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33 카턴 마을
* * *
카턴 마을에서 마지막 저녁은 칸트위의 주도 아래 성대한 송별 잔치가 열리……지 않았다.
그저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쓰고 평소보다 좀 더 정갈하고 평소보다 좀 더 비싼 식자재를 쓴 요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나왔을 뿐.
남은 식객인 문더와 스토레이는 마을의 주점에서 이른 저녁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었기에 식사는 환인이 머무르는 별채의 대청마루에 차려졌고, 마지막 무두질 교육을 받고 돌아온 이실리테와 칸트위, 그리고 비상식량이 저녁 식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쿠엣.
비상식량도 참여했지만 같은 식탁을 쓴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투정 부리거나 빽빽 울지도 않았다. 따로 자기 전용으로 차려진 장식탁에 산더미처럼 쌓인 고기와 산더미처럼 쌓인 채소에 행복해할 뿐.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차를 들던 칸트위가 못내 섭섭하고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내일이면 환인 님께서 떠나시는 날이군요. 이제야 이틀째인데 어째 일주일은 된 것 같습니다. 하하하.=
“제가 부담스러워 시간이 느리게 흘렀나 봅니다.”
자신의 대답에 깜짝 놀라는 칸트위를 향해 농담이라고 웃어주자 칸트위가 식겁한 듯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한숨 쉰다.
=프리솔드 사도에게 환인 님의 말씀을 슬쩍 흘려주었습니다.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그랬습니까.”
=펑펑 울면서 연신 다행이라고 중얼거릴 정도였으니까요. 그 후에 조금은 후련해진 듯한 모습이었으니 사도직을 내려놓는다는 말은 더 나오지 않겠지요. 다만 파르히스트로 향하는 길에 쓰셨던 로브는 처분하시는 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러라 했습니다. 저와 이실리테를 많은 눈이 보고 말았으니까요.”
사도는 자신과 관련된 보고를 파르히스트에 올릴 것이다. 거기다 어젯밤에 자신을 본 여행자 중에는 오늘 아침이나 낮에 떠난 이들도 많았다.
자신보다 파르히스트에 먼저 도착해서 영혼사의 소문을 퍼트리겠지.
2명 일행. 아우라가 없는 영혼사에 체구가 가녀린 여자 전사. 거기다 하얀 후드 로브.
하얀 로브를 입고 파르히스트에서 활동했다간 순식간에 정체가 밝혀질 거다.
=그리고 파르히스트에 도착하신 뒤 머물 곳이 여의치 않으시면 여기에 적힌 주소로 찾아가 보십시오. 제 지인이 운영하는 장원입니다. 환인 님을 극진히 모실 겁니다.=
그러면서 건네주는 쪽지와 편지를 환인은 작게 웃으며 받아들었다.
“안면도 없는 이방인을 이렇게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뒤에 이어질 많은 말을 생략한 모습으로 마지막 한 모금의 차를 마신 칸트위는 시간이 늦었다며 허리를 숙이고 본채로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가는 칸트위의 뒷모습을 환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
말없이 편지와 쪽지를 만지작거린다.
이 세상에 떨어진 지도 어느덧 200일이 훌쩍 넘은 시점. 환인은 약간의 부조화를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력 사건이 많이 벌어져. 도시에는 어두운 면도 많이 보이고. 신의 정원을 믿고 혼재를 두려워하면서도 하는 짓은 사랑과 평화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이 많아.”
=……네?=
찻잔과 찻주전자를 정리하던 이실리테가 환인의 중얼거림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혼재는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정작 혼재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인간들이 많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음……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의외의 대답에 환인이 시선을 보내자 이실리테가 뺨을 살짝 긁으면서 대답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주인님처럼 높게, 그리고 넓게 세상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만해도 도둑 두목일 적에는 다음 목표 물색과 도적단 관리로 멀리 봤자 일주일 뒤의 일만 신경 썼으니까요.=
“…….”
=그래서 멀리 보지 않고 그냥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아닐까 해요. 거기다 적당히 나쁜 놈들, 적당히 착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그러다 보니까 사고도 벌어지고 싸움도 나고 그러다 죽고 죽이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발언에 환인은 피식 웃으면서 칸트위가 남긴 편지를 챙겼다.
“네 말도 맞군.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멍청해서 나는 아니겠지, 나는 걸리지 않겠지 생각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사람이지.”
생각해보면 지구에도 저 인간이 제정신인가 싶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았다.
무인 편의점의 물건을 도둑질해간다거나 무료로 나눠주는 콘돔 자동 배포기를 박살 내고 꺼내 간다거나 한밤중에 핸드폰 대리점을 털어서 모형 스마트폰 몇 개를 훔쳐 간다거나.
무엇보다 범죄는 계획된 범죄보다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범죄가 더욱 많다.
계획된 범죄라고 해도 생활고에 시달려 저지르는 범죄도 있겠지.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는 다른, 범죄가 곧 생활 방식인 사람도 있고.
그건 이 세상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다. 다만 지구와 다른 것은…….
‘영혼의 존재와 천국의 존재.’
영혼의 타락을 무서워하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사후를 믿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칸트위 탓에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며 속으로 중얼거린 환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실리테에게 말했다.
“내일은 새벽 일찍 출발할 거다. 오늘은 일찍 자도록 하지.”
=넵. 안녕히 주무세요, 주인님.=
“그래. 너도 잘 자라.”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가죽옷을 챙겨입고 대청마루로 나온 환인은 마루에 보자기로 포장된 몇 가지 물건과 함께 편지 한 장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밤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지만, 마루에서 자고 있던 비상식량이 별 신경 쓰지 않았기에 자신도 누워있었는데.
“…….”
쪽지를 확인해보니 칸트위였다.
[작은 성의를 마련했습니다. 여비에 도움이 되면 기쁘겠습니다.환인 님의 앞길에 그분의 축복과 광영이 비추길 기원합니다.칸트위=로단셀]
가다 먹을 도시락과 환인이 괜찮다고 평가했던 말린 찻잎. 그리고 고급스러운 자기로 된 술병과 작은 비단 주머니.
주머니에는 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금화가 다섯 장 들어있었다.
=주인님, 출발 준비 끝났어요.=
이실리테가 쿠르티와 비상식량을 데리고 오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가지.”
비상식량을 타고 마을의 남문으로 향하던 환인은 칸트위의 저택 쪽을 돌아보았다.
마을 안 언덕의 중턱 즈음에 지어진 칸트위의 저택은 어둠 속에서도 잘 보였다.
그의 방으로 짐작되는 3층의 한 곳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인다. 창가에 서있는 사람 그림자는 칸트위겠지.
보일지 모르겠지만, 환인은 그를 향해 꾸벅 묵례하고 시선을 돌렸다.
* * * *
=뭐어어?!!=
환인을 떠나보내고 점심나절. 숙취에 시달리던 칸트위는 갑자기 찾아와 소리 지르는 유르파의 고성에 머리가 깨지는 고통을 느끼며 신음했다.
=누님. 머리 아픕니다. 좀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언제 출발하셨는데?! 왜?!=
=왜긴 왭니까. 환인 님도 일정이 있으셨으니까 그렇지요…….=
힘없이 대답하며 칸트위는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술을 홀짝이던 칸트위는 어스름 속에서 환인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거창하게 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런데도 가슴에 묵직한 돌덩어리가 얹힌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
칸트위가 본 환인의 첫인상은 지체 높은 가문의 자제분이었다.
부드러운 성품으로 여행 다니길 즐기는 학자풍의 고족, 아니면 호족의 자제.
그럴 만도 한 게 그 비싸다는 녹색 쿠에를 탈것으로 삼고 직업자를 몸종으로 둔 사람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그래서 자신의 집에 손님으로 모셨다. 혹시 마을의 누군가가 이분에게 실례를 저지르면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집으로 환인을 데려온 칸트위는 성실하게 그를 대접했다. 그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아끼던 한옥 별채도 내어주었고 편히 쉴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그랬는데 처음 본 그의 이미지가 깨져나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3급 직업자인 몸종을 상대로 우세한 전투력을 뽐내는 녹색 쿠에. 듣기로 쿠에에게 전투 기술을 가르친 게 본인이란다.
……쿠에를 전투용으로 만들기 위해 겁을 없애는 훈련을 한다는 이야기는 자신도 들었는데 전투 기술을 가르친다니?
그후 이어진 대련에서 식객 중 한 명인 4급 투사를 때려눕히는 무예를 선보여주었을 때는 솔직히 체신도 잊고 흥분했었다.
무직자가 직업자와 대련해서 때려눕히는 클리셰는 아직도 잘 먹히는 소재였으니까.
그랬는데 다음 날, 녹색 쿠에도 4급 투사님을 때려눕혔다. 몸종이던 3급 전사님도 4급 투사님과 대련에서 판정승을 거두었다.
칸트위는 이쯤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3급 전사와 녹색 쿠에에게 전투 기술을 지도하고 4급 투사마저 때려눕히는, 각성하지 못한 학식 깊고 중후한 예의를 갖춘 지체 높은 가문의 무직자 무인?人.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날 밤에 카턴 마을을 뒤흔드는 폭탄 하나가 떨어졌다.
영성?의 길을 걷는 고고한 영혼의 순례자가 마을의 한복판에 잠복하고 있던 악령화한 영혼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그 영혼의 순례자님이 그 손님이라고?
평범한 영혼사님이 아니라 영혼을 현실로 초혼할 수 있는 상급 영혼사님?
칸트위는 숨이 턱 막혔다.
4급 직업자를 갓난아이처럼 다루는 대단한 무인이자 지체 높은 가문의 학자풍 자제이시면서 상급 영혼사?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마을에 큰일이 터지고 그에 대한 대책을 회의하느라 날밤을 새우며 마을 상공회에서 혼이 나간 사도를 대신해 회의를 진행했다.
다음날에는 잠도 못 자고 마을에서 빚어지는 잡음을 잠재우기 위해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아마 그 때문일 거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따스한 차 한 잔을 그와 함께하다가 긴장이 풀려 실수를 저지른 이유 말이다.
불량배들, 비록 마을의 말썽꾸러기들이었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쭉 보아왔던 아이들이었다.
조금이지만 안쓰럽고 딱한 마음에 죽음 이후 평온과 안식을 얻었는지 궁금해서 살짝 의도를 내비쳤지만, 돌아온 것은 악인을 단죄하는 심판자의 눈빛이었다.
다행히 여러 사람을 만나며 쌓아온 평정심으로 실수를 어떻게 무마하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묵직해진다.
그래서 칸트위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환인 님이라면 한 나라의 왕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겠구나,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술을 6병이나 마셨고…….
=그래서 그이는 어디로 가셨는데?!=
=누님. 제발 목소리 좀…….=
=아 어디로 가셨냐고!!!=
으극.
이러다 머리가 쪼개질 거 같다는 공포심에 칸트위는 식은땀을 흘리며 파르히스트로 떠나셨다고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
원하는 대답이었을까. 드디어 조용해진 덕분에 살았다고 속으로 한숨을 내쉰 칸트위는 그제야 입을 다물고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얼굴로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는 유르파를 볼 수 있었다.
‘……백화 현상?’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곱게 빗고 그에 어울리는 얌전한 회색 로브를 입은 유르파.
평소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나던 야시시한 드레스 차림이 아니라 몸매를 꽁꽁 감싸서 목 위쪽, 팔목 일부 외에는 피부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단정한 차림이다.
설마.
칸트위의 머릿속 환인에 대한 평가에 한 줄이 더 추가되었다.
4급 직업자도 때려눕히는 무인이자 지체 높은 가문의 자제분이시면서 영혼의 순례자이시고 흡정족마저 만족시키는 ‘절륜한 정력’의 소유자.
자신이 여자였어도 반하겠다고 생각하며 냉수를 병째로 들이킨 칸트위가 물었다.
=누님. 그분한테 푹 빠지셨군요?=
=……내가 어떻게 변했나 봐. 날 이렇게나 바꾼 남자는 자기가 처음이란 말야.=
그러더니 볼에 홍조를 띠며 충격적인 말을 잇는다.
=그뿐만이 아냐. 내가 백화한 뒤에 어떤 행동을 했을지 짐작이 가니? 난 내 특별한 가방에 가게 안 상품은 물론 전 재산을 담아 주려고 했어. 하나도 안 아까웠어. 돈이야 다시 마도구를 만들어서 팔면 벌리니까.=
그때의 자신은 자신이었지만 자신이 아니기도 했다. 그래서 뒤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재산을 자기한테 다 선물로 주려 했었다.
며칠 뒤에 정신을 차렸더라도 ‘에이.’하고 조금 아까워했을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았을 거다.
챙겨준 건 상품과 돈, 재물 같은 거였지 마도구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하나도 건들지 않았다. 말마따나 다시 마도구를 만들어 팔면 몇 년 내로 보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말야. 자기는…… 거부했어. 족히 금화 2,500닢은 될법한 재산을 거절했다고? 너라면 그걸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부할 수 있니?=
칸트위도 큰 충격을 받았다.
금화 2,500닢이라면 자신의 전 재산을 끌어모아야 하는 수준이다. 마도구라면 금전화도 쉬운데 그걸 거절했다고?
=그 이유가 뭔지 아니? 자기는 기둥서방이 아니라고, 날…… 내가 매력적이어서, 내가 좋아서 안아줬던 거 뿐이라고……. =
그렇게 말하는 유르파는 애달픈 첫사랑을 하는 소녀처럼 보였다.
하얀 머리카락이, 하얀 피부와 회색 로브가 더욱 때 타지 않은 순결한 소녀를 연상케 한다.
=난 말야. 남자의 정기를 빼앗으면서 사는 기생충이라고, 남자의 정혈을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모기 같은 년이라고 평생을 손가락질받으며 살아왔었어. 날…… 나를 여자로 받아준 사람은 그이가 처음이었다구. 아기 꽃돼지 너는 내 심정이 이해가 가니?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짐작이 가?=
=…….=
칸트위는 울먹이는 유르파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적으로 자신도 환인 님에게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누님은 흡정족이라고, 따라 들어갔다간 정기를 빨릴 거라고.
사실이었기에 사실을 언급해 더욱 상처받는 일도 있다는 걸 자신은 왜 모르고 있었을까.
=쿨쩍. 그래서 그분을 따라가려고 하는 거야.=
=누님…….=
=그래도 당장은 못가. 계약한 납품 건도 있고 가게도 정리해야 하니까.=
정리한다 해도 며칠 안 걸릴 거라서 그사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러 왔는데 설마 새벽에 마을을 떠났다니.
코끝을 빨갛게 물들인 채 훌쩍이는 유르파의 모습에 칸트위는 심사가 굉장히 복잡해졌다.
누님에게 환인 님의 행선지를 알려드려도 괜찮나? 그분은 무려 상급 영혼사님이다. 만약 누님이 환인 님을 쫓아가 폐를 끼친다면 누님에게도 불행이 되고 환인 님께도…….
‘……아니, 환인 님이라면 누님 정도는 한 손으로 휘어잡으실 테니 상관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분께 더 낫지 않나?’
비록 누님이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라지만 흡정족의 수명은 약 270년. 누님의 나이는 올해 57살이지만 느리게 늙어가는 종족 특성상 늙었다곤 못하는 나이다.
거기다 누님은 무려 6급 비술사이자 숙련된 마도기구 제작자.
환인 님의 여정에 도움이 되면 됐지 안될 리 없다.
잠시 생각하던 칸트위는 쉬어 비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누님. 저한테 숙취 해소 비술을 걸어주시면 좋은 걸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은 거 아니면 숙취 5배 저주를 걸 거야.=
무시무시한 협박에 식은땀을 흘린 칸트위는 유르파의 푸른빛이 어른거리는 손짓에 뇌를 곤죽으로 만들고 두개골을 쪼개려 하던 숙취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좀 살 거 같군.
=환인 님은 아마도 여기에 가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뭐니. 루슬란 장원? 여기 소개해드렸어?=
=예. 하지만 그분의 성정을 생각해보신다면…… 다른 곳을 자리 잡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상관없어. 파르히스트에만 계시면 찾기는 쉬우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 출발해도 환인 님을 쫓아가긴 어려울 겁니다. 그분도, 그분의 시종 분도 쿠에를 탔으니까요. 차라리 여기서 정리할 거 다 정리한 뒤에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뒤쫓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럴게. 그리됐으니까 주위에 이야기 좀 퍼트려주겠니? 가게 상품 50% 일괄 할인에 들어갈 거라고.=
=허. 그 가격이면 그냥 제가 다 사겠습니다.=
=그러겠니? 그럼 그렇게 해. 대신 되팔이 짓은 적당히 해라?=
=설마 제가 마을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겠습니까. 그보다.=
마악 방을 나가려던 유르파는 칸트위의 강조에 그를 돌아보았다.
=누님이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게 됐는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누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분입니다. 누님의 욕심으로 그분의 앞길을 막는 일은 부디 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남자가 큰일을 하려는데 막으면 그게 여자니? 그런 년은 보지 구멍을 콱 막아서 애 못 싸지르게 해야지.=
=쿨럭.=
핏줄을 끊어야 한다는 적나라한 말에 사레들려 기침하던 칸트위는 빗자루를 타고 저택을 빠져나가 마을로 날아가는 유르파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환인 님. 부디 누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 기도를 올리던 칸트위도, 유르파도 생각하지 못한게 있었으니.
환인은 평소 흑회색 가죽 재킷에 달린 후드를 쓰며 이실리테를 대동했고 녹색 쿠에를 타고다닌다는 사실을 유르파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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