 좋은 집이다.
=근처에 소장원 몇 개가 더 있으니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열동화 1~2닢 정도 차이 나는 곳이거든요.=
“다른 집도 보여주시겠습니까.”
어차피 이제 해가 지고 있다. 다른 일을 하기에는 늦은 시간.
세 곳 소장원을 더 둘러본 환인은 처음 방문했던 주택을 골라 단기 임대 계약을 맺었다.
“처음 소장원이 마음에 드는군요.”
=그렇죠? 저도 두 분이 사용하시기에 거기가 괜찮다고 생각했었어요.=
다른 곳은 조금 더 넓지만 조금 때 타고 낡은 느낌이거나, 정원이 제대로 관리되어있지 않아 이상한 냄새가 난다거나, 둘이 지내기에 너무 넓고 크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
계약 항목을 확인한 환인은 마도구에 날인을 하고 지장을 찍은 뒤 10일 임대 비용 10은화와 보증금 1금화를 내며 말했다.
“50일 정도,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묶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10일 정도 지내보고 연장할지 옮길지 그때 가서 결정하겠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편의를 봐 드릴게요.=
50일 이상 머무를 예정이라는 말에 실렌은 한껏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고 돌아갔다.
그리고 실렌이 돌아가자마자 아루루가 아깝다는 투로 말했다.
=50은화면 조금 외떨어진 도시 외곽에 작은 집을 사실 수도 있는데. 생각 있으시면 제가 알아봐 드릴 수 있어요.=
“괜찮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파르히스트를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일정이니까요.”
집을 사두더라도 주인 없이 오래 비워진 집은 행정관에게서 회수해간다.
그렇다고 원룸처럼 작은 집에 관리인을 두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그런 작은 집을 임대 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환인은 2층에 짐을 풀고 내려오는 이실리테를 한 번 보고 아루루에게 말했다.
“내일은 익스퍼트 토너먼트 관련해서 정보를 얻고 싶습니다. 개최되는 곳, 개최일, 참가 자격 여부 같은 것들 말입니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익스퍼트 토너먼트 말씀이시죠? 알아보고 내일 오전 10시쯤에 올게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아루루가 허리를 꾸벅 숙이고 집을 나가려한다. 그런 아루루를 붙잡은 이실리테가 환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주인님. 저 앞 시장에서 저녁 거리를 사 와도 괜찮을까요? 아루루 것도요.=
=앗? 아뇨! 집에 엄마랑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감사하지만 오늘은 사양하겠습니다.=
황급히 손사래 치는 아루루를 힐끔 쳐다본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1금화를 튕겨주었다.
“내일부터는 아루루 양이 함께 먹어도 될 만큼 식사 준비를 넉넉하게 해놓도록 해라.”
=넵. 아루루? 내일부터는 저녁도 먹고 가.=
=네, 언니!=
아루루는 기쁨을 애써 감추며 환인에게 먼저 허리를 꾸벅 숙였고 이실리테에게도 숙였다.
집에서 자기 입을 하나 줄이면 그만큼 식비가 줄어든다.
그리고 하루 일당의 팁도 주시는 데다 이런 좋은 집에서 50일 넘게 장기 숙박하시는 분들이니까 열심히 모시면 팁을 더 주실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작은 주먹을 꼭 쥐는 아루루였다.
[파르히스트 번화가 풍경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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