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27화 (127/813)

〈 127화 〉 124 카턴 마을

* * *

칸트위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과하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될 만큼 환인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래서일까, 저녁은 만찬을 넘어 자그마한 연회가 되었다.

참가자는 환인과 이실리테, 칸트위, 4명의 식객까지 해서 7명. 연회 장소는 저택 뒤편의 잔디밭 위 정자.

정자 아래에는 작은 요리장이 마련되어 보기에도 맛깔나는 음식이 쉴 새 없이 만들어졌고 하인들이 정자와 요리장을 오가며 손님들의 식탁이 비워지기가 무섭게 음식을 챙겨준다.

술도 각종 고급 양조주, 증류주가 잔을 쉴 새 없이 채웠고 어느샌가 악단이 정자 아래에서 흥겨운 곡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흥겨운 노랫소리와 맛 좋은 음식, 그리고 충분한 술.

식사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술판이 벌어졌고 식객들은 서로 술잔을 나누며 거나하게 취했다.비상식량도 이실리테의 손에 의해 깨끗하게 목욕하고 단장까지 마친 다음 잔디밭 한 쪽에 앉아 하녀들이 가져다주는 맛있는 음식을 만끽했을 정도.

=환인 님, 한 잔 받으시지요. 카턴 마을 특산주인 백일향입니다. 데워 마시는 청주로 숙취와 뒤끝이 깨끗한 게 일품이지요.=

환인도 그들 틈에 끼어 조용히 술을 즐기며 그들이 웃고 떠드는 것을 지켜보며 칸트위에게 연신 술잔을 받았다.

그게 조금 의아한 환인이었다.

칸트위는 식사 때부터 직접 자신을 꼼꼼히 챙겨주었는데, 그 행동이 적당한 이야기를 들려준 데 대한 보답으로는 과하게 느껴진 것.

칸트위의 호의 겸 배려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환인에게 제공된 별채는 한국의 근대식 한옥이 생각나는 연황색과 백색이 어우러진 멋진 목조 건물이었다.

내부는 먼지 한 톨 없을 만큼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었고 꽃향기가 은은하게 감도는 화분과 난초와 꽃병 등으로 꾸며져 치장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한 수준.

이실리테는 한옥을 전체적으로 둘러본 뒤 환인의 침실 ­ 마루 ­ 자신의 방으로 연결되는 삼중 구조 중 마루에 폭신폭신한 깔개를 깔아놓고 비상식량을 불렀다.

=비상식량. 여기서 자면 돼. 여기에 있으면 주인님의 방도 보이니까 괜찮지?=

괜찮다마다. 이곳에 앉으면 열린 장지문 사이로 친구가 훤히 보인다.

쿠에~.

비상식량이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보며 환인은 혹시 술자리에서 뭔가 실수한 게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 정체가 드러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잘 대접해주는 걸까. 정말 사람이 좋아서?

이제 자려고 자리 잡는 비상식량에게 다가간 환인은 동글동글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자다가 수상한 사람이 다가오면 울거나 때려서 혼내줘라. 할 수 있겠지?”

쿠엣!

칸트위의 대접에 나쁜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두는 것이 낫겠지.

비상식량에게 당부한 환인은 이실리테가 준비해놓은 목욕물에 몸을 씻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별일 없이 밤을 보낸 환인은 칸트위의 초대를 받아 다른 손님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실리테와 평화로운 카턴 마을을 돌아다녔다.

=카턴은 되게 좋은 마을이네요.=

“그렇군.”

마을 곳곳에 나무도 가득 심겨 있고 조금 으슥할법한 거리도 깨끗하게 정돈된 평범한 거리다.

보통은 이런 장소에 힘들거나 못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빈민굴화가 시작되는데 여긴 그냥 평범한 가정집 거리일 뿐.

그렇게 슬럼화가 진행된 곳은 마을에서 도시로 규모가 확장될 때 죄다 성벽 밖으로 쫓겨나 일반구역에 자리 잡는 게 보통이라고 이실리테는 기술원에서 배운 것을 설명했다.

환인도 알고 있었지만 이실리테를 무안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기에 대충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영혼이 거의 없어.”

영혼이 방황하게 되는 이유는 미련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한다. 원한과 복수도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은 편.

=정말요? 이 마을 사람들은 신실한 사람들인가 보네요. 칸트위 씨도 친절하시고요.=

“글쎄. 섣불리 일원화할 필요는 없겠지.”

=일원화……가 뭐에요?=

“지금처럼 이 마을의 주민들이 전부 착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일원화다.”

촌락 정도 되는 작은 마을에서도 재산을 탐낸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보다 몇십 배는 더 많은 사람이 모인 마을은 어떨까.

마을을 대강 둘러본 환인은 이실리테와 함께 대장간을 방문했다.

웨이포드를 떠나 카턴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수십 마리의 마수와 짐승의 허리를 끊어내고 환인과 20번이 넘는 대련을 치른 대검의 수리를 맡기기 위해서다.

=심이 약간 휜 곳도 있고 날도 많이 뭉개졌네요. 이런 중철 대검은 마모도를 예상해서 두껍고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폐품 처리는 안 하겠지만…… 재조율에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리고 날을 새로 세우면서 심이 조금 얇아지는 것도 감수해야 할거고요.=

“부탁합니다.”

=대금은 5열동화입니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찾아가시면 됩니다.=

대장간을 나온 이실리테가 생돈 나간다는 느낌으로 중얼거린다.

=수리비를 그렇게 많이 받다니, 뭔가 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언제 무기를 수리해본 적은 있나?”

=……아뇨.=

“그러면 억측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대검은 사이즈 때문에 장검에 비해 연마도 어려울 테니까.”

지구에서야 기계 숫돌로 갈아내고 기계 용광로에서 가열해 재차 두드려낸다지만 이 세상은 그 작업이 전부 수동이다. 2m짜리 날을 다시 두드려야 하니 인건비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비쌀 수밖에.

그다음에 방문한 곳은 가죽세공점.

동물이나 짐승의 가죽에서부터 뼈와 살코기, 내장까지 분류하고 가죽의 연마와 세공까지 이루어지는 종합 가죽 공방을 방문해 이실리테의 교육을 부탁했다.

=오늘 내일 이틀간 이 아가씨에게 무두질을 가르쳐달라는 게요?=

셰퍼드의 귀처럼 반쯤 접힌 귀의 견인족 중년 여자가 걸걸한 목소리로 묻는다.

“예. 사례는 하겠습니다.”

=흠. 천상 귀한 집 아가씨 같은데 무두질을 배운다고? 힘들 텐데.=

귀한 집 아가씨라니, 이실리테는 민망해서 입도 열지 못했다. 그게 더욱 아가씨처럼 보이게 하는 줄도 모르고.

“제가 보기엔 반장께서도 만만치 않은 귀부인으로 보입니다만.”

=오? 푸하하하! 이거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남자구만!=

호탕하게 웃는 작업장의 반장은 정말로 얼굴만 보면 여배우 출신 재계 사모님이 따로 없었다.

다만 쇠사슬 앞치마에 쇠사슬 장갑을 끼고 근육까지 우락부락한데다 얼굴이며 몸 곳곳에 피 칠갑을 해서 하드보일드 사모님이라고 할까.

=듣기 좋은 말까지 들어놓고 외면할 수야 없지. 내가 특별히 맡아서 무두질의 기본은 확실하게 뗄 수 있도록 해주겠소!=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렇게 이실리테와 은화 20장을 하드보일드 반장 사모님에게 넘긴 환인은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다음은 카턴 유르파 마도구점.

아공간 비술이 적용된 동전 주머니를 사기 위해 마을에 한 곳뿐인 마도구점을 방문했는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마도구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전박대까지는 아니고 종업원인지 고양이 귀를 한 아가씨가 상품을 팔 수 없다고만 말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린 것.

‘마도구를 구매하는데도 자격이 필요한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대장간은 마을에 네 곳이 있었고 가죽 세공점이나 무두질 공방도 두 개, 세 개씩 있었지만 마도구점은 여기 하나뿐이었다.

여기서 못산다면 다음 마을이나 도시까지 가야 한다는 뜻.

나중에 칸트위에게 사정을 물어보기로 하고 환인은 느긋이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무와 관목, 군데군데 꽃밭과 공원 등이 많아 경남 남해의 독일 마을처럼 테마 느낌도 물씬 풍겼고 거리도 깨끗했으며 사람들도 마을 분위기처럼 친절하다.

마을 광장의 상점가는 파르히스트로 가는 길목에 들른 여행자로 붐볐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여행자를 상대로 호객을 하느라 바쁘다.

그렇게 웨이포드의 중심가만큼이나 넓은 카턴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혼을 세어보던 환인은 이곳에도 혼재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속으로 혼재를 두 번 만난 것은 불운이었나 보군.’

그래도 조금은 아쉽다. 이실리테에게 붙어있던 아베트가 보여주었던 현상을 한번 조사해보고 싶은데.

그렇게 오전 내내 영혼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니던 환인은 조금 쉴 겸 해서 마을을 관통하는 폭 20m의 강가로 돌아왔다.

강은 무척 깨끗했다.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 강에 접근할 수 있는 곳을 따로 만들어두었고 그 외에는 함부로 강에 접근할 수 없게 돌담을 만들어놓았다.

강가를 오가는 순찰대, 촌락 자경단의 상위 단체도 보인다.

‘수원은 소중히 여겨야겠지. 토목 공사로 물줄기를 끌어오는 것도 문제인 세상이니.’

지구와 다르게 괴물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공사한다고 시끄럽게 굴면 어떤 괴물이 출현할지 모른다.

웨이포드에서 야생의 괴물과 관련된 소문을 많이 들었는데, 그중 환인을 황당하게 만들었던 것은 길이만 100m에 달하는 거대한 환형동물 계통 괴물 이야기였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오지의 땅속에 그런 거대한 벌레가 살며 지나가는 사람을 한입에 삼킨다던가.

그 외에 들판의 휘몰아치는 허리케인 속에 거인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바닷속에는 범선을 가볍게 능가하는 크기의 눈eye이 헤엄쳐 다닌다는 이야기나 요정들이 사는 숲, 하늘을 나는 고래, 지축을 울리며 달리는 해골 군마, 걸어 다니는 나무 등등의 이야기도 있었다.

촌락을 만들려던 사람들이 괴물에게 잡아먹혀 소식이 끊기거나 오지로 판매망을 뚫으려던 행상인이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습격당해 전멸당하는 일은 흔한 축에 속한다.

벤치에 앉아 강물을 떠 가는 마을 사람들을 구경하던 환인은 문득 이상한 점을 떠올렸다.

‘수원은 마을 형성에 필수인데…….’

웨이포드에는 강이 없었다. 근처에 호수나 저수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다.

그만한 크기의 도시가 수원 없이 존재할 수 있나? 상하수도가 완벽하게 준비된 곳도 아니었는데.

술사 계통 직업자 중 물을 다루는 법술사는 위상력으로 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들었지만, 그런 법술사를 수원 확보에 쓴다는 것 자체가 낭비다.

각성자 10명 중 6명은 전사나 투사로 각성한다. 그리고 남은 4명 중 1명이 성술사 계통이며 3명이 엽사나 비술사, 법술사로 각성한다.

그리고 법술사로 각성한다고 모든 속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적, 청, 녹, 황, 목, 뇌, 백, 흑 8가지 속성 중 1~3가지 정도를 얻는 게 보통.

수백 명 중 1명이 각성한다는 직업자. 그런 직업자 중 물을 다루는 법술사가 되기란 얼마나 낮은 확률인가.

막말로 20만 인구의 웨이포드에서 법술사가 나올 확률은 고작 0.002%, 여기서 또 1/8의 확률을 더하면?

그런 귀한 법술사로 물을 만들어 보급한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보급한다 해도 고족이나 호족들만 이용하겠지. 결론은 다른 요소가 있다는 뜻.’

미궁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것과 연관이 있을까.

햇살을 반사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던 환인의 눈에 마을의 어린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는 비상식량이 들어왔다.

벤치에 앉아만 있는 환인의 곁은 심심했는지 아이들과 함께 술래잡기하며 노는 중이다.

아이들의 손에 붙잡히면 깃털을 뜯길 수 있다는 걸 눈치챈 걸까. 아이들에게 잡힐 듯 말듯 도망 다니면서 노는 걸 꽤 재미있어하는 모습이다.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환인도 비상식량을 불러 칸트위의 저택으로 향했다.

=허어! 이실리테 씨가 무두질을 배운다는 말씀입니까?=

“예. 배우고 싶어 하더군요. 실제로 오면서 잡은 짐승도 직접 가죽을 벗겼었고 말입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이실리테가 보이지 않아 물었던 칸트위는 그 청초갸름하던 아가씨가 무두질을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에 연신 탄성을 흘렸다.

무두작업이야 여자도 얼마든지 하는 일이지만, 어느 고족 가문의 아가씨 같은 사람이 그런 험한 일을 하려 하다니.

중절모 같은 것을 쓴 회색 두더지 머리의 문더가 올바르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에 무두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소소한 수익이 되지. 그 아가씨, 생긴 것과 다르게 생활력이 강하군.=

생긴 것과 다르기라니. 환인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3개월 전의 이실리테를 보면 그런 말을 못할 텐데.

=환인 공. 오후의 일정이 어찌 되시오?=

그때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아우라, 최소 4급 정도 되는 아우라의 농도를 지닌 루아르다가 묵묵히 있다가 정중한 어조로 환인에게 물었다.

“특별한 예정은 없습니다만.”

=그렇군. 그대만 괜찮다면 한 번 무기를 교환해보고 싶군. 어울려주시겠소?=

“대련 신청입니까?”

=그렇소. 미각성자에게 대련 신청은 예의가 아니기에 참아보려 했지만…… 참기 힘들구려. 비상식량과 이실리테 양을 가르친 그대의 솜씨, 그리고 6급 삼림형 미궁을 비록 외곽이었다곤 하나 무사히 빠져나온 그대의 실력, 꼭 한 번 견식하고 싶소.=

“곤란하군요. 보시다시피 저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만.”

환인이 이유 없이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루아르다는 호수갈매기 일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말대로 루아르다는 두상은 하얗고 노란 갈매기의 그것이었고 신체도 사람의 몸에 팔다리가 붙어있다지만 하얀 깃털이 온몸을 뒤덮은 새 인간이다.

더욱이 등에는 몸을 몇 번이나 감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날개가 접혀있었고 손은 손가락이 존재하지만, 손이라기보단 맹금류의 발톱에 가까웠다. 물론 발도 마찬가지.

즉 지상전이 아닌 공중전에 더 적합한 육신이라는 뜻이다.

환인이 내놓은 이유에 루아르다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눈앞의 남자는 진정한 실력자라고 말이다.

그야 자신이 무직자임을 내세워 거절하는 게 아니라 신체 특징을 거론하며 거절했다.

자신의 실력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나.

=하하하. 당연히 비행 능력은 봉인해야지. 물론 본인도 위상력을 억제하고 그대의 신체 능력에 맞출 생각이오. 다만 본인의 각성 형식이 방어와 회복 분야의 신체 강화다 보니 그 점은 염두에 둬주시오.=

환인은 자연스럽게 루아르다의 전투력을 알아차렸다.

비행 생물의 가장 강력한 공격은 낙하 공격 방식이다. 고고도에서 추락하듯이 내려꽂혀 그 가속도로 사냥감을 낚아채는 생물이 새다.

그리고 그런 공격은 너무나 위험해서 자칫 사냥감과 충돌하면 자신이 크게 다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루아르다는 신체 내구도와 재생 능력이 올라가는 근접 직업으로 각성했다.

그 말은 그 어떤 무시무시한 공격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뜻.

“굉장하군요.”

루아르다의 눈에 이채가 번졌다. 환인이 자신의 전투 능력을 가늠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알겠습니다. 칸트위, 봉이 있다면 빌려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칸트위는 여행자들, 모험자들의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뛰어난 무인들의 대결도 정~말 좋아한다.

당연히 집에는 장인이 제작한 각종 무기가 있었으며 그중에는 특별히 내구도 강화 술법이 부여된 봉도 있었다.

봉을 받아든 환인은 몇 차례 휘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흑창에 쓰인 할란의 검은 나무만큼은 아니지만, 탄성도 적당하고 강성도 적당하다.

=환인 공의 창술이 정말 기대되는군.=

그것을 지켜본 루아르다가 중얼거리며 몸을 풀기 시작했고 환인도 조인족은 어떤 싸움법을 보여줄지 조금 기대감을 품었다. 비록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루아르다의 아우라는 4급의 농도. 거기다 투사이기도 하니까.

“정도의 창술이 아닌 사도의 창술이니 기대하시면 실망하실지도 모릅니다.”

정식으로 배운 창술이 아니라는 말에 루아르다가 쾌남의 미소를 짓는다.

=야생의 감각이 접목된 창술이란 말이지 않나. 오히려 더욱 기대되는군. 아, 미리 말해두지만, 본인의 무기는 이 두 주먹과 다리요. 권 각 계통 투사란 뜻이지.=

루아르다가 본격적으로 프로 킥복서처럼 팔다리를 움직여 몸을 풀면서 묻는다.

=대련 규칙은 어떻게 하시겠소?=

“모인 네 분의 판단에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련의 종료도 말입니다.”

=좋군. 칸트위 공과 다른 세 분, 잘 부탁드리오.=

네 명도 이런 구경은 놓칠 수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거리를 벌려준다.

환인과 루아르다는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승률은 루아르다가 압도적이었다. 아무래도 무직자의 페널티가 크니까.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손과 발만 갈퀴일 뿐, 근육이나 신체 골격은 사람과 다를 게 없군.’

루아르다가 몸을 푸는 동작에서 환인은 루아르다의 관절 기동 범위를 모두 파악해버린 것.

관절 범위와 공격 범위만 파악해놓으면 상대의 공격을 70%를 예측할 수 있다.

더욱이 이실리테, 비상식량과 대련을 해주며 감각마저 단련한 환인의 반응 속도와 반사신경의 수준은 율캄에 도착할 무렵의 자신과 몇 배나 차이나는 상황.

표범처럼 자세를 낮추고 봉을 적당히 늘어트린 환인을 응시하던 루아르다가 허허 웃었다.

=이것 참 당혹스럽군. 빈틈이 너무 많은데 어째서인지 들어가기가 겁나는구려.=

“그러면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말하며 걸음을 내디딘 순간, 루아르다가 표범처럼 덮쳐들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