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109+ 빛이 닿지 않는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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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빛이 닿지 않는 미궁
백려강이 호족이라는 것은 예상했기에 그녀가 신분을 밝혔을 때도 환인은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의 정신 미약 상태에서 오해와 착각이 빚어졌음을 서로 인지한 상황.
선택지를 골라야 할 때가 왔다.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는 건…….’
지위와 신분으로 입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발언의 신뢰성을 올리기 위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행동도 두 가지로 나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직업을 숨기고 그저 일회성 인연으로 끝낼지, 아니면 자신의 직업을 밝히고 좀 더 깊은 인연을 맺을지.
백려강이 6급이라는 고위 호족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환인이 숨기고 있던 것도 만만치 않다.
웨이포드에서 영혼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며 알게 된 사실. 이 세상에서 영혼사란 지구의 종교 지도자와 맞먹는 존경과 흠모를 받는 지위다.
자기 삶을 희생해 방황하는 영혼을 구원하며 세상 사람들이 혼재로 인해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해 평생을 방랑하는 구도자들.
평범한 묘지기가 영혼사로 각성했다고 도시의 주인인 4급 호족의 성에 불려갔다.
영혼사란 호족의 자녀가 아니라 호족 당사자와 어느 정도 겸상도 가능할 수 있는 신분인 거다.
환인은 생각 중인 자신을 보며 조금 슬퍼하거나 약간 긴장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
=…….=
두 사람은 환인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친구 삼기에 합격점을 받을만한 성격과 품성, 배경을 지녔다.
레심의 경우 거기에 향상심도 뛰어난 편이고 백려강은 신분에 걸맞지 않은 순수함과 나쁘지 않은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비록 약한 우울증 탓에 정신 침해에 정신력이 빠르게 소모되어 악한 모습을 잠시 비추었지만, 그마저도 환인의 기준에는 매운맛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순한 맛이었다.
이 둘과 일회성 인연으로 끝맺는 것보다 좀 더 인연을 이어나가는 쪽이 자신에게 득이 될 거라고 판단을 내렸다.
일회성 인연으로 끝낸다면 그저 신분의 기밀성이 잠시간 더 유지된다는 것뿐.
하지만 직업을 밝히면 기밀성의 유지는 물론, 이후에도 괜찮은 인맥이 이어질 것이다. 영혼사의 인맥이라는 타이틀은 호족에게도 귀중한 편일 테니까.
물론 장점 외에 단점도 있다.
레심이나 백려강이 본의 아니게, 혹은 실수로 자신의 정체를 흘렸을 경우.
하지만 그러한 단점도 시간이 흘러 힘과 인맥, 권력을 갖추게 되면 단점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진다.
환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자신의 신분을 고백했으니 저도 숨기고 있던 신분을 밝혀야겠군요.”
=역시! 환인 님도 원래 계셨던 곳의 호족이셨군요?=
레심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은 저를 무직자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실은 저도 직업자입니다.”
=아…….=
=예? 어, 그럼 환인 님은 그 희귀하다는 무휘광이셨군요?=
“예. 그리고…… 약 10일 전부터 도시가 시끄러웠었지요. 영혼사가 도시를 방문했다는 소문 때문에 말입니다.”
백려강과 레심은 작게 숨을 삼켰다.
설마?
“제2 공동묘지의 묘지기가 영혼사였음이 밝혀지며 소동은 가라앉았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 중심가와 일반 구역에서 성불행을 했던 사람은 그녀가 아닙니다.”
=환인…… 님이셨군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환인이 아까 죽인 피가죽 클랜의 영혼 하나를 꺼낸 뒤 강제력으로 입을 닫게 만들고 훈기를 주입해 실체화했다.
눈앞에 벌거벗은 반투명한 여자 영혼이 나타나자 백려강이 손을 살짝 떨었다.
=이, 이 사람은?=
“방금 습격해온 피가죽 클랜의 패거리 중 한 명입니다.”
세상에. 차원 방랑자 출신의 영혼사라니.
각성한 차원방랑자가 있다는 소문은 수도 왕립 고등학원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데.
놀라고 혼란스러워하는 백려강의 귀에 레심의 선망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어온다.
레심의 눈은 두 배 가까이 커져 있었다.
=그래서 그때 한가롭지 않다고 하셨었군요! 그러면 웨이포드에 나타났다던 새로운 영혼사님은 어떻게 된 겁니까? 환인 님과 아는 사이인 겁니까?=
“두 분에게 제 직업을 밝히기 이전에는 이엘카타 씨만 제가 영혼사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어. 그럼?=
“제 성불행을 곁에서 지켜본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몰라도 그 후에 영혼사로 각성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도 그녀를 만나보려 했지만 소문을 들었을 때는 이미 성에 불려가신 뒤더군요.”
=아, 아니. 그럼 제가…… 아아. 그렇게 바쁘신 분에게 제가 이 무슨 어리석은 부탁을……!=
환인은 볼과 턱을 벅벅 긁으며 심란해하는 레심에게 작게 웃어준 뒤 백려강에게 살짝 머리를 숙였다.
“착각이 빚은 오해였다고 하나 아가씨께 못 할 말을 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건 전부 제가 모자랐기에 벌어진 일이었는걸요. 오히려 제가 사과를 드려야 해요. 죄송합니다, 환인 님.=
“일단,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지 못할 것 같군요. 저로 인한 습격자도 있고 아가씨도 더 이상의 탐험은 힘든 상태이기도 하니 진행은 여기까지만 할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순순히 받아들이는 백려강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환인은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쿠엣, 쿠우!
퍽퍽.
=……! ……!!=
반라의 여자를 걷어차고 밟아대는 비상식량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웅크린 채 얻어맞고 있는 여자.
그리고 옆에서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는 이실리테.
뒤에서 백려강과 레심이 헛숨을 삼키는 소리에 조용히 한숨을 내쉰 환인은 비상식량을 불렀다.
“비상식량. 이리 와라.”
쿠엣.
이리 오라고 손짓하자 쫄래쫄래 다가와 머리를 비비는 모습은, 좀 전의 전투적인 모습은 깃털 하나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 잘했지? 칭찬해줘! 하듯이 애교를 부리는 비상식량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환인은 자존감과 마음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인취족 여자에게 말했다.
“절 죽이겠다고 찾아온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잘 아시겠지요.”
모르면 머리통을 쪼개 주겠다는 뜻으로 허리춤의 돌도끼 자루를 만지자 고통에 신음하던 여자는 재빨리 무릎을 꿇으며 붕붕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된 게 존댓말을 하는데도 반말로 하는 노골적인 위협보다 더 무섭다.
게다가 이 남자는 고자라도 되는 걸까. 몸매만큼은 자신 있는데 팬티 차림의 자신을 보는 눈빛은 흡사 돌멩이를 보는 눈이다.
미인계도 통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여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검은 머리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이름은?”
=아, 알드티스입니다.=
“어디서 왔습니까.”
=피가죽 클랜입니다…….=
“목적은?”
=저, 저기 녹색 쿠에의 확보와…… 소유자의 처리 임무였습니다.=
“누가 시켰습니까.”
=두목…… 피가죽 클랜의 리더인 아시아 루단입니다. 이프리벨은 다, 당신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아시아 루단이 억지로 실행했습니다.=
=쓰레기들이군.=
환인의 뒤에서 취조를 듣고 있던 레심이 불쾌감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지만, 알드티스는 오직 눈앞의 검은 머리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몇 명입니까.”
=실행 부대는 저희 여덟 명이며…… 윗층 곳곳에 도주 장해부대가 대기중일 거에요. 숫자는 모르지만 열 팀은 될 거라고……. 아아! 아마 파티마다 직업자가 두 명에서 세 명 정도는 있을 거예요! 무직자는 다섯 정도일 테고요! 조직에 직업자는 50명도 정도니까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허리춤의 도끼 자루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알드티스는 기겁해서 머리를 쥐어 짜내다시피 하며 소리쳤다.
‘거짓말은 아니군,’
「흑. 흐으으으…….」
알드티스의 옆에는 토끼 귀 여자의 영혼이 알드티스와 똑같이 무릎을 꿇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정보 수집은 영혼에게 강제력을 발휘해 대답을 강요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일행도 공격 대상에 포함되었던 만큼 그들도 알 권리가 있다.
자신이 직접 사정을 전해주는 것보다 가해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실감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래서 환인은 알드티스를 위협했고, 일행은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하고는 곧장 분노를 드러냈다.
분노는 백려강이 가장 극심했다.
=환인 님. 이 사건은 제게 맡겨주시겠어요?=
“아가씨에게 말입니까?”
=네. 환인 님께 저지른 결례의 사죄를 대신해 피가죽 클랜 일을 환인 님이 신경쓰실 필요 없도록 깔끔하게 해결해드리겠어요.=
헐벗은 알드티스를 노려보는 백려강의 눈빛은 정신 보호 술법의 효과가 사라진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살벌했다.
“음…….”
백려강이 아무리 6급 호족의 자녀라고 해도 항구 도시 프라버와 이곳 웨이 포드는 거리만 수백 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런 그녀가 웨이포드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호족 영애의 섣부른 자만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어진 레심의 노기 섞인 설명에 환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환인 님. 이곳 웨이포드의 주인이신 알드진 베레님은 아가씨와 육촌이 되십니다. 이번 공격에는 아가씨도 포함된 만큼 나설 명분도 충분하니 마음 편히 아가씨께 맡기시면 됩니다. =
“괜히 이곳 미궁을 선택하신 게 아니었군요.”
=만약의 사태를 상정하면 안전장치는 아무리 마련해도 부족함이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가씨.”
=네. 맡겨주세요.=
알드티스는 세 남녀의 대화에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냥, 그냥 희귀 쿠에를 무직자한테서 빼앗기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무직자의 파티에…… 6급 호족의 자녀가, 웨이포드의 주인과 육촌 관계인 영애가 있었다고?
그 무직자는 영애와 적지 않은 친분이 있고?
‘다 끝났다……. 조직도, 상회도 다 끝장이야.’
남자는 지하 미궁 노역장에 끌려가 소모품으로 사용될 테고 여자는 귀속 노예가 되어 온갖 궂은일에 쓰이겠지.
하지만 자신 같은 직업자는 그런 거 없다.
무조건 이블 팩션 분쟁 지역에 보내져 전쟁 도구 겸 분쟁 지역 남녀 병사들의 성처리 도구로 사용된다.
그나마 비상식량에게 밟히느라 환인과 백려강의 대화를 듣지 못한 게 알드티스에게는 다행이자 불행이었다.
자신이 죽이려 한 사람이 영혼사였다는 것을 들었다면 알드티스는 스스로 13층까지 뛰어 내려가 타의적 자살을 해버렸을 테니까.
그러나 알드티스는 그것까진 듣지 못했고, 살아보겠다는 일념에 환인의 앞까지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리고…….
=나으리, 노예든 뭐든 시키는 건 다 하겠어요!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다 큰 처자가 헐벗고 손바닥만 한 팬티만 입은 모습으로 신발을 핥으며 애원하는 모습에 레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여자이기 이전에 적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런 남사스러운 모습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환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돌도끼를 내밀어 알드티스가 물러나게 했다.
“이 여자와 저 남자의 처우는 아가씨에게 맡기겠습니다. 둘 다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직급은 되는 듯 하니 증거물로 충분한 역할은 하겠지요.”
=아니요. 제가 본 것이 증거이고 제가 들은 것이 증거입니다. 저자들은 필요 없으니…… 레심, 부탁해요.=
=예. 아가씨.=
레심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검을 뽑아 인돈족 남자의 심장을 찔렀다.
=헉. 빌어…먹을…….=
=……!=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떨구는 인돈족 남자의 모습에 알드티스는 심장이 내려앉는 공포를 느꼈다.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팔을 잡힌 알드티스는 자신의 팔목을 잡고 으슥진 곳으로 끌고 가는 레심의 힘에 오줌을 지리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잠깐, 안돼. 제발! 제발 용서해주세요!! 싫어! 싫어어엇!!=
싫어싫어죽기싫어싫어! 이렇게 흉한 몰골로 죽기 싫어!! 누가 살려줘, 제발…….
미궁은 충분히 체험했기에 일행은 곧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기 시작했다.
진형은 전열에 환인, 중열에 비상식량 / 백려강 / 이실리테, 후열에 레심의 십자 진형.
환인의 머릿속에는 왔던 길은 물론 각 층별 계단 위치가 다 기록되어있었기에 지하 6층까지 거슬러 올라오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백려강과 레심, 알드티스는 환인의 무술 실력에 전율을 금치 못했다.
=저놈들도 조직원이에요!=
알드티스가 살기 어린 태도로 파티를 가리키면 직업자가 얼마나 많든,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상대의 진형이 어떤 식이든 상관없었다.
삽시간에 시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알드티스가 손가락으로 지목한 순간 단검 수 자루가 날아가 엽사, 술사의 아우라를 지닌 직업자의 목을 꿰뚫었고 그 후 전사나 투사같은 근접 전투직은 환인과 무기 한 번 부딪쳐보지 못하고 목이 베여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대체로 전투에 걸리는 시간은 10초~20초 남짓.
‘꼴 좋다, 빌어먹을 새끼들! 아시아 루단, 나더러 죽으라고 이런 괴물에게 밀어 넣다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네년의 명줄도 끊어주겠어!’
살아서 저승의 문턱을 본 알드티스는 미궁의 정신 침해에 완벽히 빠져 반쯤 이성이 나간 상태가 되었다.
백려강의 지시를 받은 레심에게 으슥한 곳까지 끌려가 머리가 떨어지려는 찰나, 살려서 쥐덫으로 쓰자는 이실리테의 조언 덕분에 겨우 살아남은 것이다.
=아가씨. 쥐는 쥐를 알아본다고 하잖아요? 눈치챈 쥐새끼들이 재빨리 숨어들 가능성도 있으니까 저 여자를 살려놓고 쥐를 한군데로 모으는 고양이로 쓰시는 게 어떠세요?=
=쥐덫을 놓는 데 쓰자는 말씀이시네요.=
=네. 쥐는 쥐로 잡는 게 제일 좋으니까요.=
전직 도적 두목 출신이라서 낼 수 있는 의견이었고, 6급 호족 가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할 수 있는 의견이었지만 백려강은 환인의 체면을 보아서 받아들였다.
=레심. 멈추고 그녀를 데려오세요.=
=예.=
자비 없이 떨어지던 죽음의 빛이 목을 미세하게 파고들었던 순간이었다.
정신력이 대폭 깎여나가 정신 침해에 완벽히 빠져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
미궁에 홀려버린 알드티스는 분노와 두려움 밖에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지려버린 오줌에 젖은 팬티마저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가슴을 출렁이며 다녀도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친것은 아니다.
‘깎여나간 원인에 공포가 있어서인가. 반대되는 감정밖에 못 느끼는 상태군. 질투와 외로움을 느꼈던 백려강이 짜증과 불쾌함에 공격적인 언사를 했던 것과 흡사해.’
류히와 그녀의 동생들이 겪었던 착란과 착각은 희망과 바람으로 인한 거였나?
하지만 거긴 미궁 외곽이었을 텐데. 몇 발 양보해서 미궁의 효과가 흘러나왔다 쳐도 정신 침해가 시작된 상황에 어떻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걸까.
노동자들이 미궁에 데리고 들어온 일반인들은 마약 같은 걸로 이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녀들은 그런 것도 없지 않았나.
‘정신 침해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생각을 정리하던 환인은 알드티스와 함께 피아 구분을 하는 토끼 귀 여자의 영혼으로 시선을 주었다.
며칠 전 다섯의 인간 부스러기 영혼을 통해 붉은 영혼 구슬과 영혼을 다루는 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익힌 환인이다.
영혼의 성불은 제멋대로다.
겁많은 개돼지 머리의 영혼은 감시를 지시한 지 16시간 만에 「더 이상은…….」이라는 말을 남기고 성불해버렸고 남은 적색 영혼 구슬 셋은 36시간의 유지 기간이 끝나자마자 구슬화 상태에서 빛무리를 뿌리며 성불했다.
영혼 구슬의 메커니즘을 알면 알수록 영혼을 탐색에 이용한다는 계획이 난해해진다.
아무튼 그 일을 겪으며 영혼 구슬의 보유 한도가 1개 더 늘었다.
성불하며 남긴 빛구슬을 흡수해서가 아니라 영혼 구슬에서 영혼화하며 바로 성불하는 순간 보유 갯수가 늘어난 것이다.
모든 영혼과 관련된 행동에서 능력이 성장할 수 있음을 알게 된 환인은 눈앞의 겁에 질린 영혼을 응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적의 영혼은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까.’
환인은 이실리테가 죽인 피가죽 클랜원의 장비와 소지품을 털어오는 것을 보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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