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117화 (117/813)

〈 117화 〉 114 가닌 평원

* * *

환인은 그 열셋의 인간들과 시선을 나누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비상식량과 환인을 보며 저게 뭐야 하는 열셋의 얼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환인이었지만…….

‘비상식량에게 강령.’

이 세상에 지인이라고 해봤자 얼마 없다. 그리고 저렇게 대놓고 습격하겠다는 듯이 매복 중인 놈들이라면 안면이 있더라도 몰수해야 한다.

어제 오전에 습격해왔던 웨어렛were rat 이형종의 중하급 영혼 구슬을 비상식량에게 강령, 자신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2급 이형종의 하급 영혼 구슬로 강령한 뒤 소울 스틱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2중첩 영혼 화살.’

피피피픽­

40일간 웨이포드에서 끊임없이 훈련한 결과 발동 속도가 대폭 빨라진 2중첩 영혼 화살을 활 든 인간들을 향해 차례대로 쏘았다.

끅­, 컥, 끄걱.

여섯 번의 단말마와 함께 강도 여섯이 풀썩 털썩 차례대로 쓰러진다.

=뭐야?!=

=주, 죽었어!=

=뭐였지?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쿠에~!

중하급 영혼의 강령을 받았기 때문일까. 비상식량이 끄응­하는 소리를 내며 날개를 더욱 빨리 퍼덕이기 시작하니 놀랍게도 낙하를 멈추고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상태로 방향을 조절해 인간쓰레기들 쪽으로 이동하기까지 하는 비상식량.

‘음.’

지상의 강도들이 단검과 도끼를 던지려는 낌새를 포착한 환인은 3중 영혼 방패 2장을 펼쳐 비상식량의 아래쪽으로 이동시킨다.

칵, 카각­

단검 다섯 자루 중 2자루는 빗나가고 3자루는 영혼 방패를 맞추고 툭 떨어진다.

돌도끼는 단검보다 강한 충격을 줬지만, 영혼 방패는 한 장도 깨지지 않았다.

‘남은 구슬은 18개.’

도적들이 또 단검과 돌도끼를 투척하려 하는 것을 본 환인은 비상식량의 목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비상식량. 이렇게 떠 있으면 계속 공격받을 거다. 저쪽으로 내려가자.”

쿠, 쿠엣!

=도망치지 마라!!=

=거기서라아악!=

=어디를 가 이 씹새꺄아아아­!=

구릉지 너머로 이동하자 강도들이 성난 고함을 지르며 뒤쫓아온다.

환인은 그 모습을 좀 더 싸늘해진 눈으로 지켜보며 쫓아오는 다섯 외에 활을 들려는 여자 강도 둘의 머리를 영혼 화살로 꿰뚫었다.

뇌수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모습 사이로 구릉이 불쑥 솟아오른다.

타닥, 가볍게 땅에 착지한 비상식량에게 “잘했다.” 칭찬한 환인은 구릉 위쪽에 모습을 드러낸 다섯 강도를 보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이런 식으로도 작용하는 건가. 그렇다 해도 너무 멍청한데.’

열셋 중 여덟이 첫 조우에 죽었다. 보통은 겁먹고 도망치는 게 정상이다.

보통 눈에 띄는 공격으로 죽었다면 겁을 먹었을 텐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였다는 점이 그들의 용기를 부추긴 것이다.

=주인님~!=

저쪽에서 상황을 눈치챈 이실리테가 중철 대검을 뽑아 들고 달려오며 소리친다.

“비상식량, 이실리테와 합류하자.”

쿠엣!

중하급 강령을 받은 비상식량의 전력 질주 속도는 체감이 스포츠 카와 비슷했다.

쫓아오는 강도들과 거리가 삽시간에 벌어진다.

질주 중에도 흔들림이 거의 없는 비상식량의 등에서 환인은 소울 스틱을 겨눠 쫓아오는 인간쓰레기들을 향해 영혼 화살을 난사했다.

직업자 두 놈은 제외하고 나머지 셋에게.

아악­!

꺽!

꺄악……!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에 여자 강도 셋이 온몸에 구멍이 난 채 나자빠지자 그제야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는지 아우라를 몸에 감은 둘이 달려오다 말고 멈춘다.

=뭐, 뭐야. 다 어디 갔어?!=

=어어? 어어……?=

열다섯의 강도 중 남은 것은 전사와 투사의 아우라를 지닌 사슴 머리와 침팬지 머리 루크랑 둘 뿐.

도망칠 듯한 기색을 읽은 환인도 비상식량을 멈춰 세우고 강도 두 놈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도망칠 테면 도망쳐봐라.”

쿠우!

환인의 소울 스틱에 지목당한 강도 둘의 머릿속에는 좆됐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정찰을 나갔던 놈이 쿠에를 탄 두 명, 직업자와 무직자가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는 보고에 쾌재를 부른 게 불과 20분 전이었는데.

=이 쓰레기 자식드으으을~!!=

때마침 분노한 이실리테까지 추가되자 두 강도는 절망에 빠졌다.

척 봐도 여자 쪽은 자신들보다 급이 높은 전사다. 거기에 살이 잘 오른 쿠에까지 타고 있다. 다른 쪽은 자신들을 몰살시킨 정체불명의 인간.

두 강도는 환인의 장비도 그렇고 타고 있는 쿠에가 유색인데다 뛰어난 방어구까지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설마 저 스틱, 마도기였나!’

‘빌어먹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 시국에 둘이서 움직이는 거였어!’

자신들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목숨이라는 사실에 무기를 떨어트리고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어르신을 몰라뵈어서 죽을죄를 졌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비는 수뿐이다.

“이런 꼴을 벌써 세 번째 보는군.”

죽이려고 덤벼들었으면 끝까지 싸우다 죽을 것이지. 막상 붙어보니 자신들이 죽을 판이라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는 건 무슨 생각인가.

“이쪽을 습격해 죽이려 한 주제에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나.”

=오해십니다! 저, 저희는 그냥 구릉 뒤에서 쉬고 있던 여행자들이었어요!=

=어?=

사슴 머리 남자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댔지만, 침팬지 머리 남자는 환인의 목소리를 듣고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저 검은색 후드가 달린 가죽옷. 그리고 귀를 뚫는듯한 저음의 목소리에 담담한 목소리.

멋들어진 쿠에를 타고 있어서 못 알아봤는데 이제 기억났다.

=여, 영혼사님!!=

=……뭐?!=

“…….”

침팬지 머리 남자의 외침 덕분에 사슴 머리 남자도, 환인도 상대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레힐 마을 앞에서 만났던 이실리테의 도적단 패거리다.

사슴 머리와 침팬지 머리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살기등등하던 이실리테의 표정도 복잡한 심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환인은 사슴 머리 남자에게 시선을 주면서 물었다.

“구릉지 뒤에 쉬고 있었다고.”

=……저, 그…….=

“그냥 여행자였다고.”

=여, 영혼사님. 그게 아니라…….=

무어라 변명하려는 둘을 무시하고 이실리테에게 물었다.

“이실리테. 네가 보기에 저것들이 정말 구릉지 뒤에서 쉬는 걸로 보였나.”

=어?!=

=이실…리테 두목?!=

뒤늦게 자신을 알아보고 경악하는 전? 부하들의 모습, 그리고 저 멀리 죽어있는 셋의 모습에 이실리테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마음을 정리한 뒤 눈을 뜨며 대답했다.

=도적단의 사정이 나빠졌을 때 주로 쓰던 수법이에요. 이런 협소한 구릉지의 길목에서 숨어있다가 여행자나 행상인이 지나가면 화살을 쏴서 탈것을 무력화한 뒤에 공격하거나 협박하는 식이었죠.=

“…….”

=보니까 저쪽의 피해자들도 이놈들이 한 짓이에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전 재산은 물론 사람 목숨까지 빼앗는 저질 패거리가 됐네요.=

=두목! 아니에요! 오햅니다 진짜!=

=저쪽에 쓰러진 건 우리가 한 게 아니에요!!=

이실리테는 도적질을 해도 정도를 지켰었다.

습격하더라도 최대한 인명을 해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한 번 사냥감을 털고서는 멀찍이 자리를 옮기거나 그날은 쉬는 식으로 텀도 두었었다.

털어도 별거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가난한 여행자, 행상인은 그냥 보내는 관용도 베풀었지, 지금처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전부 털지 않았고 죽이거나 죽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었다.

=두목! 살려주세요. 제발! 두목!!=

=이실리테 두목!=

환인은 시끄럽게 떠드는 두 강도를 무시하고 이실리테의 눈을 바라본다.

=주인님은 지켜만 봐주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헤어질 때 다시 만나면 죽이겠다고 약속까지 했었으니까요.=

“…….”

고개를 끄덕이자 쿠르티의 등에서 내린 이실리테는 중철 대검을 들고 두 강도의 앞으로 나선다.

=두목!=

=이실리테 두목!=

=두목이라는 말 그만해. 난 이제 네놈들 두목도 아니고 도적도 관뒀으니까.=

그리고 답답함이 느껴지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덤벼. 살고 싶다면 날 죽여서 힘을 증명해봐. 그럼…… 어쩌면 주인님이 너희를 살려주실지도 모르니까.=

=……!=

=…….=

두 강도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녹색 쿠에를 타고 있는 영혼사를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사람이 나설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둘이라면 승산이 있어.’

‘두목은 힘밖에 모른다. 앞뒤로 협공해서 힘을 빼면 가능해!’

주섬주섬 떨어트린 무기를 각자 집어 든 옛 부하 둘의 모습에 이실리테는 분노보다 서글픔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쿠데타가 일어나서 쫓겨날 때만 해도 다시 만나면 반드시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이실리테는 후, 한숨을 짧게 내쉬면서 물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갈테이드는 어쩌고 너희 둘뿐이야? 무슨 일이 있었길래.=

=……두목이 가신 뒤로 두 패로 갈라졌어요. 갈테이드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말이나 쿠에를 더 사서 마적이 되길 바랐고 나머지는 지금처럼 하면서 편하게 좀 더 많은 돈을 벌길 원했거든요.=

두목이 바뀌면 으레 찾아오는 성장통이 이실리테가 떠난 도적단에도 찾아왔고, 도적단은 그 성장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별동대와 본대가 쪼개지게 되었다는 흔하디흔한 이야기.

10년 넘게 꾸려왔던 도적단이 와해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실리테는 어째서 서글픔을 느꼈는지 이해했다.

자신의 피와 땀이 스며들어있고 삶과 죽음까지 동고동락했던 놈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찢어져 타락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냥…… 이제 상관없는 기분이다.

=그래. 소식 들었으니 됐어. 이제 덤벼.=

=…….=

=…….=

강도 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 두목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서 돌아왔다. 남자 못지않게 걸걸하던 말투와 외모는 어디 가고 저렇게 아가씨처럼 변한데다 포근포근한 말투를 쓰고 있는 건가.

사자 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어쨌기에 저렇게 관리받은 것처럼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된 거지?

두목이 저렇게 예뻤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두 강도는 협공을 위해 좌우로 슬그머니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이실리테는 별안간 미궁에서 환인이 피가죽 클랜원들을 상대하며 보여주었던 움직임을 떠올렸다.

=…….=

이어서 레심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쿵!

발자국이 깊게 남을 정도로 땅을 찍은 순간 스프링처럼 튀어 나간 이실리테는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던 사슴 머리 남자와 간격을 삽시간에 좁혔고.

=어?=

한 줌의 망설임 없이 중철 대검을 대각선으로 올려 쳤다.

퍼헉­!

육중한 양손 대검이 서슬 퍼런 빛을 내뿜은 순간 사슴 머리 남자는 두 동강이 나 피와 내장을 허공에 흩뿌리며 내동댕이쳐졌다.

힘으로만 무기를 휘두르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협공하려던 동료가 두 조각이 나는 모습에 소름이 돋은 침팬지 머리 남자는 양손 둔기를 들어 올리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소용없었다.

빡!

체조 선수처럼 하늘로 솟은 발차기에 양손 둔기가 걷어차여 날아간다.

‘이게 파지법도 제대로 모르는 도적놈의 한계네.’

=미안해.=

=으아악! 두모……!=

뻐걱!

침팬지 머리 남자는 단 일격에 정수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쪼개지며 내장과 뇌수를 땅에 뿌렸다.

맥없이 끝난 대결이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낮은 급의 직업자들은 개개인의 차이가 큰 편이다.

급이 높아질수록 장비의 질이나 특기가 실전에 미치는 영향이 많이 줄어들지만, 2급이면 사소한 요소도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실리테의 중철 대검은 평범한 양산품 중에서도 발군의 공격력과 내구력을 자랑하는 무기다.

근력 또한 비슷한 등급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고 환인의 훈련과 단련을 흉내 내 매일매일 조금이지만 꾸준히 신체 단련을 계속했다.

무술 실력만은 5급에 가까운 레심의 1:1 레슨까지 열심히 받았다.

그에 비하면 강도의 무기는 녹슬거나 너덜거리고 있었고 방어구도 관리하지 않아 좀먹은 상태였다.

특별한 자질도 없고 정규 훈련은 이실리테가 두목일 시절 단체로 모여서 무기를 휘두르는 정도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이실리테가 사라진 뒤 없어졌다.

그러한 차이가 만들어낸 격차는 컸다.

2급 전사와 투사를 일도양단해버린 이실리테를 보며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심에게 배운 것을 잘 써먹는군.’

레심은 이실리테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르쳐준 것은 네 가지뿐.

두 다리에 체중을 싣는 법. 무기를 휘두르는 타이밍. 그리고 대검을 휘두를 때 필요한 보법과 운신법.

전부 이실리테가 괴력을 무난히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들이었고, 레심의 교육 방식은 이실리테에게 정확히 맞아떨어져 미궁에서 이루어진 사흘간의 훈련 속에 상당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취를 자신을 배신한 부하를 상대로 증명했다.

무기에 휘둘리는 어설픈 풋내기기가 무기를 제대로 휘두를 줄 아는 한 명의 전사가 된 것이다.

=…….=

마지막에 배신당했지만 그래도 동료는 동료였다는 걸까.

이실리테가 조금 처진 어깨로 죽은 부하를 응시하는 모습에 환인은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실리테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이 둘하고 붙으면 한참 드잡이질을 해야 이길 수 있었는데…… 제가 강해지긴 했나 봐요.=

“레심 씨가 가르쳐준 것이 그만큼 너에게 잘 맞는 거겠지. 그러니 앞으로도 꾸준히 연습해라. 그리고…….”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결정을 내렸다.

“오늘부터 아침저녁으로 30분씩 대련한다.”

=정말요?!=

언제 힘없었냐는 듯이 반색하는 모습에 환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면 대련 경험이 너에게도 도움 되겠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그런데 레심 씨에게 배우기 전에는 아니었단 건가요……?=

“…….”

=윽. 넵…….=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환인의 모습에 이실리테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피 묻은 대검을 닦고 죽은 강도의 소지품을 뒤졌다.

많은 숫자의 여행자와 행상인을 털었는지 소지금과 보석이 꽤 많이 나왔다.

=보석 주머니는…… 이 정도면 15금화는 나올 것 같아요. 돈은 6금화 12열은화 67은화 46열동화 112동화예요.=

“어지간히도 죽였군.”

=…….=

다시 시무룩해진 이실리테에게 주머니를 받아 가방에 넣는데 주머니가 너무 묵직하다.

‘소지금이…… 종족연합 금화, 61 금화, 23 열은화, 80 은화. 68열동화, 135동화인가.’

금화만 해도 1kg에 가까운 무게고 나머지를 다 하면 5kg이나 된다.

아무래도 다음 도시에서 돈주머니 전용 아공간 가방을 사거나 위상석으로 교환해서 들고 다녀야 할 느낌.

=장비는 대부분 녹슬고 좀먹어서 가치가 없을 거 같아요.=

“그럼 버려. 출발한다.”

=넵.=

저녁이 되어 길가에서 벗어나 야영지를 꾸린 환인은 식사하기 전에 흑창을 들고 이실리테를 불렀다.

이실리테도 부른 이유를 눈치채고 재빨리 중철 대검을 들고 일어선다.

“시작하지.”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가 배워야 하는 것은 막는 법과 피하는 법이다.”

=방어술이네요!=

“레심 씨가 말했던 대로 너의 가장 큰 무기는 힘. 급이 오르고 성장할수록 힘이 대폭 늘어날 테니 어지간한 방어는 그 힘으로 깨부술 수 있겠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방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이실리테가 앞으로도 대검을 계속 쓴다면 대검을 이용한 패리와 가드는 반드시 익혀야 한다.

더불어 공격할 타이밍을 읽는 법도.

오, 공격이 최선의 방어. 뭔가 있어 보이는 격언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이실리테는 명치에 짜릿한 고통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뒤늦게 흑창의 자루 끝이 자신을 공격하고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콜록! 콜록콜록! 어, 언제……?=

움직이는 게 안보였…… 아니, 보이긴 했는데 시야 가장자리에 스쳐 지나가는 풀잎이나 나뭇잎처럼 공격이라는 인식을 못 했다.

왼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물러서는 이실리테에게 환인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의하지 않고 있군. 내가 분명 시작한다고 했을 텐데.”

=……!=

“일단 좀 맞을까. 맞다 보면 아픈 게 싫어서라도 주의력이 생기겠지.”

‘히이이익!’

이실리테는 잔상을 남기며 쏟아지는 공격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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