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122 카턴 마을
* * *
쿠엣! 쿠우웃!
쿠르티는 이실리테의 인도에 순순히 마구간으로 들어갔지만, 비상식량은 ‘여기에 날 밀어 넣으려면 나와 싸워야 할 거야!’하듯이 꽁지깃을 세우고 부리를 낮춘 채 이실리테를 위협했다.
=…….=
비상식량의 반항에 이실리테는 기가 막혔지만, 억지로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집주인인 칸트위는 물론이고 집사와 몇 명의 하녀, 식객으로 머무르던 다른 손님들까지 지켜보고 있는 마당이다. 비상식량과 다퉜다간 주인님의 체면에 흠이 간다.
=아이참. 왜 그러니? 여기서 그러지 말고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꽥!!
좋게좋게 말했지만 팩 이실리테가 쥐고 있던 고삐를 낚아챈 비상식량이 `나는 결코 마구간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하듯이 게걸음으로 마굿간 입구에서 벗어난다.
=…….=
=허어. 녹색 쿠에께서 마구간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봅니다.=
결국 여기까지 안내해준 집사가 입을 열었다.
마치 자신의 추태를 지적받은 듯한 수치심에 이실리테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인님께서 새끼일 때부터 애정을 가지고 키워서요. 3단계 성장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주인님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해요. 그러다 보니 어리광이 심해서…….=
=허허. 이해합니다. 어린 쿠에들은 자그맣고 귀여워서 품에 안고 데리고 다니기 좋으니 말입니다.=
집사는 이해해주었지만, 이실리테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이실리테는 뒤에서 적당히 거리를 둔 채 구경하고 있는 식객을 힐끔 보고는 창피한 듯 비상식량의 부리를 두 손으로 잡고 속닥였다.
=너 자꾸 이럴래? 니가 아무리 떼를 써도 안되는 건 안 돼.=
쿠에! 쿠으으!
=일단 들어가. 들어가서 나중에 이야기해. 응? 부탁이니까.=
비상식량은 저번 촌락에서는 같이 있었는데 여긴 왜 또 안되냐고 항의했지만, 이실리테가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에 답답해서 쿠삐잇! 크게 울며 홰를 쳤다.
친구! 내 친구 어디 갔어?! 내 친구 불러와!!
=아잇 진짜! 주인님은 지금 칸트위 씨하고 대화 중이잖아……! 너 자꾸 주인님 얼굴에 먹칠할래……?!=
아무리 똑똑하고 희귀해도 비상식량은 쿠에, 사육 동물이다.
사람하고 같은 장소에서 살 수 없는 동물인 거다.
자꾸만 말 안 듣는 비상식량에게 이실리테도 화가 나서 부리를 잡고 힘으로, 억지로 마구간에 밀어 넣는다.
갑작스러운 힘에 밀린 비상식량이 깜짝 놀랐다가 온 힘을 다해 버티며 이실리테를 성난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실리테도 그 눈빛에 담긴 투지를 읽고 미간을 찌푸린 순간.
푸르르르
고개를 사납게 털어 이실리테의 손을 뿌리친 비상식량이 도끼눈을 뜨고 팍, 팍, 오른발로 땅을 차며 쿠으이 짧고 강한 소릴 냈다.
그런 비상식량의 행동에 이실리테도 얼굴을 굳혔다.
=너…….=
방금 비상식량의 짧고 강한 울음은 서열을 정하자는 비상식량의 도전이었던 것.
이실리테는 속상했다.
자꾸 주인님하고 있으려 하는 바람에 주인님의 체면을 계속 구겨대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이제는 자신에게 도전까지 한다.
이실리테도 입을 앙다물고 비상식량을 노려보다가 중철 대검을 들었다.
물론 커버는 벗기지 않은 상태.
이실리테가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만큼은 주인님이 말리셔도 못 참아. 앞으로 네가 잘 곳은 마구간이라는 걸 그 작은 머릿속에 쑤셔 넣어주겠어.=
쿠엑!
너나 저기서 자!
비상식량의 울음소리에 이실리테는 시끄럽다고 대꾸하며 환인과 대련할 때와 같은 자세를 잡았다.
=너 진짜 오늘 혼쭐날 줄 알아.=
주인님이 아끼는 쿠에라서 상당히 신경 써주었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자신이라도 혼내는 엄마 역할을 맡아서 비상식량의 버릇을 고쳐놔야지.
졸지에 사람 vs 쿠에 매치가 성사된 장면에 집사가 놀라서 칸트위에게 달려가 사실을 아뢨고, 칸트위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환인에게 물었다.
=환인 님. 저렇게 놔둬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언제고 일어날 거라 생각한 일이었으니까요. 조금 소란스럽겠지만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마구간이 부서지더라도 새로 지으면 그만이지만……. 이실리테 씨는 직업자이지 않습니까. 저러다 녹색 쿠에가 죽으면 엄청난 손해입니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꽃돼지 같은 외모의 칸트위를 향해 환인이 작게 웃었다.
“비상식량도 만만치 않은 녀석입니다. 보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허어.=
칸트위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성체 녹색 쿠에라고 해도 경매장에 올리면 200금화는 족히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라니?
자신이라도 말려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잠깐의 대치를 이어나가던 한 명과 한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실리테는 대검의 끝을 땅에 늘어트린 자세로 숄더 태클을 먹이듯이, 비상식량은 닭이 공격하기 직전처럼 날개를 활짝 펼친 채로.
쿠에에엣~!
=흐으읍!=
날개를 짧게 퍼덕여 살짝 몸을 띄운 비상식량이 파바바박 무수한 발차기를 날린다.
정면에서 보면 발차기가 비처럼 쏟아지는 광경. 하지만 환인의 소나기 같은 연격에 매일매일 얻어터지는 이실리테에게는 그리 빠르지 않은 공격이다.
타다다닥 카각, 터더더덕!
대검 자루를 날래게 놀려 막을 수 있는 발차기는 막고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한다.
‘무거워!’
그런데 발차기 한 발 한 발이 묵직하다. 실리는 무게만 보면 환인의 창격에 족히 2배는 되는 수준.
쿠에가 이렇게 강하다니, 뭔가 이상한데?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4초간 열 번의 공방이 지나고, 비상식량의 체공이 끝나는 직후를 노린 이실리테의 횡베기가 펼쳐졌지만.
쿠엣!
파다닥, 홰를 치며 체공 시간을 늘린 비상식량이 검격의 방향을 따라 한 바퀴 빙글, 회전해 회피한 직후 전광석화처럼 부리를 쪼았다.
따다다당!
=큭!?=
재빨리 검면으로 부리 쪼기를 막았지만 연달아 4번 가해지는 충격에 팔이 저릿저릿할 지경.
=너 진짜!=
드디어 이실리테도 화났다.
자신은 비상식량과 쌓은 기억 때문에 손을 매섭게 쓰지 못했는데 비상식량은 인정사정없이 공격하는 게 아닌가!
=흡!=
다쳐도 주인님이 회복제로 치료해주실 거라 믿고 이실리테가 대검을 살벌하게 휘두르기 시작한다.
팔 길이까지 해서 3미터에 가까운 리치가 막대한 힘을 품고 풍차처럼 강맹하게 휘둘러지자 비상식량도 차마 무시 못 하고 거리를 두는 순간.
=……!=
이실리테는 소리 없는 기합과 함께 쏜살같은 단거리 돌진에 이은 스피닝 백 피스트로 비상식량의 면상을 후려쳤다.
퍽!
뀩!
번개 같은 일격에 한방 먹은 비상식량은 이어서 들어오는 횡베기를 대검 단면을 파바박 내려 차면서 방향을 바꾼다.
퍼벅, 팍! 부웅 콰각, 따당 퍽!
이어서 벌어지는 난투.
비상식량과 공방을 주고받던 이실리테는 기가 차서 죽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주인님과 대련하는 것처럼 비상식량도 주인님과 꾸준히 대련해온 것은 알고 있다. 자신도 옆에서 사람과 괴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무언가 얻을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유심히 지켜봤으니까.
그런데 주인님과 대련할 때의 비상식량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맞붙으니…….
‘빨라! 게다가 공격이 변화무쌍해서 공격 방향을 짐작하기 어려워!’
퍽!
=큭……!=
게다가 쿠에 답지 않은 이 충격은 뭐란 말인가. 비슷한 급의 투사에게 한 방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지 않은가.
날갯죽지에 얻어맞은 어깨가 찌르르 울렸지만, 환인과 대련 덕분에 고통에 익숙해진 이실리테는 0.1초의 딜레이도 없이 대검으로 비상식량을 후려쳤다.
꾸잇?!
급하게 반격하느라 검면으로 쳤는데 오히려 넓은 공격 범위 때문에 채 못 피하고 얻어맞아 붕 날아가는 비상식량.
퍼더더덕!
아니, 얻어맞은 게 아니라 힘에 순응해서 뒤로 물러난 모습이다.
쿠우우…….
비상식량의 투지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차작, 땅에 착지한 비상식량은 머리를 잔뜩 낮추고 슬금슬금 횡이동을 하면서 이실리테의 빈틈을 노린다.
이실리테도 선제공격의 디메리트가 너무 커서 섣불리 달려들 수 없다. 공격 비율은 자신이 1번 공격할 때 비상식량은 4~5번 공격하는 수준.
자신의 공격보다 비상식량의 발차기가 더 빠르니 어쩔 수 없다. 계획 없이 들어갔다간 얻어맞을 뿐.
숨 쉬는 것도 잊고 대결에 몰두하던 칸트위는 서로를 노려보며 간격을 유지하는 둘의 모습에 뒤늦게 탄성을 지르며 환인을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세상에……. 환인 님, 제가 살아오며 수많은 쿠에를 봤지만 저렇게나 잘 싸우는 쿠에는 처음 봅니다. 녹색 쿠에라서 그렇습니까?=
칸트위의 질문에 싸움을 지켜보던 그의 손님 두 명, 조인족 루아르다와 인호족 아센도 궁금하다는 얼굴로 환인을 바라본다.
“아닐 겁니다. 저 녀석은…….”
비상식량은 첫 만남부터 비범했다.
비둘기보다 조금 더 컸던 시절에도 겁이 없었던 편이었고 심지어는 삼림형 미궁의 푸른불꽃 호랑이에게 겁 없이 날아들어 날개를 파닥거렸을 만큼 투지가 뛰어났다.
그리고 그간 잘 먹인 덕분에 몸무게도 빠르게 늘어 현재 150kg에 가까워진 상태다. 다리는 길쭉길쭉하고 두꺼웠으며 부리도, 발톱도 단단하고 날카로웠고 날개도 무겁고 단단하다.
무엇보다 저런 몸무게를 날개 두 개로만 하늘을 날아다닐 만큼 날개 힘이 엄청난 수준.
여기에 자신이 매일 하루 두 번, 사람과 싸울 때 주의해야 할 점을 가르쳤다.
뛰어난 피지컬에 환인의 지도를 똑똑한 머리로 쏙쏙 흡수한 비상식량은 말 그대로 전투식량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어진 상황.
그 결과 별 볼 일 없는 직업자라면 비상식량 혼자서도 이길 거라고 판단했다.
그랬기에 비상식량과 이실리테가 싸우게 된 상황에서도 나서지 않고 지켜본 것.
=이 쪼끄만 게 진짜, 너 이리 와!=
쿠엣~! 쿠흥! 헹!
=이게!=
푸다닥, 퍼벅, 카각 쾅! 쿠궁, 카가가가각!
=그렇습니까? 저 아이가 특별한 거였군요!=
“독특한 녀석이긴 하지요.”
서서히 드잡이질로 번져가는 이실리테와 비상식량의 싸움을 팔짱 끼고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던 루아르다가 환인과 칸트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분 대화에 끼어들어서 미안하오만, 저 쿠에에게 귀공이 무예를 가르치셨단 말이오?=
“무예라 할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번 공격했을 뿐이니까요.”
=…….=
그저 공격하는 것만으로 쿠에가 저만한 전투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건가?
척 봐도 이실리테라는 전사의 수준은 낮은 편이 아니었다. 아우라의 양도 준수한 편이고 대검을 다루는 몸짓과 자세, 검에 힘을 싣는 것과 발놀림도 무척 뛰어나 보인다.
저 정도라면 4급 전사와도 좋은 대결을 펼칠 수 있을 정도.
그런 전사가 쿠에의 등을 노리고 있다. 쿠에의 특성상 등에 올라타면 싸움은 끝이니까.
그런데 쿠에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 어지간해서는 등을 보이지 않고 올라탈 타이밍 자체를 주지 않는다.
파바박! 퍼벅, 떠엉! 터더더덩!
=비상식량 너 진짜!=
꾸에엑! 꾸웃!
=시끄러! 너 때문에 진짜 내가 못 살아!=
쿠흥! 큐삐잇!
=너 앞으로 나랑 얼굴 안 보려고 그러는 거야?!=
쿠엣! 쿠우쿠우! 쿠으으!
슬슬 둘의 싸움이 감정 다툼으로 번지려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둘이 사이가 나빠지면 환인도 곤란하기에 싸움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이실리테와 비상식량의 공격 방식과 패턴은 그동안 질릴 정도로 보고 외운 환인이다.
발차기와 대검 공격을 정신없이 주고받는 이실리테와 비상식량의 사이에 끼어들자마자 이실리테의 어깨와 팔의 각도, 다리의 위치와 몸의 비틀기를 읽고 마악 대검을 휘두르려 하는 그녀의 팔꿈치와 손목을 내리쳐 대검을 빼앗고 점프 공격을 시도하려는 비상식량의 다리를 밟으며 뛰어올라 등에 착지한다.
=으앗, 주인님?!=
큐웃?!
삽시간에 무기를 빼앗기고 등을 점령당한 둘이 깜짝 놀라 멈춘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도록. 서로 대련하며 향상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면 본말전도다.”
=그치만 주인니임. 비상식량이 자꾸…….=
꾸우. 쿠에쿠에. 쿠으으응.
둘의 칭얼거림을 잠시 들어주던 환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실리테는 비상식량을 배려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 비상식량은 이실리테의 말을 좀 더 얌전히 들어주고 따르도록 해라.”
=네에.=
쿠으에.
존경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주인님과 친구의 중재에 둘은 마지못해 서로를 째려보며 물러났다.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본 세 명, 칸트위와 루아르다, 아센은 놀라서 입과 부리를 살짝 벌렸다.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세 명의 눈에는 환인이 눈을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대검을 빼앗고 녹색 쿠에의 등에 올라탄 것처럼 보였다.
그 과정은 잘 보이지도 않았기에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저 녹색 쿠에에게 전투 기술을 가르쳤다는 환인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는 것.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