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33화 (133/813)

〈 133화 〉 129 카턴 마을

* * *

환인은 발광을 멈춘 여자 영혼을 데리고…… 아니, 끌고 웅성거리는 강변을 벗어나 별채로 돌아왔다.

그리고 별채에서 조금 떨어진 대추나무로 여자 영혼을 이끌었다.

근래에 들어 알게 된 거지만 몇몇 식물이나 장소에서 훈기, 그리고 한기를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 대추나무는 양기를 상징한다. 이것은 대추나무의 생김새나 자생지 같은 것을 이유로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 내려오는 토속 신앙적인 면이 강한 내용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환인은 그런 대추나무에서 미약한 훈기를 느꼈다.

대추나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광장이나 거리에서도 조금 탁하지만 약한 훈기를 느꼈고 대추, 석류, 감, 살구, 보리수나무, 민들레, 은방울꽃, 백합, 해바라기 같은 식물들도 제각기 다른 느낌의 아주 약한 훈기를 내뿜는 걸 느꼈다.

반대로 강이나 호숫가, 버드나무, 은행나무, 대나무에서는 한기를 느꼈다.

아무튼, 훈기가 영혼에게 양?적인 힘을 준다면 한기는 그 반대 작용을 할 게 당연한 일.

여자 영혼이 대추나무 근처에 있다 보면 한기가 조금 빠지지 않을까 싶어 데려온 것.

“…….”

환인은 울다가 너무 지쳐서 탈진한 것처럼 늘어진 여자 영혼을 자세히 살핀다.

「…….」

사람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영체의 색은 여전히 음침한 흑회색인 여자 영혼은 텅 빈 눈으로 밤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소 보아온 영혼들은 다들 복장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살해당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영혼은 알몸이다.

평범하게 노환으로 자연사한 사람은 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죽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영체가 변화하며 옷을 입은 모습으로 바뀌는 거겠지.’

그런데 여자 영혼의 복장은 걸레 같은 복장이었다.

찢어져 젖무덤도, 허벅지 사이 음모와 골짜기도 노출한 상태.

더욱이 복장은 평범한 일상복이라기보다 여행복,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전투를 상정한 튼튼한 가죽옷이었다.

차림새가 주는 정보에 눈을 가늘게 떴던 환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여자 영혼에게 말을 걸었다.

“제 말이 들립니까.”

「…….」

“당신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

“대답하실 수 있다면 대답을…….”

「…….」

환인은 여러 번 여자 영혼에게 말을 던졌지만 대답은커녕 반응도 볼 수 없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차단한 모습.

“흠…….”

소통이 되어야 할 텐데.

이때까지 족히 수백에 가까운 영혼을 보아온 환인이다.

그중 특이한 영혼이라면 류히의 자매인 루아의 무색투명한 아우라, 혼재, 그리고 아베트의 푸른 영혼, 마지막으로 눈앞의 검은 영혼 네 종류를 꼽을 수 있다.

루아와 율캄 혼재는 멋모르고 그냥 보냈지만, 아베트는 정화된 이후 영혼 소통이라는 힘을 주고 사라졌다.

그 때문에 눈앞의 검은 영혼을 성불시키면 어떠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증이 치미는 환인이었다.

“이실리테. 넌 들어가서 쉬어라.”

=아니에요. 주인님이 일어나계시는데 어떻게 제가…….=

“넌 내일도 기술을 배우러 가야 하니까. 피곤한 상태로 기술을 제대로 익힐 수 있겠나.”

잠깐 당황했던 이실리테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지장이 생길 것 같으면 들어가겠습니다. 그때까지 주인님 옆에 있고 싶어요.=

“그래.”

이실리테에게서 신경을 끈 환인은 몇 가지 기술로 여자 영혼의 반사 반응을 조사해보았다.

눈앞에 영혼 구슬을 흔들어본다거나 귓가에 소리를 내보고 정신 차리라고 불러도 본다.

‘아무런 반응이 없군.’

이 모든 행위는 강제력이 포함되지 않았다. 강제력을 쓰는 건 꺼려졌기 때문이다. 강에서 여자 영혼을 불렀을 때 약간의 강제력만 썼는데 악령 같은 반응을 보여주었으니까.

게다가 강제력을 재차 사용해서 진정시켜놓은 셈이라 또 건드렸다간 왠지 억누른 만큼…… 아니 그 배로 터져 나올 느낌이다.

‘이렇게 무반응인 것도 강제력으로 진정시켜서인가.’

남은 것은 영기를 주입해보는 것뿐인데 이것도 직접 터치하는 것은 꺼려진다.

잠깐 고민한 환인은 소울 스틱을 쥐고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는 여자 영혼의 가슴에 대고 영기를 아주 미세하게 흘려 넣었다.

파칫­

[마르테, 제발 이러지 마. 왜, 왜 이러는 거야……?!]

[싫어! 마르테, 도와줘! 마르테!!]

[아악……. 아아악!!]

[…….]

[내가, 내가 그렇게 싫었……어…?]

[쿨럭. 널, 널 나보다 더 사랑…… 했는 데…….]

[부담이었……으면, 말하지, 그랬……어…….]

[마르…테, 마르테……. 사랑해. 사랑…… 사…….]

“……!”

물밀듯이 갑작스레 밀려온 기억에 황급히 소울 스틱을 뗀 환인은 이윽고 가슴 가득히 치밀어오는 혐오감에 눈썹을 찡그렸다.

마치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경험을 대리 체험해본 듯한 불쾌한 감각.

그 기억 속에서 여자 영혼은 연인에게 배신당했고, 다섯 명의 남자에게 윤간당했으며, 심장과 배를 난도질당해 살해당했다.

“이실리테. 쓸 것과 피지를 가져와라.”

=네.=

여자 영혼은 풍차 내부 같은 곳에서 모르는 남자들에게 범해지면서도 연인인 갈색 여우 머리를 한 남자를 믿었고 사랑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연인에게 심장이 쥐어뜯기면서도 사랑한다 속삭였다.

=주인님, 가져왔어요.=

하지만 갈색 여우 남자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을 죽이면서 즐거워했고, 흥분했으며, 시체가 된 연인의 내장 위로 허연 정액을 뿌리며 몸을 떨었다.

굳은 얼굴로 피지와 연필을 가져온 이실리테에게 그것을 받아서 환상에서 본 남자 다섯과 갈색 여우 머리 남자의 인상착의를 세심하게 그렸다.

다섯 남자, 다섯 놈은 이 마을에 사는 놈일 가능성이 크다. 여자를 강간하기 전의 옷차림은 이 마을 남자들의 평상복과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마르테라는 여우 머리는 살해당한 여자처럼 높은 확률로 여행자겠지.

그렇게 여섯의 용모파기를 전면과 측면 두 방향으로 모두 그려낸 환인은 여자 영혼이 눈을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강에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이었지만, 지금은 환인을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슬픔과 고통이 섞인 눈을 하고 있다.

“당신이 뭐라고 하든 이 남자를 찾아 당신과 똑같은 몰골로 만들 겁니다.”

「…….」

여자가 불쌍해서는 아니다. 도의를 저버린 철면피의 남자에게 분노해서도 아니다. 애초에 정체를 모르는 여자가 간살당했다고 해서 분노할 만큼 공감 능력이 충분한 환인도 아니고,

이유는 단 하나.

자신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여자의 기억이 쏟아져 들어올 때 환인은 여자의 눈에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대리체험이라 봐도 무방했다.

보편적인 도덕관에 따르면 마르테라는 인호족은 죽을 짓을 저질렀으니 명분도 충분하다.

환인은 더욱 슬픔이 짙어져 가는 여자를 보았다. 느낌상 얼마 안 가 기력을 잃고 성불할 것 같다.

빨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전에 이 다섯 놈부터 잡아 처벌해야겠군요. 이 마을 사람인듯하니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

연인을 죽인다 했을 때는 슬퍼하던 여자 영혼이지만, 자신을 겁탈한 다섯 놈에게는 분노를 느끼는지 표정이 일그러지려 한다.

그런 여자 영혼을 응시하며 이실리테에게 말했다.

“이실리테. 가서 칸트위 씨를 조용히 불러와라. 중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전하면 된다.”

=네.=

재빨리 달려간 이실리테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잠옷 차림의 칸트위를 데리고 돌아왔다.

=환인 님. 이런 야밤에 중요한 용무라니, 무슨 일이십니까?=

“당장이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해서 부득이하게 깨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먼저 칸트위에게 사과한 환인은 담담하지만 약간 분노가 깃든 목소리로 정체를 밝혔다.

“짐작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영혼사입니다.”

=……예, 옛?=

“혹시 웨이포드에서 나타난 영혼사 소식, 들어보셨습니까?”

=헉. 설마 그 영혼사님이 환인 님이셨습니까?!=

“예. 성가신 이목을 피해 평소에는 정체를 숨기고 다닙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우라의 축복을 받아 정체를 숨기기는 쉬웠지요.”

=오, 오오. 세상에 짐승신이시여!=

대청마루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환인의 앞으로 달려간 칸트위가 털썩, 무릎 꿇는다.

=영혼사님을 미처 알아뵙지 못하고 접대에 소홀히 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칸트위 씨의 접대는 과할 만큼 충분했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리 말하며 칸트위를 일으켜 세운 환인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보다 제가 칸트위 씨를 부른 이유, 대강 짐작하셨겠지요.”

=영혼사님께서 저 같은 놈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이 칸트위, 영혼사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힘이 닿는 한 뭐든지 이루어드리겠습니다!=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하얀 후드 로브를 받아 입으면서 말했다.

“이 마을에는 억울하게 죽임당한 처자가 있습니다. 그 처자는 악령화 직전에 있으며 이대로 내버려 둘 경우 혼재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호, 호호호혼재!=

“그 처자의 한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이 마을의 책임자를 만나야겠으니 안내해주십시오.”

=예!=

허리에 단검 벨트를 차고 켈틱 돌도끼도 찬다. 그리고 소울 스틱을 들고 이실리테와 함께 칸트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환인은 칸트위에게 마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초지종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세상에. 우리 마을에 그런 일이…….=

“카턴 마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는 길에 들렀던 도시와 마을에도 영혼의 원한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요즘 애들이 특히 하늘 무서운 줄 모르긴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원…….=

그즈음 마을 시가지에 도달한 환인은 자신과 이실리테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도록 칸트위에게 당부를 부탁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영혼사님의 성불행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아, 거기 호마스!=

환인을 안내하던 칸트위는 때마침 주점 앞에서 또래들과 모여있는 인견족 남자를 불렀다.

=어? 칸트위 아저씨,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세요?=

=지금 영혼사님을 모시고 있으니 허튼소리 말고! 얼른 사도님 집에 가서 영혼사님이 그리 가고 계신다고 전하게!=

=……네?=

=네는 무슨! 얼른 사도님께 달려가서 영혼사님이 그리로 간다고 전하란 말이야!!=

=으헉. 예옛!!=

=그리고 자네들은 각각 레윌과 드리카, 헬문드, 게레이, 엘윕…….=

환인에게 성불행의 혜택을 받은 아홉 명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도 사도??의 집으로 데려오라고 말했다.

=알겠나?! 내 농장에서 서리할 때처럼 쏜살같이 다녀와!=

=네,네!=

=다녀오겠습니닷!=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후다닥 달려가는 마을 청년들을 보며 칸트위는 숨을 헐떡였다.

그는 순박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눈치가 비상한 편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성불행까지 한 환인이 이유 없이 자신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고, 좀 더 이목을 끌어모으길 바라는 것도 알아차렸기에 마을 광장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며 마을 청년들을 닦달했다.

그 덕분에 수십 명이 모여 시끌시끌하던 광장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얀 후드 로브를 코 아래까지 뒤집어쓴 환인과 이실리테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칸트위는 환인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지체해서 죄송합니다. 이쪽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일부는 누군가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는 듯이 황급히 자리를 떴고 또 일부는 멀찍이서 환인의 뒤를 따른다.

늦은 밤, 마을이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악 잠자리에 들려던 카턴 마을의 사도??인 당나귀 인간, 인여족人?? 프리솔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의 소리에 허둥거리며 옷을 갖춰 입으랴, 집안사람들을 깨우랴 부산을 떨었다.

=갑자기 영혼사님이라니! 영혼사님이 이 시간에 오신다니 이게 무슨 소리냔 말이야!=

=헥, 헥. 칸트위 아저씨가 말했어요! 지금, 영혼사님을 모시고 이쪽으로 오고 계신다고요!=

=허이고 참! 이보게 마누라. 애들은 다 깨웠어? 응? 안 일어난다고?! 침대 뒤집어서라도 깨워!=

자신같이 파르히스트에서 파견 나온 일개 관리와 다르게 칸트위의 집안은 카턴 마을과 역사를 함께 한다고 봐도 무방한 마을 터줏대감 중 한 명이다.

평소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챙기고 베품을 자주 하는 성격 덕에 그를 존경하는 마을 사람도 많은 마당에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을 저지를 리 없다.

=사도님, 사도님! 도착했습니다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주던 마을 청년이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친다.

겨우겨우 몸단장을 마친 마누라와 자식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자 백 명은 가뿐히 넘을듯한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

이어서 자신처럼 복장이 조금 후줄근한 칸트위가 보였으며

‘저분이 영혼사님이신가?’

칸트위의 뒤에 서있는 하얀 로브 차림의 두 사람이 눈에 꽂히듯 들어왔다.

두 분 중에 누가 영혼사님이지? 저쪽은 전사의 아우라인데, 그럼 아우라가 없는 분이 영혼사님?

아우라가 없다는 데서 의구심이 든 프리솔드였지만, 간혹 각성했음에도 아우라가 발현되지 않는 이상 체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우라가 없는, 키가 좀 더 큰 쪽을 보며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저…….=

두 명 중 아우라가 없는 쪽이 걸어 나온다.

“카턴 마을의 사도이신 프리솔드 님이십니까.”

중저음에 듣기 좋은 남성의 목소리. 눈치로 그가 영혼사임을 직감한 프리솔드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제가 카턴의 사도, 프리솔드입니다. 성도 파르히스트의 성주이신 펜리 후스티오 파르히스트 7급 호족님을 대리하여 카턴 마을의 대소사를 맡고 있습니다.=

“늦은 밤 갑작스러운 방문을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영혼사님께서 이렇게 방문하셨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테니 오히려 제가 사죄를 드려야지요!=

대도시인 파르히스트에서 교육을 받고 카턴 마을에 부임해온 지도 어느덧 40년째다. 그가 배운 것 중에는 영혼사를 사칭하는 인물을 대하는 지침도 있다.

비록 카턴에서 아내를 얻고 자식까지 보며 도시물이 거의 다 빠지고 카턴에 동화되었다곤 해도, 사도로서 의무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당연히 아우라도 없는 눈앞의 자칭 영혼사를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물론 진짜일 가능성도 있으니 여지를 두고…….

이런 생각을 하던 중인 프리솔드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일이 벌어졌다.

=영혼사님!=

=영, 영혼사님. 헉헉. 부,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흐억. 헉.=

=사도 자네! 혹시 영혼사님께 무례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그럼 큰일 나!=

열다섯 명이 넘는 사람이 우르르 몰려와 일부는 하얀 로브 남자의 옆에 무릎을 털썩 꿇고 일부 나이 많은 노인들이 역정을 내다시피 하며 자신을 나무라는 것이다.

=어, 어르신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이분은 영혼님도 현현시키실 수 있는 명실상부한! 상!! 급!! 영혼사님이란 말일세! 잘못한 게 있다면 어여 빌어!=

마을 어른 한 분의 호통에 프리솔드는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뭐라고요? 상급 영혼사요?

프리솔드는 귓가에 벌떼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왱왱거리고 손끝과 발끝이 차가워지다 못해 감각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상급 영혼사가 어떤 존재인가.

말로만 영혼을 영도하고 수많은 영혼을 안식으로 이끌고 혼재마저도 정화하는 분이다.

호위로 영혼 기사와 영혼 사제들을 데리고 전쟁이나 전염병이 창궐해서 사람들이 떼죽음 당한 곳을 다니시며 영혼의 정화와 선도하시는 분이란 말이다.

상급 영혼사가 방문하면 성도의 성주라해도 직접 나서서 손님으로 맞이할 정도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 가도 용안을 보기 힘들다고 하는 성도급의 성주.

자신도 성도의 학원에서 관리 교육을 수료하고 졸업장을 받는 그 날 딱 한 번 봤을 뿐인 성주!

그런 성주님이 만사 제쳐두고 직접 맞이 하는 사람이 상급 영혼사인데 그런분이 어째서 이 누추한 마을에……?

만약 이후에 이어질 일을 알았다면 프리솔드는 마음 편히 기절해버렸을 테지만, 미래를 보는 눈이 없는 프리솔드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눈앞의 영혼사에게 극히 조심해서 말했다.

=저, 영혼사님……?=

그런데 대답이 없으시다. 게다가 후드를 눌러쓰셔서 보이진 않지만, 머리가 향하는 쪽이 어쩐지 자신이 아니라 뒤쪽을 보는 것 같은데…….

뒤에 뭐가 있지?

……마누라하고 자식들?

“저놈을 잡아라.”

=…?!=

프리솔드는 하얀 로브의 전사가 벼락처럼 튀어나와 자신의 막내 아들의 멱살을 잡고 인정사정없이 땅에 내동댕이치는 모습에 헛숨을 삼켰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주위가 조용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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