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26화 (126/813)

〈 126화 〉 123 카턴 마을

* * *

이실리테에게 대검을 돌려주고 비상식량의 등에서 내려온 환인에게 칸트위가 다가가 열정적으로 손뼉을 쳤다.

=대단하십니다! 그토록 살벌한 대련 사이에 끼어들어 두 분을 단숨에 진정시키다니, 정말 대단한 무예입니다!=

“과찬입니다. 그보다 손님 된 입장에서 예의 없는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훈훈한 미소로 운을 뗀 환인이 어깨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비상식량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1층, 비상식량이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는 방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창고나 헛간 같은 곳이라도 괜찮으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창고나 헛간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마침 작은 별채가 비어 있으니 그곳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오, 루시아 이리 와 보거라!=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몸종이 보여 그녀를 부른 칸트위는 하녀장에게 말해 뒷채를 즉시 청소하라고 지시한다.

=다른 일은 모두 접어두고 뒷채부터 먼저 청소하라고 전하거라. 깨끗하게, 알겠지?=

=네, 어르신.=

=그리고 여기에 짐도 작은 별채에 가져다 놓고. 부탁하마.=

=네. 맡겨주세요, 어르신.=

그것 말고도 비상식량을 배려하는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린 칸트위는 환인에게 좀 전보다 더욱 정중해진 모습으로 본채에 초대했다.

=자자, 먼 곳에서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여러분들도 함께 가시지요. 허허허.”

그 뒤를 시무룩해진 이실리테와 표정이 복잡해진 루아르다, 뭘 생각하는지 모를 표정의 아센이 뒤따랐다.

칸트위의 취미는 여러 장소를 다녀본 여행자를 집에 초대해 그 사람의 경험담을 듣는 것이었다.

실제로 수많은 장소를 여행 다녀본 루아르다는 벌써 두 달째 머무는 중이었고 다른 세 명도 각자 4주와 3주씩 체류 중이다.

네 명 다 약 40일 후에 벌어지는 파르히스트 승자진출전, 토너먼트에 맞춰 파르히스트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라고.

좌식 생활에 맞춰 꾸며진 다실茶?에서 칸트위의 손님들 이야기를 듣던 환인은 자신 차례에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른 네 분에 비해 저는 여행 기간이 짧은 편이라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언족인 문더를 포함, 루아르다와 아센의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

루아르다는 구름 속을 헤엄치는 가오리를 발견해 그 등에 올라타서 세계를 유랑한 이야기.

문더는 일행인 인웅족 스토레이와 함께 저번 시간에서 이어지는 광대한 지하 도시 탐험기.

아센은 북서부의 모흐라고 하는 털북숭이 소인 족의 마을 여행기.

그런데 자신이 그간 겪은 일이라곤 싸우고 이동하고 영혼을 성불시키고 여자들과 잠자리를 한 게 전부다.

환인의 진심이 담긴 겸양에 루아르다가 팔짱을 낀 자세로 목깃을 쓸어내리며 웃는다.

=으음. 딱히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평온한 여행 이야기도 나름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말이오.=

“그렇습니까.”

=일단 환인 공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군. 역시 목적지는 파르히스트인가?

“파르히스트는 지나가는 통과 점입니다. 목적지는 종족 연합 주도이지요.”

=오, 그럼 대축제에도 참여하지 않고 지나간단 말씀?=

“물론 아닙니다. 여행자가 이런 이벤트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토너먼트는 물론 파르히스트의 미궁도 관심이 있으니 한동안 머무르지 않을까 합니다.”

환인의 담담한 이야기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차를 마시던 칸트위가 초승달처럼 눈을 휘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한동안 저희 집에서 머무르시며 여독을 풀고 가시지요. 지금 파르히스트는 라드세아 전역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 미어터지고 있을 테니까요=

=칸트위 공의 말씀대로, 편하게 관광할 목적이라면 적어도 석 달은 전에 도착하여야 하오. 지금이라면 여관도, 호텔도, 민박마저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겠지.=

환인은 살짝 곤란해하는 표정을 내비쳤다.

근방에 미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카턴 마을에서 40일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이런 마을에서 할 일이라고 해봤자 적당한 가죽 공방에 이실리테를 보내서 무두질 기술을 습득하게 하거나 여자들을 건드리는 일 뿐일 테니까.

=뭐어, 파르히스트에도 칸트위 님처럼 여행자를 환영하는 부자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환인 씨처럼 특별한 분위기를 가진 분이라면 그런 사람들에게 잠시 의탁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잠자코 있던 아센의 묘하게 색기 어린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궁금하오. 환인 공께서 어떻게 녹색 쿠에를 얻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보따리만 풀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소만.=

“그렇습니까.”

=재미있는 이름이지요. 비상식량이라니…… 후훗.=

=정말입니다! 설마 녹색 쿠에를 잡아먹으려고 데리고 다니시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비상식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칸트위의 이야기에 다실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개방된 한쪽 벽 너머, 작은 정원을 제집인 양 돌아다니는 비상식량과 그 뒤를 쫓는 이실리테에게 향한다.

“그렇다면…… 비상식량이라는 이름을 주게 된 경위부터 이야기해야겠군요. 말솜씨에 자신이 없어 재미없을지도 모르지만, 시작하겠습니다.”

재미없을지도 모른다고 미리 연막을 쳐놓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주변 풍경을 적절히 섞어가며 풀어내는 환인의 말솜씨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허어! 녹색 쿠에인줄 모르셨단 말씀입니까?=

“마비 구슬에 당한 녹색 새는 이 정도만 한…… 크기에 조금 독특한 새처럼 보였으니까요.”

당시에는 아무런 소지품이 없던 터였고 녹색 쿠에의 유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지라 정말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닐 생각이었다는 말에 좌중이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이어진 환인의 삼림형 미궁 탈출기는 반응이 옅던 인웅족마저 환인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 정도의 흡입력을 자랑했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 그곳에 사는 거대한 뿔비늘 고래와 수많은 이형종, 그리고 집채만 한 갈매기에 푸른불꽃 호랑이.

“그에게서 떠나라는 의지를 읽은 저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프로글록의 서식지였던 강을 건너 밀림을 탈출하고 있었지요. 다행히 그때 선택한 길은 틀리지 않아서 미궁을 탈출한 것은 물론이고 조금이나마 멀어질 수 있었습니다.”

멀어졌다고 해도 미궁 밖까지 흘러나온 마수들로 위험은 넘쳐흘렀지만.

거기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숨 쉬는 것도 잊고 환인의 이야기에 몰입하던 사람들이 탄식에 가까운 숨을 내쉬며 감탄한다.

감탄은 특히 종족 학자라고 할 정도로 사람, 동물, 마수, 이형종 가리지 않고 종에 관한 관심이 큰 아센이 크게 했다.

=전신에 푸른 불꽃이 휘감긴 거대한 호랑이라니, 그런 생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만한 지성과 맹목적인 폭력성이 없다는 사실은 성수라는 뜻일 텐데 삼림형 미궁의 성수라니……! 아아.=

상상만으로도 흥분할 거 같다며 몸을 작게 떤다.

=흠. 개방형 미궁은 변종과 아종의 출현 확률이 일반 미궁보다 높다 하지. 거기에 6급 삼림형이라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소? 푸른불꽃 호랑이 같은 개체가 나타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거요.=

문더의 분석에 아센이 맞장구치며 열기가 담긴 눈으로 환인을 응시한다.

=그 말대로예요. 심정적으로는 지금이라도 당신이 말한 그 미궁을 방문하고 싶을 정도…… 아아. 정말 부러운 경험을 하셨네요.=

당시에는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었는데 이들에게는 그저 부러운 경험인가.

부러움이 역력한 아센의 아우라는 강처럼 조용히 흐르는 느낌의 엽사 계통 직업자. 혹시 탐사에 특화되어 괴물을 피할 수 있는 기술 같은 게 있는 걸까 추리해본다.

‘영혼에 마법까지 있는 세계다. 없는 게 이상하겠지.’

환인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띈 채 잠시 사람들이 숨 돌릴 시간을 준 뒤 쌍둥이 산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했다.

소설로 쓴다면 다 합쳐 25편은 될법한 이야기.

그리고 비상식량이 쌍둥이 산의 절벽에서 동굴을 발견했다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끊자 아센이 지긋한 눈빛으로 중얼거린다.

=절벽 한복판에 동굴이라니,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흔적일까요?=

=모종의 이유로 인한 지각 변화가 만들어낸 흔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소. 하늘을 날다 보면 마치 케이크처럼 잘려 나간 절벽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가끔은 환인 공이 발견한 동굴 비슷한 것도 볼 수 있지.=

칸트위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다음 이야기를 재촉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동굴에는 무엇이 있었죠?=

하지만 환인은 작게 웃음만 지었고, 이야기의 맥을 끊는 것처럼 똑똑똑 방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 어른,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집사의 목소리에 칸트위가 밖을 보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해져 가는 중이다. 그의 눈에 뒤늦게 환인의 복장이 들어왔다.

여행 중이라는 것을 드러내듯 단단한 흑회색 가죽옷과 후드 망토 차림.

=이런!=

순간 칸트위의 얼굴이 민망함에 붉어졌다.

손님을 모셔놓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있었다니,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었다.

환인이 다실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실리테는 작은 정원을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비상식량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이 주인님을 만나기 전의 이야기가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비상식량에 관한 문제가 우선이다.

쿠엣.

줄곧 자신을 응시 중인 이실리테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비상식량은 ‘다시 한번 붙어볼래?’하며 꽁지깃을 바짝 세우고 눈을 부릅뜬다.

하지만 비상식량의 도발을 간단히 흘려넘긴 이실리테가 진지하게 물었다.

=비상식량 너, 평범한 쿠에가 아니지?=

……쿠에?

쿠에는 밀짚색, 갈색, 주황색, 회색, 흑색 순으로 머리가 좋아지고 신체 능력도 아래의 쿠에보다 높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똑똑하다고 해서 사람처럼 지능이 높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회색 쿠에의 지능은 기껏 해봤자 7살 남짓한 어린아이 정도.

적색 쿠에나 녹색 쿠에는 그 수가 극히 적어서 지능지수 테스트를 하지 못했지만, 10살 정도가 아닐까 짐작한다는 동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다.

기술원에서 본 사회 고급 상식­쿠에 편의 내용을 떠올리며 이실리테가 물었다.

=너 주인님 말씀뿐만 아니라 내 말도 다 알아듣잖아. 주인님이랑 대련하면서 싸움 실력이 느는 것도, 내 대검에 맞아도 조금 아파하고 마는 수준도 그래. 넌 절대 평범한 쿠에가 아냐.=

평범과 비범의 구분은 비상식량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하다고 꼽을 수 있는 것은 친구랑 맛있는 음식. 그리고 자유롭게 마음껏 날아다니는 것뿐.

쿠우.

싸우자는 것은 아닌 거 같아 꽁지깃을 내린 비상식량이 그래서?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내 말 알아들을 수 있으면 고개를 끄덕여봐. 위아래로.=

끄덕끄덕.

역시! 이실리테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뭐야. 너 언제부터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거야?=

쿠엣.

몰라.

비상식량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전부 환인 덕분이었다.

환인이 말을 익히고 글을 외운다고 글 쓰고 입 밖으로 소리 내 읽는 동안 옆에서 구경하던 비상식량도 자연스럽게 귀가 트였던 것.

=아. 넌 사람 말 못 하지. 으음…… 그럼 어떻게 해야…….=

쿠? 하고 눈을 끔벅이는 비상식량의 모습에 이실리테는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몰라. 말을 알아듣는다고 나쁜 건 없으니까. 아무튼!=

짝!

흠칫.

갑작스러운 손뼉 소리에 깜짝 놀랐던 비상식량이 부루퉁해져서 부리로 이실리테의 뺨을 꾹꾹 누른다.

=앗, 미안해. 이제 안 놀래킬게. 아무튼 너한테 꼭 할 말이 있어. 이건 주인님한테도 중요한 일이야.=

주인님,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에 비상식량이 재차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동안 이실리테는 여러 번 주인님을 위해서라는 말과 함께 환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비상식량의 행동을 교정하려 했었다.

하지만 아직 아성체에 불과한 비상식량의 뇌는 미성숙했고, 고차원적인 사고보다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몇 년만 더 지난다면 지금과 현저히 다른 양상을 보이겠으나 그건 미래의 일.

아무튼, 그 때문에 몇 차례 마찰을 빚었고 급기야 싸움까지 한 이실리테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좀 전의 싸움을 통해 이실리테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비상식량이 어린아이나 다름없음을 파악했고, 정론을 통한 교정이 아닌 다른 방식을 모색했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눈높이식 설득.

이실리테는 비상식량이 좋아하는 곳을 긁어주고 부리를 쓰다듬어주며 짧고 간단하게, 비상식량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 설명을 시작한다.

=넌 마구간에서 주인님이랑 떨어져서 혼자 자고 싶지 않은 거지?=

쿠우.

=응. 나도 널 따로 떼어놓고 싶지 않아. 넌 소중하니까.=

이실리테가 비상식량을 보는 방식은 평범한 회사원이 수십억짜리 하이엔드 스포츠카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비상식량은 어마어마하게 비싼 몸이다. 다만 살아있는 생물이고 동물인데다 덩치까지 커서 실내용 애완동물로 취급하기에 무리가 있어 그랬을 뿐, 비상식량이 이전처럼 거위나 칠면조만 한 크기였으면 이실리테가 먼저 나서서 비상식량을 챙겼을 거다.

에트브룩 촌락에서도 비상식량 식사나 침구를 챙긴 것은 이실리테였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봐. 주인님은 괴애애애애앵장히 훌륭한 분이야. 스사나 브릴릿이나 저 사람이 주인님을 대접하는 거 보면 알지?=

쿠에~.

잘은 모르지만 내 친구가 굉장한 건 맞아.

=그런 주인님이니까 그에 걸맞은 생활을 하셔야 한단 말이야. 만약 주인님이 쿠르티를 업고 다니시거나 쿠르티가 자는 곳에서 주무시면 어떨 거 같아?=

쿠엣?!

=저번 촌락에서 머무른 곳 기억나지? 주인님은 최소한 그런 곳에서 지내셔야 해. 그만큼 훌륭한 분이란 말이야. 그런데…….=

비상식량 니가 계속 주인님하고 붙어있으려고 하면 그러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주인님도 땅바닥 같은 데서 자야할 테고 그리되면 다른 사람들이 주인님을 우습게 볼 테고 주인님의 훌륭함을 모르고 주인님을 함부로 대하게 될 거다.

그게 반복되면 주인님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 너랑 나랑 주인님하고 생이별하게 될 거다.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는 말이었지만 의외로 논리는 맞아떨어졌고, 오히려 그랬기에 비상식량은 정확하게 이해했다.

자신이 계속 친구 옆에 붙어있으려고 억지 부리면 친구가 곤란해진다고.

쿠우…….

그래도 저렇게 좁고 더러운 곳에서 혼자 자는 건 싫은데…….

시무룩해지다 못해 울먹이려는 비상식량의 모습에 이실리테는 뜨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쿠에는 보통 2~3년이면 성체가 되는데 주인님이 하신 말씀을 종합해보면 비상식량은 이제 한 살 정도 됐을까 싶은 아기 새다.

그런 애를 두고 이런 으름장이라니.

이실리테는 기가 죽은 비상식량의 부리와 목을 열심히 쓰다듬었다.

=물론 널 마구간에서 자라고 안 할 거야. 주인님이 말씀하셨잖아. 니가 싫어하는 행동은 적당히 하라고. 그러니까 나도 니가 마구간에서 안 자게끔, 주인님하고 같이 있을 수 있게 힘낼게. 대신 넌 잠자리에 관해서는 앞으로 내 말에 따라주면 좋겠어.=

쿠에……?

문자화된 언어는 아니었지만, 이실리테는 비상식량이 정말…? 하고 묻는 것처럼 느껴져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에는 내가 야외에서 너랑 함께 자줄 테니까. 응?=

비상식량은 친구가 제일 좋지만, 맛있는 걸 챙겨주는 이실리테도 그럭저럭 좋아한다.

한때 갑자기 사라져서(하녀 양성기술원 입원) 의아했던 적도 있지만, 다시 돌아온 뒤로는 부쩍 자신을 잘 챙겨줬기에 친구가 간절히 부탁하면 이실리테도 아주 가끔 등에 태워줄 의향이 있을 정도.

……쿠엣!

알았어!

=좋아.=

그런 이실리테의 노력으로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되었고 이실리테와 비상식량의 사이는 다시 원만해졌다.

환인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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