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28화 (128/813)

〈 128화 〉 125 카턴 마을

* * *

루아르다의 공격은 표현 그대로 한 마리 표범 같은 아름다운 강습이었다.

문제라면 환인에게는 올조트 근방의 삼림형 미궁에서 수백 번도 더 받아본 공격이라는 것.

날아들다시피 덮쳐오는 루아르다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주시하던 환인은 희미하게 보이는 루아르다의 두 팔 가드 범위를 읽었다.

‘일반인이라면 막기 까다로울 강습이군.’

두 팔의 가동 범위와 예측 공격 속도를 생각해본다면 어지간한 공격은 저 팔로 걷어내거나 막아내거나 흘려버릴 것이다.

자신을 향해 다이빙하는 동작인 만큼 두 팔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신체 전부.

흡사 타워실드 뒤에 숨은 보병 같은 모양새이며 저 강습의 파훼법은 오직 힘을 한 점에 집중해 팔 째로 꿰뚫는 것뿐이다.

그것을 루아르다도 알고 있는 듯, 이 공격을 너라면 어떻게 막을 거냐고, 할 수 있겠냐고 눈빛으로 묻고 있다.

‘공격 유도가 세 곳, 빈틈이 여섯 곳.’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사람일 때의 이야기다.

환인은 즉시 루아르다의 허점을 포착했고 분석했다.

‘왼팔과 머리 사이 쇄골을 깊게 찌르고 뒤이어 벌어지는 반응에서 명치, 오른쪽 가슴, 복부를 차례로 가격하면 끝.’

허공에서 뒤로 한 바퀴 빙글 돌았다가 땅에 떨어져 추락한 새처럼 부르르 떨게 되겠지.

그러나 육체의 탄력성, 그럭저럭 행동의 틈을 읽는 시야를 보면 어느 정도 실력은 있을 터. 공격받아도 피격 반응을 씹고 노 딜레이로 덮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땐 목과 미간을 찌르고 균형이 비틀리며 훤히 드러난 목을 내려치는 것으로 확실하게 대련은 종료될 것이다.

하지만 이 대련은 이기기 위한 게 아닌, 조인족의 전투를 일부나마 체험해보기 위한 것이다.

‘일단 선취점은 받아 가지.’

푹­

=큭?!=

강습과 동시에 환인의 반응에 따라 발톱을 휘두르려던 루아르다는 섬전 같이 찔러오는 공격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왼쪽 쇄골을 강하게 찍혔다.

충격이 근육을 따라 찌르르 울리며 왼팔이 마비에 빠진다.

‘어떻게!?’

봉을 들었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어깨를 찍히고 있었다. 대체 무슨 기술이기에 동작조차 읽을 수 없었지?

공격을 성공시킨 환인의 눈동자가 고요한 것을 눈치챈 루아르다는 섬뜩함을 느끼곤 즉시 날개를 팍, 펼쳐 급히 뒤로 물러났다.

삽시간에 10m 거리를 벌린 루아르다는 낭패한 표정으로 칸트위와 다른 식객 세 명을 돌아보며 웅얼거린다.

=이거…… 제 패배군요. 날개를 쓰지 않기로 했는데 말입니다.=

씁쓸한 얼굴로 왼쪽 어깨를 주무르는 루아르다에게 환인은 봉을 세우며 대답했다.

“날개도 신체의 일부. 날아오르신 것은 아니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흠…… 그럼 룰을 살짝 변경하지요. 날개로 2m 이상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하하…….=

호흡도, 숨결도 평온한 대답에 루아르다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약 첫 타를 얻어맞은 직후 물러나지 않았다면 신명 나게 얻어터지고 육체로 패배를 선언해야 했겠지.

그리고 방금 공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뒤늦게 이해했다.

봉의 움직임을 자신의 시야로 보기에 선?이 아닌 점으로 움직여 어깨를 찍은 것이다.

눈과 뇌는 선보다 점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환인의 공격은 그런 약점을 노린 것.

=환인 공, 무서운 분이셨군요…….=

루아르다의 중얼거림에 관객들의 표정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알류겔 호수에 인접한 푸헤드 산의 호수갈매기 일족은 무직자라 하더라도 2급 전사, 투사 정도는 가볍게 눌러버리는 실력자들로 유명하다.

루아르다는 그런 호수갈매기 일족이면서 각성까지 한 데다 마을을 나와 무사 수행 중인 증명된 실력자.

그런 사람이 평범한 무직자에게 한 수 무르고 들어가는 태도라니?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루아르다는 첫 일격의 빚을 갚겠다는 일념으로 달려들어 공격을 쏟아붓는다.

돌려차기, 내려차기, 올려차기, 내려찍기, 휘둘러차기.

타다다닥, 터덕, 탁, 딱, 따닥.

‘미친!’

온몸을 돌리고 비틀고 회전하며 물 흐르듯 손발톱, 다리 발톱으로 공격을 퍼붓지만, 환인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하자 루아르다는 기가 차서 호흡이 흐트러질 지경이었다.

1초에 2번, 3번씩 쏟아지는 공격을 가늘기 짝이 없는 봉으로 죄다 쳐내고 흘리지 않는가.

이 사실에 환장하지 않으면 무인?人이 아니다.

자신이라 해도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공격을 전부 막을 자신이 없는데 환인은 그걸 해내고 있었다.

환인은 상단과 하단, 왼쪽과 오른쪽으로 무수하게 쏟아지는 공격을 하나하나 쳐내며 루아르다의 공격을 유심히 살폈다.

‘카포에라와 닮은 점이 많군.’

몸을 빠르게 회전하며 그 가속으로 막강한 타격을 주는 카포에라지만, 살벌함은 카포에라를 넘어간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공격하게 해주는 신체 내구도 증가와 재생 능력, 그리고 손과 발이 맹금류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인에게는 그저 눈요기가 될만한 체술일 뿐.

슬슬 끝낼 시간이다.

루아르다의 몸이 회전하는 축을 읽고 다리가 돌아가는 방향에 봉을 쿵! 내려찍은 환인은 동시에 장대 높이뛰기 하듯 봉을 타고 넘어간다.

퍼벅.

=큭!=

환인의 몸무게가 가해진 봉을 무릎으로 후려친 꼴이 된 루아르다가 작게 신음을 흘린 순간 눈앞에 짓쳐드는 봉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몸을 숙였다.

바우웅­

소름돋는 파공성과 함께 봉이 머리 위를 깃털 한 장 틈을 두고 스쳐 지나간다.

살벌한 소리에 목을 움츠렸던 루아르다는 직후 공중에 뜬 모양새의 환인을 포착했다.

‘기회!’

온몸을 꽈배기처럼 비틀었다가 반동으로 회오리처럼 환인을 올려 찬다.

강철도 긁어버리는 발톱이 칼날 폭풍처럼 환인에게 쇄도해간다. 순간 루아르다는 조금 과한 공격을 펼친 건가 생각했지만…….

퍼버버버벅!

=크허으허걱!!=

그 생각은 1초도 유지하지 못했다.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허공에 떠 있던 환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세를 가볍게 바꾸더니 봉을 무차별로 내지른 것.

문제라면 그 공격이 전부 다리의 관절과 복사근, 서혜부, 허벅지와 오금, 무릎을 가격했다는 점이었다.

회오리처럼 올려 차는 공격은 맥없이 흐트러졌고 루아르다는 구겨진 종이처럼 땅을 나뒹굴었다.

=끄극.=

일어서야 하는데 얻어맞은 관절이 너무 아파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새끼 새처럼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낀 루아르다는 결국 털썩,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환인 씨의 승리네요.=

=음. 두말할 나위 없는 승리군.=

아센과 문더의 선언에 루아르다는 머리가 멍해졌다.

승패가 나뉘는 데 몇 분 걸렸지? 3분도 채 안 걸린 거 같은데. 대련에서 이렇게 맥없이 져본 게 언제였더라.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며 환인의 평온한 얼굴이 하늘을 가렸다.

“괜찮으십니까.”

=끄응. 괜찮소.=

타고난 재생력으로 충격을 해소한 루아르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환인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두 장의 하얀 날개를 펄럭펄럭 크게 떨쳐 흙먼지를 털어낸 루아르다는 충격적인 결과에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하아, 긴 한숨을 내뱉었다.

나름대로 어디 가서 약하다는 소리는 안 들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환인에게 끌려다니기만 한 기분.

루아르다가 복잡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안목은 형편없었나 보오. 환인 공의 무예는 본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 같소.=

“…….”

=본인의 모든 공격이 공의 눈에는 훤히 보인 것 같소만…… 사실인지?=

환인은 대답 없이 살짝 웃음만 지어 보였다.

‘제길. 이제 보니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꼴이었구먼.’

저 손에 들린 게 봉이 아니라 창이었으면 자신은 진작에 산산조각이 났을 터.

쪽팔림을 숨긴 루아르다는 동지를 늘리기 위해 능글맞게 웃으며 다른 식객들을 향해 말했다.

=크흠. 거, 문더 경. 경도 환인 공과 한 번 대련해보심이 어떻소? 아센 경도 괜찮을 것 같소만. 얻을 게 많다는 것을 내 장담하지.=

=전 무인이기 이전에 모험가입니다.=

=저도 질 싸움을 하는 취미는 없어요~.=

=……끄으응.=

=그보다 루아르다 님도 음흉하시네요. 혼자 창피당하기 싫어서 저희까지 끌어들이시려 하시고.=

=아니,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얻을 것이 많다는 건 거짓이 아니오. 정말이오!=

루아르다가 독수리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맹세하니 아센이 여우처럼 킥킥 웃으며 말했다.

=그럼 환인 님과 한 번 더 대련해보시는 건? 그럼 저도 생각해보죠.=

=좋소! 환인 공,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리지!=

이미 한번 팔린 쪽, 두 번 못하랴.

=알겠습니다.=

처음은 정보 수집차 약간의 인정을 뒀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퍼버벅­ 빠박, 쾅!

=끄헥.=

환인은 2분 동안 루아르다가 공격다운 공격, 방어다운 방어를 못 할 정도로 두들겼으며.

=꺄­ 어윽.=

약속대로 끌려 나온 아센은 시작하자마자 명치 ­ 목젖 ­ 이마를 1초만에 차례대로 얻어맞고 실신했다.

무인으로서 자존심에 심각한 데미지를 받아 주저앉은 채 넋이 나간 루아르다, 그리고 그 옆에 기절한 채 널브러져 있는 아센.

문더와 스토레이는 자기도 저 꼴이 될까 싶어 아센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모습을 감추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안 가는 얼굴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칸트위는 환인이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칸트위 씨. 마을의 상점 중 한 곳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만.”

=아, 예.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마을 상공회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칸트위는 눈앞의 환인을 믿기 어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3급과 4급 직업자를 세 번이나 상대했으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유르파 마도구점에 관한 일입니다. 용무가 있어 방문했더니 점원분이 상품을 팔 수 없다고만 말씀하시더군요. 이유라도 알아야 손을 써볼 텐데 이유를 말씀해주시지 않아 조금 난감하던 차였습니다.”

=아, 마도구점 말씀이시군요. 별일은 아니고 외부인에게 귀찮은 일을 많이 당해서 마을 사람들에게만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블랙 컨슈머 여럿에게 당했나 봅니다.”

=하하하. 질이 나쁜 불평쟁이라니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카턴 마을 출신으로 마도구 제작에 자질이 있던 유르파는 그저 마도구를 만드는 게 좋아서, 재미있어서 파르히스트로 유학까지 다녀온 인물이었다.

약 20년에 걸친 유학 덕분에 파르히스트에서 입지도 쌓고 상인 조합에 가입까지 할 정도로 성공한 유르파였지만, 으레 덕업일치를 이룬 괴팍한 사람이 그렇듯이 조용한 곳에서 마도구나 만들면서 늙어가고 싶었기에 카턴을 떠난 지 30년 만에 고향으로 귀향하게 된다.

그후 마을에 마도구점을 낸 유르파는 딱히 돈 벌 생각이 없었기에 나름 괜찮은 품질의 마도구를 거의 원가에 가깝게 팔며 지내기 시작했다.

유르파는 한동안 만족스러운 웰빙 라이프를 지냈다.

문제는 그녀가 마도구점을 열고 1년이 지났을 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카턴 마을은 소도시 웨이포드와 성도 파르히스트의 완충 지역이라 할 수 있는 길목의 유일한 마을.

언제나 유동인구가 일정 이상인 마을이었고 싸면서도 품질 괜찮은 유르파의 마도구상점은 금세 주목을 받았다.

“그때부터 마도구를 싸게 사간 외부인이 돌아와 분란을 피운 거군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면서 말입니다.”

=예. 좋지도 않은 재료를 써서 사기 쳐서 싸게 팔았다고 소란을 일으킨 겁니다.=

그런 일이 일 년에도 몇 번씩 벌어지니 학을 뗀 유르파는 점원을 고용해 앞에 내세워놓고 마을 사람들에게만 마도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같은 마을 사람이라면 적어도 쌍놈의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고 그 판단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겁니다.=

“그래서야 수익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외부인이 마을 사람을 통해서 사 가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을 행상인들이 떼어다 다른 마을이나 촌락에 파는 것도 있었고요.=

그렇게 판매 방식을 바꾼 뒤에는 클레임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와도 합당한 항의 수준이었던 것.

같은 마을 주민이라는 완충재가 톡톡히 제 역할을 해준 것이다.

물론 유르파도 아무런 조치 없이 그런 배짱 장사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매년 마을 번영 기금의 1/10이나 되는 큰돈을 냈고 그런 돈의 힘으로 마을에 발언력을 확보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도구점에 도착한 환인은 칸트위와 함께 상점에 들어섰고, 이번에는 인묘족 아가씨의 앵무새 같은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앗, 칸트위 씨. 어서 오세요!=

=그래. 가게에 별일은 없지? 누님도 건강하고?=

=아줌마야 늘 꼬장꼬장하죠. 근데 손님이 칸트위 씨랑 아시는 사인 줄은 몰랐네요.=

“아가씨의 앵무새 같은 대답에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해결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헤헤. 아줌마가 정한 규칙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해해주실 거죠?=

귀여운 애교 같은 것은 환인에게 통하지 않았지만, 악의를 보인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일에 정색할 이유도 아니었기에 적당히 가식적인 태도로 웃어넘겼다.

가식이라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러고 보니 환인 님이 어떤 물건을 구매하시려는지 듣지 못했군요.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동전을 수백 개씩 들고 다니려니 부피도 부피지만 무게도 문제가 되더군요. 적당한 동전 지갑으로 사용할 아공간 주머니를 구매할 생각입니다.”

=오 그런 거라면 딱 맞는 게 있죠. 산리, 그거 재고 있나?=

=넴. 아줌마가 며칠 전에 만든 게 있어요.=

그렇게 말한 인묘족 처자는 카운터 아래로 쪼그려 앉더니 뒤적거리다가 주먹만 한 주머니 몇 개를 올려놓는다.

주둥이 부분을 조여 매는 디자인은 같았고 색만 회색, 감색, 녹색과 갈색, 네 종류다.

환인은 무난한 회색을 집어 들며 산리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내용은 대충 이 정도 상자 크기고요. 무게는 99% 정도 줄여줘요.=

“……99%나 줄여준단 말입니까?”

상자는 신발 상자로 쓸만한 크기였다. 아무리 소형일수록 높은 효율의 무게 감소 비술을 부여할 수 있다지만 99%는…… 좀 과한데?

동전 주머니를 사는데 40, 50금화을 내는 건 본말전도다.

산리는 환인이 내켜 하지 않는 것을 느끼고 설명을 덧붙였다.

=100%나 다름없어요. 대신 주기적으로 위상석을 교체해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주머니에요. 쓰던 중에 에너지가 다하면 안에 든건 당연히 밖으로 쏟아지고요.=

“그렇군요.”

그런 단점과 제약이 있다면 가격이 대폭 낮아지겠지.

“1급 위상석 같은 경우에는 지속시간이 어느 정도 됩니까.”

=한 2달? 2급은 반 년 정도에요. 3급은 1년하고 3개월 정도. 1급 위상석을 여러 개 넣어도 똑같이 에너지가 줄어드니까 2달마다 1개씩 넣는 게 젤 편해요. 비싼 가공 위상석 같은 건 넣으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가격 대비 효율이 절묘하다.

1급 위상석, 빛이 닿지 않는 미궁에서 획득한 것은 보통 10에서 13은화 정도 한다. 2급은 약 30은화. 3급은 1.8금화.

중요한 것은 제품 자체의 가격.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2금화에요. 조금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구도 재생 효과도 약하지만 있고 방수 효과도 있어요. 위상석만 계속 넣어주고 주머니를 깨끗하게 사용하면 수십 년은 거뜬히 쓸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지금 10년째 이 주머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품질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칸트위의 보증에 환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주인 인식기능은 없습니까.”

=에이. 그 옵션 넣으면 2금화가 아니라 5금화는 받아야죠.=

그건 그렇지.

나름대로 합리적인 가격이라 2금화를 치르고 아공간 동전지갑을 구매한 환인은 마도구점을 둘러보며 어떤 물건이 있는지 살폈다.

“유르파 씨는 충전식 부여 비술사이신가봅니다.”

마을 마도구점 답게 주로 생활용품이 많았는데 손잡이에 홈이 있는 절삭력 유지 + 내구도 회복 부엌칼, 철제 랜턴, 보온 패드, 열선 플레이트, 망원경, 비를 완벽하게 막아주며 체온도 유지해주는 우비, 보존 기능이 첨부된 가방과 정화 옵션이 붙은 물주머니 등등.

대부분이 위상석 장착으로 기능이 발동되는 물건이었다.

환인은 그중 물을 끓이거나 음식을 만드는 데 쓰는 열선 플레이트와 망원경, 철제 랜턴, 정화 물주머니 2개에 보존 가방을 구매했다.

보존 가방은 내부 확장이 없는 30리터짜리 주머니였고 정화 물주머니는 2ℓ 사이즈에 무게 감소 50%의 주머니로 두 개가 각각 5금화, 2금화가 들었다.

망원경, 열선 플레이트, 랜턴 세 개는 각각 25은화, 17은화, 11은화.

=손님 안목이 좋으신데요? 인기 상품만 고르셨어요.=

“유용한 것들이니 많이 팔렸겠지요.”

보존 주머니는 스사가 우르거의 불알을 담은 것과 같은 용도였다. 담아둔 물이 식수로 변하는 물주머니는 두말할 것도 없이 유용한 물건이고 나머지도 여행과 미궁 탐사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전부 위상석을 끼웠다 빼는 것으로 on/off가 가능하며 약하지만 내구도 회복 기능도 있는 물건들.

1급 위상석 하나로 몇 주(보존 주머니)에서 몇 달이나(나머지) 쓸 수 있기에 반영구적이기도 하고 싸서 기왕 필요한 것들을 구매했다.

보존 주머니에 구매한 아이템을 담고 있으니 산리가 고양이처럼 웃으며 묻는다.

=손님은 특이하시네요. 이렇게 싼 물건이면 한 번쯤 내구성이나 그런 걸 의심하기 마련인데요.=

“설명한 것과 스펙이 다르면 차후에 찾아와 대가를 치르게 하면 그만입니다.”

환인의 목소리가 평온해서 농담처럼 들렸지만, 환인의 실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칸트위는 저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눈치채고 어색하게 웃었다.

4급 직업자를 가볍게 찍어누르는 무인의 컴플레인이라니.

적어도 자신은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 칸트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때 가게 안쪽으로 이어진 복도에서 나른한 느낌의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머나~ 꽤 당돌한 말을 하는 손님이시네~?=

그 말이 끝나며 주렴 사이로 검은색 튜브탑 원피스를 입은, 흡사 마녀 같은 복장의 젊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최소 6급 술사의 아우라를 두른 여자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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