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110 소도시 웨이포드
* * *
“이대로 계속 돌아나가면 밤 9시쯤 되겠군요. 이런 장소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는 것보다 늦더라도 빠져나가는 것이 좋을 듯 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환인의 질문에 레심은 정서불안에 걸린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알드티스를 힐끔 보고 대답했다.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면 나가서 편히 쉬는 것이 좋겠지요.=
“벌써 일주일 가까이 씻지 못했으니 아가씨도 찝찝하실 테고 말입니다.”
=네, 넷? 아아,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가림막을 세워놓고 이실리테와 서로 몸을 닦아주는 것도 불편하셨겠지요……. 그럼 조금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잘 따라오십시오.”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백려강은 창피함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환인이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것이 기뻤다.
게다가 어째서일까. 미궁의 정신 공격에 한 번 당하고 났더니 자기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정략결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략결혼. 그게 뭐가 대수라고.
자신만 하는 것도 아니고 호족 가문, 권세 있는 고족 가문이라면 대부분이 정략결혼을 한다. 연애 결혼 자체가 드문 것이다.
그걸 가지고 인생의 무덤이니 암울한 미래라느니, 지금 생각하면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이 세상에서 돈이면 하지 못 할 일이 없다.
자신은 6급 호족의 차녀. 그 아버지가 자신을 아무에게나 시집 보내지는 않을 테니 결혼 상대도 돈 많은 호족이거나 매우매우 돈 많은 고족일게 틀림없다.
‘그 많은 돈으로 레심처럼 내 힘을 쌓는 거야. 아니, 돌아가면 쓸데없이 비싼 옷과 패물을 바로 처분한 뒤 공부와 훈련을 시작하자. 여자가 무슨 훈련이냐고 하면 나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라고 하면 돼.’
가치를 올리기 위한 투자라고 하면 ‘그’ 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을 것이다.
왠지 신나기 시작했다.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슴을 채운다.
그의 말대로 마음만 바꿔먹었을 뿐인데 이토록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다니.
일곱 마리의 중형 괴물 지네와 소형 괴물 거미, 쉬리커가 환인의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창술에 허깨비처럼 쓸려나가는 것이 백려강의 망막에 맺힌다.
아아, 환인 님…….
환인, 이실리테, 백려강과 레심, 비상식량, 마지막으로 알드티스.
다섯 명과 한 마리는 후드 망토와 후드 로브를 입고 미궁을 빠져나왔다.
휘영청 뜬 보름달이 대지에 밝은 빛을 뿌리는 시간.
미궁 입구를 지키는 네 명의 출입 관리병들이 본인 확인을 위해 환인 일행을 붙잡았지만, 백려강이 6급 호족 가문의 징표를 보여주는 것으로 검문 없이 통과.
=그럼 저와 아가씨는 곧장 알드진 베레님의 성으로 향하겠습니다.=
“아가씨, 그리고 레심 씨. 고생 많았습니다.”
=아니에요, 환인 님. 저야말로 폐 많이 끼쳤어요.=
“……마음의 정리를 잘 하신 것 같군요. 표정이 밝아 보입니다.”
=그, 그것도 보이시나요?=
수줍게 대답하는 백려강에게 작게 미소 지어준 환인은 크흠, 헛기침하는 레심을 돌아보았다.
=오늘 밤 안으로 일이 전부 해결될 테니 내일 좋은 소식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의뢰보수입니다.=
레심이 내미는 작은 주머니를 받아서 챙기던 환인은 백려강이 망설임 없이 품에 안겨드는 것을 보고 움찔, 굳었다.
파랑새가 있다면 이런 색과 모양이 아닐까 싶은 깃털 귀가 파르라니 떨린다.
어정쩡하게 손을 들고 있던 환인은 백려강의 등을 살짝 토닥이면서 레심을 쳐다보았다.
‘제 의지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휴우.’
레심이 칼 들고 덤비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환인은 조금 의아했다. 백려강이 이렇게나 호감을 표시할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오해를 빚은 것 때문에 호감도가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었다.
자신의 앞에서는 계속 웃음을 지었지만, 그 표정은 어딘가 어색했었고 시선도 잘 마주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잠시간 있다가 떨어져 나간 백려강은 후드를 깊게 쓰고 환인에게 허리를 꾸벅 굽힌 뒤 황급한 걸음걸이로 인파에 섞여 사라졌다.
레심도 환인에게 가벼운 목례 후 후드 로브의 앞을 여민 알드티스를 끌고 백려강의 뒤를 쫓아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도 돌아간다.”
=넷.=
쿠에~.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바로 올츠 호텔로 돌아온 환인은 입구에서 눈이 커진 호텔 지배인의 제지를 받았다.
=그렇게 큰 새를 들이면 곤란합니다, 손님.=
아무리 비상식량이 풍성하고 보드라워 보이는 녹색 깃털로 뒤덮인 귀엽고 매력적인 새라지만, 그 크기는 성인을 등에 태울 정도로 크다.
“루트알스 씨가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만,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쿠우.
다른 손님의 안전 문제도 있고 저렇게 큰 게 호텔 내부를 돌아다니면 호텔 평가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호텔 지배인은 고민 끝에 허가를 내주었다.
“곧 성체가 되는 녹색 쿠에입니다. 유생일 때부터 키웠으며 남다른 총명함으로 시장 가치만 추정 300금화에 가까운 녀석이지요. 축사에 따로 두었다가 문제가 생기면 올츠 호텔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을 해서 허가를 내준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비상식량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전액 손해배상을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받아들여 준 거겠지. 잠깐 사이 지나다니던 투숙객들 전원이 무척 귀여운 비상식량을 보며 호의적인 반응만 보여준 덕분일 테고.
‘피곤하군.’
2인 객실로 돌아온 환인은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긴장이 빠져나가는 것과 피로가 몸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거의 7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환인은 제대로 쉬지 않았다. 야영 중 자고 있을 때도 귀를 열어놓고 있었고 일어나있던 시간은 주위 경계에 신경을 쏟았다.
마지막 6시간은 쉬지 않고 몇 번이나 싸우며 미궁을 걸어 올라왔다.
틈틈이 핏빛 돌멩이를 만지며 피로 회복을 시도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피로가 쌓여 귀찮음이 발생한다.
창을 거실 한쪽 구석에 세워놓고 가죽옷을 벗고 있으니 짐가방을 내려놓은 이실리테가 옆에서 도우며 물었다.
=주인님, 목욕 준비할까요?=
“그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피로가 어느 정도 풀리겠지.
벨을 울려 찾아온 메이드에게 목욕 준비를 부탁한 이실리테는 비상식량의 등에서 짐을 내린 뒤 자신의 장비도 벗고 환인의 가죽옷부터 손질하기 시작했다.
등이 가벼워진 비상식량이 기지개를 켜듯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부르르 떨다가 개운한 듯 쿠삐~ 콧소리를 낸다.
그런 비상식량을 가벼운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지켜보던 환인이 입을 열었다.
“네가 성체가 되면 이렇게 함께 지내지도 못하겠군.”
쿠엣?!
곧장 충격받은 표정을 짓는 비상식량. 그 모습에 환인이 작게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네가 성체가 되면 덩치가 지금보다 더 커질 거다. 그만한 몸집은 문을 통과하기도 힘들지.”
평범한 밀짚 쿠에는 등 높이가 1.7m에 머리 높이는 2.5m 정도다. 날개를 좌우로 펼치면 3.5m에 달하는 수준.
하지만 지금 비상식량은 벌써 등 높이가 1.5m 정도에 머리 높이도 2m를 넘기는 상태다. 날개를 좌우로 펼치면 4m나 된다.
쿠우…….
따로따로 지내는 건 싫은지 비상식량이 시무룩해지더니 구석으로 타박타박 걸어가서 주저앉아버린다. 머리까지 땅에 늘어트린 게 어지간히 상심한 모습이다.
‘저 녀석이 다 자라면 쉴 곳을 찾는 것도 일이겠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함께 지내다 보니 사람과 같은 방에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모양새였다.
말은 잘 들으니 밖에서 자게 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그래도 몸값이 비싸다 보니 환인도 비상식량을 밖에서 재우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하든가 아니면 펜션 같은 곳이 있는지 찾아보던가.’
환인이 비박을 좋아한다지만 그건 고즈넉한 숲속을 좋아해서지 딱히 노숙이나 야영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군.’
마도기로 분류되는 방어구나 미궁 탐험에 필요한 물품을 갖추는 건 물론 여행비와 생활비도 많이 들 거다.
팔걸이에 반쯤 기대 생각에 잠겨있으니 호텔 메이드 세 명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물동이를 가지고 객실로 들어왔다.
잠시 후 목욕 준비를 끝마친 호텔 메이드 세 명은 기대감도 허무하게 이실리테의 손에 객실에서 내보내졌다.
=하, 하지만 목욕 봉사는……!=
=그건 주인님 직속 하녀인 제가 할 일이에요. 그동안 저 대신 주인님을 모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앗.=
‘내가 있는데도 주인님을 넘보다니.’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코웃음 친 이실리테는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로 환인의 목욕 시중을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들었다.
물론 순수한 봉사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목욕용 세정제를 부드러운 수건에 묻혀 거품을 내던 이실리테는 환인의 몸을 힐끔거리며 침을 꼴딱 삼켰다.
‘어쩜 몸이 이렇게 깨끗할까.’
손에는 창을 휘두르며 잡힌 굳은살이 있지만, 그건 주인님의 실력에 없는 게 더 이상하니까 넘어가고.
이실리테가 느낀 것은 동족 남자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청결함이었다.
루크랑 족의 남자는 전신이 털투성이다.
인상족人?? 남자는 털이 없다지만 머리털도 없고 피부라기보단 껍질이라 불러야 할 만큼 우둘투둘하니 제외.
그러다 보니 물에 젖으면 불쾌한 짐승 냄새가 나기 일쑤인데다 씻기 힘들다 보니 제대로 깨끗하게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레심 같은 경우에는 고족 집안 자제인데다 봉사 받는데 익숙한 입장이라 청결했던 거지, 당장 일반 구역에 가보면 꼬질꼬질한 옷 입은 동물들이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걸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인님은 여자처럼 살결이 매끈해.’
목욕 시중을 핑계로 약간의 흑심을 담아 만져보면 여자와 똑같은 것은 아니고 뭐라고 할까…….
‘남자의 거침이 살짝 느껴지는 듯한 그게 좋아.’
도적 두목으로 있을 때 어리고 발랑 까진 계집애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너무 까져서 나대다가 얼마 안 가 죽었지만 아무튼.
남자는요. 때때로 너무 짜증 나서 멱을 따버리고 싶을 정도예요. 왜 짜증 나냐고요? 박힐 때 털이 안으로 함께 밀려들어 온 적 없으세요? 아, 남잔 관심 없으시다고요……. 아무튼 흥분된다고 온몸으로 껴안으면 한여름 털 이불 속에 파묻히는 느낌이고요. 한 달 동안 비 맞고 뒷골목 돌아다닌 개새끼 냄새는 덤이에요. 주먹같이 생긴 게 보지 속에 박혀서 안 빠지는 그 느낌도 최악이고요…….
하나하나 나열하던 것을 모두 합쳐보면 그냥 루크랑 남자 그 자체가 죄악이라는 말이었다.
플뢰는 그런 게 하나도 없는 대신 실좆이에요. 박혀도 아무 느낌도 안나요. 근데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저한테는 허공에 대고 흔드는 느낌이라고 하는 거예요! 시발 자기 좆이 작은 걸 가지고 내 탓이나 하고. 프라우드요? 셀핀 프라우드는 애새끼랑 붙어먹는 느낌이라 더 거지 같아요. 핀겔은 시발 그 흙 냄새랑 썩은 술 냄새가 뒤섞인 거 같은 떡진 수염…… 우욱. 사비 남자랑도 해봤는데 그쪽은 더 빌어먹을 이에요. 자꾸 비늘에 찔려서 아프고 무슨 말자지 같은 게 꾸득꾸득 들어와서 내장을 통째로 밀어 올리는데 진짜 보지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느낌도 뭐가 뱀이 들어온 거 같아서 더 최악.
그렇게 남자들을 싸잡아 욕하던 계집애는 결론에서 루크랑 남자가 그중 제일 낫다며 깔깔 웃었었다.
자지 뽑기만 잘하면 나름 괜찮다나.
저, 돈 모아서 성도의 고급 남창관에 가본 적이 있거든요? 거긴 남자를 줄 세워놓고 고를 수 있는데 발기한 것도 볼 수 있단 말이에요. 저 혹이 없는 자지도 있다는 거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 후 자기 꿈은 자기 취향의 성기를 가진 루크랑 남자 노예를 사서 몸통의 털을 다 밀어버린 다음 뜨겁게 침대 위를 뒹구는 거라고 했었는데,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정규군과 싸우다 날아온 화살에 머리가 꿰뚫려 죽었다.
중요한 점은 남자를 겪어본 도적단의 여자들 모두 그 까진 계집애의 의견에 공감했다는 거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그런 단점을 모두 제거한 `완벽한` 남자가 바로 자신의 주인님이었다는 것.
이번이 두 번째 목욕 시중이지만, 시중을 들던 도중 주인님의 그것을 본 이실리테는 침을 꼴깍 삼켰었다.
그 계집애가 손꼽아 갈망했던 최고의 형태였던 것은 물론 피부도 매끄럽고 몸도 좋고 저음의 목소리도,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그 손길도,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은근히 좋은 냄새도…….
아니, 냄새가 아니라 체취라고 해야할까.
그게 얼마나 좋았는지 환인이 목욕할때 몰래 환인이 입었던 셔츠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킁킁 맡아본 적도 있는 이실리테였다.
“목욕 시중 드느라 수고했다. 너도 씻고 나오도록.”
목욕을 끝낸 환인이 나가면서 한 말에 이실리테는 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몸을 깨끗이 씻고 나왔지만…….
“끝났나. 그럼 식사하러 가지.”
=…….=
옷을 입고 객실을 나가는 환인의 뒷모습에 이실리테는 시무룩, 입술을 삐죽거렸다.
주인님은 내 몸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신 걸까?
밤이 늦었지만, 호텔이라는 이름을 내건 숙박업소답게 음식은 금방 준비되었다.
비록 점심이나 저녁처럼 본격적인 메뉴는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고기와 채소 요리가 나왔기에 불만은 없었다.
이실리테와 식사를 마친 환인은 객실로 룸서비스를 불러 비상식량의 저녁을 챙겨준 뒤 부리로 깃털을 사악 삭 고르는 것을 구경했다.
‘고기를 설마 뼈째 씹어먹을 줄이야.’
2차 성장기 때 비상식량의 부리는 평범한 새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3차 성장기인 현재에는 부리 안쪽에 어금니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아케이드 모양 딱딱한 돌기가 여럿 있는데 그것으로 뼈를 씹어먹는 것처럼 보였다.
‘통구이를 주문해서 주먹 크기 정도로 뼈째 토막 쳐달라고 하면 되겠군.’
꾸우~.
만족스럽게 깃털을 다듬은 비상식량은 창가 의자에 앉아있는 환인을 보고 눈을 반짝이더니 그의 곁에 웅크리고 앉는다.
그리고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눈을 감더니 고롱거리면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환인은 비상식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창밖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던 도중 귓가에 희미한 소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포착했다.
뭔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 희미한 비명과 고함.
아래층이나 위층, 좌우 객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그 소음에 섞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어디서 싸우는 소리 아니에요?=
=저 방향은 중심가 상업 구역인데…….=
잠시 후 탁탁탁탁, 여럿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환인도 일어서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옅은 아우라에 뒤덮인 세 명의 남녀가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고 그 뒤를 따라 웨이포드 정규군 복식의 전사 두 명이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다.
=화염 발사.=
추격 중인 쪽에서 작은 목소리와 함께 손에 쥔 완드에서 화염 화살이 붉은 궤적을 남기며 쏜살같이 날아가 고양이 머리 남자의 등에 꽂힌다.
펑!
=으악!=
인묘족 남자는 직후 도달한 정규군 전사의 칼질에 심장이 꿰뚫려 사망했고.
=안돼, 칠라!=
=멈추지 마! 계속 도망쳐야……! 끄악!=
나머지 두 명도 단검 투척에 허벅지와 어깨를 맞아 비틀거리다 뒤쫓아온 전사의 칼질에 목이 달아났다.
정규군 전사들은 어느새 불을 켜고 창가에서 두려움 섞인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중심가 시민들을 향해 설명했다.
=6급 호족 영애님의 습격 사건 범인들입니다. 무고한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신경 쓰지 마시고 남은 밤 편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들이 영애님을 습격한 겁니까?=
어느 남자의 질문에 정규군 전사 한 명은 붉은 신호탄을 하늘로 쏘고 다른 한 명은 그 질문에 대답했다.
=내일 공고문이 대로의 소식판에 붙을 겁니다. 거기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가자.=
=음.=
전사 두 명은 달려서 자리를 벗어났고, 잠시 후 도시 소속 미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시체를 정리하고 땅에 묻은 핏자국을 지운 뒤 다시 사라졌다.
그 후에도 챙챙거리는 소음과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약한 함성 등이 이어졌다.
중심가 거리의 시민들은 그런 소음에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집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럴 때 거리를 쏘다니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모습.
소음이 시작된 지 3시간이 지났을 때 도시는 다시 조용해졌고, 다시 1시간이 지났을 때는 어디선가 흘러오던 탄 냄새와 피 냄새도 사라졌다.
웨이포드의 중심가는 평소의 조용한 모습을 되찾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