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132 카턴 마을
* * *
흡정족???.
니오네브레스Nionevress의 수많은 인간형 종족 중 소수 종족에 해당하는 이 사람들의 특징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물과 남자의 정액 혹은 여자의 애액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흡정족의 피는 밤하늘처럼 까만색이며 혈액의 색 탓에 성기의 점막과 유두 및 유륜, 입술 등도 검은색을 띤다.
그리고 성적 흥분이 일정 이상이 되면 혈액의 색이 변화하며 푸른색을 띠게 되고 이는 머리카락과 점막의 색상 변화를 가져온다.
즉, 성행위 도중 체모의 색이 변화했다는 것은 흡정족이 굉장히 흥분했다는 뜻이며 체모의 색이 다시 한차례 변화해 하얀색이 되면 정기도 배부르게 먹어 무척 만족했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백화白化한 흡정족은 파트너에게 무궁한 존경과 흠모를 가지게 되는데…….
=이것도 가져가. 요즘 종족 연합 주도에서 유행하는 만년필이라는 건데 필압 조절 기능이랑 잉크 생성 기능하고 내구 강화 기능을 붙여서 쓸만할 거야. 아, 이것도, 그리고 이것도. 으응! 자긴 미궁도 들어갈 거라고 했지? 그럼 이것들도 필요하겠네.=
유르파는 노인의 백발이 아니라 알비노의 백발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내부 공간의 폭이 10m, 높이는 7m가량 되는 대용량 아공간 가방에 마도구점의 진열대에 올려진 상품 전부를 쓸어 담는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가게 안을 바삐 돌아다니는 유르파를 묵묵히 지켜보던 환인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유르파.”
=응. 자기는 더 필요한 거 없어? 말만 해. 내가 구할 수 있는 건 다 구해줄게. 이래 봬도 재산이 꽤 많거든? 웬만한 건 전부 구해줄 수 있…….=
“유르파. 전 기둥서방이 아닙니다.”
=……어?=
담담한 목소리에 유르파가 움찔하면서 손을 멈추고 환인을 돌아본다.
“당신과 관계를 맺은 이유에 대가가 어느 정도 지분을 차지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안은 것은 그보다 당신이 맛있어서였습니다.”
적나라한 이야기에 유르파의 하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체질 개선 방법? 지금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제 노력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자신도 있습니다.”
유르파의 갸름한 턱을 살짝 잡고 들어 올리며 키스하는 각도로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말한다.
“당신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대가가 무엇이었든 잠자리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 말이 거짓 같습니까?”
=아, 아니…….=
“그런데 당신은 이런 물질적인 것을 안겨주어 절 기둥서방 취급하려 하는군요. 슬픕니다.”
=그, 아,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라 난 그냥 자기가 좋아서, 자기한테 뭐라도 선물을 주고 싶어서…….=
“그렇다면 그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턱을 놓아주고 떨어진 환인이 살짝 팔을 벌리자 유르파의 눈이 위험하게 흔들렸다. 눈동자만큼이나 그녀의 마음도 흔들렸다.
유르파는 환인의 가슴에 뛰어들어 그의 탄탄한 가슴에 이마를 대고 중얼거렸다.
=나, 평생…… 자기를 잊지 못할 거야…….=
맞닿은 가슴으로 콩닥거리는 유르파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잊으십시오.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기억해봤자 당신만 힘들 뿐이니까요.”
귓가에 속삭인 환인의 이야기에 유르파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가 떠나가는 것도 붙잡지 못할 만큼 멍해졌다.
오늘 이후로 그를 못 본다고? 평생?
……난 그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니, 없다.
뒤늦게 환인이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르파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
유르파는 흡정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격언을 떠올렸다.
자신을 하얗게 물들인 상대는 하늘이 찍어준 인연이다. 그 혹은 그녀를 놓치면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볼 것이다.
울퉁불퉁 질이 좋지 않은 창문을 통해 노르스름한 햇살이 들어와 자신을 비춘다.
멍하니 노랗게 물든 창문을 응시하던 유르파는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마도구점을 나온 환인은 만년필 마도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조금 아깝긴 하군. 골라서 몇 개만 받을 걸 그랬나.’
유르파 회심의 역작이라고 하는 초대용량 아공간 가방(10m*10m*7m)만 해도 미간에 힘이 들어가는 가격대의 물건이었다.
아공간 가방의 경우 가로세로 높이를 전부 곱한 수치가 기본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추가되는 옵션에 따라 옵션별로 가격이 5%에서 16% 더해지거나 곱해진다.
유르파의 가방은 기본 700 금화에 방수와 주인 인식, 도난방지 옵션, 무게 감소 70%가 붙었으니 2000 금화는 가뿐히 넘을 터.
그 돈이면 주도에서도 적잖이 호화로운 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이니 아쉬움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제저녁, 칸트위에게 듣기로 흡정족은 백화가 끝나면 이성을 되찾는다고 했다.
백화 때의 감정은 조금 남겠지만, 이성이 돌아온 뒤 모든 재산을 넘겨줬다는 걸 깨닫게 되면 문제가 생겨도 틀림없이 생긴다.
‘탤런트 개발과 단련법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그뿐만이 아니다. 5시간 동안 유르파를 품에 안고 굴린 덕분에 원기 흡수 능력을 단단히 테스트해볼 수 있었다.
성행위에 소비한 정력과 체력은 핏빛 위상석으로 회복했고 회복에 사용한 칼로리는 상급 회복 물약으로 보충했다.
소진한 원기는 유르파에게서 흡수했는데 그 때문에 원기 회복 물약은 유르파가 다 마셨다.
아니, 대부분의 물약을 유르파가 다 마셨다.
수십 번의 절정으로 허비된 체력 보충하고 수천, 수만 회의 삽입으로 헐어버린 음부를 회복하기 위해 회복 물약을 거의 다 유르파가 마시고 몸에 뿌린 것.
회복 물약을 성기에 발라서 삽입하는 감각은 굉장히 독특했다. 질벽이 지렁이처럼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고 할까.
그리고 원기 흡수를 계속 쓴 탓에 4시간이 지났을 무렵 훈기의 잔량이 50%까지 내려갔었는데, 한 병에 금화 수십 장이나 하는 위상력 보조 물약을 마신 환인은 훈기는 위상력과 관계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자를 안는 것 외에 인위적인 회복 방법이 없는 것은 아쉽군.’
그보다 훈기와 한기는 대체 뭘까.
영혼과 관련된 힘이라는 건 이해했는데 이 세계의 초자연적인 에너지는 위상력이라고 알려져 있다.
모든 에너지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위상력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훈기는 위상력이 아니다.
“…….”
아무튼, 그렇게 교접을 시작하고 5시간이 지났을 때 남은 물약은 회복이 17개 중 4개, 원기는 19개 중 0개, 위상력 보조는 6개 중 5개였다.
5시간 동안 대략 82골드(위상력 보조 물약이 상급이어서 1병에 50금화였다), 80억이 넘는 가치의 물약을 퍼마신 것.
그 정도쯤은 그녀의 전 재산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이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다. 유르파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야 인생 처음 백화를 경험했는걸! 자긴 아까워?=
내 것도 아닌데 아까울 리가. 아까웠다면 상급 위상력 보조 물약을 마시지 않고 팔았을 거다.
‘어쨌든 원기 흡수와 방출이 섹스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안 것도 수확이겠군.’
행위 도중에 유르파가 귀신 들린 것처럼 웅얼거린 말을 취합해보면 원기를 흡수당할 때는 원기를 빨린 자리에 쾌감이 몰아치며 차오르는 느낌이어서 미칠 것 같았고, 원기를 주입 당할 때는 밑을 꽉 채우는 동시에 명치도 꽉 채우는 감각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던가.
끝내는 엉덩이만 치켜든 자세로 구멍에서 크림 같은 걸쭉한 정액을 흘리며 10분 동안 정신을 못 차렸을 정도였으니…….
“…….”
유르파의 우물거리는듯한 독특한 속살을 떠올린 환인은 가끔 그녀가 생각날 것 같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변의 빈 벤치에 앉아 책자를 펼쳤다.
‘음…….’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문 용어가 다수 보였지만 대충 앞뒤 내용에서 유추해보면 그 뜻은 명확했으니까.
그녀에게서 선물 받은 충전식 펜pen 마도구를 꺼내 한글로 해석과 주석을 달며 차근차근 읽어나간다.
두 권 합쳐서 약 80장 정도.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읽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펜을 안주머니 포켓에 넣고 다시 한차례 검토한다.
‘체질이 발동할 때의 감각을 느끼는 게 먼저. 그리고 본질이 어떤지 감을 잡았다면 그때부터 여러 번 같은 상황을 반복해 그 감을 더욱 명확하게 느껴야 한다……고.’
이를테면 사고로 인해 초기화된 근육의 재활 운동과 비슷하다.
그리고 탤런트 훈련은…….
‘약한 독을 꾸준히 먹어 독에 대한 면역력을 늘리는 것과 비슷하군.’
책에 달린 주석에는 너무 과도한 훈련은 금물이라고 나와 있었다.
탤런트는 신이 주신 선물, 체질은 타고난 육체적 능력이기에 너무 혹사하면 몸의 밸런스와 신체리듬이 망가진다고 말이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이상 증상과 어떻게 휴식해야 할지 등도 적혀있었기에 환인은 느긋하게 두 권의 책자를 탐독해나갔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아이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백색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얼마나 책을 읽었을까.
퍼더더덕
요란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녹색 덩어리가 바로 앞에 떨어져 내렸다.
비상식량이다.
쿠엣!
“너 혼자 온 거냐.”
쿠으응. 큐삣.
배고픈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아.
칭얼거리듯이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는 비상식량의 행동에 환인은 그제야 점심을 걸렀다는 걸 깨달았다.
비상식량은 자신이 보이지 않으니 점심도 안 먹고 찾아다녔던 것.
“미안하다. 밥시간인걸 깜빡했다.”
쿠에~.
“음. 저택 사람들은 이미 식사했을 테니 밖에서…… 응?”
쿠엣. 쿠엥엑! 쿠으으!
“……안 먹고 기다리고 있다고? 미안한 짓을 했군.”
책을 접고 훌쩍, 비상식량의 등에 올라탄 환인은 발꿈치로 배를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가자.”
쿠엣~!
약간 늦은 점심을 해결한 환인은 별채로 돌아와 체질 개선법을 어떻게 시도해볼 수 없을까 고민했다.
탤런트 훈련은 일단 체질의 발동을 감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체질이 발동하는 것을 감지하려면 체질을 계속 자극해야 하는데 책에서는 비폭력적인 법술이나 비술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나와 있었다.
그 방법도 제시하고 있었는데, 술법사를 고용해서 약한 술법을 일부러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따라 할 생각은 없는 환인이었다.
‘숨겨둔 비수가 될 수 있는 힘인 만큼 아는 사람이 최대한 적게 해야 한다.’
대신 사용할 떠오르는 몇 가지 방법을 떠올렸지만, 하나씩 하자가 있어 내키지 않는 방법들 뿐이다.
싸게는 열은화 몇 장부터 비싸게는 금화 단위의 공격형 마도기를 구매해서 자신에게 쓰는 것.
위상력이 깃든 각종 약초나 물약을 마시는 것.
등급이 낮은 미궁에서 법술을 쓰는 적을 상대하는 것.
셋 중에는 특정 상태이상, 멀미나 구역질이나 방향감각 상실 등의 저주 마도기(멀미 유발 완드8열은화)를 쓰는게 여러 면에서 안전하지만 가장 돈이 많이 든다.
기약 없이 금화를 퍼부어야 하는 셈이다.
두 번째는 신전에서 제조한 범용 하급 물약(1은화. 개당)을 마시는 것은 마도기를 쓰는 것보다는 저렴하지만, 물약 중독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체질을 자극하는 위상력의 양이 적어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마지막은 가장 위험하지만 가장 돈이 덜 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등급이 낮은 미궁에서 법술을 쓰는 이형종을 찾는 것.
일단 그런 기술을 쓰는 이형종이 나오는 미궁을 찾는 것도 돈과 시간이 들고 이실리테와 비상식량이 있다곤 해도 이형종에게 공격받는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빛이 닿지 않는 미궁의 비명 괴물이 있긴 한데.’
마비를 일으키는 비명이라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고 광역 공격이어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환인은 왼팔에 시선을 주었다.
마에스티그 마을에서 떠난 뒤 2개가 늘어 42개가 된 영혼 구슬이 어울리고 맞물리며 빛의 건틀릿 같은 형상을 만들기 시작하고 있다.
“…….”
잠시 왼팔을 바라보던 환인은 영혼 폭발 1발을 장전한 뒤 영롱하게 빛나는듯한 영혼 폭발 구슬을 응시했다.
이전에는 그저 하얀 아지랑이가 휘감겨있던 작은 구슬이었는데 지금은 투명한 유리구슬 속에 아지랑이가 갇힌 듯한 형태로 변해있었다.
능력이 강해지며 기술도 강해진 여파인가.
아무튼 훈기는 위상력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은 훈기를 사용하는 영혼 기술도 위상력과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내 체질이 정말 ‘위상력’만 흘려내는 체질일까? 유르파의 정기 흡수도 막아낸 체질이 아닌가. 유르파가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은? 미궁의 정신 침해가 위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게 맞긴 한 건가?
‘실험은…… 내 몸으로 할 수밖에 없겠지.’
환인은 깨지거나 찢어져서는 안 될 소지품을 대청마루에 올려놓고 셔츠도 벗어놓은 뒤 만약을 위한 중급 회복 물약을 그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상의를 탈의한 뒤 바지 차림으로 마당에 내려섰다.
꾸우?
“다친다. 가까이 오지 마라.”
가까이 다가오려는 비상식량을 물린 환인은 이때까지 경험했던 가장 큰 고통, 칼날 멧돼지 영혼을 강령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후우, 긴장을 가다듬은 뒤 영혼 구슬을 제자리에서 폭발시켰다.
콰광
쿠엣!?
친구가 자해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 달려온 비상식량이 두 날개로 친구를 감싸고 쿠삐삐 거렸다.
“괜찮다. 실험할 게 있어서 그러는 것뿐이다.”
쿠우…….
“괜찮으니 물러나 있어라.”
크힝.
비상식량을 밀어낸 환인은 뼈가 삐걱거리는 것을 느끼며 폭발의 흔적이 새겨진 땅을 살폈다. 그리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몸 상태를 살피고 결론을 내렸다.
‘체질이 영혼 기술에도 효과를 발휘하는군.’
영혼 폭발의 위력은 제대로 맞으면 3급 마수의 가죽도 벗겨버리고 찢어버리는 위력이다.
그때가 영혼 구슬이 대략 30개 즈음, 레힐 근방을 여행할 때였으니 지금은 위력도 더 늘어났을 터.
자신의 몸뚱이라면 살이 터지고 피투성이가 되어야 할 텐데 30m 높이에서 물에 전면 입수한 정도의 충격뿐이니 위력이 감소한 것은 확실하다.
‘대충 피해가 60%가량 감소한 건가.’
어쨌든 돈도 안 들고 위험도도 낮은 체질 자극 방법을 찾아냈다. 고통쯤이야 강해지기 위해서는 감내할 수 있다.
다만 연이어 쓰지는 못 할 일이다. 핏빛 위상석으로 몸을 회복시키면서 천천히 해나가야겠지.
그때 본채 쪽에서 소란이 일더니 칸트위가 무기를 꼬나쥔 하인, 하녀들과 우르르 달려왔다.
=환인 님! 괜찮으십니까?!=
“예. 무슨 일이십니까.”
=……어, 방금 폭음이 들려서…… 그, 무슨 일이었습니까?=
영혼 폭발의 소리에 자신이 공격받는 줄 알고 달려왔다는 말에 환인이 웃으면서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잠시 훈련한다는 것이 민폐를 끼쳤군요.”
=어헛, 민폐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그, 괜찮으신 거지요?=
“예. 별일 아니니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칸트위는 하인, 하녀들을 돌려보내고 환인의 근처를 서성였다.
옷과 소지품을 챙긴 환인은 그런 칸트위에게 작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묻고 싶으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환인의 부드러운 태도에 용기를 얻은 칸트위는 누가 지켜보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세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잔뜩 낮춘 목소리로 조심스레 질문했다.
=환인 님. 그…… 있지 않습니까. 프리솔드 사도의 막내…….=
“예.”
힐끔, 영혼사님의 안색을 살폈지만 언짢아하시거나 불쾌해하시는 감정이 보이지 않았기에 칸트위는 한층 용기를 내서 물었다.
=그 막내는… 잘, 했는지. 그게 조금 궁금해서 말입니다.=
“에인트 씨는 미련과 원한 없이 성불했습니다. 그전까지 부모님과 형제 누이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빌었고요.”
아! 작게 탄성을 지른 칸트위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투로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손수건을 들어 얼굴과 머리에 난 식은땀을 닦았다.
=에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이지요. 사내로 태어났으면 좀 숫기를 챙기고 들을 것은 챙겨 듣고 말 것은 말아야지…….=
“제가 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아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잘못이라면 못된 패거리들에게 끌려다니다 죄를 저지르고 이실직고도 못한 채 어정거린 에인트놈 잘못이지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사도이신 프리솔드 씨는 사도직을 내려놓고 파르히스트로 귀성하려 한다고 말입니다.”
=못난 자식이 가장 신경 쓰이는 법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첫째인 프락탈이나 딸년들은 다들 제 앞가림 잘했는데 유독 그 녀석만 부모 속을 썩였고 결국은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니…….=
마저 옷을 챙겨입은 환인은 칸트위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었다.
며칠간 그에게 대접받은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금화에 가까울 것이다. 그 사례라고 하면 된다.
“적당한 때를 봐서 프리솔드 씨에게 귀띔해드리십시오. 당신 자녀분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성불해 신의 정원에 들었다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불량배 넷의 혼도 신의 정원에 들어섰는지 궁금하십니까?”
웃고 있지만 웃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미소, 서늘한 목소리에 칸트위는 보이지 않는 손에 심장이 잡힌 듯한 두려움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들은 저지른 만큼의 벌을 받았습니다.”
=예. 예.=
환인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린 칸트위는 환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뵀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분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자신의 판단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느낀 칸트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만약 그때 그를 자기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면? 마을 여관에서 머무르다 말썽에 휩싸이기라도 했다면?
생각만 해도 두려움에 식은땀이 나고 침이 넘어가는 칸트위였다.
[유르파=익스티나 백화ve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