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6 카턴 마을
* * *
주렴을 걷으며 등장한 여자의 옷차림은 상당히 선정적이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새카만 튜브탑 원피스가 한국식으로 G컵은 될 것 같은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육감적으로 발달한 몸을 유혹적으로 휘감고 있다.
어깨를 살짝 가리는 반투명 망사타입의 숄, 팔꿈치 위로 올라오는 검은색 실크 장갑, 그리고 하얀 얼굴에 피처럼 빨간 눈동자, 스모키한 화장을 하고 까만 루즈를 바른 입술.
마지막으로 둥그렇고 적당히 뾰족하게 솟은 위치 햇witch hat과 까만색의 하이힐까지.
‘정말 마녀인가.’
선입견이 주는 추측이지만 지구와 이 세상의 공통점을 생각해본다면 억측은 아닐 것이다.
환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약간의 퇴폐미가 느껴지는 여자가 나른한 목소리로 웃음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아기 꽃돼지 목소리에 이끌려 나왔더니, 손님을 데려왔구나?=
=하하……. 누님, 오랜만입니다.=
=흐흥. 오랜만에 인사하러 왔나 싶더니. 손님이 아니었으면 오지 않았을 듯한 말투인걸.=
=그럴리가요. 저도 나름대로 바쁜 몸이지 않습니까.=
여자, 유르파의 짓궂은 힐난에 칸트위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러자 유르파가 카운터 한쪽에 팔을 기대며 나른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 바쁘겠지. 파르히스트 대축제 준비기간이라 네 소년 같은 모험심을 채워줄 여행자들이 많이 오갈 테니 말이야.=
=크흠. 아무튼! 언제까지 아기 꽃돼지라고 부르실 겁니까. 저도 이제 나이를 먹었단 말입니다.=
=아기 꽃돼지를 아기 꽃돼지라 하지 않으면 누굴 꽃돼지라 할까.=
유르파의 농에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산리가 킥킥 웃고 칸트위는 조금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실례되지 않을 수준으로 유르파를 살펴본 환인은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칸트위는 올해 마흔에 다다른 나이라고 들었는데, 그가 누님이라고 할 정도라면…. 쉰 살은 족히 넘지 않았을까. 그런데 겉으로는 20대 중후반 이상으로 안 보인다.
‘이 세상의 여자들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군.’
똑같은 40년을 살았어도 이쪽 여성의 노화가 느린 느낌이라고 할까.
귀가 뾰족하지 않은 것을 보면 플뢰는 아니고. 어떤 장수 종족일까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유르파를 휘감고 있는 아우라를 살폈다.
통통튀는 이퀼라이저 같은 아우라가 굉장히 진하다.
‘확실히 6급 아우라군. 계통은 역시 부여겠지.’
저보다 진한 농도는 웨이포드의 상급 무관장, 하이에른=조드 밖에 못 봤고 웨이포드 비술사 연합에서 본 인토족 부여술사도 저보다는 옅었다.
=누님의 나이에 비하면 어린아이나 다름없다지만 그래도 사회적 위치가 있지 않습니까…….=
=너어. 내가 나이 이야기하지 말랬지?=
유르파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팅 동전 소리와 함께 무지개색 작은 별똥별이 포물선을 그리며 칸트위의 이마를 톡 때린다.
=윽, 아기 꽃돼지라고 앞으로 부르지 않겠다면 그러겠습니다.=
=아 그래. 다음 상공회의 때 보자꾸나. 그때는 지갑에 돈이 별로 없을 거 같으니 알아두렴.=
=엇. 아니, 저기…….=
=됐고.=
쿡쿡 웃으며 가볍게 손을 저은 유르파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다. 그 까만 입술에 살짝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환인도 똑같은 미소를 띄워주었다.
=그래서, 당돌한 말을 한 꼬마는 누구일까?=
“평범한 여행자입니다. 그보다는 진상들에게 시달려서 학을 뗀 심정은 이해하지만, 평범한 고객마저 악질 소비자 취급하는 것은 어떨까요.”
=듣기 싫으면 사지 말던가? 우리 가게 규칙은 거기 아기 꽃돼지랑 우리 아기 고양이한테서 들었을 텐데.=
아니꼬우면 꺼지라는 뜻이 담긴 말과 다르게 마녀 같은 여자의 눈매와 입가에는 재밌다는 미소가 떠 있었다.
“규칙은 마을 사람을 대동해 구매하는 사람까지 손님 취급이 아니었습니까? 당신 정도나 되는 직업자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푸후훗. 정말 맹랑한걸. 내가 무섭지도 않니?=
환인은 그 질문에 담담한 눈빛으로 유르파를 살폈다. 무섭다니, 뭐가 말인가?
=흐응? 꼬마 너…… 재미있는 체질인걸.=
“뭔가 하셨습니까.”
=위축되라고 위상력을 살짝 뿌렸는데도 아무렇지 않잖니. 위상력을 흘려내는 체질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아…… 호기심이 치솟는걸. 잠깐 안으로 들어와서 이야기하다 가지 않으련?=
나른한 목소리, 행동이나 몸짓 손짓 하나하나에 농염한 색기가 묻어난다.
적의는 느껴지지 않고 오직 호기심과 관심만 두드러진다. 거기에 더해 성적인 욕망도 약간.
유르파의 의도를 읽은 환인은 그녀의 아랫배 속 영기를 힐끔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안됩니다. 환인 님, 유르파 누님은 흡정족입니다. 들어갔다간 정기를 빨릴 겁니다.=
칸트위의 정색에 환인이 그를 돌아보았고 유르파는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그리 말하면 마치 내가 남자를 유혹해 정기만 빨아먹는 마물처럼 들리잖니.=
=며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만드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환인 님은 제 손님이니 군침 좀 그만 삼키세요.=
=흐흥. 들을 건 다 들었으니 선택은 꼬마에게 맡길까? 어떻게 생각해?=
유르파와 칸트위, 거기에 산리의 시선도 꽂힌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주신다고 약속하면 초대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환인입니다.”
=후후. 결정 났네? 그럼 아기 꽃돼지는 그만 돌아가고 꼬마는 날 따라오렴.=
=하아…….=
선입견만큼이나 어울리는 마이페이스 적인 성격이다.
환인은 걱정하는 칸트위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살짝 목례한 뒤 유르파를 뒤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흐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유르파의 탄력 있어 보이는 엉덩이는 남자를 유혹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살랑거렸다.
의도해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골반과 고관절, 그리고 신고 있는 하이힐 때문에 워킹이 저리 변한 거겠지.
=여기란다.=
언뜻언뜻 드러나는 엉덩이의 굴곡을 보며 따라가던 환인은 그녀가 들어간 방으로 발을 들인 순간 적잖이 놀랐다.
‘병원 연구실 같군.’
아공간으로 공간 확장이 이루어져 있다거나 음침한 마법사나 마녀처럼 방에 온갖 실험물과 책으로 엉망일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약 40평 정도 되는 방은 대학 실험실, 혹은 병원 연구실처럼 깔끔했다.
벽과 천장은 밝은 회색의 대리석으로 마감되어있고 바닥도 한 톤 어두운 회색 석조.
한쪽 벽에는 몇 개의 책장이 나란히 서서 수백 권의 책을 품고 있었으며 방의 절반을 채우는 여러 크기의 백색 탁자에는 각종 시료로 채워진 실린더, 플라스크, 시험관대와 링스텐드, 버너, 삼발이, 클램프, 각종 도가니와 사발 등이 정리되어 있었다.
=거기 편히 앉으렴.=
그리 말하며 위치 햇과 숄을 벗어 벽의 옷걸이에 걸어둔 유르파는 벽 한쪽에 세워진 고딕스러운 찬장으로 다가가 찻잔과 찻주전자를 꺼낸다.
환인은 유르파가 가리킨 자주색 소파 두 개와 탁자를 보았지만 앉지 않고 연구실 특유의 냄새로 가득 찬 주위를 둘러본다.
‘이건…… 위상석을 갈아서 만든 가루인가.’
손대지는 않고 작은 시험관 속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의 가루를 구경하고 있으니 유르파의 키득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하니?=
그쪽을 돌아보자 원피스만큼이나 새카맣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트린 유르파가 쟁반에 차와 찻잔을 담아오고 있었다.
눈빛에 귀여운 아이를 보는 듯 감정이 듬뿍 묻어나는 게 보였지만, 환인은 그런 것보다 유르파의 손가락 끝에 둥둥 떠 있는 쟁반 쪽에 더 눈길이 간다.
“익숙한 풍경을 의외의 장소에서 보게 되어 그렇습니다.”
=흐음~? 부여 술사의 공방은 흔히 볼 수 없을 텐데.=
소파에 앉으니 유르파도 같이 앉으며 자그마한 티 테이블에 찻잔을 세팅하는데, 손가락만 까닥이니 찻잔과 차 받침이 둥실 떠서 자리를 찾아간다.
“…….”
영혼 시야를 열어서 줄곧 그 동작을 지켜보고 있지만, 그저 유르파의 몸이 진녹색 색계통으로만 보일 뿐, 색계통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다.
염력 같은 건가? 저런건 배우지 못하는 건가 속으로 생각하는데 허공에 뜬 찻주전자가 기울어지더니 주둥이에서 불그스름한 액체를 쪼르르륵 쏟아낸다.
‘저것도 마도구인가.’
분명 찻잔에서 방금 꺼낸 찻주전자다. 그사이 물도 넣지 않았는데 주둥이에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찻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데 영혼 시야에 보이는 찻물이 약간 선명한 자색계를 띄고 있었다.
정신이나 환각 쪽으로 육체에 영향을 주는 색계통이다.
약초로 분류되는 것 중에 유색 계통을 띄는 것도 있다는 걸 웨이포드에서 배웠다. 강한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 같은 경우도 적색계다.
그렇다고 해도 꺼림칙한 것은 사실.
찻주전자를 응시하는 환인의 귀로 유르파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말이야. 꼬마가 말한 속내는 비술 공방을 말한 게 아니라는 느낌이야. 공방이 아님에도 익숙한 풍경이라니, 그것도 흥미가 가는걸?=
환인의 앞으로 찻잔을 밀어놓는 유르파의 눈에 탐구심이 흐르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걸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도 쉬운 법. 일단 말 돌리기를 시도해본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 약속대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중요한 게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야. 내 눈에는 꼬마가…… 굉장히 독특하게 보인다는 걸 알고 있으려나.=
역시 말 돌리기가 안 통하는군.
노골적으로 대답을 회피하면 보통 사람은 상대가 대답하기 싫어하나보다 하며 주제 변화에 따라오기 마련인데 유르파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겠지요. 전 4대 종족에도, 7대 아인종에도 포함되지 않는 인종이니까요.”
후드 망토의 후드를 걷으며 말하자 환인의 외모를 본 유르파의 눈이 반짝였다.
=어머나. 자칫하면 나랑 같은 종족으로 보일법한 외모인걸.=
“아직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후훗. 그렇겠지. 우리 종족 특징은 이런 입술 색이니까.=
그리 말하며 뽀뽀하듯 장난스레 까만 입술을 내미는 유르파. 검은색 립스틱이나 루즈를 칠한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아무튼, 전이 사고로 꽤 먼 곳에서 왔기에 이 땅의 문화에 약간은 무지한 편입니다. 유르파 씨가 느끼는 위화감은 그것 때문이겠지요.”
=전이 사고?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한 번 대답해드렸으니 저도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만.”
환인의 태연한 대꾸에 유르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점점 더 마음에 드는걸. 후후훗, 꼬마는 당연히 체질에 대해 궁금한 거겠지?=
차 좀 들어보렴, 하고 말을 꺼낸 유르파는 환인이 뭘 궁금해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특이 체질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풀어준다.
세상에는 간혹 위상력의 흐름과 밀접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
그런 사람은 보통 두 가지 특징 중 하나를 갖고 태어나는데, 한쪽은 무의식중에 위상력을 너무 받아들여 일찍 단명하는 쪽이고 다른 한쪽은…….
=꼬마처럼 자신에게 작용하려 하는 위상력의 간섭을 모두 배제하는 체질이란다.=
“그 말은 성술사의 치료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까?”
=네 체질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그렇겠지?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야. 그런 체질인데 어떻게 전이 사고가 일어났는지 말이야.=
유르파의 대답에 환인의 머릿속에 잠들어있던 한 가지 미확인 가설이 제자리를 찾았다.
자신이 미궁의 정신 침해에 당하지 않는 이유, 이 체질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유르파 씨는 부여 술사이지 않습니까. 전이술에도 조예가 있으십니까?”
=물론이지. 이래 봬도 비인가 5급 전이 비술 자격증도 있는걸? 내 목표는 마도기에 전이술을 접목한 전송 마도기를 제작하는 거야.=
“그런 마도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주로 군부나 호족들이 단거리 공간 이동으로 활용한다고 들었다. 단적인 예로 도시 인접 미궁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심부에 전이 마도기를 설치한 뒤 병사들이 교대로 돌아가며 지킨다는 것.
웨이포드의 빛이 닿지 않는 미궁 최심부도 그렇게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고 들었다.
=너는 상당히 영특한듯하니 이야기해주면 알아들을 수 있겠지? 보통의 일반적 전이술은 객체 대상을 지정해 지정 위치의 객체와 교환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그 이유는 공간 전이 좌표 지정과 이동 시의 물질 분해 및 재조립의 안정성 목적이 큰데…….=
이어지는 복잡한 전문 용어의 전이술 작동원리 및 구조 등을 설명해주는 유르파.
환인은 말을 끊지 않고 묵묵히 그녀가 말하는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그렇기에 안전성과 편의성, 빠른 이동이 장점으로 대두되면서 객체 지정방식 전이술이 표준화되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객체 전이가 아닌 공간 전송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객체 지정 전이의 단점은 무게 제약이다. 하지만 공간 전송은 해당 지점의 물질을 통으로 전송하니 무게 제약이 사라진다고 믿는 거다.
허를 찔린 듯 눈을 크게 뜬 유르파가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꼬마는 내가 말한 걸 다 이해했구나?=
“전부는 아닙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했다. 거기다 유르파가 공간 좌표 지정 단계부터 애를 먹고 있다는 것과 그 원인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는 것도.
그리고 유르파가 애를 먹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환인은 과학의 측면에서 접근해 이유를 대강 짐작했다.
=아니야. 내가 보기에 꼬마는 핵심까지 꿰뚫어 봤어. 놀랍네, 꼬마는 이쪽을 정식으로 배운 적 없지?=
“예.”
=대단해…… 정말 대단해. 이 누나에게 살짝 이야기해주지 않을래? 네가 이해한 사견이 어떤지 정말 궁금해.=
환인은 입을 닫았다.
이야기할 생각은 1g도 없다.
행성은 구체이며 행성이 자전하면서 공간 좌표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런 추측을 섣불리 냈다간 그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없다.
이 세계에도 똑똑한 사람이 많다.
특히 술법을 높은 수준으로 다룬다면 수학적 능력이 포함된 뛰어난 지능을 보유 중일 가능성이 크다.
이 세상의 술법은 주로 두 종류로 발현되는데 한쪽은 복잡한 연산과 암기, 수학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행성이란 구체이며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유르파의 반응을 보면 모르는 게 틀림없을 거다.
자신에게는 사소하고 기본적인 지식이지만 이 세상에는 천지가 개벽할 수준의 지식일 수 있다.
그러한 지식이 아귀가 맞아떨어져 공간 전송에 큰 기여를 하게 되면?
전이/전송술 계통 특이점의 시초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겠지.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는 이롭지 못한 일이다.
환인이 말할 생각이 없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유르파가 살살 구슬리기 시작한다.
=만약 네 견해가 나의 연구에 도움 되면 내 마도구점에 있는 몇 가지를 선물로 줄 수 있어. 비싼 건 50금화도 넘는단다?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술법적인 지식도 전수해줄게.=
“금전적인 조건은 끌리지 않지만 지식은 끌리는군요. 하지만 제 견해는 비관련자의 전문성 없는 시점일 뿐입니다.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는 일인데 창피를 사서 당하고 싶진 않습니다.”
=누가 비웃는다고 그러니? 그러지 말고~ 응?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전부 다 해줄게, 응? 응응?=
퇴폐미가 느껴지는 미녀가 나른한 목소리로 애교부리는 모습은 남자 한정으로 뛰어난 심리방벽 해제 효과가 있을 테지만, 그것은 환인과 관계없는 이야기.
“정말 별것 아닌데 그리 재촉하시니 부담감에 오히려 더 말하기 싫어지는군요.”
유르파는 환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일어서려 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재빨리 손을 들었다.
=알았어! 더 안 물어볼게. 어휴, 꼬마는 정말 욕심이 없구나?=
“무난한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의지라고 생각해주시죠. 저라도 금화 수백 장의 값어치를 지닌 술적 지식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훗. 겁쟁이인 건 아니고?=
“…….”
=남자라면 때로는 지를 줄도 알아야지, 꼬리 말고 물러서는 남자는 별로 매력이 없는데~.=
다리를 꼬며 도발하듯 웃는 유르파를 환인이 물끄러미 응시한다.
드르륵
잠시 뒤 탁자를 옆으로 밀어낸 환인이 소파에 앉아있는 유르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다가갔다고 해도 두 발자국 정도지만, 유르파의 앞에 선 환인은 그녀가 앉아있는 의자의 등받이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이한다.
=?!=
반대쪽 어깨를 잡고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무릎을 대면서 그녀와 숨결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바짝 붙었다.
놀라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숨을 흡, 삼키는 유르파.
그 움직임에 수박만큼이나 큰 가슴이 한차례 출렁이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정말 겁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환인의 조용한 질문에 유르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화장안한 ve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