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21화 (121/813)

〈 121화 〉 118 마에스티그 촌락

* * *

“너는 이 아이의 영혼을 통한 축복을 받은 뒤에 어떤 느낌이었는지 말해주면 된다.”

=넵.=

“축복의 과정에서 몸의 자유가 제한되는 일이 있을 수 있으니 놀라지 말고.”

=넵.=

주인님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시는 거 보면 위험한 효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실리테는 환인을 믿었다.

“시작한다. 이라트, 저 언니에게 힘을 빌려주겠니?”

「……네.」

어린 아이에게 상냥한 말투를 쓰는 주인님이 왠지 보기 좋다고 생각한 순간 여자아이는 자신과 겹쳐졌고, 이실리테는 자기 몸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기분 나쁜 감각은 아니다. 뭔가 몸이 나른해지면서…… 힘을 주기 편한 느낌.

이실리테가 지구인이었다면 어슬레틱 테이핑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

“이실리테.”

=넵?=

“움직일 수 있다면 움직여봐라.”

움직이라고? 이실리테는 환인의 명령에 그의 앞에서 스트레칭 동작을 보였다.

“몸에 이상은 없나?”

=어…… 뭔가 움직이기 굉장히 편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코가 굉장히 좋아졌어요. 온갖 냄새가 나요.=

이라트는 인견족의 아이였다. 그 말은 인견족의 후각 예민 효과인가.

“신체 능력은?”

환인의 질문에 이실리테는 대검을 가지러 움직이려다가 발밑의 카펫이 뒤로 날아가며 미끄러져 콰당, 소리가 날 정도로 넘어졌다.

=……?!=

주인님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 팔에 힘을 주며 몸을 일으키려 한 순간, 이번에는 몸이 붕 뜨며 천장에 뒤통수를 찍었다.

=?!?!=

쿵, 바닥에 떨어진 이실리테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며 환인이 조언해주었다.

“갑자기 늘어난 힘에 지각 능력이 못 따라가고 있군. 천천히 움직여라.”

=네, 넵.=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도 몸이 막 멋대로 튀어 나가려 하는 것 같다. 이실리테가 당혹해하고 있을 때 환인이 명령을 내렸다.

“이라트, 걸어보겠니?”

=어앗? 모, 몸이 멋대로……?=

자기 몸이 멋대로 움직이자 이실리테가 당황한다. 몸의 제어 권한이 없는 모습이다.

이어진 신체 능력 테스트.

=후왓?!=

밖으로 나온 이실리테는 서전트 점프로 15m 이상 뛰어올랐다가 깜짝 놀라 허둥거린다. 환인은 땅에 깊게 찍힌 발자국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각력, 근력, 지구력이 전체적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중하급 영혼 구슬이 1.4에서 1.5배가량이었고 최하급 정령 구슬이 1.15배 정도였으니…….’

3배면 중급, 어쩌면 중상급일지도.

“그만하면 됐다. 이라트, 그 몸에서 나올 수 있겠니?”

환인의 말이 끝나자 강령 시간이 남았는데도 이실리테의 몸에서 이라트의 혼이 스르륵 빠져나온다.

=아…….=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 이실리테가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고통은 없나 보군.’

그저께 강도의 영혼으로 했던 결과와 다른 현상이다.

이라트가 변화한 영혼 구슬은 회백색이었다. 그렇다면 영혼 구슬의 색에 따라 고통의 유무가 발생하는 건가? 아니면 인간이 비인간 형태의 짐승에게 빙의한 후유증?

속으로 주억거리던 환인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테스트를 끝냈다.

한 번 더 강령을 실험해보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연이은 강령으로 기력을 소진하면 영혼이 강제로 성불할 가능성도 있을 수 있으니.

“이제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구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녀의 영혼과 함께 소녀의 생가로 이동한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소녀의 얼굴에 울음 섞인 표정이 번져가고,

탕탕탕.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검은색 체모의 인견족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결국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음? 헛, 영혼사님 아니십니까!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

말하던 남자는 환인이 물러서고 그 자리에 선 소녀의 모습에 말끝이 흐려졌다.

=이, 이레트……. 이레트니……?=

「아빠…….」

=이레트!!=

죽음이 갈라놓은 부녀의 상봉을 뒤로하고 코를 훌쩍이는 이실리테와 함께 집에서 떨어진 환인은 눈물을 철철 흘리는 부녀를 지켜보았다.

환인의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실리테가 코를 훌쩍인다.

=주인님. 혹시 이레트가 아빠랑 오래 있을 수 있도록 일부러 자리를 마련해주신 건가요?=

이레트를 제외한 열두 명의 영혼은 모두 성인이거나 노인이었다. 그런 영혼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도 미련과 희미한 욕심.

그런 영혼이 몸을 가지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레트는 오직 한 가지만을 바라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자신을 낳으며 엄마가 먼저 죽었다. 그 후 누구와도 재혼하지 않고 아빠 혼자의 힘으로 자신을 키우셨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한 자신은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허약한 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작을 일으켰고, 그때 밭일을 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던 아빠와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자신마저 죽고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아빠한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아빠. 절 낳아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이때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이레트…….=

「아빠한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했다구요. 아빠, 사랑해요.」

때문에 이레트가 허튼짓을 하지 않으리라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한 행동이었다.

이런 생각을 들려주면 상대방 열 명 중 다섯은 인간미 없는 괴물 보듯이 쳐다본다는 걸 환인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실리테의 호감을 낮출 생각이 없던 환인은 진실의 70%를 걷어내고 일부만 들려준다.

“도움을 받았기에 조그만 혜택을 준 것뿐이다.”

그리고 이실리테는 지구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편하게 해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피해서 숨기시는 거구나. 그럼 나도 모른 척 해드려야지.’

환인은 희미한 빛으로 변해 흩어지는 딸을 보며 오열하는 남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동안 조금씩 감정이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착각이었을 거다.

감정이 생겨났다면 이런 계산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저렇게 오열하는 남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환인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근래의 자신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방식은 조금 인간미가 없긴 해도 평범한 사람이 할법한 생각과 움직임이란 것을 말이다.

예전의 환인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복잡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

여긴 다른 세상이다. CCTV도 없고 인터넷도 없다. 들키지 않을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영혼을 강제로 취한 뒤 이실리테를 도구로 사용해 실험을 진행했겠지.

=크음…… 영혼사님.=

이레트의 부친이 빨개진 눈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상념을 끝낸 환인이 물었다.

“따님과 작별 인사는 충분히 하셨습니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왔던 이레트의 생부는 환인의 질문에 눈물을 다시 왈칵 쏟더니 무릎을 꿇으며 기도하듯 손을 포갰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레트와 작별할 시간을, 주셔서…… 끄흡. 정말 감사합니다…… 크흐흐흑.=

“저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여서 그 심정 이해합니다.”

=영혼사니임…… 크흐으윽….=

남자의 오열에 이실리테가 결국 눈을 가리며 고개를 돌린다. 환인은 손을 뻗어 남자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하늘로 떠난 딸을 위해서라도 힘내서 살아가십시오. 그래야 당신의 기억 속에서나마 이레트가 존재했음이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네, 네….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무릎을 꿇은채 연신 허리를 숙이는 남자를 뒤로하고 돌아가니 이실리테가 재빨리 옆에 따라붙으며 소매로 열심히 눈물을 찍어 훔친다.

하지만 좀처럼 눈물이 그쳐지지 않는지 =끄이잉.= 이상한 소리를 내기까지 해서 환인이 피식 웃었다.

“누가 보면 네 자식이 떠난 줄 알겠군.”

=그, 그치마안. 주인님도 부모님이…… 이레트의 아빠가… 울음을…… 아우. 끄응.=

여자 특유의 공감 능력으로 아내와 딸을 잃은 남자의 슬픔에 동화됐다고 여겼는데 자신 때문이었나.

환인은 이실리테의 목메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어 은하수가 뒤덮은 밤하늘을 보았다.

‘이 능력을 갖추고 지구로 돌아가면 부모님을 볼 수 있을까.’

없을 것 같다. 부모님은 워낙 금슬이 좋으셨고 한날한시에 돌아가셨으니 사이좋게 손잡고 떠나셨겠지.

‘……아니, 하나뿐인 아들이 사이코패스였으니 그게 걱정이어서 떠나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군.’

거기다 이상한 금화를 줍고 사라지기까지 했으니 정처 없이 헤매고 있으시진 않을까.

어쩌면 두 분 다 혼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더니 환인은 더더욱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주택 옆에 붙은 공터에서 마른 복어 두들기듯이 이실리테가 내비치는 약점을 자비 없이 두들기던 환인은 말없이 흑창을 내렸다.

연이어 얻어맞는 충격에 쓰러지지도 못하던 이실리테는 공격이 끊기자마자 아윽, 짧게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지만 1초도 지나지 않아 벌떡 일어나서 대검을 들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환인이 무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아직 아침 대련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저쪽 탁자 위에 세워놓은 모래시계로 남은 시간을 확인한 이실리테는 환인의 표정에 뒤늦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낮은 목책 울타리 너머로 호기심 어린 얼굴로 지켜보는 촌락 주민들.

크게 화난 표정으로 쿵! 중철 대검을 땅에 내려찍은 이실리테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직업자의 훈련을 함부로 훔쳐보는 것은 경을 칠 일입니다! 하물며 영혼사님을 엿보다니, 큰일 나고 싶으십니까?!!=

=히익?!=

=죄, 죄송해요!=

=엄마야……!=

쩌렁쩌렁한 불호령이 떨어지자 촌락의 주민들이 깜짝 놀란 길고양이처럼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모습을 역 팔자 눈썹으로 지켜보던 이실리테는 흥, 콧방귀와 함께 눈썹을 원래대로 만들었다가 몸을 움츠렸다.

=아야야…….=

주인님의 창은 어째서 맞아도 맞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유달리 아픈 옆구리를 문지르며 물을 마시는 환인을 힐끔거리던 이실리테는 환인이 다시 창을 쥐고 다가오는 모습에 반색하면서 중철 대검을 비스듬히 땅으로 늘어트렸다.

곧게 세우기도 하고 넓게 펴서 막아보려고도 했고 가로로 들어보기도 했지만, 대검 자루가 살짝 위로 오도록 비스듬하게 든 자세가 가장 공격을 막기 편한 자세였다.

몸의 1/4은 세운 검날이 가려준다. 나머지 3/4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은 자루를 짧게 움직여 쳐낼 수 있다.

‘편하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느냐면 그건 아니지만.’

다른 자세는 100번 공격받으면 스리쿠션까지 120번, 130번 얻어맞을 때 이 자세는 그나마 119번, 128번 맞는 정도로 그친다.

‘난 언제 주인님을 공격해볼 수 있을까?’

그때가 오면 나도 어엿한 전사가 될 수 있을까? 기대감에 설레하면서 이실리테는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든 환인의 공격을 눈에 담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

그런데 이상하다. 갑자기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이실리테는 처음 보는 천장에 눈을 끔뻑이다가 벌떡 일어났다. 맞다, 대련하고 있었는데?!

“일어났군.”

=어, 주인님?=

“급한 대로 중급 회복제를 썼는데, 몸 상태는 어떻지?”

그제야 자신이 거실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고 이마와 목에서 약간 무디면서도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 과음하고 난 다음 날처럼 목이 조금 무거워요. 어떻게…… 된 거예요?=

“이마를 찍히면서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졌었다. 목뼈에 손상을 받은 거지. 나머지도 마시고 바른 뒤에 괜찮아질 때까지 쉬도록.”

환인이 던진 회복 물약을 받아든 이실리테는 뒤늦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고 시무룩해졌다.

기절하기 직전, 이실리테는 환인의 공격 지점이 조금 높아서 머리 위로 지나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아니었다. 환인이 노린 곳은 정확히 미간.

하지만 서툰 전투 감각으로 오판을 내린 이실리테는 ‘이 공격을 피하면 처음으로 반격할 수 있을 거야!’라며 흥분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천금 같은 기회라 여긴 이실리테는 상체를 살짝 숙여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며 환인에게 돌진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실리테는 창의 궤적을 다 피하지도 않았고 반격의 기회도 아니었다.

거기다 설마 생각 없이 반격하겠냐는 심정에 환인은 이실리테가 숙이는 만큼 흑창의 끄트머리를 살짝 내렸으며, 그 결과 창자루 끝은 이실리테의 이마를 정확히 찍었고 창의 미는 힘에 이실리테의 나아가려는 힘과 맞물려 목이 230도 가까이 뒤로 꺾였다.

환인의 눈에는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뜯겨나간 이실리테가 풀썩 쓰러진 것처럼 보여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을 정도.

만약 환인이 흑창을 재빨리 회수하지 않았다거나 이실리테가 조금만 더 목에 힘을 줬다면 경추가 박살 나 즉사했을 상황이었다.

이실리테의 무모한 용기,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렇게 할까 싶은 환인의 안일함이 빚어낸 사고였던 거다.

=…….=

환인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범용 중급 회복제의 반은 마시고 반은 목에 골고루 바르는 이실리테를 복잡한 심경으로 지켜보다가 소리 없이 긴 숨을 내쉬었다.

눈동자가 돌아간 채 파들파들 경련을 일으키는 이실리테를 봤을 땐 솔직히 몇 초 정도 생각이 멈췄었다.

‘앞으로 대련할 때는 좀 더 주의해야겠군.’

자신도 누굴 가르친다는 게 처음이라 이런 경우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이실리테보다 자신이 더 주의하는 게 나을 것이다.

죽이기는 쉬운데 가르치는 것은 몇 배나 어렵다고 생각하며 이실리테에게 방에서 쉬라고 해놓은 환인은 기분을 환기할 겸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휘이이이——

촌락의 남쪽을 가로막고 있는 구릉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오자 강한 바람이 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속세의 찌든 생각마저 날려버릴 듯한 강렬한 바람도, 수십 킬로미터 너머까지 보일 만큼 탁 트인 고원의 풍경도 환인의 마음에 쏙 들었다.

크후흥~.

환인을 따라 나온 비상식량도 강한 바람이 마음에 드는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콧노래를 부른다.

‘오늘은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겠군.’

어제 성불행으로 소비한 훈기가 이제 70%까지 회복됐다. 날씨도 따스하니 시간을 여기서 보내다 보면 80%까지는 회복되겠지.

마치 양모처럼 부드러운 풀밭에 드러눕자 풀냄새와 흙냄새가 한층 더 강하게 다가온다.

눈을 감으니 표현 그대로 대자연에 파묻힌 느낌이다.

환인은 그 상태로 사색에 빠져들었다.

‘선하면서 이쪽에 우호적이고 미련이 강해 현실에 묶인 영혼을 영입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일시적으로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기적인 영입은 불가능해 보인다.

‘3배에 가까운 신체 능력 강화를 포기하긴 아쉬운데.’

아직도 중급 영혼을 강림해도 괜찮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런데 선한 영혼으로 강령을 펼치면 그에 가까운 신체 강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영혼으로 만약 저주를 걸면 신체 능력 약화가 얼마나 적용될까.

거기에 벽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지하 미궁에서 안전한 선행 정찰도 가능할 테고 개방형 미궁에서는 날아다니며 주위 감시가 가능할 테니 그 유용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군.’

수십 가지 방법을 떠올려봤지만 하나같이 내키지 않았다.

환인이 떠올린 수십 가지 방법이란 영혼에 해악을 끼치는 방법이었으니까.

사람에게 접근해 온갖 사탕발림으로 호감도를 올린 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사고사로 꾸며서 죽인 뒤 영혼으로 만드는 방법.

이실리테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접근해 그 바람을 이루어준 뒤 자기도 모르게 죽여놓고 의존도를 높인 영혼을 만드는 법.

큰 빚을 지워 사후에 영혼으로 갚도록 하는 방법. 영혼을 잘 구슬려서 맹목적으로 만든 뒤 이용하는 방법 등등…….

이 세상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만큼 영혼에 해악을 끼칠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지.’

조급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촌락과 마을, 도시를 돌아다니며 성불행을 해나가다 보면 조건에 맞는 영혼 하나 정도는 만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잖아! 만약……면! ……꺼야!?”

“……데 하…… 영혼…… …가도……!”

멀리서 들려오는 몇 사람의 고성이 날것 그대로 환인의 귀에 흘러왔다.

‘이상하군. 저 목소리는 통역 현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동안 여행하면서 환인이 본 문자는 하나였지만, 들어본 언어는 3종류였다.

루크랑 족이 쓰는 아라비아어 비슷한 언어. 플뢰인 이엘카타가 쓰는 불어 비슷한 언어. 미궁 탐사 도중 백려강이 쓰던 중국어와 일본어가 섞인 듯한 언어.

자신이 통역 현상이라 부르는 이것은 혹시 일정 거리 안에서 종족을 따지지 않고 이루어지는 건가?

그래서 여러 언어가 존재하는 거고?

‘통역 현상이 널리 알려진 거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생각하는 사이 목소리가 좀 더 또렷해지며 통역 현상이 일어난다.

=그만 좀 겁쟁이처럼 굴어! 만약 저게 마수면 어쩌려고 그래?!=

=아씨 진짜. 누나 제발 좀! 저 녹색 쿠에는 영혼사님이 데려온 쿠에가 맞다니까?!=

=나도 봤어! 하지만 그 쿠에는 멋진 갑주를 착용 중이었잖아! 저 새는 아니고!=

=무장 갑주라고 뭐 종일 입고 다니겠냐고오! 아아아 진짜 각성하고 힘만 더럽게 세져서는! 형! 형도 좀 말려봐!=

=셀피. 만약 저 쿠에가 영혼사님의 애완조가 맞으면 지금 큰 실수를 하는 거야.=

=너희가 하는 말은 나도 맞다고 생각해. 그래도 자경대인 우리는 촌에 위협이 될만한 것은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씩씩거리며 여자의 허리를 잡고 끌려가던 남자가 손을 놓고 투덜거렸다.

=난 모르겠다. 문제 생기면 누나 책임이야! 누나가 책임져!=

=만약 네 말대로라면 영혼사님께 무릎 꿇어서라도 용서를 빌테…… 니까…….=

남녀의 대화를 들으며 풀밭에서 몸을 일으킨 환인은 구릉의 비탈을 올라오는 토끼귀의 여자, 그리고 하반신이 말인 인마족 남자 둘과 시선이 마주쳤다.

세 명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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